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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패러다임, 법 - 규칙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로레인 대스턴 지음, 홍성욱.황정하 옮김 / 까치 / 2025년 1월
평점 :
1 서론 : 규칙의 숨겨진 역사
"알고리즘은 산술 연산만큼이나 오래되었으며, 규칙과 양적 정확성이 연관되기 시작한 역사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리즘은 고대 지중해 세계로부터 유래한 지적 전통에서 규칙의 주요 의미에 해당하지는 않았으며, 이는 심지어 수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알고리즘 제국은 19세기 초까지는 규칙의 개념 지도에서 하나의 점에 불과했다. 인구조사 등의 사업에 필요한 대규모 계산 같은 국가적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미국의 물리학자 하워드 에이킨 등의 선구자들조차도 계산과 관련된 제한적인 의미에서만 알고리즘을 정의했다. 이 책의 목적은 이러한 알고리즘의 극적인 성공 역사에서 중요한 초기 사례들을 조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수학적 알고리즘이 어떻게 산업혁명 시기의 정치경제와 교차하게 되었는지와도 관련이 있는데, 이는 알고리즘에 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노동과 기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20-2)
2 고대의 규칙 : 직선 자, 모델, 그리고 법률
"지중해의 습지와 중동의 사구沙丘 지역에는 나무처럼 키가 크고 화살처럼 곧게 뻗은 거대한 지팡이 식물인 물대가 자란다. 수천년간 이 지역에서는 물대의 꼿꼿한 줄기로 바구니, 피리, 저울대, 막대 자를 만들었다. 〈규칙〉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 단어인 카논kanon은 이 식물을 가리키는 셈족 언어에서 유래했고(고대 히브리어 카네qaneh와 동음이의어이다), 초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막대를 가리켰다가 이후에는 직선 자를 가리켰을 것으로 추측된다. 카논과 동일한 고대 라틴어에 해당하는 레굴라regula는 곧은 판자, 지팡이라는 의미와 연관이 있으며, 더 은유적으로는 (〈통치하다regere〉 또는 〈왕rex〉에서와 같이) 유지하고 지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영어 단어 ruler의 뜻에서는 여전히 두 의미의 공존을 발견할 수 있다." "카논kanon으로부터 세 가지의 주요한 의미론적 범주가 가지처럼 파생되었다. 첫째, 꼼꼼하고 주로 수학적인 정확성, 둘째, 복제를 위한 모델 혹은 패턴, 그리고 셋째 법률 혹은 법령이다."(41-4)
"재량은 판단의 한 형태이며, 규칙의 엄격성을 언제 완화해야 할지를 아는 것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포함하여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감각, 사리 분별, 통찰력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재량은 두 가지 측면을 지니는데, 하나는 인지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수행적 측면이다. 작지만 중요한 세부사항의 차이를 지니는 사례들을 구별하는 능력은 단순한 분석적 예리함을 넘어서는 능력인 재량의 인지적 측면의 본질이다. 또한 재량은 경험의 지혜를 추가적으로 활용하여 어떠한 구별이 원리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실질적으로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파악한다." "재량은 규칙이 전제하는 범주적 체계를 보존하면서도 그러한 범주들 내부에 유의미한 구분선을 그릴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재량은 또한 인지적 능력을 뛰어넘는다. 재량의 수행적 측면은 재량의 인지적 측면에서의 통찰력을 실현할 자유와 힘을 포함한다. 재량은 마음의 문제일 뿐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기도 하다."(57-60)
