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 것 같다. 소생은 천품이 소심한 돼지여서 남 앞에서 노래부르거나 춤추는 걸 몹시 싫어한다. 무슨 삐에로도 아니고 누군들 그러길 즐겨하겠나만은 소생의 이야기는 회식 후에 노래방에 갔을 때의 이야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못하니까 싫어한다. 고주망태 꽐라가 되지 않는 한 노래방 자체를 가지 않는다. 조직에 몸담고 있는 직장인에게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소생은 다년간의 시행착오와 눈물겨운 노력 끝에 나름의 비법을 강구해 내었다. 물론 한번씩 꽐라가 되었을 때는 추태를 보여주기도 했다.
부르는 걸 싫어하다 보니 듣는 것도 자연 멀리하게 되어 소생 이 나이까지 좋아하는 가수도 없고 좋아하는 노래도 없다. 더 고백해보자면 소생은 운동도 싫어한다. 역시 당연한 이야기지만 못하니까 싫어한다. 하는 것을 싫어하니 보는 것도 멀리하게 되어 스포츠 경기라고는 월드컵 본선 경기를 빼고는 거의 보지 않는다. 햐~ 저 돼지는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살아가나? 고 묻는다면 웃지요가 아니고 ‘소생은 먹는 재미로 인생을 사오이다. 세상에는 둘이 쳐묵쳐묵하다가 둘 다 죽어도 모르는 겁나 맛있고 졸라 맛있는 진미들이 널려 있소이다. 노래하고 춤출 시간이 없다오’ 물론 이건 아니다. ‘소생은 글하는 선비이니 책 읽는 즐거움으로 세상을 살고 있소이다. 이 세상에는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엄청나게 많은 훌륭한 책들이 있으나 우리 인생은 너무나 짧지요. 노래하고 춤출 시간이 없다오’.....개가 웃을 일이다. 다 쓸데없는 이야기고.....
인생이라는 것이 뭐 재미로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재미가 있으면 인생이 조금 더 살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래서 소생은 어느날 혼자 몰래 가요방에 가서 노래도 불러보고(춤은 추지 않았다.) 했지만 역시 안되는 것은 안되어서 그냥 안 되는대로 놓아 두기로 했다.
가무와 운동은 싫어하지만 어떻게 요행히 책 읽는 것은 좋아해서 이런 저런 책을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음악을 접하게 된다. 하루키를 좋아하니 음악을 싫어하더라도 《오자와 세이지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를 읽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에스트로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카라얀이니 글렌 굴드니 이런 사람들 하고도 친하고 레너드 번스타인과는 뭐 상당히 밀접해서 번스타인을 말끝마다 ‘래니’라고 부르고 있다. 책은 글자로 되어있어 어쨌든 소생은 두 눈으로 글자들은 다 읽었지만 역시 음악에 대해서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소생은 전에부터 눈여겨 보아둔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베토벤교향곡 전집을 드디어 구입하고야 말았다. 물론 아바도의 베토벤 전집이 가격이 저렴하기도 하지만 문학도 고전에서 시작하니 음악도 고전주의부터 이런 생각에 베토벤을 구입했는데, 베토벤이 고전주의 맞나 모르겠네...음...낭만주의인가???? 그건 그렇고.... 책에서 오자와는 아바도를 친구처럼 부르고 있다. 베토벤 선생 전집은 금요일 도착했는데 아직 비닐도 안 뜯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오자와를 읽은 보람은 아바도를 구입했다는 것이다.
정명훈이 생각났다. 하루키의 이 책에 정명훈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중에 동양계는 이 두 사람이 다인 것 같다. 중국인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남자들이란 한심한 동물이어서 요런 상황을 딱 만나게 되면 줄을 세우고 싶어한다. 누구 주먹이 더 센가? 누가 더 뛰어난가?... 당서열을 매기고 싶어한다는 말이다. 혹자는 경력을 들어 오자와를 우위에 두기도 하고 또 혹자는 오자와의 성취는 정명훈과는 달리 일본 정부와 기업의 강력한 지원 덕분이라고 깍아내리기도 한다. 소생으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전문가들도 판단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정명훈도 머리스타일은 대충 멋대로 흩날리는 백기완(소생은 대학 때 백기완을 가까이서 본 적이 있는데 아~~ 이 사람은 풍운아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휘날리는 머리털 때문인 것도 같다.) 비슷한 스타일로 그리 단정한 모양새는 아닌데, 그러한 봉두난발 바람맞은 수세미같은 머리 스타일로는 단연코 오자와가 우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