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 세계를 바꾼 과일의 운명
댄 쾨펠 지음, 김세진 옮김 / 이마고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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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바나나 업계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으로 규정되는 제국주의 팽창에 편승해 사업을 확장한 방법은 "대량 생산, 물류와 유통망의 통제, 농지와 노동력에 대한 공격적 선점"이었다.(p.92) 미국 정부는 남미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했고, 바나나 기업은 바나나 안보를 주장했다. "쿠바에 처음 상륙한 미국 기업이 [바로] UFC(United Fruits)였다."(p.101) 미국 시민들에게 바나나 기업은 "그들이 진출한 지역의 발전을 돕는 영웅 같은 존재였다." 1924년 <뉴욕타임즈>는 바나나 기업의 진출을 "콜럼버스 이전에 번성한 고대 제국의 부흥"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p.109)

추문과 폭력으로 얼룩진 라틴 아메리카의 불안정과 제도적 취약성을 전부 바나나 산업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자국 국민이 아니라 외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라틴아메리카 정부들(바나나 공화국)이라는 전통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UFC"(p.136)라는 것도 역사의 한 축이다. 권력을 무분별하게 행사하는 방식에 길들여진 바나나 대기업들은 파나마병이 유행하여 농장이 황폐하되는 시기에도 오로지 한 가지 재배방식에만 몰두했다. "바로 열대지방에 대한 노골적인 수탈 말이다."(p.147)

바나나 기업들은 속성으로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해 종자개량을 외면하고 보르도액을 무차별 살포하는 일에 집착했다. 그 결과 "바나나와 재배자 그리고 미국의 소비자들은 모두 수혜자"가 됐다. "바나나 공급망 중 유일하게 병으로 피해를 본 것은 바나나 노동자들이었다." UFC가 살균제를 살포하는 작업에 훨씬 큰 돈을 주었기 때문에 "가난한 노동자들 태반은 그 일을 받아들였고, 치명적인 결과가 따랐다."(p.154-5)

고대 세계에 노예제가 유지된 이유는 기술 발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 아니라, 노예가 매우 값싸게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일신의 편안함은 정신의 빈곤함을 잠재우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나는 우리가 소비하는 만큼 실용적이지는 않다. 지구의 남쪽과 북쪽으로 오가느라 늘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소비자가 그 비용을 부담한 적은 없었다."(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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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의 탄생 - 튀김옷을 입은 일본근대사
오카다 데쓰 지음, 정순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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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부는 1869년(메이지 2년)에 쓰키치 우마회사를 설립해 쇠고기를 판매하고 보급하는 데에 발벗고 나섰고, 궁중에서는 젖소를 몇 마리 기르고 천황이 우유를 마시면서 우유의 효용을 강조했다."(p.64) 전통적으로 육식을 금지하던 일본은, 정부 주도하에 육식 장려 사업을 철저히 계획하고 시행했다. 메이지 정부는 "육식을 방해하는 자는 그 마을의 관리로서 자격이 없다고 규정"하기까지 했다.(p.65)

일본에서도 "전통적인 쌀밥에 집착하는 쌀밥 우위론"이 육식 장려론에 맞서는 등 전통과 서구의 갈등이 존재했지만, 최종 귀결은 "화혼양재 사상에 근거한 절충주의"였다. 그리고 이때의 절충이 지향하는 방향은 명백히 '서구적인 것'이었다. 신체 조건을 서구화하기 위해 도입한 육식, 그리고 밥과 고기를 절충하여 양식의 스타로 등장한 '돈가스의 탄생'은 사회 개조를 불사한 그들의 전방위적인 혁신이 "근대화를 추진하는 원동력"(p.86)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의 경과를 보고받은) 국왕(철종)은

대국(중국)이 저렇게 곤욕을 당하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어찌 무사하겠는가?

