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충돌 - 미중 기술패권 전쟁과 7가지 게임체인저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박현 지음 / 서해문집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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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5G, 인공지능, 양자기술 같은) 첨단기술 경쟁에서 중국은 미국의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한 세기 만에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위협받게된 미국으로서는 어떻게든 중국이 타고 오르는 사다리를 넘어뜨려야 한다. 이 사다리 걷어차기의 관건이 바로 반도체다. 때마침 반도체산업의 생태계는 미국과 그 동맹·우방국(한국·대만·일본·네덜란드)들이 굳건히 장악하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는 미국이 반도체 기술을 틀어쥐면 중국의 추격을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다고 본다. 반도체가 미중 패권 경쟁에서 '초크 포인트Choke Point'(전략적 관문)로 불리는 이유다." "군사력 경쟁은 근본적으로 한 나라가 힘을 키우면 상대국의 안보 불안이 커지는 '제로섬 게임'이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를 '안보 딜레마'라고 부른다. 이와 달리 기술 경쟁은 대개 국가 간 물적·인적 교류를 촉진하며 양측이 모두 만족하는 '윈윈 게임'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런데 세계질서가 어지러워질 때는 기술도 제로섬 게임의 도구가 된다. 오늘날이 그렇다."(12-3)


1 긴 전쟁의 서막


"지난 1세기 동안 어느 나라도 경제 규모에서 미국의 60%를 넘어선 적이 없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맞수였던 일본과 독일은 두 나라의 경제력을 더해도 그에 미치지 못했고, 냉전 당시 소련도 그 한계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은 2014년 일찌감치 60%를 넘어섰고, 2020년에는 70%까지 넘었다. 이런 추세라면 2030년대 중반께 양국의 경제 규모가 엇비슷해질 전망이다. 물가 차이를 고려한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는 중국이 2017년에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 또한 냉전 시기 소련은 세계무역기구WTO 이전의 국제경제체제인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에 가입하지 않은 채 자본주의 진영과는 별개의 경제 생태계를 구성했다. 반면 중국은 WTO 회원국으로서 이미 세계 최대 무역국이자 수출국이다. 미국과 서방 세력이 냉전 당시 소련에 시도한 봉쇄 전략이 구조적으로 먹혀들 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미중 패권 경쟁의 승패는 양국 체제의 경쟁력과 지속 가능성, 특히 첨단기술을 둘러싼 경쟁에 달려 있다."(35)


2 세 개의 분수령


"반도체 산업에서 글로벌 공급망이 관건인 까닭은 무엇일까? 칩 하나를 설계해 완제품을 생산하기까지 국경을 수십 차례 넘어야 할 정도로 분업화가 매우 복잡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설계-제조-후공정(조립·테스트·패키징) 단계를 거치는데, 미국은 설계 부문만 주도하고, 생산과 후공정은 대만·한국·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에 의존한다. 인텔·퀄컴 등 세계적 반도체 설계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설계 역량은 단연 앞서지만, 생산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전 세계 반도체 생산 능력의 70% 이상은 동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2019년 기준으로 대만(20%)이 가장 앞서고, 이어 한국(19%), 일본(17%), 중국(16%) 순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있는 대만은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63%를 차지한다. 한국은 전체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18%에 그치지만, 메모리 반도체로 좁히면 44%를 차지한다. 대만·한국 기업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미국의 전략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59-60)


"미중 반도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동맹·우방국과의 협력 관계다. 미중 어느 나라도 글로벌 공급망 바깥에서는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 그래서 한국·대만·일본·네덜란드 등 글로벌 공급망의 길목에 있는 국가들에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낼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시장이다. 아무리 제품이 뛰어나도 시장을 잃으면 설 땅이 없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생산물량의 60%를 소비하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는 중국과 단절할 수 없으며, 그 틈을 타 중국은 자체 기술력을 축적할 수 있다. 중국 경제가 별 탈 없이 성장을 지속한다면 시간은 중국 편이다. 세 번째는 생산성과 혁신 역량이다. 두 나라 모두 약점을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국은 높은 인건비와 낮은 생산성으로 제조 경쟁력이 떨어진다." "반면 중국은 타개책을 내부에서 찾으려는 경향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자력갱생이라는 기치 아래 불가피한 흐름이지만 그 때문에 혁신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66-7)


"인공지능 경쟁의 성패는 연산능력과 방대한 데이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산능력의 발전은 처리 속도를 높이고, 데이터는 많으면 많을수록 정확도를 높인다. 연산능력이 인공지능의 엔진이라면 데이터는 연료에 비유할 수 있다. 미중의 경쟁도 이 두 가지를 빨리 확보하고 상대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은 2019년 중국 최대 슈퍼컴퓨터 제조사인 중커수광中科曙光, 대표적인 음성·안면인식 업체인 아이플라이텍(중국명은 커다쉰페이科大訊飛), 센스타임(상탕커지商湯科技) 등을 수출제한 명단에 올린 데 이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인 2021년 4월에도 슈퍼컴퓨터 기업 7곳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슈퍼컴퓨터는 대규모 데이터 처리에 필수다. 중국은 중국대로 강점인 데이터 통제에 나서고 있다. 2021년 9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데이터 보안법'은 플랫폼 기업을 통제하려는 목적과 함께 데이터를 둘러싼 미중 경쟁에 대응하겠다는 포석도 담긴 법안이다."(73-4)


"미중 경쟁에서 가장 위태로운 부분은 군사 영역이다. 두 나라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율무기체계 선점을 위해 사실상 인공지능 군비 경쟁에 들어간 상태다. 이는 20세기 초반 영국-독일의 군함 건조 경쟁, 냉전 시기 미국-소련의 핵무기 경쟁에 비견된다. 그나마 핵 냉전 시대엔 일단 한쪽에서 핵 공격을 시작하면 상대도 보복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두 나라 모두 괴멸적 타격을 입는 시나리오(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MAD)로 인한 억지력이 작동했다. 그런데 인공지능 무기는 공격원 추적의 난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개발 비용과 기술 습득의 용이성 등으로 인해 그런 억지력이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근본적으로 전투에서 삶과 죽음의 결정권을 기계에 맡길 수 있는가라는 윤리적 문제까지 제기되는 형편이다. 유엔이 2014년부터 관련 국제협약 체결을 논의중이지만, 강대국들은 이런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바야흐로 미중 간 '인공지능 냉전'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76-7)


"미중이 통신기술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것은 이 기술이 경제적 파급 효과뿐만 아니라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은 초기 음성통화 중심에서 3G부터 데이터통신으로 전환되었고, 이후 데이터 전송속도 경쟁을 통해 발전해왔다. 5G는 4G보다 전송속도가 20배나 빠를 뿐만 아니라, 사용자 그룹이 사람에서 서버-기계 간 통신으로 확장되었다. 자율주행·원격의료·사물인터넷·인공지능·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기반 기술이 되는 셈이다. 5G의 기술표준은 스마트폰의 통신 기준을 넘어 산업용 기계장치와 로봇들을 연결하기 위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 교환의 기준까지 결정하게 된다. 다시 말해, 5G의 기술표준을 장악한 국가와 기업이 4차 산업혁명의 기초 인프라를 통제할 수 있는 지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기술은 우주기술과 최첨단 군사 시스템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미중이 사활을 걸고 5G·6G 개발에 매진하는 이유다."(89-90)


3 지상·해저·우주에서의 네트워크 대전


"양자기술은 양자의 물리적 특성(중첩성, 복제 불가능성, 얽힘 등)을 이용해 기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는 '파괴적 혁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가운데 양자통신은 양자의 복제 불가능한 특성을 이용해 통신 내용을 암호화하는 것으로, 현존하는 어떤 기술로도 해킹할 수 없는 보안 체계로 알려져 있다. 양자통신에서 미국을 추월한 중국은 2016년 8월 세계 최초로 양자통신 위성 '모쯔墨子 호'를 발사해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바 있다." "전쟁과 평화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벌어지는 사이버 공격은 행위자 입장에선 선전포고 없이 상대국을 위협할 수 있는 매력적인 수단이다. 상대국 입장에선 사이버 공격이 물리적 폭력과 인명 살상으로 규정되는 무력 침공이나 테러 행위와 달라 강력하게 응징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사이버 공격 카드를 자주 만지작거린다면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물론 무력충돌의 가능성도 커진다. 현재 사이버 무기 개발 및 공격·응징과 관련한 국제 협약이나 규범은 전무하다."(111-3)


"미국에선 과거 정부와 군이 우주개발을 주도했으나, 2015년께부터 민간이 주도하는 이른바 '뉴 스페이스'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뉴 스페이스 시대에 급성장하는 영역이 바로 저궤도 소형 군집위성이다. 경제적 파급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기존의 통신위성이 정지궤도(고도 3만5786km)에서 서비스를 하는 것과 달리, 저궤도 운용은 지구와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아 데이터 전송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강점이 있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전 세계 약 40억 명이 모두 잠재적 고객이다." "미군은 이런 민간의 혁신을 적극 채용하고 있다. 미 공군은 2019년 말 지휘통제실의 첨단전투관리체계ABMS 1차 테스트에 스타링크 위성통신을 적용했다. 중무장 지상 공격기인 AC-130에 데이터를 전송하는 데 스타링크를 활용한 것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보듯이 초기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통신 인프라가 파손된다고 해도 미 공군 지휘통제 시스템에는 장애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117-9)


"미중은 글로벌 디지털 네트워크를 자국 중심으로 만들기 위한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이 네트워크를 가능케 하는 핵심 기반시설이 해저케이블과 데이터센터다. 여기에는 막대한 액수의 초기 투자액과 유지비용이 필요해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미중의 글로벌 디지털 네트워크 장악 경쟁은 세계패권 경쟁의 일환이다. 중국은 2013년부터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육로와 해로로 연결해 경제권을 형성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일대일로 연선국이 60여 나라에 이른다. 이 정책의 핵심축 가운데 하나가 '디지털 실크로드' 프로젝트로, 5G 통신망과 인공위성 기반의 위치 정보시스템(베이더우), 해저케이블, 데이터센터 등 디지털 기반시설을 패키지 형태로 제공한다. 두 나라가 지상(5G·데이터센터)과 해저(케이블), 그리고 우주(위치 정보)를 무대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특히 중국은 제3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매력 공세를 펴고 있다."(126-30)


4 중국의 히든카드


"희토류는 네오디뮴 등 17종의 원소를 지칭하는데 부존량이 매우 적어 희토류rare earth라는 이름이 붙었다. 희토류의 독특한 화학적·전기적·광학적 특성이 소재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희토류가 사용되는 분야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영구자석이다. 특히 네오디뮴을 활용한 영구자석은 컴퓨터 하드디스크 자기공명영상MRI 등 첨단제품뿐만 아니라 첨단무기 개발에도 필수적이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보고서에서 희토류의 군사 응용 분야로 미사일 유도, 항공기·미사일의 디스크 드라이브 모터, 레이저, 위성통신, 잠수함 음파 등을 제시했다. 이를 활용한 첨단무기로는 F-35 스텔스 전투기, 토마호크 미사일, 프레더터 등을 예시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미국 첨단무기의 공급이 본질적으로 중국의 지속적인 희토류 생산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치명적인 리스크이며, 미중 간 패권 전쟁 발발 시 결과를 가를 키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라고 밝혔다."(137-8)


"오바마 미국 행정부 말기인 2016년, 미중 기업 간에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코발트 광산을 사고파는 거래가 있었다. 당시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불과 몇년 지나지 않아 미국이 땅을 치며 후회한 거래였다. 당시 미국 광산기업 프리포트 맥모란은 콩고에 소유하고 있던 2개의 대규모 코발트 광산을 중국 기업 뤄양롼찬무예China Molybdenum에 매각했다. 이 중국 회사는 지방정부가 지분 25%를 소유해 중국 당국과도 관련이 있는 곳이다. 콩고는 세계 코발트 매장량의 70% 이상을 보유한 나라로, 중국은 이 거래로 세계 코발트 시장을 사실상 지배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내연기관차의 경쟁력이 엔진에 달려 있다면 전기차의 핵심은 배터리다. 전기차 생산원가의 40%를 차지할뿐더러 주행거리까지 좌우하기 때문이다.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에는 중국이 공급을 장악한 코발트가 필수다. 요컨대 중국은 '소재-배터리-전기차'라는 생태계를 완벽히 구현하며 전기차 사대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152-4)


