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머니 - 화폐 이데올로기·역사·정치 전환 시리즈 1
제프리 잉햄 지음, 방현철.변제호 옮김 / 이콘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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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화폐란 무엇인가?


1장 화폐의 수수께끼 _018


우리는 화폐가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정부는 인플레이션과 환율, 국가와 개인의 부채수준을 쉼 없이 모니터링하면서 혹시나 화폐가 불안정해질까 노심초사한다. 중앙은행은 대중들로부터 화폐의 건전성과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번번이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경험과 달리 주류 경제학 이론은 역설적으로 화폐를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수리적 경제모델에서 화폐는 ‘중립적neutral’이거나 수동적인 구성요소일 뿐이다. 화폐는 ‘변수variable’가 아닌 ‘상수constant’이며, 적극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생산과 교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역할에 그친다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경제적 가치가 원료, 에너지, 노동, 기술같은 ‘실물적’ 생산요소에서 나온다고 보는데, 화폐는 이러한 가치를 측정하고 가치 사이의 교환을 가능하게 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실물적real' 분석이라 한다.) 18-9)


이와 달리 '화폐적monetary' 분석이라고 불리는 주장은 현실의 비즈니스 세계에서 팽배한 화폐관을 따르고 있다(Hodgson, 2015). 여기서는 화폐를 화폐자본, 즉 독립적으로 역동성을 가진 경제력으로 본다. 화폐 그 자체는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 그러나 투자, 생산, 소비에 필요한 화폐가 미리 존재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의 바퀴는 돌아갈 수 없고 생산을 해도 소비될 수 없었을 것이다(Smithin, 1918). 고전학파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실물경제는 실제로 화폐가 상품의 교환을 위한 매개물 역할만을 담당하는 순수한 교환경제거나 비현실적인 시장경제 모델에 불과하다. 즉, 상품-화폐-상품C-M-C의 흐름을 가정한 것이다. 여기서 화폐는 개개인이 상품에서 얻는 만족을 의미하는 효용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현실 세계’에서 화폐는 생산에 필요한 자본과 임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의 결정체다. 즉, 화폐(자본)-상품-화폐(이익)의 흐름M-C-M을 상정해야 한다. 14-5)


2장 양립 불가능: 상품이론과 신용이론 _038


19세기 후반까지 화폐의 중립성과 실물경제 개념을 기반으로 한 상품교환이론은 정설로 자리 잡았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정치경제학의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1871)》에서 화폐의 존재는 “어떤 가치법칙의 작동도 방해하지 않는다”라고 했다(Ingham, 2004, 19). 또한 화폐는 화폐가 없었을 때 우리가 했던 일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이 이론에서 가치는 생산요소의 효용이나 기여에서 나오는 것이지 화폐의 사용과는 무관하다고 본다. 화폐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실물적 가치들을 나타내는 데 사용될 뿐이다. 실물적 가치는 실물적 생산요소들이 상대적 기여나 효용을 나타내는 비율에 따라 상호 교환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자본’은 기계, 토지, 건물, 유형자산 등이 생산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착안된 개념이다. 근대 주류 경제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자본을 계속적 이윤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생산요소들의 ‘저량stock’이라고 보았다. 25)


고전학파의 정통 화폐이론과 결별한 케인스가 쓴 《화폐론(1930)》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채무, 가격 그리고 일반 구매력을 표시하는 계산화폐는 화폐이론에서 으뜸 개념이다”. 케인스는 화폐와 교환 매개물을 구분하는 작업을 계속 이어왔다. 계산화폐는 실제 채무를 청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화폐money proper’의 범위를 확정한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화폐는 계산화폐와 같은 단위로 표시되어 있으므로 채무를 청산할 수 있게 된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화폐는 “현장에서 교환 편의를 위해 매개물로 쓰이는 것과 구별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아무리 화폐와 비슷하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아직 물물교환 단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화폐는 용어의 본래 의미상으로, 화폐단위와 관계를 맺어야만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즉, 케인스는 화폐는 교환 가능한 상품이 아니라 화폐의 ‘서술description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명목주의적 화폐관을 제시한 것이다. 30)


상품이론에서 주장하는 것과 달리, 명목가치(계산화폐)는 교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공동체의 권위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다(Keynes, 1930, 3). 화폐가치가 의도적으로 부여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반대론은 화폐가치에 대한 두 가지 오해에 기반하고 있다. 첫번째는 화폐가 교환 매개물로 사용되기 위해 내재가치를 가져야만 한다는 억측에서 발생한 것이다. 멩거가 지적한 쓸모없는 원판과 종이의 문제처럼 말이다. 두번째는 화폐가 실물경제에서 물질적 요소에 의해 생산된, 이미 존재하는 가치를 측정하고 대변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쓸모없는 원판과 종이는 명목적이지만 미래의 가치를 지닌 것이며, 명목적이면서 미래의 신용을 가진 자와 재화의 소유자가 이러한 가치를 가지고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가치인 가격이 형성된다. 즉, ‘구매력’은 화폐에 ‘내재된’ 것이 아니며, ‘상품과 신용을 교환하는 판매와 구매가 이루어지는’ 사회 및 경제적 관계 속에서 생기는 것이다. 31)


국정이론은 상품교환이론으로 제대로 설명되지 못했던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국가는 명목적 계산단위를 창출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권위자였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서 화폐가 변동하는 다수의 교환비율을 가진 상품과 구별될 수 있었다. 둘째, 국가를 등장시키자 화폐의 수용성은 높이 신뢰할 만한 근거를 가질 수 있었다. 국가가 화폐를 사용함으로써 화폐를 창출하고 세금으로 화폐를 환수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 것이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던 멩거의 동어반복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화폐가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은 발행자가 자신에 대한 채무를 상환하는 데 그 화폐를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발행자의 그러한 약속을 통해 비인격적 신뢰와 잊어서는 안 될 요소로서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형성되면서, 신뢰의 부담은 거래당사자로부터 발행자로 이전된다. 37)


결국 화폐이론들의 양립 불가능성은 그 이론들이 암묵적으로 바탕을 두고 있는 상이한 사회이론과 사회‘상’에서 나온 것이다. 스미스의 해석을 따르는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에서는 사회질서가 개인들의 사익추구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다고 본다. 유사한 사회관을 가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는 국가의 화폐 독점을 대신하여 합리적 개인이 가장 안정된 화폐를 선택할 수 있도록 무수한 자유경쟁 화폐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교환가치의 급변동으로 화폐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이 확산되면서 그의 가설은 심판대에 올랐고 부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화폐 거래를 신용-채무관계로 파악하는 신용이론은 화폐에 대한 신뢰가 사회질서를 공고하게 하는 관습과 믿음에서 유발된 것이라고 본다. 반면, 국정이론은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회피하기 위해 ‘레비아탄Leviathan’의 강제력에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을 생각나게 한다. 39)


3장 화폐 및 화폐제도에 대한 사회이론 _072


전형적인 화폐거래의 세 가지 형태인 후불, 선불payment in advance 그리고 ‘맞돈’거래payment on the spot는 모두 채무계약이다. 즉각적으로 현금을 지불하는 맞돈거래조차 초단기의 채무를 청산하는 것이다(Hicks, 1989, 41). 화폐거래의 본질적 요소는 무엇과의 교환으로 다른 것을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구매나 차입으로 발생한 채무를 청산하는 것이다. 이단의 경제학자인 하이먼 민스키Hyman Minsky는 누구나 화폐를 발행할 수 있으나 그것이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것이 문제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Minsky, 2008 [1986]). 그는 화폐는 ‘신용’, 즉 채무증서라는 점을 강조했다. 누구나 신용을 발행할 수 있으나 그것이 화폐로서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더라면 더 정확했을 것이다. 모든 화폐는 신용이지만, 모든 신용이 화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폐시스템과 화폐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관계와 제도는 신용을 화폐, 즉 보편적 수용성을 가진 최종적인 지급수단으로 변모시킨다. 42)


화폐를 사회적 표상으로 보면, 화폐는 우리를 지배하는 힘을 갖게 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의 가치를 매기는 데 화폐를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필요한 재화를 구입하고 보다 많은 화폐를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 합법적인 가치의 저장소인 화폐에 집착하게 된다. 경제학에서는 실물경제에서 물건의 유용성으로부터 가치의 근원을 찾으려고 하지만, 사회학에서 경제적 가치는 화폐에 투영된 객관적인 사회적 관념이라고 주장한다. 즉,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은 가치가 경제적 가치라는 것이다. 화폐는 양도 가능한 신뢰다. 극도로 불확실한 현실 세계에서도 사회적, 정치적 정당성에 근거한 자기충족적이고 장기적인 신뢰는 존재한다. 이렇게 되면 신뢰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이방인도 복잡다단한 관계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역사적으로 이것이 바로 국가의 임무였다. 요약하면, 화폐는 결국 화폐가 만들어진 그 사회시스템의 생명력viability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45-6)


채권자와 화폐적 부를 보유한 자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자신의 부와 채권의 가치하락을 막기 위해 화폐공급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요구했다. 역사적으로 그들은 가치가 고정된 금속본위제 형태의 ‘경화hard money’, 정부지출에 대한 엄격한 통제 그리고 높은 이자율을 선호했다. 반면, 생산자와 소비자는 채무자인 경우가 많아 ‘유연’하고 느슨한 화폐통제를 선호했다. 인플레이션은 그들이 부담하는 채무의 실질가치를 낮추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방식의 통제를 선호했던 것이다. 여기서 화폐를 창출할 수 있는 주권을 가진 자는 채무를 회피할 힘을 가지게 된다. 중세 지주나 국채 매수자 같은 채권자들은 국가지출은 수입에 의해 조달되어야 하며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화폐조작을 통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화폐는 경제, 사회 및 정치적 권력 사이의 다툼의 대상이었으며, 그 투쟁의 결과로 화폐의 창출방법 및 규모가 어떻게 결정될지는 불확실하기 마련이다. 52)


