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나무 양산>을 위한 변명
올 봄, 이사를 하면서 되도록 무얼 사는 걸 자제해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가족에게도 그렇게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집에 있어서 나의 4.26선언(이사한 날) 들은 사람이 남편 밖에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집에 양산이 두 개나 있구만 기어이 고흐의 아몬드나무 양산을 사고 말았다.
물론 남편에게 들키진 않았다.
그래서 표면상으로 나의 선언은 유효하다.
요즘 열심히 잘 쓰고 다닌다. 자외선 차단도 제대로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써온 양산은 그저 무늬만 양산이었던 것 같다.
십 년도 넘은 것이어서 그런가?
나는 다소 메모광이다.
지금이야 건망증 땜에 그렇다 쳐도 옛날 젊은 시절에도
떠오르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메모해 놓고 보석을 발견한 양 즐거워하기도 했다.
가끔은 그 메모한 걸 어디 두었는지 찾는데 막대한 시간을 들여서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작은 노트나 수첩 사기를 즐긴다.
시내에 나가면 일부러라도 문구점을 기웃거리고, 낯선 도시로 여행을 갈 때도 문구점 가기를 즐긴다.
그렇게 모은 수첩들이다.
쬐끔 맛보기로만 찍었다.
내가 아끼는 수첩은 카메라가 그려진 작은 수첩과 고흐의 아몬드나무 수첩이다.
서재를 뒤져 삼사 십년 쯤 전에 샀을 고흐 그림책도 찾아냈다.
거금 550원짜리다.
그 당시에 대구에서 부산까지 기차요금이 150원이었다.
소풍날 친구들과 소풍 안가고 부산으로 바다 보러 가서 알고 있다.
또 한 가지 내 핸드폰 컬러링이 돈 맥클린의 <Vincent>이다.
박은옥의 <봉숭아> 올려주신 것처럼 이 음악도 올려주시면 참 좋겠다.
이만 하면 양산이 두 개, 아니 우산 겸용으로 쓸 수 있는 것까지 합치면 세 개나 있는 데도 기어이 양산을 또 ‘구입’한 걸 용서하실 수 있을 터이다.
***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쓴 건, 무슨 선언을 거창하게 해놓고
유야무야, 입 쓱 닦고 지나가는 꼴(?)을 너무 많이 봐와서...
도둑이 제발 저려서 그런 겁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는 대한민국 아줌마가 이 정도의 새가슴이라니
좀 실망스럽기는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