5 프랭클린과 마오의 금융패권 전쟁


"미국 달러는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으로 기축통화 지위에 오른 이래 오늘날까지 무역·금융 등 국제 지불결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빌기에에 본부를 둔 국제결제시스템 스위프트SWIFT와 미국 내 은행 간 결제시스템인 칩스CHIPS를 활용한다." "미국의 제재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제재 대상에 오를 경우 미국 금융시장은 물론 국제결제시스템에 접근이 거부되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정상적인 국제 거래를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전 세계 은행들의 달러 결제는 반드시 미국 은행을 통해야만 가능하다. 한국의 국민은행 명동지점이 우리은행 명동지점과 달러 거래를 하려고 해도 미국 은행을 거쳐야 한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기업과 금융기관이 혹시라도 미국의 제재망에 걸릴까 우려해 거액의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자금세탁방지 등 내부통제에 신경 쓰는 이유다."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미국에 위협이 되는 국가·기관·개인과의 금융거래를 통제하는 기능을 담당한다."(167-8)


"이런 제재가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상당한 고통을 안기겠지만 미국이 만족할 만한 결과로 이어지긴 힘들 것이다. 미국이 그동안 북한·리비아·시리아·이라크·이란 등 다른 나라들에 시행한 경험을 보면 긍정적인 답변을 얻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제재는 한번 시작하면 뒤로 물리기 어렵다. 제재 대상국이 행동을 바꾸지 않았는데도, 제재를 해제하면 유약한 이미지가 생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제재 회피를 위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금융 분야에서 위안화의 국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2010년께부터 위안화 국제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은 국제결제이 2.4%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금융 디지털화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각국 중앙은행이 디지털통화 발행을 준비하는 흐름은 새로운 변수다. 특히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는 달러 패권 체제를 뒤흔들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169-71)


"반면에 디지털화폐와 관련한 미국의 움직임은 매우 느린 편이다. 반대파는 지금도 달러 거래가 매우 디지털화되어 있고, 금융포용은 다른 수단으로도 가능하며, 중앙은행이 개개인들의 거래 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점 등을 거론한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에서는 금융위기 발생 시 개인들이 은행 예금이나 펀드에서 돈을 인출해 초안전자산인 디지털 달러로 바꿀 유인이 생기는 등 금융 시스템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보고서도 내놓은 바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디지털 달러화 발행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2021년 여러 차례 공개석상에서 국제 지급결제 시장에서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언급하면서 〈빨리 도입하는 것보다 제대로 도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각국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하더라도 국경 간 자금 거래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간소화되더라도 여전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177-8)


6 첨단 무기 전쟁


"국제정치학자 김상배 교수는 《4차 산업혁명과 신흥 군사안보》에서 〈인공지능·빅데이터·로봇 등의 기술혁신은 지정학적 경계를 넘어서 민간부문에서 이루어지고, 나중에 군사부문에 적용되는 '스핀온spin-on'의 양상을 보인다. 이는 20세기 후반 냉전기에 주요 기술혁신이 주로 군사적 목적에서 진행되어 민간부문으로 확산되었던 '스핀오프spin-off' 모델과 차이가 있다〉라고 진단했다." "미국은 2014년에 이미 '제3차 상쇄 전략'을 내놨다. 이 전략은 새로운 기술적 우위를 통해 경쟁국의 수적 우위를 상쇄시킨다는 개념으로, 냉전 때 두 차례 시행된 이 전략을 다시 꺼내들 만큼 상황이 엄중하다는 의미다. 1차는 1950년대 동유럽에 배치된 옛 소련의 재래식 군사력의 수적 우위를 상쇄하기 위해 시행한 핵무기 개발을, 2차는 소련의 핵·미사일 역량을 상쇄하기 위해 스텔스·위치 정보시스템 등을 개발한 것을 일컫는다. 3차에서는 인공지능·바이오·레이저·극초음속 등이 '게임체인저' 기술로 꼽힌다."(186-9)


"군산복합체는 군과 방산업체가 중심이며, 보수적 싱크탱크·언론이 이들의 논리를 전파하는 구조로 움직인다. 워싱턴 정치의 핵심으로 선거자금에 목말라하는 의원들에게는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제공한다. 의회에는 '미사일방어 코커스'라는 의원 모임까지 구성되어 있다."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이런 현상을 두고 '군산복합체'를 넘어 '군·산·의회 복합체'라며 개탄한 바 있다." "포스톨 교수는 워싱턴의 이런 구조가 국제관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꼬집었다. 미사일방어는 미중, 미러 간 핵억지력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핵억지력은 한쪽의 핵 공격 시 다른 한쪽이 남은 핵전력으로 상대를 보복해 둘 다 괴멸적 타격을 입기 때문에 어느 쪽도 선제공격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그런데 어느 한쪽이 미사일방어망을 갖춰 핵미사일을 성공적으로 타격할 수 있다면 이런 '공포의 균현'은 무너지고, 선제공격의 가능성은 커진다. 이로 인해 군비 경쟁이 가속화되는 것이다."(196-8)


"포스톨 교수의 말은 마치 예언처럼 지금 동아시아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중국은 2021년 여름 두 차례에 걸쳐 극초음속 궤도 미사일 시험을 진행했다. 이 미사일은 지구 궤도를 돌다가 대기권으로 재진입한 뒤 음속의 5배 이상으로 활강해 목표물을 타격한다. 이른바 '부분궤도폭격체계FOBS' 기술이 적용된 극초음속 미사일은 미국의 조기경보 레이더의 눈을 피해 MD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방장관 자문관을 지낸 밴 잭슨 교수는 〈첨단 미사일 기술이 아시아 우방국과 경쟁국들 사이에 확산하고, 핵 강국들은 광범위한 핵무기 현대화 노력을 진행 중〉이라며 〈미국이 이런 우려스러운 흐름의 원인은 아니지만 미국의 과도한 군사적 접근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핵추진 잠수함 기술의 오스트레일리아 이전, 일본의 장거리 순항미사일 연장 검토,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 해제 등의 조처를 중국을 불안하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199-201)


7 디커플링─21세기의 냉전


"경제·기술 경쟁 분야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른바 '디커플링' 가능성이다. 디커플링은 미국과 중국 간 경제·기술 생태계가 의도적으로 분리되는 상황을 말한다. 관건은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처럼 완전한 디커플링이 가능할 것인지다. 현재로선 두 강대국의 경제·기술 생태계가 완전히 분리되는 상황은 가능하지 않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다." "실제로,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2021년 3535억 달러로, 대중국 관세 부과 직전인 2017년(3752억 달러 적자)에 다시 근접하고 있다. 미국 투자자들은 중국의 주식·채권을 2020년 말 기준으로 약 1조2000억 달러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2017년 7650억 달러에서 57.5%나 급증한 것이다. 중국의 미국 주식·채권 보유액은 2020년 말 기준으로 2조1000억 달러다. 이런 상황은 두 강대국이 상호 간에 격렬하게 제재와 반-제재 조처를 취했음에도, 민간 기업과 투자자들의 경제교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준에까지 와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209-11)


"'중국판 우버'라 불리는 디디추싱DiDi은 2021년 6월 30일 중국 규제당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호기롭게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기업공개로 조달한 금액이 무려 44억 달러(약 5조 원)에 이른다. 2014년 뉴욕 증시에 입성한 알리바바(공모금액 250억 달러) 이후 최대 규모다. 그런 디디추싱이 반년도 되지 않은 2021년 12월 3일 뉴욕 증시에서 상장 폐지를 결정해 또 한번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전에도 차이나텔레콤 등 일부 중국 기업의 상장 폐지가 있었지만 대부분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 리스크나 인권침해 연루를 이유로 제재 대상 기업으로 지목한 영향이 컸다. 그러나 디디추싱은 사정이 다르다. 무엇보다 자국 정보인 중국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이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2021년 6월 중국 내 데이터의 국외 이전을 제한하는 내용의 데이터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중국 인터넷 기업이 수집·저장하고 있는 데이터가 잠재적으로 국가안보 리스크와 직결된다는 게 이유였다."(215-6)


"미국 정부도 뉴욕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에 대한 압박에 가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2020년 12월 18일 '외국회사문책법안HFCAA'에 서명을 했다. 이 법은 미국에 상장된 외국 기업은 외국 정부 소유가 아니고 외국 정부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강제한다. 특히 외국 회계법인이 상장사 회계감사를 하면서 취득한 회계 관련 증거자료에 대해 미국 규제당국이 3년 연속 검사를 하지 못할 경우 증권 거래를 금지한다. 이미 미중은 거의 10년간 이 회계 검사권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는데 협상에 진척이 없었다. 중국은 이런 '무제한' 자료 접근권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것이라며 반발해왔다. 데이터를 많이 보유한 인터넷 기업의 경우, 회계 증거자료에는 고객 정보뿐만 아니라 회사와 정부기관 간에 오간 이메일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중 양국이 모두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가 이어진다면 중국 IT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을 통한 윈윈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217-21)


에필로그


"미중 패권 경쟁은 둘 사이에 낀 나라들이 받을 타격이 더 크다. 전쟁 같은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배제하고 경제적 측면만 따져봐도 그렇다. 두 강대국이 보호주의로 돌아설 경우 우리처럼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은 후폭풍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은 미중 간 또는 OECD-중국 간 디커플링이 이뤄져도 두 블록과 모두 교역이 허용될 경우에는 국내총생산이 소폭 증가했다. 한국이 중국을 대체하는 어부지리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블록 내에서만 교역이 허용될 경우에는 한국이 입을 타격은 치명적이다. 미중 간 디커플링 때는 GDP 감소율이 6%로 조사 대상국 중 피해가 가장 컸다. OECD-중국 간 디커플링 때도 감소율이 5%에 달했다. 일본은 두 시나리오 모두에서 한국의 절반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는 미중 디커플링 때에는 -1%였지만, OECD-중국 디커플링 때는 0%였다. 이런 예측은 미중 패권 다툼을 대하는 안목과 태도에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준다."(230-1)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수석과 정책실장을 지낸 이호승 전 실장의 말이다. 〈이걸 선택의 문제로 국한해서 보면 국익에 부합을 안하는 거고, 너무 성급해요. 물론 어쩔 수 없이 나중에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두 나라가 다투다가 이를테면 극단적으로는 대만을 둘러싸고 전쟁을 한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어느 편이냐고 묻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성급하게 어느 편에 빨리 서야 한다, 어느 편은 배제해야 한다는 태도는 단견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잠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준은 우리가 선진국으로서 민주주의·환경·공정한 경쟁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 분명하게 지지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개방형 통상국가로서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원칙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은 누구도 거부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원칙 속에서 누구를 배제하거나 누구하고만 관계를 맺거나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232-3)


"미중 경쟁은 우리에게는 기술력과 산업경쟁력을 유지·확대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미국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원천 기술에 접근할 수 있지만, 중국은 미국의 제재로 기술 접근에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반도체·배터리 같은 분야는 세계시장에서 더 확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중국에 뒤처져 있는 인공지능·클라우드·빅데이터·항공우주·양자기술 등에서도 추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요컨대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는 한편으로,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벌리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행운의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늘날의 미중 관계는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위태롭다. 기술의 진보 단계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점, 그리고 대결의 주무대가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바뀐 점 등만 빼면 미중 대결은 영독 대결의 판박이다. 한국 등 주변국들이 진영 대결이나 각자도생에만 매몰된다면 비극의 역사는 다시 반복될 것이다."(2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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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기묘한 양자 - 과학이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장 기묘한 6가지 이야기
존 그리빈 지음, 강형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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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 양자 해석의 필요성


미스터리 1. 파동인가, 입자인가


"1974년에 세 명의 이탈리아 물리학자인 피에르 조르조 메를리, 지안 프랑코 미시롤리, 줄리오 포치는 전자들에 대해서 두 개의 구멍 실험─파인만의 이중 슬릿 실험으로 빛의 파동 성질을 증명함─과 동일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기법을 발전시켰다." "이 '단일 전자 이중슬릿 회절' 실험에서 전자들은 상당히 여유 있는 간격으로 발사되었다. 전자 발사 장치와 탐지 스크린 사이의 거리는 10미터였고, 각각의 전자는 앞서 출발한 전자가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에야 비로소 출발했다. 실험을 통해 순차적으로 수천 개의 전자들이 발사되었을때 이들은 탐지 스크린 위에 간섭무늬를 만들었다. 개별 입자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시간과 공간 모두에 걸쳐 일어난 것이다." "빛의 이중 슬릿 실험과 동일한 실험에서 전자들은 한 번에 하나씩 발사하면 각각의 전자는 탐지 스크린 위에 하나의 빛 방울을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방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치 자신들이 파동인 것처럼 간섭무늬를 형성한 것이다."(22-5)


