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 - 근대의 빛과 그림자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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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카트린 드 메디시스, 프랑스 흑역사의 주인공


"도그마에 집착하지 않았던 카트린은 신교도들에게 정치적 관용을 허락하는 내용의 생 제르맹 칙령을 반포했다(1562). '소위 새로운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여, 공개된 장소가 아닌 실내에서 예배를 보는 것은 허락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 칙령을 공식화하려면 파리 고등법원에 등록해야 하는데, 이 기관을 가톨릭 세력이 장악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오히려 그런 사실을 접한 가톨릭 측의 공분을 샀다.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었다. 푸아시 콜로키움이 개최되고 몇 달 후 드디어 터질 것이 터지고 말았다. 가톨릭 측에 의한 신교도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기즈 가문의 지도자인 프랑수아 공의 군사가 샹파뉴의 바시라는 작은 도시를 지나가다가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던 수십 명의 신교도를 발견하고 살해한 것이다. 그전에 신교도들이 기즈 공을 비난했던 게 화근이었다. '바시 학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을 대개 첫 번째 종교전쟁으로 본다."(32-3)


# 1572년 8월 24일, 〈생 바르텔레미 학살〉 발생


"1589년 나바르의 앙리(앙리 4세)는 법률상으로 국왕이 되었지만 국민 대다수가 그를 완강히 거부한 탓에 파리 입성을 호시탐탐 노리며 근교를 배회했다." "그가 선택한 최후의 결정타는 자신의 개종이었다.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도인 데 반해 신교도 왕이라는 게 힘들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어쨌든 국왕은 승리를 거두고 일단 평화를 되찾았다. 이제 신교도들은 어찌 될 것인가? 이 문제를 수습한 것이 1598년 반포된 낭트 칙령이다. 이 칙령은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이되 신교도들은 예배의 자유를 누리며, 그들의 신변을 보장하기 위해 왕국 내 일부 신교도시들을 안전지대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 신·구교 모두 이 칙령에 대해 불만이 컸지만, 그렇다고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앙리 4세는 카트린의 정책을 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국왕이 된 후 선정을 펼쳐 프랑스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국왕이 된 앙리 4세도 결국 가톨릭 광신도에게 암살당했다."(53-4)


2장 침묵공 빌렘, 네덜란드 독립의 영웅


"정치적인 면에서 네덜란드는 아직 중세적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도시를 방어하기 위한 노력은 얼마든지 찬성하지만 나라 전체를 방어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개념은 없었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넘어 전국 단위로 사고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바야흐로 근대국가로 발전해 나아가려던 이 시기에 진정 필요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고 지지하는 '전국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바로 빌렘이었다." "그가 설파한 것은 국왕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평화였다. 즉, '가톨릭' 강요에 저항해 '신교'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가톨릭만 강요하는 '편협성'에 저항해 '관용'을 주장한 것이다. 그는 (네덜란드 총독) 마르가레트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만일 평화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엄청난 사태가 일어날 거라고 경고했다. 불행하게도 상황은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펠리페 2세에게는 빌렘과 같은 사고의 유연성이 없었다. 신교에 대한 용인은 비겁한 짓이며, 이단은 확실하게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73-4)


"1581년 전국의회는 '철회령'을 공표했다. 그 내용은 각 주의 위원회가 주권을 가지며 주의 통치자는 주에서 부여한 권한만을 행사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펠리페 2세에 대한 충성 서약을 철회하고 그것을 네덜란드 연맹에 대한 충성 서약으로 대체한다고 선언했다. 신민이 자기들까리 협의하여 국왕에게 '이제부터 당신은 우리의 지배자가 아니니 우리의 충성을 철회하노라'고 선언한다는 것은 역사상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 문건의 주요 내용들은 나중에 미국 독립선언의 본보기가 되었다." "한편 네덜란드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결정적인 순간에 민중 세력이 오라녀 가문을 열렬히 찾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스파냐는 오라녀 공 빌렘을 배신자로 규정하고 그를 처치하기로 결정했다. 1584년에 발타자르 제라르라는 프랑슈-콩테 출신의 가톨릭 광신도가 빌렘을 암살했다. 빌렘은 세계 최초로 총으로 암살된 정치인이 되었으니, 말하자면 암살도 점차 근대화되고 있었다."(89-90)


3장 갈릴레오 갈릴레이, 우주의 실체를 파고든 불굴의 과학자


"1604년 10월 15일, 밤하늘에 새로운 별이 나타났다. 현대의 용어로 말하면 초신성이 발견된 것이다. 사실 1572년에도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가 같은 현상을 확인했었다. 이 현상은 고전적인 우주 모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천체는 변하지 않는 완벽한 물질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어떤 변화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새로운 천체는 어디서 보더라도 시차視差, parallax(관측 위치에 따른 물체의 위치나 방향의 차이)가 없었다. 이 말은 곧 그 현상이 달과 같은 가까운 곳이 아니라 머나먼 우주에서 일어났다는 의미며,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체제가 틀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공의 낙하운동만이 아니라 우주의 현상에 대해서도 막연한 추론이 아닌 실제 관찰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광활하고 먼 우주 공간을 맨눈으로 본들 얼마나 관찰하겠는가. 바로 이때 등장한 결정적 도구가 망원경이다.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이용해 처음으로 우주의 속살을 들여다본 인간이 되었다."(104-5)


"갈릴레오는 1625~1630년에 걸쳐 쓴 《밀물과 썰물에 관한 대화》에서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만큼이나 그럴듯하다는 설명을 제시했다. 이로 인해 1633년에 열린 종교재판에서 이단 판정을 받은 그는 일곱 명의 재판관들 앞에 무릎을 꿇고 지동설이라는 이단의 주장을 편 것을 철회한다는 참회의 말을 했다." "갈릴레오는 종신형 판결을 받았으나 감옥 대신 그의 친구이자 시에나 대주교인 아스카니오 피콜로미니의 집에서 머물도록 허락해주었다. 대주교는 그에게 호의적이었으며, 가끔 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과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1633년 12월 종교재판소는 갈릴레오에게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판시했다. 말하자면 가택연금으로 최종 결정난 것이다." "갈릴레오는 생의 마지막 시기까지 자신이 어느 누구보다 독실한 신자라고 주장했다. 그건 빈말이 아니었다. 과학과 종교는 표면적으로 모순되어 보이나 사실은 같은 진리의 두 측면이라는 게 그가 줄곧 견지한 태도였다."(126, 129)


4장 독일의 악마들, 마녀사냥 이야기


"악마론에 정통했던 프리드리히 푀르너는 역사 연구에 매진한 후 매우 특이한 결론을 내렸다. 사악한 마법을 옹호하고 또 마녀 색출을 방해하는 중요한 세력이 신교도라는 것이다. 루터파와 칼뱅주의자들의 도움을 받아 사방에서 악마의 추종자들이 날뛰고 있으며, 갈수록 그 위험이 더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마녀사냥을 가톨릭과 신교 간의 싸움이라는 프레임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바는 하나의 적을 깨부수면 곧 그보다 더 사악한 적이 등장하여 지금의 정점에 이른다는 것이다. 지금이 신과 악마 사이에 마지막 대결이 펼쳐지는 최후 단계다. 그러니 시 당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맡긴 사명에 따라 세상을 파괴하는 암흑의 세력들을 척결하는 데에 주저 없이 나서야 한다. 마녀는 말세에 인간 사회를 파괴하고 인류의 구원을 저해하는 악마의 편이며, 더 이상 우리 같은 부류의 인간이 아니다. 이같은 주장은 가공할 고문과 처형이 인류의 구원이라는 최고의 가치와 맞물려 정당화되었다."(155-6)


"마녀사냥이 종식된 결정적 계기는 사법개혁이었다. 마녀재판도 엄연히 사법재판의 한 종류다. 그러니 더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재판 제도가 자리 잡으면 마녀재판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고문에 의한 자백을 비판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프리드리히 슈페는 고문을 비판하는 책 《범죄의 담보》를 익명으로 출판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런 힘의 흐름을 이어받아 결정적으로 마녀재판을 끝장낸 동력은 근대 국가의 발전에서 나왔다. 예컨대 파리 고등법원은 지방법원에서 마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의 항소심에서 형을 감면하거나 아예 무죄판결을 내렸다. 무지몽매하거나 광기에 찬 지방 권력자가 저급한 수준의 사법 제도를 악용해 극단적 힘을 행사하려 할 때, 이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은 전국 단위의 사법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훨씬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발전해가는 중앙의 사법 제도가 지방의 사법 제도를 통제하면서 마녀사냥의 광기도 수드러들었다."(165-7)


5장 루이 14세, 세상을 암울하게 만든 태양왕


"(마자랭 혹은 콜베르 같은) '재정가financier'는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사적인 방식으로 조달하는 존재였다. 그들은 부르주아, 귀족, 성직자 등 지방 유지들에게서 거액을 모아 국가에 융통해주었다. 중앙정부로서는 세금을 거두는 게 워낙 힘든 상황에서 당장 거액을 확보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그 대신 재정가들은 국가로부터 세금을 거둘 권리를 부여받아 빌려준 돈보다 더 큰 액수의 돈을 거둠으로써 고수익을 얻었다. 국가재정 체계를 이용한 짭짤한 돈벌이였다. 행정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관료제가 정착된 듯했지만, 실제로는 사당私黨 혹은 파벌 싸움에 좌우되었다." "권력자는 자신의 부하들을 지켜주고 부하들은 권력자에게 충성을 바친다. 국사國事의 중요한 부분이 이런 사적 관계망에 의해 운영되었다. 이런 점들을 보면 절대주의 국가 체제는 표면적으로는 국왕이 나라 전체를 단단히 틀어쥐고 있고 지방의 신민들이 철저히 복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호 협력과 균형을 특징으로 지녔다."(181)


"루이 14세는 왕권 강화를 위해 1664년부터 일부 지방에서 귀족 조사 사업을 시작했고, 곧 이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자신이 진짜 귀족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동시에 귀족의 서열과 작위를 체계화했다. 왕실 직계가족이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그다음은 방계가족, 그다음은 공작 등의 순으로 서열화했다." "이렇게 해서 국왕과 귀족의 관계가 새로이 정립되었다. 국왕의 인증을 받아야 진짜 귀족이고, 국왕의 재정에 기꺼이 돈을 대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으며, 국왕이 거주하는 궁정에 줄을 대면 고위직을 얻게 된다. 모두 국왕을 흠모하고 국왕의 은총을 갈구하게 되었다. 귀족들은 태양왕을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되어갔다. 누구나 태양왕이 거처하는 베르사유궁으로 가서 한 자리 잡고 한 줄기 햇빛을 쬐고 싶어 했다. 그곳에서 국왕은 지상 최고의 권력자처럼 행세하고, 입궐을 허락받은 귀족은 그런 국왕을 마치 신처럼 떠받는 척했다. 베르사유궁은 절대주의를 표현하는 종합 예술 무대였다."(186-7)


"점차 통치에 자신감이 붙은 루이 14세는 1685년 10월 17일, 낭트 칙령을 폐지하는 내용의 퐁텐블로 칙령을 공포했다. 남아 있던 신교 교회를 파괴하고, 신교 예배를 금지했다. 목사들에게는 15일 내에 국외로 떠나라고 명령했고, 이를 위반하면 갤리선에 태워 노를 젓게 했다. 목사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변호사 자격증을 주는 유인책도 썼다. 신교도들이 재산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도 금지했다. 해외로 가되 재산은 남겨놓고 떠나라는 것이다. 이런 극심한 압박을 견디다 못해 랑그도크, 푸아투, 베아른 등지에서 신교도들이 가톨릭으로 집단 개종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85만 명 정도(당시 프랑스 인구 2,200만 명 중 3.8퍼센트)였던 신교도들 중 많은 수가 신교 국가로 이주했다. 특히 네덜란드와 잉글랜드로 많이 갔고, 그다음으로는 스위스와 브란덴부르크 등지로 이주해갔다. 이것이 프랑스 경제를 결정적으로 망친 요인이라고 하면 지나친 속단이겠으나, 큰 피해를 입힌 것은 분명하다."(198-9)


6장 레오폴트 1세와 카를로스 2세,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 지도를 바꾸다


"1683년 오스만군은 베오그라드를 거쳐 빈을 침공했다. 남부 오스트리아는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가공할 대군이 밀려오는 것을 본 레오폴트 황제는 멀리 파사우로 몸을 피했다. 결과적으로 황제가 몸을 피한 건 잘한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교황 인노첸시오 11세가 주도하여 주변 국가들이 참전을 결정했다. 폴란드의 소비에스키가 2만 5,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왔고, 그 밖에 작센, 바이에른, 바덴 등도 참여했다. 훗날 신성동맹이라 불리는 연합군 전원이 말을 타고 돌진한 역사상 최대의 기병 공격으로 오스만군이 무너졌다." "결정적 패배를 겪은 후에도 오스만 제국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공격했다. 이 시기에 동유럽 지역은 유럽과 오스만 제국이 군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격렬하게 싸우는 격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오스만 제국이 몇 차례에 걸쳐 유럽에 패배한 걸 보면, 군사적으로 정점을 지나 쇠락기로 접어들었음이 분명하다. 이후 중동부 유럽은 점차 합스부르크의 세력하에 들어갔다."(229-32)


"1700년 11월 1일,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에스파냐에서 합스부르크 왕조가 끝나고 부르봉 왕조가 들어섰다. 이제 합스부르크 세력은 유럽 전체를 제국의 영토로 만들겠다는 중세적 꿈을 영원히 포기해야 했다."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동유럽 지역의 합스부르크 제국은 서쪽의 유럽 중심부로 확대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남동쪽으로 세를 키워갔다. 합스부르크가 헝가리와 슬라보니아를 차지하고, 베네치아는 달마티아와 펠로폰네소스를, 폴란드는 포돌리아를 회복했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얻은 땅이 합쳐지면서 신성로마제국의 규모는 두 배가 되었다. 합스부르크의 핵심 지역은 이제 서쪽의 콘스탄츠 호수에서 동쪽의 군사 변경 지역까지 거의 500킬로미터에 이르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종교적 다양성이 커졌다. 루터파 작센인, 유대인, 칼뱅파 헝가리인, 정교 세르비아인과 루마니아인이 신성로마제국 안에 공존했고, 또 보스니아와 트라키아에 학살에서 살아남은 상당수의 무슬림이 남았다."(246) 


