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 이야기 - 인류 최초로 바다의 시공간을 밝혀낸 도전의 역사 ㅣ 데이바 소벨 컬렉션
데이바 소벨 지음, 김진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1. 상상의 선 


"프톨레마이오스는 적도를 위도가 0도인 선으로 잡았다. 임의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자연 속에서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적도를 알아냈던 조상들의 선례를 따른 것이었다. 적도에서는 태양과 달과 행성들이 머리 위로 수직에 가깝게 지나간다. 역시 유명한 위도선인 북회귀선과 남회귀선도 태양의 위치에 따라 정해졌다. 연중 태양이 움직이는 범위에서 각각 북쪽과 남쪽의 한계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초자오선, 즉 경도가 0도인 선은 프톨레마이오스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다. 그는 아프리카 북서쪽의 포처니트 제도(지금의 카나리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를 지나가는 경도선을 선택했다. 그 이후에 지도를 만든 사람들은 본초자오선을 아조레스 제도나 케이프베르데 제도, 로마, 코펜하겐, 예루살렘, 페테르스부르크, 피사, 파리, 필라델피아 등지로 옮기다가 결국 런던으로 낙착을 보았다. 본초자오선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정치적인 문제였다. 바로 그것이 위도와 경도의 본질적 차이점이다."(19)


2. 위험한 바다 


"용기와 탐욕을 겸비하고 바다로 나갔던 15~17세기의 선장들은 모항으로부터 동쪽이나 서쪽으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추측 항법을 사용했다. 선장은 바다 위에 측정기를 던져놓고 이 임시 이정표로부터 얼마나 빨리 멀어지는지를 관찰했다. 이 조잡한 속도계의 측정값을 항해일지에 기록하고, 별이나 나침반으로 확인한 진행 방향과 모래시계나 회중시계로 잰 특정 거리의 통과 시간 따위를 함께 적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목적지를 놓치는 일도 흔했다. 추측 항법 때문에 목숨을 잃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같은 개인적인 고통이 전부는 아니었다. 경도를 모른다는 이유로 세계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경제적 재앙을 감수해야 했다. 대양을 오가는 배들은 안전한 항해가 보장되는 소수의 비좁은 항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위도만 가지고 항행해야 했으므로 몇몇 항로에 포경선, 상선, 전함, 해적선 등이 한꺼번에 몰려 붐비다가 서로 싸워 차례로 희생 당했다."(29-30)


# 측정기 : 줄이 풀리는 정도에 따라 배의 속도 및 항주 거리를 재는 장치


3. 우주의 시계 속에서 표류하다 


"일찍이 1514년에 이미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베르너가 달의 운행을 이용하여 배의 위치를 알아내는 방법을 착안했다. 달이 한 시간 동안 움직이는 거리는 대략 달의 지름과 비슷하다. 달은 밤마다 이렇게 장중한 걸음걸이로 붙박이별 사이를 산책한다. 낮에는 (매달 보름 동안은 낮에도 달이 떠 있으므로) 태양 쪽으로 다가가거나 멀어진다. 베르너는 천문학자들이 달의 운행 경로 주위에 흩어진 항성들의 위치를 천체도에 표시하고 달이 각각의 항성을 스쳐 지나가는 시각을─앞으로 몇 년에 걸쳐 매달 달이 뜨는 밤마다─예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낮 동안에 이동하는 해와 달의 상대적 위치도 예측해야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월거 이용법'의 주된 문제점은 그 모든 과정을 좌우하는 항성들의 위치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어느 날 밤이나 낮에 달이 어디쯤 있을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천문학자는 아무도 없었다. 달의 운행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아직 상세히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39)


4. 병속의 시간 


"시계 예찬론자들은 좋은 시계만 있으면 경도 문제를 거뜬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때는 뱃사람들이 물통이나 소고기처럼 모항의 시간을 배에 싣고 출항할 수 있을 터였다. 1530년부터 플랑드르의 천문학자 젬마 프리시우스는 기계적인 시계가 바다에서 경도를 찾는 한 방법이라면서 환영했다. 그러나 프리시우스가 내세운 두 가지 조건─즉 지극히 정확한 출항 시각에 시계를 맞춰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항해 중에 시계가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때문에 당시로서는 사실상 사용이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16세기 초의 시계로는 어림없었다. 정확하지도 않았거니와 바다에서의 혹심한 온도 변화를 견뎌낼 재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시계가 부족하나마 상당한 발전을 보인 것은 영국의 항해가 토머스 블런드빌이 대양 항해에서 경도를 측정하기 위해 정확한 시계를 이용해보자고 제안했던 1622년에 이르러서였다. 여러 결점에도 불구하고 장차 시계가 더욱 완벽해졌을 때의 가능성에 대한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51-2)


5. 교감의 가루약 


"17세기 말엽, 바다에서 경도를 알아낼 수 있다는 엉뚱한 주장 가운데서도 가장 기상천외한 이론은 '교감의 가루약'이라는 엉터리 치료제를 근거로 삼았다. 딕비의 가루약을 경도 문제에 써먹는다는 발상은 비록 황당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먼저 상처 입은 개를 출항하는 배에 태운다. 그리고 믿을 만한 사람을 물에 남겨 날마다 정오에 그 개의 붕대를 교감의 가루약 용액에 집어넣게 한다. 그러면 개는 어쩔 수 없이 깽깽거리며 울부짖기 마련이고, 선장은 그 소리를 듣고 시간을 가늠한다. 개의 울부짖음은 곧 태양이 런던 자오선 상공에 도달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때 선장은 그 시각과 배가 있는 지점의 현지 시각을 비교하여 경도를 산출하면 된다. 물론 이 가루약이 수천수만 해리나 떨어진 바다 위까지 효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 또한 그러면서도─이것은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몇 달이 지나도록 이 소중한 상처를 치료하지 못해야 한다는 것이 것이 희망 사항이었다."(57-8)


6. 경도상 


"1714년 7월 9일 앤 여왕 치하에서 발포된 경도법에는 거액의 상금이 책정되었다. 경도법이 발효되기 전에도 경도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들은 흔해빠질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 1714년 이후 해결책의 잠재적 가치가 급격히 커지자 해결책의 숫자도 급증했다. 머지않아 경도 심사국은 소문을 듣고 상금을 타기 위해 몰려드는 무수한 사기꾼이나 선의의 참가자들에게 포위되다시피 했다." "경도법이 등장한 후 '경도를 찾는다'는 말은 곧 불가능한 도전을 뜻하게 되었다. 걸핏하면 경도가 화젯거리─그리고 웃음거리─가 되었고, 결국 그 시대의 문학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예를 들자면 『걸리버 여행기』에서 닥터 레뮤얼 걸리버는 불멸의 스트럴드브러그가 되었을 때를 상상해보라는 말을 듣고 여러 혜성들이 돌아오거나 거센 강이 얕은 시냇물로 변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즐거움과 더불어 경도가 발견되고 영구기관과 만병통치약 등 위대한 발명품이 속속 완성되는 것을 보는 기쁨을 떠올렸다."(72)


# 스트럴드브러그 : 늙기만 하고 죽지 않는 희귀한 존재


7. 톱니바퀴 만들기 


8. 바다로 간 메뚜기 


"'경도 사나이' 존 해리슨이 동생 제임스 해리슨과 함께 1735년에 제작한 첫 해상 시계 H-1은 모든 면에서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 시대의 산물이면서도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였다. 이 시계가 등장했을 때 세상은 이미 기다림에 지쳐 있었다. H-1은 본래의 목적을 충실히 수행할 뿐이었지만 워낙 뛰어난 탓에 사람들은 오히려 당황했다." "1737년 6월 30일에는 경도 심사국 의원들이 사상 처음으로─심사국 창립 후 23년 만에─회의를 열었는데, 바로 해리슨의 굉장한 기계 때문이었다." "심사 자리에는 해리슨의 탁월한 작품이 있었고, 더욱이 그곳에 모인 전문인 및 정치가들도 해리슨이 국왕과 조국을 위해 이룩한 업적을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H-1이─경도법에 명시된 2만 파운드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인도 제도로 가는 시험을 요구할 권리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해리슨은 지나친 완벽주의자였다. H-1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의견을 꺼낸 사람은 당사자인 해리슨뿐이었다."(95, 99-100)


9. 하늘의 시곗바늘 


"해리슨이 차례차례 해상 시계를 제작하던 바로 그 시기에 과학자들도 마침내 하늘의 시계를 이용하는 데 필요한 이론과 기구와 정보를 두루 갖추게 되었다." "이제 '해들리 사분의' 덕분에 두 천체의 고도와 그 사이의 거리를 직접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설령 배가 심하게 흔들리더라도 관측자의 시야에 들어온 두 천체의 상대적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해들리 사분의에는 어둠이나 안개 때문에 진짜 수평선이 안 보이게 되었을 때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인위적인 수평선이 덤으로 붙어 있었다. 이 사분의는 곧 망원경을 부착하고 측정각을 넓혀 더욱 정확하게 만든 육분의sextant라는 기구로 발전했다. 그렇게 개량한 부분 때문에 이 기구만 있으면 낮 동안에 끊임없이 달라지는 달과 태양 사이의 거리를, 어두워진 뒤에는 달과 별 사이의 거리를 각각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 상세한 성도星圖와 믿을 만한 기구를 갖춘 유능한 항해가라면, 이제 갑판 위에 서서 얼마든지 월거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106-9)


10. 다이아몬드 시계 


"1753년 워십풀 시계조합의 존 제프리스는 해리슨이 개인적으로 사용할 회중시계 하나를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그는 해리슨이 요구한 설계대로 제작한 것이 분명하다. 제프리가 만든 이 시계에도 작은 이중 금속띠가 들어가 날이 덥든 춥든 정확한 시간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시계는 대단히 정확했다. 해리슨 자신도 이 시계에 마음을 빼앗겨 더 작은 해상 시계를 구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해리슨이 1759년에 완성한 H-4는─이 시계로 결국 경도상을 받았다─앞서 만들어진 H-1, H-2, H-3보다 오히려 제프리스 시계를 더 많이 닮았다. 큼직한 황동 시계의 혈통에서 막내로 태어났으면서도 H-4는 마치 모자에서 끄집어낸 토끼처럼 놀라운 물건이었다. 지름이 5인치나 되므로 회중시계라고 하기에는 큰 편이지만 해상 시계로서는 아주 꼬맹이었으며 무게도 겨우 3파운드였다. 해리슨도 이 시계를 사랑했다. 곧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듯 이 시계는 그야말로 우아함과 정밀성의 진수였다."(122-3)


11. 물과 불의 시련 


"영웅을 찬양하는 이야기에는 야유할 악당도 필요한 법이다. 이 책에서 네빌 매스켈린 목사가 그런 사람인데, 역사는 그를 '뱃사람들의 천문학자'로 기억한다. 매스켈린은 월거 이용법을 선택했다가 곧 신봉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그 방법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다." "해리슨의 시계는 경도에 얽힌 복잡한 문제들을 그 안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사용자는 수학이나 천문학에 통달할 필요도 없고 시계를 작동시키는 데 경험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었다. 과학자나 천측 항법가들의 눈에는 이 해상 시계에 불길한 무엇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뭔가 재빠르고 붙잡을 수 없는 것. 더 옛날이었다면 해리슨은 이런 마술 상자를 해결책으로 내놓았다는 이유로 꼼짝없이 마법사로 몰렸을 것이다. 해리슨이 이런 입장에 놓인 까닭은 스스로 정해놓은 기준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며 또한 그의 적들이 강력히 불신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공적을 세우고도 기대했던 찬사는커녕 수많은 시련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116-7, 128)


12. 두 개의 초상화 


"1764년 여름에 힘겨웠던 두 번째 시험이 끝난 후, 경도 심사국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몇 달을 그냥 보냈다. 위원들은 수학자들이 H-4의 시간 기록을 계산한 후 천문학자들이 측정한 포츠머스 및 바베이도스의 경도값과 비교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었다. 심사 자료에는 모든 내용이 포함되어야 했다. 이윽고 최종적인 보고를 들은 위원들은 위의 시계가 충분히 정확하게 시간을 표시했음을 만장일치로 인정했다. 도저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성과를 거두고도 해리슨은 작은 승리밖에 얻지 못했다." "1765년 1월에 신임 왕실 천문학자의 이름이 발표되었는데, 다름 아닌 영원한 숙적 네빌 매스켈린이었다. 심사국 회의에서 매스켈린은 월거 이용법을 찬양하는 기나긴 원고를 낭독했다. 이 사건은 월거 이용법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의 시작에 불과했다. 해리슨의 크로노미터는 비록 신속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 반면, 하늘은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었다."(146-8)


