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뭐니뭐니해도 역시 고사성어 정치의 진정한 달인은 김종필이다. 영원한 2인자로 오랜 정치여정 동안 파란곡절의 굽이굽이마다 시의적절한 사자성어로 혹은 시대를 평하고 혹은 울분을 토하고 혹은 자신의 심정을 애둘러 전하기도 했다.   

우선 신년휘호를 살펴본다.
1994년 상선여수(上善如水·물과 같이 순리에 따라 산다)
1995년 종용유상(從容有常·무슨 일이 있어도 어긋나지 않게 산다)’
1996년 부대심청한(不對心淸閑:대꾸하지 않으니 마음이 한가롭다),
1997년 줄탁동기((啐啄同機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설명)
1998년 사유무애(思惟無涯:생각하는데 막힘이 없다),
1999년 일상사무사(日常思無邪:매일 나쁜 생각을 버려야 한다),
2000년 양양천양 유유고금(洋洋天壤 悠悠古今:우주는 한없이 넓고 역사는 아득히 멀다),
2001년 조반역리(造反逆理:뒤바꾸는 것은 세상이치를 거역하는 것),
2002년 이화위존(以和爲尊:화합하는 것이 가장 존귀하다).  

JP가 선정한 고사성어에는 운치와 멋이 있었기 때문에 인기가 좋아 요즘 개그맨의 유행어 못지않게 히트친 사례도 많았다.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이 왔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을 때, 당시 JP는 "한국에는 지금 봄이 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꽃이 피어날 봄인지 겨울 속으로 돌아갈 봄인지 알 수 없다. 춘래불사춘의 정국이다"라고 했다. 요즘도 가끔 들먹이는 유명한 춘래불사춘의 유래다. 1995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결별하며 민자당을 탈당할 때에는 '토사구팽(兎死拘烹:토끼 사냥이 끝난 뒤 사냥개를 삶는다.)' 당했다고 말해 인구에 회자된 경우도 있다. 일반인들도 누구로부터 조금 섭섭한 일을 당하면 “팽”당했다“ 고 줄여서 쓰기도 했다. 내각제 개헌을 빌미로 삼당합당후 내각제 개헌이 좌절되자 ‘소이부답’으로 심경을 나타내기도 했다. 토사구팽을 말할 때는 분노와 울분이 있었지만 소이부답에 와서는 체념과 초탈의 감상이 느껴진다.  

3김 중에서 줄기차게‘대도무문(大道無門)’만 열심히 썻던 YS나 ‘실사구시(實事求是)’, ‘경천애인(敬天愛人)’ 등 교과서적인 문구만 선호했던 DJ에 비하자면 JP의 사자성어에는 확실히 글하는 선비의 풍류와 멋이 있었고 여운과 깊이가 있었다. DJ도 박학다식이지만 아무래도 인문학적인 특히 한학적인 소양에 있어서는 역시 JP만한 이가 없다는 생각이다.  

JP는 5살 때부터 부여 서당에서 천자문으로 기초부터 익혔다고 한다.여기에 인전 신덕희에게 배운 필법을 더했고 일중 김충현,여초 김응현 등 대가들과의 친분도 있었다. JP는 예서를 즐기는데 굵고 반듯한 서체인 만큼 강한 힘이 느껴진다는 평이다.80년 신군부에 의해 연금당했을 때는 붓을 잡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적소의 긴밤을 버티기에는 역시 독서와 서예. 즐겨 쓰는 글씨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5·16 이후 좌우명으로 삼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도 자주 쓴다.술집에서 기분이 좋으면 치마폭에 글씨를 써주는 멋을 부리기도 하고 친한 기자에게는 일필위공(一筆爲共)이라는 휘호를 선물하기도 했다 한다.JP는 대표적인 한자병용론자다.총리 시절 카드형 주민등록증이 만들어질 때 이름에 한글만 사용키로 했다는 보고를 받고 그 자리에서 한자를 병용토록 지시한 일화는 유명하다.  

JP가 1997년에 쓴 줄탁동기(啐啄同機)가 십년지나 다시 등장했다.줄탁동시(啐啄同時)라고도 하는데,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가 신년휘호로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는데 당시 JP는 세상 일에는 때가 있다는 의미로 사용했지만  2008년 8월 삼성경제연구소의 경영자대상 사이트인 SERICEO가 국내 CEO 307명을 상대로 불황대처를 위한 사자성어를 조사한 결과 줄탁동시란 응답이 21.6%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면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알을 쪼아야 하듯 기업이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사 간 이해와 협조가 최우선이다.’는 해석이다.   