7장 베르니니, 영원의 도시 로마를 조각한 예술가


"1623년 마페오 바르베리니 추기경이 교황 우르바노 8세로 즉위하여, 베르니니에게 교황청 예술 활동을 총괄하는 책무를 맡겼다. 베르니니는 1629년 성 베드로 성당 건축 총감독으로 임명되어 성당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종교개혁으로 신·구교 간 갈등이 극심하자, 가톨릭 측은 자체의 개혁('가톨릭 종교개혁' 혹은 예전 용어를 빌리면 '반동 종교개혁')을 통해 스스로 교리와 조직을 정비했고, 17세기에 이르면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한 상태였다. 바로크 미술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의미를 부여하여 '이단(신교)'이 패배하고 가톨릭이 승리했다고 선언하고 이를 장대하게 확인하는 예술이다. 여기에서 신교와 가톨릭 예배 장소의 본질적 차이가 드러난다. 신교의 경우 원칙적으로 기도와 설교의 공간이어서 별다른 장식 없이 단순하다. 반면에 가톨릭은 천상의 세계를 재현해보이려는 듯 지극히 화려한 장식을 자랑한다. 17세기 로마는 바로크 예술의 중심지였고, 그 선두에 베르니니가 있었다."(259-61)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북유럽을 호령했다. 그의 치세에 스웨덴은 유럽의 강국으로 우뚝 섰다. 그런데 크리스티나가 다섯 살 때 부왕이 전사하여 그녀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어서, 여장부 스타일인 크리스티나는 14세부터 각료회의에 참석하더니, 18세에 섭정을 끝내고 정식으로 즉위했다. 정치와 외교를 직접 관장하는 한편 외국의 학자, 예술가, 작가 들을 불러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중 한 명이 데카르트다. 그러던 그녀가 27세에 갑자기 양위를 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비밀이 하나 있으니 그녀가 비밀리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는 사실이다. 유럽 최강의 신교 국가 여왕이었던 크리스티나의 양위는 개인적인 결정이지만 로마에서는 이를 가톨릭 신앙의 승리로 해석했다."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로마에 온 크리스티나는 많은 예술가를 후원했다. 그중에는 스카를라티와 코렐리 같은 음악인들도 있지만, 이들보다 더 사랑은 받은 이는 베르니니였다."(277-9)


8장 존 로, 탐욕과 부패의 거품을 일으키다


"1715년 루이 14세가 사망했다. 루이 14세가 남긴 유산은 참담했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다 보니 프랑스 재정은 문자 그대로 파산 상태였다. 프랑스 정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보자는 심경으로 존 로를 불러들였다." "그의 사업의 핵심 요소는 두 가지다. 첫째, 그가 늘 견지해온 생각대로 토지를 담보로 화폐를 발행하는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다. 금고 안에 보관한 귀금속의 가치만큼 화폐를 발행하면 너무 제한적이다. 화폐량을 늘리려면 다른 재원이 필요한데, 가장 적절한 것은 바로 토지다. 다만 예전 주장과 다른 점은 국내 토지가 아니라 해외 토지를 개발하여 담보로 삼자는 것이다. 그가 찾아낸 것은 앙투안 크로자라는 사람이 설립했다가 현재는 지지부진한 루이지애나 회사였다. 1717년 9월 5일, 존 로는 북미 지역의 토지 개발에 관한 특권과 캐나다 비버 가죽 거래의 특권을 가진 이 회사를 인수했다. 일명 '서양회사Compagnie d'Occident'라고 했는데 세간에서는 '미시시피 회사Mississippi Company'라고 불렀다."(297-9)


"두 번째는 국채를 주식으로 전환하여 회사의 자본금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존 로의 혁신적이면서 동시에 사기성 높은 아이디어가 빛나기 시작한다. 한 주에 500리브르인 주식 20만 주를 발행하여 1억 리브르의 자본금을 모으되, 투자자들은 현찰이 아니라 정부 채권으로만 이 주식을 구입할 수 있도록 규정했고, 회사는 투자자들에게 액면가의 4퍼센트 이익을 보장했다. 당시 국채는 액면가의 약 30퍼센트로 거래되고 있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액면가 100만 원이던 국채가 '똥값'이 되어 실제 시세는 30만 원밖에 안 되는데, 이것으로 새로 설립하는 회사 주식을 사면 100만 원 제값을 다 쳐주고, 게다가 매년 4만 원의 이익까지 보장한다! 사람들은 귀가 솔깃했다. 울화통 터지는 국채를 하루빨리 처분하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국채 소유자들이 대거 주식으로 갈아탔고, 그 결과 루이 15세 정부가 갚아야 할 부채의  20퍼센트가 정리되었다. 여기까지는 모든 일이 잘되었다."(299-300)


"존 로는 거침없이 사업 규모를 확대해갔다. (동인도와 서인도 지역 회사를 합병한) 소위 '인도회사'는 1719년 6월에 두 번째 주식 발행을 했다. 한 주당 500리브르의 주 5만 주를 10퍼센트 프리미엄을 붙여 모집했다. 이번에는 1차 모집 때와 달리 채권이 아니라 금이나 은행권으로만 투자할 수 있었고, 게다가 매우 특이한 투자 방식을 규정했다. 미시시피 회사 주식 100단위를 산 사람이 새 회사 25단위의 주식 매입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어머니' 회사의 4주를 가지면 '딸' 회사의 한 주를 살 수 있다. 욕심에 눈먼 투자자들은 기꺼이 '어머니'와 '딸'에 투자했다." "더구나 주식 매입 대금을 20개월에 걸쳐 분할하여 지불할 수 있도록 조치했기 때문에, 소액만 가지고 주식 매매에 뛰어든 사람도 많았다. 주가가 오르자 투자자들은 큰 수익을 올렸다." "프랑스뿐 아니라 스위스, 함부르크,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사람들도 투기에 뛰어들었다. 버블은 국제적인 성격을 띠어갔다."(305-6)


"마침내 버블이 터졌다. 주식을 팔려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주식 가치와 화폐 가치가 동시에 급락했다. 1720년 7월에 왕립은행에서 은행권을 정화로 상환할 수 없게 되자, 파리에서 민중들이 들고일어났다. 비비엔 거리에 위치한 은행 앞에 1만 5,000명이 운집하여 시위를 벌이다가 10여 명이 압사하는 일도 있었다. 11월에 지폐 유통이 중단되었고,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특히 단기 투기 수익을 노리고 '단타 매매'를 하느라 회사 명부에 이름이 등재되지 않은 사람들은 주식을 몰수당했다." "존 로 체제의 실패는 많은 투자자의 돈을 날린 단기간의 피해로 끝난 게 아니다. 프랑스인들은 주식이니 은행이니 하는 것에 공포감을 갖게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오랫동은 금융 제도의 발달을 지연시킴으로써 경제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쳤다. 은행과 주식 제도 없이 어떻게 경제가 발달할 수 있는가. 사회·경제 전체가 신용을 잃었으니 경제성장에 이보다 더 큰 악재는 없었다."(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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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본 사람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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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잔 다르크, 성녀인가 마녀인가


"1430년 5월 23일, 콩피에뉴 전투에서 사로잡힌 잔 다르크는 매우 불리한 법정 싸움을 해야 했다. 잔다르크는 스스로 자신이 이단과 마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피고는 신의 은총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중세 신학에 어두운 우리야 언뜻 문제의 성격조차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실은 웬만한 신학자라도 쉽게 답할 수 없는 난제다. 만일 자신이 신의 은총 안에 있다고 답하면 종교적 오만의 죄에 걸려 이단 판정을 받는다. 신학적으로 누구도 자신의 영적 상태를 모르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답하면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자백하는 것이 된다. 잔 다르크는 여기에 말려들지 않고 그야말로 멋진 신의 한 수를 보였다. 〈만일 내가 신의 은총 안에 있지 않다면 신께서 내게 은총을 내려 주소서. 만일 내가 신의 은총 안에 있다면 계속 그 상태로 남게 해 주소서.〉 이 대답을 듣고 재판정 전체가 〈지극히 놀랐다multum stupefacti〉라고 기록하고 있다."(44-6)


"잉글랜드는 샤를 7세가 이단으로 화형 당한 여자에게 이끌려 대관식을 치렀으니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하며 1431년 12월 16일 10세의 헨리 6세를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 데리고 가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프랑스 쪽으로 기운 뒤였다. 1435년 아라스 조약에 따라 부르고뉴는 잉글랜드 대신 프랑스 왕실과 동맹을 맺었다. 프랑스군은 1437년 파리, 1449년 루앙을 회복했고, 1453년 백년전쟁을 종결지었다." "백년전쟁이 끝난 뒤 잔 다르크의 복권 작업이 이루어졌다. 1456년 재심 재판을 하여 잔 다르크가 이단이라는 이전 판결을 뒤집었다. 첫 번째 재판이 정치적이었듯이 이번 재판도 당연히 정치적이었다. 마녀의 도움으로 프랑스 왕이 대관식을 치렀다고 할 수야 없지 않은가. 19세기에 이르러 민족주의가 불타오르면서 프랑스 교회가 잔 다르크에 대한 관심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런 노력이 20세기에 결실을 거두어 1920년 5월 9일 교황 베네딕트 15세가 잔 다르크를 성인으로 축성했다."(50-1)


2장 부르고뉴 공작들, 유럽판 무협지


"백년전쟁 당시 3대 부르고뉴 공작 선량공 필리프는 잉글랜드와 프랑스를 오가면서 변화무쌍한 정치와 외교를 벌였다. 책략의 대가인 선량공은 1435년에 잉글랜드에서 프랑스 왕실로 동맹을 바꿔 아라스 조약을 맺고 국왕에게 파리를 내주었다. 그는 샤를 7세를 프랑스 국왕으로 공식 인정하고 그 대신 샤를 7세는 (선량공 필리프의 아버지인) 용맹공 장의 암살자들을 처벌하기로 약속했다. 필리프는 프랑스 왕실과 다투기보다는 네덜란드 방면으로 영지를 확대하는 것이 더 긴급한 문제라고 판단했다. 백년전쟁은 프랑스에 유리하게 마무리되었다. 국왕이 정치력을 되찾고 군대를 정비하면서 그동안 내내 패배를 당했던 프랑스군이 도시를 하나하나 탈환해갔다. 잉글랜드군이 프랑스 서남부의 가스코뉴 지역을 상실한 후 이를 되찾기 위해 벌인 카스티용 전투(1453)가 사실상 백년전쟁의 마지막 전투였다. 잉글랜드는 이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대륙 내 영토를 소유하고 지배하겠다는 꿈을 사실상 접어야 했다."(75)


"왕이 되기를 욕망했던 4대 부르고뉴 공작 담대공 샤를의 문제는 자신의 영토들이 분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결정적인 과제는 로렌 지방을 차지하는 일이었다." "샤를은 1475년 한때 로렌 공작령의 수도인 낭시를 얻었지만 다음 해에 스위스로 진군했다가 스위스군에 연이어 패배했다. 우선 그랑송에서 패배하여 대포와 거대한 재산(그중에는 은으로 만든 욕조도 포함되어 있다)을 버리고 도주했다. 다시 3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뮈르텐(모라)을 공격했으나, 로렌의 기병과 스위스 보병에게 또 패배했다. 그해 10월에는 낭시를 다시 잃었다. 4대 선친부터 꿈꿔왔고 샤를 자신으로서도 필생의 과업인 영토 통합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낭시를 차지해야만 했기에 겨울 혹한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강행군하여 낭시로 공격해 들어갔다. 이것이 마침내 파국을 몰고왔다. 1477년 1월 5일 낭시 전투에서 패배했고 그는 목숨을 잃었다. 독립왕국을 건설하려던 부르고뉴 가문의 4대에 걸친 야심은 이로써 종말을 고했다."(86-7)


3장 카를 5세, 세계제국을 꿈꾸다


"카를은 친할아버지가 황제이니 합스부르크 왕실이 소유한 중동부 유럽의 광대한 영토를 물려받게 되고, 친할머니는 부르고뉴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부르고뉴의 마리)여서 유럽 중심부의 알짜배기 땅들을 받게 된다. 외가 쪽으로는 에스파냐의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가 외조부모이므로 카스티야와 아라곤, 그리고 광대한 아메리카 식민지를 물려받는다. 이 모든 유산이 한 인물의 수중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된 카를 5세는 로마 제국을 넘어서는 세계 제국 건설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자면 우선 프랑스를 복속시켜야 한다. 물론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도 차지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루터파 등 신교 세력을 억압하여 가톨릭 제국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 그러고 나서 힘을 모아 기독교 신앙의 적인 오스만 제국을 누르고, 더 나아가서 아메리카와 필리핀의 식민지를 굳건히 한 뒤 나머지 세계를 마저 복속시켜야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꿈인가. 그리고 얼마나 허황된 계획인가."(99-100, 109)


"신은 카를 황제에게 행복한 결말을 약속하지는 않은 것 같다. 1550년 새 교황 율리우스 3세는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고 이탈리아 문제도 다시 혼란에 빠졌다. 독일에서는 루터파에 대한 호의가 늘어나던 반면에 카를의 아들 펠리페 2세에 대한 저항은 커져갔다. 프랑스의 앙리 2세가 로렌 쪽으로, 오스만 제국의 육군은 크로아티아 방면으로, 해군은 이탈리아 연안으로 공격해왔다. 카를 5세는 마지막 힘을 모아 메스를 공격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운명의 여신도 여자야. 늙은이는 좋아하지 않는다네.' 그는 이렇게 자조했다. 이제 그의 나날은 확실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종교적 타협안도, 신·구교 양측이 모두 반대해 결국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제국의회에서 어정쩡한 타협에 이르는 데 그쳤다. 각 지역 영주가 가톨릭이든 루터파든 하나를 정하면 그곳 신민들은 영주의 종교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가톨릭을 옹호하겠다는 황제의 평생의 종교정책 역시 최종적으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127-8)


4장 헨리 8세, 근대 영국을 출범시킨 호색한


"치세 전반기의 헨리는 '르네상스 군주'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예술과 문예를 보호하고, 여러 악기 연주에 능했으며, 용맹한 기사를 자처하며 직접 전쟁에 참여했다." "헨리의 대외 정책은 유럽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의 대립이 근대 유럽의 국제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축인데, 이때 잉글랜드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이처럼 강대국 사이를 오가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 영국 정책의 큰 흐름이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와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는 그야말로 견원지간이었다. 헨리는 처음에는 카를 5세 편을 들었으나, 파비아 전투(1525)에서 프랑수아 1세가 포로가 되고 전세가 신성로마제국 쪽으로 기울어지자 프랑스 편으로 돌아섰다. 그 후 카를 5세의 군대가 로마를 약탈하는 사건이 일어나자(1527) 이번에는 교황을 편들고 나섰다. 이 마지막 일은 균형외교 정책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신상 문제도 고려한 결과였다."(141-3, 148)


# 헨리 8세의 신상 문제 : 헨리는 1528년부터 아들을 낳지 못하는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과 재혼하려 했으나 교황이 이를 허락하지 않자, 자신이 직접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수장령首長令, 1534년)이 되어 성공회를 만든다.