13. 제임스 쿡 선장의 두 번째 항해 


14. 천재성의 대량 생산 


"켄들과 머지는 살아생전에 각기 해상 시계 세 개를 제작했고, 해리슨도 고작 다섯 개를 만들었을 뿐이지만 시계공 존 아널드는 품질 좋은 해상 시계를 무려 수백 개나 완성시켰다." "존 아널드에게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토머스 언쇼였다. 그는 해리슨의 복잡성과 아널드의 생산성을 응축시켜 완벽에 가까운 크로노미터를 만들어냈다. 윤활유가 필요 없는 계시 장치를 고안하여 마침내 해리슨의 위대한 아이디어 하나를 소형화했다는 사실도 빠뜨릴 수 없다." "아널드와 언쇼 이외에도 점점 더 많은 제작자들이 나타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판매했으며 군함이나 상선은 물론이고 놀잇배에서도 크노로미터를 사용했다. 그리하여 1737년 전 세계에 하나뿐이던 해상 시계가가 1815년에는 5000여 개로 늘어났다." "해리슨이 제시한 경도 해결책의 실용성이 확실히 입증되자 한때 치열했던 경쟁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하여 크로노미터는 곧 당연히 항해에 갖춰야 하는 필수품으로 여겨졌다."(172, 175, 179-80)


15. 자오선의 뜨락에서


"런던 중심부로부터 7마일 떨어진 그리니치 천문대 자리에 본초자오선을 설정한 사람은 제5대 왕실 천문학자 네빌 매스켈린이었다. 경도를 찾는 방법 중에서 시계 이용법이 월거 이용법을 누르고 승리를 거둔 후에는 그리니치의 중요성이 다소 줄어들었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뱃사람들은 크로노미터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아직도 이따금씩 월거 측정을 해야 했다. 그리고 『항해력』의 해당 페이지를 펼쳐놓은 후, 출발 지점이나 목표 지점이 어디이든 간에 자연히 그리니치를 기준으로 경도를 계산했다." "(매스켈린의 온갖 훼방에 시달리면서도) 존 해리슨은 자신의 해상 시계들을 가지고 시간과 공간의 바다에 도전했다. 그리고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제4의 차원─즉 시간─을 이용하여 삼차원적 공간인 지구의 각 지점을 하나로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세계 각지의 위치를 알아냄으로써 별들을 쓸모없게 만들고 그 엄청난 비밀을 회중시계 속에 가둬놓았다."(182-3,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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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비스마르크 - 살림지식총서 361 ㅣ 살림지식총서 361
김장수 지음 / 살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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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의 활동


1847년 5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Friedrich Wilhelm Ⅳ)는, 철도 건설에 필요한 재원으로서 공채를 발행하기 위해 프로이센 통합지방의회(Der Vereinigte Landtag)를 개원한다는 칙령을 발표했고 그에 따른 선거가 각 지방에서 실시되었다. 당시 비스마르크는 통합지방의회의 의원으로 선출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브라우휘트쉬(Brauchitsch)라는 의원이 지병으로 의원 활동을 포기함에 따라 그는 1847년 5월 8일 통합지방의회의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독일 역사상 최초의 실제적 대의회였던 통합지방의회는 온건적 성향의 자유주의자들이 주도했다. 그러므로 왕권 및 귀족 계층의 이익을 대변했던 우익 세력은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했다. 의회에 진출한 비스마르크는 보수적 성향을 보였는데 그의 그러한 성향은 5월 17일 통합지방의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확인된다. 여기서 그는 일부 의원들이 제기한 헌법 제정의 필요성을 반박했고 그것은 지방의회 의원들의 강한 반발을 야기했다. 9)


3월혁명 전후의 활동


오토(Otto) 대제 이후 약 천 년 동안 유지해 오던 신성로마제국은 1806년 10월 14일 예나-아우어슈테트(Jena-Auerstedt) 전투에서 나폴레옹 군에게 패배함으로써 멸망했다. 이후 제국의 영토는 나폴레옹의 보호국이 된 라인연방(Rheinbundstaaten), 호헨촐레른(Hohenzollern) 가의 프로이센, 그리고 합스부르크(Habsburg) 가의 오스트리아로 분할되었다. 1815년 빈 회의의 결정에 따라 등장한 독일 연방은, 35개의 대소 국가와 4개의 자유시(Freistadt)로 구성된 엉성한 정치 체제였다. 그런 와중에 라인연방에서 시작된 독일의 산업 발전은 국내의 상공 시민들을 고무시켰고 그것은 자본주의적 산업 발전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통합 시장의 형성 요구로 이어졌다. 그에 따라 프로이센의 경제인들은 1819년 북부 독일의 여러 국가들과 관세동맹(zollverein)을 체결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전 독일국가가 참여한 관세동맹이 1844년에 결성됨으로써 정치적 통일에 앞서 경제적 통일이 이룩될 수 있었다.10)


1848년 5월 18일 프랑크푸르트의 성 파울 교회(St. Paul- kirche)에서 국민의회가 개최되었다. 국민의회의 최대 과제는 독일 연방을 하나의 통합 국가로 변형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형성된 개별 영방 국가들을 그대로 둔 채 강력한 중앙 권력을 창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민의회의 이러한 무력함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Schleswig-Holstein) 문제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두 공국은 오랫동안 덴마크 국왕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그중 홀슈타인은 독일 연방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혁명을 계기로 이 지방의 독일계 주민이 덴마크의 지배에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국민의회의 요청으로 파견된 프로이센군이 사태를 진압했으나, 러시아, 영국, 프랑스의 압력으로 프로이센은 덴마크와 휴전 조약을 체결했고 국민의회는 이 조약을 추후 비준했다. 이로써 두 공국의 독일계 주민은 국민의회로부터 배반당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대다수 독일인 역시 그러한 결정에 불만을 표시했다. 12-3)


1851년 5월 15일 비스마르크는 프랑크푸르트 연방의회 대사로 임명되었다. 그 자신이 후에 인정했듯이 대사직은 한 국가의 외교를 담당하는 중요한 관직이었다. 이 당시 오스트리아 정치가들은,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 대등한 국가가 아니며 앞으로도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었고 비스마르크 역시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1858년 3월 비스마르크는 당시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후계자였던 빌헬름 왕자에게 자신의 정치적 관점을 정리한 문서를 제출했는데 거기서 그는 베를린 정부가 빈 정부를 의식하지 말고 자기중심적인 정책, 즉 독자적인 정책을 펼쳐야만 독일권에서 프로이센의 위상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이면에는 프로이센의 국익을 위해서는 오스트리아 제국과의 충돌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점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빈 정부는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비스마르크를 해임시키려 했고, 그러한 시도는 결국 성공을 거두었다. 15-6)


1859년 1월 23일 비스마르크는 러시아 주재 프로이센 공사로 임명되었다. 3월 말 임지에 도착한 비스마르크는 러시아 외교 정책의 근간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펼쳤고 거기서 자신의 관점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도 인지하게 되었다. 러시아 공사로서의 임기를 끝낸 비스마르크는 1862년 1월 22일부터 프랑스 주재 프로이센 공사로 근무했다. 그 기간이 채 일 년도 되지 않았지만, 이 시기에 그는 나폴레옹 3세(Napoleon Ⅲ)의 보나파르트 정책(Bonapartism)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여기서 그는 외교적 업적을 통해 국내 문제를 해결하려는 보나파르트 정책의 운영 과정을 세밀히 관찰해 그것을 향후 자신의 정책에도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보나파르트 정책의 핵심 구도는 1860년대 초 군제 개혁(heeresreform) 과정에서 야기된 의회와의 충돌 및 1870년대 의회 내 반대 세력과의 대립이라는 내정 문제를 외교적 업적을 통해 해결하려 한 것 등에서 확인된다. 16-7)


현실정치가로서의 행보


1859년 호헨촐레른 가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극한 빌헬름 1세(Wilhelm Ⅰ)는, 섭정 지위에 있을 때 전쟁장관(kriegminister)과 육군 참모총장으로 임명했던 론(Roon)과 몰트케(Moltke)로 하여금 프로이센군을 증강시킬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강구하도록 지시했다. 이러한 병력 증강안에 대해 자유주의자들 역시 원칙적으로 견해를 같이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비역 및 후비역 축소가 해방전쟁(befreiungskrieg)의 전통을 계승하고 군제 개혁가 등의 이상이었던 '무장화된 시민', 즉 시민과 군대가 결속되었던 전통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자유주의자들의 이러한 우려에 대해 빌헬름 1세는 엄격한 군인 정신으로 무장한 군대만이 대내외 문제에 대처할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이제 군제 개혁은 단순한 군사적ㆍ기술적 범위를 넘어 '시민의 군대인가, 국왕의 군대인가'라는 제도 이념적인 갈등과 대립을 함축하게 되었다. 빌헬름 1세는 군제 개혁을 국왕의 통수권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18-9)


국왕과 의회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가운데 1862년 9월 24일 비스마르크는 임시 수상(interimistische ernennung zum preussischen ministerpräsidenten)으로 임명되었다. 비스마르크는 1862년 9월 30일 의회에서 "독일권이 주목하는 것은 프로이센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그 권력이다. (중략) 오늘의 문제는 언론이나 다수결―이것이 1848년과 1849년의 잘못이다―에 의해서가 아니라 피와 철(blut und eisen)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라는 것을 언급했던 것이다. 하원의 반대로 차기 연도 예산이 확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비스마르크는 상하 양원의 불일치로 예산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헌법 규정이 없음을 파악했다. 따라서 그는 하루라도 국가 통치가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점이론(Lückentheorie)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여기서 그는 헌법적인 교착 상태가 초래될 경우 오직 국왕만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후 그는 긴급권을 발동하여 예산 승인 없이 국가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0)


빈 정부가 독일 통합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을 가진 비스마르크는 군사력 강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울러 그는 외교적인 공작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1865년 10월 나폴레옹 3세를 비밀리에 만나 형제 전쟁이 발발할 경우 프랑스의 중립을 약속받았고, 1866년 4월 8일에는 이탈리아 왕국과 3개월간의 한시적 군사 동맹 체제를 체결하여 오스트리아가 패배할 경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Venezia) 합병도 인정한다는 약속을 했다. 물론 러시아와의 친선 관계는 그가 1859년부터 약 3년간 페테르부르크에서 대사로 근무할 때 이미 구축된 상태였다. 1866년 6월 21일 비스마르크는 의회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로이센군을 홀슈타인으로 출격시켜 형제 전쟁을 일으켰다. 1866년 7월 3일 쾨니히그레츠(Königgrätz) 전투에서 오스트리아의 주력군은 프로이센의 후장총과 몰트케가 이용한 철도라는 획기적 이동 수단 때문에 패배했다. 이후로 오스트리아는 독일 통일 문제에서 배제되었다. 21-2)


독일 연방이 붕괴된 이후 독일권은 마인(Main) 강을 경계로 남북 두 개의 블록으로 나뉘었다. 비스마르크는 1866년 10월부터 마인 강 이북의 영방들과 조약을 체결하여 연방 조직을 형성했다. 그것에 따라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 작센, 하노버, 쿠어헤센, 그리고 나사우 등을 포함한 총 22개 영방으로 구성된 북독일 연방(Norddeutscher Bund)을 발족시켰다. 북독일 연방은 단순한 국가 연맹이었던 독일 연방과는 달리 중앙 권력을 갖춘 연방 국가의 성격을 가졌다. 마인 강 이남 지역에서 비스마르크는 남부 독일 국가들, 특히 바이에른, 바덴(Baden), 뷔르템베르크(Würtemberg), 그리고 헤센-다름슈타트(Hessen -Darmstadt) 등과 비밀 공수동맹을 맺고 나폴레옹 3세의 야심에 대비하고자 했다. 아울러 그는 1867년에 개편된 관세동맹을 통해 이들 국가들을 북독일 연방에 결속시킬 수 있었다. 이로써 내용적으로 보다 확대된 북독일 연방 및 프로이센이 군림하는 전 독일적 연방 국가의 원형이 창출되었다. 22-3)


비스마르크는 프랑스가 독일 통합에 대해 부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실현을 저지하려는 의도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남부 독일 국가들과 비밀리에 체결한 공수동맹(Schutzund Trutzbündnis)에 따라 이들 국가들로부터 군사적인 지원을 받았다. 아울러 그는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로부터의 중립도 약속받았다. 또한 그는 몰트케 장군에게 전쟁 준비를 철저히 할 것을 명령했고 그 결과 독일 연합군은 병력, 장비, 훈련 등에서 프랑스군을 압도했다. 따라서 전쟁이 시작된 지 2개월도 안된 1870년 9월 4일, 나폴레옹 3세는 8만 6천 명의 프랑스군과 함께 스당(Sedan)에서 항복하고 강화를 제의했다. 그러나 프랑스에 대해 철저한 타격을 가하고자 했던 비스마르크는 강화 제의를 거부하고 1871년 1월 29일 파리를 함락시켰다. 같은 해 5월 10일 비스마르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랑스와 엘자스-로트링겐의 할양 및 50억 프랑의 배상금 지불을 내용으로 하는 조약을 체결하고 전쟁을 종결시켰다. 23-4)


