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시경을 읽다 - 고대 중국 문인의 공통핵심교양이 된 3천 년의 민가 유유 고전강의 16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유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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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천 년의 민가


『시경』에 수록된 글은 노래의 특성이 아주 강합니다. 『시경』은 중국 문자가 가장 일찍 소리와 결합된 예이지만, 말이 아니라 노래와 결합되었습니다. 노래의 언어는 일상생활의 언어보다 단순하고 규칙적이며 반복이 많습니다. 게다가 명확한 소리의 패턴이 존재하지요. 장편서사시를 기록할 수 없는 복잡한 문자라 해도 네 글자가 한 구를 이루며 같은 구가 계속 반복되는 짧은 노래 정도는 받아쓸 방법이 있었습니다. 『시경』을 읽어 보면 중국의 문자 체계가 어떻게 언어에 접근하려 시도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시도가 일정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면 그 문자 체계가 어떻게 중국에서 가장 높고 유일한 주류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울 겁니다. 당시 사람들은 제한적으로나마 소리를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도상기호와 소리 사이의 몇 가지 규칙을 수립했습니다. 다소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문자와 언어가 이런 방식으로 연결되었습니다. 16)


『시경』은 노래이자 가사입니다. 오늘날 유행가의 가사에는 요즘 사람들의 삶과 보편적인 가치관이 딱히 정확하고 풍부하게 반영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역시 『시경』을 통해 주나라 사람의 삶과 생각을 정확하고 풍부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시경』에 비교적 효과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것은 주나라 사람이 노래를 부른 상황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노래를 불렀고, 어떤 정서와 내용을 담아 표현했을까요? 또 그들에게 노래에 담기에 적당한 사건과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시경』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전통의 늪에 빠지면 안 됩니다. 『시경』 「대서」大序와 『모시』毛詩 또는 주자朱子의 『시집전』詩集傳의 해석을 보면, 『시경』의 모든 시가 ‘미언대의’微言大義의 성격을 갖고 있어 저마다 역사적 암시와 도덕적 훈계를 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은 우리가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시경』의 작품에 불필요한 거리감과 혐오감을 갖도록 만듭니다. 18)


# 미언대의微言大義 : 간단하지만 심오한 말로 큰 뜻을 암시하는 방식


시, 서書, 역易, 예禮, 악樂, 춘추春秋는 서주西周 당시 귀족 교육의 핵심 커리큘럼이었습니다. 『서』書는 고대사로서 주나라 건립 과정에 있었던 중대한 사건과 그 사건들에 대한 선현의 검토와 교훈을 기록한 것입니다. 주나라는 자신들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들의 눈에는 너무나 강대해 보였던 대읍상大邑商, 즉 상나라를 격파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적극적으로 찾았으며, 이긴 과정과 이유 그리고 상나라 사람이 미신을 믿고 음주에 탐닉했다는 비판과 ‘천명天命이 무상함’을 경계하는 우환 의식 등을 『서』에 수록했습니다. 『서』에 대응하는 것이 『춘추』였습니다. 『춘추』는 당대의 역사이자 국별國別 역사였습니다. 여기에서 국國은 노魯·진晋·송宋 같은 봉국封國을 가리킵니다. 각 봉국의 역사가 수록되었는데, 연도를 크게 춘과 추로 나누어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기 일어난 큰 사건을 기록하는 무척 단순한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춘추’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19)


『예』는 행위 규범에 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봉건 질서에 필요한 규칙과 의식을 모아 놓은 총화였지요. ‘예’는 맨 처음에는 문자와 경서의 형식으로 존재하지 않고 실제적인 훈련으로 전해졌을 겁니다. 그래서 공자 시대에는 아직 ‘예의 시연’에 대한 견해가 보편적으로 존재했지요. 『역』은 당시 귀족 교육에서 철학 교육에 해당했습니다. 주나라 사람은 줄곧 ‘천’天의 문제를 사유했습니다. ‘천’은 인간이 좌우할 수도 도모할 수도 없는 초월적 힘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삶에서 ‘인’人은 일부였고 나머지 더 큰 부분이 ‘천’이었습니다. 우연적이고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천’이었으며, 되돌릴 수 없는 운명도 ‘천’이었습니다. 그래서 좌우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변수와 힘을 어떻게 이해하고 거기에 대응해야 하는지가 철학 교육의 포인트 중 하나였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시’와 ‘악’입니다. ‘시’와 ‘악’이 과연 하나였는지 둘이었는지는 아직까지 정설이 없습니다. 고대 음악은 구체적인 형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20)


『시경』 내용의 유래에 관해서는 전통적으로 채시采詩, 즉 시의 채집에 관한 설이 있었습니다. 서주의 ‘봉건’이 성립된 과정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탕으로 채시의 의미를 설명해 보기로 하지요. 봉건은 어떤 종친이나 공신을 지정해 특정한 땅과 한 무리의 백성을 하사하는 것, 즉 봉封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고서 그에게 자기 백성을 데리고 봉지封地에 가게 했습니다. 그 땅이 바로 그와 그 후손이 대대손손 소유하는 봉국封國이 되었습니다. 봉국은 아마도 멀고 낯선 땅이었을 겁니다. 효과적으로 그 땅을 소유하기 위해 처음에는 군사력에 의지해야 했겠지요. 하지만 계속 군사력에 의지하거나 군사력에만 의지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봉건영주는 반드시 그 땅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이해해야만 했습니다. 그 땅의 민정民情을 잘 살피고 파악해 그들과 잘 지낼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지요. 채시는 그 땅의 민가를 채집하여 그 민가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접근하는 합리적인 수단이었습니다. 20-1)


전통적인 『시경』 해석에는 여섯 개의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풍아송’風雅頌과 ‘부비흥’賦比興입니다. 풍아송은 『시경』에 실린 시의 세 가지 서로 다른 장르이며, 부비흥은 『시경』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수법입니다. 풍아송은 시의 유래와 기능과 관련 있는, 주나라 시대에 존재했던 분류법으로 『시경』의 작품 자체의 차이에서 내적으로 증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부비흥은 훗날 『시경』에 덧붙여진 설명이라 『시경』 자체와의 관련성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부’는 어떤 일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고, ‘비’는 어떤 사물로 다른 사물이나 일을 비유하는 겁니다. ‘흥’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언급하고 이어서 어떤 일이나 또 다른 사물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양자 사이에 명확한 비유 관계가 없고 또 한눈에 알아챌 만한 관련성도 없습니다. 그 시구를 읊고 노래할 때 시인의 마음속에는 부비흥에 관한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개념을 적용해 작품의 형식을 제한했으니 정말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22-3)


시경』에는 ‘풍아송’이라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장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 가장 많고 내용도 가장 풍부한 장르가 ‘풍’입니다. ‘풍’은 민간 가요에 속합니다. 다시 말해 앞에서 얘기한 채시와 관계가 가장 밀접하지요. ‘풍’은 ‘국풍’國風이라고도 불립니다. 그 가요들이 불린 봉국에 따라 배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풍’에 속하는 시는 모두 160수로, 『시경』에 실린 전체 305수 가운데 절반이 넘습니다. 국풍 15편 외의 장르에는 먼저 ‘대아’大雅와 ‘소아’小雅가 있는데, 이것도 노래이긴 하지만 귀족 사이에서 손님을 초대해 연회를 열 때 불리던 노래입니다. ‘대’와 ‘소’는 자리가 얼마나 공식적인가에 따라 나누는 명칭입니다. 세 번째 장르는 ‘송’입니다. ‘송’은 확실히 구술 내용을 문인들이 정리한 집단의 역사 혹은 집단적 정신교육 자료입니다. 그 성격은 말하기 좋고 기억하기 좋게 만든 『상서』의 구어판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송’을 낭랑하게 부르면서 거기에 담긴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쉽게 흡수하고 내면화했을 겁니다. 25)


2 귀족의 기본 교재


귀족 신분이었던 사람들은 모두 『시경』을 읽고 『시경』의 시구를 줄줄 암송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구들은 그들이 서로 소통하는 일종의 코드화된 언어가 되어, 직접적으로 말하기 불편하거나 부적합한 의미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기능했습니다. 더욱이 봉건제도에는 엄격한 상하 질서가 있어서 계층 간 존비尊卑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시경』의 시구로 이뤄진 코드화된 언어가 매우 중요하고 또 유용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춘추시대 이후 갈수록 복잡해진 국가 간의 관계에서 코드화된 언어는 자연히 외교에까지 이용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전국시대만큼 그렇게 노골적인 ‘힘’과 ‘이익’의 추구가 부각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예법이 일반 귀족의 행위를 고도로 구속하는 힘으로 작용했지요. 그래서 외교 현장에서 힘이 약한 나라가 봉건 예법을 교묘하게 이용해 강국의 침탈을 막을 수도 있었습니다. 37)


외교적 절충에 관여한 이들은 모두 전통적인 귀족 교육의 수혜자였습니다. 그래서 『시경』의 갖가지 내용을 이용할 수 있었고, 예의를 지키면서 암암리에 힘을 겨루고 관계를 맺었습니다. 가끔씩 『상서』와 『역경』을 끌어와 인용하기도 했지만 범위와 빈도 면에서 『시경』에는 한참 못 미쳤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행해진 ‘단장취의’(시의 일부를 완전히 다른 문맥에 끼워 넣어 이용한 것)는 후대 사람들이 『시경』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었습니다. 『시경』의 시를 인용한 문헌 속의 수많은 기록은 훗날 중국의 ‘주석 전통’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단장취의’가 낳은 의미들이 마치 그 시구의 본래 해석인 것처럼 간주되었습니다. 특히 시구가 정치 외교 분야에 옮겨져 쓰인 경우에는 각 시가 마치 정치적 도덕적 함의가 있는 것처럼 해석되었지요. 결국 이로 인해 『시경』 「대서」의 ‘미언대의’라는 논리가 나와 독자에게 ‘대의’의 안경을 씌우는 바람에 시의 본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게 되고 말았습니다. 37-9)


이런 입장에서 『시경』에 어떤 제재의 시가 실려 있는지 점검해 보면, 전통적인 해석과 정반대로 대다수의 시가 군주와는 무관합니다. 특히 국풍에 수록된 시와 소아의 일부는 전부 그렇습니다. 『시경』의 요체는 서민의 관심을 표현한 시입니다. 그들은 무엇에 관심이 있었을까요? 결혼과 가정, 그리고 이 두 가지와 관계된 의식儀式과 감정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시경』을 읽으면 오히려 전통적인 독법보다 더 쉽게 시대적 간극을 뛰어넘어 주나라의 인간과 사회를 더 깊이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시 서민 사이에도 봉건 질서의 토대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으며, 가정과 결혼과 인륜이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아주 중요한 관심사였음을 알게 됩니다. 가정이 으뜸이고 온 세상이 가정에서 확장된 거대한 질서 체계라는 것이 서주의 모든 계층 사람들이 공히 갖고 있던 신념이었습니다. 이것은 갑골문에 나타난 상나라 사람의 관념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40)


전통 독법에서 흔히 홀시되고, 심지어 일부러 무시하는 사실은 『시경』에 여성의 목소리가 가득하다는 겁니다.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관습적으로 여성의 목소리와 가정, 감정에 관한 사연을 비유나 환유로 간주하고, 남성 작가가 정치적 교훈을 주기 위해 위장한 채 표현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시에 많은 여성의 목소리와 감정이 반영되는 현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성중심주의의 하부에서 계속 이어졌습니다. 훗날 중국의 시사詩詞에는 여성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특이한 전통이 줄곧 존재했습니다. 가장 유명하고 눈에 띄는 것이 규원시閨怨詩와 대부분의 사詞입니다. 작가가 남자여도 당연하다는 듯이 여성 화자를 내세워 여성의 섬세하고 구슬픈 감정을 토로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사가 본래 여성 가인歌人의 노래 가사였다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중국의 전통에서 부정되었지만 사라지지 않은, 오랫동안 은밀히 존재해 온 시의 오랜 장르적 특성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40-2)


# 규원시閨怨詩 : 남편이나 연인을 잃고 홀로 남은 여인의 한을 노래한 시


3 서민 생활의 단편들


▷ 「곡풍」谷風


첫 구는 역시 자연현상입니다. 〈골짜기에 간간이 바람 불더니, 날 흐리고 비 내려요. 習習谷風, 以陰以雨.〉 그다음에는 바로 시적 화자의 토로가 이어집니다. 〈애써 한마음으로 살았는데, 화를 내면 안 되지요. 黽勉同心, 不宜有怒.〉 아마도 부부 간의 불화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순무를 뽑고 무를 뽑을 때, 뿌리만 뽑을 수 있나요? 采葑采菲, 無以下體?〉 ‘葑’(봉)은 순무, ‘菲’(비)는 무입니다. 모두 뿌리식물로 수확할 때는 반드시 땅 위의 잎을 당겨야 뽑을 수 있습니다. 이 시구의 표면적 의미는 순무와 무를 뽑을 때 잎과 뿌리를 같이 뽑지 않을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가를 수 없는데, 왜 마음을 함께하지 않고 늘 화를 내느냐는 것이지요. 이 구절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습니다. 〈약속을 어기면 안 돼요,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 했잖아요. 德音莫違, 及爾同死.〉 ‘德音’(덕음)은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한 존칭입니다. 죽을 때까지 함께 살자고 해 놓고서 이제 마음이 변해 그 말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50-1)


〈느릿느릿 길을 걷는 것은 가고 싶지 않아서이지요. 行道遲遲, 中心有違.〉 이 부분은 첫 번째 구절의 첫 시구와 호응합니다. 그녀는 길을 가다 바람과 비를 만난 겁니다. ‘違’(위)는 부수가 ‘쉬엄쉬엄 갈 착’辵으로, 본래는 길을 벗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背’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서 가는 것이고, ‘違’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 가는 겁니다. 그녀가 천천히 걷는 것은 그 길을 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길로 다른 곳에 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지요. 〈멀리는 고사하고 가까이라도, 문밖까지라도 나를 바래다주지. 不遠伊邇, 薄送我畿.〉 ‘伊’(이)와 ‘薄’(박)은 모두 뜻이 없는 어사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원치 않는 길을 떠나기 직전의 상황을 원망하는 어조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떠나는 자신을 멀리까지 바래다주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문밖까지는 배웅해 줬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지요. 다시 말해 그녀가 집을 떠날 때 그녀의 남편은 문밖까지도 나와 보지 않을 만큼 무정했던 겁니다. 51)


〈누가 씀바귀를 쓰다 하나요, 달기가 냉이 같은데. 즐거운 당신들의 신혼은 형제와도 같겠지요. 誰謂荼苦, 其甘如薺. 宴爾新昏, 如兄如弟.〉 누가 씀바귀를 쓰다고 하던가요? 지금 내 심정과 비교하면 차라리 냉이처럼 달콤한데 말입니다. 앞의 두 구는 이렇게 그녀의 쓰라린 마음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뒤의 두 구는 형제가 같이 지내듯 자연스럽고 친밀한 신혼의 기쁨을 거론합니다. 그녀는 눈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즐거운 신혼을 보았고, 그래서 못 견디게 마음이 괴로워진 겁니다. 〈경수가 위수 때문에 흐려 보여도 맑은 물가가 없지 않은데 신혼의 기쁨을 누리면서 나는 아껴 주지 않네. 涇以渭濁, 湜湜其沚. 宴以新昏, 不我屑以.〉 ‘경위분명’涇渭分明은 경수와 위수라는 두 강이 합쳐질 때 경수는 탁하고 위수는 맑아 기이한 경관이 연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맑은 위수와 비교해 경수가 탁해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경수에도 맑은 물가가 있는데, 신혼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그녀를 눈엣가시로만 보고 내쫓았다고 말합니다. 52)


이제 우리는 신혼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바로 그녀의 남편임을 깨닫습니다. 남편이 새 아내를 얻어 그녀를 집에서 쫓아낸 것이지요. 쫓겨난 그녀는 머뭇머뭇 길을 나섰는데, 남편은 심지어 문밖까지도 배웅해 주지 않았습니다.경수와 위수의 두 구로 인해 비유적 의미가 더해졌습니다. 남편의 새 여자와 비교하면 그녀는 몹시 늙고 추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젊고 예쁜 시절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시의 정서는 줄곧 애처로웠지만 갑자기 다르게 바뀝니다. 〈내 어살에 가지 말고, 내 통발을 열지 마오. 毋逝我梁, 毋發我笱.〉 이것은 명령투입니다. 고기를 잡으려고 그녀가 만들어 놓은 어살에 가지 말고 또 그녀가 놓은 통발도 열지 말라는군요. 괘씸한 남편의 새 여자를 향해 자기 물건과 물고기에는 손도 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이런 분노는 금세 사라지고 슬픔과 괴로움이라는 무기력한 감정이 되돌아옵니다. 〈자신도 못 돌보면서, 떠난 뒤의 일은 뭐 하러 걱정하는지. 我躬不閱, 遑恤我後.〉 52-3)


이어서 새로운 화제가 등장합니다. 〈깊은 물 건널 때는 뗏목이나 배를 타고 얕은 물 건널 때는 자맥질하고 헤엄쳤지요. 就其深矣, 方之舟之. 就其淺矣, 泳之游之.〉 이 네 구는 사실의 기록일 수도 있고 비유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사실의 기록이라면 그녀가 강변에 살던 시절의 회고에 해당합니다. 강을 건널 때, 물이 깊은 곳에서는 뗏목이나 조각배를 타고 얕은 곳에서는 헤엄을 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유로 읽으면 어떤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방법을 생각해 냈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그것은 그녀가 그동안 집안일을 돌볼 때 발휘했던 솜씨입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이 이어집니다. 〈집에 무엇이 있고 없는지 살펴 애써 갖추려 했고 이웃이 상을 당하면 있는 힘껏 도왔어요. 何有何亡, 黽勉求之. 凡民有喪, 匍匐救之.〉 그녀는 집안일을 살뜰히 보살폈을 뿐만 아니라, 이웃이 상을 당했을 때도 서둘러 달려가 힘을 보태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53)


〈당신은 내게 감사하기는커녕 거꾸로 원수로 여기고 내 미덕을 무시하고 안 팔리는 물건 취급을 했지요. 不我能慉, 反以我爲讎. 旣阻我德, 賈用不售.〉 ‘慉’(휵)은 ‘마음 심’心에 ‘축’畜 자를 덧붙인 글자로 감사를 마음에 새긴다는 뜻입니다. 화자는 남편이 자신의 좋은 점에 감사하는 대신, 오히려 자기를 원수로 보고 마치 장사꾼인 양 팔지 못할 물건 취급을 했다고 말합니다. 〈옛날에는 두렵고 가난하여 당신과 어려움을 함께했는데 사정이 좋아지니 나를 독약처럼 대했지요. 昔育恐育鞫, 及爾顚覆. 旣生旣育, 比予于毒.〉 첫 구의 ‘育’(육)은 어사입니다. 옛날에 그녀는 남편과 함께 두렵고 가난한 세월을 보내며 온갖 고생을 겪었습니다. 세 번째 구의 ‘生’(생)과 ‘育’은 아이를 낳고 기른 것일 수도 있지만, 앞뒤에 아이에 대한 언급이 없고 떠나는 그녀의 심정에도 아이에 대한 걱정과 아쉬움이 없는 것으로 봐서 단지 가세가 점차 좋아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러자 남편은 그녀를 독약처럼 적대시했습니다. 53-4)


〈내가 맛있는 채소를 저장한 것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였지요. 我有旨蓄, 亦以御冬.〉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것은, 그녀가 남편이 겨울을 잘 나도록 채소까지 말려 잘 저장해 두었다는 겁니다. 〈즐거운 당신들의 신혼을 누리려 나를 이용해 가난을 면했군요. 宴爾新昏, 以我御窮.〉 그녀는 그토록 노력해 가세를 호전시켰지만, 남편은 그것을 이용해 새 여자를 들여 자기 욕심만 채웠습니다. 볼수록 점입가경이로군요. 〈매섭게 화를 내며 내게 힘든 일만 시켰는데 옛날을 잊었나요, 내가 처음 시집왔던 때를. 有洸有潰, 旣詒我肆. 不念昔者, 伊予來墍.〉 남편은 걸핏하면 그녀에게 화를 내고 일부러 힘든 일만 하게 했습니다. 마지막에 그녀는 자기가 시집오자마자 치렀던 ‘기’墍라는 풍속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아직 시집의 모든 것이 낯선 신부를 3일 혹은 30일간 집안일에서 빼 주고 적응기를 갖게 하는 풍속입니다. 그녀는 슬픔이 사무쳐 말하지요. “당신은 내가 처음 시집와서 ‘기’를 치르던 나날을 잊었나요?”라고 말입니다. 54-5)


이 작품은 이혼에 관한 이야기시로, 막 집을 떠나온 이혼녀의 처지와 심정을 묘사했습니다. 이런 제재는 어김없이 우리에게 동한東漢 시대의 장편 악부시 「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시 역시 이혼한 부인의 이야기를 다루었지요. 그런데 「곡풍」의 이야기는 「공작동남비」에 비해 간략하기는 하지만 더 극적인 전환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를 읽는 사람은 모두 틀림없이 “내 어살에 가지 말고, 내 통발을 열지 마오. 자신도 못 돌보면서, 떠난 뒤의 일은 뭐 하러 걱정하는지”에서 깊은 인상을 받을 겁니다. 갑자기 매서운 분노의 말투로 남편을 빼앗아 간 여자를 상상 속에서 꾸짖습니다. 하지만 말을 마치자마자 자기 말이 얼마나 황당하고 무력한지 깨닫고 현실로 돌아와 “나는 집에서 쫓겨난 신세인데 어살은 뭐고 통발은 또 뭐람?”이라고 울적하게 혼잣말을 하지요. 이런 감정의 전환은 변심한 남자를 탓하는 다른 말보다 훨씬 더 그녀의 슬픔에 공감하게 만듭니다. 대단히 섬세한 문학적 수법입니다. 55)


▷ 「정녀」靜女


「곡풍」이 결혼의 파경을 노래했다면 「정녀」는 사랑의 시작을 노래했습니다. 역시 남녀 관계를 그린 작품입니다.〈예쁜 아가씨 아름다워라, 성 모퉁이에서 나를 기다리네. 靜女其姝, 俟我於城隅.〉 ‘靜女’(정녀)의 ‘靜’은 여기에서는 조용하다는 뜻이 아니라 예쁘다는 뜻입니다. ‘姝’(주)도 아름다움을 형용하는 글자입니다. 이 두 글자가 교차하면서 아가씨의 빼어난 미모를 강조하고 있지요. 예쁜 아가씨가 ‘나’와 만나기로 약속하고 성 모퉁이에서 은밀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서두는 흥분되어 가슴 뛰는 젊은 남자의 심정을 드러냅니다. 그는 서둘러 달려갑니다. 〈어두워 보이지 않아, 머리 긁적이며 배회했네. 愛而不見, 搔首踟躕.〉 여기에서 ‘愛’(애)는 어둡고 흐릿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뜻의 ‘曖’(애)와 통합니다. 남자는 벅찬 기대를 품고 성벽 가장자리의 은밀한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어둑어둑한 그곳을 아무리 찾아봐도 아가씨는 보이지 않았지요.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합니다. 61)


