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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북클럽
커렌 조이 파울러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제인 오스틴으로 말하자면, 말할 것도 없이 잘 모른다. 대학다닐 때에도 영문학이라고는 그 근처 어디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래도 독서인으로 부끄럽지 않게 <오만과 편견>은 읽어봤다. <오만과 편견>이 영문학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이라고들 한다. 우리 머릿속에 들어앉은 기억이 비록 썩지는 않는다고 하나 한 세대는 커녕 수년을 보전키도 어려운 반면, 문자로 기록된 한권의 책은 곧 썩어 없어지지만 판을 거듭하여 수천년을 전해지니 불후라 할만하다. 이른바 고전 명작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듯이 무엇이 그리 뛰어난지, 무엇이 그리 훌륭한지 참으로 가늠하기 어렵다. 이 소설은 영화나 연극, 드라마로 숱하게 재탕, 삼계탕된 걸로 알고 있다. 예쁜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한 영화 <오만과 편견> 이 현재 절찬리(?)에 상영중이고, 듣기로 <브리짓 존스의 일기>도 <오만과 편견>의 리메이크라고 하는데 이런 것도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오만과 편견>이 고전 명작이라는 평가야 일반적인 것이겠고, <하이틴 로맨스>를 들고 다닌데서야 품위에 말이 아닌 교양인들의 숨은 욕망을 달래주는 B급 삼각로맨스 연애소설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제인 오스틴 북클럽 회원들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하다.
JD 셀린저가 일생동안 그 유명한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단 한편을 썼듯이(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내 장담하건대 오만과 편견은 저리 멀리 가라다) 오스틴도 불후의 명작 <오만과 편견> 한 편만 남기고 북망산천 넘어가신 줄로 알았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아시다시피 셀린져도 사실은 여러 편의 소설을 썼고, 제인 오스틴도 본 책을 보니 <오만과 편견>외에 <에머>, <분별력과 감수성>, <맨스필드 파크>, <노생거 사원>, <설득> 등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독서인들 중에 전작주의를 지향하는 인사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 작가의 책이 정말 재미있다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로 눈이 가고 손이 뻗치게 되는 것은 당근지사일 것이다. 제인 오스틴 전작주의자들의 모임이 바로 <제인 오스틴 북클럽>인 것 같다. 클럽이라고 하니 좀 더 있어 보인다. 장정일이 삼중당 문고(성능이 386쯤은 되어야 삼중당 문고를 알 것이다. 아마 지금은 잊혀진 책들의 묘지에나 가야 그 책을 볼 수 있을 것이다)를 무슨 경제개발 몇 개년 식으로 읽었다고 말했듯이, 나도 문득 독서연간계획이라도 세워 제인 오스틴 전작주의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가 말았다.
제인 오스틴 팬클럽 회원들은 이 책의 유혹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곳이 영국이 아니니 오스틴의 팬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일이고, 따라서 최소한 이 책이 참담한 실패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침 영화개봉에 맞추어 책이 출간된 덕도 조금은 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의 의도가 여기에 일부 있지 않았나 나름으로 짐작해 본다. 오스틴의 이름을 보험으로 삼아 이 기회에 바람타고 제인의 다른 책들도 많이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일이고 제인 오스틴을 어찌 하이틴 로맨스에 비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본인으로서는 책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오스틴의 작품에 관한 회원들간의 대화는 도대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알 수가 없었고, 따라서 오스틴의 작품들과 북클럽 회원 6명의 개인사 사이에 있을 것만 같은 어떤 연관성이나 암시나 의미들을 내가 놓치는 것 같아 찜찜한 기분이다. 북클럽 멤버 6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재미있다. 은밀한 개인사는 원래가 흥미로운 것이다.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니 은밀하게 되엇을 것이고 그런 것들은 결국 그 개인의 아픔이나 상처와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타인의 상처와 아픔을 아는 것은 그 인간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상처는 드러낼 필요가 있을 것이나 그것이 말대로 되지않는 것이 또 세상살이다. 고상한 북클럽은 아니라도 수다스러운 계모임이라도 만들어 이런저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볼 일이다. 더불어 같이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바로 비단 위에 꽃을 보태는 격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