라고 재차 좀더 즉각적이고 현실적인 방책을 강구하라고 절실히 호소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영의정) 조두순은 왕의 위기의식을 둔화시키기나 하려는 듯, '중국이 곤욕을 당하는 것은 천지의 운수이다'고 더더욱 느긋한 소리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결국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은 국왕 스스로가 "먼저 수식(修餝)하면 백례(百隷)가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군주가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 등 도덕적 품성의 함양 노력으로 귀착시켜 버리고 있다.
- <시간과의 경쟁>, 민두기, 연세대학교 출판부, pp.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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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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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변한다. 가끔은 그 변화가 너무도 빠르고 강렬해서, 시계바늘이 심장을 관통하고 나서야 알게 되거나 아예 깨닫지도 못한 채 도래하는 시대가 있다. 이념이 기술을 만나 세계를 구석구석 재편한 "극단의 시대"가 그러했다. 현실은 상대성 이론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시공간을 압착하고 구겨버리면서 모든 생명을 두들겼다. 단련된 근육은 제련된 강철 앞에 무릎을 꿇었고, 과거의 소중한 경험들은 자산에서 부채로 변질되어 황무지 티끌만큼 가벼운 생명들을 앗아갔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확실한 진리-성실한 소작농의 땀의 결실은 성스럽다-를 고수하고 찬미하는 '분노의 포도'는 보여주기라는 시각적 방법론을 충실히 구사하면서 사회 현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이야기는 세계상(像)을 재현하는 장면과 밀착되지만, 세계관(觀)을 펼쳐 보이는 지점에서 어긋난다. 저자가 바라는 세계는 누구나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세계이다. 그곳은 기계를 이긴 소작농이 작물과 호흡하면서 살아가는, 비옥한 대지의 세계이다.


현실의 부조리에 분노하고, 바른 말을 내뱉는 것은 쉬운 일이다. 정말로 쉬운 일이다. 아픈 사람은 위로받기 원하며, 약자일수록 자기 편에 약하다. 강자는 자기 편을 힘들여 만들지 않아도 된다. 저자의 드높은 이상과 핍진한 실천방안은 돌아갈 수 없는 과거나 찾아오지 않은 미래에서 주제의식을 퍼올려 작품을 한가득 채우고 있다. 가지 않은 길일수록 거기에 진리가 아니라 다양한 열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자는 순결한 욕망으로 역사를 단축시키고자 한다. 그는 기계와도 같다.


은행은 사람하고 달라요. 사실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은행이 하는 일을 싫어하지만 은행은 상관 안합니다. 은행은 사람보다 더 강해요. 괴물이라고요. 사람이 은행을 만들었지만, 은행을 통제하지는 못합니다. 71)

트랙터는 죽어 있으므로, 너무 쉽고 효율적이다. 일에서 느끼는 경이가 사라져 버릴만큼 쉽고, 땅을 경작하면서 느끼는 경이가 사라져 버릴 만큼 효율적이다. 경이가 사라지면 땅과 일에 대한 깊은 이해와 다정함도 사라진다. 트랙터를 모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땅을 알지 못하고 땅에 애정도 없는 이방인만이 느낄 수 있는 경멸이 자라난다. 240)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간다. 2권,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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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이상 없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6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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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밑그림




우리가 이곳 싸움터에 있어야 하는 한, 전선의 나날은 그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마치 돌멩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가라앉게 된다. 이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전선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괴롭기 때문이다. 만일 그랬다가는 우리는 나중에 탈진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엎드리고 있으면 공포는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곰곰 생각하다가는 공포에 질려 죽고 만다.>
114)


그리고 나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전시에는 우리
마음속에 돌멩이처럼 가라앉아 있는 모든 것이 전후에는 다시 깨어난 다음 비로소 생과 사의 대결을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 일선에서 보낸 나날들, 주들, 해들이 또다시 돌아올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죽은 전우들은 다시 살아나 우리와 함께 진군할 것이다. 우리들의 머리는 맑아질 거고, 우리는 목표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전선에서 보낸 세월을 뒤로 하고 죽은 전우와 함께 진군할 것이다. 그런데 누구를 향해서, 누구를 향해서 진군한다는 말인가?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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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단상