〈예쁜 아가씨 아름다워라, 내게 붉은 대통을 선물해 주었네. 붉은 대통 근사하기도 해라, 네가 아름다워 기쁘구나. 靜女其孌, 貽我彤管. 彤管有煒, 說懌女美.〉 ‘孌’(연)은 ‘姝’처럼 아름다움을 형용하는 글자입니다. 남자가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아가씨가 나타나는데,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녀는 남자에게 붉은 대통을 선물로 주었지요. 그 선물을 받고 남자가 칭찬하길, “붉은 대통이 너무 아름답네. 네 아름다움이 정말 마음에 드는구나!”라고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붉은 대통에 관해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당연히 아가씨를 찬미하는 겁니다. 〈들판에서 삘기를 가져다주었는데, 정말 예쁘고 특이하네. 네가 예뻐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이가 선물해 줘서 그렇다네. 自牧歸荑, 洵美且異. 匪女之為美, 美人之貽.〉‘歸’(귀)는 가져왔다는 뜻입니다. 이 아가씨는 아마도 성을 나와 산보를 하는 틈을 타 몰래 연인을 만나 붉은 대통을 선물하고, 그러는 김에 막 딴 삘기도 가져다준 것 같습니다. 61-2)


# 삘기 : 띠의 어린 꽃이삭.


이것은 감정이 이입된 결과입니다. 그 아가씨를 본래 좋아하는 데다, 방금 전 그녀를 못 찾아 당황하다 갑자기 그녀가 나타나자 뛸 듯이 기쁜 감정이 사물에 투사된 것이지요. 아무리 평범하고 단순한 물건이라도 이때 그에게는 특별한 광채를 띤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것은 사랑과 행복의 광채였겠지요. 이 시는 세밀한 인과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만약 아가씨가 기다리는 줄 몰랐다면 남자는 그렇게 서둘러 달려가 그녀를 찾아 헤매지는 않았을 겁니다. 또 잠시 그녀를 찾아 헤매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타났을 때 그렇게 뛸 듯이 기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어서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면 그렇게 과장해서 그녀의 선물을 칭찬하지도 않았겠지요. 먼저 그녀가 특별히 준비해 온 선물을 칭찬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그녀가 오다가 딴, 별로 귀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삘기도 칭찬합니다. 중요한 것은 삘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아가씨의 마음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짧지만 교묘한, 훌륭한 시입니다.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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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류에 휩쓸리지 않은 독창적인 사상가


『사기』에서 “묵적墨翟은 송宋의 대부大夫”라고 말했지만 동주 시기의 문헌 어디에서도 묵적이 귀족 신분의 대부라는 증거를 찾을 수 없고, 송나라 사람인지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춘추 시대에 이미 국적과 신분이 계속 바뀌는 평민이 등장했습니다. 경대부는 봉지封地와 관직이 있어 국적이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공자와 그의 제자들만 봐도 이 나라의 출신이면서 저 나라에서 관직을 지낸 예가 있지요. 귀족 신분이 아닌 평민은 세상이 어지러운 시기에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자유롭게 옮겨 다녔습니다. 그들에게는 신분의 제약이 크지 않았고 원래의 국적을 유지하거나 고집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사료에서 묵자의 출신을 확인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가 귀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귀족 신분 없이 난리 속에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이를 통해 위로 올라가 각국의 통치 계급을 찾아갑니다. 그는 노, 송, 제, 초, 위衛 등 여러 나라를 갔지만 어떤 나라가 그의 고국이라고 증명할 길은 없습니다. 16)


서주西周가 흥성했던 시기를 숭상한 공자는 주나라 문화에 함축된 정신을 발굴하는 데 힘썼고, 그러한 인문 가치를 회복해 난세를 구하고 싶어 했습니다. 반면 봉건 귀족 계급에 단 한 번도 속해 본 적이 없었던 묵자는 봉건 질서 바깥의 시선으로 봉건 질서에 내재한 결점이 바로 난리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봉건 질서는 혈연관계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결정되는 ‘친친’親親이라는 기초 위에 세워집니다. 묵자는 이 점을 겨냥해 그와 철저하게 반대되는 ‘겸애’를 들고 나왔습니다. 묵자의 겸애는 모든 사람이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가족처럼 사랑하라는 것이죠. 또 봉건 질서는 상례喪禮와 장례葬禮를 통해 대를 잇는 계승 관계를 강화했는데, 묵자는 ‘절장’節葬을 주장하여 상례와 장례에 대한 중시를 부수고자 했습니다. 봉건 질서는 음악과 주연酒宴으로 상호 간의 관계를 강화했는데, 이에 묵자는 음악이 사치이자 낭비라는 관점의 ‘비악’非樂을 주장했습니다. 17)


『묵자』의 「경 상」經上, 「경 하」經下, 「경설 상」經說上, 「경설 하」經說下, 「대취」大取, 「소취」小取 여섯 편을 통상 ‘묵변’墨辯이라고 부릅니다. 시간대로 보면, ‘묵변’이 만들어진 시기는 비교적 늦어 묵자의 시대보다 뒤였으리라 짐작합니다. 내용으로 보면, ‘묵변’은 논리학과 윤리학을 다룬 편들로, 어떻게 추리하고 논변해야 가장 효과가 있을지 탐색하고 논합니다. 따라서 ‘묵변’을 보면, 묵자 자신이 의식적으로 논변에 흥미를 가졌기에 후대의 묵가에서 이렇게 주장을 담아 엮어 냈다고 믿을 이유가 됩니다. 묵자와 묵가는 처음으로 ‘변’을 연구해, ‘변’의 논리와 원칙을 귀납하고 정리하고자 했고, 그 방법론은 훗날 독립해 나와 ‘명가’를 이루었습니다. 더 시간이 지나 ‘같음과 다름을 밝히고, 이름과 실제를 살피는’ 방법은 다시 법가法家에서 그대로 가져다 ‘법’의 규범을 정리하는 데에 이용했습니다. 이는 복잡하고 다채로운 중국 고대사상사에서 중요한 흐름 중 하나입니다. 25-6)


『논어』에서 공자는 각종 사건과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 선과 악, 좋고 나쁨 같은 도덕적 판단을 직접 드러냅니다. 이것이 ‘논’論입니다. ‘논’의 핵심은 평가와 판단으로, 공자는 자신의 평가와 판단으로 결론을 냅니다. 하지만 추론 과정이나 배경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논어』를 읽을 때 최대한 추론 과정과 배경을 새롭게 구성해 봅니다. ‘논’의 단점은 결론이 유용되기 쉽다는 것, 즉 원래의 추론 과정 및 배경과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원래 의도를 바꾸거나 심지어 왜곡하기가 몹시 쉽다는 것입니다. 전국 시대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말과 표현 방식의 주류가 ‘논’에서 ‘변’辯으로 대체되었다는 점입니다. ‘변’은 다원화 및 상호 간에 충돌하는 의견과 입장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사람들이 대화할 때의 공통 인식이 점점 얄팍해진 데서 비롯됩니다. 전에는 서로 어떤 일과 가치관에 대해 필연적이고 공통된 관점이 있었기에 그 부분의 설명을 생략하고 자신이 얻은 지혜와 결론만 내놓으면 됐지만 이제는 불가능해진 겁니다. 26)


2 진실로 실천하기 쉬운 겸애


난세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던 시대에 사람의 상상력은 무한히 확대되고, 수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답안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바로잡고 미래를 계획하려는 이런 시도는 공통된 질문과 도전에 부딪힙니다. ‘일리 있는 말이긴 한데, 그게 가능할까? 실현할 방법이 있어?’ 현실에 초점을 맞춰 나온 질문이기 때문에 추상적인 이치로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자연스럽고 유력한 답을 여기서 묵자가 제시합니다. ‘가능해. 역사에 구체적인 사례가 있으니 부정할 수 없지.’ 이런 영향을 받는 사람은 대체로 새로운 주장을 제기하려는 사람이었고, 그들은 모두 기이한 압박을 느껴 한사코 역사 속에서 사례를 찾아 자신의 주장이 실행 가능하다는 근거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역사 토론이 당연히 활발해졌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모든 주장에 다 역사의 실례가 있을까요? 개혁 추구의 이상을 가진 사람들은 수백 년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사례를 찾았을까요? 34-5)


한 가지 방법은 아주 먼 옛날의 역사에서 찾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역사 사례를 지어내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쉽게 하나로 융화되었습니다. 주나라 이전의 고대 역사는 본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어렵기에, 지어낸 얘기를 역사 속에 끼워 넣는다고 한다면 보통 오래된 이야기일수록 안도감과 신뢰감을 얻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중국 역사는 전국 시대에 전에 없이 팽창했고, 고대사는 훨씬 오래된 시대로 확장됐습니다. 후대의 엄격한 금석학金石學이나 고증학考證學, 나아가 현대의 고고학이 발달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오직 전국 시대에 전해진 자료에 근거해 고대사를 기록하고 이해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 고대사는 당연하게도 과장된 색채가 강해졌죠. 묵자가 두루 서로 사랑하고 모두 서로 이롭게 하는 것이 실천 가능함을 증명하기 위해 든 첫 번째 사례는 하나라 우임금입니다. 우임금이 고생을 자처한 이유는 이기심이 아니라 백성을 행복하게 해 주고 남을 자신처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35-6)


〈노인이 편안하게 생을 마치고, 장성한 사람은 쓰일 곳이 있으며, 아이는 자랄 곳이 있고, 홀아비와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 불구자는 모두 보살펴 주는 곳이 있다. 使老有所終, 壯有所用, 幼有所長, 鰥寡孤獨廢疾者, 皆有所養.〉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있는 이 단락은 후에 ‘대동’大同으로 불립니다. ‘대동’의 핵심은 친족의 경계를 허물어 친족이 없거나 친족을 잃은 사람도 사회에서 편안하게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봉건 질서의 주요 내용을 확장하고 수정한 것으로, 묵가의 ‘겸애’에서 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겸애 중」 전편을 관통하는 핵심 논리는 ‘윗사람이 모범을 보이면 아랫사람이 본을 받는다’는 ‘상행하효’上行下效로, 묵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거나 할 수 없다는 한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군주가 선호하고 앞장서서 제창하면 나머지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를 따라오게 돼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상대적으로 소박하고 단순하면서도 전파력이 강한 신념입니다. 36-8)


3 주나라 문화에 도전하다


묵자의 핵심 사상으로 ‘겸애’와 함께 ‘비공’非攻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을 죽이면 불의라 이르고 반드시 한 사람 죽인 죄를 묻는다. 만일 이렇게 말해 나간다면, 열 사람을 죽일 경우 불의가 열 배가 돼 반드시 열 사람 죽인 죄를 받아야 하고, 백 사람을 죽일 경우 불의가 백 배가 돼 반드시 백 사람 죽인 죄를 받아야 한다. 이에 대해 천하의 군자가 모두 알고서 비난하며 ‘불의’라고 말한다. 지금 크게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불의에 이르러서는 비난할 줄 모르고 오히려 칭송하며 ‘의’라고 말한다. 실로 그 불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적어서 후세에 남긴 것이다. 만약 그 불의를 알았다면 어찌 불의를 적어서 후세에 남겼겠는가? 殺一人, 謂之不義, 必有一死罪矣. 若以此說往, 殺十人十重不義, 必有十死罪矣. 殺百人百重不義, 必有百死罪矣. 當此, 天下之君子皆知而非之, 謂之不義. 今至大爲不義攻國, 則弗知非, 從而譽之, 謂之義. 情不知其不義也, 故書其言以遺後世. 若知其不義也, 夫奚說書其不義以遺後世哉?〉 49)


「비악」과 「절용」에서 묵자는 예악을, 특히 음악을 불필요한 낭비라고 여겼습니다. 의복의 기능은 겨울에 추위를 막고 여름에 더위를 막는 것입니다. 주거의 기능은 겨울에 찬바람과 추위를 피하고 여름에 더위와 비를 피하며 도둑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무기의 기능은 외적과 도적을 저지하고 물리치는 것이며, 교통수단의 기능은 각기 다른 지형에서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것입니다. 이런 기본 기능으로 보자면 이것들을 어떻게 제작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판단이 섭니다. 「절용 상」에는 “加輕以利”(가경이리)가 두 번 나옵니다. ‘加輕’(가경)은 사실 덜라는 뜻입니다. 묵자는 기능과 무관한 장식을 제거하고 모든 것을 기능, 즉 ‘쓸모’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절용’節用을 ‘재물을 절약하라’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묵자의 진의는 ‘용’用에 드러나 있고 모든 것은 ‘용’으로 귀결되기에, ‘쓸모없는 것’無用을 덜어서 ‘쓸모 있는 것’用을 배로 늘린다는 뜻으로 ‘절약하다’節가 되는 것입니다. 52-3)


묵자의 또 다른 핵심 사상으로 ‘명귀’와 ‘천지’가 있습니다. ‘명귀’는 귀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이고, ‘천지’는 의지를 가진 인격천人格天이 존재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논지는 인본을 중시하는 주나라 문화와 완전히 상반됩니다. 하지만 이 주장들은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가 교차하는 시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묵자의 개인 색채가 강한 ‘명귀’와 ‘천지’, 운명론을 부정하는 ‘비명’은 후대 묵가조차 외면해 버렸으니까요. 이 밖에 묵자는 ‘상현’을 주장했습니다. 친족을 주로 등용하는 당시 봉건 관습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는 묵자만의 주장이 아니라 당시 빠르게 형성된 공통된 인식이었습니다. 봉건 질서를 보존하고 주나라 초기의 이상적인 사회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던 공자도 일단의 능력 있는 제자를 양성해 친족 관계가 아닌 제후나 대부에게 임용하도록 추천했습니다. 이런 시대 변화와 치열하고 잔혹한 경쟁 앞에서 누구나 인재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에 ‘상현’에는 반대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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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소득 시대 부자들의 정체 - 우리는 왜 부자들을 감당할 수 없는가?
앤드류 세이어 지음, 전강수 옮김 / 여문책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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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도입부 


"경제정의와 경제위기를 다루는 책들은 대개 의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제도와 실천을 주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 책은 금융위기 때 최고조에 달한 오래된 경제관계의 불의함을 지적한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도덕경제학'이다. 경제조직의 기본 특징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를 평가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이 책은 받을 수 있는 것과 받을 자격(또는 필요)이 있는 것 간에 엄청난 격차가 생겼다는 사실을 중시한다. 받을 자격의 문제를 생각할 때,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는 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부자들의 경우 실제로 받는 것이 그들이 누리는 권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쉽게 입증할 수 있다. 부자들이 얻는 소득은 대부분 토지와 화폐 등의 자산을 운용해서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부를 뽑아낸 것이다. 그런 소득은 '불로소득'이다. 더욱이 지난 35년 동안 금융의 경제 지배, 곧 '금융화'가 강화되면서 부자들은 불로소득의 원천을 확장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예전보다 훨씬 더 부유해졌다."(44)


1부 부의 추출에 대한 안내


2장 위험한 세 단어: ‘벌이’, ‘투자’, ‘부’ 


"'벌이', '투자', '부'와 같은 단어들은 경제적 실천에 관한 생각과 가정을 상기시키지만, 동시에 많은 사실을 숨긴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는 올해 얼마를 벌었다'고 말할 때, 단지 얼마를 지급받았다는 뜻으로 말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 얼마를 〈벌었다〉고 특히 강조해서 말한다면, 자신은 지급받은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 많이 노력해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한 단어에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는 점은 사람들로 하여금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그래서 극빈층이 부자들을 두고 '돈을 벌었으니까 가질 자격이 있지' 하고 말하는 것이다. 또 부자들도 자신들이 부자가 될 자격이 있을 뿐 아니라 특별하며, 저소득층은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돈벌이하는 모든 사람이 과세는 당연히 자기 소유가 되어야 할 부를 강탈하는 수단이라고 여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63-4)


"투자라는 말에는 전혀 다른 두 개념이 들어 있다. '대상에 초점을 맞춘 정의'는 투자자(사람과 조직)들이 어디(예를 들면 인프라, 설비, 사람)에 투자하는지와 그 유용성, 미래에 발생할 편익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해 유용한 성질을 가진 물자(정치경제학의 용어로 사용가치)의 생산을 늘린다." "'투자자에 초점을 맞춘 정의'는 지출, 대출, 저축 금융자산 매입, 투기 등을 통해 '투자자'가 얻는 금융이득에 초점을 맞춘다. 다른 말로 하면, 사용가치 면에서 투자가 가져올 편익이 아니라 투자자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안겨주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금융 부문은 '투자'를 주로 이런 의미로 쓴다." "투자는 첫 번째 의미로는 부를 창출하는 행위를 뜻하지만, 두 번째 의미로는 부를 추출하는 행위를 뜻한다. 개인이나 기관이 진정한 투자를 위해 돈을 대는지, 아니면 단지 '투자자'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수단에 돈을 대는지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자본주의의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관행이다."(65-7)


"화폐는 많은 기능과 효력이 있지만, 우리의 논의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노동과 생산물과 서비스에 대한 청구권〉의 기능이다. 화폐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팔고자 하는 물건을 가지고 왔을 때만 가치를 갖는다." "그렇다면 '부'는 어떤가? 회계학적 용어로 부는 우리가 가진 모든 재산과 소유물의 시장가치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빚진 모든 금액('부채')을 뺀 것이다. 주어진 기간에 발생하는 화폐의 흐름인 소득과는 달리, 부는 보통 일정한 시점에 화폐가치를 가진 스톡stock 또는 축적된 물건의 시장가치로 정의한다. 우리는 어떤 물건들을 팔고 싶을 때 일정한 값을 받고 팔 수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을 끼치거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귀하게 여긴다. 이것은 사용가치적 부로서, 재화와 서비스, 인프라, 우리가 일을 잘하고 잘 사는 데 필요한 축적된 지식과 정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시 말하지만, 대부분 인간 노동의 산물인 재화와 서비스가 없으면 화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69-70)


3장 노력소득과 불로소득 


"부자들을 감당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밝히려면 〈노력소득〉과 〈불로소득〉의 구분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우선, 노력소득부터 살펴보자. 대충 말하자면, 이 소득은 임금과 월급을 받는 피고용인들과 자영업자들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한 대가로 받는 금액이다. 이는 그들의 소득에 받을 자격이 있는 금액이 정확히 반영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의 소득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이 제공에 기여해야만 주어진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노동의 대가로 받을 자격이 있는 금액과 실제로 받는 금액 간의 연관은 매우 약하다. 전자는 측정하고 싶어도 잘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의 소득은, 〈노동을 토대로 하며〉 그들이 생산하고 배달하는 재화와 서비스가 〈사용가치〉를 갖는다는 의미에서 노력소득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는 셈이다. 노력소득은 노동을 토대로 한다는 것과 사용가치 생산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는 노동을 토대로 한다는 것 말이다. 불로소득은 그렇지 않다."(73-4)


"어떤 불로소득('이전소득')은 수령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노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무상으로 주어진다. 아동, 노인, 환자, 임금을 지불받는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런 유형의 불로소득을 얻는다. 소득 제공자는 가족일 수도 있고 국가일 수도 있다. 이 경우에 불로소득은 〈필요〉를 근거로 정당화되는 것 같다." "이와 달리 '추출되는 불로소득'은 토지, 빌딩, 설비와 같이 이미 존재하는 자산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추출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 자산을 갖고 있지 않지만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사용하는 경우 사용료를 내야만 한다. 불로소득자들은 스스로 노동을 할 수 있건 없건, 소득을 벌 수 있건 없건, 그들에게 돈을 내는 사람이 공정하다고 여기건 여기지 않건 간에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다." "추출되는 불로소득을 얻는 것은 '자격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들이 가난해서 스스로 먹고 살 수 없는 존재라고 다른 사람들이 판단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76-8)


"불로소득에 대해 던져야 할 의문이 한 가지 더 있다. 불행히도 사람들은 이 의문을 너무나 자주 간과한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들이 생산에 기여하지 않고도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고 있다면, 도대체 누가 그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걸까? 답은 이것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이 생산하지 않고 소비할 수 있다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이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이 생산해야만 한다. 달리 말하자면, 다른 누군가가 잉여를 생산해야만 한다.〉 이들은 임금이나 월급을 받기는 하겠지만, 〈일부 노동에 대한 대가는 못 받는다.〉" "단순히 자산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얻는 불로소득은 누가 그 혜택을 누리건 문제가 있다. 생산이나 필요가 아니라 권력에 토대를 두기 때문이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소액의 자산 기반 불로소득을 얻는다는 사실 때문에 방 안에 있는 코끼리를 놓쳐서는 안 된다. 부자들은 이 불로소득을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이 얻는다."(81-2)


4장 지대, 무엇에 대한 대가인가? 