"영국사에서 헨리 8세만큼 국왕 개인의 존재가 결정적 비중을 차지한 인물은 흔치 않을 것이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은 루이 14세보다도 헨리 8세에게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실제로 루이 14세가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우선 국왕 자신이 엄청난 위엄을 과시했다. 국왕은 토머스 울지 추기경이나 토머스 크롬웰처럼 강력한 재상을 앞세우고 주요 인사들을 소집해 조언을 들었지만, 모든 중요한 결정은 최종적으로 자신이 내렸다. 결과적으로 헨리 8세의 노력 덕분에 잉글랜드는 침략과 종교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튜더 왕조 이전의 잉글랜드는 유럽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국으로서 기껏해야 양이나 쳐서 양모를 대륙에 파는 가난한 국가였다. 그런데 16세기 이후 잉글랜드는 일취월장하여 18~19세기가 되면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는 중심국가로 떠오른다. 잉글랜드가 그 찬란한 발전의 도상에 오르게 한 선구자가 폭군이자 편집증 환자이자 호색한인 헨리 8세다."(166-9)


5장 콜럼버스, 에덴동산의 꿈으로 근대를 열다


"독학으로 세계관을 형성해 나간 콜럼버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은 《이마고 문디Imago Mundi》('세계의 이미지' 또는 '세계의 상像')다. 《이마고 문디》에서 콜럼버스를 매료시킨 내용이 바로 〈지구가 굉장히 작다〉는 것, 그리고 〈육지와 바다의 비율이 6대 1〉이라는 것이다. 육지가 6이고 바다가 1이라면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놓인 바다가 매우 작을 테고, 이 바다를 건너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 될 터이다. 그는 마르코 폴로(1254~1324)의 《동방견문록》에서 읽은 내용으로 이 주장을 보충했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 기록을 따라가보면 유럽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엄청난 거리를 여행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는 아시아 대륙이 아주 크다는 뜻이고, 바꿔 말하면 반대 방향에서 유럽을 출발해 아시아로 가는 항해 거리가 짧다는 의미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을 때 드디어 아시아에 왔다고 생각했던 것은 당연하다. 자기가 원래 아시아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지점에 도착했기 때문이다."(188-9)


"콜럼버스는 말년에 《예언서》를 쓰는 데 전념했는데, 이 자료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세계관이 가히 점성술적이라는 점이다." "콜럼버스에 따르면 인류 역사는 이제 마지막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조만간 마지막 황제가 나타나서 이 세상의 마지막 전투, 즉 이슬람과의 최종 전투를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군대를 키우기 위한 자금이 필요할 텐데 그것은 구약성서에서 언급된 솔로몬의 금광에서 얻게 될 것이다. 이 금광은 사람 눈에 띄지 않다가 마지막 시대가 되면 드디어 하느님이 선지자들에게 알려준다고 한다. 과연 하느님이 약속하신 금은 누가 발견하게 될까? 바로 콜럼버스 자신이다! 〈내가 하느님이 선택하신 도구〉라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다." "바로 자신이 못 배우고 미천하되 신의 선택으로 '영적 이해력'을 얻었으며(이에 대해 자신의 내부에 '불이 있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진리를 꿰뚫어 알게 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202-4)


6장 코르테스와 말린체, 구대륙과 신대륙의 폭력적 만남


"말린체는 적에게 바쳐진 공물 같은 처지로 에스파냐인들을 처음 만났지만, 중립적인 통역 역할에 그치지 않고 훨씬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자신이 알게 된 정보를 코르테스에게 전해준 것이 때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이 지역 내 부족들이 아스테카 제국과 심각한 갈등 관계에 있다는 결정적인 사실을 알려주었다. 코르테스는 이를 이용해 여러 부족을 동맹으로 끌어들였다." "당시 멕시코 지역에서는 수많은 부족이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다. 그중 세 부족이 동맹을 맺어 다른 부족들을 지배했다. 코르테스가 찾아왔던 당시에는 틀라코판·테츠코코·테노치티틀란 동맹이 가장 크고 강력했다. 피지배 부족들은 때로 끔찍한 살상과 가혹한 착취를 겪었다. 우리가 아스테카 제국이라 부르는 이 지역의 실상은 깊은 원한을 가진 피지배 부족들이 언제든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느슨한 동맹에 불과했다. 그 사이를 파고들어 여러 세력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 것이 코르테스가 성공을 거둔 핵심 요인이었다."(221-4)


"아메리카 문명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인신공희 관행에는 심오한 종교 철학이 있다. 이들의 우주관에 따르면 태양과 달이 돌고 계절이 바뀌는 따위의 모든 우주적인 일에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시간이 가면 에너지가 줄어들고 결국 우주는 종말을 맞는다. 우주의 파멸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우주에 공급하는 것이다. 힘이 떨어진 태양과 대지는 기근과 갈증에 시달린다. 이 지역에 널리 퍼진 유명한 표현을 옮기면 〈신은 피에 목말라 있다.〉 그래서 사람의 심장을 꺼내 태양신께 바치고 대지에 피를 흘려주는 것이다." "아스테카 유적의 꽃 그림은 서정적인 아름다움의 표현이 아니라 우주를 살리기 위한 '꽃 같은 죽음'을 의미한다. 사람의 목숨을 바쳐 우주를 살린다는 의미는 표현이 조금씩 다르지만 아메리카 거의 전 지역에 퍼져 있었던 기본적인 종교 철학이었다." "이런 끔찍한 일들을 지켜본 말린체는 사람의 피를 요구하지 않는 에스파냐의 신이 더 진정한 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231-3)


7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천사와 악마를 품었던 천재


"다빈치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는 그의 노트가 있다. 그는 늘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중요한 정보다 싶으면 바로 적어두었다. 심오한 통찰의 조각들도 여기에 다 모아놓았다. 이 중 일부는 완성된 작품으로 발전했을 수 있으나, 대부분은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니까 노트는 미완성 작품을 위한 임시 텍스트 모음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인문주의자들은 '미완성'을 창조적 천재성의 특징으로 파악했다. 언제 어떤 영감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각 분야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솟아나오니 그런 것들을 일단 붙잡아두어야 했다." "또 한 가지 이 천재의 작업이 가진 특징은 변화무쌍하고 불규칙하다는 점이다. 그림을 그릴 때에도 한 이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미친 듯 일하고는, 그 후 며칠 동안은 손을 놓고 명상을 하다가 다른 작업에 손을 대는 식이다. 천재는 꼭 의무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니 창의적 게으름을 누리며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없이 느리게 일하는 것이다."(261-2)


"16세기 말에 조각가 레오니는 다빈치가 죽기 전에 멜치에게 남긴 수천 쪽에 달하는 노트를 '기술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으로 분류했다. 이로 인해 다빈치의 이미지가 많이 왜곡되었다. 예술사가는 그림에만 몰두하고 엔지니어는 그의 기술적 근대성만 보려 한다. 파노프스키의 말대로 르네상스의 특징은 지식의 벽 깨기였고, 다빈치는 그런 정신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니었던가. 그는 천사와 악마를 두루 경험한 후 인간의 내면과 세계의 모순을 갈무리하여 지극히 높은 수준에서 관조하고 표현했다. 미슐레의 말대로 다빈치는 '파우스트의 이탈리아 형제'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는 피렌체의 공방에서 견습생으로 공부하며, 밀라노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며, 또 로마와 앙부아즈에서 궁정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계속 배워나갔다. 스스로 말하듯 '경험의 아들'이었다. 다시 말해 시대가 그를 불러낸 것이다. 르네상스는 인간의 경험이 가장 천재적으로 꽃핀 시대였다."(283)


8장 루터, 세상을 바꾼 불안한 영혼


"1514~1515년 사이 루터는 〈로마서 1:17〉에 나오는 내용(〈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을 깊이 생각하다가 '하느님의 의iustitia dei'라는 단어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때까지 '의'란 하느님의 정의justification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사후에 하느님의 법정에서 판결을 받을 텐데, 하느님이 보실 때 인간이 어찌 완전하겠는가. 분명 사악함 덩어리인 불완전한 죄인에게 하느님의 가공할 처벌이 따를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성경 구절을 홀연 다르게 해석하게 된 것이다. 하느님의 의는 벌이 아니라 죄인들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것이다. 그 선물을 통해 우리는 즉시 의로움을 갖추게 되리라. 따지고 보면 우리말로 '용서'라고 번역하는 'pardon'은 원래 뜻이 '전부par 준다don'는 것이다. 절대 결핍의 존재인 인간에게 하느님이 생명과 은총을 채워주는 것이 'pardon'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오직 믿음으로써sola fide 가능하다. 하나님은 다만 우리의 믿음을 원할 뿐이다."(294-5)


"중세 말 가톨릭 교회가 십일조를 강요하고, 걸핏하면 종교재판을 통해 사람들을 억압해왔기 때문에 농민들은 가톨릭 교회를 두렵고 부담스러운 조직으로 여겼다. 루터가 교회의 부패를 비난하고 영적 자유라는 새로운 주장을 펼치면서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 세세한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한 일반인들로서는 단지 이전의 종교적 억압을 벗어던진 것으로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래서 루터는 신자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그가 관심을 둔 대상은 어린이들이었다." "이런 식으로 루터파만 아니라 다른 신교 교파들과 종래 가톨릭 역시 주입식 교육이나 체벌 같은 강제수단을 이용해 '사회규율화'를 추진하게 된다. 결국은 종교와 권력이 서로를 강화하다가 국교國敎라는 이름으로 국가와 특정 종교가 결탁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극단화되면 그렇게 조직된 교파들끼리 피 튀기는 전쟁도 불사하리라. 그런 갈등의 씨앗이 16세기에 싹트고 있었다."(3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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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살아남기 - 우리가 몰랐던 신기한 전쟁의 과학
메리 로취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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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제2의 피부(전쟁 때 입는 것)


"폭발로 공기가 가속되어 밀려 빽빽해지면, 사람을 납작하게 짓누를 수도 있다. 더 세부적으로 보면, 압력파는 옷을 피부에 찰싹 달라붙게 하는데, 그러면 전달되는 열이 더 커지고 화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 현재의 방염 육군 전투복 천인 디펜더 M이 내세우는 속성 중 하나는 불이 붙으면 풍선처럼 부풀어서 몸에서 떨어진다는 것이다." "소방관 제복에 종종 쓰이는 노멕스는 방염 성능이 뛰어나다. 그래서 옷에 불이 붙기까지 적어도 5초는 벌게 된다. 모든 군복을 노멕스로 만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습기에 취약해서다. 중동에서 땀을 쏟으면서 달리는 군인들에게는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다.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불꽃이 없어도, 의류는 불이 붙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면의 자연발화 온도는 약 370도다. 중요한 것은 노출 시간이다. 핵폭발 때 생기는 열파는 극도로 뜨겁지만, 빛의 속도로 지나간다." "폭탄이 터질 때 빠르게 지나가는 열파라면, 단 몇 초 동안 견디는 방염 천도 엄청난 차이를 낳을 수 있다."(20-4)


"물이 주성분인 액체는 대부분 표면 장력이 세다. 즉 물을 흘렸을 때 물 분자들이 천의 표면을 이루는 대부분의 분자들보다 자기들끼리 서로 더 강하게 결합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뜻이다. 알코올처럼 표면 장력이 약한 액체는 물처럼 천 위에 방울을 형성하지 않고, 곧바로 스며들어서 천을 적신다." "초방수 피막은 수련의 잎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수련 잎의 표면을 전자 현미경으로 보면 오돌토돌 미세한 돌기들로 가득 뒤덮여 있다. 마찬가지로 천에 오돌토돌한 작은 돌기들을 붙이면, 천과 그 위에 쏟아지는 액체 사이의 접촉과 상호 작용이 줄어든다." "이 신기술은 화학적/생물학적 방호복에 쓰일 것이다. 초방수 천을 사용한 의복에 닿는 물질의 95퍼센트가 그냥 굴러 떨어져 나간다면, 독성 물질에 결합할 활성탄 수용체가 훨씬 더 적어도 된다는 의미다. 좋은 일이다. 두꺼운 활성탄 층을 가진 의복은 덥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공기 필터를 끼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방호복은 무엇보다도 편해야 한다."(28-30)


2장 붐박스Boom Box(폭발문 지대에서 차량을 모는 사람들의 안전)


"이라크에 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미 육군은 차량에 멕서스 장갑판을 장착하려 시도했다. 마크는 회상한다. 「그걸로는 로켓포를 막지 못해요.」 육군은 반응 장갑 타일을 덧붙인다는 생각도 했다. RPG에 타격을 입으면, 충전재가 폭발한다. 바깥을 향한 이 폭발은 RPG의 폭발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지나가던 사람이 그 폭발에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더 값싸고 더 단순한 방법이 먹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철망형 장갑이라는 튼튼한 강철 격자를 두른 차량이다. 날아오는 RPG 포탄은 격자의 그물코에 주둥이가 박혀서 불발탄이 된다." "철망형 장갑이 너무나 잘 막는 바람에 이라크 반군은 RPG를 대체로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사제 폭탄을 만드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라크전 초기에 그들은 사제 폭탄을 도로 양편에 매설했다. 이 사제 폭탄이 차량의 옆쪽을 강타하자, 육군은 차량 옆구리에 장갑판을 덧대고 차 유리를 〈교황 유리〉로 교체했다."(47-8)