내정에 대한 관심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Versailles)에서 탄생한 독일제국은 4왕국, 18공국, 3자유시 등 25개의 국가와 2제국령(엘자스-로트링겐)으로 구성된 연방 국가였다. 그러나 이러한 연방 체제는 이전의 독일 연방처럼 여러 국가의 집합체도 아니면서 완전한 중앙집권 국가라고도 볼 수 없는 모호한 정치 체제였다. 왜냐하면 바이에른, 작센, 뷔르템베르크, 바덴 등이 이전의 칭호 및 지위를 유지하면서 상원에 해당되는 연방의회(Bundesrat)에서도 압도적 의석을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제국헌법에 의하면, 연방의회는 각국의 대표와 황제가 지명하는 60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었는데 입법권과 군사 및 외교상의 대권 등을 가져 그 권한이 막강했다. 그러나 의원들 중 17명은 황제가 직접 임명했기 때문에 연방의회의 권한은 실질적으로 황제권에 예속되었다. 이 당시 독일제국의 재상은 프로이센 수상도 겸임했다. 또한 그는 의회가 아닌 황제에게만 행정적 책임을 졌기 때문에 황제와 더불어 국정을 실질적으로 운영해 나갈 수 있었다. 25-6)


비스마르크는 국민자유당(Nationalliberale Partei)의 협력으로 군사예산 문제를 해결했지만 제국 창건 이후부터 급격히 성장한 반대파의 세력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여야만 했다. 그중 가장 강력한 반대 세력으로 부각된 것은 가톨릭계의 중앙당(Zentrumspartei)으로, 그 구성원들은 비스마르크의 통일 작업에 불신을 제기해 온 인물들이었다. 1870년 12월 라이헨스페르거(Reichensperger)의 주도로 창당된 이 당의 강령은, 국가로부터 교회의 제 권리를 지키고 각 영방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연방 체제의 도입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창당한 지 얼마 안 되어 바이에른을 비롯한 남부 독일 국가들의 정치가들이 이 당의 핵심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교회 및 가톨릭 주민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던 비스마르크는 로마교회에 굴복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Heinrich Ⅳ)의 행보를 인용하여 '카노사(canossa)에는 결코 가지 않겠다'고 장담하면서도 교회에 대한 양보 정책을 펼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26-7)


1873년부터 시작된 수년간의 경제 불황은 주가의 대폭락과 수많은 기업의 도산 및 노동자들의 대량실업을 야기했다. 국민자유당의 지원하에 자유주의적 제 개혁을 시행함으로써 독일 경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구가했지만 장기간의 공황으로 자유주의자들의 이상은 이제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자 비스마르크는 국민자유당을 대신하여 보수당과 중앙당으로부터 지지를 얻고자 했다. 따라서 그는 지금까지 견지한 경제 정책의 근간을 포기하는 대신 새로운 경제 정책의 방향을 제시했다. 즉, 그는 보호관세 제도를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에 대한 지방정부의 부담금 역시 증액시켰던 것이다. 비스마르크의 이러한 정책적 변화는 자신과 국민자유당 사이의 균열을 가져왔지만 보수당과 중앙당과의 결속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은 점차 제국의 새로운 적으로 부상하고 있던 사회주의 추종 세력과의 대립에서 우위를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나온 것이기도 했다. 27-8)


비스마르크는 1878년 10월 21일 새로이 구성된 제국의회에서 사회민주주의 탄압법(Gesetz gegen die gemeingefährlichen Bestrebungen der Sozialdemokratie)을 통과시켜 사회민주주의적,) 또는 사회주의적, 무정부주의적 성향을 가진 단체들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또한 그러한 활동은 형법적 대상으로 간주되었고 당원들은 경찰의 감시까지 받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민주주의 탄압법은 2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1890년까지 갱신ㆍ유지되었다. 1881년 11월 비스마르크는 제국의회에서 사회 입법의 취지를 담은 황제 교서를 낭독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보호 및 부양 정책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약 10년간 베를린 정부는 광범위한 사회복지 제도를 도입하는 데 적극성을 보였다. 자유주의 세력은 양분되었는데, 사회민주주의 탄압법 및 노동자 보호 입법에 반대했던 좌파와 달리, 우파 정치가들로 구성된 국민자유당은 사회 입법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것이다. 28-9)


실용적 외교 정책


1870년대 초부터 향후 약 20년 동안 비스마르크는 국제 정치 무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데, 이 시기를 '비스마르크 시대(Ära von Bismarck)'라고도 한다. 비스마르크는 전쟁을 외교 수단으로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현실정치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독일 통합 이후에는 가능한 한 전쟁을 피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전쟁으로 인해 신생국가 독일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43) 그러면서 비스마르크가 항상 고려했던 것이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복수전(revanchekrieg)이었다. 여기서 그는 프랑스가 독자적으로 독일을 공격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반드시 동맹국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는 프랑스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킬 경우 프랑스의 복수전은 실현될 수 없다는 확신하에 프랑스의 고립화를 독일 외교 정책의 가장 주요한 과제로 설정했다. 이후부터 그는 프랑스의 동맹국이 될 수 있는 러시아를 프랑스로부터 격리시키는 데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30)


1873년 비스마르크의 주도로 결성했던 삼제동맹은 붕괴될 위험이 컸다. 왜냐하면 러시아의 범슬라브주의와 오스트리아의 범게르만주의가 발칸 반도에서 충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러시아는 1887년 이 동맹 체제로부터 탈퇴했다. 여기서 비스마르크가 우려해 온 러시아와 프랑스의 접근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비스마르크는 그것을 막기 위해 1887년 6월 18일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Nikolaj Ⅱ)와 '재보장조약(Rückversicherungsvertrag)'을 체결했는데, 거기에는 독일과 러시아 중 어느 한 국가가 제삼국과 전쟁을 할 경우 다른 국가는 중립을 지킨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재보장조약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상호 방위조약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조약은 독일의 우방인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알 수 없게끔 비밀 조약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890년 3월 20일 비스마르크가 수상직에서 물러나면서 그의 복잡하고 위험한 동맹 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33-4)


실각의 과정


빌헬름 1세의 치세 말기 비스마르크와 빌헬름 왕자 사이에 첫 번째 논쟁이 펼쳐졌다. 논쟁의 시발점은 유태인 및 사회주의자들에 대해 반감을 가졌던 슈퇴커(Stoeker)가 1878년 기독사회당(Christlich-Soziale Partei)을 창당한 것에서 찾아진다. 슈퇴커는 창당 이후부터 자신의 정당을 통해 유태인과 사회주의자들을 폄하하는 데 주력했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유태인과 사회주의자들은 이질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제국 내에서 배척당해야 하고 그렇게 해야만 사회적 안정과 평화가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스마르크와 빌헬름 왕자 사이의 갈등을 유발시킨 주된 요인은 바로 이러한 슈퇴커의 조직적이고 반사회주의적인 행동에 대해 빌헬름이 공식적으로 동조했다는 것과 비스마르크의 외교 정책을 그가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당시 비스마르크는 신민 간의 갈등을 유발시킬 수 있는 슈퇴커의 주장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에 왕자가 동조한다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으려고 했다. 35-6)


빌헬름 2세와 비스마르크 사이의 갈등은 사회 정책에서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1889년 5월부터 루르(Ruhr) 지방과 슐레지엔(Schlesien) 지방에서 15만 명에 달하는 광부들이 파업을 전개했을 때, 비스마르크는 고용주들을 옹호한 반면, 황제는 순진하게도 노동자들을 지지했다. 당시 황제는 자신이 "가난한 계층의 황제(roi des gueux)"가 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비스마르크는 인기에 영합하는 빌헬름 2세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사회민주주의 탄압법에서도 양인은 견해를 달리했다. 빌헬름 2세는 탄압 위주의 사회민주주의 탄압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하려고 했지만, 비스마르크는 의회에서 기존의 탄압법을 큰 수정 없이 그대로 연장시키려고 했다. 1890년 1월 25일 야당과 보수주의자들은 제국의회에서 비스마르크가 상정한 사회민주주의 탄압법의 연장을 거부했는데, 그것은 비스마르크로 하여금 사회민주주의 탄압법에 대한 황제의 관점을 명확히 파악하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38)


빌헬름 2세는 1890년 3월 20일 비스마르크의 사직청원을 수용했다. 외양상 황제는 아쉬운 마음으로 비스마르크를 떠나보냈고, 악화된 건강 상태와 그에 따른 그의 청원이 해임의 주된 이유인 것처럼 행동했다. 1890년 3월 29일 비스마르크는 베를린의 레어테르(Lehrter) 역에서 프리드리히스루로 떠났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비스마르크의 해임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는데, 그의 해임으로 인해 유럽의 평화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스마르크는 외교 정책에서 힘의 행보를 항상 올바르게 판단했고, 상대방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정확히 인지했다. 그러나 국내 정치에서 그는 이러한 통찰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비스마르크의 외교 정책에서 종종 부각되었던 중용 유지가 국내 정치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못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국내의 정치 세력을 외교 정책에서의 힘의 게임과 동일시했기 때문에 국내 정치적인 상황을 원만하게 처리할 수 없었던 것이다. 41-2)


은퇴 이후의 활동


빌헬름 2세는 「제국신문」에 정부 및 의회가 만장일치로 정한 비스마르크의 추도 기간 및 자신의 추도문을 발표했다. 거기서 그는 비스마르크가 빌헬름 황제 시기에 이룩했던 업적들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을 경우 무력과 피를 통해 그것들을 제거하겠다는 언급도 했다. 그런데 황제의 이러한 발언이 비스마르크를 잘못 이해하는 데 크게 일조한 것 같다. 또한 비스마르크를 칭송하는 문구들로 장식된 조형물들이 독일 전역에 세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치가들 역시 빌헬름 2세와 마찬가지로 비스마르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은 그들이 펼쳤던 정책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들은 무력이란 방법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비스마르크의 외교 정책에서 확인되는 특징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빌헬름 2세가 모로코의 아가디르(Agadir)로 군함 '판터(Panther)'를 출항시킨 것 자체가 바로 '비스마르크식 정치'라 생각했던 것이다.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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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노동자가 만난 과학 - 자본으로부터 과학 되찾기
박재용 지음 / 빨간소금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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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부 제국주의와 과학


1. 약탈적 과학: ‘발견’과 ‘발명’이라는 거짓말


피나텍스(Piñatex)는 스페인 출신 디자이너 카르멘 히요사(Carmen Hijosa)가 2013년 개발한 것으로, 파인애플 잎에서 추출한 섬유를 부직포 형태로 만든 뒤 특수 처리를 통해 가죽과 비슷한 질감과 내구성을 갖게 했다. 히요사는 이 기술에 대한 특허권을 얻고 아나나스아남(Ananas Anam)이란 회사를 세워 피나텍스를 독점 생산·공급하고 있다. 필리핀 선주민들은 이미 몇백 년 전부터 파인애플 잎에서 추출한 섬유로 피나 직물(piña cloth)을 만들어 왔다. 선주민들이 피나 직물을 만드는 과정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을 정도다. 히요사는 필리핀에서 가죽 산업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선주민들의 이 방법을 배웠다. 그렇지만 그에 따른 경제적 이익은 아나나스아남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에 돌아간다. 주로 서구의 대기업들이 세계 각 지역의 선주민들이 오랜 경험을 통해 쌓아 온 지역 생물에 대한 지식과 유전자원(genetic resources)을 도용해서 독점적 수익을 올리는 것을 ‘생물해적(Biopiracy) 행위’라 부른다. 8-9)


19세기에는 식물학자, 동물학자, 인류학자 등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식물도 연구하고 동물도 연구했다. 또한 인종에 대해서 살피고 해류나 기상을 관측했다. 이런 과학자들을 박물학자라고 불렀다. 이런 박물학자들의 노력으로 박물학은 식물학, 동물학, 지질학, 지리학, 기상학, 해양학 등 세부 학문으로 정립되고 발전했다. 그런데 과연 박물학자들의 성과는 오로지 그들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졌을까? 물론 그 노력을 저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선주민들에게 힘입은 바가 컸다. 그러나 박물학자와 함께 탐험한 이들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저 고용된 사람, 일행일 뿐이었다. 서양 박물학자들의 ‘발견’은 자기네만의 ‘최초’인 경우가 꽤 많다. 오히려 ‘재발견’, ‘서양에서의 첫 발견’ 정도가 적당하다.  이렇게 현지인들의 지식과 도움으로 확보한 식민지에 관한 연구는 영국 제국의 과학 네트워크를 통해 중앙화되었다. 제국들이 식민지로부터 수집한 정보는 서구 과학계에 공유되며 서양의 과학이 되었다. 12-4)