"지대는 유용한 물건을 창출한 데 대해 주는 대가가 아니다. 토지를 만들기 위해 비용을 낸 사람은 없다. 게다가 소유권 그 자체는 토지를 더 생산적으로 만들지 못한다. 지주가 토지를 개량하거나 토지 위에 무언가를 짓는 경우에만 그의 소득은 노력소득이 될 수 있다. 단, 전부 그런 것은 아니고 개량 노동의 대가에 해당하는 것만 그렇다. 그것을 초과하는 부분은 미국의 개혁가 헨리 조지는 '불로증가'라고 불렀다. 지주가 토지를 사서 임대용 건물을 짓는 곳에서 임차인은 건물 건축비에 상응하는 대가 외에 순전한 경제적 지대까지 낸다. 기존의 자산이나 자원을 소유함으로써 불로소득을 얻는 사람을 정치경제학에서는 〈불로소득자〉라고 부른다." "〈불로소득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노동에 무임승차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지대로 100만 파운드를 받는다고 하면, 그 돈은 그것으로 살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가 존재해야만 가치를 갖는다. 이 재화와 서비스는 다른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생산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85-6)


"어떤 생산물이나 기술을 독점하고 있거나 전속시장(captive market: 소비자가 특정 상품을 살 수밖에 없는 시장)을 가진 기업은 가격을 완전경쟁시장에서 받을 수 있는 수준 위로 밀어 올릴 수 있다. 그때 얻는 소득 가운데 일부는 지대다. 기업들이 로비와 뇌물로 정부를 움직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술 기준과 규제를 승인하도록 할 때도 그 기업들이 노리는 것은 경제적 지대다. 정보기술IT에 호환성이 필요하다는 사실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Windows 운영체계를 팔아서 막대한 지대를 추출할 수 있었다. 특정 기술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면, 다른 사람들이 그 기술을 활용할 때 사용료를 부과해서 지대를 추출할 수도 있다."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기는 하지만 지대 획득이 목적인 '소프트파워'[정보과학이나 문화·예술 등이 행사하는 영향력]의 사례도 있다. SNS는 사용자들에게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는데, 수익의 주된 원천은 광고 공간을 허락하고 얻는 경제적 지대다."(88-9)


"사람들은 부자를 생각할 때 흔히 스포츠·텔레비전·영화의 스타들과 가수들을 떠올린다. 많은 경우에 그들은 능숙한 솜씨로 정말 열심히 일하지만,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유전자의 이점을 누린다. 농구선수의 예외적인 키, 체력 단련에 힘쓰는 운동선수의 인내심, 모델의 광대뼈, 눈, 긴 다리를 떠올려보라. 이런 요인들은 노동과 훈련의 산물이 아니라 상속받은 자산이다." "축구 선수들의 소득이 과거(예컨대) 소득의 20배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그들의 기술과 노력이 그만큼 늘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변한 것은 관중과 시장의 규모다. 이 변화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광고주들의 협찬 그리고 축구용품 판매가 가져온 결과였다." "가요계와 영화계의 톱스타들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들의 소득은 그들이 기여한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 지대까지 반영한다. 실제로 글로벌 미디어의 성장으로 고객 수가 급증하면서 그들이 얻는 경제적 지대의 크기도 증가했다."(93-5)


5장 이자, 무엇에 대한 대가인가?: 고리대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부채는 단순히 화폐의 총합이 아니라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 사이의 사회관계이다. 만일 인플레이션의 효과를 배제한 실질 이자율이 영(0)이라면, 거래가 시작된 배경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거래의 결과는 평등하다. 하지만 실질 이자율이 양(+)이라면, 부채 상환액이 부채액을 초과하게 되므로 불평등이 늘어나고, 대출자는 채무자의 상대적 취약성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채무자가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고 부채를 모두 상환했을 경우, 순흐름net flow으로 계산하면 그동안 화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부자들에게로 흘러갔을 것이다. 부자들은 이자를 통해 저소득층에게서 화폐를 '빨아들일hoover-up' 수 있다." "마이클 허드슨의 표현에 따르면, 이자는 경제에 '사중적 비용'[dead-weight cost: 사회 전체의 후생이 감소해서 생기는 비용]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단순한 이전transfer, 즉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네거티브섬 게임이다. 다시 말해 이자는 다른 요인들이 일정하다면 경제를 악화시킨다."(101-3)


"〈이자 부담은 미래에 대한 청구권을 창출한다.〉 이자를 받고 하는 대출은 궁극적으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증가분으로 지탱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이 필요하다." "미시적 차원에서 볼 때, 개별 채무자들은 현재의 지출을 줄여서(근검절약을 통해) 이자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전체 경제의 차원에서는 사태가 다르게 전개된다. 많은 사람이 소비를 줄이면, 기업의 매출이 줄어든다. 이는 노동자 해고로 이어지고, 소득을 잃은 노동자들의 부채 상환은 더 어려워진다. 따라서 정부가 강요하는 긴축생활은 부채 상환에 필요한 성장을 방해하므로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채권자가 부채를 탕감해주지 않는다면, 채무자가 이자를 낼 수 있도록 경제성장이 이뤄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자를 받고 하는 대출은 달성 불가능하며 환경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경제를 요구하는 셈이다. 그리고 채권자들이 미래를 지배하는 한, 부채는 채권자들의 지배를 미래에까지 연장한다."(115)


"사람들은 대부분 이자를 자신들의 저축이나 부채와 연결해 생각하고, 대출은 항상 다른 누군가의 저축에서 나온다고 가정한다. 이 그림에는 심각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은행은 저축자들이 저축을 일시에 몽땅 인출하지는 않으리라고 가정하고 예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대출하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은행이 이자를 낳는 신용(차입자의 시각에서는 부채)의 형태로 전자화폐를 〈창조〉할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은행은 예금을 기다리기보다는 예금을 〈창조〉한다." "전통적인 경제이론에서는 저축이 투자(대출)를 결정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난센스다. 대출 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채무 불이행의 위험과 차입자가 충분한 담보를 가졌는지 여부다. 이 '신용화폐'의 생산 비용은 무시해도 될 정도라서, 〈이 경우 이자는 물론이고 원금까지도 분명히 노력 없이 생기는 돈이다.〉 결국 은행 이자는 차입자에 대한 사적 조세다."(117-8)


6장 생산에서 나오는 이윤: 자본가와 불로소득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주식은 불로소득의 중요한 원천이다. 주식 거래의 97퍼센트 이상이 2차 시장(이미 발행된 유가증권이 투자자 간에 거래되는 유통시장)에서 매매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겉으로 보이는 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투자자'처럼 내가 기존의 주식을 매입하면, 내가 지불하는 돈은 기업이 아니라 이전 주주의 수중에 들어간다. 다시 말해, 나는 기업에 실물투자는 하지 않은 채 기업에서 생기는 미래소득의 흐름에 대한 권리(무기한 지속할 수 있는 권리)를 매입한 것이다." "컴퓨터나 자동차 같은 일반 제품의 수요가 증가하면, 공급도 따라서 증가한다. 또 이런 제품의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량이 줄어들고,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량이 늘어난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이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기업들은 주가 하락을 촉발할까 봐 조심하기 때문에, 신주 공급을 꺼린다. 또 '투자자'는 가격이 오를 것이라 예상되는 주식을 사고 싶어 한다. 따라서 주식시장은 일반 상품 시장과 근본적으로 다르다."(140-1)


"주주는 대개 부재不在 소유주다. 이들은 보유자산을 다각화함으로써 하나의 자산만 가진 개인 소유주처럼 특정 자산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출처에서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은 소유권의 내용을 마음먹은 대로 쉽게 변경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빨리 팔 수 있다고 믿는 유동성 숭배는 책임과 헌신을 포기하게 만든다. 장기적으로 노동에 관심을 품고 헌신하지만 거기서 발생하는 이윤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피고용인들의 이해와는 상관없이, 주식은 순전히 주주 개인의 이익을 위해 매매된다. 주식에서 기이한 점은 유한책임이라기보다는 무기한 불로소득을 제공하는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통상 2차 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하는 외부인들은 '분배 이윤'이라는 형태로 기업 수익의 일부에 대한 권리를 누린다. 더 큰 문제는 주주의 권한이 커질수록 경영진이 비용을 절감해 주주에게 더 많은 배당금을 지급하려고 하므로,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144)


"많은 사람의 연금이 주식 보유와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 창출에 의존하고 있고, 또 많은 사람이 주택 가격 상승으로 불로소득을 얻었음에 비추어, 피고용인이면서 동시에 영세 불로소득자인 사람들이 매우 많다고 해야 한다. 그들은 불로소득 게임에서 단역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이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대대적으로 이 게임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중요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지대 추구를 소득원으로 삼으며 부유한 불로소득자가 자신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불로소득자는 아니다. 우리는 왜 소유주, 특히 자신의 주식이 가져다줄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주주가 기업에 대해 배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피고용인은 아무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계속 질문해야 한다. 노골적으로 불공정한 이 제도는 합리적 논쟁이 아닌 힘이 승리한 역사적 투쟁의 산물임에도, 우리는 마치 '원래 그런 것'인 양 그것을 당연시한다."(145-8)


7장 고양이 가죽을 벗기는 다른 방법 


"불로소득자는 지대나 이자뿐만 아니라 자산의 시장 가격 상승분인 '자본이득'으로도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자본이득을 실현하기 위해 자산을 매각해야 할 수도 있지만, 계속 보유하더라도 미실현 자본이득 덕분에 회계 장부 상태가 개선되고 대출 시 적용되는 담보 가치도 늘어난다." "지난 30년 동안 주가가 상승한 것은 경제성장 때문이 아니라, 개인연금을 통해 금융'투자'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대규모 기관 '투자자'가 성장했고, 그런 가운데 주식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식 공급은 상당히 정체되어 있었다. 주가가 상승하자 자본이득을 누리려는 매수자가 늘어났고, 이는 주가를 더 상승시켰다. 이러한 '선순환'은 (신자유주의의 핵심 특징인) 자산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불로자산을 빠르게 증가시켰다." "이 과정이 계속되는 동안 불로소득자의 무임승차는 점점 더 커진다. 마침내 사람들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없거나 능력이 없는 단계가 되면 거품이 꺼진다."(150-1)


"불로소득자는 인플레이션과 애증의 관계가 있다. 화폐가 저렴해지면 불로소득자가 받는 이자의 가치가 떨어진다. 그러나 실질 이자율이 낮거나 제로에 가까우면 차입자에게 좋은 소식이 될 뿐만 아니라, 사중적 비용이 최소화하기 때문에 경제에도 좋다. 따라서 강력한 불로소득자들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중시하는 정부를 선호한다. 물론 차입자는 소비자이기도 하므로 그들의 소득이 인플레이션을 따라잡지 못하면 소비재 가격의 상승으로 손해를 본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 정부는 공식적으로 물가 안정을 바라는 소비자의 이해를 지원함으로써 은밀하게 불로소득자를 도왔다. 하지만 불로소득자들이 좋아하는 인플레이션 유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자산 인플레이션이다. 이는 신자유주의가 감추고 있는 더러운 비밀이다. 자산 인플레이션은 자산이 없어서 노력소득에 의존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산을 소유하고 그것으로 불로소득을 얻는 사람들에게로 부를 재분배한다."(159)


"과거의 게으른 부자 불로소득자와 오늘날의 '일하는 부자'를 대조적으로 묘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자들에게 자명한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노동에 대한 급여 형태의 소득이 '불로소득'이 될 수 있을까? 노동이 지대 추구, 이자 부과 또는 다른 방법으로 불로소득을 추출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면 그럴 수 있다." "지대를 징수하거나 빚을 회수할 때 반드시 문을 두드리며 돈을 걷을 필요는 없다. 이자를 받기 위해 부채를 매입하고 자산 인플레이션에 편승해 투기를 벌일 수도 있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돈을 굴리면서 끊임없이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일은 풀타임 직업이 되었으며, 그런 일자리를 향한 경쟁도 치열하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노리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생산한 부를 추출할 수 있는 자리, 실제로 그렇게 하라고 요구받는 자리라는 점이다. 특히 불로소득자 조직에서 일하는 경우, 그들의 급여는 반드시 생산적 기여를 반영하지는 않는다."(161-3)


8장 부자는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는가? 그 외 다른 반론들 


"부자와 슈퍼리치들은 여윳돈으로 통상 실물투자나 금융'투자'를 해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한다. 금융'투자'를 하는 경우, 시장 변동에 베팅하든, 소득을 낳는 자산을 매입하든, 아니면 불로소득을 추출할 다른 방법들을 동원하든, 그들의 행위가 일자리를 창출하지는 않는다. 어떤 '투자'는 기업을 인수해 그 일부를 매각(다른 말로는 자산 탈취)할 목적으로 행해진다. 이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기가 쉽고,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생산 능력을 감퇴시킨다." "부자들이 설비 확충, 훈련, 신규 인프라 건설 등 생산적인 실물투자에 자금을 투입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기업은 사업을 확장할 때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도 있다.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자본가에게 최후의 수단'이다. 노동자를 더 고용하면 생산량을 늘릴 수 있지만, 더 싸게 생산량을 늘릴 다른 방법이 있다면 기업은 그렇게 할 것이다."(182-3)


"평범한 사람들은 단지 돈을 지출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한다. 일자리 수는 사람과 기업이 더 많은 돈을 지출할 때 늘어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총수요는 개별 기업의 통제 범위 안에 들지 않는다. 그것은 개별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다. 수요가 증가하지 않으면 기업은 성장할 수 없다. 현재 자본주의 경제가 위기에 직면한 것은 많은 부유한 국가에서 수십 년 동안 총수요가 정체되어 있었고, 소비자 신용의 대규모 확대만이 총수요를 증가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에 크게 기인한다." "부자들이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쓰는 돈의 비중은 다른 사람들보다 작다. 케인스의 용어로 말하자면, 부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한계소비성향'이 낮다. 따라서 다른 조건이 동일한 경우, 부자들에게 소득을 재분배하면 총수요는 감소하고, 저소득층에게 소득을 재분배하면 총수요는 증가한다. 〈이는 '낙수효과'론이 틀렸음을 뜻한다.〉 낙수효과는 돈을 부자들의 수중에 안겨주는 지대와 이자의 '독점 효과' 때문에 쪼그라든다."(183-4)


"현대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내가 지대·이자·투기·사적 이윤 등이 '자원 배분의 효율성'에 기여하는 바를 무시한다고 불평하면서 지금까지의 내 주장에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부자들은 '투자'를 통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증진하며 그들의 부는 그에 대한 보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 민간이든 금융 시스템이 맡아야 할 일 중 하나는 잘 쓰지 않거나 놀리고 있는 자원(특히 저축)을 더 생산적으로 쓸 수 있는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는 당연한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그것이 자본주의에 고유한 배분 효율성의 전혀 다른 버전을 위장하기 위해 자주 언급된다는 점이 문제다. 자본주의에서는 기대 금융 수익률이 가장 높은 곳을 위주로 자원을 배분한다. 최고의 기대 수익률은 노동이 가장 많이 착취되는 곳이나 소비자의 소득이 가장 높은 곳, 혹은 지대 추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나 자산 인플레이션율이 가장 높은 곳, 아니면 세금이 가장 낮은 곳에서 실현될 수 있다."(198-200)


# 소비자의 소득이 가장 높은 곳.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더 비싼 값을 제시하고, 부자와 비교할 때 가난한 사람의 욕구와 필요가 시장에서 크게 과소 대표되는 곳


"주류 경제학이 경제과정을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독특하다. 경제생활을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재화를 교환하는 문제로 보기 때문에 생산(모든 사회가 살아남으려면 꼭 필요하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주류 경제학은 시장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모든 사회가 시장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회라도 살아남으려면 생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 교과서의 첫 부분에 시장이라는 눈가리개를 마련해두기 때문에 가격이 수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어떻게 결정하는지부터 배우는 것은 당연하다." "주류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시장 교환의 측면에서 경제적 효율성을 따진다. 즉, 모든 자원이 소유자에게 최대의 효용을 제공하는 곳으로 이동되었는지 아닌지가 기준이다. 따라서 이를 제한하는 행위(예를 들어 정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하거나 노조가 단체교섭에 참여하는 것 등)는 그렇게 정의되는 경제적 효율성을 감소시킨다."(203-5)


2부 부자들을 제자리에 두기: 무엇이 사람들의 수입을 결정할까


9장 우리의 부는 어디서 나올까? 공유부의 중요성 


"1부에 따르면, 부는 순전히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나오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부를 혼자서 맨 처음부터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미 생산된 것과 과거 사회에서 물려받은 것을 이용하고,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추가하며, 자연자원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부를 창출한다. 우리에게는 공동 유산, 간단하게는 '공유부commons'가 있다." "과거 세대가 없었다면 우리는 극심하게 가난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거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우리의 소득이 단지 우리 개인의 능력과 노력 또는 기여를 반영한다고 여긴다. 공동 유산의 일부는 그것을 만들지 않은 소수가 사유화할 수 있다." "우리가 너무도 쉽게 우리 자신의 지능과 노력에 기인한다고 여기는 것의 대부분은 과거 세대의 생각과 노동의 산물이다. 우리 가운데 여기에 조금이나마 추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공동 유산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의 기여는 줄어들기 마련이다."(211-2)


"공유부는 생산력을 넘어서 〈제도〉까지 포함한다. 넓은 의미에서 제도란 일하는 방식으로서 여러 차례 시도를 통해 검증된 것을 뜻한다. 우리가 행동할 때마다 일하는 방식을 새로 발명해야 한다면 엄청나게 비효율적일 것이다. 사실 우리가 새로운 일을 할 시간을 갖게 된 것은 제도에 의존할 수 있는 능력 덕분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법적·정치적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화적〉 재화, 즉 지식과 지혜도 공유부에 포함된다. 작가·예술가·작곡가도 과학자나 기업가 못지않게 다른 사람들이 제공한 소재·장르·아이디어를 활용해야만 혁신을 성취할 수 있다. 혁신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새롭게 조합하는 데서 시작된다. 공유부는 도로와 하수 시스템부터 가장 귀중한 예술 작품과 과학까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숭고한 것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 공유부는 '생물권biosphere' 등 〈환경〉을 포함한다."(214-5)


"공유부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존재해왔지만, 쇠퇴시키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갱신이 필요하다. 문학과 과학은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재평가해야 하며, 또 전승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는 공유부(태어나서 누리는 기술·제도·문화·환경)의 상태뿐만 아니라 우리가 거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의 양과 질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국적과 교육 외에도 공유부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는 다른 요소들이 있다. 바로 〈권력과 소유권〉이다. 무언가 생산적인 기여를 하려면, 우리가 하는 특정 종류의 작업에 필요한 특수한 재료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관련 재산과 설비에 대한 통제권이 필요한데, 많은 경우 소유권이 그것을 제공한다." "다른 사람들이 공유부를 이용할 필요가 있는 한 토지·광물·건물·기술·예술 작품·유전 형질·지식재산권 등의 공유부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지배하며, 공유부 사용의 대가를 내도록 만들 수 있다."(217-20)


"우리는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 서로 다른 지위로 태어나 부모의 장점이나 단점을 많이 물려받을 수밖에 없다. 거액의 상속은 이런 불합리한 불평등을 강화할 뿐이다. 이미 잘 사는 사람들에게 큰 이익을 안겨주는 것은 〈필요〉에 토대를 두지 않는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열 명 가운데 여섯 명은 재산을 상속받았다. 이런 불평등은 능력의 차이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혹자는 피상속인들이 상속을 〈받을〉 자격이 없을지라도 그들에게 거저 주어졌으니 그 재산을 가질 〈자격이 생겼다〉고 반론을 펼 수도 있다. 이는 사실 부자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대중 속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견해다. 하지만 자격을 핵심 기준으로 삼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일하는(그리하여 사회를 부양하는 부담을 지는) 사람들의 소득에 과세하는 것은 괜찮다고 여기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우발이익을 얻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과세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기이하지 않은가?"(223-4)


10장 그러니까 무엇이 보수를 결정하는가?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특수한 구조는 〈불평등한 분업〉이다. 불평등한 분업은 다양한 업무 영역 간의 분업이 아니라 그런 영역 〈내에서〉 더 나은 일자리와 더 나쁜 일자리 사이의 분업이다. 숙련이 필요하고 흥미로운 업무는 모든 일자리의 부분집합으로 묶이고, 중간 정도의 숙련이 필요한 업무는 다른 부분집합으로, 숙련이 필요 없고 불쾌한 업무는 또 다른 부분집합으로 묶인다면, 아예 처음부터 기회가 불평등하기 때문에 기회의 평등이라는 이상이 실현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불평등한 분업은 불평등과 사회 분열의 주요 원인이다. 그 경우 일부 사람들은 성취감을 누리며 존중받는 직장생활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은, 분업이 불평등하면 〈개인 능력의 차이에 상관없이 기여도 역시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만약 그들이 불평등한 기여도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면, 그때 발생하는 보수의 불평등은 불평등한 분업의 간접적 결과일 뿐이다."(235-6)


"서비스나 생산물의 품질이 노동자의 임금에 반영된다고 여기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생산물이나 서비스에 대해 지불하는 금액은 통상 생산자들이 받는 보수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는 돈 가운데 얼마를 누가 가져가는지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한다." "또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보수를 지급할 때 받을 자격을 고려한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고용주는 경쟁과 수익성을 고려해서 임금에 대해 냉정하고 도구적인 접근방식을 취한다." "기본적으로 시장은 노동자가 받을 자격이 있는 금액이 아니라 이윤에 지배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받는 금액과 그들이 받을 자격이 있는 금액 또는 능력 사이의 관계는 약하다." "우리는 노력과 능력이 보상받고 노력이 부족하면 보상받지 못하는 세상에 산다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자리 부족과 불평등한 분업, 그 결과 발생하는 불평등(인종과 젠더에 따르는 차별은 말할 나위도 없고)이라는 제약이 작용하는 조건 속에서 어느 정도까지만 일어난다."(247-50)


"시장에서는 공정성이나 정의를 다루는 추론이나 주장은 중요하지 않으며 부적절하다. 자동차를 구매할 때 그것이 왜 필요한지 판매자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돈만 있으면 자동차를 가질 수 있다. 돈이 모든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고용주는 노동자가 책정된 보수를 받아들이는 한, 그들이 얼마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 "경쟁시장이 비도덕적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거기에는 〈도덕 관념이 없다.〉 즉, 경쟁시장은 무엇이 공정하고 정의롭고 윤리적인지에 대한 도덕 관념에 토대를 두고 움직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제도로 시장을 공정하고 정의롭고 윤리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말이다. 때때로 경쟁시장은 공정해 보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기획이 아닌 우연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버는 것은 당신이 소유한 것(혹은 능력)에 따라 달라지며, 당신이 소유한 것은 소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255-6)


11장 평평한 운동장의 신화 


"사회학은 우리는 모두 사회환경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부모나 어릴적 성격 형성기의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을 중요하게 다룬다." "운 좋게 태어난 사람은 설사 자신이 가난하게 자랐더라도 분투해서 자신의 길을 개척했을 것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만약 자신이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엘리트 집단에서 잘 통하는 자신감·권리의식·대화법을 습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만이 가질 만한 생각이다." "행복한 환경은 분명히 부자들의 독점물이 아니며, 평범한 가정의 양육에는 불리한 점과 함께 강점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이점과 불리한 점이 균등하게 분배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겉으로만 그럴싸한 평등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이런 평등주의는 누군가를 폄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염려해서 불평등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불평등 완화가 덜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259-61)


3부 부자는 어떻게 더 부유해지는가: 위기 발발에서 그들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12장 위기의 뿌리 


"전후 호황기의 경제성장과 경제적 안정을 뒷받침한 것은 1944년 체결된 브레턴우즈 협정이었다. 이 협정은 자본의 국제적 이동을 제한하고, 무역 불균형을 억제해서 각 국가의 수입과 수출이 지나치게 괴리되지 않게 했으며, 주요국 퉁화 간 환율을 고정하고, 정부들이 각자 이자율을 결정할 수 있게 했다. 브레턴우즈 협정은 사실상 예전에 은행가들이 자본 이동을 지배했던 것을 정부가 지배하도록 바꾼 것이다." "1971년이 되자 브레턴우즈 체제는 무역 적자 증가에 시달리던 미국 경제에 더는 유리하지 않게 되었다. 금융 부문의 압력을 받고 있던 닉슨 대통령은 이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신용 창조와 자본 이동을 자유화했다. 자본과 신용화폐 창조의 세계화는 생산과 무역의 세계화를 촉진했다. 투기적 거래가 전 세계 금융시장으로 확대된 결과 금융 부문의 지배력은 강화되었고, 금리와 신용 창조를 통제하는 정부의 권한은 실물투자와 완전 고용을 장려하는 권한과 함께 약화되었다."(279-80)


"1980년대의 낮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금리는 금융 부문을 엄청나게 팽창시켰다. 지리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인 데이비드 하비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잉여자본의 용도가 재화와 서비스에 투자하는 '1차 순환'에서 부동산과 기타 자산에 투자하는 '2차 순환'으로 전환되었다." "자본주의에서는 항상 이윤율이 낮은 사업에서 이윤율이 높은 사업으로 자본이 이동해왔다. 이는 바로 지난 250년 동안 믿기 어려운 경제성장을 추동한 창조적 파괴과정이다. 그러나 금융화한 새로운 자본주의에서 창의성은 생산주의적 자본주의에서처럼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장기 투자에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값싼 노동 제공자들에게 생산활동을 외주화하는 방법을 찾고, 더 많은 수입을 목적으로 기존 자산을 매각하며, 장소 차이에 따른 가격 차이와 가격 변동을 이용해 투기를 벌이고, 조세 회피와 분식회계에 관여하는 데서 발휘되었다." "자본주의가 이런 발전 경로를 밟은 결과,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불평등이 확대되었다."(285-6)


