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ㅣ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여담일것인데, 말하자면 본론도 시작하기 전에 삼천포행. 본인의 오래된 기억에, 옛날에는 ‘고흐’라고 발음하지 않고 ‘고호’라고 발음했었다. 외래어 표기법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느날 문득 ‘아멜리 노통’이 ‘아멜리 노통브’가 된 것은 영 이상하여 꼭 똑똑한 사람이 바보가 된 듯한 그런 느낌이었는데, ‘고호’가 ‘고흐’로 된 것은 더 멋있어 진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호’라는 똑 떨어지는 발음보다는 입 안쪽에서 바람을 불어내어야 하는 ‘흐’발음이 고달픈 풍찬노숙의 삶을 살아온 고흐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별 쓸데없는 생각이 다 든다는 그런 생각이 또 든다.
아시다시피 빈센트 반 고흐로 말씀드리자면, 그분은 이제 - 아니 이미 오래전에 - 전설의 문지방을 무슨 계집아이들 줄넘기 타넘듯이 쉽게 훌쩍 뛰어넘어 불현 듯 신화의 땅에 진입하여 휘황찬란한 기라성같은 제신의 반열에 엄숙하게 좌정하고 계신 것이다. 지상에서의 삶이 그야말로 지랄같았던 (고흐의 병이 흔히 지랄병이라고들 하는 간질 비슷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일종의 정신질환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만큼 대중으로부터 조금 과분한 찬사와 숭배를 받는다고 해서 뭐 잘못된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빈센트의 삶을 일별해 보자면 이렇다. 가슴아픈 실패로 끝나버린 몇 번의 연애사건, 엄격하고 보수적인 칼뱅파 목사였던 아버지와의 불화. 길지않은 일생이었지만 평생에 일순간조차도 벗어나지 못했던 경제적 궁핍의 늪. 죽기 수년전부터 시달렸던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작 혹은 정신질환. 그리고 38살의, 한 사람의 남자로서나 한 명의 화가로서도 한창 나이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함.
너무나도 유명한 고흐의 엽기적인 귀 절단 사건. 이 사건으로 고귀한 야만인인 고갱께옵서는 놀라자빠져 그 노란집에서 나와 여관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로 바로 파리로 줄행랑을 놓았던 것인데....고흐는 왜 그랬을까. 만약 내 친구중에 누군가가 면도칼을 들고 나에게 달려들거나, 한밤중에 문득 깨어보면 친구가 내 침대 머리맡에 서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거나, 어느날 문득 자기 귀를 잘라 창녀에게 건네주고 하는 이런 행동을 한다면 정말 놀래자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흐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했고, 여자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던 점도 한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내 멋대로 짐작해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덩치가 크고, 털이 많으며, 집안에 지저분한 발로 드나들게 분명한 개를 집에 두기를 망설이는 것처럼 나를 집에 들이는 걸 꺼려한다. 그래 그 개는 모든 사람에게 걸리적거리고 짖는 소리도 아주 큰 불결한 짐승이다.....내가 개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1883년 12월 15일 테오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네가 사랑에 빠졌을 때 ‘절대 안 된다’는 대답을 듣게 된다 해도 체념하지 말아라. 물론 너는 행운아니 그런일은 없으리라 믿는다.”(1881년 11월 3일 테오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무엇하나 번듯한 것 없는 참으로 눈물나는 인생이었지만, 다만 그림을 그릴때에만은 행복했다는 고흐 자신의 진술과 668통이나 된다는 편지를 통해서 보여진 동생 테오와의 형제애만이 그 고달픈 삶의 위안이라면 위안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고호를 만든 반쯤의 힘은 테오의 몫이라는 생각이다. 테오가 없었다면 고흐는 아를이나 생래미 혹은 오베르까지 버티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불쌍한 고흐가 죽고 근백여년이 지난 1987년 3월 30일 오후 7시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는 빈센트의 <해바라기>가 3,629만달러에 팔렸고, 같은 해 11월 런던의 소더비에서는 <붓꽃>이 5,390만달러에, 1990년 5월 15일 오후 7시 뉴욕 맨해튼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는 <가셰박사의 초상>이 8,250만달러에 팔렸다. 일본 기업인들이 투기목적으로 가격을 올려놓은 점도 없지 않지만 여하튼 간에 고흐의 작품 세 점의 가격이 무려 17,269만 달러!! 환율 1000원을 적용하여 원화로 환산하면 1730억원...벌어진 입에서 억소리가 난다..억!! 물감 살 돈이 없고 모델 구할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며 동생에게 기대어 평생을 궁핍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고흐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 그림을 그렸던 화가는 자살로 고단한 생을 마감하고 이제 그가 남긴 그림은 수천억원에 팔리고 있으니, 죽은 뒤에 찾아온 영광이 과연 살아 생전의 고달픈 삶을 보상해 줄 수 있을른지. 이제 편안히 누워있는 그에게 수천억의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지금 남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될 처지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돈 부탁을 해야 할 입장이다.”(1885년 7월 테오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탓에 네가 보내준 돈을 받았을 때는 어떤 음식도 소화시킬 수 없는 형편이었다.”(1985년 12월, 테오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편지와 돈 고맙게 받았다. 설령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림을 그리는데 든 돈을 고스란히 되찾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 우울해 진다.”(1887년 여름, 테오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편지와 50프랑 고맙게 받았다...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다른 사람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원하는 건 빚을 지지 않는 것이다.”(1988년 10월, 테오에게 보낸 편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