‘줄탁동시’란 중국 송대 선종(禪宗)의 화두를 모은 공안집(公案集)인 ‘벽암록’에 나오는 화두다.‘줄탁동기( 啄同機)’라고도 한다. 알 속의 병아리가 밖으로 나가려고 안에서 껍질을 쪼아대는 것을 ‘줄’이라고 하고, 어미 닭이 이에 맞춰 밖에서 껍질을 깨주는 것을 ‘탁’이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아들은 수레를 앞에서 끌고 아버지는 수레를 뒤에서 밀어주는 형국이라 할까 뭐 그런 의미다. 어려운 한자인 탓인지 일상에서 잘 안 쓰이는 사자성어다.  

지난날 3김의 영토는 그리 무성하고 울창했건만 지금은 그 언저리 어디에 쓸쓸한 풀 몇 포기만 남아 있는 듯하다. 3김시대. 무슨 삼국시대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내 말투가 마치 옛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과거를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의 무상함을 안타까워 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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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밥  식  

오사카 교외 사카이 지역의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집단 식중독 사태'가 발생했다. 식중독의 원인은 병원성 대장균인 O-157균으로 주로 장출혈 설사, 복통 등 식중독 증상을 일으킨다.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무려 9,500여 명의 초등학생이 식중독을 일으키고 10여명이 숨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학교급식은 완전 탈바꿈되어 급식의 질이 수업의 질을 넘어선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일본 학교급식에는 두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냉동식품 불가이고 다른 하나는 당일 조리의 원칙이다. 

O-157은 1982년 미국에서 햄버거에 의한 식중독 사건으로 처음 학계에 보고되었다. 안과의사 출신인 로빈쿡은 이 사건을 소재로 의학 추리소설 《독, O-157》을 쓰기도 했다. 이 소설은 전형적 미국 음식인 햄버거에 들어가는 쇠고기를 O-157균의 감염 매개체로 설정하고, 균에 감염된 한 아이의 죽음을 중심으로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 있는 쇠고기 업계와 이윤추구에만 급급한 병원의 비합리적 경영 현실을 파헤치면서, O-157균이 어쩌면 인간의 방만과 부주의로 생겨난 재앙일지 모른다는 경고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알라딘>에 소개되어 있다. 한국인은 유난히 O-157균이나 이질균에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당시 O-157균이 전국적으로 퍼졌을 때에도 제일교포가 감염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김치, 마늘, 고추 등 매운 음식에 든 항균성분이 살균작용을 한 덕분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가설이다.  

3월에는 영국에서 소의 광우병이 인간에게 전염된 것으로 보이는 사례가 전해지며 시작된 광우병 파동은 영국산 쇠고기의 최대수입지역인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유럽연합(EU)은 영국산 쇠고기 수입금지조치를 취한 뒤 영국에 대해 소의 대량도살을 요구, 영국과 외교마찰을 빚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은 7월부터 조어도(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 영유권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일본 우익단체가 현지에 새 등대를 설치함으로써 불붙은 이 분쟁은 대만, 홍콩, 마카오도 가세했다.  

페루의 좌익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MRTA)소속 무장 게릴라들이 12월17일 리마주재 일본대사관에 난입, 이원영 한국대사 등 각국 외교관과 페루 정치인 기업가 등 400여명을 억류하고 인질극을 벌였다. 게릴라들은 후지모리 대통령의 좌익게릴라에 대한 강경책에 항의, 투옥된 조직원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 인질극은 126일을 끌어오다가 1997년 4월 22일 페루 특수부대원들의 기습작전으로 인질범 14명은 모두 사살되고 남아있던 인질 72명은 1명을 제외하고 모두 구출됐다. 일부 인질들의 증언에 따르면 상황이 그렇게 살벌하지는 않았을 뿐만아니라, 인질범들의 교육수준이 상당해서 법률과 요리 등 다양한 주제로 자주 토론을 벌이기도 했으며 인질범들이 인질의 교양에 점차 동화되더니 가족과의 편지교환, 미식의식 등도 허용했다고 한다. 여기서 인질이 인질범의 상태에 동화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의 대칭되는 용어로 ‘리마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거사를 도모함에 있어서는 역시 인정(人情)을 허용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물론 인질극이 성공해서도 안되겠고, 인질극이 성공한 사례도 극히 드물지만 어쨌든 자신의 신념하에(그 신념이라는 것이 올바르고 올바르지 못하고를 떠나서 말이다) 목숨을 걸고 거사를 감행한 인질범의 입장에서 보자면 리마 인질극이 실패한 이유는 바로 리마증후군 때문일 것이다. 인질들에 동화된 인질범들이 인질들의 여러 요구를 들어주게 되고 인질의 요청으로 들어온 보온병 등에 도청기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사관 내부사정을 훤히 파악한 진압군이 방심하고 해이해진 인질범들을 제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덕분에 인질극 진압을 진두지휘했던 페루 대통령 후지모리는 ‘강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3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후지모리 역시 숱한 부정을 저지르면서 장기집권을 도모하다가 결국 실각했다. 집권 10년만이었다.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 했던가. 2000년 일본으로 도주하여 일본에서 5년간 도피생활을 하다가 2005년에 페루를 들어가기 위해 칠레 입국을 시도하다가 칠레 경찰에 체포되었다. 2009년에 페루 특별재판부는 인권침해 등의 혐의로 그에게 25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인생사 새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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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올해의 사자성어
五里霧中 