1890년대부터 동남아시아에 고무 플랜테이션(Plantation)이 급속히 늘어났다. 플랜테이션이 들어선 장소는 이전에 선주민의 거주지, 농경지, 열대우림이었다. 집이며 논이며,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하던 열대우림이 사라졌다. 손수 지은 집에 살며 가족이 먹을 쌀을 재배하고, 과일과 꿀을 채취하고, 대나무로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현지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고무 플랜테이션의 노동자가 되었다. 자신의 땅에 유배당한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현지인들은 새롭게 임금노동에 의지했지만, 긴 노동시간, 낮은 임금, 위험한 작업환경으로 생활이 쉽지 않았다. 남녀 구분 없이 플랜테이션에서 일했고, 아이들도 동원되었다. 산업혁명 초기에 영국에서 성행한 아동노동이 19세기 식민지에서 되풀이되었다. 하지만 이들로는 부족해 노동력을 외부에서 들여와야 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에 화교와 인도인 비율이 높은 원인 중 하나다. 15)


2. 의학과 제국주의: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된 약자들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된 이들은 주로 제3세계 사람들과 서구 사회 소수자들이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식민지 사람들이 주요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이 연구 결과들은 식민지 사람들의 삶을 낫게 만들었을까?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선진국 사람들이었고, 식민지 출신의 사람들은 여전히 질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가 소외열대질환(Neglected Tropical Disease)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열대지방에서 주로 발생하는 20개 질병을 소외열대질환으로 통칭한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말라리아는 2022년 세계적으로 2억5,000만 건 정도 발생했으며, 이 과정에서 약 61만 명이 사망했다. 전체 감염자의 94%, 사망자의 95%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한다. 그중에서도 말라리아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나이지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모잠비크에서 발생한다. 5세 미만의 아이들이 전체 사망자의 78%를 차지한다. 22-4)


특히 아프리카의 상황이 이렇게 나빠진 데는 제국주의 시절 서양의 책임이 크고 그 가운데 당시 의학의 책임이 상당하다. 물론 제국주의 침략 이전이라고 이런 열대 질환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식민 지배 과정에서 양상이 바뀌었다. 대규모로 농장을 만들고 삼림을 벌채하고 광산을 개발하면서, 말라리아모기 등 질병 매개체의 서식지가 확대되었다. 강제 노동과 대규모 이주 등으로 질병이 더 쉽게 퍼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선주민들의 공동체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전통적 방식의 질병 억제 방법이 함께 무너졌다. 이렇게 식민지 경제체제에서 급격한 도시화는 위생 문제를 악화시켰다. 그리고 제국주의는 식민지 자원을 대규모로 착취했다. 식민지 선주민들은 더 빈곤해지고 이에 따라 건강 상태가 나빠졌다. 게다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식민지 시대 의료 체계는 주로 본국에서 간 사람과 일부 식민지 엘리트를 위한 것이었지, 대다수 현지인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현지인들은 생체 실험 대상으로만 취급되었다. 24)


3. 과학과 제국주의: 자연선택은 적자생존이 아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은 아프리카, 중동과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두고 제국주의의 최전성기를 누렸다. 이때 인종론은 유럽의 백인이 아시아인과 흑인을 지배하는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의 하나가 되었다. 더 진화한 이들이 덜 진화한 이들을 가르치고 교화해야 한다고 말이다. 현대 과학으로 보자면 인종론은 과학적 정당성이 하나도 없다. 유전공학의 발달은 피부색이 까만 사람들 사이의 연관성보다 지역적 연관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물론 19세기에도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처럼 인종 간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인류학자가 있었지만,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19세기의 인종론은 이제 과학적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러나 사회적 영향력은 상당하게 남아 있다. 가령 미국에서 흑인은 백인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체포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렇게 주장한다. “인종은 없다. 인종차별만 있을 뿐이다.” 28-9)


허버트 스펜서가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를 쓸 때의 의미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때의 ‘진화’는 다윈의 생각과 완전히 달랐다. 다윈의 진화란 ‘진보’나 ‘발전’이 아니라 아무런 목적이 없는 자연 현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스펜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 진화는 곧 진보이고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 여겼다. 스펜서로서는 좀 억울한 면이 있다. 그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확대 정책, 전쟁과 군국주의에 반대했다. 군사적 사회에서 산업적 사회로의 진화가 발전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사회진화론’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그 뒤 다른 식으로 쓰였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사회학자 벤저민 키드(Benjamin Kidd)는 《사회 진화(Social Evolution)》에서 서구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정당화했다. 열등한 인종에 대한 우월한 인종의 지배가 진보의 필수 요소라는 것이다. 그에 따라 유럽의 식민 지배를 ‘문명화의 사명(Civilizing mission)’이라고까지 이야기했다. 31-2)


2부 현대 자본주의와 과학


4. 현대 자본주의와 거대과학: 거대 기업이 주도하는 거대과학


맨해튼 프로젝트는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바로 거대과학(Big Science)의 출현이다. 거대과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우주 탐사도 입자물리학도 핵융합도 아닌 군사다. 어떤 이들은 군대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한 기술이 다른 부문에 활용되면서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스핀오프(spin-off)’ 기술이라 하는데, 군사용 연구를 정당화할 때 자주 인용된다. 스핀오프 기술이 꽤 있다. 대표적인 예가 흔히 ‘GPS’라 부르는 위성항법시스템이다. GPS는 위성항법시스템 중 미국국방부가 개발해 관리하는 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Global Positioning System)의 약칭이다. 그런데 현재 위성항법시스템은 미국의 GPS 하나만이 아니다. 러시아의 글로나스, 유럽연합의 갈릴레오, 중국의 베이더우 등 지구 전체를 담당하는 4개의 위성항법시스템이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원래 군사용이기 때문이고 최초 개발국인 미국이 GPS 운영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37-8, 40, 42)


이미 개발된 군사 기술을 민간에 적용하는 것이 나쁘다는 주장이 아니다. 스핀오프 기술을 예로 들면서 군사 기술 개발에 막대한 돈과 인력을 쏟아붓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스핀오프는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다. 대부분의 군사 기술은 민간에 적용되기 어렵거나 적용 과정에서 막대한 추가 비용 및 시간이 소모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서비스와 제품은 항상 가성비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군은 성능과 효과가 우선이고, 비싼 가격이나 다른 문제점은 쉽게 감내한다. 무엇보다 스핀오프 기술에 대한 강조는 목적과 수단의 전도라는 윤리적 문제를 외면한다. 앞서 말했듯이 정부는 나중에 다른 용도로 쓸 것을 염두에 두고 군사 기술을 개발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기술 개발에 막대한 국가 예산을 투입한다. 이는 더 시급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을 군대를 위해 전용하는 행위다.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기술이나 난치병 치료법 개발, 환경 보존 등에 투여할 예산을 빼앗는 셈이다. 42-3)


5 의학과 보편적 건강권: 사람이 특허보다 중요하다


국경없는의사회는 199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 상금이 시작이었다. 마침, 아벤티스가 수면병 치료제 생산을 중단한 시점이었다. 기존 다국적 제약 회사를 통해서는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하는 질병의 새로운 치료제 개발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를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는 노벨상 상금을 종잣돈으로 비영리 연구개발 조직인 소외질환의약품개발이니셔티브(DNDi)를 결성했다. 목표는 소외열대질환에 대한 치료제를 개발하고 기존 치료제를 개선하는 것, 개발한 치료제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DNDi는 상업적 이익을 배제하고 공공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비영리 모델을 채택했다. 그리고 현장의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에 주력하고 현지의 필요성을 기반으로 환자 중심의 연구를 주요 지침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 DNDi는 수면병, 리슈마니아증, 샤가스병, 말라리아, 소아 에이즈 등 다양한 소외 질환 치료제 개발에 성공했다. 58-9)


의약품 특허 문제의 본질은 인간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시장 논리와 사적 이윤 추구에 종속된다는 점에 있다. 제약 회사들은 신약 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므로 이를 회수하기 위해 특허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약 개발의 시작은 공공 연구 기관들의 기초연구다. 수십 년간의 공공 투자로 개발된 기술이 민간 기업의 특허권으로 독점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게다가 제약 회사들의 연구개발비는 항상 과대 계상되는 경향이 있다. 마케팅 비용이나 임원 보상이 연구개발비보다 더 큰 경우도 많다. 근본적으로 의약품을 하나의 ‘상품’으로만 보는 것 자체가 문제다. 공적 자금이 투입된 연구 성과는 공공재로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제약회사가 가격을 맘대로 정할 수 없도록 규제해야 한다. 약값이 인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특허권 행사를 제한하고 강제실시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의약품을 인류 공통의 자산으로 관리해야 한다. 62)


6. 특허와 자본: 신자유주의에 포섭되는 과학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힘과 가속도의 법칙은 과학 혁명의 완성이자 근대 물리학의 시작이지만, 그의 말처럼 혼자 이룬 것이 아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누가 먼저 발견했느냐를 두고 피 터지게 싸웠지만, 자신이 이룬 결과물을 이용해 다른 이가 실험하고 응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아니 관대했다기보다 너무 당연해서 시비 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그 당시 과학자들이 품이 넓고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당시 과학은 돈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과학 연구를 토대로 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이 기술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러나 18세기만 하더라도 과학과 기술, 과학과 공학은 완전히 남남이었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방적기와 방직기 기술, 증기기관의 개선 등은 당시 과학과는 상관없이 오직 기술자들이 맨땅에 헤딩하듯이 만들어 냈다. 64)


20세기 중반 이후 과학과 기술의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이것이 과학인지 기술인지 판단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자 특허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제조 공정이나 화학 공정 관련 기술, 기계장치 등이 주된 특허 대상이었지만, 20세기 중후반이 되자 유전자조작 기술, 회로 설계, 생물학적 처리 방법,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알고리즘 등 대상이 다양해졌다. 물질특허와 유전자특허, 그리고 천연물질특허로 특허 대상이 확대되었다. 현대 화학 산업에서 물질특허는 대단히 중요하다.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감광제, 디스플레이용 발광 물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많은 제품이 물질특허의 보호 대상이다. 제약 산업의 경우, 세팔로스포린 같은 항생제나 발사르탄 같은 혈압 약은 물질특허 덕분에 강력한 시장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제약 회사는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이라고 해서, 원래의 제품에 대한 사소한 변형을 특허로 등록해 특허를 연장하고 있다. 65-6)


어떤 표준을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특허를 표준필수특허라 한다. 표준필수특허는 기술의 공공재적 성격을 무시한다. 특히 통신이나 인터넷과 같은 기반 기술들은 현대 사회의 필수 인프라로,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고 표준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소수 대기업이 표준필수특허를 독점하면서 이러한 필수 기술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다음으로, 표준필수특허는 글로벌 불평등을 심화한다. 선진국 대기업이 대부분의 핵심 특허를 보유하고 있어서 개발도상국은 계속 높은 특허 사용료를 내야 한다. 이는 기술 종속을 심화하고 국가 간 경제적 격차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는다. 마지막으로, 표준필수특허는 공공성을 해친다. 표준필수특허 대부분에는 공공기관의 기여가 핵심적이다. 지금의 특허 제도는 발명가도, 소비자도 보호하지 못한 채 자본의 이윤 추구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이제 특허 문제는 기업을 넘어 과학과 기술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69-71)


3부 민중의 과학


7. 과학기술의 이데올로기: 과학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과학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근대 이래로 계속되었다. 이런 낙관적 전망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핵폭탄의 개발은 과학기술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을지를 보여 줬다. 이런 걱정 속에서도 과학기술을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믿음은 여전했다. 오히려 과학기술이 만든 문제를 또다시 과학기술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더 커졌다. 예를 들어 환경오염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자 많은 사람이 기술 발전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기술 중심의 접근은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기후 위기는 과도한 생산과 소비,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구조가 근본 원인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런 과학만능주의가 종종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이다. 기술적 해결책을 내세워 현재의 여론을 잠재우면서 실질적인 변화를 회피하는 것이다. 과학만능주의는 현재의 생산과 소비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준다. 76-8)


기술결정론은 기술의 발전이 사회 변화를 일방적으로 결정한다고 보는 이론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생산력이 높아지고 높아진 생산력은 생산양식을 바꾸는데, 이런 경제 영역의 변화가 사회구조를 바꾼다는 주장이다. 기술결정론이 특히 문제가 되는 분야는 노동이다. 산업혁명 시기를 보면 이런 측면이 잘 드러난다. 당시 방직공과 수공업자의 일자리는 기계의 도입으로 사라졌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물류 창고의 자동화를 두고 기업들은 ‘스마트 물류’나 ‘디지털 혁신’이라 부른다. 물류 자동화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늘어나는 물류량과 빨라지는 배송 속도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적 혁신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 과정을 더욱 강하게 통제하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수단이다. 그런데 이런 기술 도입 과정에서 효율성만을 강조할 뿐 노동자의 건강이나 작업장의 민주성 같은 가치는 고려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변화를 기술 발전의 필연적 결과인 것처럼 포장한다는 사실이다. 79-80)


8 과학과 커먼즈: ‘과학의 로빈 후드’ 혹은 ‘과학의 해적 여왕’