미스터리 2. 유령과 같은 원격 작용


"아인슈타인은 양자이론의 방정식들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 두 전자에 대해서 매우 놀라운 사실을 예측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정한 상황에서는 보존 법칙이 적용되는데, 이 법칙에 따르면 전자들은 반대의 스핀, 즉 하나는 위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아래 방향인 스핀을 가져서 결과적으로는 두 스핀이 서로 상쇄되어야 한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방정식에 따르면 방출원에서 방출되었을 때 전자들은 명확한 스핀을 갖지 않는다. 전자 각각은 위 방향과 아래 방향 상태가 섞여 있는 중첩superposition이라고 불리는 상태로 존재하며, 다른 무언가와 상호작용할 때 비로소 확률의 규칙에 따라서 어떤 스핀을 가질지 '결정'할 뿐이다. 만약 전자들이 서로 다른 스핀을 가져야 한다면, 전자 A가 위 방향 스핀을 갖도록 '결정'하는 순간 전자 B의 스핀은 아래 방향이 돼야 한다. 이는 두 전자가 얼마나 떨어져 있든지상관이 없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유령과 같은 원격 작용spooky action at a distance'이라 불렀다."(37-8)


해석 1. 코펜하겐 해석─우리가 바라보지 않으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전자를 하나의 작은 당구공이라고 생각하고 진행하는 실험은 전자의 운동량을 측정하고 전자가 입자라는 우리의 개념을 입증한다. 또한 우리가 전자를 파동이라고 생각하고 진행하는 실험은 파장의 값을 측정하며 전자가 파동이라는 개념을 입증한다. 그게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하고 닐스 보어는 말한다. 그저 당신이 입자를 찾을 때 전자가 마치 입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당신이 파동을 찾을 때 전자가 마치 파동인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전자가 입자 또는 파동이거나 입자이자 파동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당신은 그저 당신이 보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고, 당신이 보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볼지에 대해 내린 선택에 의존한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전자와 원자 같은 양자적 개체들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는 이 개체들이 그 누구도 이들을 측정하지 않을 때─혹은 누구도 이들을 바라보지 않을 때─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58-9)


"상자 안에 갇힌 하나의 전자를 생각해보자. 확률 파동은 상자 안을 고르게 채우도록 퍼져 있고, 이는 상자 안의 임의의 위치에서 전자를 찾을 확률이 동일함을 의미한다. 이제 상자 중간에 칸막이를 세워보자. 우리의 상식에 따르면 전자는 상자의 두 부분 중 한 부분에 갇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코펜하겐 해석은 여전히 확률 파동이 각각의 절반 모두를 채우고 있으므로 분할된 부분 중 하나에서 발견될 확률이 동일하다고 말한다. 이제 상자를 아예 두 부분으로 분리시켜보자. 반쪽 상자는 당신의 실험실에 그대로 두고, 나머지 반쪽 상자는 화성으로 가는 로켓에 실어 보내자. 보어에 따르면 전자가 연구실에 있는 상자나 화성에 있는 상자에서 발견될 확률은 50 대 50 이다." "코펜하겐 해석은 실험실에서 상자 안의 내용물을 검토하는 경우에만 파동함수의 붕괴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EPR '역설'과 슈뢰딩거의 유명한 죽어 있으면서 살아 있는 고양이에 관한 퍼즐의 근저에 있는 핵심 개념이다."(60-3)


"내가 학생 시절 배웠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위한 대표적' 방법으로 여겨지는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실험의 한쪽에서 전자는 하나의 입자로서 전자총이라는 원천으로부터 방출된다. 그 직후 전자는 실험 전체에 퍼져 있는 '확률 파동'으로 변해서 실험의 다른 한쪽에 있는 탐지 스크린을 향해 나아간다. 이 파동은 얼마나 많은 구멍들이 열려 있든 관계없이 구멍들을 통과해 나가면서 적절한 방식으로 그 자신과 간섭하거나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탐지 스크린에는 확률의 패턴으로서 도달한다. 어떤 곳은 다른 곳보다 확률이 높고 다른 곳은 더 낮게 스크린 전체에 퍼진다. 탐지 스크린에 도달하는 순간 파동은 '붕괴하여' 입자로 다시 돌아오며, 탐지 스크린 위에서 입자의 위치는 무작위적이기는 하지만 확률의 규칙을 따른다. 이것은 '파동함수의 붕괴'라고 불린다. 전자는 파동과 같이 움직이지만 입자와 같이 도착한다."(63-5)


해석 2. 파일럿 파동 해석─세계는 우리가 바라보기 전까지 숨어 있다


"드 브로이의 '파일럿 파동pilot wave' 해석은 파동-입자 이중성을 설명하는 가장 자연스럽고 명백한 방식이다. 그는 (전자와 같은 개체가 파동이자 입자라고 말하는 대신) 파동과 입자 모두가 실재하며, 파동이(이후 '파일럿 파동'으로 알려진다) 입자를 그 목적지까지 안내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바다에서 서퍼가 파도를 타는 것과도 같다. 두 개의 구멍 실험에서 파일럿 파동은 두 개의 구멍을 통과하여 퍼진 후 그 자신과 간섭하여 간섭 파동의 무늬를 만든다. 실험에서 발사되는 입자들은 처음에 출발할 때 속력과 방향이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이들은 결국 약간씩 다른 방향으로 서핑을 타며, 탐지 스크린에 간섭무늬를 만드는 파동들을 따라간다. 우리는 입자들의 속성은 측정하지만 결코 파동의 속성은 측정할 수 없다. 입자들의 행동으로부터 파동의 존재를 추론할 뿐이며, 입자들은 탐지되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숨겨져 있다. 이러한 종류의 접근법은 '숨은 변수 이론'으로서 알려지게 되었다."(75-6)


"잘 섞인 카드 한 벌이 유용한 비유를 제공한다. 그와 같은 카드 한 벌이 양자물리학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작다고 상상하자. 당신은 초현미경과 같은 장치를 가지고 카드를 한 번에 한 장씩 들춰볼 수 있다. 숨은 변수 이론에 따르면, 당신이 가장 위에 있는 카드를 뒤집을 때 당신이 보는 값은 그 카드 한 벌에 허용되는 52개의 가능성 중에서 무작위로 선택된다. 붉은색의 카드를 볼 확률은 50 대 50이고, 클로버 5 카드를 볼 확률은 1 대 52 등등이다. 카드의 값은 당신이 보기 전까지는 숨겨져 있다. 그러나 그 카드는 당신이 보지 않을 때도 항상 그 값을 갖고 있었다(그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실제로는 변수가 아니다!). 첫 번째 카드를 본 다음에는─그 카드가 정말 클로버 5였다고 하자─클로버 5를 발견할 확률은 이제 0이며, 붉은색 카드를 찾을 확률은 49 대 51 등등이 된다. 이를 당신이 보기 전까지는 카드가 어떤 값을 갖지 않는다고 말하는 코펜하겐 해석과 대조해보라."(76-7)


"데이비드 린들리는 그린에서 퍼팅을 연습하는 골프 선수의 비유를 제시한다. 골프 선수는 매번 동일한 홀을 향해 골프공을 치지만, 각각의 공은 골프 선수의 퍼팅 기술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사소한 변수들로 인해 약간씩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린의 표면 역시 완벽하게 매끄럽지는 않다. 따라서 각각의 공은 약간씩 다른 방향을 따라 약간씩 다른 거리를 간다. 이때 공이 그려낸 패턴은 골프공들이 지나간 표면의 불규칙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표면의 정확한 형태를 알고 공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의 속력과 방향을 정확하게 안다면, 원리상 각각의 공이 도달하는 최종적인 위치는 결정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파일럿 파동 해석은 결정론적이며, 파동함수의 붕괴와 결부되는 우연의 요소를 제거할 뿐만 아니라 파동함수의 붕괴 그 자체를 없앤다. 모든 입자는 항상 명확한 속성을 갖고 있다. 잘 섞인 카드 한 벌 속의 카드들처럼, 우리가 보기 전까지 그 속성이 무엇인지 모를 뿐이다."(77-8)


해석 3. 다세계 해석─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평행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난다


"슈뢰딩거의 지적처럼, 방정식들에는 (그의 유명한 파동방정식을 포함해서) 붕괴에 관한 내용이 아무것도 없다. 붕괴는 바로 보어가 왜 우리는 실험 결과로서 오직 하나의 결과만을─죽어 있는 고양이 또는 살아 있는 고양이만을─보고 혼합물 즉 상태들의 중첩은 보지 못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론에 덧붙여놓은 어떤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오직 하나의 결과─파동함수에 대한 하나의 해─만을 탐지한다고 해서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대안적 해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슈뢰딩거의 용어들을 정리해보면, 두 개의 평행한 우주 또는 세계가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의 우주에서는 고양이가 살아 있고 다른 우주에서는 고양이가 죽어 있다. 하나의 우주에서 상자를 열 때 죽은 고양이가 발견된다. 다른 우주에서는 살아 있는 고양이가 발견된다. 그러나 두 세계는 항상 존재했고, 그 끔찍한 장치가 고양이(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순간 전까지 서로 완전히 동일했다. 이와 같은 그림에서 파동함수의 붕괴는 없다."(90-1)


"휴 에버렛은 프린스턴대학교 박사과정이던 1955년에 자신의 학위논문 초고에서 이 생각을 전개했는데, 여기서 그는 이 상황을 아메바가 두 개의 딸세포로 분열하는 것에 비교했다. 만약 아메바에게 뇌가 있다면 각각의 딸세포는 분열되기 이전까지의 동일한 역사를 기억할 것이고 그다음부터는 자신의 고유한 개별적 기억을 가질 것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고양이의 예를 들자면, 우리는 그 끔찍한 장치가 격발되기 전까지는 하나의 우주와 한 마리의 고양이만을 갖지만, 장치가 격발되고 나면 두 개의 우주와 그 각각에 존재하는 고양이 등등을 갖는다." "에버렛은 그 어떤 관측자도 다른 세계의 존재를 결코 알 수 없긴 하지만 우리가 다른 세계들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세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우리가 지구의 움직임을 느낄 수 없다고 해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 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타당하지 않다."(93-4)


"우주적인 파동함수는 시간 속 특정한 순간에 우주에 있는 모든 입자의 위치를 기술한다. 그러나 이 함수는 또한 그 순간에 그 입자들의 모든 가능한 위치를 기술한다. 그리고 이 함수는 시간 속 임의의 순간에서 모든 입자의 모든 가능한 위치 또한 기술한다. 비록 가능성의 수는 시간과 공간의 '양자적 입상성'에 의해 제약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단일한 파동함수는 모든 가능한 시간에서의 모든 가능한 우주들을 기술한다. 그러나 이 함수는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시간 상태들은 이들이 기술하는 사건들에 의해서 질서지어질 수 있고 이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차이를 정의하지만, 이 상태들이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바뀌지는 않는다. 모든 상태들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친숙하게 생각해온 시간은 에버렛의 다세계 해석에서는 '흐르지 않는다.'"(105-7)


해석 4. 결여긋남 해석─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이미 일어났고 우리는 그 일부를 알 뿐이다


"결어긋남 해석의 옹호자들이 옳다면 양자성과 일상적 세계 사이의 경계는 크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결맞음에 의존한다. 앤서니 레깃은 당신의 손에 쥘 수 있을 정도로 크거나 이보다 더 큰, 이른바 '거시적' 대상들의 행동을 기술하는 데 여전히 양자역학의 규칙들을 이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시험하기 위한 실험을 고안하고자 결심했다." "그는 SQUID(초전도 양자 간섭 장치)를 순환하는 전류에 전자기장을 이용해 수정을 가했다. 이 실험은 반지를 따라 맴도는 전자 파동이 마치 단일한 양자적 개체와 같이 행동함을 보여주며, 이는 원자보다 1억 배 더 큰 크기다." "21세기 초에 수행된 실험들은 파동이 반지의 두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일 때 일어나는 효과들을 보여주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파동들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같은' 파동들이 한 번에 두 방향으로 가는 것, 즉 중첩인 것이다. 대상의 양자성을 결정하는 것은 대상의 크기가 아니라 파동의 결이 맞는다는 사실이다."(111-4)


# 파동의 결이 맞을 때 특징적인 양자 상태를 보여주며, 파동들의 결이 어긋나면 양자성을 보여주는 것을 멈춘다.


"그렇다면 '순수한' 양자적 개체가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하여 '결이 어긋날 때'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때는 얽힘이 '덜'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해진다." "(양자적 상태가 중첩된) 얽힘은 속담 속의 산불보다도 더 빨리 퍼지므로 실질적으로 외부 세계와 분리된 '순수한' 양자적 계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원래의 입자와 상호작용했던 모든 것과, 그 모든 것이 지금까지 상호작용했거나 접촉했던 모든 것들이 중첩된, 두 개의 얽힌 계가 존재할 따름이다. '결어긋남'은 실제로 전체 세계─우주─에 있는 모든 것을 단일한 양자계로 연결하는 것을 포함한다." "필립 볼이 지적했던 것처럼, 결어긋남은 관측 가능한 우주 속의 기본 입자들보다 많은 양자적 상태들의 중첩과 동등한 비결맞음incoherent 상태를 아주 빠르게 생성한다." "결어긋남은 더 큰 대상들에게서 더 빨리 일어난다. 왜냐하면 이 대상들 안에는 다른 사물들과 그리고 서로 간에 상호작용할 수 있는 비트들이 더 많이 있기 때문이다."(116-8)