 

교수신문이 전국의 교수 7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2001년 한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23명(33%)이 뽑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 선정되었다. 교수들은 오리무중을 든 이유로 ‘우리 사회가 상식이나 예측으로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워져 원칙과 기본질서를 찾아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사다난(多事多難), 점입가경(漸入佳境), 새옹지마(塞翁之馬), 설상가상(雪上加霜),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 등이 거론되었다.  

 

국제적으로는 이슬람 무장단체인 알카에다에 의한 전대미문의 911 동시다발 테러사건이 있었고, 예로부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으니 복수는 복수를 알까고 피는 피를 부르는 법.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선포로 아프카니스탄 전쟁이 발발했다.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지만 테러의 배후로 알려진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행적은 사건 발발후 1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미국의 그 거대막대 어마어마한 정보력도 오리 안개(五里霧)속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국내적으로 DJP 공조가 무너져 국회가 여소야대 정국으로 뒤바뀌었으며, 테러사태의 여파로 수출이 사상 최악의 감소율을 보이는 등 정재계에 걸쳐 혼미한 형국이었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국민일보 사주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오리무중은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이야기다. 후한 안제 때에 장해(張楷)라는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있었다. 자는 공초(公招)라고 했다. 하루에 담배 20갑을 넘게 피웠다는 우리나라 시인 오상순의 호는 공초(空超)다. 원래 뛰어난 학자 아래는 제자나 문인들이 꼬이기 마련이니 제자만 100여명이 넘었고 당시 조정의 내로라 하는 환관과 외척들도 장해와 어떻게 끈을 연결해 볼려고 몹시 분주했던 모양이다. 학문 높은 큰 선비는 원래 또 고고하기도 하여서 번잡한 것을 싫어 했으니 소인배들과의 교제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급기야 장해는 어느날 홀연히 깊은 산속으로 은거해 버렸다. 그러자 또 많은 학자와 제자들이 그를 좇아 모여드니 그 산 기슭에 어느듯 시장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공초시(公招市)다.  

  