데이터는 다른 정보들처럼 일종의 권력이다. ‘정보 비대칭’은 기회의 비대칭으로 이어지고, 이는 권력이 된다. 정부와 대기업은 데이터 개방을 이야기하지만, 공개되는 데이터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기업들은 더 노골적이다. 이들은 해당 사이트에서만이 아니라 사용자의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을 추적하고 데이터화한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기업은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더 정교한 행동 조작과 이윤의 도구로 활용한다. 플랫폼 회사들이 제공하는 ‘약관’에 따르면, 이런 데이터를 기업들끼리 서로 유상으로 혹은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오픈 데이터 운동은 데이터 공개를 넘어 데이터를 통한 권력관계를 재구성하는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시민은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 권력기관이나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이는 디지털 시대, 민주주의의 재구성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89)


이제 오픈 데이터 운동은 데이터 최소화의 원칙, 동의와 통제권 중시, 차등적 접근, 알고리즘 투명성을 주요하게 강조한다. 첫째, ‘데이터 최소화’에 대해 살펴보자. 데이터 최소화가 필요한 이유는 데이터를 많이 모을수록 해킹이나 유출 시 피해가 커지기 때문이다. 둘째, ‘동의와 통제권’ 중시는 데이터를 모으는 쪽, 그러니까 주로 정부 기관이나 기업과 제공하는 쪽의 불평등한 관계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셋째, ‘차등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는 프라이버시와 공익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다. 모든 데이터를 완전히 공개하면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며, 완전히 막으면 공익적 활용이 불가능해진다. 이는 의료나 범죄 통계 등 민감한 개인 정보를 다룰 때 주요하게 나타난다. 넷째, ‘알고리즘 투명성’ 문제를 살펴보자. 알고리즘 투명성이란 알고리즘이 특정 집단을 차별하지 않는지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존의 채용 알고리즘이 여성을 차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네 가지 원칙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91-2)


9 민중의 과학: 무엇을, 왜,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적정기술’이란 말을 들으면 대개 손 펌프나 정수기, 태양광 조리기 같은 간단한 기계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적정기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값싼 기술’을 만드는 것이 주요 목적은 아니었다. 1973년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Ernst Friedrich “Fritz” Schumacher)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에서 ‘중간기술’ 개념을 제시했다. 당시 제3세계 국가들은 서구의 거대 기술을 도입하느라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도입된 기술은 현지의 필요와 조건에 맞지 않았고, 소수 엘리트만 이용할 수 있었다. 슈마허는 이런 상황에서 현지의 자원과 기술력으로 만들 수 있으면서 전통적인 방식보다 생산성이 높은 ‘중간’ 정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슈마허는 기술의 수준 문제만 얘기하지 않았다. 그는 거대 기술이 자본 집중과 중앙 집중을 낳으며 이는 결국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여겨, 지역 공동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기술을 제안했다. 103-4) 


빈곤이나 불평등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이제 일부 활동가들은 적정기술을 사회운동과 결합하고자 한다. 인도의 나브다냐(Navdanya) 운동은 유전자조작 종자에 맞서 토종 종자를 지키는 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농민들의 자립적 기술 개발을 돕는다. 결국 우리가 다시 해야 할 질문은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이다. 적정기술 운동이 처음 제기했던 문제의식, 즉 기술이 소수가 아닌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이는 값싼 기술을 보급하거나 첨단 장비를 갖춘 공간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기술의 생산과 활용 과정 전반에 대한 민주화가 필요하다. 기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그것을 어떻게 만들고 사용할 것인지를 함께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적정기술의 미래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얼마나 더 확장하고 심화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105-6)


10 소수자와 과학: 인공지능의 편향된 공부법


한국에서 전동휠체어가 급속히 확산한 결정적인 계기는 2003년 국민건강보험 급여 품목이 되면서부터다. 이에 더해 정부 지원 정책이 확대되면서 보급 속도가 빨라졌다. 휠체어가 계단을 이동할 수 있도록 기술 혁신이 이루어지면 어떨까? 실제로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 있다. 그러면 이동 문제가 해결될까? 이런 기술의 개발은 한편으로는 환영해야 한다. 계단을 오를 수 있는 전동휠체어가 삶의 질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기술로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은 사회적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기술의 도입보다 저상버스를 전면적으로 도입하고, 지하철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모든 건물에 경사로를 설치하고, 장애인 전용 콜택시를 늘리는 것이 장애인에게 훨씬 더 필요하다. 이것은 사회의 의무다. 사회가 해야 할 몫을 장애인 개인에게 맡기는 태도는 올바르지 않다. 기술 개발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기술 개발을 핑계로 지금 해야 할 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112-3)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기술 발전의 방향이다. 지금의 과학기술은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소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에너지 소비는 늘어난다. 인공지능 서버를 돌리는 데 드는 전력량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고, 메타버스나 가상현실 기술이 상용화되면 전력 소비는 폭증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기술 발전을 불가피한 것처럼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기술의 발전 방향이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기술 발전의 방향은 사회적 요구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배터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투자하는 것처럼, 사회가 요구한다면 기업들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다. 기후 위기 대응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재생에너지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너지 소비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결단의 문제다. 116)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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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불안할 땐 뇌과학 - 불안하고 걱정하고 예민한 나를 위한 최적의 뇌과학 처방전 ㅣ 쓸모 있는 뇌과학 4
캐서린 피트먼.엘리자베스 칼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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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 불안에는 두 개의 통로가 있다 5


뇌에는 사실상 별개의 두 통로가 불안을 생성한다. 한 통로는 뇌의 커다랗고 구불구불한 회색 부분인 대뇌피질(cerebral cortex)에서 시작되고, 일상생활 속의 여러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사고를 결정한다. 다른 통로는 편도체(amygdalas)를 통해 이동하는데, 편도체는 뇌 좌우에 하나씩 있는 두 개의 아몬드 형태 조직이다. 편도체(두 개이지만 보통 단수 취급)는 지구상에 척추동물이 생겨난 이래 사실상 변하지 않고 세세손손 전해진 아주 오래된 두뇌 조직으로, 척추동물의 투쟁 혹은 도주(fight-or-flight) 반응을 일으킨다. 피질에서 비롯되는 생각은 불안의 직접적인 원인일 수도 있고, 그래서 불안을 가중하거나 감소시키는 효과를 지닌다. 많은 경우, 우리의 생각을 바꾸면 불안을 일으키거나 조장하는 인지 작용을 사전에 막아낼 수 있다. 반면, 편도체는 전혀 다른 통로다. 인간은 편도체가 상황이나 대상에 불안을 부여하는 방식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는 마치 간이 소화를 돕는 걸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10-1)


제1부 | 불안을 느끼는 뇌에 대해 알아야 할 최소한의 지식


대다수 사람이 불안의 원인과 관련하여 떠올리는 것은 피질 통로(감각, 사고, 논리, 상상, 직감, 의식 기억 그리고 계획의 주된 통로)다. 불안 치료는 일반적으로 이 경로를 목표로 하는데, 아마도 이것이 더 의식적인 경로이기 때문에 이 경로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더 잘 인식하고, 기억하고 집중하는 것에 접근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편도체 통로에서 오는 불안은 대부분 신체에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편도체는 뇌의 다른 부분들과 무수히 관련되며, 이런 상호 관련성은 여러 신체 반응을 무척 빠르게 격발한다. 0.1초보다도 더 빠른 찰나에 편도체는 아드레날린 분비를 급증시키고, 혈압과 심박수를 증가시키거나 근육 긴장도를 높일 수 있다. 이 외에 더 많은 신체 반응이 생긴다. 편도체 통로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 개입하지 않으며 피질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가동된다. 당신이 지금 겪는 불안에 명백한 원인도, 논리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편도체 통로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보면 된다. 17-8)


인간의 피질은 크게는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뉜다. 시각, 청각 그리고 다른 감각 정보를 처리하고 세상의 사물들에 대한 인식과 감각을 종합하는, 각각 다른 기능을 지닌 엽(葉: lobe)이라는 여러 부분으로 나뉜다. 피질은 뇌에서 인지와 생각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불안의 피질 통로는 감각 기관에서 시작된다. 눈, 귀, 코, 미뢰 그리고 심지어 피부마저도 세상에 관한 정보를 전달한다. 세상에 관한 모든 지식은 감각기관을 통해 전달되고 피질의 여러 부위에 의해 해석된다. 감각기관을 통해 정보가 전달됐을 때 그 정보는 시상(視床)으로 가는데, 이곳은 뇌에서 가장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한 곳이다. 시상은 말하자면 ‘중앙 중계국’으로 눈, 귀, 코 등에서 온 각종 정보의 신호를 피질로 보낸다. 시상으로 정보가 들어온 다음에는 다양한 엽들로 보내져 처리되고 해석된다. 그다음에 정보는 전두엽을 포함하여 뇌의 다른 부분으로 이동한다. 전두엽은 정보를 취합하여 세상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두뇌의 핵심 부분이다. 20)


피질 통로는 불안의 주된 원천이다. 전두엽이 상황을 예측하고 해석하면서, 그 예측과 해석으로부터 종종 불안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예측’은 다른 피질 기반 작용인 ‘근심 걱정’을 만든다. 고도로 발전된 전두엽 때문에 인간은 미래에 벌어질 일을 예측하고 발생 가능한 결과를 예상한다. 반면 우리의 반려동물은 내일 문제 따위는 전혀 예측하지 않고 평화롭게 잠든다. 근심 걱정은 어떤 상황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예측하기에 생기는 결과물이다. 불안이 생기는 두 번째 통로는 편도체다. 우리는 피질이 발생시키는 각종 생각과 이미지 때문에 불안으로 이어지는 피질 통로에 더 친숙한 것 같지만, 그 배후에서 불안에 관련된 각종 신체 경험을 일으키는 부위는 바로 편도체다. 편도체는 자신의 전략적 위치와 두뇌의 여러 조직과 맺는 상호 연관성을 작동시켜, 호르몬 방출을 통제하고 불안의 신체 증상을 만들어내는 등 뇌의 여러 부분을 활성화한다. 이렇게 하여 편도체는 신체에 강력하고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21-3)


# 편도체는 시상에서 바로 정보를 얻는다. 실제로 편도체는 ‘피질보다 먼저’ 정보를 받는다. 대뇌피질이 위험을 감지하기도 전에, 편도체 외측핵은 당사자를 위험에서 보호하도록 반응하는 것이다.


편도체의 영향을 받는 두뇌 조직으로는 뇌간 각성 체계(brain stem arousal system), 시상하부(hypothalamus), 해마(hippocampus), 측좌핵(nucleus accumbens) 등이 있다. 이런 직접적인 연관성 덕분에 편도체는 즉시 운동 신경을 활성화시키고, 교감 신경계에 동력을 공급하고, 신경 전달 물질의 활동 수준을 높이고,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같은 호르몬을 혈류에 방출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런 활성화는 신체에 폭포처럼 변화를 일으킨다. 심박수가 늘고, 동공이 확장되며, 혈류는 소화관에서 사지로 흘러가고, 근육이 긴장하며, 신체에 동력이 공급되고 행동에 나설 준비를 갖춘다. 이런 생리적 변화에 대응하여 당사자 본인은 몸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복부와 창자에 고통을 느낀다. 이 모든 변화는 투쟁, 도주 혹은 얼어붙기 반응의 일부이다. 불안과 싸우려는 사람들은 책임 의식이 강한 편도체의 존재감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위험 상황을 맞닥뜨리면 뇌는 편도체에 ‘통제권’을 부여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41)


많은 사람이 공황, 걱정 그리고 특정 대상이나 상황 회피 같은 불안장애 증상이 있으면, 이성적 논의로 그런 불안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의를 지닌 가족과 친구, 때로는 불안과 싸우는 당사자조차 논리와 이성이 환자의 증세를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에서 누누이 말했듯 편도체는 논리적이지 않다. 많은 피질 기반 불안은 논리적인 주장에 반응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편도체 기반 불안에 관해서는 오직 한 가지 방법만 통하는데, 그건 바로 체험에 의한 학습이다. 편도체는 오로지 경험으로 학습한다. 이것은 몇 시간에 걸친 대화 요법이나 여러 권의 자기계발서를 독파해도 불안 해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런 요법이나 자기계발서는 편도체를 공격 목표로 삼지 않는다. 어떤 대상(예를 들어 쥐)이나 어떤 상황(시끄러운 군중)에 대한 본능적 반응을 바꾸길 바란다면, 먼저 편도체가 그와 ‘동일한’ 대상이나 상황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47)


피질은 두 가지 일반적인 방식으로 불안을 일으킨다. 첫째, 외부 사물의 광경이나 소리 같은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불안이 생긴다. 둘째, 피질은 어떤 구체적인 외부 감각의 개입 없이 불안을 발생시킨다. 단순한 생각을 절대적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현상을 인지 융합(cognitive fusion)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피질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며, 자기 생각과 감정이 의문의 여지가 없는 궁극적 진실로서 취급되어야 한다는 완고한 믿음을 낳기도 한다. 생각과 현실을 혼동하는 것은, 모든 생각, 정서 혹은 신체 감각의 진짜 의미를 자신이 온전히 파악하고 있다고 믿는 피질의 자신감 때문에 벌어지는데 이는 무척 빠져들기 쉬운 유혹이다. 실제로 피질은 놀라울 정도로 오해와 실수를 쉽게 저지른다. 잘못되고, 비현실적이거나 비논리적인 생각을 하거나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정서를 경험한다. 그런 생각과 정서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깊이 분석하지도 말며 그냥 머릿속에서 흘러가게 내버려두라. 49-50)