"몇몇 연구자들은 결어긋남 해석의 사고방식을 우주의 전체 역사─혹은 역사들─에 적용했다." "만약 모든 '측정', 모든 양자적 상호작용이 가능한 역사들의 배열 속에서 선택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시간을 역행하여 결어긋남을 통해 일관된 역사들의 판본들을 걸러내며 빅뱅에까지(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겠으나 나는 거기까지는 가지 않겠다)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최초 시작점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임의의 양자적 상호작용이 일어나자마자 몇몇 가능성들은 배제되고 서로 다른 우주들의 다양성은 줄어든다. 즉 일관된 과거의 우주들의 범위는 줄어든다. 이러한 과정은 현재까지로 이어져, 가능성의 세계들로부터 우리 우주의 역사를 선택하게 된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직 우리 우주만이 선택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어긋남 역사 접근법은 유일한 우주를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경로를 통해 다세계라는 주제의 한 변형으로 돌아오게 된 셈이다."(119-22)


해석 5. 앙상블 해석─존재 가능한 모든 것은 공간을 뛰어넘어 상호작용한다


"일상 언어에서 앙상블은 몇몇 공통된 속성을 갖거나 함께 작동하는 것들의 집합이다. 그러나 통계학자에게는 600개의 동일한 주사위들의 집합체가 앙상블을 이루는데, 만약 이러한 주사위들을 한꺼번에 굴릴 경우에 우리는 확률의 법칙에 따라 대략 6의 눈 100개, 5의 눈 100개, 4의 눈 100개, 3의 눈 100개, 2의 눈 100개, 1의 눈 100개를 볼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또한 하나의 완벽한 주사위를 600번 굴리는 방법으로도 동일한 통계적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양자물리학자들이 언급하는 종류의 앙상블이다. 기체 분자들로 가득 차 있는 상자는 이러한 의미의 앙상블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일한 방식으로 실험할 수 있는 다수의 동일한 기체 상자들은 앙상블을 구성한다. 이상적 상황에서, 당신은 정확히 동일한 입자에 정확히 동일한 실험을 여러 번 하고 이러한 각각의 '시행' 결과를 확인할 것이다. 그것이 앙상블이다. 시행 결과는 막스 보른이 발전시킨 규칙들에 따라서 확률 분포를 따를 것이다."(129)


"리 스몰린은 '실재적 앙상블 해석'이라는 새로운 판본을 제시했다. 전통적인 앙상블 해석에서 앙상블의 구성원들은 실제로 동시에 모두 존재하는 것이 아닌 반면, 스몰린의 앙상블 해석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동시적으로 실재한다. 이러한 논점을 좀 더 명료하게 만들기 위해서 약간의 전문 용어가 필요하다. 앙상블의 가능한 양자 구성 성분들(예를 들어 수소 원자)은 '존재 가능한 것beable'이라 불리는데, 이들은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600개의 주사위를 한 번에 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사위를 600번 굴리는 경우, 이들은 함께 같은 시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스몰린이 제시한 실재적 앙상블 해석은 앙상블을 이루는 존재 가능한 것들이 하나의 주사위를 600번 굴리는 경우와는 달리 실제로 600개의 주사위들을 함께 굴린 경우와 같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임의의 주어진 시간에 임의의 양자계에서는 존재 가능한 것들의 값들에 의해 결정되는 실재적인 사태들의 상태가 존재한다."(135-6)


"스몰린은 그의 단순한 수학적 규칙들로부터 슈뢰딩거 파동방정식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고전 역학의 법칙들─뉴턴의 법칙들 등─또한 양자역학의 근사로서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양자역학 그 자체가 우주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기술에 대한 하나의 근사적 판본이 아닌가 의심하며(사실상 이것이 바로 스몰린이 이 난해한 논의에 참여한 진정한 동기였다), 더 나아가 그는 만약 이러한 의심이 맞다면 진정으로 빛보다 빠른 신호가 발생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당신이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아직 궁극적인 이론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강력한 힌트는, 존재 가능한 것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유일한 우주적 시간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따라서 상호작용은 동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으며, 이는 상대성이론의 확장을 요구할 것이다. 스몰린에 따르면 〈양자물리학은 다른 용어들로 공식화되는 우주론적 이론에 대한 하나의 근사임이 분명할 것이다.〉"(140-1)


해석 6. 거래 해석─미래는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


"빛과 모든 전자기 복사의 행동을 기술하는 방정식들은 빛의 속력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고 말하며 오늘날 이는 상수 c로 쓰인다." "빛의 속력이 모든 관측자에게 같음을 말하는 방정식은, 그 방정식을 발견한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의 이름을 따서 '맥스웰 방정식'이라고 부른다. '맥스웰 방정식'은 또 하나의 흥미로운 속성을 갖고 있다. 이 방정식은 시간 대칭적이다. 움직이는 전자와 연관되는 복사에서처럼 전자기 복사를 포함하는 그 어떤 문제에도 항상 이 방정식에는 두 개의 해가 있다. 하나의 해는 이른바 '지연된retarded' 파동을 기술하는데, 파동은 원천으로부터 나와서 시간 속에서 앞의 방향으로 진행하며, 세계 속 어떤 곳에서 흡수된다. 또 다른 해는 이른바 '앞선advanced' 파동을 기술하는데, 미래로부터 출발하는 이 파동은 세계 속 흡수체로부터 나와서 우리가 파동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경우에는 움직이는 전자)으로 수렴한다. 대다수의 물리학자들은 단순하게 이러한 '앞선 파동 해'를 무시한다."(143-5)


"대다수의 물리학자들과 달리 존 크레이머는 이 개념을 양자역학과 통합하고자 했다. 그는 플로리다 해변에서 대서양으로 던진 병의 비유를 제시한다. 이 병이 양자적 병이라서 파동 속으로 사라지고 이 파동은 대양 너머로 퍼져 유럽에까지 나아간다고 상상하자. 영국의 어느 해변에 그 병은 다시 나타난다. 그 순간에 전체 대양에 퍼져 있던 파동은 사라진다. 크레이머는 공간 전체를 걸쳐 양자적인 '악수'를 하는 앞선 파동들과 지연된 파동들이 존재함에 틀림없다는 것 그리고 오직 앞선 파동을 '메아리'로 삼은 지연된 파동들만이 입자들의 위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A와 B 사이의 공간을 통과하지 않고서 A에서 B로(또는 하나의 에너지 준위에서 다른 에너지 준위로) 이동하는 신비로운 양자역학적 전이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국에 있는 병으로부터 나온 파동들이 시간을 거슬러 대양을 가로질러 플로리다로 이동했고, 이 파동들이 유일한 연결을 수립하여 다른 파동들을 소거해버린 것이다."(148)


"거래 해석에 따르면 지연된 '제안 파동'은 실험에서 두 개의 구멍을 통해서 퍼져나가고, 탐지 스크린으로부터 앞선 '승인 파동'을 촉발시키는데, 승인 파동은 두 개의 구멍을 거꾸로 이동하여 방출 원천으로 되돌아간다. 각각의 입자는 어떤 제안을 수용할 것인지를 무작위적으로 선택하며, 이러한 선택이 간섭무늬를 만든다. 그러나 만약 이 실험의 또 다른 판본인 정교한 지연된 선택 실험에서처럼, 입자가 그 여행을 떠나고 난 뒤에 두 개의 구멍 중 하나가 닫힌다면 입자는 이미 이에 대해서 '알고 있다.' 왜냐하면 승인 파동이 악수를 하기 위해 되돌아갈 때 오직 하나의 구멍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양자물리학의 퍼즐들을 해결하는 데 거둔 이와 같은 성공은 (원인은 항상 현상에 선행해야 한다는 우리의 직관 같은) 상식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보이는 단 하나의 개념을 수용하는 것을 그 대가로 삼아 이루어졌다. 그것은 바로 양자 파동의 일부분이 실제로 시간을 거슬러서 이동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156-7)


나오며, 제정신인 말이 하나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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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란 무엇인가 - 반프랑스 혁명에서 현대 일본까지
우노 시게키 지음, 류애림 옮김 / 연암서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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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변질하는 보수주의─진보주의 쇠퇴 속에서


"프랑스 혁명의 급진적인 개혁에 단호히 반대한 에드먼드 버크의 최대 관심사는 권력의 전제화를 방지하고 역사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권리들을 지키는 방법에 있었다. 그 핵심은 권력의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에 있다. 자유를 위한 제도 구상이야말로 버크의 보수주의에서 지극히 중요한 것이었다." "보수주의를 논함에 있어 버크를 언급하려면 적어도 1) 지켜야 하는 것은 구체적인 제도와 관습이며 2) 이러한 제도와 관습은 역사 속에서 다듬어져 온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3) 자유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4) 민주화를 전제로 하면서도 질서 있는 점진적 개혁을 지향한다는 점을 근거로 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1) 추상적이고 자의적인 과거의 이미지에 바탕을 두고 2) 현실의 역사적 연속성을 무시하며 3) 자유를 위한 제도를 파괴하고 4) 나아가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한다면 그것은 결코 보수주의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버크적 의미의 보수주의는 아니다."(32-3)


제1장 프랑스 혁명과 싸우다


"미학사에서 버크는 『숭고와 미의 근원을 찾아서』(1757)를 집필하여 '숭고'라는 관념에 처음 주목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 이전까지 미학에서 중시된 것은 '균형'이나 '질서' 혹은 '조화'와 같은 정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이에 비해 18세기 유럽에서는 그랜드 투어라 불리는 여행 스타일의 유행과 함께 알프스 등지에서 증가한 산악체험을 배경으로 새로운 미의식 및 감수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다. 즉 높이 솟아오른 산이나 깊은 골짜기, 광대한 사막 등을 눈앞에 둔 인간은 일종의 외경심과 함께 감동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동적인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위한 관념이 '숭고'였다.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미와는 대조적으로 '숭고'는 충격이나 긴장감을 가져다준다. 단 이러한 충격이나 긴장감은 인간의 삶을 북돋우며 재생의 기회를 가져다준다고 버크는 논했다. 이러한 '숭고'의 관념은 이마누엘 칸트가 재조명해 『판단력 비판』(1790)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가 되었다."(44-5)


"프랑스 혁명의 비판자이자 계몽사상에 적대적이었던 인물이라는 버크의 이미지는 다소 일면적이다. 버크는 분명 추상적 이성 사용을 비판했지만 결코 이성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나 스코틀랜드의 계몽사상을 섭렵한) 버크는 실로 당대의 지(知)의 발전과 네트워크 속에서 만들어진 인물이었으며 훗날 그가 프랑스 혁명의 원인이 된 계몽사상을 비판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계몽사상 자체에 대한 전면적 부정은 아니었다. 버크는 어디까지나 이성을 믿었다. 다만 그 사용법에 관해 동시대의 계몽사상과 격렬히 대립했을 뿐이다. 또 버크는 이성뿐 아니라 인간의 감정에 주목한 사상가이기도 하다. 인간을 추동하는 감정과 관념은 『숭고와 미의 근원을 찾아서』 시절부터 그에게 중요한 테마였다. 인간의 이성뿐 아니라 감성에 주목하고, 인간의 인식능력의 무한한 발전보다는 그 한계에 착목했던 점에서 버크 사고의 특징이 생생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겠다."(50-1)


"버크가 『현재의 불만의 원인』(1770)을 집필할 당시 영국은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혼란스러운 상태였는데 버크는 그 원인을 왕권의 정치개입에서 찾았다. 국왕(조지 3세) 자신의 음모야말로 영국 정치를 위협하고 현재의 불만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버크는 격렬히 왕권 비판을 전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크는 국왕 본인을 직접 비판하는 일은 신중하게 피해갔다. 버크가 비판의 창끝을 겨눈 것은 왕의 측근들이었다. '국왕의 벗' 즉 궁정파야말로 현실의 내각 배후에 존재하는 세력이며 실질적으로 인민의 견제를 받지 않는 또 하나의 내각, 이른바 '이중내각제'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버크의 주장이었다." "명예혁명 이래 영국 정치의 최대 특징은 내각과 민중 사이에 의회가 존재하고, 특히 하원이 민중의 목소리와 정치 시스템을 잘 매개했다는 데 있다. 버크는 이렇게 논하면서 정치의 요체는 민중을 힘으로 억압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성정'을 잘 이해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56)


"버크는 〈정당이란 연대된 노력을 통하여 특정한 원리를 공유하고 이에 기반해 국가이익을 촉진하기 위해 통합된 사람들의 집단을 말한다〉(『현재의 불만의 원인』)고 정의했다. 이 정의는 정당이 〈특정한 원리〉에 기반을 둔다고 명시하는 한편, 그 존재 이유가 어디까지나 〈국가이익의 촉진〉에 있다고 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버크의 이 정의에 따르면 원리가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야합은 정당이 아니며 국가와 완전히 적대하고 국가의 이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집단 역시 정당이 아니다. 이러한 정당의 정의는 정치사상사에서도 획기적인 것이었다. 본래 정당과 파벌은 특별히 구분되지 않았으며 양자 모두 사회 전체의 공공이익에 반하는 '부분 이익'으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버크는 정당을 국가이익의 촉진을 위해 특정 원리를 공유하는 집단이라 재정의함으로써 단순한 일시적 이해에 따라 생겨난 파벌과 구별하는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58-9)


"1774년 봄 이래 버크는 계속해 미국과 관련된 중요한 연설을 했다." "버크가 무엇보다 중시했던 것은 미국인을 특징짓는 자유의 정신이었다." "버크(그리고 토크빌)가 보기에 미국인은 자유를 사랑하는 영국인의 후예이며 미국인이 사랑하는 자유는 자유 일반이 아니라 영국식 자유의 이념이다. 게다가 그 자유는 결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영국의 역사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씩 만들어 온 것이었다. 식민지 미국 땅의 사람 역시 자유민으로 태어났으며 그들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미국인과 영국인의 공통된 선조의 위업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미국인에게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유 그 자체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는 파국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선조가 피 흘려 싸워 얻어낸 원리 일부를 공격하고 그 감정 일부를 조롱하지 않고서는 논쟁에서 결코 우위를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식민지와의 화해 결의 제안에 관한 연설」)"(60)


# 버크의 핵심 논점은 일방적으로 미국 독립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대영제국이라는 기존 제국 질서의 안정화라는 대의에 순응하는 영국과 미국 간의 화해와 협조였다.