이 장해라는 인물은 학문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도술에 또한 능통했는데 사방 오리를 자욱한 안개로 뒤덮이게 하는 ‘오리무(五里霧)’라는 방중술에 특히 능했다. 역시 방술에 나름 뛰어난 자로 ‘배우(裵優)’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 자는 사방 삼리에 안개를 일으키는 재주가 있었다. 삼리무 되겠다. 당구 300수지가 500수지를 선망하듯 배우가 장해의 소문을 듣고 제자가 되기를 청하며 찾아갔다고 하나 장해가 오리무를 일으켜 배우를 피하니 배우가 결국 500수지의 비결을 알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비상한 재주를 자신을 숨기는 데만 쓴다면 세상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뛰어난 재주와 학문이 널리 사람을 이롭게하는 데 쓰이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리무를 만드는 도술이 있었다면 오리무를 푸는 비술도 있었을 터, 그렇다면 오리무중에 빠진 온갖 어려운 일들도 반드시 해결할 방법이 있었을 것인데 오리무의 비법이 전승되지 못하니 오리무중에 빠진 사건들이 결국 오리무중으로 남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한심한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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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벼락  진 
1월 17일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 효고현(兵庫縣) 남부 고베시에서 리히터 규모 7.2의 강진이 발생했다. 6,400여명이 숨지고 43,000여명이 부상했으며 10만여채의 건물이 파괴되고 재산피해도 10조엔에 달했다. 지난 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되었다. 3월 20일에는 일본의 신흥 종교단체 옴진리교의 신도들이 교주의 지시에 따라 도쿄 지하철에 독가스 사린을 살포하여 12명이 사망하고 5천 5백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있었다. 교주 아사하라 쇼코에 대한 재판은 1996년 4월에 시작되어 2006년 9월에 와서야 사형이 확정되었다. 10년 5개월 만이다. 세기의 재판으로 세계의 관심을 모았던 이 재판은 일본 재판의 관행상 2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였으나 예상보다 빨리 결정되었다고 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6년에 독가스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 62명의 증언을 모아 르포집 《언더그라운드》를 내기도 했다. 한번 읽어보려고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했더니 절판이다. 아쉽다.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국적 없는 이방인의 모습을 보여온 하루키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옴진리교`의 실체를 파헤치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옴진리교 피해자들을 다룬 최초의 글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는 소개의 글이 있고, ‘하루키는 이 책에서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조금이라도 명확히 부각시키려고 노력한다. 한 인간을 단순히 `많은 피해자 중의 하나`로 묻어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인생, 가족, 기쁨, 갈등, 드라마가 있고 그것들을 종합한 이야기’라는 추천의 글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루키 일상의 여백》을 보면 고베 대지진과 옴진리교 독가스 사린 사건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피해자의 정신적 상처가 대부분 등한시되어 그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금전적 보상이나 관련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 가족 특히 어린이들에 대한 정신과적 치료와 상담도 중요한 것 같다. 최근 하루키씨는 조지 오웰의 《1984》와 루신의《아Q정전》을 믹스한 듯한 제목의 《1Q84》라는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아직 국내에 출간되지 않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옴진리교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전언이다. 이건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하루키 《1Q84》에 대한 국내 출판사간의 판권 입찰에서 선인세가 1억엔이 넘었다는 소문이다. 판권을 따낸 문학동네에서 정확한 가격을 밝히지 않았지만 출판계에서는 15억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아~ 정말 억소리 난다.   

 

199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노벨상 수상 이듬해에 절필을 선언했는데 1999년에 《공중제비 넘기》 라는 장편소설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다시 복귀하게 된다. 이 소설도 옴진리교의 독가스 살포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고 한다. 국내에는 번역본이 나와있지 않은 것 같다. 이 사건과 1997년에 있었던 오에의 처남이자 절친한 친구이며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이타미 주조의 자살 사건이 오에의 소설가로의 복귀를 재촉했다는 해석이다.  

 

우리나라 역시 1995년은 ‘진(震)’의 해였다. 4월 28일 대구 달서구 상인동 영남중고앞 네거리길 지하철 공사구간에서 LPG 가스폭발 사고가 발생하여 등교하던 학생들을 포함해 101명이 숨지고 202명이 부상했다. 인근 지역의 차량 150대와 건물 364채가 폭탄공격을 받은 듯 파손되었고 재산피해도 540억원에 달했다. 이어 6월29일에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지은 지 6년된 삼풍백화점 건물이 통째로 허무하게 무너져 내려 501명이 사망하고 939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가슴속에서도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고베 대지진은 천재(天災)였지만 우리의 경우는 인재(人災)였다. 깊은 슬픔과 함께 더 깊은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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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는 매년 12월 12일에 응모를 통해 '올해의 한자'를 선정 발표한다. ‘올해의 한자’가 결정되면 교토에 있는 유명사찰인 기요미즈데라(淸水寺)에서 주지스님이 직접 대형붓으로 가로 1.3m 세로 1.5m 정도 크기의 종이에 ‘올해 한 해를 나타내는 한자’를 써서 본당에 봉납하는 행사를 갖는다. 이 행사는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한자를 상용문자로 사용하면서도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한자보다 외국어를 일본식으로 바꾸어 사용하기 때문에 한자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한자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매년 12월 12일을 한자의 날로 정하여 이런 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를 본받았는지 어쨋는지 주간 교수신문에서 2001년도부터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 발표하고 있고 또 2005년도부터인가는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라는 것도 선정하고 있다. 각종 한자관련협회에서 시행하는 한자능력검정시험이 대단히 인기다. 나도 작년에 3개월 공부하고 1급 시험 치러 갔는데 보기좋게 낙방했다. 무척 어렵다. 한자 조금 안다고 쉽게 생각했고 덤볐다가는 코깨지 십상이고 잘못하면 코피가 터지는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머리 까만 어린 학생들이 1급에 소홀찮게 합격하는 걸 보면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한자나 사자성어를 무슨 영어 단어 외우듯이 줄줄 외워서 공부하는 데는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다. 특히 사자성어는 고전속에서 읽어야 그 의미와 뜻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동양 고전에 대한 폭넓은 독서가 한자 이해의 깊이를 더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자 선정 방식에서도 국민성이 드러나는 것 같다. 일본은 달랑 한자 한개를 선정하는 방식을 택한 반면 우리는 사자성어를 선택했다. 우리 씨름은 삼판양승제이지만 그들의 스모는 한판승부다. 과거의 정치적인 싸움도 우리는 상소를 올리고 비답을 내리고 주리를 틀어라 살을 지지고, 위리안치니 중도부처니 귀양도 여러 종류고 어쩌고 구구절절 복잡하다. 일본은 대충 할복으로 모든 걸 해결한다. 글과 칼의 차이인 것 같다. 우리는 글로 하고 그들은 칼로 한다. 글로는 일도양단이 안되지만 칼로는 쾌도난마가 가능한 것이다.      