# 좌반구 기반 불안(생각에서 나오는 불안)과 우반부 기반 불안(상상과 이미지에서 나오는 불안)으로 나눌 수 있다.


피질은 그 자체로는 불안 반응을 일으킬 수 없다. 편도체와 뇌의 다른 부분이 협조해야 한다. 피질에서 비롯되는 생각, 이미지 혹은 예측이 무엇이든 간에 불안의 정서적・생리적 양상 다수는 피질이 편도체를 활성화할 때만 발생한다. 편도체는 피질에서 전달된 정보에 반응한다. 실제로 편도체는 어떤 실제 사건에 반응할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비록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우리의 상상에 반응할 수 있다. 잠재적 위험에 관한 생각이나 이미지에서 나오는 정보는, 실제 사건의 인식 및 해석과 관련된 정보가 이동하는 것과 똑같은 통로를 타고 이동한다. 앞에서 이미 논의했듯 편도체는 시상을 통해 감각 정보를 받고는 거의 실시간으로 그것을 처리한다. 이와 무관하게 피질이 정보를 처리하고 해석하느라 시간 지연이 된 후에도 편도체는 피질로부터 정보를 받는다. 신경과학자들은 편도체가 피질에서 받은 정보를 놓고 어떻게 그 타당성 여부를 구분하는지, 구체적 메커니즘은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54-5)


제2부 | 편도체 기반 불안의 통제


공황 상태에 빠졌을 때는 그 상황에서 곧바로 도망치려는 강력한 충동이 생길 텐데 이를 억누르는 게 중요하다. 극도로 두렵고 불쾌한 경험이겠지만 그것은 신체적으로 당신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사실 실제로 당신이 느끼는 감각은 건강하고 활동적인 신체가 보이는 징후일 뿐이다. 공황발작 상황에서 도망치면 단기적으로 기분은 좋아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공황발작의 위력이 강화되어 더욱 극복하기 어려워진다. 가능하다면 긴장을 풀고, 숨을 깊게 쉬고, 그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버티며 남아 있으려고 노력하라. 물론 이것은 말하기는 쉽고 행동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편도체는 오로지 경험으로만 학습하므로 편도체를 어느 정도 통제하려면 반드시 “편도체가 작동하는 상황 안에서”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공황발작 상황에 감연히 맞서지 않고 매번 그냥 도망쳐버린다면, 당신의 편도체는 그 상황이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걸 배우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피하는 법만 배울 것이다. 75)


# 피질을 도와 공황상태를 극복하는 방법

1. 그저 느낌이라는 점을 기억하자(비록 무척 강렬하겠지만). 그저 나 자신이 지금 공황발작을 겪는다고 인식하고, 편도체 기반 증상을 피질이 오해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공황발작으로부터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2. 공황발작을 피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는, 증상에 대한 걱정을 그만두는 것이다. 공황에 빠진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공황발작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혹은 발생 여부를 계속 예측해봐야 다른 발작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3. 주의 돌리기(기분 전환)는 공황발작에 대항하여 활용할 수 있는 또 다른 피질 기반 전략이다. 증상에 집중하며 깊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공황발작이 더욱 악화될 수 있기에, 공황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일부러 더 생각하려고 애써야 한다.

4.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의식하지 말라. 공황 증상을 느낀다면,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추측하려고 애쓰지 마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하는 건 이미 불편한 스트레스 반응을 겪는 데에 또 다른 스트레스를 추가하는 일일 뿐이다.


노출 치료는 편도체 언어로 말하며 편도체를 가르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다. 여기에는 체계적 둔감화와 자극 흠뻑 젖기 방법이 있다. 체계적 둔감화(systematic desensitization)는 이완 전략을 배우면서 두려운 대상이나 상황에 점진적인 방식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방법이다. 이에 반해 자극 흠뻑 젖기(flooding) 방법은 사람들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 곧바로 뛰어들게 하여 몇 시간 동안 불안에 노출한다. 이 방법은 과격하지만, 훨씬 더 빠르게 불안을 극복하게 해준다. 어떤 접근법이든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정신적으로 두려워하는 상황에 정면으로 부딪힌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런 상황을 반드시 직접 경험해야 하며, 보통 반복적으로 그렇게 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것은 아주 도전적인 치료 형태이지만, 조사연구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정확히 편도체 회로를 재설계하는 데 필요한 접근법이다. 노출을 더 실천할수록 편도체가 전에 두려움을 느꼈던 상황과 트리거에 차분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커진다. 102-3)


제3부 | 피질 기반 불안의 통제


인지 치료(cognitive therapy)로 널리 알려진 접근법의 기본 개념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가진 몇몇 인식은 비논리적이거나 유해하며, 행동이나 정신 상태에 유해 패턴을 발생시키거나 악화한다는 것이다. 인지 치료사들은 자기 패배적이거나 역기능적인 생각, 특히 불안이나 우울 수준을 높이는 생각을 찾고 변화시키는 데 집중한다. 이 접근법을 인지 재구성(cognitive restructuring)이라고 한다. 불안과 맞서 싸우려는 인지 재구성 방법은 피질 통로에 직접 개입한다. 공포와 불안을 일으키는 뇌 과정은 피질 개입 없이도 발생할 수 있고, 실제로 발생한다. 가령 편도체 통로를 통하여, 피질 과정이 완료되기 전에도 공포 반응이 일어난다. 따라서 이런 다른 통로를 통해 생기는 불안도 있으므로, 생각을 바꾼다고 언제나 불안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인정하자. 그러나 피질에서 생각이나 이미지가 불안 반응을 일으킬 때 그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면 어느 정도 불안을 완화하거나 막을 수 있다. 124)


인지 융합(cognitive fusion)은 무척 흔하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객관적 현실이라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고, 자신이 내린 추정과 해석에 별달리 의문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특히 고통스러운 상황과 관련하여 자신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가정이 틀릴지도 모른다고 인식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인지 융합은 불필요한 불안을 많이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떤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이 인지 융합과 결합될 때 불안이 폭발할 가능성은 더 커진다. 당신이 비관적인 생각을 품거나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면 반드시 그런 인지 융합 상태를 인지하고 거기에 저항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얻는 혜택이 크다. 예를 들어 당신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 장차 벌어질 일이 당신 생각처럼 풀려나가는 게 아님을 인식하라. 구체적 사건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거나 미미할 뿐인데도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곧 그 사건 자체로 받아들이는 사례를 찾아보라. 140-1)


문제는 생각과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심리적 경향이다. 심리학자 스티븐 헤이스는 “이 경험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어 그것과 싸우려고 하는 경향이 가장 해롭다”라고 주장했고, 그런 경향에 맞서는 해법으로 ‘인지 분리’(cognitive defusion)를 제안했다. 인지 분리는 무척 강력한 인지 재구성 기법이다. 이 방식은 당신의 생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막연한 ‘의식의 흐름’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다. 일찍이 토마스 아퀴나스는 머릿속에 멋대로 떠오르는 생각을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새들에 비유했다. 그 새들을 당신 마음대로 포획할 수 없는 것처럼 그 생각들 또한 당신이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그러니 제멋대로 떠오르는 생각을 날아가는 새 떼 정도로 여기면서 그냥 내버려두라. 그러나 그 새가 당신의 머리 위에다 배설물을 떨어뜨린다면 그때는 적극 대응에 나서야 한다. 다시 말해 그런 생각이 객관적 현실로 나타난다면 그때는 적극 대응하라는 것이다. 142)


인지 재구성 기법의 핵심은 이것이다. 먼저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 이어 그 생각을 객관적 증거로 반박하고, 더 적응력이 높은 새로운 생각, 즉 대안적인 생각(coping thoughts)으로 대체한다. 당신의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는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에 특히 주목하자. 신경 회로는 “가장 분주한 것이 생존한다”라는 원칙으로 운영・강화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따라서 특정 생각을 더 많이 할수록 더욱 강력하고 단단해진다.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과 이미지를 중단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새로운 대안 생각으로 그것을 대체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당신은 문자 그대로 뇌 회로를 바꿀 수 있다. 대안적 생각은 당신의 감정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생각이나 진술을 가리킨다. 대안 생각은 차분한 반응을 일으키고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게 한다. 당신은 불안 생각에 맞서서 대안 생각으로 그것을 대체해나가야 한다. 기억하라. 당신은 지금 엉터리 불안・걱정에 집중하는 신경 회로를 바꾸는 중이다. 143-4)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려고 애쓰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지 못해 괴롭다고 불평한다. 이것은 두뇌의 사고 작용에서 기인하는 흔한 문제다.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면 이 패턴에 익숙할 것이다. 어떤 생각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상기시켜 그 생각을 지우면, 그 생각을 저장하는 회로가 활성화되고 더 강해진다. 당신은 “멈춰!”라고 분명하게 말함으로써 생각을 중단시킬 수 있다. 이 기법은 생각 멈추기(thought stopping)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그다음 단계가 중요하다. 어떤 대안 생각으로 방금 전 생각을 대체할 수 있으면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 대신에 당신을 매혹하는 것으로 대체한다면, 첫 번째 생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따라서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에 맞서려면, “지우지 마라, 대체하라!”(Don’t erase. replace!)가 최고 접근법이다. ‘나는 이걸 감당할 수 없어’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면 ‘쉽지 않지만, 어떻게든 이겨낼 거야’ 같은 대안 생각으로 교체하는 데 집중하라. 144-5)


편도체 기반 반응이 일단 작동하면 피질은 그것을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마음챙김을 사용하여 편도체에 휩쓸리지 않고 관찰하면 편도체 반응을 통제할 필요가 없다. 불안 반응에 마음챙김으로 접근하면 피질은 상황 통제 목표를 포기하고 단순히 불안이 일어나는 것을 내버려둔다. 이처럼 불안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불안에 맞서는 궁극적인 해법이다. 불안의 위력은 대부분 불안을 멈추기 위해 벌이는 지속적인 투쟁에서 비롯된다. 불안은 그렇게 하여 당신의 삶에 엄청난 통제권을 행사하려 한다. 불안 경험을 마주할 때 그것이 그저 스스로 지나갈 것을 알고 그냥 받아들이면 실제로는 더 빠르게 지나간다. 불안에 대해 걱정하면서 어떻게든 없애려는 반응을 보이면 오히려 불안을 이어가게 하므로 그렇게 하지 말라. 불안으로 인한 불편함은 불안과 싸우며 그 불안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데서 비롯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불안 통제 시도를 포기하면 실제로 뇌를 더 잘 통제할 수 있다. 151)


나가는 글 | 불안 없는 삶, 가능하다


# 불안을 줄이기 위해 뇌를 재구성하는 방법

1. 교감 신경계 활성화를 억제하기 위해 이완, 수면, 운동을 활용하라.

2. 당신의 생각 중에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은 없는지 감시하라.

3.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을 대안 생각으로 교체하라.

4. 삶의 목적을 확인하고 무엇이 그런 목적을 방해하는지 파악하라.

5. 목표를 방해하는 공포와 불안 트리거를 알아내라.

6. 이런 트리거에 대한 편도체 반응을 수정하도록 노출 훈련을 설계하라.