# 스트라이커Stryker : 미 육군이 쓰는 8륜 장갑차, 교황 유리 : 교황의 순방 행사 차량에 붙이는 두께 약 5센티미터의 투명한 장갑판


"아프가니스탄 반군은 도로 옆이 아니라 도로 한가운데에 폭발물을 매설하여 밑에서 차량을 공격하는 방법으로 전환했다. 대부분의 트럭이 그렇듯이, 당시 미국의 전투 차량은 차대가 편평했다. 나중에 나온 차량들은 V자나 이중 V자 모양의 차대로 폭발 에너지가 비껴가도록 한 반면, 편평한 차틀은 폭발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다. 그리고 좌석이 승객 칸 바닥에 볼트로 고정되어 있어서, 폭발 에너지가 탑승자의 발, 척추, 골반으로 고스란히 전달되곤 했다." "더 신형 차량은 좌석 밑에 여유 공간을 두고 있다. 그러면 폭발의 힘이 바깥으로 방출되면서 빠르게 줄어든다. 그래도 30~60센티미터 이내에서는 에너지가 대단히 응축되어 있어서 고체 탄환처럼 작용하여 차량 바닥을 뚫을 수 있다. 차체가 뚫리면서 온전했던 원형을 잃는 순간, 부서져 나간 모든 조각과 부품은 발사체가 된다. 육군 병사와 해병 대원은 비행기 조종사가 방호복을 입는 대신에 깔고 앉는 것과 같은 이유로 험비 바닥에 모래주머니를 쌓아 두곤 했다."(49)


3장 귀를 이용한 전투(군대 소음의 수수께끼)


"수십 년 동안 귀마개를 비롯한 수동적인 청력 보호 수단들은 군 청력 보존 사업들에서 주된 방어 무기가 되어 왔다. 대다수의 귀마개는 소음을 30데시벨쯤 줄여 준다. 꾸준히 들려오는 지겨운 배경 소음을 줄이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브래들리 전투 장갑차가 아스팔트 위를 덜거덕거리며 지나가는 소음(130데시벨)이나 블랙호크 헬기의 푸드득 소리(106데시벨) 같은 것들이다. 30데시벨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중요하다. 시끄러운 소음의 세기가 3데시벨 커질 때마다 청력 손실 위험이 없는 노출 가능 시간은 절반씩 줄어든다. 사람의 맨귀는 85데시벨(고속도로 소음, 혼잡한 식당)까지의 소리에는 하루에 8시간씩 노출되어도 청력 손실이 없다. 115데시벨(사슬톱, 록 콘서트 무대 바로 앞)의 소음은 안전한 노출 시간이 30초에 불과하다. AT4 대전차 화기가 뿜는 187데시벨의 소음에는 1초밖에 견디지 못하는데, 그 짧은 노출에도 보호되지 않은 맨귀는 청력이 영구적으로 저하된다."(67-8)


"귀마개가 제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 깊이 꽂기 위해서는 귓바퀴를 잡아당겼다가 놓아야 한다. 전투 헬맷을 쓴 채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여유를 허용하는) 1차원적인 전쟁터는 더 이상 없다. 어디든 최전선이 될 수 있다. 아무런 경고도 없이 IED가 폭발하고 실력 행사가 이루어진다. 귀마개로 청력을 보호하려면, 정찰하는 13시간 내내 끼고 있어야 한다. 그 시간 중 95퍼센트는 아무런 큰 소리도 나지 않는데 말이다. 그러니 끼고 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팰런은 이렇게 말한다. 「군대에는 소음 문제가 없어요. 조용한 게 문제지요.」" "최고의 임무 수행 능력을 지닌 부대에서는 청력 손실이 어느 정도만 일어나도 〈사살 비율〉(없앤 적의 수를 생존한 부대원의 수로 나눈 값)이 50퍼센트 줄어들었다. 잘 듣지 못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총을 쏘거나 달리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의사소통 능력이 방해를 받자, 그들은 더 주저하게 되었다."(79, 83)


4장 허리띠 아래(가장 잔인한 총격)


"IED는 두세 개씩 함께 묻는다. 하나는 차량에 탄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다. 다른 폭탄은 도우러 오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한 것이다. 화이트는 칸다하르 주의 부비트랩이 가득한 길에서 통로 확보 임무를 맡아서 지휘 통제 차량을 타고 가던 중에 첫 폭발을 목격했다. 그는 전투 공병 소대를 이끌고 있었다. 도로, 벽, 엄폐호, 다리 등을 건설하거나 파괴하는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부대다. 그 분쟁 지역에서 미국과 나토와 협력하는 아프간 육군 병사들이 탄 험비 차량은 앞서 가지 말라는 화이트의 경고를 무시했다. 세 명이 죽고, 세 명이 다쳤다. 차량이 옆으로 넘어지면서 길을 막았기에, 치우기 위해 공병대가 파견된 것이다. 화이트가 묻혀 있던 압력판을 밟는 순간,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10킬로그램짜리 〈희생자 작동형victim-operated〉 IED였다." "「몸을 일으켜서 지혈대를 꺼내 오른쪽 다리에 묶으려 했는데, 다리가 없는 거예요.」 왼쪽 다리는 길이는 온전했지만, 종아리 부위가 찢겨 날아가고 없었다."(89)


"화이트의 수술에서는 한 가지 의아함을 느낄 수도 있다. 간호사가 황갈색의 표준 살균제를 수술 부이에 바르고 있다. 그런데 사타구니가 아니라 얼굴에 바르고 있다. 보조 외과의인 몰리 윌리엄스 소령은 요도를 늘이는 데 쓸 조직을 화이트의 볼 안쪽에서 띠 모양으로 떼어 낸 조직으로 만들 것이라고 설명한다. 입 조직은 우수한 요도 대체물이 된다. 무엇보다도 털이 없다. 소변에는 광물질이 들어 있어서, 요도에서 털이 자라면 엉겨 붙어 쌓일 것이다. 요로결석은 소변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끊고, 소변을 눌 때 엄청난 통증을 일으키는 골칫거리다." "집도의인 제임스 제지어는 말한다. 「또 입은 오줌을 견뎌 냅니다.」 그는 입이 본래 축축한 곳에 알맞게 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팔뚝 아래쪽이나 귀 뒤쪽의 털이 없는 피부로도 요도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만, 소변에 자주 젖다 보면 손상될 수 있다. 일종의 기저귀 발진이 요도 안에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염증이 조직을 먹어치우면서 구멍이 난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결과다."(93)


5장 기이해질 수 있다(성기 이식에 바치는 찬사)


"간이나 콩팥과 달리, 얼굴이나 손은 피부, 근육, 점막의 다양한 집합, 즉 복합 조직이다. 음경이라면, 거기에 발기 조직도 추가된다. 몸은 한두 종류의 조직만 받아들이고 다른 조직은 거부할 수도 있다. 피부는 특히 문제를 일으킨다. 피부는 보호 장벽이기 때문이다. 면역학적으로 삼엄한 경계 상태를 유지한다. 이 몸의 보초병을 속이기 위해, 환자에게 기증자의 골수를 주입한다. 골수는 면역 세포를 만드는 일을 한다. 기증자의 골수는 환자 자신의 골수를 대체하지는 않지만, 면역 체계를 얼마간 재프로그래밍 한다. 몸은 새로 이식된 부위를 점점 수상쩍게 여길지 모르지만, 통째로 제거하는 일까지는 하지 않는다. 거부될 위험이 더 낮다는 것은 면역 억제제가 덜 필요하다는, 따라서 투여량을 더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부작용도 더 적어지고 환자도 더 건강해진다. 골수 주입 같은 신기술들은 목숨을 구하는 용도가 아닌 형태의 이식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윤리적 균형의 저울을 기울였다."(110-1)


"이식된 부위에는 죽음의 기운이 어려 있다.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소생되었기 때문이다. 환자가 그 점을 얼마나 불편하게 느낄지 상상할 수 있다. 콩팥이나 허파 같은 내부 장기는 이식의 심리적 영향이 대체로 적다. 눈에 안 보이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니까." "성형 및 재건 외과의인 데이먼 쿠니의 경험은 달랐다. 「나는 그것이 몸이 온전한 사람의 오만임을 깨달았어요. 당신과 나는 두 손을 지니고 있기에, 다른 사람의 손을 얻는 것이 부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겁니다. 하지만 한 손을 잃은 채로 사는 것이 더 부자연스럽거든요.」 쿠니는 자기 수술진이 손을 이식한 환자 6명 모두가 수술에서 깨어난 즉시, 그 손을 자신의 손으로 여기는 것을 보았다. 아직 감촉을 느끼지도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도 그랬다." "낯선 사람의 얼굴을 이식 받았을 때에도 당사자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심란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식의 대안이란 얼굴이 아예 없는 채로 사는 것이니까."(115-6)


6장 포화 속 살육(의무병은 어떻게 대처할까?)


"초기 인류로부터 진화한, 우리의 뇌에 새겨진 생존 전략은 위협이 닥치면 아드레날린을 분출하고, 아드레날린은 코르티솔이 혈액으로 왈칵 쏟아지도록 자극한다. 코르티솔은 허파에는 산소를 더 많이 빨아들이라고, 심장에는 두 배 또는 세 배 더 빨리 뛰어서 그 산소를 더 빨리 온몸으로 보내라고 재촉한다. 한편 간은 포도당을 토해 냄으로써, 그런 일들에 쓸 연료를 공급한다. 필요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신체 부위로 산소와 연료를 보내기 위해, 팔과 다리의 큰 근육에 있는 혈관들은 팽창하는 반면, 우선순위가 더 낮은 기관들(위장과 피부 같은)로 뻗은 혈관들은 수축된다. 피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는 주요 기관인 전두엽도 배급 제한을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근육의 능력 발휘를 충돌질하는 아드레날린은 신경 활동도 증진시킨다. 그래서 몸이 덜덜 떨리게 된다. 여기에 구급 헬기의 움직임과 진동까지 고려하면, 위생병이 얼마나 힘겨운 도전 과제에 직면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136)


"터널시tunnel vision라는 전문 용어는 주의가 협소해진다는 뜻이다. 그것 역시 선사 시대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지금은 생존 스트레스 반응의 재앙을 일으키는 한 요소다. 다른 것들을 다 배제하고 오로지 위협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가리킨다. 브루스 사이들은 어느 의사와 불안해하는 인턴의 재미있는 사례를 들려준다. 의사는 교통사고 환자의 찢긴 상처를 꿰매라고 인턴을 응급실로 보냈다. 인턴은 꿰매는 일에만 너무 몰두하다 보니, 환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전투 치료의 주된 스트레스 요인은 모든 훈련 시뮬레이션에 들어 있지 않다. 따라서 위생병을 훈련시키는 또 다른 방법은 자동적으로 하게 될 때까지 어떤 기술을 무수히 연습시키는 것이다. 전두엽이 무단 외출할 때, 이성이 결석할 때, 근육 기억이 남아서 일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연습을 충분히 반복하면, 극도의 생존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응급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피를 흘리는 상황에서도 말이다."(143, 149)


7장 땀 흘리는 총알(열기 속 전쟁)


"땀은 시원하지 않다. 피만큼 따뜻하다. 본질적으로 땀은 피다. 땀은 혈장에서 나온다. 혈장은 피에서 주로 물로 이루어진 무색의 성분을 가리킨다. 땀은 증발을 통해 열을 식힌다. 열을 공기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몸이 과열되기 시작할 때, 피부의 혈관은 확장되어서 피가 피부로 더 많이 향하게 된다. 피부의 모세 혈관으로부터 뜨거운 혈장이 땀샘─약 240만 개의─을 통해 몸의 표면으로 스며 나와서 증발된다. 증발을 통해 몸에서 수증기 형태로 열이 빠져나간다." "땀을 흘리면서 계속 일하면, 그들이 쓰는 근육은 몸이 땀을 흘리는 데 쓰는 혈액을 자기에게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한다. 혈액을 차지하려는 이 경쟁의 가장 약한 결과는 열 탈진과 열 실신이다. 피가 몸을 식히기 위해 피부로 흐르는 한편으로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산소를 전달하기 위해 근육으로도 흐르다 보면, 피를 뇌로 보내는 데 필요한 혈압을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산소를 운반하는 피가 뇌로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 기절한다."(155-8)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헐거운 옷을 입으면 더 시원한 이유는 전도로 설명할 수 있다. 헐렁한 셔츠는 뜨거워지지만, 옷이 피부에 닿아 있지 않기 때문에 꽉 끼는 티셔츠와 달리 몸으로 열을 전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공기가 수분으로 포화되어 있을 때에는 땀이 증발할 곳이 없다. 피부에 물방울처럼 고였다가 얼굴과 등을 따라 흘러내린다. 더 중요한 점은 땀이 몸을 식히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온이 섭씨 33.3도 미만일 때, 몸은 더 차가운 공기로 열을 발산함으로써 저절로 식을 수 있다. 이 온도를 넘어서면 열은 발산되지 못한다. 발산의 짝은 대류다. 우리의 몸이 주변에 형성하는 가열된 축축한 공기의 구름은 피부로부터 위로 올라가고, 그 빈자리를 더 차가운 공기가 와서 메운다. 그리고 더 건조할수록, 더 많은 땀이 증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산들바람은 몸이 주변에 만들어 내는 습한 공기 막을 날려 버림으로써 몸을 식힌다. 밀려드는 공기가 더 차갑고 더 건조할수록, 몸은 더 빨리 식는다."(163, 160-1)


8장 질질 싸는 네이비실(국가 안보 위협 요소로서의 설사)


"이른바 〈현대 의학의 아버지〉인 윌리엄 오슬러는 1892년에 이질이 〈병사들에게 화약과 총알보다 더 치명적이었다〉라고 썼다. (〈이질〉은 병원체가 창자의 내층에 침입하여 세포와 모세 혈관의 내용물이 새어 나오게 하고, 이질 특유의 증후군을 일으키는 감염병을 포괄하는 용어다). 1848년 멕시코 전쟁 때 미국인 1명이 전투로 사망할 때마다 7명이 병으로 죽었으며, 대부분은 설사 때문에 죽었다. 미국 남북 전쟁 때 설사나 이질로 죽은 병사는 95,000명이었다. 베트남 전쟁 때는 말라리아에 걸려서 입원한 군인보다 설사병으로 입원한 군인이 거의 4배 더 많았다." "해군 대령 로버트 필립스는 재수화액에 포도당을 첨가하면 장의 염분과 물 흡수력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는 병원에 가서 정맥주사로 수액을 맞는 대신 재수화액을 마시는 방법으로도 수분을 보충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 방법으로 의료 시설이 부족한 오지에서 싸우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178-9)


