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4월 1일 오후 1시 반 전후.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고 봄바람은 따뜻하게 스쳐 지나가는 더 바랄 것 없는 봄날의 하루. 무라카미 하루키는 진구 구장의 외야석 잔디(당시 진구 구장 외야석에는 의자가 없었다고) 위에 배를 깔고 누워 맥주를 마시며 야구를 관람하고 있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시즌 개막경기였다. 상대는 히로시마 카프. 1회말 야쿠르트의 선두 타자인 데이브 힐튼이 ‘딱’하고 안타를 쳤다. 배트가 강속구를 정확히 맞추어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구장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멋진 안타였다. 힐튼은 재빠르게 1루 베이스를 돌아서 여유있게 2루를 밟았다. 하루키상이 “그래, 소설을 써보자”라는 생각을 떠올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신주쿠의 서점에 가서 원고용지 한 뭉치와 세일러 만년필을 사와서 소설을 썼다. 당시 하루키는 29살이었고 처음 써보는 소설이었지만 그 작품으로 다음해 군조신인상을 수상했다. 바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되겠다.
하여튼 이 비슷한 내용들이 하루키 에세이 여러 곳에 등장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이윽고 슬픈 외국어>,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그 외에도 더 있는 것 같은데 찾지를 못하겠다. 이게 처음 읽었을 때는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런가보다 했는데, 두 번 세 번 읽게 되니 “아아아. 이거 진짜 맞나? 4월 1일은 만우절인데, 뽕 아이가?” 소설 쓰는 일이 뭐 집구석에서 맥주 홀짝거리며 텔레비전으로 야구를 보다가 “음...갑자기 배가 살살 아픈 것이 응가가 매렵네, 그래, 응가나 하러 가볼까“ 해서 응가를 하는 뭐 그런 일도 아니고, (물론 혹자에게는 응가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자세잡고 앉아 용만 쓰다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느니 생각하면 안타깝다) 소생같은 인사로 말할 것 같으면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해본 적이 없지만 어쨌든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딱’하고 수십대 얻어맞아도 안될 그런 일인데, 뭐? “그래 소설을 써보자”하고는 소설을 써서 다음해 바로 신인상 당선이라고....내 참....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를 보니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하루키의 이 에세이는 아마도 지금 세 번째쯤 읽고 있는 것 같다. 전에 볼 때는 별 생각이 없이 봤는지 기억도 잘 안나는데 이번에는 이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십대 시절에는 무엇보다 책을 좋아했다. 학교 도서관에 신간이 든 상자가 들어오면 사서에게 부탁해 책을 뺀 빈 상자를 얻어, 그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았다. 그것만으로 행복했다. 그만큼 광적으로 책에 반해 있었다. 물론 냄새를 맡는 것뿐만아니라 읽기도 많이 읽었다. 인쇄된 활자는 뭐든 닥치는 대로 읽었다. 각종 문학전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독파했다. 중고교 시절 동안 나보다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p136)
저 정도로 책을 좋아했으면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걸으면 말 타고 싶고 말 타면 종 부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연이나 소생이 하루키의 머릿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키가 속을 까 뒤집어 보여 줄수 있는 것도 아니고(뭐 그럴 필요도 없고) 또 그게 뭐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다. 금일은 또 어린이날이고 그래서 소생도 조금 바쁘다. 이러쿵 저러쿵해도 하루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네!!! 이것으로 정리 끝. 어쨌든 책이 든 빈상자의 냄새를 킁킁킁 맡으며 그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다니, 소설가가 될 팔자임에는 어느정도 틀림이 없는 듯 합니다.
붉은돼지의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컬렉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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