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구판절판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 괴테-36쪽

일전에 읽은 <와인의 달인 로버트 몬다비 자서전>을 보면 몬다비 자신이 말하는 15가지의 성공철학 가운데 8번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조금 끼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외에는 그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차이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과 함께 일하라. 나는 이것을 너무 늦게 배웠는데 이것을 이해하고 나서 찾은 마음의 평화는 놀라울 따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날 흠모해 마지않았던 장사부께옵서 책을 내셨다고 하니 구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사부께옵서 불혹의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셨다고 하니, 아무리 아둔한 후생이라고는 하나 스스로를 돌이켜 반성해 보는 것은 당근지사 되겠다. 연이나 지난날 경애의 념을 다소간에 품고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인문학 부활프로젝트>라는 소제목은 어째 어불성설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소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장정일의 독서일기 6.5권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았다 한다. 책을 읽는 행위(독서)가 물론 공부이기는 하나 <독서일기>라고 하지 않고 <공부>라고 명명했을 때는 꿍쳐 놓은 뭔가가 있어야 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다. 지난 독서일기의 한편 한편을 더 늘여놓았다는 것외에 그 꿍쳐 놓은 뭐시긴가가 전혀 없는 것 같아 아쉽다. 과연 인문학이라는 학문이 어느정도이고 얼마만한 것이관데, 이 학문의 부활에 이 책 한권이 무슨 역할을 할지 궁금하고, 몇편의 독후감의 나열이 무슨 '프로젝트'란 말인지. 거창한 제목이 실로 공허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돼지 2007-03-04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 지나 (뭐 세월이 많이 지난 것은 아니다. 한 20여일 그냥 그렇게 흘렀다.) 위 글을 다시 읽어 보니 사부께 송구스런 심사가 없지 않다. 뭐랄까. 이십여년전(이십일이 아니다) "아담이 눈 뜰 때"나 "햄버거에 관한 명상"을 처음 읽을 때의 그런 감흥이 생기질 않는다. 하긴 그냥 그래.. 덧없이 속절없이 흐른 세월이 20여년이니 나도 늙었고 그도 늙었나 보다..그래도 애정이 쉬 사라질리야 있겠는가..
 
와인의 달인 로버트 몬다비
로버트 몬다비 지음, 이병렬 옮김 / 바롬웍스(=WINE BOOKS)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자서전이라고 읽은 건 아마 이게 두 번째 일 것이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처음 읽은 자서전은 백범일지이다) 말인즉슨 자서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자서전이라는 것이 대충 자화자찬 일색으로 흐르기 마련이고 우리는 보통 남 자랑을 듣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이 자화자찬이라는 것이 본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부모 더 나아가서는 조부모에게까지 미치게 되니 이게 뭐 해동육룡이 날아다니는 용비어천가도 아니고 자연 흥미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로버트 몬다비 자서전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물론 몬다비씨도 부모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는 않았다. 누군들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서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봤다. 처음에는 객관성과 진솔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어차피 자서전이라는 것이 자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니 엄밀한 객관성을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 어쩌면 자서전이라는 것은 작가의 자신의 주관적인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선전이 진솔해야 한다는 것에는 두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독자는 작가의 겉치레 번드르르한 말이 아니라 진짜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서전은 과연 진솔하게 쓰여졌는가' 하고 어떤 할 일 없고 오지랖 넓은 인사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다소간에 그런 것 같다" 이다.  다소간에라는 말을 넣은 것은 대체로 진솔하게 쓰여진 것 같지만 다소 거시기한 부분에 있어서는 생략화법이 적용된 것 같다는 말이다. 동생과의 불화조강지처 아내와의 이혼 문제에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데 우리에게 뭐 그런 것까지 다 활짝 까발리라고 요구할 만한 권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그런 이야기들이 무척 궁금하고 또 자서전이라고 쓸라고 한다면 쓰기 싫은 이야기도 좀 써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약간 언급은 되었지만 독자로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작가가 열정을 바친 대상이 와인이라는 것말고는 여타의 자서전과 다를 바는 없다. 대대수의 성공한 사람이 그렇듯이 몬다비씨 역시 일에 대한 깊은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해 있고 항상 완벽함과 최고를 추구했으며, 결단력과 추진력을 가진, 말하자면 성공한 사람의 덕목을 두루 갖춘, 자서전을 쓸 수 밖에 없는 쓰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그런 인물인 것이다. 본인 같은 한심한 인사에게는 참으로 지지난난하고 요요원원한 덕목이지만 뭐 별로 부럽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성공못했다..한심한 인사 같으니라고...)