"버크에게 '보수(保守)'란 낡은 것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변화의 수단을 갖지 않은 국가에겐 자신을 보존할 수단도 없는 법이다. 그런 수단이 없다면 그 국가가 가장 절실히 유지하고 싶어 하는 헌정상의 한 부분을 상실하는 위험에조차 빠질 수 있다.〉『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1790) 변화할 수단을 갖지 않은 국가는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없다. 여기에서 지키기 위해서는 바뀌어야 한다는, 역설처럼 들리는 보수주의의 신조(credo)가 태어났다. (왕위계승과 권리선언이 함께 선포된) 명예혁명은 그런 의미에서 보수와 수정이라는 두 원리가 강하게 작동한 사례였다. 그 혁명은 어디까지나 왕국의 오래된 원리를 회복한다는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반면 프랑스 혁명은 왕국의 과거 원리 회복은커녕 역사의 명확한 단절로서 이루어졌다는 점에 버크는 주목했다." "과거에서 회귀해야 할 모범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추상적 원리에 기반을 둔 미래로 도약하는 것, 버크를 뒤흔든 것은 이와 같은 사태였다."(70-1)


"사회라는 복잡한 건축물의 전체를 꿰뚫어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를 보존하고 개량해야 할까. 버크는 개인의 이성보다는 감성과 편견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버크가 이성을 부정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이성을 논하면서 일개 개인의 사변적, 추상적 이성을 과신하는 것을 비판했다. 인간의 이성은 취약한 것이며 한 사람의 이성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버크는 도리어 종종 편견이나 미신이라 불리는 인간 정신 활동이 이성을 보완하고 확장하는 잠재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습관 역시 인간의 이성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보통 습관이라고 하면 사고가 결여된 동일패턴의 반복이라 이해하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에게 각자의 역할과 임무를 가르치고 편견 안에 숨겨진 지혜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습관이다." "이에 비해 계몽사상은 인간사회의 모든 관계성을 벗겨버리고 개인을 추상적으로 바라본 데에 그 약점이 있었던 것이다."(74-6)


제2장 사회주의와 싸우다


"20세기 전반기의 보수주의는 영국을 주된 무대로 하는데 영국 보수주의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형성한 것은 문학자들, 혹은 문인들이었다." "T. S. 엘리엇은 〈그럼 우리 가 봅시다, 그대와 나/함께 수술대 위에 올라 마취당한 환자처럼〉(「J. 앨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처럼 전위적인 표현으로 알려진 시인이다. 그런데 31세 때 쓴 「전통과 개인의 재능」(1919)에서 그는 오히려 전통의 의의와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통이란 첫째, 25세를 넘겨서도 계속해서 시인이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나 무시해서는 안 될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전통과 개인의 재능」), 즉 시인을 포함한 예술가들은 자기 스스로 호메로스 이래의 문학적 전통의 흐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자기 자신을 그 전통 속에 위치지음으로써 비로소 그 현대성을 예민하게 포착할 수 있다. 거듭 말하자면 전통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대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것을 추가하며 갱신해 나가는 것이다."(82-5)


"엘리엇의 또 다른 저서인 『문화 정의론』(1948)의 논점들 중 하나는 문화와 집단의 연결이다. 문화란 개인 혼자 짋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급이나 가족 등 집단에 의해 지탱된다. 이러한 집단의 문화는 나아가 사회 전체의 문화에 기반하고 있다. 엘리엇은 문화에 관한 비개인주의적 이해를 제시한 것이다." "엘리엇의 담론은 단순한 엘리트 문화론에 머무르지 않는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문화라는 것이 과연 계급 등의 집단이 담당할 대상인가, 그 여부에 있다. 엘리엇에게 문화란 단순히 이런저런 활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통일성 있는 삶의 방식〉에 가깝다. 문화란 한 집단의 고유한 태도나 행동의 스타일일뿐 아니라 미의식과 지혜, 판단력, 심지어는 요리법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엘리엇은 요리법에 대한 무관심을 영국 문화 쇠퇴의 방증이라 보았다.) 이런 문화는 종종 집단의 특정인물로 인해서 체현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집단 전체에 의해 유지, 발전되는 것이라고 엘리엇은 생각했다."(87-8)


"20세기 보수주의의 최대 테마가 사회주의와의 대결이었다고 한다면 그 대표적인 인물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로 칭했으며 보수주의자임을 명확히 부정했다." "왜 하이에크는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일컫지 않는가. 〈그것은 보수주의가 바로 그 본질에 의해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대신할 다른 길을 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시대의 경향에 대한 저항을 통해 바람직하지 않은 발전을 감속시키는 데는 성공할 수도 있으나 다른 방향을 제시하지 않기에 그 경향이 지속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나는 왜 보수주의자가 아닌가」) 즉 보수주의는 감속장치를 작동시킬 뿐 미래를 향한 가속기능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자유주의는 오히려 변화를 환영한다. 이 변화는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것─자생적(spontaneous)인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요점이다. 진화는 결코 계획할 수 없다."(95-8)


"『노예의 길』(1944)에서 하이에크가 문제시한 것은 것은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사회주의의 이념이 아니었다. 이 이념에 관해 하이에크는 꼭 반대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비판한 것은 사회주의가 이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채택한 방법, 곧 '집산주의(collectivism)'였다." "단순한 상황이라면 한 사람의 인간, 또는 하나의 위원회가 모든 것을 고려해 효과적인 계획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복잡화한 사회에서는 하나의 주체가 모든 정보를 수집해 이를 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이라는 비인격적 메커니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신념이었다." "선의에 의한 것이라 해도 사회 전체를 통제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은 다양성과 선택의 자유를 부정하고 모든 개인에게 하나의 목적을 강요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하이에크는 단일 가치체계가 존재한다는 이상주의와 사람들의 필요에 순위를 매길 수 있다는 환상이 모든 집산주의의 배경에 있다고 주장한다."(103-4)


"하이에크는 『자유의 구조』(1960)에서 '법의 지배'를 본격적으로 검토한다. 이 책에서 하이에크는 자유를 '강제의 결여'로 정의하고 있다." "하이에크가 중시한 것은 인간 행동의 소산이기는 하지만 의도의 결과는 아닌 복잡한 질서였다. 이런 질서를 하이에크는 '자생적 질서'라고 부른다. 자생적 질서를 형성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제도와 관습이라는 규칙이다." "하이에크가 생각하는 '진화'란 제도와 관습이라는 '규칙'의 진화다." "하이에크는 이런 '진화'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법'이라고 했다. 이 경우 법이란 특정 입법자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행동의 일반적 규칙을 가리킨다. 하이에크가 법에서 특히 중시한 것은 '일반성'이었다. 개별적인 대상에 대한 입법은 그 대상인 개인과 집단에 대한 강제와 같다. 법은 특정 대상을 노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에크는 일반적인 규칙은 강제를 최소화한다고 생각했다."(106-7)


"마이클 오크숏이 비판하는 것은 '합리주의자'다. 합리주의자는 정치에 관해 항상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다.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지 않는 정치가 존재하리라곤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은 항상 획일적으로 완전한 답이 존재함을 당연히 여기며 정치를 그 실천의 장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오크숏의 경우 이런 지(知)는 '기술지'라고 부르는 것일 뿐이다. 인간의 지(知) 속에는 기술지와는 다른 또 하나의 지(知)가 존재한다. 오크숏은 이를 '실천지'라고 부른다. 실천지는 기술지와는 달리 명확히 정식화될 수 없다. 상황에 따라 다른 개연성의 지인 실천지는 보통 관습과 전통이라는 실천 속에 내포돼 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실천지를 실천지라고 알지 못한 채 배워 간다. 바꿔 말하면 실천 속에서 어떤 행동양식과 매너로서 배울 수밖에 없는 것이 실천지이다. 그러나 합리주의자는 여러 직업과 전문 속에서 축적되어 온 이와 같은 실천지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나아가 적대시하기도 한다."(118-9)


제3장 '큰 정부'와 싸우다


"1950년대 미국에서 보수주의 부활의 봉화를 올린 이가 러셀 커크다. 『보수주의 정신』(1953)에서 커크는 보수주의의 여섯 가지 규범(canon)을 제시하고 있다. 제1규범은 '인간 의식과 사회를 동등하게 지배하는 초월적 질서 또는 자연법에 대한 믿음'이다. '정치 문제는 근본적으로 종교적 그리고 도덕적 문제'라고까지 단언한다. 제2규범은 '획일성과 효율주의의 지배에 반대하며 이에 따라 인간 존재의 다양성과 신비성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3규범은 '문명사회에 있어 서열과 계급은 불가결한 것이라는 확신'이다. 커크에게 '계급 없는 사회'는 결코 이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를 잇는 제4의 규범은 '자유와 소유권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신념'이다. 제5규범은 '추상적 계획에 기초해 사회를 개조하고자 하는 궤변가, 계산가 그리고 이코노미스트를 신용해서는 안 된다', 제6규범으로 '변화가 꼭 유익한 개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132-3)


"이러한 주장은 머지않아 고도로 조직화된 정치운동과 연결돼 결국 정치와 사회의 존재방식을 크게 변화시킨다. 그 정신적,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면 우선 미국이 현대 선진국들 중에서 예외적으로 '종교적인' 국가라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현대 미국의 보수주의는 동부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종교화한 '선벨트'의 신앙심 깊은 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현대 미국 보수주의의 근저에 있는 것은 세속화, 개인화한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정신적 안식처를 구하는 사람들의 절실한 욕구이다." "현대 미국 보수주의의 또 다른 정신적 배경에는 이른바 '반지성주의'가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토크빌은 지역의 기초적 자치를 담당하는 일반 시민들의 정치적 지성에 감명 받았다. 미국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소수의 지적 엘리트가 아니다. 지위도 학력도 없으나 생활에 뿌리내린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보통의 사람들이야말로 미국 사회의 토대라는 신념을 뒷받침하는 반엘리트 사상이 바로 '반지성주의'이다."(134-7)


"현대 미국의 보수주의가 단순한 정신적 태도와 심리상태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혁명'으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전통주의'와 함께 또 하나의 요소가 더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리버테리어니즘'이다." "'리버테리언'이라는 말은 원래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일련의 사상을 일컬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이 단어는 미국에서 전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그 배경에는 리버럴리즘이라는 단어의 의미 전환이 있었다. 이 말은 원래 정부 권력을 억제해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것을 의미했으나 이 시기에는 오히려 '큰 정부' 아래에서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그 결과, 이와 같은 리버럴리즘에 위화감을 느낀 리버테리언은 리버럴파에 의한 정부 권한 확대와 격렬히 대립하며 개인의 선택과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입장을 취했다." "전통주의와 리버테리어니즘의 '융합'이 실현된 것이야말로 현대 미국 보수주의 발전의 커다란 비약을 위한 디딤대가 되었다."(141-3)


"밀턴 프리드먼은 『선택의 자유』(1980)에서 경제적 리버테리어니즘의 전형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는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는 불가분의 관계이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경제적 자유이며 경제적 자유가 없는 곳에 정치적 자유는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프리드먼이 신뢰하는 것은 가격 메커니즘이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의 개별적 이익 증진을 위해 협력할 수 있는가를 이해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가격 시스템은 중앙집권적 지시 없이, 서로 대화하지 않고, 나아가 서로를 좋아하지 않고서도 이 과제를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공동 행위에 대한 눈에 띄게 낮은 평가와 그것과는 대조적인 시장질서에 대한 극명히 높은 평가이다. 사람들의 자발적 상호행위는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도치 않은 것으로 가격 메커니즘을 매개로 한 것에 한정된다. 인간과 인간은 서로 '대화하고', '좋아하는' 관계가 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144)