7. 불안과 공포가 줄어드는 것을 감지할 때까지 노출 훈련을 실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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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 지식 (10만부 기념 개정판) - 챗GPT부터 유튜브 추천, 파파고 번역과 내비게이션까지 일상을 움직이는 인공지능 이해하기 ㅣ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박상길 / 비즈니스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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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인공지능 | 위대한 인공지능, 깨어나다


프로그래밍이란 규칙과 데이터를 입력해 정답을 출력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초기에는 인공지능 또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인공지능처럼 작동하기 위해서는 if-then 규칙이라 부르는 수많은 규칙을 사람이 일일이 입력해야 했죠. 기계는 이렇게 인간이 입력한 일만 했습니다. 사람이 모든 규칙을 일일이 입력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 기반은 제법 훌륭하게 작동했습니다. 이 때문에 기계번역을 비롯한 수많은 응용 프로그램도 초창기에는 대부분 규칙 기반으로 구현됐습니다. 그리고 곧 괜찮은 성과를 내리라는 장밋빛 희망으로 가득했죠. 그러나 규칙으로 인공지능을 만들어내겠다는 시도는 이내 한계에 부딪히고 맙니다. 이렇게 인공지능이 암흑기에 빠져든 데는 if-then 규칙의 한계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초기에는 이 방식이 얼핏 잘 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람이 일일이 규칙을 입력하는 방식은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이죠. 규칙에서 벗어나는 경우에는 제대로 된 추론도 하지 못했습니다. 18-9)


인공 신경망의 초기 모델은 퍼셉트론Perceptron입니다. 퍼셉트론은 1958년 당시 코넬 항공 연구소에 근무하던 프랭크 로젠블랫Frank Rosenblatt이 해군의 지원을 받아 고안해냈습니다. 인간 두뇌는 뉴런이 서로 연결된 상태로 전기신호를 내보내며 정보를 전달한다는 데 착안해, 그와 비슷한 형태로 인공 뉴런이 연결된 구조의 인공 신경망을 구현해낸 것입니다. 1980년대 들어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우리말로 ‘기계학습’이라고 부르는 알고리즘을 활용하면서 인공지능 분야는 다시 성과를 내기 시작합니다. 머신러닝이란 말 그대로 기계Machine가 스스로 학습하는Learning 방식입니다. 이제 더 이상 사람이 규칙을 입력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컴퓨터가 데이터에서 스스로 규칙을 찾아냅니다. 더구나 사람이 찾아내지 못하는 규칙도 컴퓨터가 학습을 거쳐 찾아낼 수 있게 되었죠. 변형에 따른 무수한 변칙까지도 데이터를 이용해 모두 찾아낼 수 있게 되면서 규칙에서 벗어난 결과도 추론할 수 있게 됐습니다. 17, 20)


딥러닝은 머신러닝의 일종으로, 머신러닝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딥러닝은 인간 두뇌의 작동 구조를 본떠 만든 인공 신경망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인간의 두뇌는 무수히 많은 뉴런으로 구성되어 있죠. 이를 물리적인 형태로 만들어낸다면 엄청나게 많은 다이얼이 달린 거대한 수학 구조물과 비슷합니다. 각각의 다이얼은 원하는 출력값이 되도록 가중치를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입력 데이터를 넣고 다이얼을 조절하면서 결과물을 확인한 후, 다시 조금씩 다이얼을 돌려 원하는 결과와 최대한 비슷하게 나오도록 조절하면 됩니다. 처음에는 다이얼 값을 무작위로 설정하지만 학습을 진행하면서 점점 모든 다이얼이 정답에 가까워지도록 바뀌어갑니다. 모든 데이터가 정답에 가장 가까운 상태를 찾아 더 이상 다이얼을 조절할 필요가 없다면 비로소 학습이 끝나죠. 데이터가 많을수록 훨씬 더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음은 물론, 다이얼이 많을수록 훨씬 더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모델이 되겠죠. 24-5)


제2장. 알파고 |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등장


1940년대 말,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던 스타니스와프 울람Stanisław Ulam, 1909~1984 박사는 ‘중성자 확산 같은 복잡한 계산 문제는 차라리 여러 번의 무작위 컴퓨터 실험으로 결과를 관찰하는 편이 훨씬 더 실용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의 특성상 이 방법에 적절한 암호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마침 울람 박사는 도박을 좋아하던 자신의 삼촌이 몬테카를로에서 도박을 하기 위해 친척들의 돈을 빌려갔다는 사실을 떠올려 ‘몬테카를로’라는 이름을 부여했던 것이죠.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을 도입한 이후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실력은 급상승해 6단의 수준까지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프로기사에게는 4점 이상 접히는 기력에 불과했습니다. 알파고는 여기에 딥러닝을 적용해 실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킵니다. 두 종류의 인공 신경망을 만들어내는데, 정책망Policy Network과 가치망Value Network이라는 이름의 신경망입니다. 43-4)


먼저 정책망을 살펴봅시다. 정책망은 사람이 만든 기보棋譜를 이용해 학습합니다. 정책망은 약 16만 회의 게임에서 총 3,000만 수를 가져와 학습했습니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 정책망 3가지를 만들었습니다. 첫째 망은 바로 앞서 살펴본 사람의 기보를 이용해 학습한 정책망(이하 기보학습 정책망)입니다. 둘째 망은 롤아웃 정책망입니다. 롤아웃 정책망은 기보학습 정책망과 비슷하지만 훨씬 작고 가벼운 망입니다. 훨씬 작게 만들었기 때문에 첫 번째 망보다 약 1,500배 정도 빨리 수를 둘 수 있습니다. 즉 첫째 망이 한 번 착점할 시간에 롤아웃 정책망은 1,500번을 착점할 수 있는 거죠. 당연히 성능은 떨어집니다. 첫째 망도 정확도가 57%로 높은 편이 아닌데, 롤아웃 정책망은 고작 24%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계산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탐색을 빠르게 진행할 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망은 바로 알파고의 핵심인 스스로 대국하며 강화학습을 수행한 정책망(이하 강화학습 정책망)입니다. 44-5)


또 다른 종류의 망은 바로 가치망입니다. 가치망은 현재 국면에서 승패 여부를 예측하는 망입니다. 확률로 표현해서 50%가 넘는다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국면이고, 50%가 넘지 않는다면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 국면이죠. 과연 알파고는 어떻게 족집게 도사처럼 바둑판을 딱 보고 누가 승리할지 알아낼 수 있었을까요? 알파고는 여러 정책망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았던 강화학습 정책망끼리의 대국을 활용했습니다. 서로 3,000만 번의 대국을 두게 하고, 각 경기에서 한 장면씩 3,000만 장면을 추출해 해당 국면 이후에 누가 이겼는지를 학습했습니다. 이처럼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지,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지를 확률로 표현한 것이 바로 가치망입니다. 알파고는 고수의 기보로 지도 학습을 진행한 다음, 어디에 돌을 내려놓을지 판단하는 정책망을 만듭니다. 그리고 정책망을 이용해 스스로 대국을 두어 강화학습을 진행한 다음, 승리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내는 가치망을 만들어냅니다. 46-7)


꼼꼼하게 탐색해나가는 알파고도 이세돌과의 네 번째 대국에서는 이세돌이 둔 ‘신의 한 수’인 78수를 막아내진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알파고는 왜 신의 한 수를 허용하고 말았을까요? 알파고의 작동 원리를 다시 한번 되새겨봅시다. 알파고의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은 유망한 수를 중심으로 꼼꼼하게 탐색해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확률이 높은 쪽을 향해 더 많이 더 깊게 탐색해나가고 가장 신뢰가 높은 지점에 착수를 하는 원리죠. 하지만 이세돌이 둔 신의 한 수 지점에 착수할 확률을 알파고는 1만 분의 1로 매우 낮게 예측했다고 합니다. 알파고는 설마 그 지점에 둘 줄은 몰랐기에, 충분히 탐색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 지점이 묘수인지 아닌지조차 알아내지 못하죠. 애초에 탐색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78수 다음에 대국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알파고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승률이 높은 지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엉뚱한 수, 이른바 떡수를 남발하면서 급격히 무너졌죠. 51-2) 


제3장. 자율주행 | 테슬라가 꿈꾸는 기계


최근의 자동차는 전자공학에 더 가깝습니다. 이른바 움직이는 컴퓨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자동차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의 자율주행차는 더 이상 물리적으로 제어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자율주행차는 소프트웨어의 힘에 의지해 움직입니다. 자율주행차는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라는 유명한 공식을 기반으로 운행을 해나갑니다. 베이즈 정리란 18세기 영국의 목사 토머스 베이즈Thomas Bayes, 1701~1761가 증명한, 확률에 관한 공식을 말합니다. 베이즈 정리는 사전 확률과 사후 확률의 관계를 나타내는 단순한 수학적 정리에 불과해 보입니다. 하지만 베이즈 정리는 수학 정리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수학적으로는 매우 간단한 형식에 불과하지만 철학적으로 본다면 놀라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죠. 베이즈 정리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흔듭니다. 확률이라는 것은 믿음에 불과(?)할 뿐이며, 세상에는 절대 원칙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무엇이든 조심스럽게 관찰하며 의심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61-2)


자율주행차는 항상 불안해합니다. 자율주행차가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신호들뿐이죠. 자율주행차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합리적으로 판단해 안전한 경로로 주행해야 합니다. 이때 자율주행차의 상황 판단은 수학 문제와 같이 단 하나의 규칙으로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주행 중 도로를 살펴보며 가야 할 구간과 가지 말아야 할 구간을 끊임없이 판단해야 합니다. 안전한 구간이라면 안전하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고, 위험 요소를 발견할 경우 위험하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식이죠. 가령 자동차가 위험하다고 확신하는 구간에서 특정 센서가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낼지라도 이미 상당히 위험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위험할 확률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안전하다는 신호가 계속해서 유입된다면 다시 위험 확률은 낮아집니다. 이처럼 자율주행차는 여러 가지 신호를 받아 믿음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운전해나갑니다. 64-5)


자율주행차는 GPS 외에도 각 센서의 약점을 보완해줄 다양한 센서를 병행해서 활용합니다. 먼저 레이더RAdio Detection And Ranging, Radar와 라이다LIght Detection And Ranging, LiDAR가 있습니다. 레이더가 전자파를 발사해 반사파를 측정한다면 라이다는 레이저 빛을 발사해 반사되어 돌아오는 것을 측정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빛Light과 레이더Radar의 합성어인 라이다LiDAR죠. 전자파를 이용하는 레이더는 장거리 측정이 가능하고, 물체 내부까지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날씨의 영향도 거의 받지 않죠. 하지만 물체의 거리나 방향, 모양이나 구조는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반면, 빛을 이용하는 라이다는 정확하게 물체를 인식하고 밀도 있게 표현해낼 수 있지만 거친 날씨에 영향을 받고, 장거리 측정은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라이다의 범위를 넘어서는 구간을 파악하는 방법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처럼 바라보면 되는 거였죠. 바로 카메라였습니다. 65-8)


# 점차 카메라가 레이더와 라이다의 기능까지 흡수해서 구현하고 있다.


제4장. 검색엔진 | 구글이 세상을 검색하는 법


초기 인터넷 광고는 신문 광고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신문 판매 부수에 따라 광고 단가를 매기는 것처럼 사이트에 배너를 노출하고 노출 횟수에 따라 가격을 책정했습니다. 광고에 대한 사용자의 피드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죠. 그러다 검색엔진이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본격적으로 검색광고를 도입합니다. 이제 항상 동일한 광고가 노출되는 게 아닌 쿼리에 적합한 광고를 매번 다르게 보여주는 타깃 마케팅을 진행하고, 사용자 피드백을 기반으로 광고료를 산정하는 CPC 방식Cost Per Click을 도입합니다. 예를 들어 대도시에 근무하는 30대 사무직 남성이 ‘셔츠’를 검색하면 ‘폴로’, ‘빈폴’ 같은 유명 브랜드를 노출하고, 나아가 온라인 구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여기에 더해 검색광고는 경매 방식으로 판매했습니다. 예를 들어 폴로의 광고주가 ‘셔츠’라는 쿼리에 대해 클릭당 1,000원을 제시하고 빈폴의 광고주는 클릭당 1,200원을 제시했다면, 고객들은 단가가 더 높은 빈폴의 광고를 먼저 접합니다. 84-5)


구글은 엄청난 수익뿐 아니라 엄청난 문서를 색인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검색엔진이 인터넷에 있는 문서를 수집하여 검색에 적합하도록 보관하고 있는 것을 색인Index이라고 합니다. 아마 2020년 이후에는 300조 개가 훨씬 넘는 문서를 색인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많은 문서를 대체 어디에 보관하고 있을까요? 구글은 엄청난 양의 문서를 고가의 컴퓨터 몇 대에 저장하는 게 아니라 일반 PC처럼 저렴한 컴퓨터 수백, 수천 대에 나눠서 저장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를 위해 구글 파일 시스템Google File System, GFS이라는 효율적인 분산 파일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덕분에 아무리 큰 파일도 여러 대의 서버에 나누어 저렴한 비용으로 저장할 수 있게 됐죠. 이 방식은 또한 초기 빅데이터 플랫폼의 원형이 되어 이후에 본격적인 빅데이터 플랫폼이 등장하고, 나아가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리는 계기가 됩니다. 사실상 지금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분야는 구글이 기반을 닦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85-6)


수학계에 에르되시 수Erdős Number라는 게 있습니다. 전 세계를 돌며 평생을 수학 연구에만 몰두해온 에르되시 팔Erdős Pál, 1913~1996은 평생 1,500여 편의 논문을 쓴 것으로도 유명한데, 논문 대부분을 다른 학자들과 공동으로 집필했습니다. ‘에르되시 수’란 에르되시와 몇 단계에 걸쳐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수입니다. 그와 직접 공동 논문을 쓴 학자는 모두 512명입니다. 이 512명이 에르되시 수 1이죠. 그리고 이 512명과 함께 공동 논문을 쓴 사람은 에르되시 수 2입니다. 1998년 스탠퍼드에서 박사 과정 중이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문서의 품질을 평가하는 획기적인 알고리즘을 고안합니다. 유명한 사이트가 많이 가리킬수록 문서의 점수가 올라가는 알고리즘으로, 좋은 논문은 인용 횟수가 많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죠. 여기에 에르되시 수가 낮을수록 권위가 높아진 것처럼 권위 있는 사이트에 가중치를 높였습니다. 이 알고리즘의 이름이 바로 페이지 랭크Page Rank입니다. 95-7)