그러한데, 한가지 몬다비씨의 또 다른 성공요인인 어린아이와 같은 열린마음은 조금 본 받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물론 이건 본 받고자해서 본 받을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타고나야 하는 것인데 바로 우리의 안타까움이 여기에 있다) 두 번째 부인인 마그릿의 증언을 들어보자. 몬다비는 영화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완전히 빠져서 흥분한 나머지 화면에 대고 말은 한다.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가득찬 극장에 앉아 큰소리를 지른다. “안돼! 그러지마!” 또는 “뒤를 조심해. 뒤쫓아 오잖아! 이런, 내가 온다고 얘기했지!” 진솔함도 결국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리라.


추신 : 몬다비씨는 올해 94세로 아직 생존해 있을 뿐만 아니라 활발한 활동도 하고 있다고 역시 와인은 장수만세에 한 힘하는 것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달 2021-11-13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책을 뒤적여 찾아보니 내가 로마인이야기를 처음 읽은 것이 1996년이다. 무심한 세월이 진정 무심하게 흘러흘러 10년이 훌쩍 넘었다. 지금 기억에는 시오노 할머니가 매년 한권씩 20년에 걸쳐 로마인이야기 20권을 쓰겠다고 했던 것 같다. 어쨌든 대단히 집요하고 고집센 할머니다. 늙은이 고집은 쉬 꺽이지 않는 법이다. 나에게는 무삼하게 흘러버린 10여년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아마도 하루하루가 아깝고 의미있는 날들이었을 것이다. 아~ 지난 십여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1권의 소제목은 너무나도 유명한 말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또 든다. 어쩌면 하루살이 조차 현재의 그 하잘 것 없는 몸뚱이를 이루기 위해 수억년 혹은 수천만년을 근근히 버텨왔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당근당당연하게도 이 책 로마인이야기도 하루이틀사흘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시오노 할머니의 그 끈기와 그 고집과 그 열정과 그 노고에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오늘 대단원의 15권을 드디어 주문했다. 컬렉션의 이가 빠진 2권과 3권, 9권은 아마도 서울 사는 조카가 빌려 간 듯하다. 단언컨대 내가 이 책을 사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이 책들을 다 읽지는 못했다. 아마도 5권 율리우스 카이사르 까지 읽은 것 같다. 15권을 주문한 오늘 고민이 두가지 생겼다. “이빠진 2,3,9권을 다시 구입해야 하는가”가 그 하나이고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읽어볼 것인가”가 그 둘이다. 아마도 고민만 하다가 고만할 것 같다. 끈기와 고집과 열정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제부터인가 국내 소설을 읽지 않게 되었다. 마음은 있는데 손이 가질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영화로 말하자면 방화에는 자주 눈길이 가는 반면 외화와는 어느듯 거리가 생기고, 소설로 말하자면 방설(우리나라 소설, 댓구를 고려한 나의 신조어)로부터는 멀어지는 반면 외설(외국소설)과는 가까워 지는 것 같다.


국내 소설도 읽어야 된다는 생각에 착안한 것이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이었다. 이 한 권으로 지난 한해 한국소설을 정산한다는 편하고도 가당찮은 생각을 품었던 것인데, 그 놈의 정산이 통 되질 않고 있다. 아마도 제29회 부터는 전혀 읽지 않은 것 같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책은 구입했다. 우수상 수상작가의 면면을 살펴보니 금시초견의 인사도 서너분 계신 듯 하다. 나름 독서가를 자처하는 처지에 심히 부끄럽고 한심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