케이트는 카르텔의 무자비하고 적나라한 폭력에 맞서 물러서지 않는 굳은 용기와 신념으로 무장한 마약 단속반 경찰이다. 그녀는 법과 원칙이 작동하는 세계를 수호하는 임무에 헌신한다. 그러나, 그녀가 더 많은 조직원들을 잡아들이고, 살인귀들을 쫓을수록 그들은 케이트의 세상을 잠식해 들어온다. 그녀가 '질서'를 바로잡으려 할수록, 세계는 더욱 '무질서'해지고, 이성을 잃어간다. 그녀는 그 이유가 너무도 알고 싶었기에 기꺼이 지옥 심장부의 초대를 받아들인다.

이 타락한 수렁에 영문도 모른 채 합류한 케이트는 전쟁의 주요 행위자들과 달리 애써 지켜야 할 대상이 없다. 그녀는 남편도 자식도 없는 이혼녀로서, 제발 외모 좀 꾸미고 다니라고 말하는 동료 경찰 레지가 그나마 친밀한 지인이다. 그녀가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는 '사랑'이 아니라 '진실'과 '원칙'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지키고자 하는 세계가 과연 그러한가? 이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정해진 경계를 넘어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는 세력을 응징하는 제국, 미국이다.

케이트는 그야말로 무기력하다. 작전의 전 과정에 이방인처럼 떠돌고 무시당하며, 궁극의 세력 균형과 질서 유지에 철저히 이용되는 소품에 불과하다. 케이트는 비정상 세계와 대립하는 정상 세계의 대등한 대변자가 아니라, 본래 정상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진실의 엑스트라이다. 세계는 그녀의 소망과 무관하게 제자리로 돌아간다. 영화는 케이트의 정당성을 옹호하거나 부각시키려 애쓰지 않으며, 감독이 바라본 세계를 충실히 복원하는데 주력한다.

여기서 두 가지 물음을 던져볼 수 있다. 세계가 불가피하게 선악이 공존-거대한 악에 선이 매달려 있는 형태의-하는 곳이라면, 그 질서의 균형점은 도대체 어디인가? 그리고 그 질서를 주관하는 자는 누가 주관하는가? 과연 맷 그레이버의 주장처럼 세계의 마약 인구 20%를 설득할 수 없다면 기존 질서를 복원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은 질서의 균형점을 짚고 있는가?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 해도, 균형의 조정자를 자처하는 가장 강한 폭력은 누가 관리할 수 있는가?

불안과 평온, 궁핍과 여유, 질서와 무질서의 대립과 혼재는 인간사의 불가피한 모습이다. 한 가지 모습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어디에도 없으며, 우리는 그저 양 진자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 피난처를 찾아 탐조등을 비추며 방황할 뿐이다. 누구나 후아레즈 바깥의 세계를 원하지만, 세계는 후아레즈와 후아레즈 바깥이 아니라 제국과 제국의 바깥으로 구분된다. 베트남의 정글과 아프가니스탄의 사막, 소말리아의 인종 학살, 콜롬비아의 메데인은 모두 후아레즈의 과거이다.  

후아레즈는 자연발생적인 장소가 아니라 제국이 빚어낸 인공의 산물이다. 제국은 균형의 조정자를 자처하고, 무질서한 세계를 관리하지만, 그것은 제국이 자신의 영속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신념을 지닌 제국의 일원, 케이트와 맷 그레이버는 가장 강한 폭력의 숭배자가 될 수도 있고 관리자가 될 수도 있다. 이들은 유동하는 경계를 부단히 일깨운다는 점에서 관리자 역할에 힘쓰는 동지이다. 무관심으로 '질서'에 편승하는 자들이 바로 제국의 숭배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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