"프리드먼의 경제적 리버테리어니즘과는 달리 개인의 인권과 자연권을 중시하는 이른바 윤리적 리버테리어니즘을 전개한 것이 바로 로버트 노직의 『무정부,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1974)다. 이 책에서 노직이 주장한 것은 '보호협회'라는 모델이다." "자연상태에서 자발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호협회'는 상호 경쟁하는 과정에서 점차 다른 협회를 압도하는 사실상 독점 조직이 된다. 노직은 이를 지배적 보호협회라고 불렀다. 지배적 보호협회는 이윽고 영역 내의 나머지 주민에 대해서도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최소국가가 되어 간다. 노직의 논의에서 중요한 점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자생적인 프로세스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최소국가는 보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단 하나의 점에서만 정통성을 가진다." "따라서 사람들의 노동이 결실을 맺은 소유권에 정부가 과세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키는 것과 다름없다며 노직은 정부의 권한 확대를 강하게 비판했다."(147-9)


"현대 미국의 보수주의를 구성하는 것은 전통주의와 리버테리어니즘, 이 둘뿐만이 아니다. 이 둘과는 명확히 구분되는 이질적 요소가 보수주의에 유입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네오콘(Neo Conservatism)', 즉 (리버럴 반공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신보수주의'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1964년 대통령 선거이다. 이 선거는 비명에 죽음을 맞이한 케네디 대통령의 뒤를 이어 현직에 있던 민주당 출신 린든 존슨 대통령과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의 대결이었다." "당시 훗날 네오콘으로 불리는 이들은 골드워터가 아닌 존슨을 지지했다." "그러나 네오콘들은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 계획에 환멸을 느끼고, 카운터컬처(반체제문화) 운동과 베트남 반전운동에 반발하면서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을 지지하는 쪽으로 정치적 입장을 전환해 간다. 네오콘이 골드워터 지지 세력과 합류했을 때, 처음으로 레이건 대통령 당선에 이르는 미국 '보수혁명'이 실현됐다고 말할 수 있을것이다."(154-8)


# 네오콘의 사상적 특징

1. 독특한 국제주의 :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강한 적대심을 품고 있어 국제정치에 (억제를 넘어)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한다.

2. (도덕적) 리얼리즘 : 국제정치를 권력 투쟁의 장으로 여기는 고전적 리얼리즘과 달리 도덕적 이념 실현의 장으로 취급한다.

3. 사회개혁 유보 : 대규모 국가 개입과 복지 정책, 특히 반전운동 같은 '좌경화'된 리버럴은 사회의 유기적 연결을 파괴한다.


제4장 일본의 보수주의


종장 21세기의 보수주의


"진보주의 시대가 끝나고 보수주의도 갈 길을 헤매는 지금 더 이상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또는 리버럴과 보수주의라는 구별은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되었을까. '예'와 '아니오' 모두 그 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구별은 불분명해지고 있다. 오늘날 모든 전통을 부정하고 사회를 이성에 기초한 청사진을 바탕으로 0에서부터 새로 만들기를 바라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사회의 변혁이 가능하다고 해도 과거로부터의 전통과 지혜는 계승하며 발전시키는 것이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임에 분명하다. 사람들이 '진보'라는 이름의 강한 순풍을 받아 앞으로 나아갔던 시대는 확실히 그 끝을 고했다. 이후에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자기 자신과 자신들의 사회를 되돌아봄으로써 전진을 위한 에너지와 지혜를 얻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서 얻은 추진력으로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217-8)


"또 한편 리버럴과 보수라는 대립축이 완전히 무효해졌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리버럴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충성심이 필요하다." "반대로 어디까지나 보편주의의 입장을 중시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동료'를 강조하는 순간, 배제되는 '그들'이 생겨난다." "동료와의 관계를 우선하는 전자의 입장이 보수, 보편적 연대를 주장하는 후자의 입장이 리버럴과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정치에 있어 공동체 내부의 '공통감각(common sense)'을 중요시하는가, 아니면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 사이의 상호성을 중시하는가 하는 차이와도 연동해 이후 사회를 논해 가는 데 유력한 대립축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버럴과 보수의 차이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다양한 지향점의 공존이다. 즉 가장 심각한 위기는 리버럴과 보수 모두가 원리주의적이 되어 서로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다."(2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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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전야의 최면술사 - 메스머주의와 프랑스 계몽주의의 종말
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 알마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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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780년대 프랑스인들은 메스머주의mesmerism가 자연에 대해, 자연의 보이지 않는 놀라운 힘에 대해,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사회와 정치를 지배하는 힘들에 대해 진지한 설명을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메스머주의에 너무나 심취했다. 덕분에 오늘날 낭만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빚어낼 수 있도록 그들이 후손에게 유산으로 물려준 사고방식 중에서 메스머주의는 중요한 한 항목이 되었다. 이런 유산 속에서 메스머주의의 위치가 결코 인정된 적이 없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자신들의 세계관의 원천이 된 것들 가운데 불순하고 유사과학적인 것들에 대해 한층 더 까다로웠던 이후 세대들이 앙시앵 레짐의 마지막 몇 해 동안 메스머가 누린 인상적인 지위를 애써 잊어버리려 했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서 계몽사상의 원칙들이 어떻게 혁명적 선동으로 다시 채용되고 이후 19세기 신조들의 기본 요소로 변형되었는지 보여주는 것도 메스머를 (정당한) 원래 위치로 되돌려놓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20-1)


1 메스머주의와 대중 과학


"1778년 2월 파리에 도착한 프란츠 안톤 메스머는 포착하기 어려운 어떤 유체流體를 발견했으며 그것이 모든 물체에 침투할 뿐 아니라 물체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고 주장했다. 메스머가 실제로 유체를 본 것은 아니다. 그는 진공상태에서는 행성들이 서로를 잡아당길 수 없으므로 그 유체가 중력의 매개체로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메스머는 이 원초적인 〈자연의 작인(作因, agent)〉으로 우주 전체를 목욕시키는 한편, 그 유체를 지상으로 끌어내려 파리 시민들에게 열, 빛, 전기, 자기력을 제공하고자 했다. 특히 그 유체를 치료에 적극 활용할 것을 권장했다. 그는 신체가 자석과 비슷하며 질병은 몸속에서 유체의 흐름을 방해하는 〈장애물〉 때문에 생긴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몸 안의 〈자극磁極〉들을 메스머 유체로 처치하거나 마사지함으로써, 흔히 경련 상태로 나타나는 〈위기〉를 유도하고, 건강 또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회복하는 방식으로 유체의 작용을 통제하거나 강화할 수 있었다."(28-9)


"오늘날에는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메스머주의야말로 1780년대 글을 아는 프랑스인들의 관심에 완벽히 부합했다. 과학은 메스머의 동시대인들에게 그들이 보이지 않는 놀라운 힘들에 둘러싸여 있음을 보여주며 그들을 사로잡았다. 그 힘들은 볼테르를 통해 알려진 뉴턴의 중력, 피뢰침에 대한 열광과 파리의 최첨단 학회와 박물관들에서 시연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프랭클린의 전기電氣, 1783년 처음으로 사람을 들어 올려 전 유럽을 놀라게 한 샤를의 열기구와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에 사용된 기적의 기체였다. 메스머의 보이지 않는 유체가 특별히 더 기적적으로 보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라부아지에가 우주에서 제거하려던 플로지스톤보다, 혹은 그가 플로지스톤을 대체하려 했던 칼로릭보다 메스머의 유체가 더 비현실적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었겠는가?" "프랑스인들은 《백과전서》의 '불'이나 '전기' 항목에서 메스머의 것과 같은 유체에 대한 설명을 읽을 수 있었다."(33-7)


"이론의 포화는 자연스럽게 일반 독자들에게 혼란을 안겼다. 그러나 실망을 안기지는 않았다. 이 보이지 않는 힘들이 때로 기적을 행했기 때문이다. 1783년 10월 15일, 그런 기체 가운데 하나가 필라트르 드 로지에를 메츠의 공중으로 실어 날랐다. 사람의 첫 비행에 관한 그 소식은 과학에 대한 열광의 물결 속에서 프랑스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여성들은 〈열기구 모자〉를 썼고 아이들은 〈열기구 과자〉를 먹었다. 시인들은 열기구 비행에 관한 무수한 송시들을 지었다." "과학자들은 인간을 신으로 만들었다. 자연을 제어하는 과학자들의 능력은 프랑스인들에게 경외감을, 거의 종교적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곧 그 시대의 독자층은 과학의 힘에 도취되었고 과학자들이 우주에 이식한 실제의 힘과 가상의 힘에 놀랐다. 대중은 실재와 상상을 구별할 수 없었기에 자연의 경이를 설명한다고 약속하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유체든, 과학적인 것처럼 들리는 어떤 가설이든 거기에 집착했다."(48-53)


2 메스머주의 운동


"메스머주의가 그 지지자들의 내적인 삶을 어떻게 지배했는지는 세르방의 편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세르방은 법철학자이자 루소주의자이며 볼테르, 달랑베르, 엘베시우스, 뷔퐁과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였다. 세르방은 맹목적으로 신비주의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관찰 가능한 사실에 집착했고 로크와 콩디악이 형이상학자들을 상대로 거둔 승리의 근거를 강력히 고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과학적 진보에 대한 그의 열광은 경험의 경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메스머주의의 폭넓은 유행과 그 주창자들이 보여준 설득력 때문에 사람들은 메스머주의의 과학적이고 종교적인 원칙들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콩도르세는 계몽사상의 수많은 태도들을 대표하던 인물로서 메스머주의를 거부했지만, 자신의 거부를 정당화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그 이유를 글로 쓰기도 했다. 이렇듯 메스머주의는 지나가는 유행 이상의 어떤 것을 표상했다."(99-101)


"메스머주의는 동시대인들의 태도의 핵심을 파고들어 과학과 종교가 만나는 모호하고 사변적인 영역에서 권위가 필요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1784년 봄, 《주르날 드 브뤼셀》이 〈조만간 메스머주의가 유일한 의학이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자, 정부는 그것이 통제를 벗어나고 있음을─특히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메스머주의자들이 그들의 사이비 과학 담론 속에 급진 정치사상을 섞어 넣고 있다는 파리 경찰의 비밀 보고서가 제출되었기 때문에─걱정하기 시작했다. 《비밀 회고록》은 1784년 4월 24일자에서 메스머주의를 조사하기 위한─메스머와 그의 추종자들이 믿었던 대로 프랑스의 가장 특권적이고 편견에 찬 과학자들이 메스머주의에 일격을 가하고 이를 분쇄하기 위한─왕립위원회의 임명을 보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메다르의 묘지도 메스머주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못했으며 그보다 더 이상한 것들을 만들지도 않았다. 메스머주의는 마침내 정부의 시선을 끌었다.〉"(101-3)


"생마르탱은 마르티네 드 파스칼리로부터 영들에 관해 배웠다. 마르티네는 마르티니즘 창설자로 카발라 사상과 탈무드 전통, 그리고 가톨릭의 신비주의를 혼합해 설교했다. 물질세계는 원시인들이 한때 지배했었고 근대인들이 〈재통합〉할 필요가 있는 좀더 실재적인 영의 세계에 복속되었다. 윌레르모의 비밀 메시지들은 재통합을 이끌 원시종교를 드러내겠다고 약속했다. 퓌세귀르의 몽유증은 영의 세계와 직접 접촉할 기회를 제공했다. 바르브랭의 메스머 치료법은 어떤 물질적인 종류의 유체도 제거함으로써 구식 〈유체론자〉들의 기반을 와해시켰다. 이리하여 생마르탱은 후대의 여러 메스머주의자들을 신비주의 마르티니즘을 통합해 엮어냈고, 그 결고 몽유를 향한 열렬한 지지의 물결이 계속되었으며 앙시앵 레짐의 마지막 몇 해 동안 메스머주의의 사유에 전형적인 것이 되었다. 메스머의 사상은 메스머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관계없다고 믿었던 초자연적 영역으로 거침없이 번져나갔다."(110-1)