"금융화의 특징 중 하나는 지금 당장 현금을 얻으려고 미래에 계속해서 수익을 안겨줄 물건를 매각하는 관행이 널리 퍼진다는 사실이다. 병원 주차료, 모기지 상환금, 학생 임대료·대출금 등도 매각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가치 추출의 과정은 금융화의 핵심 수단인 '증권화'와 짝을 이룬다. 넓게 말해 증권화란 여러 대출(모기지, 신용카드 부채, 자동차 대출 등)을 묶어서 대출 이자를 토대로 일정한 수익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는 새로운 자산을 만들어 판매하는 관행을 가리킨다." "대출을 판매하는 금융기관은 사실상 미래 수익의 일부를 즉시 얻을 뿐만 아니라 위험까지 매각해 대차대조표에서 제거한 후 새로 대출할 수 있다." "위험을 매각하면 그 효과가 분산되기는 하지만, 차입자가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지는 애초의 위험을 줄이지는 못한다. 실제로 위험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면 대출기관이 위험을 모니터링할 능력과 필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294-5)


"수백 건의 서브프라임 대출을 '자산 담보부 증권'으로 묶은 다음, 이를 다시 잘게 쪼개고 썰고 묶어서 '부채 담보부 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CDO'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당혹스러울 정도로 복잡하고 불투명한 금융상품들이 탄생했다. 신용평가기관은 평가 대상 기관에서 돈을 받았거나 때로는 거기에 지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항에 AAA 등급을 부여해 이익을 챙겼다." "증권 매입자들은 분명히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와 관련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신용 부도 스와프CDS'를 매입하면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CDS는 증권 매입자들이 투자 실패에 대비해 가입하는 보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다시 CDO를 더 많이 매입하더라도 안전하다는 생각을 부추겼다. 더 심각한 문제는 관련 신용위험에 노출되지 않은 고객이 CDS 시장의 약 80퍼센트를 점했다는 사실이다(업계에서 말하는 '네이키드naked' CDS)."(296-7)


"CDO와 CDS 계약의 명목가치는 전 세계 GDP 이상으로 치솟았다. 금융 엘리트들은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론을 펼쳤다. 영국의 경우, 2008년 바클레이스 은행과 스코틀랜드 로열은행이 발행한 CDS의 명목가치는 각각 2조 4,000억 파운드였는데, 이는 영국 정부 연간 총지출의 약 네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개별 경제 주체들에게 단기적으로는 합리적인 듯 보이는 것이 어떻게 전체에 궁극적인 파멸을 가져올 수 있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도 있다. 부채가 아무리 여러 번 비잔틴식의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묶여서 판매되더라도, 기본적으로 그것은 주로 저소득층 또는 중산층 차입자가 부자들에게 이자 지급의 형태로 불로소득을 제공하는 부 추출의 사회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연금기금에 저축금을 맡겼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도 모르게 안전하지 않은 증권'투자'에 돈을 대고 있었다."(298)


"부자 감세는 정부가 국가 부문에 써야 할 세입을 감소시키며, 높은 이자율은 정부의 차입 비용을 증가시킨다. 이는 공공 서비스를 민영화해서 국가 지출을 삭감할 수 있는 명분을 정부에 제공한다." "영국에서 민영화 이후 수도요금은 물가보다 두 배 정도 빨리 올랐고, 에너지 비용과 기차요금은 실질가치 기준으로 17퍼센트나 급등했다. 그 결과 우리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대신에 그들에게 서비스 제공의 대가를 지불하고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그들에게서 자금을 차입한다. 세금으로 지원되는 공공자산의 경우, 거기에 따르는 부담은 부유한 납세자의 몫이다. 이런 자산이 민간 사업자에게 매각되고 나면, 일반적으로 요금이 사용자의 소득에 따라 달라지지 않으므로 부자들이 혜택을 누리고 그에 비례해서 저소득 가구가 받는 청구서 금액은 더 커진다.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로 사업 운영자는 일반 시민을 착취할 수 있는 독점적인 권한을 가지고 주주들에게 불로소득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299-300)


13장 핵심 승자들 


# 금융화의 주요 수혜자들

1. 중개인들: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기인하는 막대한 중개 수수료는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익명의 부자들을 양산한다.

2. CEO들: 종종 우연에 기댄 회사의 매출 증대와 자신의 성과를 연결할 수 있으므로 자신의 보수를 급격하게 올린다.

3. 은행 보너스: 순수입의 일정 비율을 지급받고, 이와 별도로 보너스도 받는다, 즉 성공과 실패 모두에서 보상받는다.


"제임스 크로티는 한 뛰어난 논문에서 '레인메이커들'[rainmakers: 미국에서 은행 보너스 수령자들을 일컫는 말]이 거품 팽창기에 투기로 돈을 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경기가 침체하더라도 보너스는 계속되리라는 것을 알고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수백만 달러를 빌려 더 큰 베팅을 하고, 대중에게 더 많은 대출을 제공해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두 가지 다 그들이 소속된 금융기관의 위험 노출도를 크게 높인다. 자산을 매입하려고 레버리징을 하면 자산 가격이 상승하고 담보가치가 올라가 더 많은 차입이 가능해진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결국은 역전이 일어난다. 그들이 감수하는 위험이 클수록 보너스도 많아진다. 거품이 터지면 자산의 명목가치는 날아가 버리지만, 자산의 명목가치를 토대로 계산한 보너스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고 실물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청구권으로 남는다. 이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거품 + 레버리지 + 보너스 = 재앙〉"(324-5)


"금융 부문의 기여도를 측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그것을 측정하려면, 먼저 금융활동이 기존 소득을 재분배하는 데 그치는지, 아니면 생산적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자는 기존 소득이 이전transfer되는 것인가, 아니면 생산적인 기여를 반영하는가?" "금융 부문은 종종 위험을 감당함으로써 경제에 기여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가치를 부가하는 행위가 아니다. 위험을 〈관리〉하거나 평가하는 일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생산에 기여한다. 그러나 위험 감수 정도를 증가시키는 것은 확실히 그렇지 않다. 금융위기 이전에 발생한 이례적인 수익은 위험을 더 많이 감수한 결과였지, 생산적인 기여를 반영한 것이 아니었다. 종국에는 경제가 붕괴하고 말았다." "더욱이 너무 커서 실패할 수 없는 은행들은 위험을 감당하지도 〈않는다.〉 위험 감당은 대중의 몫이다. 구제금융의 규모는 금융위기 이전에 금융 부문에서 발생한 이익을 초과했다."(330-1)


14장 요약: 경제위기와 불로소득자의 귀환 


"금융에 내재하는 위험은 대출, 가치 절도, 투기를 통해 돈으로 돈을 벌려고 하면서 부의 추출에 초점을 맞추고, 재화와 서비스로 부를 창출할 필요성은 간과한다는 점이다. 경제위기 이전 거품 형성기에 다른 금융기관과 부동산시장에 대한 대출이 증가하면서 생산 기업에 대한 은행 대출은 30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감소했다. 금융 부문이 금융자산을 통제한다는 것(궁극적으로 다른 사람의 노동과 생산물에 대한 청구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그 부문이 정부를 수하에 두고 이익을 추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상적인 시장 모델에 집착하고 노력소득과 불로소득의 차이를 무시하는 주류 경제학도 여기에 연루되어 있다." "그런데도 부채를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것은 99퍼센트의 무고한 방관자, 그중에서도 특히 저소득층과 중간층이었다. 대중에게 긴축을 강요하고 은행에는 초저가 구제금융과 양적 완화의 혜택을 줌으로써 불로소득자들은 또 다른 경로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343-5)


4부 부자들을 위한 부자들의 지배


15장 부자들의 지배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부유한 개인과 대기업이 돈을 들여서 얻으려는 것은 선호하는 정당의 승리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금권체제는 기업, 무역단체, 싱크탱크, 로비 회사, 정치인, 정당 연구원, 정치 특보 간의 촘촘한 관계망을 활용한다." "금권체제 엘리트의 국가 침투와 국가 포획은 투쟁을 거치지 않은 채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졌다. 정치인들은 성공적인 사업가들이 공공 부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핑계로 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트로이 목마도 필요 없이 그들에게 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정치인들은 부유층 출신이거나 부유층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은 대다수 유권자와는 거리가 멀다. 미국 국민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한 연구에 따르면, 상원의원들(특히 공화당 의원들이 그렇지만 민주당 의원들도 마찬가지다)은 부유층에게는 압도적인 영향을 받지만, 중산층에게는 역간의 영향만 받고 하위 30퍼센트에게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360, 370)


16장 숨기기 


"많은 부자가 재산을 숨기는 조세회피처는 금권체제의 주요 구성 요소다. 어디에 위치하건, 조세회피처는 멀리 떨어져 고립된 곳이 아니라 금권체제 네트워크에 고도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지역이다. 이는 사소한 일탈이나 부차적인 요인이 아니고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조세회피처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부들의 묵인과 조장에 힘입어 만들어졌다. 조세회피처는 주요 후원국의 보호와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충분한 독립성도 가지고 있다. 이는 후원국들이 책임을 회피하며 조세회피처를 통제할 수 없다고 주장할 근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가격 조작 행위는 조세회피처가 존재하는 또 다른 이유다. 다국적 기업은 회계 조작으로 세금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나라를 가지고 놀 수 있다. 세금이 가장 가벼운 국가로 이윤을 이전함으로써 세금이 상대적으로 무거운 국가에서 신고해야 할 이윤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거기서 가장 많은 사업을 하고 있더라도 말이다."(372, 375-7)


17장 법의 부패: 법 위에 군림하든지 아니면 법을 만들든지 


"학계에서 적어도 주류 경제학자들은 '효율적 시장' 이론을 근거로 규제 완화를 정당화했다. 이 이론은 금융시장이 모든 관련 정보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위험을 정확하게 추정하며, 정부가 간섭하지 않는 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황당한 가정에 토대를 둔 기괴한 이론이다. 그들의 이론 중 일부는 금융시장 구축에 적용되었다. 따라서 그 경제학자들은 외부의 학문적 관찰자가 아니라 스스로 게임에 참여해 대형 금융회사에 돈을 벌어주는 존재였다. 미국에서 주류 경제학을 선도하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그 이론의 진정한 신봉자로서 자신들의 학계 자격증을 상징자본으로 활용해 대학교수 자리, 대형 금융기관의 일자리, 규제 당국자와 정부 자문의 직위 사이를 오가며 활동했다. 앨런 그린스펀, 글렌 허바드, 래리 서머스, 프레더릭 미시킨, 로라 타이슨 등이 대표적이다. 스스로 금융 시스템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주류 경제학자들이 그 시스템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392)


"일반적으로 언론은 금융 부문의 '문화'에 만연한 탐욕과 빨리 부자가 되려는 성향을 비난하고, 어떻게 하면 금융을 더 윤리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궁금해 한다. 하지만 부주의하거나 무모한 개인들 또는 경쟁사와 고객을 무너뜨리려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의 '범죄유발 환경'〉도 문제다." "규제받지 않는 신자유주의 금융은 부정행위를 적극적으로 조장한다. 변동성이 크고 경쟁이 치열한 금융시장에는 주주가치로 연결되는 단기 이익을 추구하게 만드는 지속적인 압력이 작용한다. 이런 곳에서 기업과 개인이 성공하려면, 공격적인 조세회피·탈루를 포함해 무자비한 행동이 필수적이다." "물론 책임은 개인과 시스템 중 어느 한쪽에만 있지는 않다. 하지만 개인은 복잡한 시스템보다 더 식별이 쉬운 존재라서, 성급한 속성을 가진 대중 매체는 개인에게서 희생양을 찾고 시스템을 무시한다. 이는 물론 금융 엘리트가 마음에 들어 하는 일이다. 구조를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396-7, 400)


18장 자선사업은 어떤가? 


"지진 피해와 같은 일회성 재난에 대한 자선적 기부는 지속적이고 불의한 불평등에 대응하는 자선charity과는 다르다. 불평등에 도전하지 않으면, 그것은 참을 수 있고 더 오래가기 때문이다." "분명히 수혜자의 고난은 관심과 염려의 대상이다. 하지만 자선사업은 그것을 사회적 구조·과정의 결과가 아니라 불운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자선사업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을 상대하고 고통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기원을 종종 무시하기 때문에 정치색을 띠지 않는다. 빈곤 그 자체보다 빈곤에 기인한 병리 현상에 대처하는 일에 더 능숙하다." "자선사업은 활력이 넘치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고 관대하고 잘 알려진 후원자와, 가난하고 무력하고 당연히 감사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는 수혜자 사이에 간극을 만든다. 관찰자들은 옆에서 감탄하며 박수를 보낸다. 자선사업은 불평등에 도전하기보다는 오히려 당연시한다. 불평등을 자비를 베풀 기회로 취급해서 문제가 덜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415-6)


"자선 자본주의Philanthrocapitalism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적 사고와 목표 달성을 위해 시장을 활용하는 방법을 위주로 자선사업에 접근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유행어다." "자선사업의 목표는 간단하고 측정 가능해야 하며, 모니터할 수 있어야 한다(물론 백신 접종 수와 같은 비금전적인 목표가 포함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해당 지역에 다른 더 중요한 일이 발생하는 때도 이미 세운 목표를 달성하는 데 매진할 수밖에 없다(이런 단순화된 사고는 공공 부문에 큰 해악을 끼친다). 이 접근법은 더 나은 제품을 더 싼 가격에 판매하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이라는 복잡한 문제에 적용할 때는 해로울 가능성이 크다." "사회문제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다. 따라서 지원 대상 사회에서 사회문제에 대응하면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신자유주의적인 자선사업은 정치를 무시하고, 기술적·경영적·시장적인 해결책(이는 물론 정치적으로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을 모색한다."(419-21)


19장 계급: 전쟁을 말하지 말라! 


"우리는 부자들이 '계급전쟁'을 시작한다는 생각에 익숙하지 않다. 부자들은 보통 좌파가 시기심과 탐욕으로 계급전쟁을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파업도 항상 노동자들이 시작하지 고용주들이 유발하지는 않는다." "〈계급전쟁은 끝났다〉고 한 토니 블레어의 말은 부자들의 승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불로소득, 불평등한 분업, 일자리 부족, 고도로 불평등한 사회에서 복권 당첨과도 같은 출생 등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라. 그러면 계급은 성격과 노력의 문제로 축소된다. 노동 계급을 분열시키는 또 다른 방법은 마치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사람인 양 아첨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가정'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드는 것이었다. 보수당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과 '노력하는 사람들'을 '게으름뱅이'와 대비시킨다. 계급은 오래된 편견일 뿐 실제로 증가하고 있는 불평등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계급은 여전히 방 안의 코끼리처럼 존재하고 있다."(429-31)


"계급을 삶 속에서 경험한다는 것은 복잡한 문제다. 삶에서 경험하는 불평등에는 당황, 부인, 자기 정당화와 축하, 반발, 원망, 존중과 경멸 등이 혼합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에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계급 인종주의class racism'라고 부른 훨씬 뻔뻔한 행태가 등장했다. 주요 대상은 '차브'[chavs: 백인 저소득 노동자를 경멸적으로 일컫는 말], '트레일러 쓰레기'[Trailer trash: 트레일러나 캠핑카에서 생활하는 저소득층을 조롱하는 말], '스크라운저'[scroungers: 일하지 않고 빌어먹는 사람] 등이었다. 인종차별적 용어는 적어도 공식적인 공론장에서는 쓸 수 없게 되었지만, 저소득층과 복지 수급자들을 상대로 경멸적인 언어를 퍼붓거나 본능적인 증오를 표출하는 데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복지국가는 이제 필요에 기반을 둔 보편적 상호 체계를 제공하는 문명사회의 상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도리어 부담으로 간주될 뿐이다. 이는 우파가 단어의 의미 수준에서 벌이는 일종의 계급전쟁이다."(431-2)


5부 나쁘게 벌어서 나쁘게 쓴다: 소비에서 이산화탄소로


20장 부자들의 지출 


"낭비적인 소비는 낭비적인 생산을 뜻하기도 한다. 〈거의 쓰지 않거나 단지 부유함의 표식에 불과한 값비싼 물건을 생산하는 것은 시간, 에너지, 귀중한 자원의 낭비이자 인간 노동의 낭비다.〉 주류 경제학의 언어로 표현하면, 이는 명백히 '자원의 잘못된 배분'이다." "순전히 부자들의 허영심에 부응한 사치스러운 지출 때문에 저소득층은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기 어려울 수 있다. 부자들의 사치가 대도시에서 주택 가격을 끌어올려 저소득층, 심지어 중산층도 거주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가난한 나라의 식량생산이 부유한 소비자를 위한 바이오 연료 생산으로 대체되는 바람에 세계 식량위기가 악화되고 있다. 부자들은 지출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지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의 노동과 생산물을 지배할 수 있다. 부자들은 노동자들을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서 끌어내 부자들을 위해 사치품을 생산하는 쪽으로 이동시킨다. 〈요컨대 그들은 경제를 왜곡한다.〉"(441)


"부자들이 더 부유해지면, 덜 가진 사람들이 부자를 모방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유명인 문화의 성장은 부분적으로 그들의 과시적 소비를 상찬하는 형태로 드러난다. 베블런에 따르면, 각 소득 계층은 자신들보다 상위에 있는 계층과 같은 수준으로 소비하기를 갈망한다. 사회가 불평등할수록, 저소득층과 중간 소득 계층에 속하는 많은 사람의 지위 열망과 상대적 박탈감은 커진다. 토니는 '부와 경제적 권력의 큰 격차가 유발하는 도덕적 굴욕'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로 서로를 존중하려면, 얼마나 버는지로 서로를 존중하는 짓을 멈추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이런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 복지 수급 사기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감옥에 가지만, 거액의 세금회피나 탈세는 신사협정을 통해 단순한 반감이나 소액의 벌금으로 마무리된다. 이런 일은 신자유주의 문화의 본질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것은 불의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기능을 떨어뜨린다."(450-1)


21장 반전: 지구 온난화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우리가 통상 온실가스와 기후변화에 대해 듣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여러 해 동안 구산업국가들이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주범이었지만, 지금은 매년 수십개의 새로운 석탄화력발전소(가장 나쁜 화석연료 에너지원)를 건설하고 있는 중국에 추월당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중국에 손가락질해야 한다. 〈언론과 정치인들은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수십 년, 심지어 수 세기 동안 대기에 머무른다는 사실을 늘 간과한다.〉" "현재 연간 탄소 배출량은 중국이 미국보다 많지만, 1750년 이후의 누적 배출량은 미국이 중국의 약 네 배다." "기후정의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국가별 배출량보다는 1인당 배출량을 더 중시할 필요가 있다. 파칼라가 주장하듯이 최대 배출자들은 부유한 사람들이며, 그들이 부유한 나라에 살건 가난한 나라에 살건 상관없다. 파칼라는 〈세계 인구의 7퍼센트에 불과한 5억 명의 가장 부유한 사람들(1인당 소득 10만 유로 이상)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50퍼센트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466-7)


"〈'재분배와 성장' 정책은 지구 온난화를 가속하면서 불가피하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금융위기와 관련해서는 성장이 분명한 해결책으로 보이지만, 기후위기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한 가지 위기를 확실한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다른 위기를 더 나쁘게 만들 수밖에 없는 〈끔찍한 이중위기〉에 처해 있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다." "지구는 유한하다. 우리는 지속하려면 행성이 세 개나 필요한 현재의 생활방식을 고수할 수는 없다. 지난 3세기에 걸쳐 세계를 휩쓴 산업혁명은 이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유한한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본주의적 문화는 우리가 가진 물질적인 재화가 충분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문화에서 우리는 항상 더 많이 가져야만 한다. 지구를 오염시킨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다를 바 없었던 소비에트 공산주의는 공업화 과정에서 자연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472-3)


"적어도 부유한 국가들의 경우, 성장이 아니라 제로성장 혹은 '역성장'이 온실가스를 빠르게 감축해서 걷잡을 수 없는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 모른다." "이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끔찍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작금의 경제침체가 끼치는 영향 중에서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부모가 누렸던 일자리와 소비의 기회를 누리지 못할 것 같다는 전망이다." "이 딜레마를 피할 방법은 없다. 젊은이들과 돈이 적은 사람들에게는 몹시 불공정해 보이겠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탄소 배출 한계를 초과한 상태에서 살아왔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탈세계화de-globalization〉가 필요하다. 우리가 저탄소 방식의 여행을 고안할 수 있을 때까지, 즉 석유 기반 연료의 대안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세계화를 훨씬 줄이고 지역 생산을 훨씬 더 늘려야 한다. 더 지역화한 경제에서는 환경을 파괴할 가능성이 훨씬 줄어든다. 어떤 피해와 폐기물도 눈에 띄지 않고 생각나지 않기가 어렵기 때문이다."(475-6)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것은 단지 단열 방법을 개선해 주택 난방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감축하거나 저탄소 여행 방법을 찾는 일에 한정되지 않는다. 난방이나 여행에서 생기는 탄소 배출은 '직접' 배출이라고 불리는데, 우리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탄소 배출량은 대부분 '간접적인' 것들로, 우리가 쓰는 재화와 서비스(인터넷·음식·교육처럼 공공 부문에서 생산되는 상품 등)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데서 발생한다." "따라서 문제는 화석연료가 고갈되는 것이 아니다. 정말 고갈된다면(그것도 빨리) 지금보다 낫겠지만, 도리어 새로운 매장량이 발견되고 생산에 투입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화석연료 회사들은 이미 미래의 추출 수입을 담보로 자금을 차입하고 있으며, 채권자들은 거기에 자금을 대출하고 있다. 우리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것을 중독에 비유하자면, 중독자들은 [중독물질을] 끊으라는 말을 듣는데 마약상들은 정부 지원을 받는 상황이다!"(478, 482)


"지구공학─이산화탄소 포집 같은─은 신자유주의의 장기 해결책이다. 기술 낙관론자들은 자본주의의 역사가 예측하지 못한 발명과 혁신(인터넷처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것도 있다)의 역사였음을 강조한다. 그들은 늘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무언가가 나타날 것이다〉라고 말한다." " 그러나 지구공학에 의존하면 화석연료에 중독된 현재의 경제와 생활방식에 안주하게 된다. 버진 그룹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이 상상하는 세상은 자본주의의 한편에서는 여전히 자유롭게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 영향을 완화하는 기괴한 곳이다. 두 경향을 규제하는 것은 바로 이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성장이 지속된다면, 지구 온난화는 원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절망 속에서 지구공학에 의존해야 하는 단계에 도달할지 모른다. 부유한 국가들과 그 내부의 부유한 공동체들은 기온 상승을 가장 잘 견딜 수 있다. 가뭄과 홍수, 생계수단 상실로 도망쳐 나오는 사람들을 거부할 수도 있다. 이 또한 미친 짓 아닌가?"(485-6)


