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소생이 그간 수집한 스노우볼을 쓸고, 닦고, 빨고(이건 아니고..), 핥고(음..이것도 아니고...) 하다가 소생의 도도하고 유장한 수집의 역사를 우리 알라디너 분들에게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몇자 적어봅니다. 재미로 함 보시기 바랍니다. 스노우볼 구경도 하시고, 더불어 책 구경도...뭐니뭐니해도 알라디너 분들에게는 책구경만한 것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수집의 역사는 보통 우표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우표 수집이 나름 돈도 소홀찮게 들고 우표 발행일 날은 새벽부터 줄을 서야하는 경우도 있어서 조금의 어려움이 있는데, 이런 전차로 우표수집이 점차 시들시들해지고 푸들푸들해질 무렵이면 등장하는 것이 껌종이 되겠다. 껌은 씹고 종이는 모으니 일석이조에 가격이 싸서 학생 신분으로 부담없이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반짝반짝하는 예쁜 종이들이 많았다. "멕시코 치클(이게 뭔가? 일전에 텔레비젼에 함 나왔던거 같은데..)처럼 부드럽게 말해요~ **껌처럼 향기롭게 웃어요~~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주고 싶어요~ 껌이라면 역시 **껌!!!" 기억 나시쥬? 롯데껌 삼총사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 노래가 기냥 지절루 줄줄줄 나오쥬? 무려 윤형주 작곡입니다. 이 노래 자동으로 줄줄나오면 아재, 아짐 인증 ㅋㅋㅋㅋ
이 껌종이는 두꺼운 사전 같은 데 한참 넣어놓으면 편편해 지는데, 성질급한 어떤 종자들은 다리미로 다리는 인간들도 있었다. 하여튼 기억이 생생하다. 오랜만에 추억에 흠뻑 젖어 껌 한번 신나게 씹어보고 싶다. 짝짝짝!! 딱딱딱!! 소리를 내면서...ㅋㅋㅋㅋ 역시 껌을 씹을 때는 경쾌한 소리가 시원하게 나줘야 제 맛인데, 일단 풍선을 크게 불어 터뜨린 후에 입안에서 껌을 착착 접어주면서 어금니로 지그시 눌러 씹어주시면 껌의 접힌 부분에 들어있던 공기가 터지면서 소리가 잘난다. 이 소리를 영 못내는 사람도 있는데 소생은 쫙쫙!!똭똭!! 하는 소리를 꽤 잘 내어서 어떨 때는 양턱이 다 아프도록 껌을 씹은 적도 있었다는 이야기. 옆에 누가 있으면 구타 유발하기 십상이니 공공장소는 피하고 가급적 방구석에서 혼자 오만상 거들먹거리며 딲딱닥거리는 것이 좋겠다. 암.
이렇게 껌 좀 씹다가 대갈통이 굵어져 대학에 들어가고 술담배를 하게 되면, 이제 껌종이는 좀 거시기해지면서 다음 단계로 진화발전하게 되는데 고것이 바로 성냥갑되겠다. 80~90년대에 커피숍이나 카페 같은 곳에 가면, 당시는 당연당당하게 실내에서 끽연하던 뭐 구석기시대같은 시절이라 테이블 위에 성냥이 항시 구비되어있었다. 허름한 선술집에서야 색동저고리에 족두리 쓰고 장고춤 추는 아가씨 그림이 있는 무슨 돌덩이 같은 아리랑 성냥이 있었지만, 까페나 레스토랑 같은 곳에는 가게의 명함이나 다름없는 이 성냥갑을 아주 예쁘고 특이하게 만들어서 나눠주고는 했으니 각양각색의 성냥갑을 모으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어쩌다 옛날에 모아둔 성냥갑 하나를 집어 쑥 밀어보면 뒷면에 전화번호 같은 것이 적혀있기도 했다. 술먹고 적은듯한 삐뚤뻬뚤한 숫자들, 아아아아!! 누구의 전화번호였을까???
예전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큰 형님하고 지하실을 정리하다보니 성냥갑들이 꽉꽉찬 와이셔츠 박스가 몇 박스나 나왔다. 또 다른 와이셔츠 박스들에는 철지난 주택복권 쪼가리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아! 주택복권! 아나운서가 숫자 적힌 커다란 둥근 판때기를 획! 돌리면서 자! 준비하시고오오~ 쏘세요!!! 하면 그날 초대가수로 나온 사람이 무슨 석궁같이 생긴 화살을 쏘았다, 쓩~ 팍! 윽!!(은 아니고...) 가끔씩 불발도 있었다. 불발!!! 아시는 분은 아신다. 습기찬 지하실에 보관된 이 박스들은 모두 곰팡이가 심하게 슬어서 다 내다버리고 말았지만..., 햐!!! 아버지도 이런 걸 모으셨구나!! 조금 놀랬다. 뭐 아버지와는 30초 이상 지속된 대화다운 대화라고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그런 관계였다. 항상 아버지의 말씀을 일방적으로 듣기만 했다. 햐!! 수집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막내아들과 30초이상 대화(일방적인 의사전달이 아니라 상호간에 이야기를 주거니받거니 하는 행위)를 나누어 본 적이 없는 근엄하신 아버지도 수집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각설하고, 우표와 껌종이와 성냥갑을 거쳐 취업을 하고 돈을 조금 벌게되면서 수집 본능이 문어발식 확장을 하게된다. 대충 훑어보면, 기념주화, 지포라이터, 트럼프카드, 피규어, 프라모델, 술병 라벨, 스노우볼, 열쇠고리, 냉장고 자석, 만년필, 영화전단지 등등 그리고 책!!! 작금에 와서는 다른 것들은 대충 다 처분되었고 현재에도 진행중인 것은 스노우볼과 술병라벨 그리고 책!!! 정도 되겠다. 수집이란 결핍(그것이 애정이든 물질이든 뭐든 간에)에 대한 일종의 자기방어기제 혹은 보상심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순간의 호기심이나 잠깐의 재미로 시작할 수는 있지만 이걸 오래 지속시키는 힘은 바로 유년의 어떤 결핍의 기억 혹은 상처일지도 모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나간 시절의 결핍이 현재의 수집으로 채워질 수는 없다. 흘러간 세월은 이미 흘러간 것인데, 머리 속 어디에선가는 자꾸 헛된 신호를 보낸다.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이런가? 아니면 포식자에게 쫓기면서 수렵 채집으로 근근히 연명하던 아득한 시절의 힘든 기억이 우리 DNA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