"모방과 재량은 서로 다르지만 연관된 능력이다. 수도원장을 모방하는 수도사나 조각상 「도리포로스」를 모방하는 예술가는 모방하는 모델의 세세한 부분까지 단순히 복제하기보다는, 유추를 통해서 그러한 모델의 교훈을 번역하여 새로운 사례에 적용한다. 모방은 모사가 아니다." "재량과 모방은 모두 유추에 의한 추론을 포함하는 행위이며, 이는 유사점뿐 아니라 중요한 차이점까지 식별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분별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필요한 부분만 약간 수정하는 방식의 추론을 의미한다." "원칙과 모델 모두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명시적 규칙과는 다르며 판단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둘을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모델을 모방하는 데에는 원칙이 따르는 것과 다른 방식의 판단이 동원된다. 원칙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이지만, 모델은 명확하고 구체적이다." "모델을 모방하는 경우, 판단은 유추를 통해 그 경로를 도식화하면서 특수한 것에서 특수한 것으로 이동한다."(63-5)
"현대의 규칙은 논리적인 추론법이나 과학적인 자연법칙까지를 포함해서 의미하지만, 원래 규칙의 범주는 그리스어로 테크네technê, 라틴어로 아르스ars라고 알려진 분야에 적용되었다. 의학, 수사학, 항해술처럼, 계율에 따르되 실제로 행할 때의 상황에 적절히 맞추는 것이 중요한 분야들 말이다. 그리스어로 에피스테메epistêmê, 라틴어로 사이언티아scientia라고 불린 것이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진실을 다루었다면, 기술은 특수하고 우연적인 것들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피스테메가 때때로 불변하는 형상만이 아니라 가변적인 질료도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것의 보편성을 〈항상 또는 대부분의 경우 발생하는 것〉으로 완화한다. 한편 그는 에피스테메의 확실성의 의미를 희석시킨 것과 같은 방식으로 테크네의 확실성의 의미를 강화시킨다. 우연과 사고의 발생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크네는 원인으로부터의 추론과 어느 정도의 일반성의 달성을 포함한다."(69-71)
3 기술의 규칙 : 하나 된 머리와 손
"1525년 뉘른베르크에서 예술가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는 화가, 금세공인, 조각가, 석공, 목수, 그리고 〈측량법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하학 서적을 저술했다. 저명한 고전 학자들에 대한 헌사와 잃어버린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기술〉에 대한 언급은 수공예의 원칙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서 기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고자 했던 뒤러의 야망을 보여준다." "공예 지식을 규칙으로 형식화하는 것은 그 지식에 목소리와 존엄성을 부여하자는 것이지, 이를 공방에서 제거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근대 초기의 초심자를 장인의 비법의 세계로 인도한 대부분의 기예서(쿤스트뷔휠라인)와 비법서들은 독자가 규칙과 비결을 읽고 그 과정을 실제로 반복적으로 시도할 것을 상정했다." "그러나 실행을 규칙으로 환원하는 것이 반드시 규칙을 이론으로 한 번 더 환원하는 작업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수공예와 과학 사이에서 이도 저도 아니게 부유하는 기술 자체의 중간적 지위처럼, 규칙도 손과 머리 사이를 맴돌았다."(75-9)
"실천을 기술로 환원하려는 근대 초기 문학에서는 항상 우연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일에 관한 주제가 등장한다. 실용 의학이나 점성술 같은 〈저급 과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술과 공예의 수행자들은 형상의 고분고분한 규칙성만이 아니라, 물질적 질료의 다루기 힘든 특이성도 마주했다. 의학, 목공예, 축성에서 특수성이 우세했던 이유는 동일하다. 질료가 형상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군사공학자 보방은 분명 세부사항의 귀재였지만, 그는 선험적인 체계주의자도 아니었고 지나칠 정도로 정확성을 강조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보방은 전투의 열기 속에서는 요새를 정교하게 측량하는 일이 위험한 방해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부사항을 광적으로 명시한 표조차도 문자 그대로 따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으며, 주로 보조자료나 확인해야 할 사항을 적어둔 목록의 역할을 했다. 규칙과 표는 기억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특정한 상황에 따라 독창성과 판단력을 발휘할 정신적 자유를 주었다."(95-7)