 

올해의 한자로 같은 한자가 두 번 선정된 경우는 없지만 2위 이하도 모두 포함해서 볼 때는 난(亂), 식(食), 진(震), 핵(核), 재(災), 戰(전) 등이 2번 이상 지목되었다. 일본은 지진이 불쑥불쑥 자주 일어나고 - 그것도 큰 지진이 - 화산도 가끔 들썩들썩한다. 난(亂), 진(震), 재(災) 등이 자주 뽑힌 까닭이다. 좋은 의미의 한자보다는 나쁜 의미가 글자가 많이 선정된 것 같다. 아마도 가슴 아픈 사건은 오래 가슴에 남아있고 기쁘고 즐거운 일들은 금새 잊어 버리기 때문인 것 같다. 피부에 새겨진 상처는 언젠가는 아물고 굳어지기 마련이지만 가슴 깊이 새겨진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는 법이다. 좋은 일들도 자주 돌이켜 생각해보고 웃고 흐뭇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흔히 일본을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고 한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이중적이 아니라 다중적이라 할 만하다. 조금 복잡하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배에 따른 피해의식(저놈들이 언제 또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덤벼들지 모른다는)과 소중화의식에 바탕한 일본에 대한 문화적 우월감(쪽발이 넘들은 옛날에 불알 두쪽만 달랑거리며 나다니는 야만인이었는데 우리가 문화를 전파해서 다소나마 예의도 차리며 인간답게 살게 되었다든지 일본 천황은 백제인 이라든지), 일본의 경제적 발전에 대한 선망과 우리가 영원히 일본을 따라잡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우리가 일본을 이긴 건 이순신 이후로는 축구와 야구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대 일본전 축구 혹은 야구에는 굉장히 열광한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일본 혹은 일본인에 대한 적개심을 조국에 대한 애국심으로 혼동하기도 하고 어느날 갑자기 일본이 대지진으로 태평양에 수몰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일본 침몰을 이야기하니 문득 생각나는데 일전에 이른바 강호 동양학을 표방하는 조용헌의 《조용헌 살롱》이라는 책을 읽다가 당대의 고승인 탄허스님이 일본침몰을 예언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탄허같은 고승대덕이 어찌 그러 혹세무민하는 말씀을 하셨는지 필자같은 아둔한 중생은 모두지 알 길이 막막하다. 《일본 침몰》이라는 일본 영화도 있었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은 수억년이 흐른 뒤에야 일본 아니라 중국대륙이라도 언제 수장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니 말하자면 뭐든지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다. 

 

우리의 경우는 스포츠 경기에서 다른 나라에게는 져도 큰 문제가 없지만 대 일본전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매우 강하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한국은 많은 나라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한다. 우리는 일본을 경쟁상대로 여기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쟁상대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같은 빅 세븐쯤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조국 대한민국은 끼워주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일본도 대 한국전 스포츠 경기의 경우 경기중에는 물론 열렬히 응원하고 흥분하기도 하지만 그때 뿐이다. 경기가 끝나면 그만인 것이다. 반면 우리는 대 일본전에 패했을 때는 머리풀고 석고대죄라도 해야하는 분위기다. 손자병법에도 나오듯이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했으니 무턱대고 덤벼드는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 경제 등 여러 방면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극일을 위해서는 친일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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