2부 자본주의와 화폐


4장 자본주의 화폐의 진화 _104


현대 자본주의에서 화폐창출은 국가, 채권자와 납세자가 적대적 상호 의존 관계를 가지게 된 기념비적 동맹에서 유래한 재정준칙fiscal norms에 따라 이루어진다. 국가는 이제 자본가와 납세자 모두에게 의존하고 있다. 국가가 지속적인 차입을 위해서는 이자지급을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의 조세수입이 있어야만 했다. 18세기에 효율적인 관료적 징세체계는 영국의 ‘힘의 근원sinews of power’이었다(Brewer, 1989). 하지만 세금은 인기가 없었다. 채권자들은 국가의 채무불이행이나 국가의 과다지출로 유발된 인플레이션에 따른 투자가치의 하락을 걱정해야 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국가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이러한 요구들에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은행권과 금속통화는 상호 보완적이었다. 금속주화만 사용하는 것은 국가지출과 경제확장을 제약한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었지만, 귀금속 본위가 없었다면 그 화폐에 대한 청구권인 은행권에 대한 신뢰도 약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63-4)


20세기 초반에 이르자, 환어음과 지폐를 금으로 상환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점점 뚜렷해졌다. 실제로 금속본위제는 지폐가 태환을 위해 제시되지 않은 채로 계속 유통되어야만 지속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은 국제적 차원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났다. 국제 무역거래에서는 런던의 상인은행merchant bank이 발행한 신용 성격의 환어음과 지폐를 가지고 지불이 이루어졌다(de Cecco, 1974).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자본주의의 국제적 팽창에 따라 급증한 지불수요를 따라잡기에 충분한 금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더욱이 금본위제가 가진 화폐공급을 제한하는 ‘황금족쇄golden fetters’를 정부가 그대로 유지했다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혼란과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실시된 정부지출 확대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Eichengreen, 1995). 케인스의 시각에서 이 같은 금본위제라는 ‘야만적 유산’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했을 것이다(Keynes, 1971 [1923]. 172). 65)


케인스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정부지출이 만들어낸 ‘유효수요’가 생산, 고용 및 소비의 선순환을 가져온다고 주장하면서 화폐의 효능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디어는 영국과 미국의 화폐창출과 통제에 영향을 미친 두 가지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첫째, 경제 전체를 마치 하나의 기업을 대하듯 관리하는 기법이 발전했다. 케인스의 이론을 기반으로 정부가 원재료, 노동비용 그리고 무엇보다 화폐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정부는 단편적인 위기대응에서 벗어나 보다 선제적인 경제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으로 복지와 고용을 보장하는 정부지출의 필요성이 부각되자,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던 정치적, 경제적 힘의 균형이 깨지게 되었다. 많은 인구가 전투원이나 폭격대상으로 전투에 직접 참여하면서, 20세기 초반 머뭇거리며 추진되었던 사회민주주의 정책들이 강한 추동력을 얻게 된 것이다. 67)


완전고용과 사회복지 추구를 위해서 정부는 두 가지 화폐적 요인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자율과 환율이다. 이자율은 투자와 고용수준에 영향을 미치고, 환율은 수입원자재와 수출품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며 결과적으로 고용으로 그 효과가 이어진다. 자본의 국제이동에 대한 통제는 국가 사이의 이자율과 인플레이션 전망의 변화와 차이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통화에 대한 투기거래를 금지하는 것이다. 자본통제로 인해 외환의 매수는 국제무역에서 교환 및 지불을 목적으로만 허용된다. 케인스의 말마따나 ‘중개물에 불과한’ 화폐가 되는 것이다(Keynes, 1971 [1923], 124). 국가는 전쟁 중에 은행으로부터 빼앗은 화폐통제력을 조금 더 가지고 있으면서 민간화폐와의 힘의 균형을 자기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재개되면 반드시 세계적 자본가인 은행과 기업이 힘을 되찾게 될 것이므로, 이는 지속할 수 없음이 분명했다. 68-9)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 1950년대 평화시대의 완전고용에 대한 ‘상대적 만족감’은 ‘상대적 박탈감’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노동자들은 자기 계급이 처했던 과거의 빈곤이 중단된 것에 만족하기보다 자신들을 다른 계급과 비교하며 더 나아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고 대량소비 자본주의가 재개됨에 따라 노동자 계급이 ‘풍요한’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영국의 전통적 사회질서는 급속히 붕괴되었다. 할부구매가 도입되고 소비자 대출에 대한 제한이 철폐되자 ‘과시적 소비’에 기반한 새로운 신분질서가 나타났다. 3장에서 살펴보았듯이, 과점이 확산되면서 기업들은 임금인상 요구를 기꺼이 수용하고 소비자에게 높은 가격을 부과함으로써 비용증가분을 쉽게 전가할 수 있었다. 임금-물가의 악순환이 작동된 것이다. 기업들과 노동자들 모두 자신들의 가격을 올렸고, 그것은 은행시스템의 대출로 창출된 화폐로 조달되었다. 71)


1970년대 국내 인플레이션 위기는 전후 서구 자본주의 경제에서 케인스학파가 지배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서 또 다른 정치적 협약이 무너진 것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다. 이는 브래튼 우즈 체제의 붕괴였다. 전후 세계 경제의 성장이 가속화되자, 자본이동과 외환거래를 통제하는 것이 점차 힘들어졌다. 수입품에 대한 외화지불을 허가하기 위해 무역송장을 일일이 확인하고 대조하는 작업은 너무 수고스러웠다. 또한 다국적 기업과 글로벌 은행이 동시에 세력을 다시 확대하면서 자본이동에 대한 모니터링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이동의 최대 원천과 브래튼우즈체제의 최대 위협은 바로 그것들을 존재하게 했던 달러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흘러 들어갔던 곳에 엄청난 달러가 쌓이게 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러한 국외달러의 존재로 인해 브래튼우즈체제에 필적할 만한 비공식적인 평행적 화폐시장과 자본시장이 형성되었다. 72)


화폐창출과 관리에 있어서 힘의 균형이 국가에서 민간자본 쪽으로 기울어지는 급격한 변화도 있었다. 국제통화시장에서 국제무역과 투기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외환매매가 다시 한번 환율을 결정하게 되었다. 국가가 자기 채무의 자금조달을 위해 외국자본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얻게 되는 이익은 환율과 이자율에 대한 통제를 잃은 것에 대한 대가였다. 그 결과, 케인스가 예상한 대로 국내정책과 사회정책은 제약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변화된 상황에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환율이나 금리를 조정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트릴레마’의 난제에 빠지게 되었다. 다음 세 가지를 모두 동시에 달성할 수 없게 된 것이다. ① 고정 또는 안정적 국내통화의 환율, ② 국내 금리통제에 대한 중앙은행의 자율성 그리고 ③ 외환시장 자유화, 즉 국제자본이동의 자유화다. 변동환율제도floating exchange rate에서는 금리와 환율을 모두 통제할 수 없고, 그중 어느 하나만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72-3)


5장 현대화폐Ⅰ: 국가, 중앙은행 그리고 은행시스템 _141


대부분의 중앙은행은 화폐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벤치마크금리를 조정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이 통상 2-4% 정도의 목표수준에서 유지되도록 관리한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는 화폐공급 수준은 많은 지지를 받은 ‘새로운 거시경제 합의’모델에 따라 계산될 수 있다. 여기서 화폐는 실물경제를 전반적으로 조율하는 중립적 도구일 뿐이다. 실물경제는 고용, 이자율, 인플레이션 등의 변수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 변수들은 경제균형의 성립에 기여한 정도가 객관적으로 반영된 어떤 ‘자연적’ 수준을 가지는 것으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이 모델은 낮은 수준에서 안정된 인플레이션과 병존할 수 있는 실업률 수준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지 않는 실업률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 NAIRU’을 결정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요약하면, 이 모델은 적정 화폐공급량은 경제과학에 의해 객관적으로 산출될 수 있으므로 정치무대로부터 구제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81-2)


은행시스템은 복잡한 채무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어, 참여 은행 중 하나라도 파산하는 경우에는 대차대조표의 양호한 정도에 상관없이 모든 은행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게 된다. 금융위기의 여파에 직면한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위험에 처했지만, 지급능력을 보유한 은행에 대해 최종대부자에서 더 나아가 ‘최종딜러dealer of last resort’의 역할도 수행하게 되었다(Mehrling, 2011).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모든 화폐시장과 증권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자산들을 떠안았다. 이는 국채시장의 지속성을 보장한 것일 뿐 아니라 동시에 거의 모든 금융시장에서 모든 민간기업을 구제한 것이었다. 중앙은행은 위기대응을 위해 대출을 통해 공적기능을 수행한 것이지만, 이는 현행 화폐금융 시스템에서 민간소유의 자본주의 은행에 대한 구제를 동반한 것이기도 했다. 연방준비제도의 조치는 대부분의 미국 금융자본에 대해 시장규율의 적용을 면제하는 것이므로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83)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시행된 양적 완화가 일반적인 통화정책과 다른 점은 오직 그 규모가 컸다는 점뿐이다. 화폐창출 방법은 기존 절차를 그대로 준수했다. 언론은 이를 두고 “돈을 찍어냈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양적완화는 (정부) 재무부, 중앙은행과 은행시스템의 세 기관들이 각자의 자산을 가지고 상호작용한 것으로서 간접적이긴 하나 전통적인 화폐창출 방법이었다. 재무부는 중앙은행을 통해 은행 및 금융시스템에 국채를 발행, 매도했다. 나중에 이 국채는 중앙은행이 다시 매입했는데, 여기서 중앙은행은 키보드 작동을 통해 전자적으로 생성한 화폐를 지급했다. 이러한 중앙은행의 국채매입의 대가는 은행의 지급준비금에 추가되었고, 이는 은행의 화폐수요 증가로 초래될 수 있는 금리상승 가능성을 차단했던 것이다. 은행들은 새로운 화폐에 접근할 기회를 가졌고, 중앙은행으로부터 아주 낮은 금리로 차입할 수 있게 되면서 예금확보를 위해 금리를 높일 필요가 없어졌다. 84)