22장 ·결론: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이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가 더 평등하고 공정하며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부자들뿐만 아니라 불평등과 무한한 복합성장에 토대를 둔 경제 체제도 감당할 수 없다. 자본주의가 지속 가능하다고 여기는 '녹색성장'의 꿈은 평화를 위해 총을 팔아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끝없는 탐욕이 아니라 〈충분함〉을 토대로 작동하는 경제가 필요하다." "고정관념이 되다시피 한 '경쟁은 늘 좋은 것'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 경쟁은 때로는 일반적인 행동 기준을 높이고 혁신을 촉진할 수도 있지만, 바닥을 향한 경쟁을 유발할 수도 있다." "'경제적 효율성'도 마찬가지다. 일을 '효율적으로' 하면 통상 좋은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그것을 임금을 줄여 비용을 절감하는 것과 혼동한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질문해야만 한다. 누구를 위한 효율성인가?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는가, 아니면 단지 일의 속도를 높일 뿐인가?"(488-91)


"자연을 단순히 비용과 수입, 놓친 기회에 대한 근시안적인 계산에 따라 하나씩 따로따로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의 집합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서로 연결된 지구에 존재하는 전체 생태계(여기서는 사물이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로 이해해야 한다. 〈가격은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다차원적인 어떤 물건을 평가하는 매우 제한적이고 일차원적인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개별 종種에 소유권을 창출해서 가격을 매긴다는 아이디어는 민간기업이 예전에 무료였던 것에 요금을 부과해 돈을 버는 한 가지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구 생태계 또는 '생물권biosphere'을 구성하는 매우 복잡한 관계망에 의존하는 물건들의 가치를 평가하기에는 어리석은 방법이다. 자연은 약탈이 아니라 존중과 경이감으로 대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시장 가격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며, 앞으로도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496-7)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지구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도, 부유한 국가의 부자들은 소비를 줄일 필요가 있다. 그 반대편에서 하루에 1.25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13억 명은 절대적인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한다. 급속한 지구 온난화를 막기에는 이미 늦었기 때문에 대체 에너지 공급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수십 년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 "'쉬운 신용'이 급증하면 사람들은 더 많이, 더 빨리 소비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차입자와 지구에 더 큰 비용이 돌아간다. 부채를 상환하려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부채와 경제성장에 가장 큰 이해가 걸린 것은 1퍼센트 중에서도 상위 계층이다. 그들은 경제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통제하고 싶어 한다. 또 부자들은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 최악의 결과에서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이다. 따라서 환경적 대의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부자들의 권력과 지출·투자의 자금 조달 방식에 도전해야 한다."(517-8)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말한 모든 내용을 실현하려면 부자들의 정치적·경제적 지배력을 제거하고 민주주의를 재건해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울지에 대해 착각해서는 안 된다. 금권체제는 조직된 음모에 따라 움직인다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일시적인 연합일 수도 있지만, 언론과 주류 정치를 장악하고 있으며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치열하고 더럽게 싸울 것이다." "정당에 대한 기부금은 액수를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금권체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어울리는 선거운동이 이뤄지도록 하려면 국가가 정당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려면 정치인들이 기업에 자문하고 금전적 이해관계를 가지는 데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제한이 가해져야 한다." "우리는 언론이 지금처럼 특권 엘리트와 기업 이익에 지배당하는 것을 방조할 수는 없다. 우리는 정말로 부자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체제를 감당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부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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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권력, 영광
팀 앨버타 지음, 이은진 옮김 / 비아토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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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대체 뭐가 문제일까 


1부 나라


1장 신의 선택을 받은 나라?: 미국의 영광과 진실 


"미시간주 브라이턴은 버블 속의 버블이다. 브라이턴이 속한 리빙스턴 카운티는 미시간주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공화당 투표율이 높게 나오는 선거구다. 이곳에서 가장 큰 교회인 코너스톤은 주변 지역의 축소판이다." "코로나 19가 퍼지고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벌어지고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코너스톤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나는 교회 사람들이 하늘이라도 무너진 것처럼 수선을 떨며 페이스북에 올린 조잡하고 히스테릭한 게시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코너스톤을 오래 다닌 일부 교인들이 트위터에서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것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특별히 걱정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면,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경고였다는 사실을, 깜빡이는 선홍색 불빛처럼 진지하게 받아들였어야 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뭐가 문제일까요?〉 와이넌스는 잠시 생각했다. 〈미국이요.〉 그가 대답했다. 〈그들 중 너무 많은 이들이 미국을 숭배하죠.〉"(36, 42-3)


# 버블 속의 버블. 동질적인 큰 집단에 속한 작은 집단으로서 특정한 동질적 특성을 더 집약적으로 공유하는 소집단을 일컫는 비유적 표현


"지난 10년간 공화당을 취재하며 의회와 선거 유세 현장을 뛰어다닌 나는 후보자의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기도 전에 그들이 어떤 성경 구절을 인용할지 예측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옹호하기 위해(잠언 13장 4절: 〈게으른 사람은 아무리 바라는 것이 있어도 얻지 못하지만, 부지런한 사람의 마음은 바라는 것을 넉넉하게 얻는다〉), 낙태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기 위해(시편 139편 13절: 〈주님께서 내 장기를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문화 전쟁에 신자들을 동원하기 위해(이사야 5장 20절: 〈악한 것을 선하다고 하고 선한 것을 악하다고 하는 ···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성경 구절을 이용했다. 이 모든 예시, 그리고 유권자들이 공화당 정치인들에게 듣게 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구약 성경에서 따온 것이다. 나는 이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공화당을 장악하고 대통령으로 재임한 4년 동안, 공화당이 구약 성경의 언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은 점점 문제가 되었다."(43-4)


"수십 년 동안 종교적 우파는 공직자들에게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적용해 왔고, 특히 42대 대통령인 빌 클린턴을 괴롭히는 데서 큰 기쁨을 느꼈다. 경건한 성품이 국가를 운영하는 데 꼭 필요한 요건이라고 주장해 왔던 그들이 트럼프의 죄를 못 본 척하는 건 지속 가능한 접근 방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새로운 전략을 짰다. 트럼프의 단점을 포용하기로 한 것이다. 2016년 6월, 뉴욕시 메리어트마르퀴스 호텔에 500명이 넘는 저명한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이 모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결함이 있는 인물을 사용하는 오랜 전통을 잇는 새로운 인물로 트럼프를 소개했다. 이 전략은 아주 명확했다. 성경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는 위대한 지도자들의 예시가 가득하므로 트럼프를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위한 불완전한 도구로 제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들에게 트럼프는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의 '산 위에 세운 빛나는 도시'를 위해 싸우도록 임명된,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구였다."(45-6)


2장 트럼프와 종교적 우파: 불신의 동맹 


"굿윌교회의 존 토레스 목사가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언급했을 때, 처음에는 개인적인 반발이 일어났다. 교인들 개개인이 토레스에게 전화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이메일을 보내거나 면담을 요청했다. 대화는 비슷한 패턴을 따랐다. 교인들은 토레스에게 조지 플로이드의 이력에 관해 아는지 물었다. 플로이드가 마약 중독자이고 범죄 전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다그쳤다. 토레스는 그것은 사건의 본질과 관련이 없다고 대답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죄를 짓고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국가에 의한 살인의 변명이 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 교인들은 토레스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인종차별 국가라고 생각하냐고, 법 집행기관을 왜 옹호하지 않냐고, 뉴스에 나오는 폭동과 약탈을 왜 비난하지 않냐고 물었다. 교인들은 토레스에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며 복음주의장로교(EPC) 교단에 토레스의 해임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69-70)


"장로들이 토레스를 해임하지 않자 화가 난 이들은 게릴라식 전략을 사용했다. 토레스의 권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몇 달 동안 흠집 내기 캠페인을 벌였다. 그들은 교회 네트워크를 이용해 대선 결과에 반발하는 1월 6일 워싱턴 D.C. 폭동을 조직하며 공개적으로 토레스를 괴롭혔다. 토레스의 잘못을 적은 전단을 인쇄해 교회에 배포하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내 남자 두 명이 주일 아침에 교인들이 다 보는 앞에서 토레스 목사에게 다가가 그에게 소리치고 삿대질을 하며 회개하라고 요구했다." "토레스는 좌절했다.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다수가 아니었다. 겨우 스무 명 정도로, 매주 예배에 참석하는 수백 명 중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문제를 일으킨 이 사람들은 부활절 또는 크리스마스이브에나 교회를 찾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중 한 명은 교회 직원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교리 교육을 맡고 있었다. 수년간 함께 기도하고, 함께 웃고,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 중 일부가 교회를 전쟁터로 만들고 있었다."(71-2)


"백인 복음주의자인 샌더스는 혼란에 빠진 교회들 대부분이 오래된 백인 복음주의 교회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교회를 위한 아마겟돈, 우리를 공격하는 적들〉이라는 수사에 매몰되어 온 교회들이었다. 1970년대 중반에 신앙을 갖게 된 샌더스는 기독교에 대한 위협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에 대한 인식이 그동안 크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때는 적대적인 외국 세력이 세계에 전파된 거룩한 빛을 소멸시키기 위해 미국을 표적으로 삼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1980년대에 모럴머조리티가 힘을 얻으면서 이야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종교적 주요 인사들은 미국 신자들이 기꺼이 그리스도의 왕국을 위해 싸워야만 그리스도의 왕국이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게 되었을 때, 복음주의자들은 남아 있는 유일한 적이 내부에 있다고 믿게 되었다. 〈무서운 사실은 적을 교회 안에서 찾는다는 점입니다.〉 토레스가 말했다."(81)


3장 제리 팔웰과 도덕적 다수: 종교의 정치적 야망 


"역사가들과 종교학자들은 오랫동안 미국 역사를 '대각성'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해 왔다. 첫 번째 대각성은 1730년대 영국령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일어났다. 두 세기 전 귀족적인 로마 가톨릭교회를 불안하게 했던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메아리 속에서, 개척지 설교자들은 일반 사람들도 부흥 운동에 쉽게 참여할 수 있게 만들었고, 개인이 거룩하게 살고 구원을 받는 것에 새로이 초점을 맞췄다. 1790년대에 일어난 두 번째 대각성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데 중점을 두어 새로운 기독교 조직과 협회들을 수없이 탄생시켰고, 이들이 젊은 미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종교 활동에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세 번째 대각성은 신학적으로 볼 때 가장 영향력이 적다고 여겨지지만, 19세기 후반에 선교 활동과 도덕적 행동주의를 강조했다. 세 번째 대각성은 '금주 운동'과 빈곤 및 기타 사회 병폐를 해결할 치료제로 기독교를 제시한 소위 '사회 복음 운동'을 일으켰다."(96)


"1971년 리버티대학교가 개교할 즈음에는 근본주의가 부흥을 맞이하고 있었다. 부분적으로 이는 팔웰과 그의 동료들이 수많은 미국 가정의 거실, 주방, 차고, 자동차 안에 들어가게 해 준 대중 매체 덕분이었다. 하지만 근본주의의 성격이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때 세상일에 완전히 무심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설교자들이 이제는 문명의 붕괴를 경고하는 예레미야식 설교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미국의 종말이 임박했다며 두려워하는 나이 든 보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특히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팔웰은 이러한 변화에 만족하지 않고 더 빠른 변화를 원했다. 그의 적대감은 전형적인 당파적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나라가 공화당을 외면한 상황이었으니 1976년 선거 결과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지미 카터가 승리했다. 하지만 문화 전쟁이 시작되면서 팔웰은 민주당의 정책과 행동이 미국의 도덕적 가치에 어긋난다고 공격할 기회를 감지했다."(97-9)


"1978년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은 카터의 민주당을 상대로 여러 번 큰 역전승을 거두었으며, 그중 세 번은 풀뿌리 낙태 반대 운동 덕분이었다." "공화당 주류파가 선호하던 조지 H. W. 부시는 종교적 우파와 전략적으로 거리를 두었지만, 로널드 레이건은 새로 결집한 기독교 유권자들을 선거 전략의 구심점으로 삼고, 부시가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낙태 문제에 관여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이 확정되자, 레이건은 로버트 빌링스를 대선 캠페인 종교 자문으로 임명함으로써 팔웰에게 보답했다. 공화당 정치에 새로운 기준이 세워졌다. 공화당의 현대사를 이끌어 온 교육받고, 부유하며, 사회적으로 온건하고, 문화적으로 진보적인 경향이 갑자기 예고 없이 더 이상 주류가 아니게 되었다. 앞으로 공화당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낙태 문제를 경제 문제만큼 중요하게 다루어야 했다." "모럴머조리티는 공화당을 장악했다. 그러나 팔웰은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그는 미국을 원했다."(107-8)


4장 위선의 끝: 은폐된 진실, 도덕적 붕괴 


"1980년대에 청소년이었던 러셀 무어는 종교적 우파의 열정이 교회 공동체에 암처럼 퍼지면서 도덕적 기회주의, 정치적 위선, 인종적 적대감을 드러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때 성숙한 신자로 여겨 존경했던 사람들이 영적으로 텅 비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믿는 신은 그가 믿는 하나님이 아니었다. 무어는 갑자기 아버지의 조용한 신앙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짐 크로 법 시대에 미시시피에서 목사의 아들로 자란 게리 무어는 교회 안에서 괴로운 일들을 목격해 왔다. 남침례교의 역사는 미국의 원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1845년에 전국 침례교회 내에서 노예제 폐지 움직임이 일어나자 이에 놀란 '노예를 소유한 백인들'이 결성한 것이 바로 남침례교다. 그래서 남침례교는 인간을 매매하고 소유하는 것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 상징이 되었다.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후에도 남침례교의 세계관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 한 세기 동안 의도적으로 그리고 자랑스럽게 분리 정책을 유지했다."(141-2)


"1988년에 남침례교 윤리및종교자유위원회(ERLC)를 공식적으로 인수한 리처드 랜드는 보수 신학과 보수 정치 이념을 결합하고자 누구보다 열심히 움직였다. 정당 소속을 남침례교 신자 수백만 명의 영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았고, 제리 팔웰 시니어와 그가 이끄는 모럴머조리티와 거리낌 없이 동맹을 맺었다." "1980년대 이전까지 〈전도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랬듯이 종말론에 초점을 맞추거나, 결혼과 육아 이야기를 꺼내면서 교회가 가족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실용적인 조언을 하는 방법이었죠.〉 무어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공화당에 투표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어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정치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되었고요.〉" "무어는 복음주의자들이 성격 외적인 대의명분에 교회의 미래를 저당 잡혔다고 생각했다. 그 대가로 얻은 것은 교인 수 감소와 교회의 신뢰성 및 영향력 하락뿐이었다."(145-7)


"무어는 복음주의자들, 특히 남침례교 사람들이 어떻게 트럼프를 후보로 받아들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1998년 빌 클린턴과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의 불륜 사건에 대응하여 유명한 결의안을 통과시킨 교단이 바로 남침례교였으니까 말이다." "2016년 당시 남침례교 신자들은 트럼프를 누가 뭐라고 비판하든 그건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기들 헌금으로 월급을 받는 교단 지도자가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무어는 남침례교에서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2016년 10월, 〈워싱턴 포스트〉에서 트럼프가 기혼 여성에게 자기랑 잠자리를 하자고 압박하면서 자신은 유명인이라 성폭행을 저질러도 괜찮다고 자랑하는 오래된 녹음 파일을 공개했을 때, 무어는 복음주의 지지자 중 누구라도 트럼프와 함께 탄 배에서 내릴지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모두 방어 태세를 취했다."(151-2)


5장 포위된 신념: 정치적 기회주의의 그림자 


"로버트 제프리스는 남침례교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영향력 있는 댈러스제일침례교회의 담임 목사이다. 트럼프는 사람들이 뜨겁든지 차갑든지 명확한 태도를 보이기를 바랐다. 그것이 제프리스가 트럼프에 관해 알게 된 첫 번째 사실이었다. 뜨겁게 열광하는 충성스러운 지지자와 치를 떨며 혐오하는 단호한 반대자 모두 트럼프에게는 유용한 존재였다. 트럼프가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하루는 그를 지지했다가 다음 날은 반대하는 사람들, 애매한 도덕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트럼프와 가까이 지내고, 그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의 존경과 신뢰를 얻으려면, 항상 뜨거운 태도를 유지해야 했다. 그래서 제프리스는 그렇게 했다. 2016년 선거 기간에 트럼프가 한 포르노 배우에게 입막음 대가로 돈을 준 일을 웃어넘겼고, 2020년 선거에서 패배한 뒤 트럼프가 〈도둑맞은 선거〉라며 사람들을 선동할 때도 눈감아 주었다."(164-5)


"2016년, 제프리스는 내셔널퍼블릭라디오(NPR)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액세스 할리우드〉 촬영 중 녹음된 트럼프의 음성 파일이 막 공개되었을 때였다. 트럼프의 인격은 공격받고 있었고, 선거 운동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러셀 무어 같은 저명한 복음주의자들은 정치 지도자에게 성격적 기준을 요구해 온 사람들이 어떻게 지금 트럼프를 지지할 수 있는지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NPR 진행자는 제프리스에게 이에 대한 답변을 요청했다. 〈저는 온유하고 온화한 지도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뺨을 내미는 사람을 원하지 않아요.〉 제프리스는 진행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저는 이 나라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거칠고 가장 강한 SOB(son of a bitch, 여기서는 강하고 단호한 리더를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를 원합니다.〉 한때 유권자들에게 〈정신적 혼란〉을 준다며 동료 복음주의자들의 일관성 없는 태도에 대해 불평했던 사람이 이제는 포뮬러 원의 속도로 급격히 방향을 전환하고 있었다."(173-4)


"2011년, 공공종교연구소는 종교가 있는 모든 미국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생활에서 부도덕한 행동을 한 정치인이 공직에서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백인 복음주의자 중 30퍼센트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는 조사 대상 그룹 중 가장 낮은 비율이었다." "2016년, 연구소는 이전과 같은 질문을 포함한 새로운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놀랍게도 이번에는 백인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72퍼센트가 사생활에서 부도덕한 행동을 한 정치인도 공직에서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답했다."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변화는 단순히 권력에 대한 욕구가 전보다 증가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공포가 그들의 생각을 바꿔 놓고 있었다." "그들이 사랑하는 무언가가 곧 사라질 참이었고, 그것을 되찾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꼈다. 상황이 그러하니 오래된 규칙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절박한 시기에는 (설사 좀 수치스럽더라도) 절박한 조치가 필요했다."(176-7)


6장 박해 콤플렉스: 불안과 두려움의 실체 


"호주 출신의 신학자 존 딕슨은 현재 미국 교회가 〈불량배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너무 많은 기독교인이 거만하게 행동하며 소외된 사람들을 괴롭히고, 늘 화를 내고 불안해하면서 못된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말 자신감이 있다면, 굳이 힘을 과시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라고 딕슨은 말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괴롭히는 교회는 불안한 교회예요.〉" "로럴 벙커의 메시지도 교회에 대한 세상의 신뢰가 사라지고 있다는 딕슨의 이론과 맞닿아 있었다. 벙커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은혜로 대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신다고 강조했다. 승리하고 있을 때는 은혜를 베풀기가 쉽지만, 패배하고 있을 때는 그러기가 훨씬 더 어렵다고도 말했다." "다음 세대의 잠재적인 신자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벙커는 경고했다. 〈그들은 우리가 예수를 '가장'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돈보다, 사회적 지위보다, 정치적 당파보다, 나라보다 예수를 '더' 사랑하는지 말입니다.〉"(195, 200-2)


"예수는 제자들이 잘못했을 때나 인간적인 악함을 보일 때마다 그들을 꾸짖으셨다. 예수는 그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으셨고, 그들의 허영심과 편견과 선입견을 질책하셨다. 그들이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셨다. 이것이 제자 훈련이다. 여기서 'discipline'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진리를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빈센트 버코트는 미국 복음주의에 관해 두 가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너무 많은 미국 기독교인이 제자 훈련이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는 첫 번째의 결과로 너무 많은 미국 기독교인이 자신을 '미국' 기독교인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나라를 사랑할 수는 있지만 숭배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합니다〉라고 버코트는 말했다. 〈나라를 사랑하면서도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를 얻는다고 해서 내가 무언가를 잃는 건 아닙니다.〉"(205-7)


"딕슨은 미국 복음주의가 혼란에서 깨어나려면 먼저 박해받고 있다는 피해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복음주의자들을 움직이는 건 대부분 나라를 잃는다는 두려움, 권력을 잃는다는 두려움입니다.〉 딕슨은 이렇게 덧붙였다. 〈전혀 건강하지 못한 거죠.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의 만찬에 초대받은 열성적인 손님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거기에 있는 것이 기쁘고, 관점을 공유하는 것이 기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존중하고 늘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는 우리 집이 아니니까요.〉 미국 복음주의자가 겸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 최강국의 시민이라는 자부심만으로도 이미 문제를 일으키기에 충분한데, 여기에 천국에서 누릴 독점적 특권에 대한 확신이 더해지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우리는 겸손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자기만족에 빠진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점, 즉 번영과 세속적 지위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212-4)


7장 기만의 먹이사슬: 거짓 정보의 확산과 팽창 


"플러드게이트 예배당에 처음 들어섰을 때 십자가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국기는 많이 보였다. 무대 뒤 스크린에도 국기가 있었고, 나누어 주는 책자에도 국기가 있었다. 심지어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을 딱 한 명 보았는데 마스크에도 국기가 인쇄되어 있었다. 2021년 5월이었고, 플러드게이트교회에서는 팬데믹 폐쇄, 마스크 착용, 백신 의무화에 반대하는 단체 스탠드업미시간의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그 후 세 시간 동안 교회는 원형 경기장으로 변했다. 스탠드업미시간의 전무 이사는 주 정부를 장악한 〈사악한〉 민주당을 비난했고, 민주당의 엘리트 집단이 사탄 숭배 의식으로 아이들의 인육을 먹는다는 큐어넌의 주장이 〈일부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으며, 기독교인들은 〈너무 착하다〉면서 청중에게 〈불에는 불로 맞서 싸우라〉고 촉구했다." "이런 극단적인 정치적 발언과 행동이 플러드게이트교회(그리고 담임목사인 빌 볼린)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 요소라는 점이 명백해졌다."(219-22)


"볼린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출마할 때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마이크 펜스와 주변에 있는 다른 기독교인들에게 영향을 받아 대통령 재임 중에 거듭났다〉고 믿고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1월 6일 워싱턴 폭동 당시에 트럼프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한 사람(마이크 펜스)이 위험에 처했을 때 트럼프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안 되는 거냐고 나는 볼린에게 물었다. 〈네.〉 그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 내용은 책에 싣지 않는 게 좋겠네요.〉 트럼프의 회심 경험(한때는 그가 어둠에 속한 사람이라 확신했다가 빛의 자녀가 되었다고 믿는 것)은 변화를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트럼프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더 큰 사회적 현상을 보여 준다. 현대 복음주의자들은 국가의 운명에 대해 숙명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잘못된 행동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잘못된 행동이 정말로 옳다고 믿는 경향이 생기기도 한다."(225-6)