"세균성 이질을 일으키는 주된 병원체인 시겔라와 캄필로박터는 독소를 전달하는 〈분비 기구〉를 휘두른다. 피하 주사기 겸 총검으로 장 내층의 세포에 독소를 주입함으로써, 세포들을 죽이고 그 내용물이 흘러나오게 만든다. 이 유출은 설사를 일으키는 데 한몫을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퇴역하는 세포들이 아주 많아지면, 장 전체가 물을 흡수하는 본래의 임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다. 그 결과 음식 찌꺼기는 소화관을 따라 가면서 점점 물기가 빠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묽은 상태로 남아 있다. 장관 응집성 대장균ETEC이라는 세균은 다른 방식으로 같은 효과를 일으킨다. 이 세균을 장을 뒤덮어서 흡수를 막는 세균 밀집 대형, 살아 있는 비닐 랩이 된다. 콜레라균과 장관 응집성 대장균은 화학 무기 공격도 가한다. 둘 다 세포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펌프를 약탈하여 독소를 만드는 데 쓴다. 징발된 펌프는 환자가 물을 마셔서 보충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세포로부터 물을 빨아내기 시작한다."(182)


9장 구더기 역설(전쟁터의 파리, 좋은 쪽과 나쁜 쪽)


"〈상처 부위의 옷을 제거하는 순간, 상처에 수많은 구더기들이 우글거리는 광경에 나는 경악했다.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나는 서둘러서 이 끔찍해 보이는 생물들을 씻어 냈다. 그리고 상처를 식염수로 씻자, 놀라운 광경이 드러났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분홍빛 육아 조직이 상처를 채우고 있었다.〉 1917년, 미국 원정군의 외과의 윌리엄 베어는 일부러 상처에 구더기를 들끓게 해서 치료를 돕는다는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생각을 어떻게 떠올렸는지를 그렇게 설명한다. 지저분한 파리 유충은 죽은 고기나 썩어 가는 고기를 좋아한다. 그 고기가 열린상처의 일부라면, 먹는 행위는 일종의 자연적인 죽은 조직 제거 기능을 수행한다. 죽었거나 죽어 가는 조직을 제거하면 감염이 억제되고 치유가 촉진된다. 죽은 조직에는 혈액 공급이 안 되어서 면역 방어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세균이 들끓기 쉽다. 그 결과 건강한 조직에도 감염이 일어나고 염증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치유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208-9)


# 분홍빛 육아 조직 : 빠르게 불어나면서 상처를 치료하는 어린 조직


"구더기의 입 부위는 삐걱거리면서 움직이는 휘어진 커다란 낫처럼 보인다. 구더기의 몸에서 유일하게 키틴질로 된 부위다. 축축하고 하얗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다른 부위들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갈색의 단단한 부위다. 다행히도 죽은 조직 제거 구더기 요법을 받는 환자의 상처 깊숙한 곳에 있는 조직─죽은 조직이든 살아 있는 조직이든─에는 감각 신경이 없다. 감각 신경은 피부의 맨 위쪽 층에 깔려 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세균과 죽은 조직의 잔해까지 다 제거하고 싶다면, 구더기를 외과의로 택하라.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펙은 폭발로 입은 상처의 죽은 조직을 초기에 제거하는 데 구더기를 쓰자는 주장을 결코 한 적이 없다. 구더기는 치료가 한참 진행된 군인에게 쓰일 것이다. 즉 아마도 흙 같은 곳에 숨어 있던 어떤 유별나고 강력한 항생제 내성 균주가 폭발로 상처에 아주 깊이 다량으로 침투해서, 난치성 감염이 일어날 때 말이다. 이런 합병증은 자주 나타난다."(214-5)


10장 죽이지 않는 것은 악취를 풍기게 할 것이다(냄새 폭탄의 역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정보기관이었던 OSS는 국방 연구 위원회NDRC 무기 개발자들의 지원을 받아서 악취 물질을 직접 개발하러 나섰다. 회고록에 나온 바에 따르면, 러벌이 원래 받은 명령은 〈심한 설사를 일으키는 역겨운 냄새〉 물질을 개발하라는 것이었다. 〈누구, 나?〉는 러벌이 SAC-23 계획에 붙인 위장 명칭이었다." "NDRC는 추가 요구 조건을 정했다. 〈역분사가 일어나지 않으면서〉 퍼지는 〈범위〉가 적어도 3미터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행할 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야 한다.〉또 시선을 끌지 않아야 한다. 빗물, 비누, 용매에 씻기지 않아야 한다. 적어도 몇 시간 동안 수치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군사적으로 〈악취제malodorant〉, 곧 비살상 악취 무기는 그보다는 〈지역 거부terrain denial〉을 일으키는 데 더 널리 쓰인다. 사람들이 표적지인 땅에서 기어 나오도록(또는 그 땅을 피하도록) 하는 용도다. 베트콩 땅꿀, 테러리스트의 은신처, 무기 저장소 등에서 말이다."(230-3)


"1944년 11월 9일에 〈누구, 나?〉의 최종 검사 보고서가 나왔다. 아서 D. 리틀의 1945년 2월 19일 자, 〈누구, 나?〉 최종 보고서 목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동양인을 진료한 경험이 많은 한 해군 의사와 논의한 끝에, 확실하게 혐오감을 일으킨다고 할 수 있는 악취는 단 두 종류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스컹크 냄새와 시체 냄새다. 〈누구, 나?〉를 토대로 삼지만, 대변 냄세를 스컹크 냄새로 대체함으로써 우리는 〈누구, 나?〉Ⅱ를 개발했다. 이 제품은 지독한 냄새를 지니며, 침투성과 지속성이 더 강하다. 일본인에게 요구되는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것이 확실하다.〉 마침내 〈누구, 나?〉 500개와 〈마크Ⅱ 오리엔탈 누구, 나?〉 100개가 제조되었다. 하지만 전선으로 보내진 것은 한 병도 없다. 이유는? 국방 연구 위원회가 일본인에게 쓸 지속성과 침투성이 훨씬 큰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 나?〉의 두 번째이자 최종 보고서가 나오기 17일 전, 미국은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을 떨어뜨렸다."(241-2)


11장 옛 친구(상어 기피제를 시험하는 방법)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군 역사상 열대 해역과 그 상공에서 전투를 벌인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침몰하는 배나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탈출했다가 상어에게 공격을 받고 잡아먹힌 이야기가 해군과 공군에 떠돌기 시작했다(제1차 세계대전이 펼쳐진 북대서양의 차가운 물에는 그들을 잡아먹을 존재가 없었다)." "미 해군은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비록 고위 인사 중 한 명이 해군 중에서 상어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한 공식 기록이 한 건도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들이 걱정한 것은 군의 사기였다. 근거가 있든 없든 간에, 상어가 무섭다는 이유로 비행기를 타려는 병사들이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스튜어트 스프링어는 그 터무니없는 역설을 이렇게 표현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는 되었지만, 조국을 위해 잡아먹힐 준비가 되었느냐는 다른 문제다.〉 적어도 기피제는 상어를 겁내는 비행사를 위한 심리 치료제 역할을 할 터였다."(251-4)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내내, 해군 고위층에서는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해군 의료국 국장인 로스 T. 매킨타이어 소장은 포장지에 굵은 대문자로 찍힌 샤크체이서라는 글자가 그것을 보기 직전까지 탈수, 굶주림, 익사, 열기, 추위 같은 해양 생존의 진정한 위협들에 몰두하고 있던 마음에 공포의 씨앗을 뿌림으로써, 사실상 사기를 높이기보다는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극히 타당한 문제를 지적했다. 매킨타이어의 말을 빌리자면, 상어가 해군 병사에게 가하는 〈위협이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얼마나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일까? 다양한 견해가 나와 있지만, 진행 과정의 어느 시점에 남태평양 함대 사령관은 모든 해군 기지와 병원선에 〈상어의 공격으로 부상을 입은 진정한 사례〉가 있으면 알려 달라는 통신문을 보냈다. 취합해 보니, 단 두 건이었다. OSS는 정보기관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 보고서를 없애 버린 것이다. 그것은 OSS에게 또 하나의 악취 폭탄이었다."(259-60)


12장 가라앉는 느낌(바다 밑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감압병을 이해하려면, 부엌의 탄산 가스 발생기를 떠올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거품이 이는 물은 감압병에 걸린 수돗물이다. 액체가 든 용기에 압축 공기를 불어넣으면, 기체 중 일부는 액체에 들어간다(그 기체는 평형이라는 더 큰 대의를 위해 〈용액으로〉 들어간다). 이제 통 속의 압력을 갑작스럽게 해방시킨다고 하자. 병이 열렸거나 잠수부가 수면으로 쑥 헤엄쳐 올라올 때처럼 말이다. 공기 압력을 통해 액체에 불어넣은 기체 분자들은 이제 용액 밖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그렇게 빠져나온 기체 분자들은 서로 결합하여 공기 방울을 형성한다. 그냥 그렇게 뭉친다. 이제 이제 당신은 쉬이익 소리가 나는 청량한 물 한 잔을 얻는다. 아니면 시야가 어른거리는 감압병 증상을 얻거나. 감압병은 공기 방울들이 몸속을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피떡처럼 작용하면서 중요한 기관으로 향하는 혈액의 흐름을 막거나, 조직을 찢어서 통증을 일으키거나, 혹은 양쪽 다 하거나 등등의 일을 한다."(296-7)


"잠수부는 천천히 올라옴으로써 감압병을 피할 수 있다. 그러면 혈액에서 생겨나는 기체가 허파로 보내져서, 내쉬는 숨을 통해 그냥 몸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이 공기 방울의 주범은 질소다. 공기에는 질소가 아주 많이 들어 있고, 질소는 지방에 녹아들어서 숨어 있곤 한다). 잠수부가 가압된 공기를 호흡하는 시간이 더 길수록, 공기가 더 강하게 압축되어 있을수록, 내보내야 하는 질소의 양도 더 많아지고, 따라서 더 천천히 올라와야 한다." "아주 깊이 내려간 상태가 아니라면, 비상 탈출구 안에서 1분쯤 가압 공기를 호흡하는 것 정도로는 시간이 짧아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잠수함이 침수된다면, 유입된 물이 쓰레기 압축기처럼 공기를 압축할 것이다. 수심 240미터에서는 비상 탈출구의 공기를 심하게 가압해야 하므로(바깥의 수압과 평형을 이루어서 해치를 열 수 있게 하려면), 그 공기를 1분 동안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감압병 위험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많은 질소가 몸에 녹아들 것이다."(297-8)


13장 위와 아래(잠수함 승무원은 잠을 자려고 애쓴다)


"그렉 벨렌키 대령은 수면 시간이 하루 8시간에서 4~5시간으로 줄어들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안다. 며칠에 걸쳐 인지력이 감소하다가, 새로운 안정 상태에 들어선다. 수면 시간이 더 줄어들수록, 정신적 능력이 퇴화하다가 안정 상태에 들어가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더 늘어난다. 어떤 정신 능력을 말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능력이 그렇다. 수면이 부족하면 기억력이 떨어지고, 사고, 의사 결정, 이성과 감정의 통합을 담당하는 신경망도 약해진다. 벨렌키는 이렇게 말했다. 「일하다가 문제가 생겨서 그냥 포기할 때가 있지요? 그런데 잠을 푹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해결책이 떠오르고요? 잠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겁니다. 뇌를 정상 수준으로 돌려놓는 겁니다.」" "『군 작전 노트 소식지』는 여기서 더 크고 굵은 활자에 밑줄과 기울임체까지 써서 강조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매일 방해받지 않고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면 며칠 사이에 피로가 쌓여서 술 취한 것과 비슷한 기능 결핍 상태가 된다.〉"(305-6)


"햇빛은 가장 강력한 체내 시계 조정자다. 우리 몸에는 눈의 막대 세포와 원뿔 세포 외에 제3의 광수용체가 있다. 이 광수용체는 햇빛의 청색 파장에 맞추어져 있다. 이 빛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정보는 솔방울샘으로 들어간다. 솔방울샘은 몸의 천연 수면제인 멜라토닌을 만드는 곳이다. 햇빛은 멜라토닌 생성을 중단시키고, 그럼으로써 잠에서 깨어나게 한다." "하루 주기 변경에 따른 생체 시계 이상은 수면 시간 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각성도와 수행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 편이 공정할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잠수함 부대는 〈6시간〉이라는 근무 일정표를 써 왔다. 당직 6시간, 기타 업무와 훈련 등 6시간, 개인 활동과 취침 6시간이다. 그런 다음 다시 당직을 선다. 하루 일정을 18시간으로 정한 결과, 각 선원은 24시간마다 6시간씩 당직을 한 번 더 서게 되었다. 문제는 이 일정표에 따른 활동이 개인의 생물학적 리듬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이 몹시 잠들기를 원하는 시간에 일하게 된다."(323-5)


14장 사자死者로부터의 피드백(시신은 어떻게 사람이 계속 살 수 있게 돕는가)


"골수 주사는 정맥 주사의 사촌격이다. 정맥보다는 골수를 통해서 수혈을 하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가 피를 다량 잃는다면, 혈관벽이 팽팽하지가 못해서 혈관을 찾아 바늘로 찌르기가 어렵다. 핀으로 새로 분 풍선을 찌르는 것과 파티를 한 뒤 일주일 동안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풍선을 찌르는 것의 차이다." "예전이었다면, 이 남자의 멋진 가슴 근육이 그의 죽음에 관여했을 수도 있다. 매일 같이 역기를 들어 올리는 육군 병사나 해병대원은 가슴 근육이 너무나 우람해지는 바람에 허파가 쪼그라들었을 때─총알이 허파를 뚫는 바람에 허파의 공기가 그 주변 공간으로 빠져나가서 쌓일 때 같은─문제가 생기곤 한다. 그럴 때에는 바늘로 가슴을 찔러서 공기압을 줄여야 하는데 근육이 두꺼워서 바늘이 근육을 뚫고 더 안쪽까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남성 부상 환자의 약 절반이 그러했다. 미군 법의관시스템AFMES이 제공한 야전 피드백 덕분에, 지금은 우람한 병사에게는 더 긴 바늘을 쓴다."(3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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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 미국에 미련을 버린 북한과 공포의 균형에 대하여
정욱식 지음 / 서해문집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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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북한, 미국에 미련을 버리다