제5장. 스마트 스피커 | 시리는 쓸모 있는 비서가 될 수 있을까


스피커는 스스로 말을 알아듣거나 말을 하지 못합니다. 이게 무슨 얘기일까요? 스피커 자체는 껍데기라는 말이죠. 실제로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과정은 음성을 녹음하여 서버로 보내 분석하는 과정이고, 사람에게 말을 하는 기능은 녹음된 음성을 서버에서 받아와 재생하는 것입니다. 스피커는 사실상 마이크가 달린 일종의 블루투스 스피커에 불과하죠. 그렇다면 음성을 어떻게 서버로 전송할까요? SKT의 NUGU라면 “아리야”, 카카오미니라면 “헤이 카카오”라고 부르면 스피커가 “네?”하고 반응하면서 깨어나죠. 이 과정을 웨이크업Wake-Up이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사용자가 질문하거나 요청하면 이를 녹음하여 서버로 전송합니다. 참, 스피커는 껍데기라고 했지만 딱 한 가지 특이한 기능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바로 “헤이 카카오” 같은 웨이크업 단어를 알아듣기 위한 음성인식 엔진이죠. 추가 기능 없이 딱 웨이크업 단어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매우 조그만 음성인식 엔진이 스피커에 내장되어 있습니다. 118)


100번의 발화 중 99번을 제대로 알아듣는다면 똑똑한 스피커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반대로 100번의 문장 중 99번만 정확하게 생성해낸다면 마찬가지로 똑똑한 스피커일까요? 만약 잘못 생성한 1번의 문장이 “인간은 모두 죽어야 해!”라는 문장이라면요? 이런 문제 때문에 ‘생성’ 영역에서는 아직까지 딥러닝의 활용이 조심스럽습니다. 물론 최근에 챗GPT는 이를 다른 방식으로 제어하고 있지만 챗GPT조차도 응답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게다가 스마트 스피커는 챗GPT와는 조금 다릅니다. 무엇보다 문제해결용 대화시스템Task-Oriented Dialogue System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목적이 분명한 대화만을 주로 한다는 얘기죠. 날씨를 묻거나 레스토랑을 예약하기 위한 대화는 목적이 뚜렷합니다. 따라서 스마트 스피커는 자유로운 대화보다는 목적에 맞는 대화에 방점을 맞추죠. 이 때문에 자유롭게 대화를 생성하지 않고 정해진 템플릿에 정보를 채워서 문장을 생성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합니다. 130-1)


제6장. 기계번역 | 외국어를 몰라도 파파고만 있다면


신경망 기반 기계번역 Neural Machine Translation은 문장 전체를 마치 하나의 단어처럼 통째로 번역해서 훨씬 더 자연스러운 번역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인공 신경망이라는 거대한 모델과 이를 견인할 수 있는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하면서 이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신경망이 문장을 통째로 번역하는 과정은 마치 오렌지 주스를 농축한 후 물을 섞어 희석하는 과정과 닮았습니다. 먼저, 문장을 통째로 압축해 숫자로 표현한 벡터(방향과 크기를 나타내는 값)를 만들어 냅니다. 오렌지 주스를 농축하는 과정이죠. 그리고 이 값을 번역할 언어로 옮긴 다음 풀어서 번역문을 만들어 냅니다. 각각의 숫자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번역문을 찾아내는 거죠. 물을 섞어 다시 주스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번역문을 만들어 내면 더 이상 규칙 기반처럼 단어와 단어 간의 관계, 순서, 구조 등을 파악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통계 기반처럼 단어나 구문을 확률로 번역해 조합하고 이 문장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145-6)


어텐션Attention은 더 중요한 단어를 강조하는 원리입니다. 기존에는 입력 문장의 길이에 상관없이 압축한 문장을 항상 일정한 길이의 벡터에 한 번만 담아냈습니다. 하지만 어텐션은 번역문의 단어를 생성할 때마다 출력 문장의 길이에 맞춰 압축 벡터를 생성합니다. 이렇게 하면 번역문이 길어질수록 벡터도 함께 길어지기 때문에 더 긴 문장을 번역하는 데도 문제가 없겠죠. 이전에는 어떤 분량이든 1줄로 요약했지만 어텐션은 5분을 발표할 때는 5줄, 10분을 발표할 때는 10줄로 요약합니다. 무엇보다 어텐션의 핵심은 중요한 단어에 별도로 가중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는 아무런 표시 없이 문장 전체를 통째로 압축했기 때문에 번역할 때 어떤 단어를 염두에 둬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번역의 질이 떨어졌죠. 하지만 어텐션은 압축할 때 매번 다르게 중요한 부분을 적재적소에 표시해둘 수 있습니다. 어텐션을 핵심 알고리즘으로 삼은 트랜스포머 모델은 사실상 모든 기계번역 모델을 대체했습니다. 148-50) 


제7장. 챗봇 | 챗GPT, 1분 안에 보고서 작성해 줘


17세기 이전까지 수학은 크게 기하학과 대수학으로 나뉘었습니다. 원의 넓이 같은 도형의 성질을 다루는 수학이 기하학Geometry이고, 2차 방정식 같이 문자와 수를 다루는 수학이 대수학Algebra이죠. 이전까지는 둘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천장에 붙어 있는 파리를 보고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렸죠. ‘어떻게 하면 파리가 천장의 어느 위치에 붙었는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데카르트는 좌표Coordinates라는 개념을 고안합니다. 이는 서로 다른 분야로 여겨지던 기하학과 대수학의 개념을 하나로 합쳐낸 혁신적인 발상이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좌표의 개념을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thode에 공개합니다. 좌표의 발명은 이후 수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죠. 우스갯소리이지만 인터넷 시대인 지금도 좌표라는 개념은 일상에서 유용하게 쓰입니다. “그 유튜브 동영상 좌표 좀 알려줘”와 같은 식으로 말이죠. 163-4)


미국의 수학자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 1916~2001은 MIT의 대학원생 시절 이진법을 이용해 모든 계산을 할 수 있는 디지털 논리회로의 개념을 고안합니다. 이 논문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석사 논문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이후 섀넌은 디지털의 아버지로 추앙받습니다. 그의 논문은 이후 정보 이론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켰고 마침내 세상은 정보통신의 시대로 접어듭니다. 섀넌 덕분에 컴퓨터는 0과 1, 단 2개의 숫자로 모든 계산을 해낼 수 있게 되었고, 정보의 개념을 수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우리는 이 단위를 비트Bit라고 부릅니다. 이제 정리해 봅시다. •데카르트의 좌표 덕분에 기하학을 방정식과 숫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섀넌의 디지털 논리회로와 정보 이론 덕분에 컴퓨터는 모든 정보와 숫자를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현대 수학에서는 좌표를 이용해 추상적인 기하학을 수로 표현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컴퓨터에 계산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죠. 165)


단어를 숫자로 표현한다는 것은 단어가 갖는 의미에서 각각의 특징을 추출해 수치화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단어의 의미가 비슷하다는 것을 숫자로 표현한 값이 얼마나 가까운지로 판별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처럼 숫자로 표현하는 것을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는 언어를 벡터로 표현한다고 말합니다. 벡터는 공학에서 방향과 크기를 나타내는 값인데 마치 기하학을 좌표로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처럼 단어의 의미를 벡터로 표현하면 단어가 유사한 정도를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낼 수 있으므로 유사도뿐 아니라 다양한 과제에 응용하기 편리합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이 숫자이기 때문에 계산이 쉽죠. 컴퓨터는 추상적인 무언가를 논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는 계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숫자를 계산하는 일은 컴퓨터가 가장 잘하는 일이죠. 그뿐 아니라 데이터가 많을수록 계산은 더욱 정교해집니다. 게다가 이 과정을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엄청난 이점이 생기겠죠.  165-6)


제8장. 내비게이션 | 티맵은 어떻게 가장 빠른 길을 알까


강남역의 교통 체증을 예측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조건에 따라 분기하는 모델인 의사결정나무Decision Tree를 만드는 겁니다. 우리가 어릴 때 하던 스무고개 놀이와 비슷합니다. 스무고개 놀이란 말 그대로 예 혹은 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을 스무 번 제시하여 정답을 알아맞히는 놀이입니다. 질문의 횟수는 적을수록 좋습니다. 그렇다면 가급적 정답을 빨리 맞힐 수 있는 질문을 제시해야겠죠. 의사결정나무를 구축할 때는 복잡도인 엔트로피Entropy를 낮추는 형태로 진행합니다. 복잡도는 다르게 표현하면 불확실성Uncertainty의 정도라 할 수 있는데요. 즉 엔트로피를 낮춰 덜 복잡하게 하고, 덜 불확실하게 하여 가급적 정답을 빨리 맞히는 것이 의사결정나무의 구축 원리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엄격한 의사결정나무 모델은 단 한 번의 오류에도 너무 취약합니다. 게다가 예상 밖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온갖 오류가 넘치는 현실의 데이터로는 정확도를 높이기 어렵습니다. 207-10)


버클리대학교의 통계학자 레오 브라이만Leo Breiman, 1928~2005은 2001년에 오류에 견고한 새로운 모델을 제안합니다. 데이터와 특징에 제한을 두고 샘플을 추출한 다음, 여러 개의 의사결정나무를 만들어 각각의 결과를 두고 투표해 최종 결과를 정하는 방식이죠.  이렇게 만들어낸 각각의 의사결정나무는 당연히 단일 의사결정나무에 비해 성능이 훨씬 더 떨어집니다. 데이터와 특징을 제한했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의사결정나무가 1개가 아니라 10개, 100개가 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합니다. 데이터의 오류 등으로 일부 의사결정나무가 잘못된 결과를 내리더라도 나머지 나무들이 올바른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오차에 매우 견고해집니다. 무엇보다 이 방식은 대중의 지혜를 발휘합니다. 이 모델의 이름은 랜덤 포레스트Random Forest입니다. 나무를 만들기 전에 데이터를 무작위로Random 추출하고, 나무가 여러 개 모여 숲Forest을 이룬다는 의미죠. 모델의 원리에 잘 어울리는 멋진 이름입니다. 210-1)


통계학에 잔차Residual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오차Error와 비슷한 개념인데, 잔차는 전체에 대한 오차가 아니라 샘플의 오차라는 차이점이 있죠. 오차보다는 훨씬 더 작은 개념으로, 잔차를 줄여나가면 모델을 훨씬 더 정교하게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통계학에서 여러 모델을 만드는 데 중요하게 쓰이죠. 잔차의 개념을 의사결정나무에도 동일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나무들은 이전과 달리 독립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이전의 나무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먼저 의사결정나무를 하나 만듭니다. 그리고 이 나무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실수를 바로 잡는 새로운 나무를 만듭니다. 이 과정을 오류를 최소화할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합니다. 잔차를 계속해서 줄여나가는 거죠. 잔차의 기울기Gradient를 줄여나간다고 하여 그레이디언트 부스팅Gradient Boosting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정형화된 데이터를 예측하는 일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머신러닝 모델이 딥러닝보다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212-3)


제9장. 추천 알고리즘 |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여기로 이끌다


데이터 과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전설처럼 회자되는 얘기가 있습니다. 1990년대 미국의 한 슈퍼마켓 체인에서 맥주와 기저귀 간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제품에 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알고 보니 수많은 남편들이 퇴근길에 아내의 심부름으로 마트에 들러 기저귀를 사면서 맥주도 함께 구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발견한 이후에는 기저귀 근처에 맥주를 진열하기 시작했고 매출을 더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고객의 구매 내역을 분석하는 방식을 장바구니 분석Market Basket Analysis이라고 합니다. 꽤 잘 어울리는 이름이죠. 상품 간의 연관성을 분석했다고 하여 연관성 분석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이라는 학문의 기반이 됩니다. 1993년 당시 IBM에 근무하던 라케시 아그라왈Rakesh Agrawal 박사의 논문은 본격적인 데이터 마이닝 학문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추천 시스템의 역사가 시작된 거죠. 223)


고객들은 무엇보다 새로운 영상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새로울수록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추천은 더 어려워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입니다. 추천 시스템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죠. 그래서 뜻밖의 발견Serendipity이 중요합니다. 멋진 영어 단어만큼이나 설레는 표현이기도 하죠. 여기에는 2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것이어야 하지만, 희한하게도 마음에 드는 것이어야 하죠. 다시 말해 나에게 편하고 익숙한 구역 바깥에 있어야 하지만 또 아예 엉뚱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참, 어렵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여기로 이끌었다”라고 자주 감탄하는 것은 그래도 이 2가지 조건을 잘 만족하고 있다는 거겠죠? 친구가 나에게 뜻밖의 영화를 소개해줬는데 너무 만족스러워 하루 종일 즐겁던 기억이 있지 않나요? 추천 시스템의 목표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뜻밖의 발견’으로 설렐 수 있게 앞으로도 추천 시스템은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을 꾸준히 만들 것입니다. 2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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