"실행의 성공과 실패는 세부사항에 의해서 너무나도 크게 좌우되고 그러한 세부사항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근대 초기 기술에서의 실행은 거친 통계적 방법론, 그리고 같은 이유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 보편성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한 얇은 규칙을 적용하기에 근대 초기 실무자들의 세계는 너무나도 불안정하고 너무도 세분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설명이나 제한조건이나 예시를 제공하는 세부사항들로 겹겹이 둘러싸인 두꺼운 규칙도 모든 세부사항을 예측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두꺼운 규칙은 실무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세부사항들과 더불어, 당면한 사례에 맞게 규칙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두꺼운 규칙은 대부분 민첩성과 판단력이 얼마나 필요할지를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자극을 주었다. 모든 사례들을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의미하기 때문에, 그 존재를 알리고 몇 가지 해결책을 모범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머지는 경험에 맡길 일이었다."(98-9)
"기계적 기술은 머리와 손, 이해와 손재주 사이의 중간적이고 모호한 지점에 존재했다.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 암묵적 지식과 명시적 지식 사이에 자리했던 기술의 규칙은 항상 이 둘 사이를 오가는 지렛대의 역할을 했다. 고대로부터 시작된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의 철학적 대립은, 일반적인(그러나 보편적이지는 않은) 규칙과 특수한(그러나 단일하지는 않은) 사례 사이를 넘나드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해 보인다. 그러나 시소의 끝이 위쪽이나 아래쪽에 머물러 있지 않듯이, 기술의 규칙의 목적은 한 극이나 다른 극에 이끌려 가서 그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다. 기술의 규칙은 중간 정도의 일반화를 통해서 패턴과 유추에 대한 실행자의 안목을 가다듬도록 하고 규칙의 주요 용어를 기억에 남게 하는 특징적인 사례들을 가르쳤다. 일반화는 결코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예시와 예외도 완전한 변칙은 아니었기 때문에, 두꺼운 규칙을 완전히 흡수한 독자는 그것이 적용되는 영역의 한계도 배우게 되었다."(112)
4 기계적 계산 뒤의 알고리즘
"현대적 의미에서 이상적인 규칙인 일반 규칙은 예시와 예외에 구애받지 않고, 구체적인 것을 규칙 안으로 들이지 않으며, 구체적인 맥락에 속하지 않고 그 위에 있다. 두꺼운 규칙은 계율과 수행 사이를 오가고, 계율과 수행은 서로를 다듬고 정의한다. 반대로 얇은 규칙은 자족적이고 명료한 것을 지향한다. 원칙적으로 보면 얇은 규칙은 분명하게 해석될 수 있다. 얇은 규칙은 설명을 멀리하며 해석학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또한 얇은 규칙은 여러 사례들을 구분하거나 특정한 상황에 따라 재량권을 행사할 필요가 없다. 얇은 규칙의 일반성은 그 규칙을 적용할 수 있는 사례가 명확하고, 규칙이 적용된다고 분류된 사례들이 모두 동질적이며, 사례 간의 동질성이 영원이 유지될 것을 전제로 한다. 컴퓨터 알고리즘이나 산술 계산이 여러 쪽에 걸쳐 작성되기도 하듯이, 얇은 규칙이 간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모호해서는 안 된다. 일반적이면서도 명확한 언어인 대수학은 얇은 규칙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130)
"알고리즘에서 기술과 예시 사이의 경계는 종종 모호해진다. 수학이 기본적인 산술 연산부터 시작하여 역수 찾기, 분수를 공통분모로 통분하기, 삼각형의 면적 계산하기 등 좀더 복잡한 기술로 확장되듯이, 거의 모든 알고리즘은 다른 알고리즘으로부터 구축된다. 고대 그리스 수학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전근대적 수학 문헌들이 유클리드의 『원론』과 같이 정의, 공리, 가정으로 구성된 체계를 갖추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은 적어도 암묵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기본 연산과 등식의 형태로 기초가 먼저 마련되고, 그다음의 단계들이 겹겹이 쌓이는 식이다. 어떤 교과서가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지를 알아내는 확실한 방법은 설명되지 '않은' 내용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다." "작곡가가 기존 음악에서 주제 악상이나 일부 선율을 재사용하는 것처럼, 알고리즘의 탑의 낮은 층에서 제시되는 예제들은 높은 층에서 제시되는 조금 더 복잡한 알고리즘의 〈계산 모듈〉이나 〈서브루틴〉으로 재사용될 수 있다."(138-9)
