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벼락  진 
1월 17일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 효고현(兵庫縣) 남부 고베시에서 리히터 규모 7.2의 강진이 발생했다. 6,400여명이 숨지고 43,000여명이 부상했으며 10만여채의 건물이 파괴되고 재산피해도 10조엔에 달했다. 지난 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되었다. 3월 20일에는 일본의 신흥 종교단체 옴진리교의 신도들이 교주의 지시에 따라 도쿄 지하철에 독가스 사린을 살포하여 12명이 사망하고 5천 5백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있었다. 교주 아사하라 쇼코에 대한 재판은 1996년 4월에 시작되어 2006년 9월에 와서야 사형이 확정되었다. 10년 5개월 만이다. 세기의 재판으로 세계의 관심을 모았던 이 재판은 일본 재판의 관행상 2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였으나 예상보다 빨리 결정되었다고 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6년에 독가스 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 62명의 증언을 모아 르포집 《언더그라운드》를 내기도 했다. 한번 읽어보려고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했더니 절판이다. 아쉽다.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국적 없는 이방인의 모습을 보여온 하루키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옴진리교`의 실체를 파헤치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옴진리교 피해자들을 다룬 최초의 글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는 소개의 글이 있고, ‘하루키는 이 책에서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조금이라도 명확히 부각시키려고 노력한다. 한 인간을 단순히 `많은 피해자 중의 하나`로 묻어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인생, 가족, 기쁨, 갈등, 드라마가 있고 그것들을 종합한 이야기’라는 추천의 글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하루키 일상의 여백》을 보면 고베 대지진과 옴진리교 독가스 사린 사건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피해자의 정신적 상처가 대부분 등한시되어 그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금전적 보상이나 관련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 가족 특히 어린이들에 대한 정신과적 치료와 상담도 중요한 것 같다. 최근 하루키씨는 조지 오웰의 《1984》와 루신의《아Q정전》을 믹스한 듯한 제목의 《1Q84》라는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아직 국내에 출간되지 않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옴진리교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전언이다. 이건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하루키 《1Q84》에 대한 국내 출판사간의 판권 입찰에서 선인세가 1억엔이 넘었다는 소문이다. 판권을 따낸 문학동네에서 정확한 가격을 밝히지 않았지만 출판계에서는 15억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아~ 정말 억소리 난다.   

 

199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노벨상 수상 이듬해에 절필을 선언했는데 1999년에 《공중제비 넘기》 라는 장편소설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다시 복귀하게 된다. 이 소설도 옴진리교의 독가스 살포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고 한다. 국내에는 번역본이 나와있지 않은 것 같다. 이 사건과 1997년에 있었던 오에의 처남이자 절친한 친구이며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이타미 주조의 자살 사건이 오에의 소설가로의 복귀를 재촉했다는 해석이다.  

 

우리나라 역시 1995년은 ‘진(震)’의 해였다. 4월 28일 대구 달서구 상인동 영남중고앞 네거리길 지하철 공사구간에서 LPG 가스폭발 사고가 발생하여 등교하던 학생들을 포함해 101명이 숨지고 202명이 부상했다. 인근 지역의 차량 150대와 건물 364채가 폭탄공격을 받은 듯 파손되었고 재산피해도 540억원에 달했다. 이어 6월29일에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지은 지 6년된 삼풍백화점 건물이 통째로 허무하게 무너져 내려 501명이 사망하고 939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가슴속에서도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고베 대지진은 천재(天災)였지만 우리의 경우는 인재(人災)였다. 깊은 슬픔과 함께 더 깊은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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