유로존을 제외한 대부분의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화폐창출은 두 개의 삼각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첫번째는 한 나라의 재무부, 중앙은행과 규제를 받는 은행 프랜차이즈 사이에 제도적으로 맺어진 관계다. 이러한 제도에는 헌법에서 규정한 관계, 관례와 회계규칙이 포함된다. 이들은 자신의 차입자들이 자신에게 지고 있는 채무의 형태로 화폐를 생산한다. 이러한 관계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협약은 정부가 주권을 활용해 자신의 지출에 필요한 자금을 직접 화폐를 발행해 조달(부채의 화폐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화폐창출 과정에서 민간자본은 국가의 화폐주권과 타협하면서 계속 주도권과 수익성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메커니즘과 관례는 두번째 삼각관계에서 주요 라이벌 사이의 오랜 투쟁과 묵시적 합의를 거쳐 형성되었다. 그 삼각관계는 지출을 하는 국가, 그 국가가 발행한 국채를 매입하는 채권자 그리고 정부지출과 국채 이자지급을 위한 수입의 징수대상인 납세자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 90)


이러한 복잡하고 모순된 투쟁은 현대 민주주의 정치의 큰 특징이 되었다. 한편으로 국가 채권자는 국채매입으로 이익을 거두긴 하지만, 동시에 국가부채가 늘어날수록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높여 그들의 투자위험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가 채권자는 정부부채의 급격한 감소가 투자기회의 안전성과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상반된 감정을 갖게 될 것이다. 1990년대 클린턴 대통령이 미국 정부의 부채를 상환할 계획을 내비치자, 연방준비제도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안전한 투자기회의 감소를 우려하는 금융시장을 달래야만 했다. 정부가 부채상환을 위해 세금을 올린다면 유권자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특히 더 큰 이해관계가 걸린 부유한 채권자 계급의 극심한 반발을 겪게 될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금융시스템의 긴급구제로 급증한 정부채무를 제한하기 위해 증세보다는 사회복지 지출과 공공서비스를 ‘감축austerity’하는 방안이 채택되었다. 90-1)


6장 현대화폐Ⅱ: 준화폐, 보조화폐, 대체화폐, 대용화폐 그리고 가상화폐 _169


자본주의의 민사적 재산법과 계약법은 금융네트워크에서 구성원들이 상호 간에 지급수단으로 사용하기로 합의한 사적인 차용증서가 계속 사용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준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실제로 대부분의 현대화폐는 은행시스템과 중앙은행이 민관합작으로 만들어낸다. 이렇게 해서 사적계약에 의한 채무가 공공화폐로 전환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모든 은행화폐는 발행 당시에는 ‘사적’화폐다. 교과서에서는 종종 이를 ‘내부화폐inside money’라고 부른다. 이를 ‘외부화폐outside money’라고 불리는 국가의 지폐와 주화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소개하고 있다. 주권화폐 및 규제를 받는 은행시스템의 프랜차이즈화 된 화폐로 이루어진 화폐적 공간 밖에서는, 사적으로 발행된 지불약속이나 차용증서가 금융네트워크에서 지급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업어음’ ‘예금증서’ ‘환어음’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준화폐는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오늘날 자본주의 화폐 및 금융시장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 92-3)


지역의 보조화폐는 대개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이는 화폐가 제한된 범위의 네트워크에서만 교환 매개물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경제적 거래의 지속과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행된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비국가적 보조화폐는 전간기의 대공황 기간 동안 유럽과 미국에서 최초로 광범위하게 출현했다. 1931년에서 1935년까지 미국에서는 지역상점에서 재화구입에 사용할 수 있는 수백 종의 지역통화가 여러 단체에 의해 실험적으로 발행되었다. 대부분은 얼마 안 가서 사용이 중단되었고, 경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지방자치단체인 시 정부들이 발행한 ‘세금 선납증서tax anticipation scrip’는 1940년대 초반까지 일부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시 정부들이 근로자들에게 임금으로 지불하거나, 공공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자금으로 사용하고 나중에 사람들이 지방세를 납부하는 경우에 달러 대신 받아주기로 했던 것이다(Gatch, 2012). 95)


가상화폐Crypto-Currency는 명시적으로 국가화폐의 대안으로서 만들어졌다. 비트코인이 전통적인 화폐에 비해 우수한 점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암호로 짜인 공급의 유한성은 금의 자연적 희소성에 비견된다. 이는 국가의 명목화폐와 은행예금이 무한대로 공급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신용 버블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점이 비트코인뿐 아니라 급상승하는 가격과 투기에 편승하여 수없이 만들어진 ‘알트코인’의 타고난 숙명이었다. 둘째, 비트코인은 암호화 방식의 보안 때문에 주류 은행화폐와 전통적인 통화보다 안전하다. 하지만 해킹으로 인한 가상화폐 거래소의 몰락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확인해주었다. 셋째, 가상화폐는 소유자를 암호화하여 처리하기 때문에 국가가 발행한 현금과 마찬가지로 익명성을 가진다. 전통적인 인터넷 뱅킹에서 예금주의 실명이 기재된 예금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다크웹dark web’ 같은 범죄네트워크에서 불법 거래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98-9)


정보기술이 어떻게 돈과 사회를 변화시켜 우리를 현대국가의 중앙집권적인 지배로부터 구출할 것인지에 관한 거대담론이 존재한다. 폭넓은 정치적 스펙트럼의 극단에 위치한 주장들은 공통적으로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인터넷과 정보기술로 인해 비국가적 화폐가 번성할 것이라는 주장이 ‘시장’을 사회의 기본단위로 보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시장이 없었다면 효용 극대화에 매진하는 개인들은 ‘분리된’ 채 존재했을 것이다(Orléan, 2014a). 다른 한 쪽에서는 같은 정보기술을 활용한 지역 보조화폐가 모든 공동체로 하여금 실업과 경제적 궁핍에 대응할 수 있는 재능을 마음껏 펼치도록 함으로써 잠재된 ‘사회적 자본’과 연대를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더 나아가 세계에 대한 지역의 승리, 국가에 대한 공동체의 승리 그리고 독점 자본에 대한 협동조합의 승리를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역사에서는 ‘시장’화폐와 ‘공동체’ 화폐 모두가 한계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


화폐의 시장이론은 안정적 화폐가 무수한 경쟁 화폐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상화폐의 교환가치 간 경쟁이 증가하면서 오히려 시장이 해소해야 할 버블과 불안정성은 확대되고 있다. 지역화폐가 공동체의 신뢰와 경제적 활동을 촉진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생존력이 높은 주류화폐의 ‘보완재’ 이상이 된다거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할 근거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 두 견해 모두 화폐를 중앙집권적인 국가와 독립되어 각자의 ‘이상적’ 사회질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둘 다 화폐를 단지 경제교환에서 발생한 실물가치와 공동체의 결속에 내재된 실물적 사회의 힘을 나타내는 표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독점적 강제력을 보유하고 국가의 사회적 폭력이 점차 소멸되는 것은 대규모 사회와 지속가능한 화폐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요소다. 나아가 이러한 시각은 화폐가 단순한 교환 매개물이나 지급수단 이상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100-1)


7장 2008년 금융위기와 화폐의 문제 _188


1970년대 각국 정부가 케인스 처방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이자, 총수요는 소비자 대출로 조달되었다. 이를 ‘민영화된 케인스 처방privatized Keynesianism’이라고 부른다(Crouch, 2009). 정부는 ‘재산 소유 민주주의property-owning democracy’ 시대를 열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이는 호황과 불황의 순환구조를 만들어냈지만, 결국에는 2007년 서브프라임 위기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Ingham, 2011). 주기적인 경제불안은 금융자산 시장에서도 계속되었으며, 결국 투기적 ‘버블’은 터져버리고 말았다. 두 가지 의문이 여러 사람들로부터 제기되었다. 첫째, 위기에 기름을 붓는 은행시스템의 화폐창출 능력은 보다 엄격히 통제되거나 나아가 제거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둘째, 비선출 중앙은행의 화폐창출 권한은 보다 무거운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것일까? 두 가지 의문 모두 화폐창출, 통제 그리고 관리가 현대 민주주의 체제 내 어디에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103)


양적완화 시행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화폐의 ‘중립성’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커졌다. 양적완화의 목표 중 하나에 달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5장 참조). 금리인하 압력을 유지하기 위해 은행 준비금을 늘려주었던 조치는 정부의 채무부담을 완화했지만, 생산을 위한 투자와 고용을 자극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양적완화는 의도하지 않게 불평등을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중앙은행이 은행으로부터 국채를 재매입하기 위해 창출한 화폐는 국채의 수요를 증대시켜 국채가격을 끌어올리고 말았다. 국채 소지자들은 국채가격 상승으로 재산이 증가했고, 낮은 은행예금 금리를 피해 다른 자산에 투자를 확대했다. 결과적으로 주식시장에서 붐이 발생하고, 주택, 고급 승용차, 와인과 미술품 가격이 급등하고, 가상화폐 같은 위험자산 시장이 번성하게 되었다.  자본가들이 기피하는 생산적인 투자지출을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고 했던 케인스의 주장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107)


베버는 자원의 객관적 가치를 효과적으로 평가하는 도구로서 화폐는 ‘경제적 생존투쟁’에 관한 규칙을 만드는 사회적 구조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역사에서 발견했다. 그에 따르면 화폐를 인플레이션을 회피할 수 있을 수준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경쟁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동등한 이해관계자 사이의 힘의 균형이 필요하다. 20세기 후반 자본주의 국가에 집중된 권력으로 인해 조직화된 노동과 독점자본은 과도한 요구를 했고, 이는 ‘임금과 가격’의 연쇄적 상승을 초래했다. 브래튼우즈체제가 종식된 이후, 국제 자본시장과 외환시장에서의 투기는 가격의 급등락과 불안정을 초래했다. 하지만 이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정부의 과도한 지출 조짐에 민감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정부를 침착하게 만든’ 측면도 있다. 그의 분석을 기존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권한과 부의 불공평한 분배에 대한 면죄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자본주의 통화시스템이 가진 결점을 치유하기 위한 제안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112-3)


8장 결론 _211


두 종류의 경제분석과 그 각각의 화폐이론 뒤에는 자본주의 지배구조에 관한 뜨거운 격론이 자리하고 있다. 한편으로 주류 경제학은 화폐공급은 경제의 장기적인 생산능력을 초과할 수도, 초과해서도 안 된다고 믿었다. 기술이나 노동 같은 실물 생산요소만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므로, 화폐를 푼다고 생산요소의 투입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화폐가 이러한 실물요소에 앞서 팽창한다면 반드시 인플레이션이 뒤따를 것이라고 보았다. 반면, 광의의 케인스 학파와 이단적 전통을 따르는 경제학자들은 화폐를 가지고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 않으면서도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화폐를 ‘양적으로’ 투입할 것이 아니라 쓰임새 있게 써야할 것이다. 또 민간기업이 실물경제에서 얻을 수 있는 노동력과 자원을 모두 사용할 수 없는 경우라면, 정부가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지출을 늘려야 한다. 115)