"중세의 일부 아시아 지역과 16세기 유럽의 천문대에서 수행된(19세기부터는 보험국과 통계청에서도 수행된) 대규모 계산의 유일한 공통점은 천문 관측값을 정리하고, 기대 수명을 산출하고, 범죄에서 무역에 이르는 모든 것에 대한 통계를 기록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대규모의 계산이 말 그대로 노동이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한 지붕 아래 모여서 엄격한 관리감독을 받았던 18세기 중반의 제조 체계가, 증기로 작동하는 베틀이 도입되기 훨씬 전의 가족 단위의 방직 공방을 대체했던 것처럼, 막대한 계산을 수행하는 컴퓨터의 발전도 알고리즘이 기계에 의해서 안정적으로 계산되는 반세기 전에 비슷한 길을 걸었다." "프랑스 기술자 가스파르 리슈 드 프로니(1755-1839)는 분업에 대한 애덤 스미스의 설명을 읽고 〈핀을 제조하듯 나의 로그 계산을 제조하겠다〉고 결심했고, 영국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1791-1871)는 로그 계산만이 아니라 모든 정신적 노동을 기계화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147, 149, 153)
"학생이든 실직한 장인이든 여성이든 간에 피라미드의 최하위에 있던 저임금 컴퓨터는 최소한 한 가지 중요한 지점에서 근대 이전에 알고리즘을 배우던 학생들과 달랐다. 저임금 컴퓨터는 더는 과거의 응용 사례와 새로운 응용 사례를 연결하는 유비 추론 능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었다. 절차를 세분화하고 표준화한 덕분에 그들은 문제와 해답을 미리 포장된 형태로 받아볼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근대 이전의 알고리즘 문헌들처럼 세부적인 것에서 세부적인 것을 귀납해내지 않아도 되었고, 초기 수학자들이 수행했던 알고리즘을 분류별로 구분해 일반화하지 않아도 되었다. 문제는 사전에 이미 다 분류되어 있었으며 풀이 절차에 관해서도 세부적인 사항이 지정되어 있었다. 어떤 컴퓨터도 이 문제가 어떤 종류의 문제인지 혹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어떤 알고리즘이 필요한지 물을 필요가 없었다. 알고리즘에 대한 이들의 경험은 근대 이전에 계산을 하던 사람들의 경험과 확실히 달랐다. 이들의 규칙은 매우 얇았다."(163)
# 가스파르 드 프로니의 피라미드형 로그 작업장은 고도로 숙련된 소수의 수학자, 분석적 지식을 갖춘 7-8명의 계산원, 덧셈과 뺄셈을 할 줄 아는 70-80명의 노동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5 계산기계 시대의 알고리즘 지능
"제4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알고리즘'이라는 단어는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를 모두 지녀왔다. 원래 의미에 해당했던 좁은 의미의 '알고리즘'은 0, 1, 2, 3, 4 같은 인도 숫자로 수행되는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의 산술 계산을 의미했다. 현대적 의미의 더욱 가까운 넓은 의미의 알고리즘은 계산 혹은 문제 해결에 사용되는 모든 단계별 절차를 포괄한다. 알고리즘 지능의 역사에서는 넓은 의미의 알고리즘과 좁은 의미의 알고리즘이 모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주제 자체는 숫자 계산과 같은 좁은 의미의 알고리즘에 해당했다. 그러나 복잡한 작업을 정밀하게 정의된 입출력을 지닌 작은 단계들의 유한하고 명확한 순서로 구분하는 것처럼 계산을 특정한 절차와 작업의 흐름으로 변환하는 방식도 넓은 의미의 알고리즘에 해당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이루어진 계산기계의 도입과 확산은 계산을 한다는 좁은 의미의 알고리즘과 계산을 위한 조직을 만든다는 넓은 의미의 알고리즘을 모두 변화시켰다."(170-1)
"17세기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계산기계들은 각각 설계, 재료, 성능, 신뢰성에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인간 지능을 대체하기보다는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기계가 지능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일부 지능은 무의식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기계적이라는 추론이 기계의 계산 능력으로부터 도출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무의식은 주의 집중력과 기억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특이한 종류의 무의식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한편으로는 계산 영재와 다른 한편으로는 계산기계 조작자를 대상으로 한 심리학 연구의 흐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계산 영재와 계산기계 조작자는 한때 서로 스펙트럼의 양 끝에 위치한다고 가정되고는 했다. 즉, 각각 숫자 천재와 숫자 부진아라고 말이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자 심리학자와 수학자들은 이러한 사례가 비정상적이라고 믿게 되었다. 위대한 수학자는 대개 계산 천재가 아니었고, 계산 천재가 위대한 수학자인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181-2)