# 북핵과 미 안보 전략 간의 긴장

1. 1992년 북한의 비밀 핵무기 개발 의혹과 이에 따른 북한의 NPT 탈퇴 선언

2. 1990년대 중반 미사일방어체제(MD) 설치의 명분으로 '북핵 위협론' 제기

3. 2010년대 미중 전략경쟁의 여파로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인내' 정책 실시

※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미국이 핵실험 등 북한의 움직임에 직접 반응하지 않고 한미일 군사협력과 대북 제제에 주력한다는 방침


"김정은의 '결심'에 변화가 포착된 것은 2018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이어진 '톱-다운' 방식의 남북·북미 협상이 허망하게 끝난 뒤부터다. 많은 전문가는 그 가운데서도 2019년 2월에 일어난 2차 북미정상회담의 실패, 즉 '하노이 노딜No Deal'이 김정은의 변심에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여기에 같은 해 6월 30일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번개팅'은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낳았다. 하노이 노딜이 김정은에게 '충격'이라면, 판문점 번개팅 이후 일련의 흐름은 김정은을 변심을 넘어 또 다른 '결심'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두 번째 결심이란 북한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 대한 미련을 접고 핵무력을 정치·안보·경제·외교를 아우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체國體'로 삼은 것이다. 이후 김정은의 두 번째 결심은 미국의 정권교체 소식에도 흔들림이 없다." "그는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 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며 '대미 장기전'의 결의를 다졌다."(34-5)


2 2019년 여름의 파국


"이른바 '판문점 번개팅' 자리에서 트럼프는 그해 8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취소를 약속한다. 김정은은 북미 실무회담에 응하겠다고 화답했다." "이후 볼턴은 자신이 북핵 동결안의 제안자로 지목한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정책 결정과정에서 소외시키려고 했다. 북한이 판문점 회동 이후 북미 실무회담을 8월로 제안했는데 정작 회담 파트너인 비건이 미국의 대북정책 결정에서 소외된 셈이다." "또 하나의 합의는 한미연합훈련 중단 약속이다. 그런데 판문점 회동 이후에도 한미 양국은 연합훈련의 중단이나 연기를 발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볼턴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2019년 7월 청와대를 방문해 정의용 안보실장과 한미연합훈련 실시를 합의했다. 대통령의 약속을 참모가 뒤집은 셈이다." "정상 간의 합의를 뒤집고 2019년 8월에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하는 대신 북미 실무회담이 열렸다면 상황은 크게 달랐을 것이다. 때마침 9월에 훼방꾼 볼턴이 경질되었기에 더욱 그렇다."(43-7)


3 남북, 역대급 환대에서 근친증오로


"2018년 8월, 종전선언을 둘러싼 한미 간 엇박자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지난 6월에 나온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한반도에서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순서로 구성되었다. 무엇보다 평화체제는 평화협정 합의안의 이행 과정에서 구축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는 최종단계에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는 것은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구상이었다." "또한 북한은 당시 공동성명의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트럼프 행정부가 말한 〈동시적·병행적 이행〉에 당연히 제재 완화가 포함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다음날 정상회담의 후속 협상 테이블에서 폼페이오는 제재 완화는 비핵화가 완료될 때 고려할 사안이라며 〈동시적·병행적 이행의 예외〉라고 못 박았다." "북한 입장에선─한국 대통령이 회담 상대거나 중재자로 나선─남북·북미 정상회담의 주요 합의가 공수표가 되는 걸 지켜본 셈이다."(58-62)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은 김정은이 트럼프의 의중을 직접 확인하는 자리였다.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의 완전 폐쇄와 대북 제재 완화를 골자로 하는 1단계 타협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를 거절했고 회담은 결렬되었다. 트럼프가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중단을 약속한 한미연합훈련도 2019년 3월부터 '축소된 형태'로 재개되었다. 한국 정부의 첨단 무기 도입도 이때부터 본격화한다." "문재인 정부의 국방부는 한미연합훈련 예고에 이어 '2020-2024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했다. 5년간 290조 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군비증강 사업으로, 이 또한 2018년 남북 정상이 합의한 '단계적 군축'을 뒤엎는 정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문재인은 '남북한이 힘을 합쳐 일본을 따라잡자'는 메시지(2019년 광복절 경축사)를 던졌고, 북한은 〈삶은 소대가리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며 〈남조선과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끝끝내 남북관계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62-5)


"이 책을 쓰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산이라 그랬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전시작전권 환수와 종전선언은 모두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다가 무산된 정책이다. 문재인은 임기 막바지까지 종전선언과 전작권 환수에 공을 들였다." "문재인 정부에 따르면 종전선언은 '정치적으로는 종전인데, 법적·체계적으로는 정전'이다. 또 한국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인지, '끝내자'고 선언하자는 것인지도 불분명했다." "전임 박근혜 정부와 미국의 합의에 따르면, 한국이 전작권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대규모 군비증강을 바탕으로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초기 대응 능력을 확보하고 연합훈련을 통해 한국군의 작전권 행사 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이를 그대로 계승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연합훈련 및 대규모 군비증강이 양립 불가능한 노선임이 분명해졌을 때도 후자를 선택하고 말았다. 요컨대 그럴 의도가 아니었을지라도, 문재인은 자신의 평화정책을 전작권 환수의 조건에 종속시킨 셈이다."(70-2)


4 이어달리기와 담대한 구상


"한미 양국은 2023년 3월 세계 최대 규모의 연합훈련(Freedom Shield, 자유의 방패)에 돌입했다. 문재인 정부 중후반에 전구戰區급, 즉 전면전을 상정한 대규모 훈련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한 지휘소 연습으로, 실기동 훈련은 대대급 이하에서 주로 실시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정상화'를 내걸며 실기동 훈련도 전구급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북한 역시 '압도적 대응'을 공언하면서 맞불을 놓고 있다. 3월 16일에는 평양 순안에서 동해상으로 ICBM 화성 17형을 시험발사했다. 딸 김주애를 데리고 참관한 김정은은 〈우리 공화국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며 조선반도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연습을 번번히 벌리고 있는 미국과 남조선에 그 무모성을 계속 인식시킬 것〉을 다짐했다." "이처럼 한미동맹과 북한은 갈수록 닮은꼴이다. 한미가 '압도적 대응'을 공언하면 북한도 똑같이 응수하고 '김정은 정권의 종말'이라는 위협엔 '남조선 괴뢰정권 종말'로 되받아친다. 말뿐이 아니다. 행동도 닮고 있다."(91-3)


5 한반도, 불가역적 핵시대로 접어들다


"한국전쟁 때부터 미국이 북한에 가한 '지속적이고 계획적이며 반복적인' 핵위협은 상수다. 변수는 북한의 핵무장 여부였다. 그런데 길게는 30년, 짧게는 2년간의 비핵화 협상 끝에 북한이 내린 결론은 '부질없다'는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핵무력을 '국체'로 삼기로 했다. 김정은 정권은 핵이 재래식 군비 절감과 군민융합, 그리고 군수-민수 전환을 촉진해 경제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적대국인 한미일을 상대로는 '억제력'이 되고 우방국인 중러를 상대로는 '자주의 무기'가 될 수 있다며, 핵무장을 통해 전략국가─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모두 갖춤으로써 미국 본토를 실제 타격할 수 있는 국가─가 되리라 자신한다.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를 채택한 것은 그 결정판이다. 김정은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우리 국가의 지위가 불가역적인 것이 되었다〉라고 선언했다. 북한의 핵무장도 사실상 상수가 된 것이다."(102-3)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본격화한 이후, 한미 대응의 초점은 '맞춤형 억제'였다. 주목할 점은 북한 역시 핵무력의 다종화 및 핵 정책 법령화를 통해 '맞춤형 억제'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전술핵 강화를 통해 유사시 핵무기 사용 의지를 과시하고 다양한 작전에 활용하는 능력을 갖추겠다는 뜻이다. 북한의 전술핵 보유 논리는 미국의 입장과 판박이다. 북한은 2021년 1월 전술핵 개발을 공식화한 이후 핵무력의 '효과성과 다각화'를 강조했다. 작전 목적과 타격 대상에 따라 다양한 수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도 비슷한 표현을 쓰면서 전술핵 개발·보유를 정당화해왔다. 전술핵이야말로 핵능력과 전략의 '유연성과 다양성'을 증대해준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과 미국은 자신들의 핵무기 사용 옵션이 허풍이 아님을 전술핵을 통해 증명하려고 한다. 전략핵무기(전략핵)에 견줘 폭발력을 크게 낮춘 전술핵은 언제든 실전에 동원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104-7)


6 북한의 경제난과 식량난을 보는 다른 눈


"북한은 2021년 7월 유엔에 5개년 계획의 '전략적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하면서도, 〈2015~2019년 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5.1%〉라고 보고했다. 5개년 계획 당시 북한은 미국이 제재로 경제발전에 심각한 장애를 겪고 있음을 호소하며 제재 해결을 강력히 요구하는 입장이었다. 제재의 고통을 강조하려는 북한으로선 유엔에 거짓으로 높은 성장률을 써낼 이유가 없다." "경제제재는 비핵화를 비롯한 대북정책의 강력한 도구였다. 경제난에 빠진 북한으로선 제재 해소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런 북한이 제재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 물론 제재 해결이 여전히 '불감청고소원'이겠지만, 핵 포기를 압박하거나 거래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가치는 없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남북 경제협력 재개를 위해서는 제재 해결이 필수다. 그럼에도 북한이 '제제 해결'에서 '제제와 더불어'를 선택했다는 것은 남북경협에 대한 미련도 버렸다는 의미다.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128, 133-4)


7 병진노선은 망국의 길일까?


"병진노선의 핵심은 '안보의 경제성'이다. 그리고 이는 재래식 군비를 축소하면서 핵전력의 증강으로 이를 상쇄하려고 한 미국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뉴룩New Look', 이를 그대로 모방한 소련의 흐루쇼프, '양탄일성兩彈一星'(원자탄·수소탄과 인공위성)을 완성함으로써 경제발전을 꾀한 중국의 덩샤오핑 등의 맥을 잇는 유서 깊은 논리다. 가까이는 경제발전과 자주국방을 동시에 추구한 박정희 정권이 핵개발을 시도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런데도 유독 북한의 병진노선에 대해서만큼은 비관적 견해가 절대다수다. '북한의 핵무장과 경제발전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게 상식으로 통용된다. 여기에 경제난의 원인이 북한의 핵개발이라는 진단과 '주민들은 굶주리는데 핵개발에만 매달린다'는 비난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북한의 병진노선의 핵심 기조 역시 핵무력 건설을 통해 '자위적 억제력'을 추구하고 재래식 군비 부담을 줄여 경제건설과 인민 생활 향상에 쓰겠다는 것이다."(147-9)


8 북핵 인플레이션과 대북 억제 결핍감


"북핵 인플레이션, 즉 북핵 위협을 과장하는 언동의 최고봉은 북한이 핵무기를 앞세워 남벌南伐, 즉 적화통일에 나설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이런 주장의 논리 구조는 대략 이렇다. 1단계로 북한이 파괴력이 낮은 전술핵무기를 동원해 남한에 기습적인 핵공격을 가하거나 위협한다. 2단계로 북한이 전략핵무기인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의 대도시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미국의 개입을 차단한다. 3단계로 북한이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주요 기지에 핵미사일 공격을 가해 한미연합 전력을 무력화하고 특수부대를 투입해 남한의 주요 시설을 장악한다. 끝으로 북한이 지상군을 투입해 한반도 무력통일을 완성한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앞세워 남벌을 시도하는 순간 지구상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할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될 것이다. 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만든 북한이 한반도를 공산화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핵전쟁을 선택할 리 없다는 지적은 이러한 맥락이다."(161-5)


"대북 억제는 '결핍'이 아니라 차라리 '과잉'이다. 한미는 1970년대 후반부터 '팀 스피릿' 연합훈련을 통해 강력한 대북 억제를 추구했다. 얄궂은 사실은 북한이 핵개발에 나선 이유 중 하나가 이 훈련에서 느낀 공포감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결핍감에 시달리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과도하게 억제하려고 할수록 정작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억제가 힘들어진다는 역설을 이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한미, 혹은 한미일이 대북 억제 강화를 이유로 군사력과 준비태세를 강화할수록 북한도 마찬가지 선택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한국이 이미 충분히 강력한 미국의 확장억제를 더 강화해달라고 매달릴수록 미국은 한국에 부당청구서를 당당히 내밀 것이다. 한국이 미국에 준 돈이 남아도는데도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하라는 요구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이기적 행태는 절제를 모른다."(170-2)


9 핵공유는 왜 나라마다 다를까?


"1953년에 체결된 정전협정에는 '신무기 반입 금지' 조항이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이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핵공유 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정전협정 위반이다. 그러나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대규모의 주한미군을 유지하는 데 따르는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싶었다. 그 대안이 핵무기 전진 배치다. 그럼 미국은 정전협정과 한국 내 핵무기 배치 사이의 딜레마를 어떻게 풀었을까? 한국과 협의 없이 몰래 갖다놓는 방식이다. 당연히 한미 핵공유 협정도 없었다. 미국은 핵무기 배치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를 고수했다. 미국이 한국에 핵무기 배치 사실을 인정한 것은 1975년이다. 박정희 정권의 핵개발을 눈치챈 미국이 이를 저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2023년 4월 채택된 워싱턴 선언에는 한국이 NPT와 한미원자력협정을 준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이는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다름없다. 여기에는 어떤 식이든 핵공유는 불가하다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178-80)


10 한반도에서 '공포의 균형'은 가능할까?


