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올해의 사자성어
五里霧中
교수신문이 전국의 교수 7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2001년 한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23명(33%)이 뽑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 선정되었다. 교수들은 오리무중을 든 이유로 ‘우리 사회가 상식이나 예측으로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워져 원칙과 기본질서를 찾아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사다난(多事多難), 점입가경(漸入佳境), 새옹지마(塞翁之馬), 설상가상(雪上加霜),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 등이 거론되었다.
국제적으로는 이슬람 무장단체인 알카에다에 의한 전대미문의 911 동시다발 테러사건이 있었고, 예로부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으니 복수는 복수를 알까고 피는 피를 부르는 법.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선포로 아프카니스탄 전쟁이 발발했다.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지만 테러의 배후로 알려진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행적은 사건 발발후 1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미국의 그 거대막대 어마어마한 정보력도 오리 안개(五里霧)속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국내적으로 DJP 공조가 무너져 국회가 여소야대 정국으로 뒤바뀌었으며, 테러사태의 여파로 수출이 사상 최악의 감소율을 보이는 등 정재계에 걸쳐 혼미한 형국이었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국민일보 사주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오리무중은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이야기다. 후한 안제 때에 장해(張楷)라는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있었다. 자는 공초(公招)라고 했다. 하루에 담배 20갑을 넘게 피웠다는 우리나라 시인 오상순의 호는 공초(空超)다. 원래 뛰어난 학자 아래는 제자나 문인들이 꼬이기 마련이니 제자만 100여명이 넘었고 당시 조정의 내로라 하는 환관과 외척들도 장해와 어떻게 끈을 연결해 볼려고 몹시 분주했던 모양이다. 학문 높은 큰 선비는 원래 또 고고하기도 하여서 번잡한 것을 싫어 했으니 소인배들과의 교제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급기야 장해는 어느날 홀연히 깊은 산속으로 은거해 버렸다. 그러자 또 많은 학자와 제자들이 그를 좇아 모여드니 그 산 기슭에 어느듯 시장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공초시(公招市)다.
이 장해라는 인물은 학문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도술에 또한 능통했는데 사방 오리를 자욱한 안개로 뒤덮이게 하는 ‘오리무(五里霧)’라는 방중술에 특히 능했다. 역시 방술에 나름 뛰어난 자로 ‘배우(裵優)’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 자는 사방 삼리에 안개를 일으키는 재주가 있었다. 삼리무 되겠다. 당구 300수지가 500수지를 선망하듯 배우가 장해의 소문을 듣고 제자가 되기를 청하며 찾아갔다고 하나 장해가 오리무를 일으켜 배우를 피하니 배우가 결국 500수지의 비결을 알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비상한 재주를 자신을 숨기는 데만 쓴다면 세상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뛰어난 재주와 학문이 널리 사람을 이롭게하는 데 쓰이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리무를 만드는 도술이 있었다면 오리무를 푸는 비술도 있었을 터, 그렇다면 오리무중에 빠진 온갖 어려운 일들도 반드시 해결할 방법이 있었을 것인데 오리무의 비법이 전승되지 못하니 오리무중에 빠진 사건들이 결국 오리무중으로 남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한심한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