"인간 계산원과 기계적 계산기의 상호작용은 지능을 더욱 미묘한 방식으로 변형시켰다. 계산이 지적 성취로 이해되었든 아니면 고된 노동으로 이해되었든, 계산이 왕실 천문학자에 의해 수행되었든 아니면 학생 컴퓨터에 의해서 수행되었든, 계산은 지루할 정도로 정신 소모적인 일이었다." "주의력과 정확한 계산 사이의 연결고리는 너무나도 강력해서 프로니는 지능이 가장 낮고 가장 〈자동화된〉 계산원이 가장 적은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러나 더 신뢰할 만한 계산기계가 보급되자 지성과 정확성 사이의 연관관계도 끊어지고 말았다. 20세기 초에 이르면 자동화는 오류 없는 계산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이를 보장하는 존재가 되었다. 수 세기 동안 수작업으로 결과를 확인해야 할 만큼 오류를 범하던 계산기계의 오랜 역사를 뒤집은 기계 설계, 재료, 구조의 발전은 1920년대에 이르면 〈자동화된 계산〉과 〈정확한 계산〉을 동치로 만들었다."(193-4)
"계산기계를 통해서 인간 지능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는데, 그것이 인공 지능의 탄생을 위한 길을 열어주었을까? 계산기계가 기계의 내부 구조 구성부터 기계와의 세심한 상호작용을 위한 작업의 조직에 이르는 대규모의 계산 수행의 모든 단계를 최적화하는 방법을 재고해보도록 함으로써 알고리즘의 영역을 확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표준화된 단계적 절차를 따른다는 의미에서 계산을 알고리즘적으로 만드는 것은 지능을 알고리즘으로 만드는 것과 거리가 멀다. 지능을 알고리즘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능을 계산의 한 형태로 환원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이 바람직해 보여야 한다." "인공 지능 혹은 기계 지능을 모순적이지 않은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계산〉과 〈지능〉 모두를 완전히 다시 개념화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일련의 학자들이 수학적 논리를 발전시켰던 방향이며, 이는 사무실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던 대규모 계산의 수행보다는 수학의 논리적 기반을 확보하려는 노력과 연결되어 있었다."(195-6)
6 규칙과 규정
"법law, 규칙rule, 규정regulation 간의 관계는 유동적이지만 중요한 노동의 분업에 의해서 관리되어왔다. 계층 구조의 정점에는 〈법〉이 있었는데, 법은 형식의 차원에서는 일반적이었고 관할 범위는 넓었으며 막강한 권위를 지녔다. 17-18세기에 가장 보편적이고 권위 있던 법은 자연철학자 아이작 뉴턴이 공식화한 자연법칙과 후고 그로티우스(1583-1645), 사무엘 푸펜도르프(1632-1694) 같은 법학자들이 국제적으로 유효한 행위 규칙을 찾아서 체계화시킨 자연법이었다." "계층 구조의 그다음 수준에는 자연과 인간의 왕국 모두에 적용되는 〈규칙〉이 위치했다. 여름은 일반적으로 겨울보다 덥다는 날씨의 규칙이나, 유언장이 없을 때 상속인들에게 유산을 어떻게 분할해야 하는지에 관한 법적 규칙 같은 것들이었다. 규칙은 법률보다 더 구체적이고 관할 범위는 더 제한적이었다. 계층 구조의 가장 아래 수준에는 〈규정〉이 위치했는데, 이들의 관할 범위는 더 제한적이고 개수는 훨씬 더 많으며 극도로 구체적이었다."(201-2)
"〈법치주의〉라는 문구처럼 법이 규칙의 가장 위엄 있고 고상한 측면을 보여준다면, 규정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현장에서 일을 직접 처리하는 규칙에 가깝다. 법은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별에 초점을 맞추는 규칙이고, 규정은 현미경으로 근시적인 세부사항에 초점을 맞추는 규칙이다. 이상적으로 법은 비교적 수가 적고 거의 변경되지 않지만, 규정은 수가 많고 지속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법은 보편성을 지향하며, 규정은 세부사항에 주목한다. 한편, 규칙의 의미는 둘 모두에 의해서 정의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법이 권위의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면, 규정은 일상적인 경험의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를 두고 자유주의 비평가들은 모든 정부 행위를 법치주의와 연관해서 생각하기보다는 모기 떼처럼 많고 귀찮은 규정과 연관해서 논한다. 이러한 측면은 일상생활에서 규정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법과 규정 사이의 의미 스펙트럼에서 규칙의 의미가 규정에 가까운 쪽으로 옮겨졌음을 보여준다."(202-3)