화폐를 자연세계나 적어도 사회영역 밖으로 몰아내려는 지칠 줄 모르는 이데올로기적 시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화폐가 처음 사용된 이래로 화폐는 생산의 ‘힘’으로서 경제활동을 자극하는 사회적 기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화폐공급의 급격한 증가,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정부지출에 필요한 자금조달의 급격한 증가가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완만한 인플레이션이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변하는 것은 십중팔구 정치적 불안과 정당성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구매력에 대한 신뢰를 짓밟고 만다. 문제의 핵심은 화폐의 창출과 지출이 사회가 필요한 유효수요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지 여부다. 이 유효수요의 수준은 모든 현존 자원을 사용하고 새로운 생산을 유도하기 위해 필요한 정도다. 이를 달성하려면 우선 모델의 예측성을 높일 수 있는 제대로 된 경제이론과 화폐관념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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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소명으로서의 정치 정치+철학 총서 3
막스 베버 지음, 박상훈 옮김, 최장집 해제 / 후마니타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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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9

1장. 국가 11

1. 정치란 무엇인가 11

과거든 현재든 정치적 결사체들이 다루지 않는 업무란 거의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즉, 정치적 결사체들(오늘날의 표현으로는 국가이지만, 역사적으로 근대국가 이전의 조직체들까지 포함해)만이 언제나 늘 배타적으로 수행하는 고유 업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다른 모든 정치적 결사체와 마찬가지로 근대국가란, 국가만이 하는 고유 업무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만이 가진 특수한 수단을 준거로 정의될 수밖에 없는데, 그 수단이란 곧 물리적 폭력/강권력Gewaltsamkeit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정치’란 국가들 사이에서든 국가 내 집단들 사이에서든, 권력에 관여하고자 하는 분투노력 또는 권력 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분투노력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권력을 추구한다. 그가 추구하는 권력은 다른 어떤 목적(이상적일 수도 있고 혹은 이기적일 수도 있는)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고 아니면 ‘권력 그 자체를 위한 것’um ihrer selbst willen일 수도 있다. 7-8)

# 베버가 말하는 ‘사회학적 관점’이란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당시 국가에 대한 논의는 매우 강한 규범성을 가진 법학에서 주로 다루어졌는데, 그와는 달리 베버는 국가 현상을 실제 있는 그대로의 사회적 행위로 보았고 그것이 갖는 의미와 과정, 결과에 주목했다. 따라서 베버가 국가, 지배, 복종, 권력, 폭력, 데마고그, 카리스마 등의 개념을 사용할 때 대부분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정치적 실재를 가리키기 위한 것이지 좋고 나쁨의 규범적 판단을 전제한 것이 아니다.

2. 권위: 지배의 정당화 15

원론적으로 보면, 어떤 지배자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근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성화된 관습geheiligten Sitte의 권위다. 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역사를 가로지르는 영속적 존재’ewig Gestrigen로 받아들여지는 권위를 뜻한다. 다음으로 비범한 개인의 천부적 자질Gnadengabe, 즉 카리스마Charisma에 의거한 권위를 들 수 있다. 이는 신의 계시나 영웅주의 혹은 그가 가진 특출한 지도력을 근거로 사람들이 한 개인 지도자에게 완전한 헌신과 신뢰를 보내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합법성’Legalität에 의거한 지배가 있다. 이는 제정된 법규의 타당성에 대한 신뢰,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부여된 객관적 ‘권한’Kompetenz, 그리고 법규가 규정하고 있는 의무를 기꺼이 수행한다는 신념에 따른 것으로, 근대적 ‘공무원’Staatdiener을 비롯해 그와 유사한 형태로 권력을 갖게 된 사람들에 의해 행사되는 지배 형태를 가리킨다. 정치에 대한 가장 높은 차원의 표현인 소명Beruf이라는 개념은 바로 '카리스마'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9-10)

3. 행정: 지배의 조직화 19

어떤 경우이든 [지배의 관철을 위해서는] 행정Verwaltung의 지속적 역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정당한 권력을 갖게 된 통치권자에게 복종의 의무를 지닌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둘째, 필요한 경우 통치자는 물리적 폭력/강권력 행사에 수반되는 인적・물질적 재화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신분제적으로’ 조직된 정치 결사체에서 군주는 자립적 기반을 가진 ‘귀족’Aristokratie의 도움으로 통치하며, 따라서 귀족과 지배를 공유한다. 반면 행정 수단을 직접 통제하는 유형의 통치자는 가내 예속인들 아니면 평민들을 활용하는데, 이들은 무산 계층이며 아무런 사회적 명예도 없다. 이들은 물질적으로도 완전히 통치자에게 예속되어 있으며 어떤 독자적 권력 기반도 없다. 이 유형에는 모든 형태의 가부장적이고 가산제적인 지배와 술탄적 전제정sultanistischer Despotie, 그리고 [근대의] 국가 관료제가 속한다. 고도로 합리화된 형태를 가진 근대국가의 관료제가 특히나 이 유형에 잘 맞는다. 10, 12)

4. 직업으로서의 정치 24

정치를 자신의 직업으로 삼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그 하나는 정치를 ‘위해’für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에 ‘의해’von [혹은 정치에 의존해]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방식이 결코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정신적인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대개의 경우 물질적인 관심 때문에 일을 한다. 정치를 ‘위해’ 사는 사람도 내적인innerlich 의미에서는 ‘정치에 의존하는 삶’sein Leben daraus을 산다. 그는 자기가 행사하는 권력을 소유하는 것 자체를 즐기거나 아니면 ‘어떤 대의’에 대한 헌신을 통해 자신의 삶에 의미Sinn를 부여함으로써 내적 균형과 자긍심을 함양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적 의미에서 볼 때 대의를 위해 사는 진지한 사람은 곧 이 대의에 ‘의존해’ 산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를 ‘위해’ 산다는 것과 정치에 ‘의존해’ 산다는 것 사이의 구별은 다른 것이 아닌 경제적 측면에 관계된 문제다. 누군가 정치를 ‘위해’ 살 수 있으려면, 일견 사소해 보이는 경제적 조건을 갖춰야 한다. 15)

(경제적 의미에서) 정치에 의존해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적으로 정치를 위해 사는 사람들에 의해 국가나 정당이 운영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정치 지도층이 ‘금권정치적으로’plutokratische 충원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적 재산이 없는 정치가가 정치를 통해 자신의 경제적 생계 확보만을 염두에 두고 있을 뿐 ‘대의’에는 전혀 혹은 주된 관심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산가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기 생활의 경제적 ‘안정성’을 그의 인생 설계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을 안다. 거꾸로 재산이 없고 따라서 기존의 경제체제의 존속을 바라지 않는 집단에 속하는 계층이야말로 ― 물론 이 계층만 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 가장 철저하고 절대적인 정치적 이상주의의 주창자들일 수 있다. 비정상적인 시기, 즉 혁명적 시기에 특히 그러하다. 따라서 재산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정치적 지도층의 길을 열어 주고자 한다면 이들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 16)

5. 직업으로서의 관료 34

근대적 관료층은 장기간의 예비교육을 통해 전문적 훈련을 받은 고급 정신노동자로 발전했다. 이들은 정직성과 청렴성을 강조하는 직업 의식 내지 신분적 명예심ständischen Ehre을 가진 신흥 계급이다. [공무원이라는] 직업 정신이나 신분적 명예심이 없었더라면 필연적으로 이들은 엄청난 부패와 저속한 속물근성의 지배를 받았을 것이다. 그간 국가의 경제적 역할이 지속적으로 증대해 왔고, (특히 사회주의의 흥기와 더불어) 앞으로도 계속 증대할 것임을 고려하면 국가 관료의 부패와 속물근성은 국가 자체의 작동을 멈추게 할 정도로 위험하다. 종신직 직업 공무원이 없었던 미국의 경우 과거에는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수십만 명의 관리들을 갈아치우는 약탈 정치가들의 아마추어 행정이 지배했다. 그러나 이런 아마추어 행정은 (1883년의) 공무원 제도 개혁에 의해 이미 오래전에 큰 변화를 겪었다. 이는 순전히 행정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의 기술적인 불가피성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18)

6. 정치 주변의 직업 집단들 43

정당이 출현한 이래 서양 정치에서 변호사가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당정치는 극히 단순화해 말하자면 이해 당사자에 의해 정치가 운영된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해 당사자인 고객에게 유리하도록 소송을 이끌어 가는 것, 이것이 곧 숙련된 변호사의 직업적 능력이다. 확실히 그들 변호사의 손에서 논리적으로 취약한 사건(이런 의미에서 ‘나쁜’schlechte 사건)도 결국에는 성공으로 이어진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좋게’gut 처리된다. 그러나 그는 또한 논리적으로 ‘강력한’ 근거를 만들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좋은’ 사건을 ‘유능하게’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전문 관료는 데마고그가 아니며 데마고그의 기능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데마고그가 되려 한다면 대체로 그는 매우 나쁜 데마고그가 되고 만다. 진정한 관료는 그의 본래적 사명에 비춰 볼 때 정치를 해서는 안 되고 (무엇보다도 비당파적 자세로) 단지 ‘행정’만 해야 한다. 24-5)

정치 지도자의 행동은 관료와는 전혀 다른, 아니 그와는 정반대되는 성격의 책임 원칙을 따른다. 관료의 명예는, 그가 보기엔 잘못된 명령을 그의 이의 제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상급자가 고수할 경우, 그 명령자의 책임을 떠맡아 이 명령이 마치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듯이 성심을 다해 정확히 수행할 능력에 기초하고 있다. 관료가 이런 규율을 따르지 않거나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한다면 전체 국가기구는 붕괴하고 말 것이다. 이에 반해 정치 지도자, 즉 지도적 역할을 하는 정치가의 명예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전적으로 스스로 책임지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이 자기 책임을 거부할 수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할 수도 없으며 전가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타고난 관료인 사람,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의 관료적 품성을 타고난 사람이야말로 나쁜 정치가일 수밖에 없으며, (책임 개념이 가진 정치적 의미를 기준으로 볼 때는) 무책임한 사람이고 그런 의미에서 도덕적으로 저열한 정치가들이다. 25-6)