"한반도는 여러 차례 전쟁 위기를 맞았지만, '끝이 보이는' 위기가 대부분이었다. 오늘날 이런 양상은 크게 바뀌었다. '갈등의 중재자'가 사라졌고, 무엇보다 북한이 대화와 관계 회복에 흥미를 잃은 상황에서 한미를 상대로 대화에 나서라는 조언 자체가 먹히질 않는다." "한반도 위기가 남북관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과거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는 주로 북미관계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의 북폭론과 북한의 전쟁 불사론이 맞선 1994년 상반기, 아들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과 김정일 정권의 핵개발 재개가 충돌한 2003년, 2017년 초 김정은-트럼프의 드잡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2020년부터 갈등의 진앙은 남북관계로 바뀌었다. 그해 6월 북한이 대북 전단 살포를 빌미로 개성공단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남북관계의 파국을 상징한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북관계는 시계 제로에서 한 발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192-5)


11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이 진짜 온다


"'한미일 남방3각 동맹 대 북중러 북방3각 동맹'이라는 이분법적 오해는 오랫동안 '흥미로운 허상'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70년간 한반도에서 이 같은 대결 구도가 실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3년 들어 미국이 추진한 MD는 북한을 명시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잠재적 적으로 삼았다. 요컨대 애초부터 한미일 대 북중러의 갈등 구조를 잉태한 전략인 셈이다. 미국이 한일은 포섭 대상으로, 북중러는 위협으로 삼으면서 양진영 간 갈등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다. 이때 동북아시아 질서의 강력한 변수로 등장한 것이 북한이다.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맞서 2003년부터 핵무기 개발을 본격화한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한미일은 물론이고 중러도 바라는 바는 아니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협상 테이블이 6자회담(2003~2008)이다. 미국 주도의 MD가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을 잉태했다면, 북핵은 사상 처음으로 동북아 주요국이 모두 참여하는 다자회담을 낳았다."(199, 203)


"6자회담은 한반도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동북아 평화안보체제를 추구했다. 하지만 2008년 청와대의 새로운 주인이 된 이명박 정부는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그해 8월 김정일이 뇌질환으로 쓰러지자 북한의 붕괴와 흡수통일 실현이 눈앞에 잡히는 듯했다. 이명박 정부는 기다리기로 했다. 이러한 이명박의 '통일몽'은 2008년 12월 6자회담 결렬로 이어졌다. 곧 망할 북한과의 협상을 부질없는 짓으로 간주한 것이다. 2009년 1월 백악관의 새로운 주인이 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어땠을까? 당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의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2008년부터는 금융위기가 미국과 서방세계의 경제질서를 강타했다. 반면 중국은 빠르게 부상하고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선택은 6자회담 재개가 아닌 한미일 군사협력이었다. 6자회담은 의장국인 중국의 위상에 이로운 일이고,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한미일의 결속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이다."(203-4)


"중국과 러시아 두 나라는 2017년까지만 해도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면 대북 규탄과 제재에 동참했다. 그러나 2020년 이후엔 북한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 급증하는데도 추가 제재 불가를 외치고 있다. 왜 그럴까? 전통적으로 북핵문제는 미중러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협력적 의제였다. 이견이 있을지언정 비확산이라는 국제규범의 규정력은 확실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신냉전의 기운이 확연해지면서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비확산보다 세력균형이 훨씬 중요해진 것이다. 이는 중러가 공식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공인할 수는 없어도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북핵을 묵인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러로서는 미국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미국이 동맹을 규합하자 북핵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이다. 미국이 중동의 세력균형을 위해 이스라엘의 핵무장을,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의 핵무장을 묵인한 것처럼 말이다."(208-9)


12 다시 친해질 수 없다면


"싸우지 않는 남북관계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미중관계에 힌트가 있다. 두 나라는 치열한 전략경쟁을 벌이며 험한 소리도 주고받지만, 경쟁과 갈등이 무력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가드레일(안전장치)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을 이루고 있다. 두 나라는 한반도-동중국해-대만해협-남중국해 등에서 치열한 다툼을 벌이면서도 무력충돌이 가져올 재앙을 의식하면서 대화에 임하고 있다." "사실 남북한에도 거대한 가드레일이 있다.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 양쪽 155마일에 걸쳐 2km씩 설정된 비무장지대DMZ가 그것이다. DMZ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북접경지역을 완충지대로 만들어 무력충돌을 예방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비무장지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중무장지대로 바뀌었고 수차례 충돌도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 비무장지대의 취지를 살리는 동시에 이를 인근 지역으로까지 확대하자는 복안을 담은 것이 바로 9·19 남북군사합의다."(220-1)


13 그래도 대안을 찾는다면: 사즉생의 해법은?


"놀랍게도 '한반도 비핵화'는 합의된 정의가 없다. 우선 북한이 말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와 미국이 요구하는 '한반도 비핵화'가 달랐다. 북한은 자신의 핵무기 포기뿐만 아니라 미국 핵위협의 근본적인 해결까지 요구했고, 미국은 자신이 핵에는 손을 대지 않고 북핵만 폐기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한국의 경우에는 정권에 따라 달랐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공식적인 용어로 사용하면서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상태〉로 정의한 반면,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공식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를 대체할 용어인 '한반도 비핵지대'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남북한은 핵무기를 개발·생산·보유·실험·접수를 하지 않고,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라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 또 핵보유국들은 남북한에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가하지 않고 핵무기 및 그 투발수단을 배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법적 구속력을 갖춘 형태로 보장한다.〉"(230-1)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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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충돌 - 미중 기술패권 전쟁과 7가지 게임체인저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박현 지음 / 서해문집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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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5G, 인공지능, 양자기술 같은) 첨단기술 경쟁에서 중국은 미국의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한 세기 만에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위협받게된 미국으로서는 어떻게든 중국이 타고 오르는 사다리를 넘어뜨려야 한다. 이 사다리 걷어차기의 관건이 바로 반도체다. 때마침 반도체산업의 생태계는 미국과 그 동맹·우방국(한국·대만·일본·네덜란드)들이 굳건히 장악하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는 미국이 반도체 기술을 틀어쥐면 중국의 추격을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다고 본다. 반도체가 미중 패권 경쟁에서 '초크 포인트Choke Point'(전략적 관문)로 불리는 이유다." "군사력 경쟁은 근본적으로 한 나라가 힘을 키우면 상대국의 안보 불안이 커지는 '제로섬 게임'이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를 '안보 딜레마'라고 부른다. 이와 달리 기술 경쟁은 대개 국가 간 물적·인적 교류를 촉진하며 양측이 모두 만족하는 '윈윈 게임'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런데 세계질서가 어지러워질 때는 기술도 제로섬 게임의 도구가 된다. 오늘날이 그렇다."(12-3)


1 긴 전쟁의 서막


"지난 1세기 동안 어느 나라도 경제 규모에서 미국의 60%를 넘어선 적이 없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맞수였던 일본과 독일은 두 나라의 경제력을 더해도 그에 미치지 못했고, 냉전 당시 소련도 그 한계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은 2014년 일찌감치 60%를 넘어섰고, 2020년에는 70%까지 넘었다. 이런 추세라면 2030년대 중반께 양국의 경제 규모가 엇비슷해질 전망이다. 물가 차이를 고려한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는 중국이 2017년에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 또한 냉전 시기 소련은 세계무역기구WTO 이전의 국제경제체제인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에 가입하지 않은 채 자본주의 진영과는 별개의 경제 생태계를 구성했다. 반면 중국은 WTO 회원국으로서 이미 세계 최대 무역국이자 수출국이다. 미국과 서방 세력이 냉전 당시 소련에 시도한 봉쇄 전략이 구조적으로 먹혀들 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미중 패권 경쟁의 승패는 양국 체제의 경쟁력과 지속 가능성, 특히 첨단기술을 둘러싼 경쟁에 달려 있다."(35)


2 세 개의 분수령


"반도체 산업에서 글로벌 공급망이 관건인 까닭은 무엇일까? 칩 하나를 설계해 완제품을 생산하기까지 국경을 수십 차례 넘어야 할 정도로 분업화가 매우 복잡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설계-제조-후공정(조립·테스트·패키징) 단계를 거치는데, 미국은 설계 부문만 주도하고, 생산과 후공정은 대만·한국·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에 의존한다. 인텔·퀄컴 등 세계적 반도체 설계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설계 역량은 단연 앞서지만, 생산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전 세계 반도체 생산 능력의 70% 이상은 동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2019년 기준으로 대만(20%)이 가장 앞서고, 이어 한국(19%), 일본(17%), 중국(16%) 순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있는 대만은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63%를 차지한다. 한국은 전체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18%에 그치지만, 메모리 반도체로 좁히면 44%를 차지한다. 대만·한국 기업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미국의 전략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59-60)


"미중 반도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동맹·우방국과의 협력 관계다. 미중 어느 나라도 글로벌 공급망 바깥에서는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 그래서 한국·대만·일본·네덜란드 등 글로벌 공급망의 길목에 있는 국가들에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낼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시장이다. 아무리 제품이 뛰어나도 시장을 잃으면 설 땅이 없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생산물량의 60%를 소비하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는 중국과 단절할 수 없으며, 그 틈을 타 중국은 자체 기술력을 축적할 수 있다. 중국 경제가 별 탈 없이 성장을 지속한다면 시간은 중국 편이다. 세 번째는 생산성과 혁신 역량이다. 두 나라 모두 약점을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국은 높은 인건비와 낮은 생산성으로 제조 경쟁력이 떨어진다." "반면 중국은 타개책을 내부에서 찾으려는 경향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자력갱생이라는 기치 아래 불가피한 흐름이지만 그 때문에 혁신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66-7)


"인공지능 경쟁의 성패는 연산능력과 방대한 데이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산능력의 발전은 처리 속도를 높이고, 데이터는 많으면 많을수록 정확도를 높인다. 연산능력이 인공지능의 엔진이라면 데이터는 연료에 비유할 수 있다. 미중의 경쟁도 이 두 가지를 빨리 확보하고 상대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은 2019년 중국 최대 슈퍼컴퓨터 제조사인 중커수광中科曙光, 대표적인 음성·안면인식 업체인 아이플라이텍(중국명은 커다쉰페이科大訊飛), 센스타임(상탕커지商湯科技) 등을 수출제한 명단에 올린 데 이어,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인 2021년 4월에도 슈퍼컴퓨터 기업 7곳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슈퍼컴퓨터는 대규모 데이터 처리에 필수다. 중국은 중국대로 강점인 데이터 통제에 나서고 있다. 2021년 9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데이터 보안법'은 플랫폼 기업을 통제하려는 목적과 함께 데이터를 둘러싼 미중 경쟁에 대응하겠다는 포석도 담긴 법안이다."(73-4)


"미중 경쟁에서 가장 위태로운 부분은 군사 영역이다. 두 나라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율무기체계 선점을 위해 사실상 인공지능 군비 경쟁에 들어간 상태다. 이는 20세기 초반 영국-독일의 군함 건조 경쟁, 냉전 시기 미국-소련의 핵무기 경쟁에 비견된다. 그나마 핵 냉전 시대엔 일단 한쪽에서 핵 공격을 시작하면 상대도 보복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두 나라 모두 괴멸적 타격을 입는 시나리오(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MAD)로 인한 억지력이 작동했다. 그런데 인공지능 무기는 공격원 추적의 난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개발 비용과 기술 습득의 용이성 등으로 인해 그런 억지력이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근본적으로 전투에서 삶과 죽음의 결정권을 기계에 맡길 수 있는가라는 윤리적 문제까지 제기되는 형편이다. 유엔이 2014년부터 관련 국제협약 체결을 논의중이지만, 강대국들은 이런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바야흐로 미중 간 '인공지능 냉전'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76-7)


"미중이 통신기술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것은 이 기술이 경제적 파급 효과뿐만 아니라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은 초기 음성통화 중심에서 3G부터 데이터통신으로 전환되었고, 이후 데이터 전송속도 경쟁을 통해 발전해왔다. 5G는 4G보다 전송속도가 20배나 빠를 뿐만 아니라, 사용자 그룹이 사람에서 서버-기계 간 통신으로 확장되었다. 자율주행·원격의료·사물인터넷·인공지능·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기반 기술이 되는 셈이다. 5G의 기술표준은 스마트폰의 통신 기준을 넘어 산업용 기계장치와 로봇들을 연결하기 위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 교환의 기준까지 결정하게 된다. 다시 말해, 5G의 기술표준을 장악한 국가와 기업이 4차 산업혁명의 기초 인프라를 통제할 수 있는 지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기술은 우주기술과 최첨단 군사 시스템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미중이 사활을 걸고 5G·6G 개발에 매진하는 이유다."(89-90)


3 지상·해저·우주에서의 네트워크 대전


"양자기술은 양자의 물리적 특성(중첩성, 복제 불가능성, 얽힘 등)을 이용해 기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는 '파괴적 혁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가운데 양자통신은 양자의 복제 불가능한 특성을 이용해 통신 내용을 암호화하는 것으로, 현존하는 어떤 기술로도 해킹할 수 없는 보안 체계로 알려져 있다. 양자통신에서 미국을 추월한 중국은 2016년 8월 세계 최초로 양자통신 위성 '모쯔墨子 호'를 발사해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바 있다." "전쟁과 평화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벌어지는 사이버 공격은 행위자 입장에선 선전포고 없이 상대국을 위협할 수 있는 매력적인 수단이다. 상대국 입장에선 사이버 공격이 물리적 폭력과 인명 살상으로 규정되는 무력 침공이나 테러 행위와 달라 강력하게 응징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사이버 공격 카드를 자주 만지작거린다면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물론 무력충돌의 가능성도 커진다. 현재 사이버 무기 개발 및 공격·응징과 관련한 국제 협약이나 규범은 전무하다."(111-3)


"미국에선 과거 정부와 군이 우주개발을 주도했으나, 2015년께부터 민간이 주도하는 이른바 '뉴 스페이스'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뉴 스페이스 시대에 급성장하는 영역이 바로 저궤도 소형 군집위성이다. 경제적 파급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기존의 통신위성이 정지궤도(고도 3만5786km)에서 서비스를 하는 것과 달리, 저궤도 운용은 지구와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아 데이터 전송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강점이 있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전 세계 약 40억 명이 모두 잠재적 고객이다." "미군은 이런 민간의 혁신을 적극 채용하고 있다. 미 공군은 2019년 말 지휘통제실의 첨단전투관리체계ABMS 1차 테스트에 스타링크 위성통신을 적용했다. 중무장 지상 공격기인 AC-130에 데이터를 전송하는 데 스타링크를 활용한 것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보듯이 초기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통신 인프라가 파손된다고 해도 미 공군 지휘통제 시스템에는 장애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117-9)