"규정은 가장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규칙이다. 우주를 질서대로 움직이는 장엄한 자연법칙부터 특정한 분야에만 적용되는 세세한 규칙에 이르는 스펙트럼에서, 규정은 후자에 가까이 놓여 있다." "따라서 규정은 작은 범위 안에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는 것의 한 사례이다. 규정은 시공간의 규모뿐 아니라 복잡성과 밀도에 따라서도 급증한다. 넓은 영역에 촘촘하게 짜인 무역망은 엄청난 부와 상품을 창출하여 상업도시에서 사치 금지법을 만들어냈고, 인구 급증과 취약한 기반시설에 대한 요구사항들은 계몽주의 시대 대도시에서 교통 및 위생 규정을 만들었으며, 문해율 상승과 인쇄술의 보급은 철자법을 규칙화하려는 노력을 촉진했다. 볼로냐의 결혼식에서든 파리의 길거리에서든 인쇄된 책의 종이에서든,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이 가속화된 속도로 확장되고 강화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규칙은 같은 공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행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의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 등장했다."(273-4)
"규정은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얇은 규칙이 되기에는 너무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규정은 규칙의 공포에 의한 엄격성과 영원히 지속될 새롭고 개선된 질서를 실현하려는 야망을 지닌다는 점에서, 얇은 규칙을 지향한다고 설명될 수 있다." "규정의 세부성은 규정의 수를 증가시킨다. 세부화할 세부사항은 항상 많고, 막아야 할 허점은 항상 많으며, 저지해야 할 예외와 회피는 항상 많다. 원칙적으로 규정은 만약의 경우나 부가적인 경우나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규칙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리 구체적이라고 해도 예외의 발생을 방지하거나 재량권을 발휘할 필요가 없을 수는 없다. 재량권이 규칙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규칙을 집행하는 사람을 위한 일방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더 많고 더 세부적인 규정은 종종 자멸적인 결과를 낳았다. 너무 많은 규정은 아무 규정도 부과되지 않은 것만큼이나 시행의 효과를 보지 못한다."(276-8)
7 자연법과 자연법칙
"모든 법은 위반될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 애초 법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규칙성을 설명하는 데에 왜 〈법칙〉이라는 말을 붙여야 할까? 자연법칙이 지배하는 대부분의 무생물은 그것을 이해할 수도 없고 어길 수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기에 〈자연법칙〉이라는 개념은 은유로 받아들여야 하며, 이러한 은유는 약간 어색한 것이 맞다. 자연법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로 당혹스러운 면이 있다. 그러한 법을 제정하는 〈자연〉이란 무엇일까? 그것이 모든 인간 종에게서 동일하게 발견되는 인간 본성이라면, 왜 자연법은 항상 매우 가변적인 실정법에 의해서 보충되며 때로는 모순될까? 특히 인간의 행동과 문화의 영역에서 법이 기껏해야 부분적으로만 준수될 때, 자연이 가지는 입법 권한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진다. 자연법칙의 물리적 필연성과 자연법의 도덕적 권위 사이의 오락가락하는 움직임은 이 구성 요소들인 〈법칙〉과 〈자연〉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긴장 상태를 보여준다."(280-1)