3 메스머주의의 급진적 경향


"메스머주의자들이 발행한 팸플릿에서 메스머는 줄곧 인류의 고통을 종식시킬 발견을 품에 안고 파리에 도착한, 헌신적인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과학아카데미, 왕립의학회, 의사회, 마지막으로 기성 학계의 축소판인 왕립위원회가 차례로 그를 타박하고 모욕하고 박해했다. 공개 진료를 통해 자신의 치료법을 입증해 보이고 전통적인 의사들과 경쟁하겠다는 메스머의 제안은 박해자들의 간계에 휘말렸다. 그의 체계는 전문가 집단을 위협했고 그들은 인간의 고통이라는 대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위협을 무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기존의 다른 이익집단들과 결탁했다. 그리하여 메스머는 학계의 관료주의에 등을 돌렸고 비전문가들에게 호소했다." "일부 메스머주의 관련 저술들이 짙은 정치색을 띠게 된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부의 후원을 받는 특권적인 기구들이 다수의 민중을 개량하기 위한 운동을 억압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128)


"메스머주의자들과 고등법원은 최적의 관계에 있었다. 얼마나 많은 참사관들이 메스머주의에 동조적이었는지에 관해서는 기록이 없지만 라 아르프는 고등법원 절반이 메스머주의를 지지했다고 말했고 이는 상당히 믿을 만한 추정이었을 것이다. 라 아르프 자신이 메스머주의의 여러 집회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등법원이 혁명 기구는 아니었으며, 고등법원의 지지를 받았다고 해서 메스머주의가 급진적 명분으로서 명성을 얻게 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메스머주의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반정부세력은 고등법원에서 나왔다. 그리고 1785년에 이르러 많은 메스머주의자들에게 정부는 악의 화신으로 각인되었다. 그들이 당대 가장 인도적인 운동이라 믿었던 것을 정부가 박해했기 때문이다. 3년 뒤 고등법원이 칼론과 브리엔 내각의 프로그램에 반대하며 전국신분회 소집을 요구했을 때 코른만 집단은 이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호소하며 정부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고등법원이 베푼 은혜에 보답했다."(132-3)


"베르가스는 처음 메스머주의 팸플릿 《동물 자기에 관한 또다른 공상》에 쓴 주석에서 반反귀족적 관념들을 발전시켰다. 그는 귀족과 연결된 모든 것─그 문장紋章, 허세, 조상을 이유로 내세우는 특권의 주장, 기사도의 미신─에 대한 비난을 쌓아갔다." "베르가스는 모든 고위직을 제3신분에게 개방할 것을 요구했고 〈같은 목적에 두 목소리를 내는〉 두 특권 계급 사이의 충돌을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그는 민중에게 〈모든 시민을 고귀하게 만들고 모든 귀족을 시민으로 만들기 위해〉 왕과 결속할 것을 주장했고, 1789년의 팸플릿에서 끝없이 되풀이되었던 큰 질문을 제기했다. 〈어떻게 오래된 귀족에게서 그 영향력을 박탈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가? 그들의 케케묵은 권력보다 더 수지맞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당신에게는 오직 법과 백성과 왕만 있을 것이다.〉 이런 호소는 1789년 제3신분의 요구에 관한 시에예스 신부의 고전적 설명 못지않게 극단적인 것이었다."(150-1)


4 급진적 정치 이론으로서의 메스머주의


"카라와 베르가스는 메스머주의의 우주론적인 측면을 다루면서, 전혀 정치적이지 않았지만 모호하고 거만한 메스머의 말에서 정치 이론을 끌어냈다." "혁명 기간 동안 카라는 자신의 글 《새로운 물리학 법칙》에서 자신의 공화주의적 정치관을 하나의 예언으로까지 밀고 나갔다. 곧 〈인류의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일들을 지배하는 우주의 가장 위대한 물리적 체계가 그 자체로 하나의 진정한 공화국이기 때문에〉 프랑스는 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나아갔다. 1787년에 이르러서 그는 주저 없이 미덕과 악덕을 〈우주의 메커니즘〉과 연결시켰다. 그리고 그는 정치와 의학이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물리적 질환과 사회적 병리가 모두 냉수마찰, 머리 감기, 식이요법, 철학서들로 치료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대의 예언자와 마법사들이 원시적 메스머주의를 실천했으며 델피 신탁의 예언과 리쿠르고스의 입법을 지지한 것은 정치적 메스머주의의 한 형식이었다고 주장했다."(157-9)


"카라와 마찬가지로 베르가스는 특히 왕립위원회 보고서 이후 수많은 메스머주의 저술들에서 하나의 중심 주제였던 호혜적인 도덕적·물리적 인과관계에 관한 동시대의 대중적 이론 위에 메스머주의 체계를 확립했다." "베르가스는 자연이 도덕적 세계와 물리적 세계를 모두 지배한다는 데 동의했다. 메스머 유체─자연의 보존 작용─가 물리적이며 도덕적인 동인으로서 작용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물리적인 동시에 규범적인 질서로서 자연법칙에 관한 동시대의 개념들에 의지해 이런 관념을 발전시켰다. 그의 문서에 남은 두 강연 기록에서 그는 자연이 〈하나의 꾸준하고 지속적인 조화〉를, 즉 무생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는 유체의 자연적 상태를 유지할 목적으로 그 법칙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부조화, 혹은 질병에는 물리적 원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원인도 있었다. 양심은 〈우주의 모든 지점으로 향하는 수많은 가느다란 가닥들로 연결된〉 하나의 물리적 유기체였다."(163-6)


"루소의 글들을 읽고 그에게 찬사를 보냈던 베르가스는 심지어 자신을 메스머주의의 루소로 여겼다. 《신 엘로이즈》나 《고백록》을 읽고 난 후 장자크와 자신들을 동일시했던 다른 프랑스인들과 달리, 베르가스는 루소의 여러 관념들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했고 그렇게 해서 스승(루소)의 도덕적 열의는 유지하는 한편 사회의 계약적 기원 같은 그의 미숙한 원리들 가운데 일부는 폐기했다. 베르가스는 인류가 타고난 사회적 피조물이며 진정으로 자연적이며 원시적인 사회는 인간과 함께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최초의 우주와 마찬가지로 원시 사회는 완전한 조화가 지배하는 신의 창조물이었다. 그것은 프랑스가 되돌아가야 할 하나의 규범적 질서였다. 〈사회라는 말은 현재 존재하는 그대로의 사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 그것은 존재해야 할 사회, 곧 자연적인 사회, 우리 자신의 자연이 질서정연할 때 만들어야 하는 관계에서 비롯된 사회다. ··· 사회를 인도하는 규칙은 조화다.〉"(170-1)


5 메스머에서 위고까지


"19세기에 1780년대식 순수한 메스머주의자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혁명 이후 메스머주의자들은 전반적으로 영성주의의 특성을 보이는 그들 나름의 관념들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자연의 물리 법칙과 도덕 법칙의 상호작용을 강조했고 전형적으로 윤리와 정치의 〈뉴턴적〉 이론을 옹호했다. 그들은 빛, 전기, 다른 요인들에 관한 유사과학적 분석을 내놓았다. 또 원시 언어의 편린들에 의해 알려진 원시의 자연사회를 믿었고 그에 상응하는 범신론, 신정정치, 배성교拜星敎, 점성술, 천년왕국설, 윤회설의 요소들 그리고 신령들의 위계질서가 인간과 신을 연결짓는다는 믿음의 요소들을 담고 있는 원시 신앙에 대한 믿음을 견지했다. 메스머주의자들은 이런 관념들─많은 영성주의자들의 상투 수단─에 그들 특유의 의학 이론, 유체, 몸이 수면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내면의 인간이 공간과 시간을 자유롭게 떠돌며 내부의 감각들이 영의 세계와 접촉하는 것이라고 흔히 설명되는 몽유의 실행을 덧붙였다."(183-5)


"메스머주의는 정치 이론가들─신비주의 보수주의자들만이 아니라 자유주의자들과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들까지─에게 지속적으로 영감을 주었다. 혁명 이후 리옹의 주도적 신비주의자였던 피에르 발랑슈는 메스머주의를 포함해 일루미니즘 교리들을 대부분 다루었다. 그리고 파브르와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보수적이고 신정적인 사상들과 같은 선상에 섰다. 그는 또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반대자인 신비주의자 샤를 푸리에를 놀라게 했다. 발랑슈의 《뷜탱 드 리옹》에서 푸리에는 자신의 철학을 이끄는 원칙인 우주적 조화를 발견했다고 선언했다. 베르가스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물리 법칙과 도덕 법칙의 유사성에 근거하여 자신의 체계를 확립한 푸리에에게 우주적 조화는 임박한 종말에 뒤따를 미래의 유토피아 국가를 지배하게 될 것이었다. 〈모든 정치·도덕·경제 이론들을 불 속으로 집어던지고 가장 놀라운 사건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 사회적 혼란으로부터 우주적 조화로 갑작스럽게 이행하기 위해서.〉"(202-3)


"발자크의 장례식에서 관을 운구하고 추모사를 낭독했던 빅토르 위고는 초자연적인 것을 향해 가는 발자크의 마지막 여행에서 더할 수 없이 적합한 수행원, 혹은 더할 수 없는 메스머주의자 호위병이었다." "메스머주의의 가장 강한 물결이 윤회하는 영혼, 보이지 않는 영혼의 위계, 원시 종교, 그리고 영성주의의 다른 요소들과 함께 위고의 시들을 관통해 흘렀다. 《레미제라블》에 부친 위고의 〈철학적 서문〉에서 메스머주의는 《인간 희극》에 부친 발자크의 서문에서만큼이나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했다." "메스머주의는 태양과 달과 별들이 유체의 바다에서 조용히 회전하고 있는 〈우주적 조화〉에 대한 전망으로 위고를 안내했다. 위고는 그것을 〈생명의 유체〉라고 칭했다." "18세기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는 (딸을 잃은) 위고의 고통을 담아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위고는 종교로 향했지만 계몽사상과 함께 죽은 정통 그리스도교로 향하지는 않았다. 그는 과학, 혹은 〈고등과학〉의 도움으로 천상을 추구했다."(219-21)


6 결론


"상류사회를 겨냥했던 메스머주의의 특성은 1780년대 동안 상류층들 사이의 삶의 풍조, 18세기 프랑스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풍속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메스머주의의 급진적인 성격이 바뤼엘 신부가 상상했던 것과 같은 혁명 분파들의 비밀연계망에 의해 앙시앵 레짐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글을 아는 상류층 사이에 믿음이 결여된 탓에 체제의 기반이 얼마나 침식되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작용한다. 라파예트, 브리소, 베르가스, 카라는 체제에 맞선 그들의 공격을 조정할 다른 기회를 찾았을 것이다. 그들이 체제의 악을 확신하는 데 반드시 메스머주의 이론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메스머의 입에서 나오는 뜻 모를 게르만어에서 혁명적 메시지를 읽어냈을 때, 프랑스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기 위한 토론의 장으로서 메스머의 통을 선택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질서에 대해 느끼는 불만의 깊이를 깨달았을 것이다."(229)


"급진주의자들에게 메스머주의는 그들의 발전을 가로막았거나 가로막는 것으로 보였던 기성 학계에 맞설 무기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급진주의자들에게 〈과학적〉 정치 이론을 제공했다. 브리소 같은 젊은 혁명가에게 메스머주의는 혁명에 앞서 10년 동안 가장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최첨단 과학의 유행이라는 쟁점에 관여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뿐 아니라 그의 내면의 감정들, 프랑스의 과학과 문학계의 정상에 오르겠다는 야심과 정상에 있는 이들에 대한 증오를 일깨웠다. 정상은 본래 협소한 것이지만, 브리소, 카라, 마라는 기성 학계의 협소함을 정치적 견지에서 해석했다. 그들에게 학자들은 낮은 신분의 출중한 천재들을 탄압하는 철학의 〈독재자〉와 〈귀족〉으로 여겨졌다. 혁명이 발생하자 탄압에 대한 그들의 증오심은 철학에서 정치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런 증오심은 불의 성질이나 열기구의 방향을 통제하는 최선의 방식에 관한 쇠락한 담론들 속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명의 불꽃이었다."(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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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우리 안의 적
이재석 외 지음 / 지식너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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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축제의 시간에 돌아본 '우리의 그늘'


"〈이범윤의 부하 김익준이라는 자가 얼마 전 간도로 와서 잠복하고 있다는 설이 있어서 밀정을 시켜 탐색하게 했습니다. 우리 밀정은 이 사람을 교묘한 방법으로 대안對岸 온성穩城으로 유인했고 헌병대가 그를 체포하였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한일병합 직후인 1911년3월 간도총영사가 고무라 주타로 외무대신에게 올린 보고서 중 일부다. 이런 식의 서술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이렇게 밀정의 밀고를 토대로 작성된 내부 기밀 보고서는 일본 자료실과 공공기간 곳곳에 남아 있다. 너무 많다. 너무 많아 다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취재 기간 동지들에게 치명적인 정보를 일제에 속속 전달하는 또 다른 동지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씁쓸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들의 세세한 밀고 덕분에(?)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내역이 소상히 드러나는 역설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밀정의 밀고가 없었다면 항일운동의 역사도 쓰일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우스갯소리가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가 싶었다."(12-4)


2장 임시정부의 얼굴, 누가 빼돌렸나?