진정으로 훌륭한 저널리스트의 업적은 어떤 학문적 업적 못지않게 상당한 ‘지적 정신’Geist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나 학자와는 전혀 다른 조건, 즉 지시에 따라 즉시 작성되고 또 즉각적인 효과를 갖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존경할 만한 저널리스트의 책임성 내지 책임감은 학자보다 훨씬 크며 사실 평균적으로 봐도 학자보다 좀 더 높다는 사실은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는 언론의 무책임한 행태―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끔찍한 결과―가 사람들의 뇌리에 계속 들러붙어 있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에 수반되는, 다른 직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유혹들과, 오늘날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하며 부딪치는 다른 여러 조건들 때문에, 일반 대중은 언론을 경멸스러움과 비겁한 소심함이 뒤범벅된 것으로 간주하기 쉽다. 아울러 현직 저널리스트의 정치적 영향력은 점차 줄어든 반면 자본주의적 언론 재벌의 정치적 영향력은 꾸준히 증대하고 있다. 26-7)

2장. 정당 59

1. 명사 정당 체제 59

처음에는 정당이라는 단어가 순전히 귀족들의 추종자 집단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영국이 좋은 예이다. 어느 귀족이 어떤 이유에서든 당을 바꾸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그와 함께 다른 당으로 넘어갔다. [1832년] 선거법 개정 이전까지만 해도 국왕뿐만 아니라 거대 귀족 가문들도 엄청난 수의 지지자들을 고객으로 삼고 있었다. 귀족 정당과 매우 밀접한 연계를 가졌던 이 유명한 시민들의 정당, 즉 명사 정당Honoratiorenparteien은 중간계급들의 영향력 신장과 함께 나란히 발전했다. ‘교양과 재산’Bildung und Besitz을 갖춘 집단의 출현 역시 서양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는데, 이들은 지적인 인물의 리더십하에서 여러 정당으로 나뉘게 되었다. 계급적 이해나 가문의 전통 혹은 순전히 이데올로기가 이들 정당을 이끌었다. 이 단계에서 정당은 아직 지역적 범위를 가로질러 조직된 상설 결사체가 아니었다. 단지 의회 의원들에 의해 정당으로서의 결속은 유지되었다. 의원 후보의 공천은 지방의 명사 엘리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31)

2. 지도자와 머신이 주도하는 정당 체제 65

명사들의 지배와 의원들의 주도적 역할은 막을 내렸다. 이제는 의회 밖에 있는 ‘전업’ 정치가들이 정당 조직을 손에 넣었다. 외형상 이 모든 것은 광범한 민주화의 효과라 할 수 있다. 당원들이 모여 출마할 공직 후보를 결정하고 (전당대회에 이르기까지) 여러 상급 대의기관에 보낼 대의원을 선출한다. 물론 권력은 조직 안에서 일상적으로 당무를 수행하는 자와, 조직 운영을 위해 재정적으로나 인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자들의 손에 있다. 부유한 후원자들이나 태머니홀Tammany Hall처럼 강력한 정치적 기득 이익을 가진 권력 집단의 지도자가 대표적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이런 인적 기구human apparatus―흥미롭게도 영어권에서는 이를 ‘머신’Maschine이라고 부른다―혹은 좀 더 정확히 말해 이 기구를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자들이, 의회 의원들을 제어할 수 있고 상당 정도 그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정당의 지도자를 선발하는 데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33)

당의 추종자, 특히 당직자와 당 사업가는 그들의 지도자가 승리하면 관직의 형태로든 아니면 다른 식으로든 보상이 돌아올 것을 기대한다. 그들을 움직이는 힘은 진부한 것들로 구성된 한 정당의 추상적 정책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보다는 (확신을 갖고 그래서 헌신하고자 하는) 어떤 한 개인을 위해 일하는 것에서 얻는 만족감이다. 그러나 널리 인정받는 지도자가 없을 때마다 어김없이 역전의 시도가 나타난다. 지도자가 있어도 당 명사들의 허영심과 기득 이익 때문에 온갖 종류의 양보를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많은 사회민주당 인사들은 사회민주당이 바로 그런 ‘관료제화’Bürokratisierung에 굴복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 ‘관료’는 강력한 데마고그적 능력을 가진 인물에게는 비교적 쉽게 순응한다. 자신들의 물질적・이념적 이해관계가 결국엔 이 지도자를 통해 확보할 수 있을 당의 권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도자를 위해 일한다는 것 자체가 내적으로 좀 더 큰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34)

3. 영국의 정당 체제: 코커스 시스템 69

영국의 정당 조직은 거의 순전히 지역의 명사들로 이루어졌는데, 1868년 이후 ‘코커스’Caucus 시스템이라는 것이 발전했다. 그 계기는 선거법의 민주화에 의해 촉발되었다. 즉,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외양을 갖춘 거대한 기구를 창설해야만 했다. 동시에 각 구역마다 선거 조직을 만들고, 이런 조직을 중단 없이 가동해야 했다. 그 결과 모든 것을 엄격하게 관료화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점차 유급 관료가 고용되기 시작했다. 당 정책의 대표자들은 지역의 선거위원회에서 선출되었다. 이 위원회는 유권자의 10퍼센트 정도를 동원할 수 있었다. 위원회를 움직이는 힘은 재정 기여의 책임을 맡은 지역 인사들에게서 나왔다. 이들은 어디서나 풍부한 이권 획득의 기회를 제공하는 지방 정치에 깊은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새롭게 출현한 머신은 더는 의회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고, 그 결과 모든 권력은 소수의 손에, 궁극적으로는 당의 정상에 서있는 단 한 사람의 손에 집중되었다. 36)

# 1867년 영국은 오랫동안 논란만 거듭했던 2차 선거법 개혁을 하게 되었고, 이듬해 선거에서 새롭게 투표권을 갖게 된 유권자를 조직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이때 조지프 체임벌린과 비국교회 목사인 프랜시스 슈나도스트Francis Schnadhorst는 버밍엄 자유당협회라는 단체를 조직해 선거운동을 했다. 보수당의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이를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코커스라고 불렀다. 이때의 코커스라는 표현은 보스가 중심이 된 미국의 지방 정당 조직인 머신을 가리킨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사실상의 대중 투표제적 독재자가 의회 위에 군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지도자는 어떻게 선발되는 것일까? 세계 어디서나 결정적인 기준으로 간주되는 의지력을 논외로 하면, 여기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당연히 데마고그적 웅변의 힘이다. 현재의 상황을 우리는 ‘대중적 정서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에 기초한 독재’Diktatur, beruhend auf der Ausnutzung der Emotionalität der Massen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영국 의회의 매우 잘 발달된 위원회 체제이다. 그것은 지도부에 가담할 의사가 있는 모든 정치가를 위원회 활동에 합류하도록 강제한다. 위원회 활동을 보고하고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과정을 통해 모든 중요 각료들은 지난 수십 년간 매우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실무 훈련을 거쳤다. 이는 위원회가 실제로 유능한 지도자들을 선발하고 순전히 선동가이기만 한 사람을 배제하는 그런 교육기관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37-8)

4. 미국의 정당 체제: 엽관 체제와 보스 76

그러나 미국의 정당 조직과 비교하면 영국의 코커스 제도는 약과다. 미국에서 대중 투표제적 ‘머신’이 그렇게 일찍부터 발전했던 이유는, 미국에서 그리고 미국에서만, 대중 직접 투표의 원리로 선출된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이자 (그리고 이 점이 중요한데) 관직 임면권을 가진 최고 책임자이며, ‘삼권분립’에 따라 직무 수행이 의회로부터 독립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승리의 보상은 관직에 따른 봉록의 형태를 갖기 쉬웠다. 그 결과는 ‘엽관제’spoils system로서, 그것은 앤드루 잭슨에 의해 체계적으로 활용되어 하나의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승리한 후보의 추종자들에게 모든 연방 관직을 배분하는 시스템인 ‘엽관제’가 작용한다는 것은 오늘날 미국의 정당들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것은 경합하는 정당들이 일관된 신념이나 원칙을 전혀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당들은 순전히 그리고 오로지 관직 사냥꾼을 위한 조직이다. 선거 시에는 득표 가능성에 따라 정책 프로그램을 바꾼다. 38)

대중 투표제적 정당 머신에 기초한 이런 엽관 체제와 함께 무대에 등장한 인물이 당 ‘보스’이다. 보스는 자기 부담과 자기 책임 아래 지지 표를 만들어 내는 정치 영역의 자본주의 기업가이다. 당 조직의 운영 자금 대부분을 조달하는 것도 보스다. 보스는 재계의 거물들이 내는 기부금을 직접 수령해 오는 역할을 위해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전형적인 보스는 지극히 냉정한 사람이다. 그는 사회적 명예를 추구하지 않는다. ‘상류사회’에서 이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은 경멸의 대상이다. 그는 오로지 권력을 추구하는데, 그것은 권력의 재원뿐만 아니라 권력 그 자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막후에서 활동하는데 이것이 영국의 리더와 다른 점이다. 사람들은 그가 공개 석상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보스는 어떤 확고한 정치적 [이념 내지] ‘원칙’Prinzipien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어떤 [이념적] 원칙도 갖지 않은 채 단지 무엇으로 표를 끌어 모을까 하는 문제에만 관심이 있다. 39-40)

5. 독일의 정당 체제: 관료 지배 83

지금까지 독일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요인들 중 첫 번째 요인은 의회의 무기력함이다. 그 결과는 지도자적 자질을 가진 어떤 사람도 의회에 긴 시간을 몸담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이 두 번째 요인은 첫 번째 요인에 영향을 끼쳤는데―훈련된 전문 관료층이 독일에서는 엄청나게 중요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관료를 가졌다. 그 결과는 전문 관료층이 단순히 전문 관료직뿐만 아니라 각료직까지도 추구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요인은 미국과는 달리 독일에는 정치적 신념을 가진 [이념] 정당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정당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두 정당―가톨릭중앙당과 사회민주당―은 소수당이었고, [중앙당은 신교 국가인 독일에서 소수인 가톨릭을 내걸었고, 사회민주당은 노동계급에만 의존하려 했기 때문에] 사실상 소수당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의 직업정치가들은 권력도 없고 책임도 없이 저급한 명사로서의 역할만 할 수 있었을 뿐이다. 41-2)

