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의 예수 랜덤소설선 1
정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때 처음 읽은 ‘사람의 아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이건 뭐 적당한 비유가 아니겠지만.....남녀관계가 캔디식의 순정만화인줄로 알던 소녀가 어느날 도색잡지를 보게되었을 때의 충격이랄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성경과 교회는 우리가 흔히 보고 들어 알고 있는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사람의 아들’은 개작된 장편보다는 처음의 중편이 훨 긴장감있고 나은 것 같다. 장편은 너무 늘어지는 느낌이다.) 그 뒤로 조성기의 ‘라하트하헤렙’, ‘야훼의 밤’ 등도 찾아 읽었다. (‘야훼의 손에 애급의 모든 장자들이 죽어자빠지는 유월(逾越)의 밤....’ 어쩌고저쩌고 하던 광고 문구도 기억난다....맞나??) 이 책들 역시 우리가 흔히 아는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성경이라는 책 속에는 사랑과 용서 말고도 온갖 오묘하고 괴이하고 신묘한 것들이 있었던 것이다.

 

구약에 등장하는 야훼는 어떤 신이었던가? 야훼는 아브라함의 충성을 시험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가장 사랑하는 어린 아들 이삭을 번제의 희생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다. 아브라함이 눈물을 머금고 어린 자식을 죽이려 하자 야훼는 "아니야! 됐다, 됐어! 이제 니 마음을 알았으니 됐어“ 라며 만류한다. 신이 되어 사람의 마음도 모른단 말인가??? 인간의 가장 약한 것으로 인간을 시험하는 짓은 얼마나 야비한가 말이다. 정의로운 자는 결코 남의 약점을 이용하지 않는다.

 

예수의 조상이자 유대민족의 영웅인 다윗은 어떠한가? 부하의 아내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는 그만 정욕에 눈알이 뒤집어져 결국 부하의 아내와 간통한다. 또 이 사실을 부하가 알게될까봐 두려운 나머지 음험한 계략으로 충성스런 부하를 사지에 보내어 죽게 한다. 천지를 모르는 부하는 다윗을 위하여 전장에서 목숨을 바쳐 싸우다 전사했으니 아아아!! 유대민족의 영웅 다윗은 또 얼마나 비열한 인간인가??

 

여기 또 한사람. 은 30냥에 스승을 팔아먹은 배신자가 있다. 죽은 자를 살리는 예수의 권능으로 고난과 십자가 처형, 부활과 승천으로 이어지는 야훼의 시나리오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나 유다의 배역 조정은 가능했을 것이다. 예수는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유다의 배역을 조정하지 않아 드라마가 끝난 후 유다가 온갖 욕을 다 먹도록 방치했다. 총애하는 제자의 배신으로 자신의 고난은 더욱 극적인 효과를 얻게 될 것이었다. 베드로의 세 번 부인 정도로는 역시 2% 부족한 느낌이다.

 

유다의 억울함을 주장하는 이 이야기는 물론 해괴한 궤변일 수 있다. 하지만 빌라도의 경우는 좀 다르다. 사도신경에 도 나와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매일 수억 명의 사람들이 그의 악행을 기억하며 암송한다. 로마 군인 본디오 빌라도는 다만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다. 속주 총독으로서 식민지의 안정적 통치와 질서유지를 위해 분란의 중심에 있던 한 청년의 처형을 승인했을 뿐이다. 그것이 참람되게도 감히 신의 아들을 핍박하였다는 엄청난 죄가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식민지의 토착세력인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고 예수를 방치할 경우 소요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빌라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해 나는 무관하니 너희가 당하라” 예수를 군중에게 넘긴 빌라도는 손을 씻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경전은 전하고 있다.

 

정찬의 소설 ‘빌라도의 예수’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온전히 빌라도에 대한 이야기다. 철저하게 로마 군인인 빌라도의 입장에서 당시의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상황과 예수의 성향에 대하여 분석하고 있다. 빌라도가 본 예수는 유대사회의 개혁을 바라는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지 신도 아니고 신의 아들도 아니다. 예수는 소설이 3/4이 지나야 등장한다. 더구나 소설 속에서는 예수의 육성을 거의 들을 수 없다.