"플러드게이트 교회로 둥지를 옮긴 호프너 부부(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는 정치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구분하는 일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세속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 손에 나라가 망하기 직전인데, 교회가 중립을 지킬 여유 따위는 없었다. 토니 데펠리스는 트럼프에 대한 공격이 실제로는 기독교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더 이상 기독교적 가치와 전통을 따르지 못하게 하려는 악마의 음모에 의해 2020년 대선이 조작되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정의가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여러 주에서 지난 선거 결과를 무효화할 것이고, 바이든의 첫 임기가 끝나기 전에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바이든이 정정당당하게 승리했다는 증거를 제시하면서, 그런 확신을 갖게 된 근거가 대체 뭐냐고 캐물었다. 이런 압박에도 토니는 흔들리지 않았다. 토니는 2천 년 전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고 확신하는 것만큼,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233)


2부 권력


8장 공포 전술: 유권자 동원을 위한 선동 


"채드 코넬리와 데이비드 바턴은 그동안 수백 개의 교회에서 연설하며 수만 명의 기독교 유권자들과 교류했다. 코넬리가 청중에게 촉구하는 행동은 간단했다. 〈우리는 교회 사람 모두가 유권자 등록을 하고, 모두가 성격적 가치를 위해 투표하게 해야 합니다.〉" "바턴은 미국이 특별한 이유는 우리의 사상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사상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독립 혁명 시기에 설교자들의 입을 통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했다. 그 시대 설교자들은 설교와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를 통해 영국에 대항하는 반란의 기초를 다졌다. 바턴은 오래전에 잊힌 여러 성직자의 작품을 인용하면서 전쟁부터 복지, 의료, 과세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미국인이 직면한 모든 문제가 미국의 역사가 시작되던 초창기에 강단에서 다루었던 설교 주제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려는 요점은 성경이 단순히 영적인 텍스트가 아니라, 미국의 자치 제도를 처음부터 명확하게 알려 주는 통치 지침서라는 것이었다."(248-9)


"지난 몇 년간, 정치와 종교의 결합에 관해 질문하며 거의 모든 복음주의자가 〈소금과 빛〉을 언급하며 에둘러 답했다. 문제는 성경 학자들이 예수가 정확히 무슨 뜻으로 이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해 합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예수는 분명히 세상에서 구별되는 존재가 되라고, 세상에 맛을 더하고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가 되라고 격려하시고자 이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코넬리 같은 사람들은 우리가 세속적인 미국 정치 무대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위해 싸움으로써 구별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며 설교했다." "모든 사람이 주님의 성전에서 유권자 등록 운동이나 이런저런 선거 운동을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끄러운 경사면'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 유권자 등록 운동을 통해 정치에 뛰어든 교회가 어느 날 주일 아침 미시간주 브라이턴의 플러드게이트교회처럼 '헤드라인 뉴스'가 주일 예배를 도배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256-8)


# 미끄러운 경사면. 어떤 행동이나 결정이 점차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


"승패에 대한 집착은 많은 것을 드러낸다.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공화당의 정치적 입장을 예수의 가르침과 동일시하도록 압박을 받고 있었다. 우리 뒷편 예배당에서는 한 무리의 기독교인들을 더 똑똑하고 더 힘 있는 시민으로 기르기 위해 설계된 한 시간짜리 강의가 막 끝난 참이었다. 이제 그들은 바턴이 제공한 정보를 가지고 코넬리의 지시에 따라 미국 정치 전장의 참호로 돌격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은 없었다. 어떻게 올바르게 승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도 없었다. 존 딕슨이 설명한 〈잘 잃는 법〉에 대한 교훈도 없었다. 이것은 당연히 의도된 것이다. 코넬리와 바턴 같은 사람들에게 지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다. 코넬리는 언젠가 내게 〈상황이 너무 절박해서〉 적에게 어떤 양보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달갑지 않은 동맹이라도 맺어야 했다. 비열한 전술이라도 받아들여야 했다. 기독교적 가치를 지키는 첫 번째 단계는 기독교적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었다."(270-1)


9장 혐오의 길: 거짓이 낳은 킹메이커 


"1989년, 한 해 전 공화당 예비 선거에 참여했다가 떨어진 텔레복음 전도자 로버트슨이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리드를 한쪽 구석으로 데려갔다. 로버트슨은 리드에게 공화당의 영적 퇴보가 걱정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제리 팔웰을 좋아하지 않았고, 사실 몇십 년 동안 그와 라이벌 관계였다. 그러나 로버트슨은 팔웰이 모럴머조리티를 통해 쌓아 올린 영향력을 존중했다. 이제 팔웰은 그 조직을 해체하고 있었고, 레이건의 종교적 우파 동맹들은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었으며, 부시 대통령은 복음주의자들을 소외시킬 가능성이 커 보였다. 로버트슨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10년 동안 복음주의 운동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럴머조리티보다 더 많은 자금을 모을 수 있고 더 정교한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조직을 새로 출범시킬 기회를 감지했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연합이 탄생했다. 설립은 로버트슨이 했지만, 실제 지휘는 로버트슨이 아니라 리드가 맡았다."(274-5)


"리드는 공화당에 이 유권자들이 필요한 것이지, 유권자들에게 공화당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992년 빌 클린턴의 당선을 거론하며 공화당이 얼마나 목적이 없고 영적으로 공허한지를 설명한 리드는 믿음이 없는 정당을 구원할 이는 진정한 신자들뿐이라고 주장했다. 1994년, 뉴트 깅그리치의 지휘 아래 공화당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하원에서 다수당이 되자, 이제 공화당 내 온건파가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강요하거나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되었다." "거의 30년이 지난 후, 그의 경력을 되짚으며 함께 앉아 있자니 리드가 미소를 짓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느 정당이 선거에서 이기든 복음주의자들은 이제 미국 정치의 주변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 미국'을 위한 캠페인은 신앙인으로서 그들의 정체성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리드는 권력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것이 권력을 손에 쥐는 것보다 더 짜릿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276-7)


"폴라 화이트가 복음주의 공동체에서 누구보다 큰 영향력을 갖게 된 과정을 이해하려면, 트럼프가 공화당을 장악한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두 사람 다 자신의 권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정규 교육(화이트는 신학, 트럼프는 법학이나 행정학)을 받지 못했다. 둘 다 여러 번 결혼 생활에 실패했고 불륜 스캔들에 휘말렸다. 둘 다 법적·윤리적·재정적 부정행위로 인해 회복이 안 될 정도로 평판이 땅에 떨어질 뻔했지만, 어떻게든 더 추앙받는 위치로 다시 부상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재능과 그 말을 내뱉을 수 있는 뻔뻔함을 겸비한 무법자이자 양심 없는 사기꾼이었다. 트럼프는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미국에 대한 향수(鄕愁)를 파는 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이트는 그보다 더 좋은 것을 팔고 있었다. 바로 번영의 복음이다. 화이트가 설교하는 번영의 복음은 사람이 더 큰 믿음을 보일수록 하나님은 그에게 물질적 편안함을 더 많이 제공하신다는 것이다."(284-5)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경제적·문화적 불안정성 때문에 두려워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리드 같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드 같은 부류는 사람들에게 겁을 줄 필요가 있었다. 리드는 정치 전략가다. 정치 전략가의 임무는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데 가장 쓸모 있는 도구가 두려움이라는 사실을 리드는 오래전에 깨달았다. 그래서 내슈빌에서 리드는 굶주린 정치적 열성분자들을 무대 위에 올려 기독교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리드는 사흘 동안 신자들 수천 명이 모여서 자녀들이 조종당하고 있다, 공동체가 침략당하고 있다, 총이 압수될 것이다, 의학적 치료가 의심스럽다, 신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선출직 공무원들이 악랄하다, 정부가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 공공 생활에서 신앙이 금지되고 있다, 지도자가 자기들 대신 부당하게 박해받고 있다, 나라가 곧 망할 위기다 같은 말을 듣는 모습을 지켜보았다."(291)


10장 세뇌된 신앙: 솔깃한 권력의 유혹 


"2010년에 처음으로 연방 하원위원에 출마한 애덤 킨징거는 이후 10년 동안, 과도하게 소란스럽고 자멸적인 행동을 일삼는 공화당 하원의원들 사이에서 똑똑하고 이성적인 의원으로 입지를 다졌다. 입법 과정에서 타협안을 도출하고 의회 교착 상태를 타개하는 데 도움을 주어 〈온건파〉라는 꼬리표를 얻었지만, 낙태권과 오바마케어, 세금 인상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반대했다." "특히 국가 안보와 정치 윤리에 관해서는 절대주의자를 자처했다. 그래서 그가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 의원 중 최초로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크게 놀랍지 않았다. 킨징거는 〈나는 공화당원이기 전에 미국인입니다〉라고 말하며 힐러리 클린턴에게도 투표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그 순간부터 킨징거는 공화당 내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그가 유권자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도, 트럼프의 정책에 90퍼센트 이상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았다. 충성스러운 지지자 아니면 모두 트럼프의 적이었다."(310-1)


"순진한 신자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관행은 모럴머조리티와 그 후속 단체들의 핵심 사업 모델이었다.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친애하는 애국자 여러분, 우리는 지금 붕괴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세속적인 인본주의자들, 사악한 낙태 찬성론자들, 트랜스젠터 옹호자들에게 곧 점령당할 위기입니다. 어쩌고저쩌고 ···.〉 토머스가 설명을 이어 갔다. 〈항상 똑같아요. '기부하시면, 저희가 같은 금액을 추가로 기부하겠습니다!'(이 약속은 거짓말에 불과했다.)〉" "토머스는 나에게 조금씩 선을 넘어갔다고 말했다. 모럴머조리티가 성공하자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옳다고 스스로 믿게 되었다. 의심스러운 방법으로 모은 돈은 프로젝트가 하나님에게 축복받고 있다는 증거가 되었고, 따라서 더 의심스러운 방법으로 더 많은 돈을 모으는 것이 정당화되었다." "이것이 모럴머조리티가 '기독교 미국'이라는 건물을 세운 발판이다. 토머스가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일단 깨닫고 나니, 외면할 수 없었다."(316-8)


11장 분노 사업: 광기의 교회가 파는 것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렉 록은 테네시주에 있는 작은 교회의 목사였다. 그런데 2016년에 대형 마트 타깃 매장 앞에서 화장실과 성 정체성에 관한 이 회사의 정책을 비난하는 동영상을 찍어 입소문을 탔다. 그 동영상은 1,8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고, 덕분에 록에게는 특이한 복음주의자로서 확실한 브랜드가 생겼다." "록은 현대 기독교 역사의 복음 전도 활동보다는 중세 시대의 정복 정신에 더 가까운, 매우 다른 성향의 십자군을 이끌고 있었다. 그 일요일 아침, 글로벌비전성경교회의 급격한 성장을 기뻐하며 록 목사는 기독교인들이 이제 더는 밀려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속주의자들이 교회와 전쟁을 벌이길 원한다면, 전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록 목사는 우렁차게 외쳤다.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 봤습니다. 우리가 이기는 쪽입니다. 좌파는 이기지 못합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기지 못합니다! 낸시 펠로시는 이기지 못합니다! 악마는 이기지 못합니다!〉"(331, 334-5)


# 타깃은 고객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따라 화장실을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록은 민주당원을 〈하나님을 부정하는 악마〉라고 부르며 〈이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민주당에 투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자신이 수집한 돌격 소총을 자랑하며 총을 장전하는 소리를 흉내 냈고, 기독교인들이 성경적 권위를 가지고 〈무력으로〉 미국을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록은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을 직접 겨누며 경고했다. 〈당신들은 아직 진짜 반란을 본 적이 없다!〉" "록은 집회에서 자신이 한 말 중 일부를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가 내뱉은 호전적이고 잔인한 발언들 대부분은 그냥 퍼포먼스에 불과하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확신에 차서 나에게 말했다. 록은 화끈한 발언 뒤에는 다 전략이 있다고 내개 전화로 설명했다. 많은 소란을 일으켜서 외부 사람들을 대거 글로벌비전성경교회로 끌어들인 후, 몰래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회심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동의를 구하는 그의 눈짓과 턱짓이 마치 눈에 보이는 듯했다."(343-4)


"미국 교회의 극단주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 〈하나님은 유대인, 게이, 죽은 군인을 미워하신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며 악명을 떨친 캔자스주 웨스트보로침례교회를 떠올려 보라. 하지만 록은 트럼프 시대의 독특한 현상을 체현하고 있다. 글로벌비전성경교회를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예배가 끝난 후 찾아온 예상치 못한 무덤덤함이었다. 록에게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는 내가 미국 곳곳을 다니면서 다른 목사들에게서 들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했다. 분위기는 차치하고, 내용만 보자면 지루할 정도로 익숙하고 예측 가능했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교회 내에서도 비주류와 주류를 구분하는 명확한 경계선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십 년 전이었다면, 글로벌비전성경교회는 이단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록은 페이스북 팔로워 220만 명에게 설교하고, 백악관에서 프랭클린 그레이엄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는다."(346-7)


12장 시민종교로 변신한 트럼피즘: 민주주의의 파괴자 


"종교와 정치는 원래 천적이다. 둘 다 대중에게 소속감과 정체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두 영역 사이의 긴장은 건강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지배하게 되면, 억압으로 이어져 비참한 죽음과 고통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역사는 보여 준다. 미로슬라브 볼프가 유고슬라비아에서 목격한 광경은 수 세기 동안 반복되었고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볼프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날 때 종교적 신념이라는 미명 아래 전체주의가 서서히 퍼져 나간다고 보았다. 첫째는 지도자들이 보편적인 인간성보다 민족적 또는 문화적 정체성의 우월함을 주장할 때다. 둘째는 특정 정체성의 정화를 강조할 때다(이는 필연적으로 민족 청소로 이어진다). 셋째는 집단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폭력을 정당화할 때다." "볼프는 기독교인들이 종교적 정체성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한다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정치적 정체성을 통해 빠져나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357)


"호보룬은 세속 종교의 틀 안에서도 하나는 '정치 종교'이고 하나는 '시민 종교'라는 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전자는 국가가 강제하는 종교이고, 후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종교다." "〈정치 종교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히틀러리즘, 나치즘, 공산주의가 바로 그 예입니다. 그것들은 정치적 종교였습니다. 훨씬 더 폭력적이었죠. 푸티니즘도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이제 푸티니즘은 러시아인들에게 강제력을 가진 정치 종교가 되었습니다.〉 〈트럼피즘은 여전히 시민 종교입니다. 시민 종교의 한 형태를 취하고 있죠. 아직 정치 종교는 아닙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런데도 호보룬은 1월 6일의 아수라장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이 모든 장치도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고 주장했다. 푸티니즘의 정치 신학이 이제 푸틴 개인을 넘어선 것처럼, 트럼피즘도 종교 이념으로서 트럼프가 퇴임한 후에도 지속될 방식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361-2)


13장 극단의 주류화: 사라진 문지기 


"트럼프의 심복인 로저 스톤의 제자였던 잭 포소비에크는 2016년 이른바 '#피자게이트'를 옹호하며 극우 진영에서 명성을 얻었다. 포소비에크는 피자게이트 음모론에 그냥 가볍게 동참한 정도가 아니었다. 직접 그 식당을 찾아가 몰래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을 진행했고, 나중에 인포위즈의 알렉스 존스 채널에서 〈어린아이들〉이 너무 많아 의심스러웠다면서 〈악마의 작품〉, 〈비밀의 문〉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활동 중에 포소비에크는 마스트리아노라는 동맹을 찾았다.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인 마스트리아노는 바이든의 당선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며 자신과 동료 의원들이 주의 선거인단 투표를 트럼프에게 넘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일 년 후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주지사 선거 운동을 시작할 때, 전통 의상을 입은 한 목사가 뿔 나팔을 불어 마스트리아노의 출마를 알렸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미국에 두 번째 내전이 임박했다는 것이었다. 그 내전은 영적 전쟁이었다."(371-2)


"정치를 이해한다는 것, 적어도 마스트리아노와 같은 극단적인 인물이 공화당 내에서 이렇게 큰 영향력을 얻게 된 이유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제 극단주의자들이 주류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한때 극단적인 인물들이 권력을 얻지 못하게 막아 주던 전설적인 문지기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우리의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짓던 상상 속의 불문율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비단 미국 정치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 기독교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종말론적 정치 설교를 하는 모든 목사가 자신이 설교한 내용을 진짜로 믿는 진정한 신봉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이가 진정한 신봉자였다. 2021년 민주당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그들이 2022년 중간 선거 캠페인을 현대판 십자군 전쟁처럼 여길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들에게 이 선거는 단순히 공화당과 민주당의 싸움이 아니라, 천국과 지옥의 대결이었다."(375-6)


"왜 마스트리아노는 공화당이 〈권력을 움켜쥐게〉 해 달라고 기도할까? 왜 앨버트 몰러는 〈투표가 신앙인의 중요한 책무〉라고 강조할까? 리드가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정치인, 목사 할 것 없이 왜 모든 연사가 민주당이 앞으로 2년 더 〈권력을 잡는〉 것이 두렵다고 말할까?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아피에미〉(aphieimi)는 '분리하다, 버리다, 홀로 두다, 놓다'를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 많은 미국 복음주의자는 놓지를 못한다. 그들은 국가 정체성에서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미국을 위해 싸우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기독교 민족주의〉에 점점 더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 지킬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목표는 빼앗긴 것을 되찾는 것, 즉 종교적 보복주의다. 의도가 아무리 〈고귀하다〉 하더라도, 결국 나라를 향한 사랑과 패권에 대한 욕망 간의 경계는 흐려질 수밖에 없다."(381-2)


14장 트럼프 경제: 집착과 기생의 모델 


"〈미국재각성투어〉 입장권은 우파 복음주의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티켓이었다. 투어를 기획한 마이클 플린과 클레이 클라크는 함께 무대에 올라 세계주의자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무기 삼아 봉쇄를 강요하고 세계 인구를 통제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지목한 주동자는 세계경제포럼의 수장 클라우스 슈바프였다. 두 사람은 슈바프가 세속적이고 전제적인 단일 세계 정부를 만들기 위해 〈위대한 리셋〉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에 대항할 〈위대한 재각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때 중동에서 대테러 전략을 감독하는 존경받는 군사 지휘관이었던 플린은 음모론에 빠지면서 한순간에 조롱거리가 되었다. 플린은 빌 게이츠가 순진한 백신 접종자들 피부밑에 추적 장치를 심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오클라호마에 기반을 둔 사업가 클라크는 박해받는 순교자를 자처하며 동정과 지지를 얻는 플린에게서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고 이 시장의 규모를 대폭 확장했다."(393-5)


# 위대한 리셋. 슈바프는 코로나19 팬더믹 이후 경제적 불평등, 환경 문제, 기술 발전으로 인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경제와 사회 구조를 재편하자고 제안했다.


"기독교 작가이자 출판업자인 스티븐 스트랭은 행사장 텐트 안에서 주변 환경에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나는 스트랭에게 행사장 분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어느 그룹에나 괴짜들은 있기 마련이죠.〉 그가 대답했다. 〈물론, 저는 여기에 있는 것 중 많은 부분에 동의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 나라가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서는 똑같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2017년 스트랭은 《하나님과 도널드 트럼프》라는 책에서 트럼프를 넓은 마음을 가진 가정적인 사람으로 그렸다. 책은 엄청나게 팔렸고, 스트랭은 딜레마에 빠졌다. 그가 트럼프를 항상 존경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트럼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불완전한 도구라는 주장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상, 이제 그에게는 그 이야기를 발전시킬 동기가 생겼다. 대통령의 무수한 결점들은 '하나님의 불완전한 도구'라는 원래의 전제를 강화할 뿐이었다. 트럼프에게 어떤 악재가 닥치든, 스트랭에게는 이 이야기를 계속 밀고 나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397-9)


"스트랭 같은 사람들, 그리고 전국을 돌며 정치적으로 소극적인 교인들을 신앙이 거짓될 사람들로 묘사한 채드 코넬리 같은 사람들에게 기독교인의 경건함을 재는 기준은 내면의 노력과 자기 성찰이 아니라 외적인 싸움과 자기 과시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니 온갖 음흉한 동맹과 도덕적 타협이 이해가 되었다. 정치적 영향력을 손에 넣으려고 애쓰는 행위는 예수를 믿는 신앙에서 벗어난 행위가 아니라 신앙을 증명하는 행위였던 셈이다." "트럼프가 건전한 정책을 추진한 점을 칭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가장 강력한 비판자들조차 그가 대통령으로서 내린 특정 결정들을 칭찬했다. 하지만 스트랭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정책 결정을 초자연적인 것과 연결 지었다. 스트랭은 특정 목적을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스트랭은 어떤 사람이 중시하는 가치들이 그리스도가 보인 본과 반대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사람과 그의 정치 운동을 말 그대로 '기독교화' 했다."(411-2)


3부 영광


15장 정체성 혼동: 실패한 실험의 재연 


"생명의말씀 교회를 이끄는 브라이언 잔드 목사는 2004년 10월, 딕 체니 부통령이 참석하는 집회에서 개회 기도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심 끝에 이를 수락했다. 행사 당일, 거의 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잔드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는 온통 빨강, 하양, 파랑 물결 속에 미국 국기를 들고 있는 교인들을 보았고, 교인들은 교회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겠다고 맹세한 목사가 공화당에 종교적 권위를 빌려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군중은 완전히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며 잔드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브라이언, 브라이언, 왜 나를 정치화하고 있느냐?라고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순간, 잔드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그동안 알고 있던 세계를 완전히 떠나라고 명령하고 계신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교회 내 파벌과 인맥이 함께 교회를 떠났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공표하고 몇 년 만에 교회는 1,500명 이상의 교인을 잃었다."(422-4)


"성경에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자랑하라는 경고가 반복해서 나온다. 성경의 특정 문맥에서는 '영광'(glory)이라는 단어가 모호하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히브리어 '카보드'(kavod)에서 파생된 이 단어는 무게, 중요성, 중후함을 의미하며, 상당한 가치를 지닌 것을 나타낸다. 기독교인이 대형 교회나 출판 제국처럼 상당한 가치를 지닌 업적을 이루면, 스스로 영광을 누리고 싶은 충동이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충동이 든다면 반드시 저항해야 한다. 이 역학 관계는 지극히 이분법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거나, 스스로 영광을 누리거나 둘 중 하나다. 둘 다 할 수는 없다. 잔드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릴 준비를 하라고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라고 예수는 물으셨다."(429)


16장 원칙보다 권력: 승리가 곧 미덕? 