"1919년 7월 9일, 조선군참모장 오노 도요시는 육군차관 야마나시 한조에게 사진이 송부된 보고서를 올린다. 〈이 사진은 상하이에 있는 배일 조선인 간부 및 결사자 200여 명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에 나오는 사람에게 한 명당 한 장 외에는 절대로 더 나눠주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분실할 때에는 제재를 받는다는 서약 아래 엄밀하게 보관된 것입니다.〉 1919년 4월에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이 보고서가 7월에 작성됐으로, '상하이에 있는 배일 조선인 간부 및 결사자 200여 명'은 임시정부 사람들을 말한다." "사진을 입수하기 위해 일제가 동원한 수단이 있었다. 드디어 밀정이 등장한다. 〈프랑스 조계 장안리에 있는 배일 조선인 상인 곽윤수─인삼을 팔아 모은 돈을 임시정부에 지원하고 자신의 집을 임시정부 사무실과 숙소로 제공했다. 2010년 대통령 표창이 수여됐다─의 집에 걸려 있던 것입니다. 곽윤수의 처남을 시켜 은밀히 짧은 시간 동안 밀정에게 가져오게 해서 복사한 것입니다. 이를 송부합니다.〉"(24-33)


3장 항일운동의 또 다른 서술자, 밀정


"밀정 엄인섭은 연해주 지역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의병장 가운데 한 명이다. 1907년부터 반일 의병운동에 적극 가담한 그는 최재형, 홍범도, 이범윤과 긴밀했고, 안중근 의사와도 가장 가까운 동지였다.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뤼순 감옥에서 심문받을 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생활할 당시 엄인섭과 가장 친하게 지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1908년 안중근이 항일을 다짐하며 손가락을 끊었던 그 유명한 '단지동맹'을 할 당시, 엄인섭도 여기에 동참한 사람 중 하나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간도 15만 원 탈취 사건의 거사 주인공들 중 일부가 엄인섭에게 사건 전말을 털어놓는 것을 잠시 불안해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해주 지역을 대표하는 의병장 출신인 그를 밀정으로 의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그들은 러시아 쪽에 발이 넓은 엄인섭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은신처를 포함한 모든 정보가 엄인섭의 입을 통해 일제에 고스란히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54-5)


# 간도 15만 원 탈취 사건 : 비밀결사 철혈광복단의 임국정, 윤준희, 한상호, 최봉설 등이 조선은행의 현금 수송 행렬을 습격해 돈을 탈취한 사건. 15만 원은 현재 가치로 1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4장 안중근의 동지, 그가 걸어간 '다른 길'


"1909년, 안중근에게는 동지가 있었다. 마지막 격발의 순간에는 혼자서 결단하고 감행했지만, 세 명의 동지가 함께 거사를 준비했다.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가 그들이다. 역할 분담이 있었다. 안중근은 하얼빈역을 맡고, 우덕순과 조도선은 차이자거우역을 맡았다 .유동하는 중간 연락책과 통역을 맡았다." "조선인회(또는 조선인민회)는 만주 지역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보조기관이자, 독립운동가와 일반 조선인들을 떼어놓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일본 경찰이 배치된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별 조선인민회가 만들어졌고 지역별 민회에는 회장, 부회장, 주사와 서기, 대의원을 두었다.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교육 사업이나 위생 관리 같은 통상적 업무를 수행하고 일본 행정기관의 명령을 하달하기도 했지만, 독립운동 탄압을 지원하고 만주 지역 조선인 사회의 동향을 감시했다. 이를 위해 상시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했다. 1925년의 우덕순은 그런 대표적 친일단체의 하얼빈지회 회장이 되어 있었다."(68-72)


5장 김좌진 최측근이 밀고한 '배신의 기록'


"그는 김좌진 장군의 막빈幕賓, 그러니까 비서이자 참모였다. 그 자신도 청산리 전투에 참가했다. 일본군을 상대로 빛나는 승전을 거뒀다. 대한민국도 마땅히 그를 인정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됐다. 그는 전장에서 일기를 남기기도 했다. 1920년 청산리 전투가 있기 직전, 자신이 몸담고 있던 독립군 부대 북로군정서의 내부 상황을 적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1924년 일본 외무성이 작성한 극비 문서에도 등장한다. 1924년이면 청산리 전투가 있고 4년 뒤다. 안타깝게도 그사이 그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독립군 참모에서 일제의 밀정으로 탈바꿈했다. 그의 이름은 이정李楨이다." "그가 밀고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된 외무성 기밀문서의 분량은 무려 57쪽에 달한다. 독립군 간부의 인상착의와 특징, 군자금 모금 책임자와 활동 내용, 김좌진과 김원봉의 공동 의거 계획 등 대한독립군단의 온갖 치명적 정보가 담겼다. 학계 전문가들은 이 문건을 〈일본 입장에선 최고 수준의 정보〉라고 평가했다."(86-94)


6장 얼굴 없는 밀정이 기록한 '만주벌 호랑이'


"밀정은 홍범도 개인을 검거할 수 있을 만한 단서를 일제에 세세히 밀고한다. 〈홍범도의 소재지는 혜산진 대안 일리日里에서 약 30리 떨어진 신약수동新藥水洞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 지역 동북쪽 사헌 부락에 가옥을 짓고, 이곳에 거주하면서 대문에 조사실이라 적은 종이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부하들과 동거하면서 망을 보게 하여 경계하고 있습니다.〉" "홍범도 부하들의 특징은 어떨까. 밀고자에게는 한솥밥 먹던 동료들일 것이다. 〈부하들은 복장도 일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가명을 써서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타인이 있는 장소에서 부하들끼리 대화를 하고자 할 때, 또는 본명을 알고자 할 때에는 서로 오른손을 머리 높이 올려 알아보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일제는 밀고자를 이렇게 평가한다. 〈홍범도의 부하 예승준(22세)은 소양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이 매우 뛰어나고 성격이 활발합니다. 조금도 감추는 것 없이 진술했으며 대체로 사실로 보이는 점이 많습니다.〉"(123-5)


7장 김원봉을 밀고한 부하, 그에게 수여된 건국훈장


"1926년 일본 외무성 내부 보고 문건이다.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다이쇼 14년(1925) 11월 28일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함께 한커우漢口로 왔고 김원봉은 체류 1일째에 베이징을 경유하여 광둥으로 향하였습니다.〉 누군가의 밀고다." "밀정은 누구였을까. 문서 추적을 이어갔다. 밀정의 정체와 관련한 핵심 정보가 나온다. 〈의열단 간부 중 김호라는 자가 얼마 전 출두했습니다. 그 사람 말에 따르면 자신은 상하이 주재 조선총독부 통역관 오다 미쓰루의 밀정으로 여비를 지급받아 의열단원들의 동정을 조사하려고 한커우로 왔다고 합니다. 의심할 만한 말이 없고 여비 지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호는 의열단원이자, 조선총독부 통역관 오다 미쓰루의 밀정이자, 도박을 조항하는 방탕한 사람이었다. 본적은 경상남도 하동, 본명은 김재영이다. 그는 국가보훈처 공훈록에서 공적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 독립유공자였다. 의열단 활동과 청년동맹회에 참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143-9)


8장 임시정부의 비밀 자금줄, 경주 최부잣집


"김구 선생은 해방 뒤 이런 이야기를 남긴 바 있다. 〈상하이 임시정부 자금의 6할은 백산에게서 나왔다.〉 백산白山은 안희제安熙濟 선생의 호다. 그가 설립한 백산무역주식회사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1922년 작성된 계약서를 보면 백산은 조선식산은행에서 35만 원을 대출받았다. 35만 원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00억 원에 가까운 거금이다. 계약 조항 8조에 〈최준이 백산무역회사와 연대해 채무 이행의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최부잣집 종손 최준은 당시 백산무역주식회사의 대표이사였다. 문서 뒷부분에는 대출을 위해 저당 잡힌 최부잣집 부동산 목록이 수십 쪽에 걸쳐 빼곡히 적혀 있었다. 경주와 울산 지역의 논밭 785필지다. 22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데, 여의도의 75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임시정부에 자금을 대느라 경영 위기에 빠진 백산무역주식회사를 살리기 위해 최부잣집이 거의 전 재산을 걸어 은행 대출 보증을 서준 것이다."(162-7)


9장 식민지 권력자가 내린 지령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파괴하라〉


"우쓰노미야 다로 조선군사령관은 1918년부터 2년 동안 조선에 머물렀다. 그는 사이토 총독에 이어 한반도 내 권력 서열 2위였다. 그의 목표는 상하이 임시정부를 초기에 무너뜨리는 것,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절붕絶崩'시키는 것이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작성된 그의 일기에는 당시 독립운동가들을 회유하려는 정황이 상세히 담겨 있다. 〈9월 6일 토요일, 맑음. 무역상 시부카와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내 옛 지인으로 상하이에 망명 중인 조선인 김상설(초명 김봉석)이 배일排日 거두巨頭 김복金復을 데려와 내 옛 성의에 보답하고 이로써 과거의 죄를 속죄하고 싶다고 했다 한다. 시부카와와 함께 규슈까지 와서 숨어 있다고 했다.〉" "배일 거두라고 표현된 김복, 아니 김규흥은 독립운동가로 우리 역사에 기록돼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활동한 공로 등을 인정해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현재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177-84)


10장 〈김구를 잡아라〉 특종공작에 동원된 밀정들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남목청 사건의 배후로 박창세를 지목했다. 그전부터 박창세가 일본과 손을 잡았다는 정황이 다수 포착돼 의심스러웠는데, 그가 반反 김구파로 불만을 품은 이운한을 부추겨 총을 쏘게 했다는 것이다.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내고 한국독립당 특무대장을 맡기도 했던 박창세가 어쩌다 일제 협력자로 변절한 것일까. 단서는 일본 문건에 등장한다. 〈박창세를 회유하고 그가 김구를 처치하도록 획책하고 있습니다. [···] 김구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런 공작에는 실로 적당한 인물입니다. [···] 그의 차남 박제건이 권투선수가 되어 형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으니 총영사관과 협력해 귀국하는 데 편의를 봐주고 이를 박창세를 회유할 방법으로 삼고자 합니다.〉 가족을 볼모 삼아 밀정으로 포섭한다는 전략이다. 박창세의 둘째 아들 박제건은 전도유망한 권투선수였다. 실제로 그는 1936년 4월에 상하이를 출발해 도쿄를 거쳐 서울에 도착한다. 문건에 나오는 대로다."(217)


# 남목청 사건 : 1938년 5월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모인 조선혁명당 당사 남목청에 이운한이라는 자가 난입해 들어와 권총을 난사한 사건. 김구는 가슴에 총탄을 맞았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11장 3·1운동 계보도, '휘발된 사람들'을 찾아서


"일제가 수사자료로 작성한 3·1운동 계보도에 나오는 140명을 세 개의 범주로 분류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들이다. 이들은 국가가 이미 공인한 사람들이다." "둘째, 계보도에는 주도자급 인물로 등장하지만 훗날 친일파로 변절한 사람들이다. 최린과 최남선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람들도 역사적 평가가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다. 이들이 중요하다. 일본 경찰이 보기에 3·1운동 주도자급 인물이지만 우리 역사가 공인하지 않은 사람들, 말하자면 '역사에서 휘발된 사람들'이다. 140명 가운데 34명이 세 번째 범주로 추려졌다. 국가보훈처에 확인해본 결과 이 가운데 9명은 독립유공자 심사가 진행 중이고, 10명은 친일이나 월북 등 이상 행적이 확인된 사람들이라는 답변이 왔다. 그래도 나머지 15명이 의문으로 남았다. 이들을 3·1운동의 숨은 주역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10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이들을 찾아 공훈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230-1)


12장 해방과 동시에 사라진 이름, 밀정


"해방 70년이 넘은 지금 친일파에 대한 학문적·공식적 평가와 서술은 어느 정도 누적돼온 게 사실이다. 오늘날 누구도 이광수와 최남선을 좋게 기억하진 않는다. 그러나 밀정은 어쩌면 '해방과 동시에 사라진 이름'이다. 공개적 행보를 보인 친일파와 달리 사람들은 밀정의 정체를 잘 알아볼 수 없었다. 의심의 눈초리야 보낼 수 있었겠지만 국가가 공인한 반민특위마저 와해되는 판국에 명확한 증거가 없는 밀정을 찾아내 단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야금야금 스며들었다. 대한민국 군과 경찰에, 정치권과 관공서에 알게 모르게 흡수되었다. 남몰래 스며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주특기이자 전공 분야였다.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속에 밀정의 이름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군 100명보다 밀정 한 명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이 끼친 해악은 치명적이었지만 청산은커녕 역사적 평가 측면에서도 그들은 무풍지대에서 보전될 수 있었다."(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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