6. 전망: 어떻게 할 것인가 87

달리 선택은 없다. ‘머신’에 기반한 지도자 민주주의Führerdemokratie mit ‘Maschine’ 아니면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führerlose Demokratie가 있을 뿐이다. 후자는 소명이 없는 ‘직업 정치가’, 지도자의 필수 요건인 내면의 카리스마적 자질이 없는 직업 정치가들의 지배를 뜻한다. 이들의 지배는 당내 반대파들이 보통 ‘도당’Klüngels의 지배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통령이 의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국민투표로 선출된다면 지도자에 대한 욕구를 배출할 유일한 안전밸브는 독일 대통령직이 될 것이다. 만약 대중 투표제적인 독재자plebiszitäre Stadtdiktator가 등장할 수만 있다면, 검증된 업무 수행 능력을 가진 지도자가 부각되고 선출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독일의 모든 정당―특히 사회민주당을 포함해―이 보여 주고 있는 지극히 소시민적인 태도로서 지도자에 대한 적대감kleinbürgerliche Führerfeindschaft이다. 이로 인해 향후 정당 조직이 어떻게 될지,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44)

3장. 정치가 92

1. 정치가에게 필요한 자질 92

정치가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다음 세 가지 자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대의에 대한 헌신을 뜻하는] 열정Leidenschaft, [선의를 내세워 변명하지 않고 결과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의] 책임감Verantwortungsgefühl, 그리고 [사태를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능력을 뜻하는] 균형적 현실 감각Augenmaß이 그것이다. 여기서 열정이란 객관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대의’ 및 이 대의를 주관하는 신 또는 [인간과 신 사이에 있는 수호신으로서] 데몬Dämon에 대한 열정적 헌신을 가리킨다. 단지 열정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는―그것이 제아무리 순수한 것이라 하더라도―정치가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 ‘대의’에 대한 헌신과 함께, 대의에 대한 책임성이 행동을 이끄는 결정적인 길잡이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균형적 현실 감각이다. 균형적 현실 감각이란 내적 집중력과 평정 속에서 사물을 받아들이는 능력이자, 달리 말하면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두는 능력을 말한다. 46)

정치가의 인격이라 할 만한 ‘개성적 힘’Persönlichkeit의 ‘강함’Stärke이란 다른 무엇보다도 이상의 자질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매일 그리고 매 순간 정치가는 자신의 내부로부터 스스로를 위협하는 사소하고도 지극히 인간적인 적과 싸워 이겨야만 하는데, 그것은 바로 허영심Eitelkeit이다. 허영심은 대의에 대한 그 모든 헌신과 자기 자신에 대한 그 모든 거리감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적이다. 허영심은 매우 널리 퍼져 있어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속성이다.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대학과 학자들의 세계에서 허영심은 일종의 직업병이다. 그러나 학자들의 경우 허영심 때문에 호감을 얻지 못한다 해도 그 때문에 지식을 추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폐해가 적다. 정치가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허영심은 정치가를 '객관성의 결여'와 (흔히 이것과 동일시되는) '책임성의 결여'라는 두 죄악 가운데 하나 또는 둘 다를 범하도록 유혹하는 아주 강력한 힘이다. 47)

권력을 향한 야심은 정치가가 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이다. 정치가가 권력을 추구하고 또 권력을 활용해서 헌신하고자 하는 그 대의가 어떤 성격을 가져야 하는가는 신념의 문제이다. 그가 헌신할 수 있는 목표는 국가적 대의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인류애 전반에 대한 것일 수 있다. 윤리적이거나 문화적인 대의일 수도 있고, 현세적이거나 종교적인 대의일 수도 있다. 그는 ‘진보’Fortschritt에 대한 강한 믿음에 의해 열의를 발휘할 수도 있고, 아니면 냉정하게 판단해 이런 종류의 믿음을 거부할 수도 있다. 어떤 ‘이념/이상’Idee에 헌신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근본적으로 이념에 헌신한다는 그런 발상 자체를 거부하면서 일상의 구체적 목표에 헌신할 수도 있다. 어떤 종류의 것이든 항상 신념Glaube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표면적으로는 아무리 당당한 정치적 성공이라 하더라도 이 성공에는 피조물 특유의 공허함이라는 저주가 드리울 것이다. 이는 부인하려 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48)

2. 대의와 신념 그리고 도덕 97

산상수훈이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전부 아니면 전무에 있다. [「마태복음」 19장 22절에 있는] 한 부유한 청년의 사례에서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복음서의 명령은 절대적이고 명백하다. 그것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내놓아라, 모든 것을 무조건’이라고 말한다. [이와 달리] 정치가라면, 만약 그것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요구가 아닌 한 그 명령은 부당하고 사회적으로 무의미하다고 응수할 것이다. 과세, 징수, 몰수처럼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강제와 명령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한 윤리적 명령은 다른 경우에는 적용될 수 없다. [이 세상을 영원한 것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현실도피적] 무우주론적akosmistischen 사랑의 윤리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정치가는 정반대의 격언, 즉 “너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해야만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악의 만연에 대한 책임은 너에게 있다.”라는 명제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51)

3.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 105

[결과를 묻지 않는 것] 그것이 결정적인 점이다. 윤리적 지향성을 갖는 모든 행위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고 화해하기 어려운 두 원칙을 따른다. 하나는 ‘신념 윤리를 따르는’gesinnungsethisch 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책임 윤리를 따르는’verantwortungsethisch 원칙이다. 책임 윤리를 따르는 사람은 인간이 가진 평균적 결함을 고려한다. 그는 인간의 선의와 완전함을 전제할 어떤 권리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행위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한에서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신념 윤리를 따르는 사람이 ‘책임’을 느끼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사회질서에 항의하는 것과 같은 순수한 신념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일에 대한 것뿐이다. 이 불꽃을 늘 새롭게 되살리는 것만이 그의 행위가 지향하는 목적이다. 그것은 실현 가능성의 관점에서 보면 전적으로 비합리적인 행동이다. 그것은 본받을 만한 모범을 보인다는 가치밖에는 가질 수 없는 행동이다. 52-3)

세상의 그 어떤 윤리도 피해 갈 수 없는 사실은,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경우 우리는 도덕적으로 의심스럽거나 위험한 수단을 택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부작용이 수반될 가능성 또는 개연성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윤리적으로 선한 목적을 갖는다고 해서 그것이 위험한 수단과 부정적 결과를 ‘정당화’해 줄 수 있는 상황은 언제이며, 또 어느 정도 정당화해 줄 수 있는지를 분별해 주는 그 어떤 윤리도 세상에는 없다. 즉 목적에 의한 수단의 정당화라는 이 문제에서 신념 윤리는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신념 윤리를 따르는 사람은 [모든 것이 우연적으로 보이는 현세에도 신의 의지가 작용한다고 보는] 우주론적 윤리에 기초한 ‘합리주의자’Rationalist이다.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조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우리가 목적에 의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원칙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목적이 어떤 수단을 정당화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윤리적 계율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53-4)

4. 정치의 윤리적 문제가 갖는 독특함 110

[고통과 악, 죽음 등의 현상을 신의 존재에 의거해 정당화하려는] 신정론Theodizee이 안고 있었던 가장 오래된 문제는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었다. 전지전능하면서 동시에 자비롭다고 믿어지는 [신의] 힘이 어떻게, 부당한 고통과 처벌받지 않는 불의 그리고 개선의 여지가 없는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이 불합리한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는가? 아마도 그 힘이 전지전능하지도 자비롭지도 않을 수 있다. 아니면 전혀 다른 보상과 보복의 원칙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원칙들이란 형이상학적으로나 해석 가능한 것 혹은 영원히 해석 불가능한 것이다. 바로 이 문제, 즉 세상이 불합리하다는 것에 대한 경험이 결국 모든 종교 발전을 추동한 힘이었다. 가톨릭 윤리는 [청빈, 청결, 순명 같은] 특별한 ‘복음적 권고’consilia evangelica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피를 흘려서도 안 되고 영리 행위를 해서도 안 되는 수도사 옆에는 믿음이 깊은 기사가 있다. 그리고 그 기사에게는 전쟁과 영리 행위가 허용된다. 55-6)

5. 혁명적 상황에서의 정치 윤리 115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계급투쟁이라는 맥락에서 내적 보상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추종자들의 증오심을 만족시키는 것, 복수하고자 하는 추종자들의 열망을 충족하는 것, 특히나 그들의 분개를 정당화하는 것, 혹은 일종의 사이비 윤리라 할 만한 자신들의 옳음을 정당화하는 것, 적을 비난하고 그를 이단으로 몰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그것이다. 외적 보상에는 모험, 승리, 전리품, 권력, 봉록이 있다. 지도자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자신의 인적 기구가 원활하게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의 성공 여부는 자신의 추종자와 그에게 필요한 적위대, 밀정들, 선동가들에게 앞서 지적한 보상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가능성에 달려 있다. 그런 동기들―윤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매우 저열하고 저속한―을 제어하는 오로지, 지도자 자신의 인물됨과 그가 가진 대의에 대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이 추종자 가운데 일부를 고무할 수 있는 동안만 가능하다. 그들 모두 혹은 대다수를 그렇게 만들 수는 결코 없겠지만 말이다. 57-8)

어떤 종류의 것이든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 특히 정치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정치가 가진 윤리적 역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이 역설들의 중압에 압도되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치가는 모든 폭력/강권력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무우주론적 박애와 자비의 위대한 대가들―이들이 [예수처럼] 나사렛에서 왔든, [성 프란체스코처럼] 아시시에서 왔든 또는 [석가처럼] 인도의 왕궁에서 왔든 상관없이―이 폭력이라는 정치적 수단을 가지고 일한 적은 없다. 그들의 왕국은 ‘현세의 것이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현세에서 활동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영혼 또는 타인의 영혼을 구제하고자 하는 자는, 이를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과업을 갖고 있는데, 이는 폭력/강권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58)

