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범우사상신서 19
콜린 윌슨 지음 / 범우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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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해석보다는 공감을 바라며, 설명보다는 이해를 구한다. 선명한 햇빛 아래 서기보다는 안개 속에 파묻혀 너와 나의 구별을 무화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시와 소설이 추구하는 묘사는 반동이다. 그것은 불투명성을 확장할 뿐이다. 가장 천한 것으로부터 가장 고귀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해석을 포용한다.

우열을 지우고 기준을 무너뜨리니, 문학의 자리는 자주 비었으나 결코 폐쇄되지 않는 도피처이다.

그러나 문화를 생각해보라. 'ㄱ'이 떨어져 나가면서 딱딱하게 굳었던 얼음이 풀린다.

흡사 꽉 묶여있던 자루의 밑이 터진 듯하다. 내용물이 쏟아져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이것은 일견 많은 혼돈을 유발한 것 같지만, 이전에 누구도 분명히 볼 수 없도록-비록 느끼고, 기억하고, 추론할 수는 있었지만- 감추어져 있던 조각들이 외부로 노출되는 '사건'이다. 햇빛 아래 드러나는 '사건'이다.

이 많은 조각을, 모양을 구상하고 배열하고 흩어버리고 재창조하는 과정은 아마도 끝나지 않는 여정이겠지만 숨김이 없다.

이제 저 엄청난 더미를 향한 시지프스의 도전은 질서를 갈구하면서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문학의 존재이유이며-자루를 만들어내는- 또한 문학만으로 세상을, 그리고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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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 - 시베리아 억류자, 일제와 분단과 냉전에 짓밟힌 사람들
김효순 지음 / 서해문집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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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이 임박하여 일제에 의해 강제징집.
관동군으로 배치되어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힘.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역.
꿈에 그리던 귀환.
그러나,
한국전쟁 때 남북 모두에게 충성을 요구받음.

지금까지 일본도 소련도 대한민국도 피해보상 거부.

김광희는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단지 시베리아에 끌려갔던 것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노기자가 묵은 세월을 더듬어 쓴 역사 증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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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 자유 시장과 복지 국가 사이에서
토니 주트 지음, 김일년 옮김 / 플래닛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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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먹고 비대해진 국가는 폭력의 한도를 넘어서 자멸하고 말았다. 그 상처를 복지로 감싼 국가는 치유의 흔적이 희미해지자 자유의 역습에 시달렸다. 누더기 국가를 복원하는 일은 공허하지 않은 차선책이다.

1장
한 세기에 걸친 자유방임이 지구촌 구석까지 닻을 내렸을 때 아무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전쟁은 달갑기까지 한 손님이었다. 폐허에 직면하여 벨 에포크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위기의식은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했고, 시민들은 전체적인 동원과 통제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국가의 활동에 대한 긍정은 번영과 평등의 조화로운 상승 효과라는 장기간의 안정감을 풍족한 샘물처럼 공급했다.

2장
시민이라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의 자유에 주목하는 세대가 등장하면서, 안정은 정체와 동일시되었고 공감은 전복의 외침에 자리를 내주었다. 무엇이든 거부하고 파괴하고 일탈하는 급진주의는 자신에게 활동영역을 제공해 준 따분한 체제를 거부했고 공동체는 급속히 허물어졌다. 이 부정의 언어를 잠재우기 위해 등장한 전통 수호의 기치는 권력을 얻은 후에 국가를 해체하여 민간에게 넘겨주었다.

3장
이윤이 최고의 목표라는 민영화의 물결은 자신을 길러준 도덕의 회복이라는 함선을 난파시켜 버리고 자연질서에 오직 경제적 동기만을 아로새겨놓았다. 국가는 해체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듯 했지만, 자본의 질주가 야기한 금융위기는 재차 국가를 소환했다. 비록 국가의 역할이 적극적 행위자에서 수동적 체제 수호에 머무르고 있지만 역사는 합리적 이해관계보다 우둔한 정치적 합의가 낫다는 점을 증명한다.

다르게 말하지 않으면 다르게 사유하지 못한다. 이상의 현실화라는 혁명만을 쫓는 사람은 불완전한 개혁의 가치를 쉽사리 수긍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더 나은 국가의 귀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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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 운동사 -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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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 운동사  : '참 잘했어요~' 박수 세번 짝짝짝. 어깨를 토닥토닥. 

1. 서두의 '심하게 간추린 언론사'를 보면 저자는 강준만의 저서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고, 각주로 여러차례 확인하는 대목이 있다. 참 인상적이다. 흔히들 남의 글 인용하는 걸 그렇게 세세히 드러내지 않는데, 정치자금 고백하던 김근태 같은 솔직함은 출발부터 글의 신뢰도를 담뿍 높여준다.

2. 함께 느끼고 고민하고 실망했던 역사의 관통지점을 다시 더듬어 나가는 작업이 얼마나 가슴 저린 일인지 깨닫게 된다. 끝을 알면서도 다시 돌려보고 제발 이 지점에서 다른 선택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까지 들었다면 너무 바보같은 일인지...

3. 며칠전에 '위키리크스'라는 단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문득 안티조선이란 말에서 어떠한 감흥도 일지 않는 사람이 책을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생각해봤다. 안티란 말에서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낄지, 아니면 잊혀진 유적을 발굴한 고고학자처럼 새로운 청량감에 들뜰지 궁금하다. 트위터에 폭풍 RT 되듯이 후자의 감흥이 더 널리 퍼지길 바란다.

4. 1쇄임에도 불구하고 오타 한 자 없는 책은 별로 못 봤다. 편집자분들의 수고가 절로 느껴진다. 굳이 매의 눈(-_-)으로 찾아낸 흠결이 363p 아래에서 5번째 줄의 '재판소는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의...' 대목의 띄어쓰기 하나다.

5. 안티조선의 경험을 발판 삼아 삼성타도의 협소함을 극복하고, 전체 언로(言路)를 상향평준화 하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마무리에 공감한다.(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ㅎ) 이젠 매트릭스의 복제자가 너무나 많아져서 상대하기도 벅차다. 서로 자폭이라도 해준다면 '참 잘했어요~' 해줄텐데. 

 
6. 386세대가, 참여정부가 그랬듯이 '나의 젊음을 근거로 지금의 젊음을 판단하는 우'를 범한 건 아닌가 되돌아본다. 모양은 비슷해보여도 내용물은 어찌나 다른지 타인 앞에 선 우리는 언제나 겸허함을 잃지 말아야 할게다.

7. 결론 : '정리의 달인' 정달 한윤형 저. 다음 책 기다리겠습니다. 나이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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