"2022년,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는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거가 되었다. 허셜 워커 공화당 후보를 향한 낙태 폭로 기사와 관련하여 가장 주목할 점은 그 기사가 선거의 판도를 바꾸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한때 아버지의 선거 운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던 아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아버지를 비난하는 일까지 있었지만, 워커를 지지하는 보수적인 기독교 유권자들은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워커가 같은 여성에게 두 번이나 낙태를 강요했다는 폭로도, 카메라 앞에서 워커가 수술비를 댔다고 밝힌 또 다른 전 여자친구의 고발도 후보직에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이유가 뭘까? 중요한 것은 워커가 공화당 후보라는 점이었다. 중요한 것은 권력을 되찾는 것이었다. 〈승리가 미덕입니다.〉 보수적인 기독교 라디오 진행자 데이나 로쉬가 토크쇼에서 한 말이다. 〈허셜 워커가 멸종 위기에 처한 독수리 새끼들을 낙태시키려고 돈을 댔어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길 원합니다.〉"(438-9)


"수백만 명의 복음주의자들이 낙태를 도덕적 잔학 행위로 여기고, 오직 낙태 정책 하나만 보고 투표하는 단일 유권자가 되었다. 두 세대에 걸쳐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기 위해 싸워 온 복음주의자들은 낙태라는 재앙을 종식시키기 위해 자신들이 기울인 노력과 타협을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이라며 2022년 6월에 나온 돕스 판결을 환영했다. 일부는 정치적 성향을 자제하라고 설교한 기독교 지도자들을 조롱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돕스 판결은 낙태라는 재앙을 종식하지 못했다.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낙태에 반대하는 대법관을 임명해 법을 바꾸더라도, 낙태 문제에 회의적인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지는 못한다. 정치적 권력을 직접 사용하여 목표를 달성하려 했던 복음주의 운동의 노력은 성공했음에도 실패할 운명이었다. 이제 공화당 지지자들이 20년 전의 민주당 지지자들보다 더 높은 비율로 진보적인 낙태 법을 지지하고 있다."(454-5)


17장 침묵은 죄인가: 선동가들의 위험한 게임 


"찰리 커크는 트럼프가 처음 부상할 때부터 〈논쟁으로 진보를 깨부수는〉 것이 어떻게 돈이 되는지 일찌감치 알아챘다. 그는 청년 운동 조직인 터닝포인트유에스에이를 허름한 신생 단체에서 업계 거물로 성장시켰다." "커크는 하나님이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의 승리를 보류하신 이유는 그들의 의지를 시험하시려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우리는 더 열심히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단결해야 합니다.〉 커크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성경의 전통과 우리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고, 우리가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스스로 배워야 합니다.〉" "이 싸움은 정치인들과 유권자들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좌파를 물리치려면, 너무 오랫동안 뒤로 물러나 있던 사람들, 즉 그들의 목사들이 전투를 이끌어야 한다고 커크는 설명했다.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는 목사는 좋게 봐줘 봤자 나약한 인간이고 엄밀히 말하면 배신자라고 했다."(461-3)


"미국 복음주의는 정치와 사업 분야에서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엘리트 사회, 학계, 지식인 그룹에서 배척당하는 듯해 오랫동안 불만을 느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갈망이 커지면, 사회 주요 영역에 침투하여 자신들의 견해를 대변하고 신념을 지지해 주는 인물들, 비유하자면 자신들을 위해 테이블에 자리를 하나 마련해 주는 인물들을 영웅처럼 떠받들기 쉽다. 간단히 말해, 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지적으로도 고상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 주는 인물들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있다. 에릭 메택서스는 교회를 좀먹는 이 소외감이라는 감정을 이해하고 있었고, 이 감정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영국의 노예제 폐지론자 윌리엄 윌버포스에 관한 책을 썼고, 그 후 히틀러에 반대하다 순교한 독일 선교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전기를 집필한 메택서스는 이제 트럼프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싸움에 모든 것이 달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466-7)


"마이크 펜스는 특정 공화당원들과 달리, 국가를 분열시키지 않고 은혜와 인간미를 가지고 전통적 가치를 수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런 점이 언제나 그의 강점이었다. 펜스는 보수적인 라디오 토크쇼를 진행할 때만 해도 자신이 〈디카페인 러시 림보〉로 알려져 있었음을 청중에게 상기시켰다. 이 말에 일부 청중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 말은 예비 후보로서 그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행사가 끝난 후, 나는 참석자들에게 계속 같은 말을 들었다. 현재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펜스가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좋은 사람들한테 실망하는 것도 이제 지쳤어요. 부시 부자도 좋았고, 밋 롬니도 좋았죠. 그런데 그게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나요?〉 〈우리를 위해 싸워 준 사람은 트럼프뿐이에요. 민주당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선량한 기독교인이 되는 것만으로는 그들을 막을 수 없어요. 솔직히 저는 '디카페인' 같은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진짜가 필요해요.〉 제리 버드가 말했다."(482-3)


# 디카페인 러시 림보. 자신이 러시 림보와 같은 보수 성향을 지녔지만, 덜 자극적이고 부드럽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다.


18장 기독교와 사회: 격랑 속 새로운 연대 


"2015년, 〈내셔널 리뷰〉에 기고한 칼럼에서 트럼프에 반대한다고 선언한 이후, 데이비드 프렌치는 기독교 우파의 핵심 표적이 되었다. 아마도 그의 배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방 법원에서 주요 보수 단체를 대변했던 유능한 변호사로서 프렌치는 오랫동안 진보 좌파에 맞서는 강경한 인물로 여겨져 왔다." "익명 뒤에 숨은 계정들만 프렌치를 괴롭힌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스토킹하는 수천 명의 트위터 사용자를 차단하려고 애쓰던 중 프렌치는 익숙한 이름들을 발견했다. 그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이었다. 교인들은 프렌치 가족이 예배당에 들어올 때마다 수군거렸고 일부는 보란 듯이 등을 돌리기도 했다. 2018년 어느 일요일 아침, 갈등이 극에 달했다. 평소에 친구로 여겼던 퇴역 군인 출신의 같은 교회 장로가 예배가 끝난 후 예배당 안에서 데이비드와 낸시에게 다가와 데이비드가 쓴 칼럼에 대해 따졌다. 〈그가 우리를 위해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여전히 우리 대통령에게 반대할 수 있습니까?〉"(490-2)


"기독교 청중을 먹잇감으로 삼아 사건을 과장하는 콘텐츠가 팟캐스트, 블로그, 소셜 미디어 플랫폼, 온라인 포럼 하위 그룹을 통해 확산되면서, 신자들이 소비하는 내용을 교회 지도자들이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1970년대나 1980년대 목사들은 위협을 명확히 지적하고 신자들에게 멀리하라고 경고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 교인들은 목회자들이 들어 본 적도 없는 정보원에서 정보를 흡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목회자들 사이에 체념이 생겼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음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많은 교회 지도자가 외부 소음을 차단하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해 버렸다." "무어는 말했다. 〈이제는 거의 모든 곳에서, 얼마 전에 방문한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자녀들이 저를 찾아와 말합니다. 자기 부모가 복음주의자인데 온종일 폭스뉴스, 뉴스맥스, 원아메리카뉴스를 몰아 보며 완전히 미쳐 가고 있다고요. 그리고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를 다시 되돌릴 수 있냐고요.〉"(496)


"무어는 많은 목사가 시대의 도전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며 걱정했다. 그들은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신학교나 성경 대학을 다녔고, 일부는 신학이나 상담학 같은 고급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교회 안에서 당파 간의 정치적 긴장을 완화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고, 교인들 사이에서 민족주의적 흥분을 가라앉히는 방법을 훈련받은 적도 없었다. 그들은 연습 한번 해 본 적 없는 게임에 내던져졌고 무참히 지고 있었다. 이런 실패감을 맛보면 누구보다 재능 있고 자신감 있는 설교자라도 절망에 빠질 수 있다. 나는 코너스톤교회의 크리스 와이넌스, 굿윌교회의 존 토레스 등 여러 사례에서 이를 직접 목격했다. 무어는 곤경에 처한 목사들을 보고 엄청난 긴박감을 느꼈다. 이 목사들은 최후의 보루였다. 그들은 대개 지역 사회 기독교인들과 교회를 파괴하려는 세력 사이에 서 있는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속하게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501-2)


19장 회복은 가능한가: 무너진 신뢰, 실낱같은 희망 


"신앙에 기반을 둔 조직들은 도둑질과 사기, 괴롭힘과 협박, 권력 남용과 정의 실현 거부 같은 문제가 세속 기관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해 왔다.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거나 거의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종교인들, 특히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가 비신자들의 공동체보다 더 안전하고, 더 선하고, 더 도덕적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실제로 신앙 공동체들은 교회의 전통과 가르침을 잘못 적용해서 그 '때문에'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투명성을 요구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일쑤다. 책임감을 지적하면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자비를 강조하다 보면 잘못을 집어내는 일이 불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교회를 운영할 때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는 교회가 자치적이고 자율적인 조직이라는 점입니다〉라고 커틀러는 말했다. 〈교회는 신뢰를 기반으로 세워진 곳이에요. 그래서 굳이 위험 신호를 찾아내려고 애쓰지 않습니다.〉"(522-3)


20장 복음주의 산업 복합체: 양을 착취하는 늑대 


"래리 나사르 판결이 있고 4년이 흐르는 사이 레이첼 덴홀랜더를 바라보는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시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그들의 눈에 비친 덴홀랜더는 에스더가 아니라 이세벨이었다. 덴홀랜더는 교회 내부, 특히 남침례교 안에서 급증하는 성 학대 스캔들에 주목하고 법률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기독교계에서 가장 힘이 세고 조직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가장 확고한 단체에 맞서 싸웠다. 덴홀랜더는 생존자들과 협력하여 매우 정교하게 은폐된 증거를 찾아냈다. 또한, 대형 교회에 들어가 망가진 시스템을 개혁하고 투명성을 최대한 끌어올리고자 체계적인 대응책을 마련했다. 덴홀랜더는 비밀리에 정보원을 확보하고 정보와 증거를 수집하여 복음주의계 거물급 인사들을 무너뜨렸다." "〈법이 대중의 인식과 이야기를 따라잡을 때 변화는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대중의 인식을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저널리즘입니다.〉 덴홀랜더의 말이었다."(549-50)


# 나사르 판결. 미국 체조 대표팀 주치의였던 나사르는 부상 치료를 명분 삼아 수백 명의 선수를 성추행했다. 덴홀랜더가 실명으로 학대 사실을 공개한 이후 학대 생존자 155명이 추가로 피해자 진술을 했고, 나사르는 2018년에 175년 형을 선고받았다.


"덴홀랜더가 남침례교와 협력한 이유는 교회를 정화하는 일을 돕기 위해서였지, 그들의 잘못을 폭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덴홀랜더는 생존자들을 옹호하는 일에 집중했지, 조직의 잘못을 폭로하는 일에 집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 잘못이 세상에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동료 복음주의자들과 달리 덴홀랜더는 세상이 이를 외면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교회는 면죄부를 받을 자격이 없었다. 오히려 철저하게 조사 받고, 겸손하게 낮아지고, 굴욕을 당해야 마땅했다. 만약 그리스도의 신부에게 희망이 있다면, 그 희망은 덴홀랜더가 나사르에게 설파했던 죄책감의 무게를 경험하고 진정한 회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은 제니퍼 라일이 2019년 남침례교 집행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과정은 절대 아름답지 않았지만 덴홀랜더는 물러서지 않았다. 당황한 해적들이 애너하임에서 항의하며 목소리를 높일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561-2)


21장 리버티의 새벽: 갈림길에 선 두 번째 기회 


"2024년 대선 캠페인이 시작되기 한 달 전,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영적 영향력을 과시하고자 4월 중순에 린치버그를 방문했다. 타이밍이 아주 절묘했다. 리버티에 도착하기 불과 24시간 전, 디샌티스는 플로리다주에서 이른바 '심장박동 법안'에 서명하여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사실상 금지했다. 트럼프는 2022년 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하자 낙태 반대 동맹에게 책임을 돌리며 그들을 소외시켰다. 만약 낙태가 실제로 트럼프의 가장 큰 약점이라면, 디샌티스는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 "플로리다 주지사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대학에서 30분간 연설하면서 예수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부실하고 수준 낮은 연설도 충격적이었지만, 연설에 대한 반응은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많은 학생이 연설 내내 기립하여 환호했다. 디샌티스가 연설을 마치자 열광적인 환호와 박수는 쿵쾅거리며 〈미국! 미국! 미국!〉을 외치는 함성으로 바뀌었다."(612-4)


"모두가 그렇게 열광한 것은 아니었다. 대니얼 호스테터는 연설 전에 디샌티스와 잠깐 대화를 나누고 앞줄에서 연설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지금 그는 완전히 낙담한 표정이었다." "호스테터는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상대측의 공격을 물리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깨어있는' 척한다는 비난과 공격은 이전 선거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이번에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편, 여동생이 다니는 애즈버리대학교에서 일어난 부흥은 호스테터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리버티 학생들을 각성시켰다. 물론, 캠퍼스에는 여전히 MAGA 모자를 쓰고 수업에 들어오고 기숙사 방에서 〈렛츠 고 브랜든〉 깃발을 휘날리는 강경파들도 있었다. 하지만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 이제 소수에 불과한 듯 보였다. 호스테터는 리버티에 입학한 이후 처음으로 학교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것 좀 보라는 듯 호스테터가 손을 뻗어 (열광적인 환호가 메아리치던) 텅 빈 경기장을 가리키며 말했다."(614-6)


에필로그: 교회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와이넌스는 양심상 문제 많은 현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었다. 승패가 갈리는 이분법적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그는 더 많은 교인을 소외시키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고 절박하게 기도했다. 그렇게 한동안 고군분투하던 와이넌스는 마침내 돌파구를 찾았다. 그가 〈밀지 말고, 당기세요〉라고 명명한 이 전략은 일종의 정교한 심리 기법이었다. 와이넌스는 비성경적인 욕망을 재고하도록 교인들을 압박하면서도 그것이 교인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신념이라고 믿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경건한 성품에 관해 설교한 후, 어떤 교인이 다가와 특정 정치인이나 대중문화 인물에게 충성하는 태도를 재고해 보아야겠다고 고백하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척했다. 분별력과 영적 원리에 관해 설교한 후, 어떤 교인이 그동안 철석같이 믿던 음모론을 의심하기 시작하거나 소셜 미디어에서 접한 정보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고 고백하면 당황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코너스톤의 상황은 안정되어 갔다."(627)


"거짓말과 기만으로 1월 6일 국회의사당 폭동을 촉발해 불명예를 안게 된 미주리주 상원의원 조시 홀리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세속적 진보주의자들이 미국의 기독교 유산을 파괴하려는 과정에서 이미 오래전에 규칙을 어겼다고 보고 있다. 불에는 불로 맞서야 한다. 기준 준수는 뒤로 미뤄야 한다. 승자 독식 사고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보수 활동가 마이클 앤턴은 2016년에 쓴 〈93편 항공기 선거〉라는 글에서 좌파가 미국이라는 비행기를 납치했다면서, 보수주의자들이 좌파를 저지하기 위해 조종실로 돌진해 결국 비행기가 추락하더라도, 그것이 미국을 구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 글은 그리스도나 기독교, 심지어 신에 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박한 파멸을 막기 위해 어떤 극단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설사 그런 행위 자체가 또 다른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하다는 안톤의 주장은 현대 종교적 우파의 사고방식을 반영한다."(635)


"2023년 봄, 트럼프가 여러 건의 형사 사건으로 기소될 예정이고, 그중 첫 번째 사건으로 체포될 것이라는 소식이 발표된 후, 종교적 우파는 트럼프를 중심으로 결속을 다졌다. 마리스트칼리지 조사에 따르면 백인 복음주의자의 81퍼센트가 트럼프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으며, 67퍼센트가 다가오는 공화당 대선 예비 선거에서 트럼프를 지지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복음주의자들 다수가 새로운 공화당 후보를 찾는 쪽을 선호한다고 신호를 보내던 그해 초의 피로감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트럼프는 포르노 스타에게 지급한 입막음용 돈과 관련된 사업 기록 조작, 국가 안보 기밀을 플로리다 저택으로 불법 반출한 혐의, 2020년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던 시도 등으로 기소되었고, 강간 및 명예훼손에 대한 민사 소송도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여러 가지 형사 문제로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수록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지지는 더욱 굳건해졌다."(637-8)


"문화 전쟁이 기독교인들에게 수렁이 되고 마는 이유가 있다. 올바른 정치인을 선출하고 올바른 법을 제정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승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잘못된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이넌스는 부유하고 보수적인 백인 공화당원 회중을 유혹하는 유한한 세계관을 해체하고, 그들에게 무한한 세계관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했다." "〈주님,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와이넌스가 고개를 숙이고 기도했다. 〈그리고 주님, 우리가 충실한 존재가 되어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복음을 들은 모든 사람이 돌이켜 치유받게 해 주십시오.〉 회중은 자리에서 일어나 축도를 기다렸다. 와이넌스는 설교 첫머리에 읽은 구절로 돌아가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말을 암송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아멘."(6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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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역사 - 알지 못하거나 알기를 거부해온 격동의 인류사
피터 버크 지음, 이정민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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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사회의 무지


1장 무지란 무엇인가?


# 무지의 여러 분류들

1. How에 대한 무지 : 런던(의 여러 모습)에 대해서 안다.

2. What에 대한 무지 : 런던이라는 도시를 안다.

3. 의식적 무지 : 시칠리아 주민들이 마피아를 전혀 모르는 듯이 행동한다.

4. 무의식적 무지 :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등장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인지하지 못한다.

5. 자발적(고의적) 무지 : 타조가 모래밭에 머리를 박고 있다.

6. 비자발적 무지 : 기독교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교도를 비난할 수 없다.

7. 능동적 무지 : 새로운 이주민들이 원주민의 존재와 영토 소유권을 무시한다.

8. 수동적 무지 : 특정 분야나 행동에 필요한 지식을 활용하지 못한다.


2장 무지에 관한 철학자들의 견해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철학에서 인식론적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인식론은 우리가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고 해당 지식의 신뢰성 여부를 판단하는지를 다룬다. 반면에 무지의 인식론은 우리가 어떻게, 왜 무지에 머물러 있는지 다루었다. 그리스 철학자들, 특히 피론을 필두로 한 회의주의학파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다." "회의주의자들은 소크라테스보다 한 발 더 나아가 대상이 동일하더라도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동일한 인상을 받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같은 물체라도 서로 다른 환경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회의주의자들은 (회의懐疑, skepsis의 본뜻인) '조사照查, investigation'를 믿었다. 다시 말해 기존의 믿음이나 확신을 두고, 이를 뒷받침하거나 위배하는 사례를 분석하며 지식을 얻을 때까지 판단을 유보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회의주의에는 두 종류가 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확신하는 독단적 회의주의와, 그것조차 확신하지 않는 반사적反射的 회의주의다."(36-7)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유명한 회의론자이자 16세기 고대 회의주의 부흥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미셸 드 몽테뉴는 보르도 시장 시절 가톨릭과 개신교 간 전쟁을 몸소 겪었다. 몽테뉴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데카르트는 저서 《방법서설》(1637)에서 몽테뉴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채 그에게 답하는 방식을 통해 의심에서 확신으로 나아가는 이른바 방법론적 무지를 구현했다." "17세기 회의주의는 외양과 현실 간 격차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철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바로크 시대 세계관의 핵심이었다." "18세기 대표 철학자인 조지 버클리나 데이비드 흄은 둘 다 지식이라는 주제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했던 17세기의 전통을 이어 갔다." "카를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노동자 계급의 허위의식 등 지식 습득을 방해하는 사회적 장애물에 대해 논의했고, 프로이트는 지식에 무의식적 거부 반응을 보이는 심리적 장애물이 있다고 주장했다."(37-9)


3장 집단의 무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상류층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지배 계급이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하층민에게 정보를 아예 주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를 주는 방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왔다.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유명한 문구를 남긴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가난한 자들이 자신의 처지에 만족할 수 있도록 '환상에 불과한 행복'을 제공한다는 뜻이다. '지적, 도덕적, 정치적 헤게모니' 개념을 제시한 그람시는 지배 계급이 단지 힘만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힘과 설득, 강요, 동의를 결합해 통치한다고 보았는데, 설득은 일부 간접적으로 이루어진다. 피지배 계급 또는 하위 계급은 자신을 지배하는 자의 눈으로 사회를 보는 법을 배운다. 이후 미셸 푸코는 이들의 지식을 가리켜 '예속된 지식savoirs assujettis'이라 했다. 이들에 따르면 하위 계급은 자신들만의 표본이 없기 때문에 지배 집단의 표본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수밖에 없다."(43-5)


"인식론의 사회적 전환에 큰 자극을 준 것은 철학 외부에서 부상한 페미니즘이었다. 남성은 '내가 모르는 것은 지식이 아니다'라는 원칙에 따라 여성의 지식과 신뢰성을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해 왔다. 고대 로마에서 근대 초기 유럽에 이르기까지 신뢰할 수 없는 지식을 가리켜 '노파의 이야기aniles fabulae'라고 치부했을 정도다." "18세기 여성의 무지를 논한 저서는 '소피아'라는 필명으로 출판된 《남성보다 열등하지 않은 여성》(1739)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1792)가 있다. 소피아는 여성 무지의 책임이 '미신을 피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지 않은 남성에게 있다'고 비난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시민정부의 헌법 자체가 여성의 이해력 증진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거의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며 '오늘날의 여성은 무지로 인해 어리석거나 사악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 주장했다. 또한 여성이 '순수라는 허울뿐인 명분 아래 계속 무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46, 49)


"19세기와 20세기 여성 학자와 과학자들의 경력을 살펴보면 남성이 여성의 성과를 끈질기게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남성과 여성의 공동 작업에서 그와 같은 경향이 두드러졌다. 남성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빛을 보지 못한 불운한 여성 과학자에는 메리 애닝, 리제 마이트너, 로절린드 프랭클린 등이 있다. 메리 애닝은 지금도 주로 화석 수집가이나 중개인으로 소개된다. 이 때문에 19세기 전반기에 도싯에서 공룡 화석을 발굴해 고생물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묻히기 일쑤다. 물리학자인 리제 마이트너는 1930년대에 오토 한과 함께 핵분열을 발견했지만, 이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주인공은 남성 동료인 오토 한뿐이었다.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DNA의 암흑 여인'으로 불린다. DNA를 발견해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이 그녀의 지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인용 기억상실' 중 하나에 해당한다."(50-1)


4장 무지의 연구 


"우리는 보통 초기 역사 시대를 무지의 시대로 여긴다. 하지만 모든 시대가 무지의 시대라고 해야 겸손할 뿐 아니라 정확할 것이다. 바로 다음의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지난 두 세기 동안 눈부시게 성장한 집단 지식이 대다수 개인의 지식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인류 전체를 놓고 보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개인은 자신의 조상보다 조금 더 알 뿐이다. 둘째, 새로운 지식이 확산되면 다른 지식은 사장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 중국어 등 세계적 언어를 지식으로 습득하는 것이 증가함에 따라 다른 언어의 소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또한 개념 차원에서 보면 하나의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으로 대체될 때는 (전환 과정에서 과거의 지식 일부가 손실되는) '쿤 손실'이 발생한다." "셋째, 최근에 정보의 양이 급속하게 늘기는 했지만, 이는 엄연히 지식의 증가와는 다르다. 지식 증가는 정보와 달리 검증, 소화, 분류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57-8)