"법과 자연의 모순이 가장 두드러졌던 17세기 바로 그 시대에, 그때까지 뚜렷이 구분되었던 자연법과 자연법칙의 전통이 가장 크게 공명했다. 이때가 바로 인간의 질서와 자연의 질서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서로 맞물리며 등장한 순간으로, 이 두 가지 개념은 법조인으로 훈련을 받고 새로운 토대 위에 자연철학과 법률을 확립하고자 했던 프랜시스 베이컨과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같은 인물들의 저서에서 함께 등장했다. 이들의 저서에 더해 자연법 이론가인 후고 그로티우스, 토머스 홉스, 사무엘 푸펜도르프, 크리스티안 토마지우스(1655-1728)와 자연철학자 르네 데카르트, 로버트 보일, 아이작 뉴턴 같은 학자들의 연구에서도 보편적 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형성되었다. 그것은 바로 전 세계와 가장 멀리 있는 별에까지 적용되는 규칙, 인간의 정신과 사물의 질서에 영구히 새겨진 규칙,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변화하거나 예외에 굴복하지 않는 규칙, 모든 규칙 중 가장 위대한 규칙이었다."(281-2)
"불변하는 보편적 적법성에 대한 견해에 모든 사람이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날씨와 같이 변화무쌍한 현상의 변덕스러움을 연구한 박물학자들은 기껏해야 지역적 〈규칙〉들을 발견했을 뿐, 결코 안정적인 법칙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보편적인 예측이 특정 상황에서의 정의로움과 너무 자주 어긋났던 인간 세계에서는 항의가 넘쳐났다." "몽테스키외도 1748년에 발표한 『법의 정신』에서 보편법 개념에 강력히 저항하며, 법의 문자와 법의 정신 사이에서 대립하는 성 바울로의 변화를 언급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기후, 토양, 생활 방식, 종교, 부, 도덕, 예의범절에 어울리는 법이 필요했다." "몽테스키외는 자연법과 자연법칙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을 지적했다. 자연법칙은 물리적 필연성에 의해서 준수되는 반면, 자연법은 인간 이성의 동의에 의해서만 준수된다는 점이다." "18세기에 자연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 사이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자연법과 자연법칙 사이의 유비는 더욱 약화되었다."(308-9)
"그러나 두 영역을 분리하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조차도 이런 유비를 고수했다. 이마누엘 칸트는 자신이 준수할 법칙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자들의 왕국인 〈목적의 왕국〉과, 철두철미한 자연법칙에 따라 자연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인과의 왕국〉을 형이상학적, 도덕적으로 구분했다. 인간은 두 왕국 모두에 살면서 모든 것을 양쪽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첫째로 자연법칙(타율성)에 의해서 지배되는 감각의 세계에 속한 사람으로서, 둘째로 자연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선험적이고 이성(자율성)에 근거하는 지적인 세계에 속한 사람으로서〉 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연법과 자연법칙을 거의 분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가장 위대한 규칙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을 밝혀준 보편적 적법성의 은유는 유지했다. 칸트의 정언명령, 즉 실천 이성의 궁극적 법칙은 모든 이성적 존재들에게 권고한다. 〈당신의 행동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310)
8 규칙의 변용과 파괴
"원래 결의론은 주로 목회자의 목적에서 『성서』 및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교회법, 학자들의 의견을 특정 사례에 적용하여 해석하는 것을 가리켰는데, 13세기부터 가톨릭 교회 전체에서 고해 신부들이 이를 수행해왔다. 이들은 모두 일반적인 규칙이나 원리로부터 문제가 되는 특정 사건으로 추론해 내려가는 대신에, 사건 자체에서부터 추론을 시작했다." "이러한 경험주의는 특정한 사례에서 보편적 규칙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찰, 실험, 통계 조사와 같은 경험주의와는 다른 부류에 속한다." "사례는 서로 다른 규칙과 원칙을 경쟁하게 하고, 〈규범과 규범의 대결〉 상태를 만든다. 즉, 오히려 규칙이 사례에 종속되는 것이다." "수많은 세부사항과 원칙 사이의 경쟁에서, 결의론자들은 확정적인 판단 대신에 그럴듯한 판단만을 내릴 수 있을 뿐이다. 결국에는 어떤 규칙이 다른 규칙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선택되었지만, 이는 다양한 규칙들 간의 경쟁을 거친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318-21)