 

정찬의 소설은 일신교인 유대교의 많은 부분들이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앙에서 차용되었다는 것과 지금의 기독교회는 예수의 교회가 아니라 바울의 교회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일부에서 제기되어온 주장들이다. 예수가 성전에서 상인들의 좌판을 뒤업고 ‘이 성전을 허물어 버릴 것이다.’ 라고 호언하는 것은 조선시대로 치자면 임금을 능멸하는 역적질에 해당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야 온전하게 이해한 것 같다. 예수 당시의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상황과 종교적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추신 : 작품해설은 이윤기가 썼다.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젊은 시절 이윤기는 사도신경을 외지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세례를 받지 않으면 신학대학에 들어갈 수 없어서 이윤기가 신학대학에 들어갈 때는 잘 아는 목사님의 힘을 빌려 세례를 받은 양 서류를 위조했던 것 같다고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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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5-10-1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어보고 싶게하는 흥미로운 리뷰이네요. ^^

붉은돼지 2015-10-13 09:34   좋아요 0 | URL
이런 쪽으로 관심있으시면 일독을 권합니다...재미있습니다.^^

transient-guest 2015-10-13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아들`은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지금은 좀 익숙한 테마들인데, 읽을 당시에만 해도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것 같았어요. 개인적으로 유다이야기나 다윗, 빌라도의 이야기는 결국 선택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본연의 역할이라는 것도 결국은 그들에게 부여된 자유의지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좀 들어보면 그럴 듯 한데, 사실 종교이론적으로 이해하기 상당히 어렵습니다.ㅎ 읽어보고 싶은데 절판되었네요.

붉은돼지 2015-10-13 10:20   좋아요 0 | URL
`사람의 아들`에서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우주만물을 뜻대로 하시고 전지전능한 신의 피조물인 인간에게 과연 `자유의지` 라는 것이 있는가??? 없다면 다 신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고 그런 것이 있다면 결국은 신의 전지전능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니 결국 신도 불완전한 존재다. 뭐 이런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었던 같아요....말장난 비슷하죠...

stella.K 2015-10-13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윤기 작가에게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ㅋㅋ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신학을 하려고 했던 건 목회에 뜻이 있어서라기 보단
신학이란 학문이 필요해서란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견디기 쉽지 않았을 거란
짐작도 해 봅니다. 그 양반은 자서전 하나쯤 남겨놓고 갈 일이지 뭐 그리
세상을 일찍 떠났는지 모르겠어요.ㅠ

그런데 역시 책은 재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야훼의 밤이나 사람의 아들을 읽었는데 워낙에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라
기억이 없네요.
예전엔 이렇게 예수를 소재로한 소설을 보면서 왜 작가들이 좀 더 예수님을 증거하는 쪽으로
쓰지 못할까 그들이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복음을 훼손하는 것 같아 아쉬웠는데
지금은 그들은 작가고 예수를 보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할 수도 있겠구나 합니다.
정찬은 또 어떻게 썼을런지 궁금하네요.^^

붉은돼지 2015-10-14 11:46   좋아요 0 | URL
이윤기 작가는 서류위조로 신학대학 들어간 것에 대하여 누가 뭐라고 하면 자신은 하느님의 법정에 이의신청(?)을 하겠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니코스카잔차키스가 그런 말을 했다는군요....

`사람의 아들`은 아마도 고등학생 때 처음 읽은 거 같은데 당시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어요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조동팔....아하스페르츠.....저는 말하자면 사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하스 페르츠에 대한 전고가 있나 싶어 인터넷을 찾아봤던 기억도 납니다.

비로그인 2015-10-13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아들 읽고 싶네요. 도색잡지 같은 충격이라니요ㅋㅋ

붉은돼지 2015-10-14 11:49   좋아요 0 | URL
그때 소싯적에 그랬다는 이야기죠 ^^
지금은 그런 논의들도 적지않아 그때처럼 충격적이지는 않을 것 같아요...

현재 나와있는 `사람의 아들`은 이문열이 중편을 장편으로 개작한 것인데요...
제 생각에는 역시 처음에 나온 중편 `사람의 아들`이 더 나은 것 같아요...
장편은 좀 늘어지는 느낌이고...또 경전인가 뭔가가 첨부되어 설명이 너무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