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때>를 처음 읽은 것이 아마도 군대 제대하고 나서이니 년도로는 90년대 초반이 되겠고, 나이로는 20대초반이 되겠다. 기억나는 것들. 주인공이 가지고 싶어했던 세가지가 아마 "턴테이블", "타자기", "뭉크화집"이었던 것 같다. 맞나? 뭉크는 위 사진의 <마돈나>나 그 유명한 <절규> 보다는  <사춘기>가 주로 언급되었던 것 같다. 장정일을 읽고나서 친구와 함께 뭉크의 사춘기 그림을 처음으로 찾아 보면서 '뭐 별거 아니네....'했던 기억이 난다.  <아담이 눈뜰 때>가 본인으로 하여금 뭉크에 눈뜨게 해준 셈이다. 

 고백하건데, 저 뭉크의 마돈나는 우리 공장 도서실에 있던 뭉크화집에서 잘라 온 것을 남아도는 액자에 넣은 것이다. 4~5년 전의 일이다. 인쇄상태가 썩 좋은 것도 아니고 못 견디게 가지고 싶었던 그림도 아니었는데, 그 때 왜 그런 무리한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도서실 구석에서 먼지에 덮여 있던 그 화집은 수백년이 지나도 아무도 찾지 않을 것만 같아 보였고, 그래서 한 장이나마 내방에 같다 놓고 보는 것이 그 화집을 위해서도 더 좋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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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

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

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

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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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가 20살 때 썼다는 시다. 20살 그 나이에 쓸 수 있는 시라는 느낌이다. 본인처럼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는 어렵다. 감정이 시베리아 벌판 혹은 사하라 사막 같으니 저런 표현을 생각해내기에는 실로 난감하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20살이라고 아무나 저런 시를 쓸 수 있는건 아니다. 우리같은 사람이 20살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저런 시를 노트에 적어놓고 다니거나 아니면 외우고 다니면서 술자리에서 어설픈 가객 행세를 하는 정도가 아닐까. 그렇다. 황순원의 아들이나 되니 가능한거다. 나는 우리 아부지의 아들이라서 안된다. 본인도 20살 나이엔 그게 몹시 슬프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40가까이 되고 보니 뭐 그다지 슬프지도 않고 또 세상살이가 대충 그렇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지에서 지금까지 나온 시집이 대충 300여권 쯤인 것으로 아는데, 황동규 1인의 시집이 8권을 차지하고 있으니 다작이라면 다작이겠고.... (다작하면 역시 고은인데, 본인이 시야 잘 모르지만 어떨 때는 시인께서 대충 막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손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선생께서 시낭독을 하는 것을 보면 너무 폼 잡는 것은 아닌가 그런 또 황송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오다.) 

 

창비와 더불어 우리나라 시집출판의 양대산맥중 하나인 문지가 신인발굴보다 안정된 기성작가에 메달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우리나라 시인이 몇 명이관대, 불쌍한 후생들을 좀 양성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문지시인선 1번의 작가로서 8권이 아니라 80권도 쓰기만 하면 출판해주는 것이 당근지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 이런저런 생각이 중구난방......

 

위의 황동규 문지 시집들중 no image는 문지시인선53 <악어를 조심하라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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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니 2015-06-16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편지˝ 덕분에 많은걸
알게되었네요..저도 이분 시집은
딱 1권 뿐이라.
 



결혼전이니까 4~5년 전은 되겠다. 내가 사는 광역시 교보문고에서 샀던 그림이다. 액자에 넣자니 복사본 주제에 너무 거창하고 돈도 많이 들거 같아서 코팅해서 내 방 벽에 붙여 놓은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에곤실레보다는 클림트가 훨씬 인기가 많았다. 까페나 레스토랑 같은 곳엘 가면 클림트의 그림 <키스>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사실은 클림트 그림을 하나 사고 싶었는데 없어서 꿩대신 닭으로 산 그림이다. 내가 꿩맛이야 모르지만 닭도 맛으로 따지자면 꿩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벽에 붙여놓고 보니 그럴듯한 것이 보기에 좋아라 했다. 그때 교보에서 이 것 말고도 청전 이상범의 산수화 복제품도 하나 구입했었는데 지금은 어데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그것도 거금들여 코팅해 놓은 것인데,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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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국무회의에 많이 늦은 이항복이더러

「대감, 어인 일이시옵니까?」 누가 물었더니,

「오는 길에서 패싸움이 벌어졌기에 그걸 좀 구경하느라구요.」했다.