"형평성은 법과 정의가 어긋날 때 이 둘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개념이며, 정의의 이름으로 정의를 위해서 법을 변용하는 관행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입법자가 예측할 수 없고 법의 엄격한 적용이 부정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사레에 법의 엄격성을 완화하기 위해서 친절함, 관용, 적절함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에피에이케이아epieikeia를 사용했다. 로마의 치안판사들은 기원전 2세기에 이르러 임시로 법을 변용하고 보완하는 관행을 제도화했다. 중세의 로마법 주석가는 형평성 개념을 공정성의 원칙에 관한 것에서 관련 법규 뿐 아니라 『로마법 대전』 전체를 고려하는 총체적인 것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결의론이 규칙과 원칙을 서로 대립시켰다면, 형평성이 논의되는 경우에는 어떤 법을 적용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쟁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형평성의 이름이 시험하는 것은 법의 엄격성을 특정한 사례에 적용하는 것이 더 큰 정의에 부합하는지의 문제였다. 형평성은 법을 변용하기는 했지만 부숴버리지는 않았다."(326-8)
"근대 초기 공화주의자들은 통치자의 권력과 그 남용의 위험을 강조한 반면, 자연법 이론가들은 통치자의 지혜와 명령을 강조했다." "17세기 전반 잉글랜드에서 제임스 1세의 일방적인 세금 부과와 찰스 1세(재위 1625-1649)의 죄 없는 투옥 명령 등 대권행위를 둘러싼 갈등은 왕의 특권이 〈법의 지붕 아래 놓기에는 너무 높다〉고 주장한 사람들과 국민이 〈무한한 자의적인 권력 아래에 노출될 것이며 그로 인해 복종이 끝나지 않게 될 것〉을 두려워한 사람들 사이의 논쟁을 촉발했다." "어떤 입법자도 미래의 모든 상황을 예견할 수는 없었고, 그 때문에 모든 법은 예외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집행적 특권은 형평성의 극단적인 형태였다. 형평성이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개입하여 법원이 불의를 저지르지 않도록 구했듯이, 특권은 일반적인 비상 상황에 개입하여 정치체를 재난으로부터 구했다. 두 경우 모두에서 규칙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은 규칙을 변용하거나 파괴하는 조치를 필요로 했다."(340-2)
"모델이나 지침으로 여겨지는 규칙들은 형식화된 규칙 자체에 가변성을 내포한다. 예시, 경험, 예외는 이러한 규칙의 계율을 더욱 두껍게 만들고 실제로 집행될 때에는 더욱 유연해지게 만든다. 변동성이 크고 예측 가능성이 낮은 세상에서 예외는 모든 면에서 규칙과도 같았다. 예외는 규칙이 예외를 포함해야 했을 정도로 너무나도 자주 발생했다. 상황에 대응하여 즉흥적으로 결정을 하거나, 규칙을 조정하거나, 상황에 적응시키는 일은 당연한 작업으로 여겨졌다. 규칙을 만드는 기술이란 예측할 수 있는 상황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모두 수용할 수 있도록 충분한 규칙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어떤 규칙도 재량의 필요성을 완전히 없앨 정도로 얇거나 엄격하지는 않다. 가장 얇은 규칙인 컴퓨터 알고리즘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엣 알고리즘의 오류와 과잉을 바로잡기 위해서 수많은 익명의 인간 감독자를 필요로 한다. 모든 얇은 규칙 뒤에는 그것을 따라다니면서 청소 작업을 해주는 두꺼운 규칙들이 존재한다."(346-8)
에필로그 | 따르기보다는 깨는 편이 명예가 되는 규칙들
"규칙의 적은 규칙이 부과하는 제한 때문에 종종 고난에 처한다. 분별은 모든 면에서 부정되고, 새롭고 더 나은 업무 방식은 관료주의로 인해 묵살되며, 실제 기계가 시행하는 기계적 규칙은 인간과 상황의 자연스러운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나 엄격하든 얼마나 완고하든 상관없이, 모든 규칙은 은밀한 규칙 추론을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어떤 규칙을 따르거나 위배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명시적 규칙이 추방한 능력인 판단, 재량, 유추의 능력─모호하지만 필수적인─을 갈고닦게 된다. 이 상황에 어떤 규칙이 잘 들어맞을까? 규칙을 상황에 더 잘 맞게 조정해야 할까? 규칙의 정신이 우선해야 할까, 아니면 문자 그대로의 규칙을 우선해야 할까? 평소 이러한 문제에 대한 판단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확실하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규칙서 없이 규칙 위반의 상황에 빠지면, 우리는 규칙에 대해서 추론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규칙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3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