신념 윤리를 따르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책임 윤리를 따르는 것이 옳은지 여부, 그리고 언제는 신념 윤리를 따라 행동해야 하고 또 언제는 책임 윤리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분명히 가려서 지시할 수 없다. 그러나 결과에 대한 책임성을 진심으로 그리고 충심으로 느끼며 행동하던 한 성숙한 인간이 어떤 한 지점에 와서 [마르틴 루터가 1521년 보름스의회에 나와 황제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한 뒤 최종적으로 말했듯이] “이것이 나의 신념이다. 나는 다른 내가 될 수 없다! [신의 가호를, 아멘!]”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인간적이며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내적으로 깨어 있다면 언젠가 우리 자신도 이런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는 서로 절대적 대립 관계가 아니다. 그 둘은 서로에 대해 보완관계에 있으며 이 두 윤리가 결합될 때에야 비로소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질 수 있는 참다운 인간존재가 만들어질 것이다. 59-60)

결론. 비관적 인간 현실 속의 정치가 122

친애하는 청중 여러분,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10년 후에는 이미 반동의 시대에 접어들었을 거라는 두려운 생각을, 나는 갖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표면적으로 어느 집단이 승리하든 상관없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여름의 만개가 아니라 얼음이 뒤덮이고 어둠과 고난이 가득 찬 극지의 밤이다. 이 밤이 서서히 물러갈 때, 이 봄날의 꽃이 자신들을 위해 화사하게 피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살아남게 될까? 내적으로는 어떤 마음 상태가 되어 있을까? 비분강개해 있을까, 아니면 속물근성에 빠져 세상사와 자신의 직업을 그냥 그대로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들 자신은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갖고 있다고 믿었겠지만, 그 말의 가장 깊은 내적 의미에서 볼 때 그들은 객관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갖지 못했다. 이런 사람들은 차라리 소박하고 순수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우애나 도모하고 그저 자신의 일상적 임무에 열심히 몰두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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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이민아 옮김, 박한선 감수 / 디플롯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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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살아남고 진화하기 위해서


처음 동물을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경쟁적 속성에만 집중한 나머지 의사소통 능력이나 친화력이 동물뿐 아니라 우리의 인지 발달에도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상대를 조종하는 기술, 속이는 기술의 향상이 동물계의 진화적 적응력을 설명해주는 근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똑똑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우리의 감정은 보람차거나 고통스럽다거나 매력적이라거나 혐오스럽다고 느낄 때 아주 큰 역할을 수행한다.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를 선호하는 성향은 연산능력 같은 인지를 형성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타인의 의도나 욕망, 감정 등 인간에 대한 이해와 기억력, 전략능력이 아무리 고도로 발달하더라도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과 결합하지 않으면 혁신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친화력은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를 통해서 진화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조건이 일정하다면 자기가축화가 타인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도 향상시킨다는 점이다. 18)


# 자기가축화. 야생종이 사람에게 길드는 과정에서 외모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으로, 인간에게도 사회화 과정에서 공격성 같은 동물적 본성이 억제되고 친화력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자기가축화 과정이 나타난다


사람(이 책에서 ‘사람’은 호모 사피엔스를 뜻한다)은 네안데르탈인처럼 10명에서 15명 정도의 작은 무리로 살다가 친화력이 높아지면서 100명이 넘는 큰 규모의 무리로 전환되었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우리 종은 갈수록 복잡한 방법으로 협력하고 소통했고 이로써 문화적 역량도 새로운 경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 종은 누구보다 빠르게 혁신할 수 있었고 또 그 혁신을 공유할 수 있었다. 다른 인류는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친화력에도 어두운 면은 존재한다. 우리 종에게는 우리가 아끼는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위협이 되는 무리를 우리의 정신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다. 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연민하고 공감하던 곳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공감하지 못하므로 위협적인 외부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19)


1 생각에 대한 생각


우리에게는 '마음이론' 능력이 있어서 지구에서 가장 정교한 방식으로 타인과 협력하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우리가 겪는 거의 모든 문제에서 마음이론이 중대하게 작용한다. 이 능력이 있기에 우리는 수백 년에서 수천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 언어는 중요한 능력이지만 듣는 이가 우리가 하는 말을 모른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 이 능력은 또한 우리 존재의 정수다. 타인의 마음을 읽고 추론할 능력이 없다면 사랑도 그림책에서 오려낸 그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마음이론, 즉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고통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나를 괴롭힌다는 확신이 들 때 증오는 더 뜨겁게 불타오른다. 모든 감정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렌즈를 통해서 더 크게 자라난다. 감정은 우리의 가슴에, 육감에, 손끝에 있다고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생각에 있으며 대개는 타인의 생각에 대한 나의 추측과 추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23-4)


사람 아기의 경우에는 백이면 백이 아주 초기에, 같은 월령에, 그리고 말을 배우거나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기 전인 어느 순간 갑자기 손을 사용하는 능력에 번쩍 불이 붙는다. 한쪽 팔과 집게손가락을 뻗는 이 단순한 동작은 생후 9개월이면 시작되고, 사라진 장난감이나 머리 위로 날아가는 아름다운 새를 가리키는 엄마의 손끝을 따라가는 능력(침팬지는 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 시기에 시작된다. 이 협력적 의사소통이 사람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는 능력인데, 침팬지의 마음이론 별자리에는 이 능력이 없다. 사람 아기는 첫 단어를 말하거나 자기 이름을 배우기 전에 협력적 의사소통을 할 줄 안다. 우리가 기쁠 때 타인은 슬퍼할 수 있으며 역으로 타인이 기쁠 때 우리가 슬플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전에, 우리가 나쁜 행동을 하고 거짓말로 덮는 법을 배우기 전에, 혹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전부터, 우리는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을 습득한다. 25)


사람 아기의 특별한 점은 우리가 몸짓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틀림없이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어떤 동작이든 가능했다. 토마셀로는 사람 엄마와 아기를 대상으로 아기의 엄마에게 컵에 블록을 하나 넣으라고 했다. 아기들은 엄마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지만, 분명히 자기를 도와주려는 행동이라고 추측하고 블록이 담긴 컵을 선택했다. 같은 놀이를 개와 했을 때, 개도 똑같이 행동했다. 사람 아기와 똑같이 내가 그들을 도와주려 한다고 이해했으며, 어떤 새로운 동작이든 선의로 받아들였다. 개와 사람 아기 모두 눈을 마주치고 다정한 목소리를 낼 때 더 주의를 집중하는 듯했다. 심지어 둘 다 목소리의 방향까지 이용할 줄 알았다. 사람 아기는 첫돌 무렵이면 목소리의 방향을 인식하고, 낱말이 특정 물건과 행동을 가리킨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일부 개가 새로운 낱말이 주어졌을 때 시행착오 없이 바로 그 의미를 유추해내는 이유일 수도 있다. 29)


2 다정함의 힘


내 지도교수인 리처드 랭엄은 개와 닮은 러시아 여우에 관한 내 이야기에서 훨씬 더 심오한 의미를 찾아냈다. 원래는 겁 많고 호전적이던 어떤 여우 개체군을 오로지 사람에게 친화적인 태도 하나를 기준으로 선택 번식시켰는데, 단 몇 세대 만에 다른 형질에도 우발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면, 인지기능의 변화도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야기한 것은 펄럭이는 귀나 동그랗게 말린 꼬리 같은 것이 아니었다.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사를 읽어내는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은 사람 아기가 가진 마음이론 능력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다. 협력적 의사소통에서 상대방의 의도를 잘 읽어내는 개가 이 기술을 새끼에게 물려주는 데 성공할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능력도 얼룩무늬 털처럼 후대에 유전되는 형질일까? 지금까지 이런 의문을 제기하고 실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직접 시베리아로 가서 여우를 대상으로 테스트해보라는 랭엄의 제안에 설득되었다. 38-9)


만약 사람이 개를 선택한 것이 그들의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 때문이었다면, 친화력만을 기준으로 선택된 이 여우들은 내 손짓에 응할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을 갖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우들에게는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이 있었다. 강아지들 수준 정도가 아니었다. 한 수 위였다. 랭엄의 생각이 옳았다. 이런 유형의 놀이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친화력 좋은 여우들은 우리의 손짓을 이용해서 먹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개에게 전혀 뒤지지 않았다. 반면에 보통 여우들은 몇 달에 걸쳐 집중적으로 사회화 훈련을 받았는데도 우리의 손짓에 응한 확률이 겨우 절반을 넘기는 수준이었다.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은 증진되었지만, 반면 인지기능에 관해 예상했던 가설은 우연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인지기능 같은 사회적 지능은 두려움이 친화력으로 대체될 때 우발적으로 발생한 또 다른 능력이었다. 여우 실험은 우리가 개에게서 관찰한 협력적 의사소통 기술이 가축화의 산물임을 입증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어주었다. 40-1)


우리는 또한 개에게서 발견했던 이 협력적 의사소통 기술이 단순히 성견이 되기 전까지 오랜 시간 동안 사람과 상호작용해 생긴 결과물이 아니었음을 발견했다. 각기 다른 양육 환경과 각기 다른 월령의 강아지들을 테스트하면서 우리는 심지어 가장 어린 강아지가 손짓을 이해하는 능력이 가장 탁월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생후 6주에서 생후 9주 사이의 강아지들은 무언가를 가리키는 기본 손짓은 물론, 전에는 본 적 없는 새로운 손짓과 몸짓 실험도 완벽하게 수행했다. 이 결과가 인상적인 이유는 생후 6주인 강아지는 아직 뇌가 완전히 발달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걷기를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강아지들은 시각적 손짓의 의미를 이해하는 범위를 넘어섰다. 강아지들은 사람의 목소리 방향을 이용해서 먹이를 찾을 줄도 알았다. 사람의 목소리를 이용해 먹이를 찾는 능력은 심지어 성견보다 나았다. 즉, 개의 모든 협력적 의사소통 기술은 강아지 때부터 이미 존재하며, 사람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더욱 향상된다. 41)