「어떤 사람들이 싸우고 있었기에요?」또 물으니

「고자 대감은 스님 머리끄뎅이를 움켜잡고, 스님은 고자 대감 불알을

잔뜩 거머쥐고설라믄.」 했다.

이조 고관들의 허망한 당파 싸움이 이 때도 벌써 볼 만한 판이었으니,

이만큼한 풍자도 무던하긴 무던한 세음이었겠다.


<연려실기술> 제18권, 선조조(宣祖朝)


 

이항복 (1556∼1618, 명종 11∼광해군 10)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자상(子常), 호는 백사(白沙) 본관은 경주(慶州).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에 봉군되어 오성대감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특히 소년시절 친구인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과의 기지에 관한 이야기로 유명하다. 위의 시를 봐도 알수 있지만 한 개그 했던 것 같다. 우리 어릴때 <오성과 한음> 만화도 참 많이 봤던 것 같다. 1617년 광해군의 계모인 인목대비 폐모논의에 반대하다가 관직이 삭탈되고 이듬해 북청(北靑)에 유배되어 배소(配所)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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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것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삼종지덕(三從之德), 삼종지의(三從之義), 삼종지례(三從之禮), 삼종의탁(三從依託) 이라고도 한단다. 삼종에다가 온갖 좋다는 도(道)니, 덕(德)이니, 의(義)니, 례(禮)같은 것을 갖다 붙여 놓았다.  《의례(儀禮)》 〈상복전(喪服傳)〉에 공자께옵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여자는 세 가지의 좇아야 할 길이 있는데[女子有三從之道] / 집에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在家從父] / 시집을 가면 지아비에게 순종하며[適人從夫] /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의 뜻을 좇아야 한다[夫死從子]."

우리 마누래는 이런 소리하면 눈에 불을 켜고 달겨든다. 조선조 유교 봉건사회에서 여자들은 평생 동안 억압되어 자신의 생각을 고집할 수가 없었으며, 아버지와 남편, 자식에 대한 복종만이 미덕으로 숭상되고 있었으니, 동서(東西)가 거의 같은 생각이었고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고금(古今)이 비슷한 형편이다. 책읽는 여자가 위험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똑똑한 여자는 쉽게 복종하지 않는 법이다. 삼종지도 운운은 이제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몇몇 한심한 인사들은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는 지 모른다. 진실로 그렇다면 위험한 것은 여자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제목에서, 나는 사실 은근하게‘팜므파탈’ 비슷한 것을 상상하고 기대했었다. 조금은....... 그러나 결론을 말하자면 내용에 비해 제목이 다소 과장되어 있다는 느낌이고, 의도적으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을 택했다는 혐의가 보인다. 책 읽는 여자들에게 무슨 치명적인 위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남자들이 똑똑한 여자들을 싫어한다는 그런 정도 이상은 아닌 것 같다. 꼭 남자가 아니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보다 잘난 넘들을 시기하기 마련이고, 지식인들은 남녀를 떠나 어느 시대에서나 위험한 사람들이었다. 


60여점의 ‘책 읽는 여자’ 그림이 등장한다. 그중 렘브란트의 <책을 읽고 있는 노파 p74>, (나는 램브란트 그림의 그 은은한 황금빛을 무척 좋아한다). 베르메르의 <편지를 읽고 있는 푸른 옷의 여인 p79>, 고흐의 <아를의 여인 p171>(고흐가 빠질 수는 없겠다), 그웬 존의 <회복기의 환자 p228>(그웬 존이란 화가는 처음 알았다), 호퍼의 쓸쓸한 <호텔방 p245>이 마음에 든다. 율리시스를 읽고 있는 메릴린 몬로의 사진도 재미있다. 사진에서 몬로는 섹시하다기 보다는 멍청하게 보인다. 브래이지어 끈을 풀면 물풍선 같이 동그란 가슴이 흘러내려 퉁퉁거리며 튀어다닐 것만 같다.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조이한과 김정근이 무슨 관계인지 쓸데없이 조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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