"미중은 글로벌 디지털 네트워크를 자국 중심으로 만들기 위한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이 네트워크를 가능케 하는 핵심 기반시설이 해저케이블과 데이터센터다. 여기에는 막대한 액수의 초기 투자액과 유지비용이 필요해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미중의 글로벌 디지털 네트워크 장악 경쟁은 세계패권 경쟁의 일환이다. 중국은 2013년부터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육로와 해로로 연결해 경제권을 형성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일대일로 연선국이 60여 나라에 이른다. 이 정책의 핵심축 가운데 하나가 '디지털 실크로드' 프로젝트로, 5G 통신망과 인공위성 기반의 위치 정보시스템(베이더우), 해저케이블, 데이터센터 등 디지털 기반시설을 패키지 형태로 제공한다. 두 나라가 지상(5G·데이터센터)과 해저(케이블), 그리고 우주(위치 정보)를 무대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특히 중국은 제3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매력 공세를 펴고 있다."(126-30)


4 중국의 히든카드


"희토류는 네오디뮴 등 17종의 원소를 지칭하는데 부존량이 매우 적어 희토류rare earth라는 이름이 붙었다. 희토류의 독특한 화학적·전기적·광학적 특성이 소재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희토류가 사용되는 분야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영구자석이다. 특히 네오디뮴을 활용한 영구자석은 컴퓨터 하드디스크 자기공명영상MRI 등 첨단제품뿐만 아니라 첨단무기 개발에도 필수적이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보고서에서 희토류의 군사 응용 분야로 미사일 유도, 항공기·미사일의 디스크 드라이브 모터, 레이저, 위성통신, 잠수함 음파 등을 제시했다. 이를 활용한 첨단무기로는 F-35 스텔스 전투기, 토마호크 미사일, 프레더터 등을 예시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미국 첨단무기의 공급이 본질적으로 중국의 지속적인 희토류 생산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치명적인 리스크이며, 미중 간 패권 전쟁 발발 시 결과를 가를 키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라고 밝혔다."(137-8)


"오바마 미국 행정부 말기인 2016년, 미중 기업 간에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코발트 광산을 사고파는 거래가 있었다. 당시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불과 몇년 지나지 않아 미국이 땅을 치며 후회한 거래였다. 당시 미국 광산기업 프리포트 맥모란은 콩고에 소유하고 있던 2개의 대규모 코발트 광산을 중국 기업 뤄양롼찬무예China Molybdenum에 매각했다. 이 중국 회사는 지방정부가 지분 25%를 소유해 중국 당국과도 관련이 있는 곳이다. 콩고는 세계 코발트 매장량의 70% 이상을 보유한 나라로, 중국은 이 거래로 세계 코발트 시장을 사실상 지배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내연기관차의 경쟁력이 엔진에 달려 있다면 전기차의 핵심은 배터리다. 전기차 생산원가의 40%를 차지할뿐더러 주행거리까지 좌우하기 때문이다.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에는 중국이 공급을 장악한 코발트가 필수다. 요컨대 중국은 '소재-배터리-전기차'라는 생태계를 완벽히 구현하며 전기차 사대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152-4)


5 프랭클린과 마오의 금융패권 전쟁


"미국 달러는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으로 기축통화 지위에 오른 이래 오늘날까지 무역·금융 등 국제 지불결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빌기에에 본부를 둔 국제결제시스템 스위프트SWIFT와 미국 내 은행 간 결제시스템인 칩스CHIPS를 활용한다." "미국의 제재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제재 대상에 오를 경우 미국 금융시장은 물론 국제결제시스템에 접근이 거부되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정상적인 국제 거래를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전 세계 은행들의 달러 결제는 반드시 미국 은행을 통해야만 가능하다. 한국의 국민은행 명동지점이 우리은행 명동지점과 달러 거래를 하려고 해도 미국 은행을 거쳐야 한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기업과 금융기관이 혹시라도 미국의 제재망에 걸릴까 우려해 거액의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자금세탁방지 등 내부통제에 신경 쓰는 이유다."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미국에 위협이 되는 국가·기관·개인과의 금융거래를 통제하는 기능을 담당한다."(167-8)


"이런 제재가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상당한 고통을 안기겠지만 미국이 만족할 만한 결과로 이어지긴 힘들 것이다. 미국이 그동안 북한·리비아·시리아·이라크·이란 등 다른 나라들에 시행한 경험을 보면 긍정적인 답변을 얻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제재는 한번 시작하면 뒤로 물리기 어렵다. 제재 대상국이 행동을 바꾸지 않았는데도, 제재를 해제하면 유약한 이미지가 생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제재 회피를 위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금융 분야에서 위안화의 국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2010년께부터 위안화 국제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은 국제결제이 2.4%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금융 디지털화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각국 중앙은행이 디지털통화 발행을 준비하는 흐름은 새로운 변수다. 특히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는 달러 패권 체제를 뒤흔들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169-71)


"반면에 디지털화폐와 관련한 미국의 움직임은 매우 느린 편이다. 반대파는 지금도 달러 거래가 매우 디지털화되어 있고, 금융포용은 다른 수단으로도 가능하며, 중앙은행이 개개인들의 거래 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점 등을 거론한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에서는 금융위기 발생 시 개인들이 은행 예금이나 펀드에서 돈을 인출해 초안전자산인 디지털 달러로 바꿀 유인이 생기는 등 금융 시스템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보고서도 내놓은 바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디지털 달러화 발행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2021년 여러 차례 공개석상에서 국제 지급결제 시장에서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언급하면서 〈빨리 도입하는 것보다 제대로 도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각국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하더라도 국경 간 자금 거래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간소화되더라도 여전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177-8)


6 첨단 무기 전쟁


"국제정치학자 김상배 교수는 《4차 산업혁명과 신흥 군사안보》에서 〈인공지능·빅데이터·로봇 등의 기술혁신은 지정학적 경계를 넘어서 민간부문에서 이루어지고, 나중에 군사부문에 적용되는 '스핀온spin-on'의 양상을 보인다. 이는 20세기 후반 냉전기에 주요 기술혁신이 주로 군사적 목적에서 진행되어 민간부문으로 확산되었던 '스핀오프spin-off' 모델과 차이가 있다〉라고 진단했다." "미국은 2014년에 이미 '제3차 상쇄 전략'을 내놨다. 이 전략은 새로운 기술적 우위를 통해 경쟁국의 수적 우위를 상쇄시킨다는 개념으로, 냉전 때 두 차례 시행된 이 전략을 다시 꺼내들 만큼 상황이 엄중하다는 의미다. 1차는 1950년대 동유럽에 배치된 옛 소련의 재래식 군사력의 수적 우위를 상쇄하기 위해 시행한 핵무기 개발을, 2차는 소련의 핵·미사일 역량을 상쇄하기 위해 스텔스·위치 정보시스템 등을 개발한 것을 일컫는다. 3차에서는 인공지능·바이오·레이저·극초음속 등이 '게임체인저' 기술로 꼽힌다."(186-9)


"군산복합체는 군과 방산업체가 중심이며, 보수적 싱크탱크·언론이 이들의 논리를 전파하는 구조로 움직인다. 워싱턴 정치의 핵심으로 선거자금에 목말라하는 의원들에게는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제공한다. 의회에는 '미사일방어 코커스'라는 의원 모임까지 구성되어 있다."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이런 현상을 두고 '군산복합체'를 넘어 '군·산·의회 복합체'라며 개탄한 바 있다." "포스톨 교수는 워싱턴의 이런 구조가 국제관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꼬집었다. 미사일방어는 미중, 미러 간 핵억지력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핵억지력은 한쪽의 핵 공격 시 다른 한쪽이 남은 핵전력으로 상대를 보복해 둘 다 괴멸적 타격을 입기 때문에 어느 쪽도 선제공격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그런데 어느 한쪽이 미사일방어망을 갖춰 핵미사일을 성공적으로 타격할 수 있다면 이런 '공포의 균현'은 무너지고, 선제공격의 가능성은 커진다. 이로 인해 군비 경쟁이 가속화되는 것이다."(196-8)


"포스톨 교수의 말은 마치 예언처럼 지금 동아시아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중국은 2021년 여름 두 차례에 걸쳐 극초음속 궤도 미사일 시험을 진행했다. 이 미사일은 지구 궤도를 돌다가 대기권으로 재진입한 뒤 음속의 5배 이상으로 활강해 목표물을 타격한다. 이른바 '부분궤도폭격체계FOBS' 기술이 적용된 극초음속 미사일은 미국의 조기경보 레이더의 눈을 피해 MD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방장관 자문관을 지낸 밴 잭슨 교수는 〈첨단 미사일 기술이 아시아 우방국과 경쟁국들 사이에 확산하고, 핵 강국들은 광범위한 핵무기 현대화 노력을 진행 중〉이라며 〈미국이 이런 우려스러운 흐름의 원인은 아니지만 미국의 과도한 군사적 접근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핵추진 잠수함 기술의 오스트레일리아 이전, 일본의 장거리 순항미사일 연장 검토,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 해제 등의 조처를 중국을 불안하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199-201)


7 디커플링─21세기의 냉전


"경제·기술 경쟁 분야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른바 '디커플링' 가능성이다. 디커플링은 미국과 중국 간 경제·기술 생태계가 의도적으로 분리되는 상황을 말한다. 관건은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처럼 완전한 디커플링이 가능할 것인지다. 현재로선 두 강대국의 경제·기술 생태계가 완전히 분리되는 상황은 가능하지 않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다." "실제로,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2021년 3535억 달러로, 대중국 관세 부과 직전인 2017년(3752억 달러 적자)에 다시 근접하고 있다. 미국 투자자들은 중국의 주식·채권을 2020년 말 기준으로 약 1조2000억 달러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2017년 7650억 달러에서 57.5%나 급증한 것이다. 중국의 미국 주식·채권 보유액은 2020년 말 기준으로 2조1000억 달러다. 이런 상황은 두 강대국이 상호 간에 격렬하게 제재와 반-제재 조처를 취했음에도, 민간 기업과 투자자들의 경제교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준에까지 와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209-11)


"'중국판 우버'라 불리는 디디추싱DiDi은 2021년 6월 30일 중국 규제당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호기롭게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기업공개로 조달한 금액이 무려 44억 달러(약 5조 원)에 이른다. 2014년 뉴욕 증시에 입성한 알리바바(공모금액 250억 달러) 이후 최대 규모다. 그런 디디추싱이 반년도 되지 않은 2021년 12월 3일 뉴욕 증시에서 상장 폐지를 결정해 또 한번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전에도 차이나텔레콤 등 일부 중국 기업의 상장 폐지가 있었지만 대부분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 리스크나 인권침해 연루를 이유로 제재 대상 기업으로 지목한 영향이 컸다. 그러나 디디추싱은 사정이 다르다. 무엇보다 자국 정보인 중국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이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2021년 6월 중국 내 데이터의 국외 이전을 제한하는 내용의 데이터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중국 인터넷 기업이 수집·저장하고 있는 데이터가 잠재적으로 국가안보 리스크와 직결된다는 게 이유였다."(215-6)


"미국 정부도 뉴욕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에 대한 압박에 가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2020년 12월 18일 '외국회사문책법안HFCAA'에 서명을 했다. 이 법은 미국에 상장된 외국 기업은 외국 정부 소유가 아니고 외국 정부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강제한다. 특히 외국 회계법인이 상장사 회계감사를 하면서 취득한 회계 관련 증거자료에 대해 미국 규제당국이 3년 연속 검사를 하지 못할 경우 증권 거래를 금지한다. 이미 미중은 거의 10년간 이 회계 검사권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는데 협상에 진척이 없었다. 중국은 이런 '무제한' 자료 접근권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것이라며 반발해왔다. 데이터를 많이 보유한 인터넷 기업의 경우, 회계 증거자료에는 고객 정보뿐만 아니라 회사와 정부기관 간에 오간 이메일 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중 양국이 모두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가 이어진다면 중국 IT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을 통한 윈윈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217-21)


에필로그


"미중 패권 경쟁은 둘 사이에 낀 나라들이 받을 타격이 더 크다. 전쟁 같은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배제하고 경제적 측면만 따져봐도 그렇다. 두 강대국이 보호주의로 돌아설 경우 우리처럼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은 후폭풍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은 미중 간 또는 OECD-중국 간 디커플링이 이뤄져도 두 블록과 모두 교역이 허용될 경우에는 국내총생산이 소폭 증가했다. 한국이 중국을 대체하는 어부지리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블록 내에서만 교역이 허용될 경우에는 한국이 입을 타격은 치명적이다. 미중 간 디커플링 때는 GDP 감소율이 6%로 조사 대상국 중 피해가 가장 컸다. OECD-중국 간 디커플링 때도 감소율이 5%에 달했다. 일본은 두 시나리오 모두에서 한국의 절반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는 미중 디커플링 때에는 -1%였지만, OECD-중국 디커플링 때는 0%였다. 이런 예측은 미중 패권 다툼을 대하는 안목과 태도에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준다."(230-1)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수석과 정책실장을 지낸 이호승 전 실장의 말이다. 〈이걸 선택의 문제로 국한해서 보면 국익에 부합을 안하는 거고, 너무 성급해요. 물론 어쩔 수 없이 나중에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두 나라가 다투다가 이를테면 극단적으로는 대만을 둘러싸고 전쟁을 한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어느 편이냐고 묻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성급하게 어느 편에 빨리 서야 한다, 어느 편은 배제해야 한다는 태도는 단견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잠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준은 우리가 선진국으로서 민주주의·환경·공정한 경쟁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 분명하게 지지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개방형 통상국가로서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원칙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은 누구도 거부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원칙 속에서 누구를 배제하거나 누구하고만 관계를 맺거나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232-3)


"미중 경쟁은 우리에게는 기술력과 산업경쟁력을 유지·확대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미국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원천 기술에 접근할 수 있지만, 중국은 미국의 제재로 기술 접근에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반도체·배터리 같은 분야는 세계시장에서 더 확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중국에 뒤처져 있는 인공지능·클라우드·빅데이터·항공우주·양자기술 등에서도 추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요컨대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는 한편으로,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벌리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행운의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늘날의 미중 관계는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위태롭다. 기술의 진보 단계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점, 그리고 대결의 주무대가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바뀐 점 등만 빼면 미중 대결은 영독 대결의 판박이다. 한국 등 주변국들이 진영 대결이나 각자도생에만 매몰된다면 비극의 역사는 다시 반복될 것이다."(2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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