"의학자, 철학자, 심리학자들은 초기 무지 연구에 기여했지만 각자 몸담은 분야가 달라 서로 고립되어 있었다. 이후 무지에 관한 책과 논문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으며, 여기에는 사회학자들이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이제 '아그노톨로지Agnotology'는 여러 학문을 아우르는 분야로 자리매김했다." "무지 연구에 대한 관심이 지난 40여 년 동안 특히 왕성하게 일어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는 있다. 그 중 하나는 연구 그 자체의 발달이다. 특정 문제를 연구할 때 그것을 뒤집거나 반대로 돌려 상반된 측면을 살펴봄으로써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제 기억을 연구하는 학생들은 망각으로 눈을 돌렸고, 언어를 연구하는 학생들은 침묵을 연구하고 있다. 성공은 늘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학자들은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도 연구한다. 또한 지식 사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데 힘입어 학자들 사이에 지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 그에 따라 무지 연구도 뒤따르게 된 것이다."(64-5)


5장 무지의 역사 


"무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바로 '없음'을 어떻게 연구하느냐 하는 점이다." "다소 전통적이라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무지의 개념을 시대별로 살펴보는 것이다. 해당 사례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이자 학자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자신의 무지와 다른 많은 이의 무지에 관하여〉라는 편지가 자주 언급되어 왔다. 페트라르카는 소크라테스를 인용해 자신은 '모른다는 점을 안다'고 하면서, 그가 무지하다고 주장하는 네 명의 젊은 베네치아인에 맞서 자신을 변호했다." "무지의 역사를 알기 위해 최근에는 그림자를 보고 누군가를 추적하는 것과 같은 간접적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이른바 '후향적 방식'으로, 지식의 증가에서 무지의 점진적 감소로 초점을 옮기는 것이다." "두 번째 접근 방식은 셜록 홈즈가 하는 것처럼 이른바 '설득력 있는 부재'를 연구하는 것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무지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비교를 통해 중대한 부재를 드러낼 수 있다."(71-2)


# 셜록 홈즈는 경주마 실종 사건을 조사하던 중 경비견이 그날 밤에 짖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래서 경비견과 친밀한 사람이 범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코넬 치얼라인은 서구인들이 근대 초기 레반트(동지중해 연안) 지역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특히 아랍의 위대한 역사학자 이븐 할둔의 저서를 비롯한 일부 도서가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특정 정보 역시 도서관 소장 도서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관행은 '빈 역사'라고 부르며, 기록 보관소에 특정 자료가 없는 것을 중요한 현상으로 본다." "세 번째 방식은 기존의 승리주의 서사를 뒤집어 무지의 감소 대신 무지의 증가, 혹은 무지의 폭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에서는 언어의 소멸, 책의 소각, 도서관 파괴, 발견의 집단적 망각, 지식인의 죽음 등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한마디로 승자보다는 패자, 성공보다는 실패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 접근법의 가치는 전통적인 이야기의 편향성, 즉 역사학자들이 흔히 '편견'이라고 부르는 것을 드러내는 데 있다. 하지만 (이 방식만 활용할 경우)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마찬가지로 편향적일 수 있다."(72-3)


6장 종교의 무지 


"무지는 종교의 이론과 실천 모두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는데, 부정신학否定神學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부정신학에 따르면 인간은 '신이 어떤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으며(예를 들면 '신은 유한한 존재가 아니다'라고 함으로써 '신이 무한한 존재'임을 설파한다), 무지를 통해 신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종교 지도자들은 종종 야훼, 하나님, 알라의 의도를 안다고 자신하지만, 종교는 인간의 무지로 인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종교인들의 믿음을 자신과 다른 지식으로 여기기보다 지식의 부재라 단정 짓고, 무지를 비난했다." "대항해 시대 이후 유럽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은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환경에서 전도해야 했지만, 본국의 동료들에 비해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 그들이 개종시키려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선교사들이 쓴 글을 보면 신도들을 무지하다고 여긴 경우가 흔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개종한 이들 스스로도 그 같은 견해를 받아들였다."(77, 83)


"개인 차원이든 집단 차원이든 타 종교에 대한 무지는 숨기거나 위장하는 행위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강제 개종이 이루어졌을 때 더욱 그렇다. 신대륙에 끌려와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했던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은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의 토착 신앙을 끝까지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 종교에 박해가 이루어지는 한 위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공개적으로는 어떤 종교를 지지하면서 실제로는 그와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이다." "이슬람교의 시아파가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시행해온 위장을 아랍어로 '타키야taqiyya'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두려움'이나 '신중함'의 뜻도 담겨 있다." "종교개혁 이후 서유럽이 가톨릭교, 루터파, 칼뱅파 지역으로 분열되면서 '그릇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위장이라는 관행을 따랐다. 이 위장은 당시 장 칼뱅 등이 니코데미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니코데미즘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바리새인 니코데모가 남몰래 밤을 틈타 그리스도를 만나러 간 것에서 유래했다."(93-5)


"'불가지론자agnostic'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영적 지식gnosis의 부족을 의미한다. 기록상 최초의 불가지론자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파네스로, 그는 '어떤 사람도 신에 관한 분명한 진실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독실한 불가지론'은 유대교와 기독교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숨어 있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구약성서(이사야 45장 15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 유대인 학자 모세 마이모니데스는 '부정적 속성을 제외한 채 창조주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신론자야말로 논의에 포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18세기 이신론자들이 믿었던 신은 세상을 창조하기는 했지만 그다음부터는 자체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었다. 마치 시계 장인이 만든 시계가 스스로 작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이끌어냈다. '신을 살피려고 들지 말라. 인간의 적절한 연구 대상은 인간이다.'"(95-7)


7장 과학의 무지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는 과학을 점차 커지는 구체球體로 상상했다. 표면에 추가되는 모든 것은 주변의 무지와 더 광범위하게 접촉한다는 개념이었다. 특정한 문제가 해결될 때마다 또 다른 문제가 모습을 드러낸다. 과학자들의 시선은 항상 미래를 향하고 있다." "일단 안개가 걷히면 과학자들은 선택적 무지를 실천한다. 특정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일부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이 같은 선택을 무지의 관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선택이 잘못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미국 철학자 존 듀이가 말한 '진정한 무지'를 실천한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무지는 겸손, 호기심, 열린 마음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아 유익하다. '예상치 못한 무지'는 연구 과정에서 일어나는 뜻하지 않은 발견을 뜻한다. 무지는 놀라움으로 이어지는데, 놀라움은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게끔 만들어 예상치 못한 새로운 지식의 창을 열어 준다."(104-5)


"무지의 주요 유형 중 하나는 알고 싶지 않은 데서 비롯된 의도적 무지다. 이는 특정 아이디어, 특히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반감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칼 포퍼가 말한 적극적 무지와도 연관된다." "이 같은 의도적인 맹목 사례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 파스퇴르의 미생물 발견, 멘델의 유전 법칙, 막스 플랑크의 양자론 등에 대한 저항이 있다. 플랑크가 '과학은 장례식을 한 번 치를 때마다 진보한다'는 쓴소리를 남긴 것은 양자론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반감에서 비롯되었다. 이 말의 뜻은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반대자들을 설득해 깨닫게 함으로써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자들이 마침내 죽고 진리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기 때문에 승리한다는 것이다. 기성세대 중에는 자신의 전문적 자본을 투자한 이론을 포기하려 들지 않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이해되지만,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107-8)


8장 지리학의 무지 


"영국의 지리학자 브라이언 할리는 지도의 '침묵'(그가 공백보다 선호한 용어) 연구에서 지도가 지리적 지식을 널리 확산시키던 시기에 일부 국가의 왕들이 자국의 자원이 다른 나라에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자국 지도를 비밀에 부친 사실에 주목했다. 16세기에 포르투갈 역시 인도, 중국, 아프리카, 브라질에 무역 기지를 세우고 제국을 건설하면서도 지도를 포함한 자국 정보는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1504년 마누엘 1세는 지도 제작자들이 콩고 너머의 서아프리카 해안을 지도에 표시하지 못하게 하고, 기존 지도까지 검열하도록 했다." "스페인 정부는 스페인 제국에 대한 지식을 철저히 통제해 항해사 수업을 담당하는 학자들은 외국인들에게 지식을 전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해야 했다. 16세기 후반 모스크바 대공국에 살던 네덜란드 상인은 그 지역의 지도를 구할 수 없었는데, 지도를 유출하는 것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비밀주의는 유럽 정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146-7)


"환경에 대한 관심은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확산되었다. 생물 다양성의 감소는 이제 대중이 주목하는 사안이다. 2014년 엘리자베스 콜버트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출간해 최근의 생물 다양성 감소를 지구 역사상 발생한 다섯 번의 대멸종 이후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보았다." "기후 변화에 대한 지식은 꽤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이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스웨덴 물리화학자 스반테 아레니우스는 1896년에 이미 지구 온난화를 예측했다(독자 여러분의 짐작대로 당시 선배 학자들은 그의 예측을 무시하고 넘어갔다). 1938년 영국 공학자 가이 캘런더는 지난 반세기 동안 온난화가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가 자연적인 주기로 일어난 게 아니라 화석 연료를 태워 생긴 온실 효과 때문이라 알고 있었다. 나쁜 소식이 대개 그렇듯 과학자들의 이 같은 발견은 (꽤 오랫동안) 거의 무시되거나 깡그리 부정당했다."(155-6)


2부 무지의 결과


9장 전쟁의 무지 


"전쟁에서 군사 작전은 다른 무엇보다 무지와 지식 간의 싸움이다. 아군의 계획을 적군이 모르게 철저히 관리하는 한편, 적군의 계획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웰링턴 공작이 입버릇처럼 말했듯이 '전쟁의 모든 기술은 언덕 저편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에 실패할 때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전쟁은 적의 움직임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전쟁에서는 양쪽 진영 모두 무지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그나마 정보를 좀 더 확보해 중대한 실수를 적게 한 쪽이 승자로 등극한다." "무지 중에서도 지휘관의 무지는 문제가 된다. 일반 병사들은 보통 자신들이 다음으로 공격하고 후퇴할 시간과 장소를 전혀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해 지식의 공백은 소문으로 채워진다. 프랑스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흐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후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참호 안에 나돌았던 가짜 뉴스를 주제로 선구적인 연구 논문을 집필했다."(160-2)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무지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회학 교수인 제임스 깁슨은 베트남전을 다룬 책에서 지식의 부재가 다양하게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공백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이유로 전쟁을 얕잡아 보거나 무시한 데  따른 공백도 있다는 것이다. '군부대는 효율성으로 평가받는데, 민간 사상자에 신경 쓰는 것은 여기에 방해만 되기 때문에 군 관료들은 ··· 민간 사상자 수를 집계하는 데 무관심했다'고 깁슨은 설명했다." "침략자들이 군사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최대 약점은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공격하는 국가의 언어, 관습, (열대 기후를 포함한) 지형에 대부분 무지하기 때문이다. 언어에 대한 무지는 미국인 대다수가 이른바 베트남의 같은 편과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 정부는 베트남의 공산주의는 물론 민족주의와 반식민주의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외부 개입이 혁명에 찬물을 끼얹기는커녕 불을 더욱 지핀다'는 정보의 속뜻은 무시했다."(173-5)


10장 비즈니스의 무지 


"비즈니스에서 특정 무지는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득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매에서는 입찰자들이 서로 얼마까지 부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알지 못할 때 판매자가 이득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거래 당사자들의 '대칭적 무지'는 거래 이윤으로 이어진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더 흔한 것은 '비대칭적 무지'다. 이와 관련해 미국 경제학자 조지 애컬로프가 제시한 '레몬 시장의 법칙'은 유명하다. 이 법칙에 따르면 중고차 시장에서는 불량 중고차(레몬)가 좋은 중고차를 몰아내는 현상이 발생한다."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는 정보를 사고파는 문제를 분석함으로써 이름을 알렸다. 애로의 역설은 자신이 구매하려는 상품에 대해 미리 알고 싶어 하는 고객의 욕구와 돈을 받기 전 정보를 완전히 누설하지 않으려는 판매자의 욕구가 상충하는 점을 지적한다.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핵심은 상대적 무지다. 모든 참가자가 어느 정도 무지하지만, 그나마 덜 무지한 참가자가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183-4)


# 레몬 시장의 법칙 : 판매자는 자신이 파는 중고차의 좋지 않은 상태를 잘 알고 있지만 밝히지 않고, 구매자는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차를 사게 된다. 이처럼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한 무지를 비대칭적 무지라 한다.


"위장 혹은 특정인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숨기는 '전략적 무지'에 의존하는 불법 비즈니스에는 알코올, 마약, 위조품 같은 금지 물품, 물품의 운송(밀수)과 판매(암시장)뿐 아니라 성매매, 청부살인 같은 불법 행위도 포함된다." "여기서 무지한 자는 세관/과세 공무원, 경찰이다. 실제로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정부 고위직을 포함해 많지만, 정확히 언제 어디서 일어나는지 아는 이들은 적다. 어떤 경우에든 무지 자체는 아니더라도 위장된 무지는 유지되어야 한다." "1958~1962년 대기근이 발생한 중국에서는 비공식 배급 시스템이 생겨나거나 훨씬 중요해졌다. 당원들은 끝도 없이 교활한 방법으로 국가를 속였고, 물물 교환과 위조 허가증 사용을 포함한 병행 경제parallel economy가 발전했다. 생산자 집단에서 배급을 더 많이 받기 위해 노동자 수를 부풀림에 따라 '죽은 영혼의 거래'도 일어났다. 이러한 시스템은 회색, 비공식, 병행(평행) 대안, 그림자 경제로 다양하게 알려져 있다."(200-2)


11장 정치의 무지 


"독재자가 국민들의 무지를 조장한다면 민주주의 세력은 불안해지게 된다.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문명화된 국가가 무지하면서도 자유로운 것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경제학자 앤서니 다운스는 자신이 수백만 유권자 중 한 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굳이 정보를 얻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합리적 무지'라는 새로운 용어로 설명했다. 하지만 2016년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한 수많은 유권자의 무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용어가 필요하다. 페미니스트 철학자 린다 알코프는 그들의 무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들의 무지는) 지식 부족으로 설명할 수 없다. 단지 지식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것에 대한 공동의 노력, 의식적인 선택, 일련의 선택에 따른 결과이다. 특정 뉴스 기사나 뉴스 소스를 회피하고, 특정 대학 과정을 멀리하며,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그날 뉴스에 대한 의견을 묻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예다.〉"(215-8)


"18세기 후반 독일어권 대학에 행정학이 개설되었다. 당시에 국가에 대한 지식을 독일어로 '통계학Statistik'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영단어 '통계학Statistics'이 유래했다. 이 같은 단어의 의미 변화는 정부가 공장과 학교, 빈곤과 위생을 조사하는 데 점점 관심이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생산된 수많은 정보는 19세기부터 막대 그래프, 그래프, 원형 차트 등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조사는 무지에 대한 지식의 승리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모든 승리가 그렇듯 이 과정에서 얻은 것만큼 잃은 것도 많았다. 정보가 지나치게 많아 다 소화하기 불가능해진 것이다." "심지어 국가 차원의 조사와 지도 작성처럼 지식의 추가가 분명한 행위도 오히려 무지를 조장할 수 있다. 특히 제임스 스콧이 '빈약한 단순화'라고 표현한 지도와 통계표를 현실로 받아들이면 때로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도와 통계는 현실을 단순화하거나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함으로써, 다양하고 복잡한 현실에 무지하게 만든다."(234-5)


12장 놀라움과 재앙 


"역사적으로 위험 징후를 무시하다가 자연재해를 입은 사례는 너무도 많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이어 발생한 뉴올리언스 홍수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재난 연구에서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대응 실패가 드러났다. 관리청은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임시 거처로 이동식 주택과 텐트를 제공했지만, 호텔에 수용하는 것은 꺼렸다. 의료 시스템은 재난에 대비하지 못했다. 허리케인이 매년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탓에 대비 부실 문제가 늘 비난의 도마 위에 올랐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대부분인 빈곤층은 가진 게 적고 홍수에 더 취약한 저지대에 살았기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이른바 무지의 사회적 분배를 드러냈다. 도시 취약 지대에 사는 빈곤층은 홍수가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안전하고 비싼 지역에 거주하는 공무원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안전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안전까지 위협해 가며 현장 지식을 무시했다."(247-8)


13장 비밀과 거짓말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문과 구두 소통은 당연히 신문보다 신뢰도가 낮은 것으로 간주되지만, 소련에서는 오랫동안 그 반대였다. 또한 소련의 지도는 정부가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거나(교회 등) 대중에게 숨기고자 하는 것(강제 수용소 등)들을 누락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었다.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던 새로운 과학 도시 나우코그라드도 지도에서 누락되었는데, 이 중 일부는 시베리아에 위치해 있었으며 강제 수용소 죄수들에 의해 건설됐다. 핵물리학자이자 반체제 인사인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1968년 소련 내부에서 쓴 글에 따르면, 소련은 여행이나 정보 교환의 자유 없이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폐쇄적인 사회였다. 사하로프와 같은 반체제 인사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은 해외에서 출판한 책이나 비밀리에 직접 손으로 만든 출판물인 사미즈다트samizdat(러시아어 '스스로'와 '출판'의 합성어)를 통해 정보를 유포하는 것이 전부였다."(270)


"정부가 대중을 무지하게 만드는 가장 극적인 사례는 대형 재난을 은폐하는 것이다. 1943년 벵골 대기근 당시 정부는 '기근'이라는 용어 사용을 금지했다. 또 다른 악명 높은 사례는 1932~1933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대기근인 홀로도모르Holodomor 사건으로, 당시와 이후 소련 정부의 입장은 기근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1989년 6월 4일 사건'이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알려진 천안문 사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규제해 6월 4일에는 인터넷에서 '오늘' 또는 '그해' 등 민감한 단어를 사용하는 게 금지되었다." "1989년 천안문 사태를 성인일 때 목격하고 이제 노인이 된 사람들은 개인적인 견해와 상관없이 일반적으로 무지를 가장한 정권에 동조하고 있다. 그들은 알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지식을 지우려고 노력한다. 프로이트식으로 표현한다면, 공식적인 억압은 비공식적인 진실 억제에 의해 강화된다."(273, 276)


"새로운 개념을 표현하는 단어조차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오래된 경우가 많다. 탈진실 시대에 관한 책은 2004년에 출판되었지만, 이 단어는 그보다 12년 전인 199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스핀 닥터spin doctor'(주로 정치인이나 공인들의 이미지를 관리하고 대중의 인식을 조작하기 위해 고용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라는 문구는 1940년대 〈뉴욕타임스〉에서 사용되었다. 가짜 뉴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프랑스어 '포스 누벨fausses nouvelles'은 영어의 '페이크 뉴스'와 같은 전통적인 표현이다. 또 하나의 전통적인 용어는 '카나르canard'(허위 보도 또는 유언비어를 뜻한다)로, 이는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가 당시 파리의 언론계를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사용했다. 노련한 기자가 신참 기자에게 '사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독자들에게 뉴스를 팔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를 우리는 카나르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 미디어는 고의적인 허위 정보뿐만 아니라 무지 또는 부주의의 결과인 오보도 퍼뜨린다."(298-9)


14장 불확실한 미래 


"불확실성은 미래에 대한 무지로 설명할 수 있다. 비즈니스, 정치, 전쟁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중요한 결정들은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에 근거해 내려졌다. 문제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예상과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결과는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물론 과거의 트렌드를 바탕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추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때의 추정은 우리가 항상 하는 행동을 체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통해 트렌드가 항상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나심 탈레브가 '블랙 스완'이라고 이름 붙인 대공황이나 베를린 장벽 붕괴와 같이 극단적인 충격을 주는 사건이 가끔 발생한다.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이 말했듯이 예측에서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예측이 얼마나 자주 틀리는가이다. 실제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확신할 수 없다는 것뿐이므로, 우리는 예상치 못한 것을 예상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302, 308-9)


"한 세기 전 미국의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는 측정이 가능한 리스크와 측정이 불가능한 불확실성을 구분했다. 나이트는 경제 행위자들의 '실질적 전지전능'을 가정하는 것을 비판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의 요소를 강조했다. 몇 년 후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불확실하며, 20년 후의 구리 가격과 이자율, 새로운 발명품의 구식화 등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문제들에 예측 가능한 확률을 도출할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 우리는 그저 모를 뿐이다〉라고 했다. 불확실성과 무지와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대한 비슷한 강조는 요제프 슘페터나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변화를 무시하는가 하면 경제 행위자들이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행동한다고 가정한 것을 비판했는데, 이는 완전경쟁(수많은 수요자와 공급자가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똑같은 품질의 상품을 주어진 가격으로 자유롭게 사고파는 상태)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전제이기 때문이다."(312)


15장 과거에 대한 무지 


"역사가들이 여전히 편향bias이라고 부르는 개념은 관점의 문제로 되돌아가게 한다. 이는 1920년대 사회학자 칼 만하임과 1980년대 페미니스트들이 논의한 것처럼, 적어도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철학자 라 모트 르 베이예는 만약 우리가 카르타고의 관점에서 기록된 자료만 가지고 있었다면 오늘날 우리의 포에니 전쟁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물었다. 카이사르가 아닌 베르킨게토릭스가 자신의 회고록을 썼다면,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은 우리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베이예는 역사가의 작업을 요리사에 비유해 '역사는 부엌의 음식처럼 취급된다. ··· 모든 국가, 종교, 종파가 동일한 날것의 사실을 취하고 ··· 자기 입맛에 따라 양념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베이예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역사서를 읽은 것은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 국가와 집단에서 말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가 특정 역사가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바로 편견prejudice 때문이었다."(321)


"장기적으로 볼 때 근본적인 의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택적 무지'의 발견, 특히 역사가 대부분 엘리트에 의해, 엘리트를 위해, 엘리트에 관한 내용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1820년대에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예멜리안 푸가초프가 이끈 농민 반란의 역사를 연구할 때, 차르 니콜라이 1세는 푸시킨에게 〈푸가초프 같은 자에게는 역사가 없다〉고 말했다." "1960년대에 에드워드 톰슨과 에릭 홉스봄이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주제로 쓴 책들은(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홉스봄의 《원초적 반란자들》) 지도자들보다는 피지배층인 일반 대중의 삶과 고통뿐만 아니라 그들의 관점에도 중점을 두었다. 아래로부터의 역사는 노동계급 남성들로 시작되었지만, 거기에는 곧 여성의 역사도 포함되게 되었다. 새로운 지식은 과거의 무지를 더욱 확실히 깨닫도록 해주었다. 노동 계급, 농민, 여성에 대한 무지뿐 아니라 최근에는 환경에 대한 무지로까지 인식이 확장되었다."(323-5)


맺으며_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무지


"이 책은 수세기에 걸쳐 새로운 지식의 부상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무지의 부상을 수반했다고 주장한다. 인류는 집단으로 볼  때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개인으로 본다면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이 알지 못한다." "요컨대 우리는 지식과 무지를 단수형이 아닌 복수형으로 생각해야 하며, 일반 지식이나 통념이 장소와 시대에 따라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리엄 솔로몬이 말했듯이 '새로운 지식은 새로운 무지를 가능케 한다.' C. S. 루이스의 말을 빌린다면 〈모든 새로운 학습으로 그에 따른 새로운 무지를 위한 공간이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는 어느 개인, 문화, 시대의 무지를 언급하기 전에 항상 두 번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모두 무지하다. 다만 무지의 대상이 다를 뿐이다.' 문제는 권력을 가진 자들은 필요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으며, 지식을 가진 자들은 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335,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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