3 오랫동안 잊고 있던 우리의 사촌


보노보 집단에서는, 야생에서건 사육소에서건, 수컷 우두머리가 없다. 그 결과 많은 과학자는 암컷이 보노보 무리의 대장이라고 생각했다. 아기 보노보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기 침팬지는 모르는 누군가가 주는 음식을 함부로 받아먹지 않으며, 덩치 큰 수컷은 특히 더 경계한다. 따라서 침팬지 무리 구성원들의 서열을 평가할 때는 아기 침팬지의 반응을 고려해봤자 유용한 정보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보노보들은 행동과 상호작용 면에서 침팬지들과 달리 타고난 무언가가 있었다. 놀랍게도 아기 보노보가 근처에 앉아 있을 때 보노보 성체 수컷들이 먹이를 외면하고 달아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눈에 띄었다. 서열상 상위에 속하는 보노보 중에는 무리 안에 어미가 있는 아기들도 있었다. 롤라 야 보노보에서 어미 보노보가 키우는 아기 보노보들은 일부 수컷 성체보다 서열이 높았다. 또, 아기 보노보보다 서열이 높은 수컷 성체라도 아기가 주위에 있을 때는 항상 행동을 조심했다. 50)


랭엄은 보노보 집단이 친화력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한 이유를 이들이 서식하는 콩고강 남부가 자원이 풍부하여 식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연구는 보노보 서식지의 열매와 초본이 풍부함을 시사한다. 보노보 암컷은 서열과 상관없이 모두 일일 필요 열량을 충족할 수 있지만, 침팬지는 서열이 높은 암컷들에게만 매일 충분한 먹이가 보장된다. 보노보 암컷은 암컷 친구를 챙길 여력이 있지만 침팬지 암컷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다. 친화력 좋은 보노보 암컷들은 서로 돕고 살 수 있어 수컷의 공격성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또한 공격성이 가장 낮은 수컷과 짝짓기하는 것을 선호한다. 수컷 보노보에게도 친화력은 승리의 전략이었다. 암컷의 승리가 어느 정도로 완전하냐면, 수컷이 암컷을 만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어머니를 통하는 것일 정도다. 이는 암컷의 다정한 수컷 선호가 다정한 사회의 진화를 야기하는 선택압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다. 51-2)


보노보에게는 자기가축화 징후에 속하는 일부 외형적 특징이 있다. 하지만 보노보가 정말로 자기가축화되었다면 다음의 특성이 있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1. 보노보는 같은 무리의 구성원들에게 침팬지보다 더 큰 관용을 보여야 하며,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상황에서도 그래야 한다. 2. 보노보에게는 공격성을 방지하는 생리적 기제가 있어야 한다. 3. 보노보는 침팬지보다 더 유연한 협력적 의사소통 기술이 있어야 하며, 이는 관용과 친화력을 강화하는 생리적 기제의 부산물이어야 한다. 우리의 실험에서 보노보는 낯선 이에게 공격적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그들에게 더 끌린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보노보는 침팬지보다 훨씬 더 큰 포용력을 지닌 종인 셈이다. 동물 가축화 실험에서 친화력이 상승할 때 가장 초기에 변화를 보이는 것이 세로토닌의 농도다. 이것은 보노보에게 공격성을 방지하고 친화력을 증진시키는 생리적 기제가 있음을 의미하는데, 가축화된 모든 동물에게서 매우 흡사한 양상이 나타난다. 53-4)


4 가축화된 마음


우리나 호모 속 다른 사람 종의 식단은 다르지 않았다. 지난 50만 년 동안 살았던 모든 사람 종이 불을 다루고 조리한 음식을 먹고 장거리를 달리고 도구를 사용해 동물을 죽이고 도살했을 것이다. 뇌 크기나 신경세포 밀도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네안데르탈인 같은 다른 사람 종들에게도 우리의 범주에 속하는 문화가 있었으며, 어쩌면 우리와 비견되는 언어능력도 지녔을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우리의 기술 수준이 다른 사람 종보다 더 나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우리와 나머지 사람 종 사이에 중요한 한 가지 다른 점이 남는다. 약 5만 년보다 조금 더 전 쯤에 우리 종이 사회연결망의 급속한 확장을 경험했다는 점 말이다. 사회연결망은 무엇보다 기술 발전에 필수 요소다. 더 큰 사회연결망과의 관계가 끊어진 인구 집단은 그저 기술의 진보가 멈추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집단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영장류 학자 토마셀로는 무인도에 혼자 남겨진 어린이는 침팬지와 아주 흡사한 문화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63)


사회연결망이 확장되면 강력한 피드백 순환 고리가 시작된다. 사회적으로 연결될수록 우리는 더 나은 기술을 갖게 된다. 개선된 기술로 더 많은 양식을 구할 수 있어 우리는 더 많은 사람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더 밀도 높은 집단을 이루어 살게 된다. 인구밀도가 높은 집단은 기술을 한층 더 발전시킬 것이며 이런 식으로 순환 고리가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순환 고리의 도화선에 불을 당긴 건 무엇이었을까? 인구밀도가 높으면 혁신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만큼 희소해진 자원을 놓고 싸워야 하므로 폭력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기술이 인간 사회의 욕구를 따라잡는 동안 이 모순에 제동을 건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현상이 어째서 우리 종과 비슷한 뇌 크기를 가지고 나름의 문화를 만들었던 다른 사람 종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았을까?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플라이스토세 시기에 나타났던 친화력이 호모 사피엔스의 기술혁명에 불을 붙인 불꽃이라고 주장한다. 64)


더러 백색증 같은 색소 이상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사람은 대체로 고른 피부색을 띤다. 하지만 우리의 신체 가운데 단 한 부분의 변화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냈다. 사람과 가축화된 동물의 동공만 연령, 성별과 무관하게 일생에 걸쳐 다양한 색 변화가 나타난다. 우리의 다채로운 홍채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독특하게도 흰색 화포인 공막 위에 홍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공막은 색소가 없어 하얗다. 침팬지와 보노보를 비롯한 모든 다른 영장류는 색소가 공막을 짙게 만들어 홍채와 뒤섞여 보인다. 이 경우 홍채와 공막의 색 대비가 낮아져 그들이 무엇을 보는지, 또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아채기 어려워진다. 우리의 눈은 협력적 의사소통에 이바지하도록 설계되었다. 사람 아기는 부모의 의도와 기분과 생각을 처음 인식할 때 부모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눈빛은 무엇을 향해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생애 초기에 우리에게 의미를 지닌 경험들은 이때의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지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68-9)


우리의 눈은 분명하고 유일할 뿐만 아니라 보편적이기도 하다. 사람은 피부, 머리, 심지어는 손톱까지 다양한 색을 띤다. 홍채도 초록색, 회색, 파란색, 갈색에 검은색까지 다채로운 색이 있다. 하지만 공막은 모두 똑같이 하얀색이다. 하나의 형질이 이렇게 절대적인 단일성을 보이는 건 아주 이례적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눈에서 하얀 공막이 보이면 사람이라고 혹은 사람 같다고 판단한다. 미키마우스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 시절에는 그냥 새까만 큰 점으로 그렸던 눈을, 〈마법사의 제자The Sorcerer’s Apprentice〉에서 검은 눈동자에 흰자위의 커다란 눈으로 바꾸고 나서였다. 흥미롭게도, 누군가의 인간성을 없애는 가장 빠른 방법은 눈을 까맣게 칠해버리는 것이다. 공포영화에서는 흰자위만 남은 눈이 거의 필수 요소다. 누군가의 눈동자 색이 살짝만 달라도 우리는 이미 불편해진다. 하얀 눈자위의 귀여운 모과이가 눈이 새빨간 그렘린으로 변했을 때처럼. 70)


5 영원히 어리게


신경능선세포는 모든 척추동물의 배아에 잠깐 나타난다. 이 세포들은 신경관 표피에서 떨어져나와 독립된 세포 집단을 형성하며, 여기에서 뇌와 척수가 형성된다. 신경능선세포는 줄기세포로, 이는 배아가 발생할 때 다양한 유형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신경능선세포는 이동 능력이 있어, 목적에 따라서 전신에 걸쳐 옮겨 다닐 수 있다. 줄기세포가 어떤 유형의 세포가 될지, 언제 어디로 이동할지 결정하는 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군의 사서 유전자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축화의 중심 특성은 두려움과 공격성 감소인데, 신경능선세포는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 부신수질 발달에 관여한다. 가축화된 동물의 부신은 야생의 친척 종들의 부신보다 작다. 부신이 더 작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호르몬이 적게 분비된다는 뜻이다. 신경능선세포는 또한 친화력 선택과 연관된 모든 세포 조직 발달에도 아주 큰 역할을 담당한다. 여기에는 이개연골, 피부 색소, 주둥이(또는 얼굴) 뼈와 치아가 포함된다. 77)


다른 동물들은 태어난 직후 뇌의 성장이 멈추지만 우리는 태아기의 뇌 성장 속도가 출생 후 2년까지 유지된다. 출생 후 뇌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특히 정수리 뒷부분에 영향을 주어 머리가 풍선 형태가 된다. 뇌 상단 뒤쪽인 두정부에는 마음이론 신경망이 모이는 두 중심점, 측두두정연접부와 설전부가 있다. 이곳이 아기가 타인의 시선과 제스처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다. 이 발달과정에서 시냅스 가지치기가 일어난다. 우리의 뇌는 성장할 때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신경세포를 만든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 더 많이 사용되는 신경망일수록 신경세포의 개수가 더 많아지고 정보처리도 더 능숙해지면서 신경세포 간의 신호를 전달하는 시냅스의 연결이 간소화된다. 우리는,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가 썼듯이 “나약하게 알몸으로 빽빽 울면서” 태어나 몇 해 동안 이 상태로 지낸다. 하지만 사회적 인지능력이 일찍 발현되는 덕분에 타인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다. 80-1) 


우리 종에게 일어난 친화력 선택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것은, 우리 종이 보노보처럼 전반적인 포용력만 강화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종은 집단 구성원의 정의를 확장시킨다. 침팬지와 보노보는 익숙함을 토대로 우리와 남을 구분한다. 집단 구성원은 자신이 사는 영토 안에서 자신의 무리와 함께 사는 누군가다. 그 나머지는 전부 남이다. 침팬지는 이웃 무리의 침팬지를 보거나 그들에 관해 들은 적이 있더라도 그들과 마주쳤을 때 거의 항상 적대적 반응을 보이며 오래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한편 보노보는 낯선 보노보에게 훨씬 더 우호적이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우리에게는 그 사람이 우리 집단인지 아닌지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사람은 보노보나 침팬지와 달리 집단 구성원을 지리적 가까움이 아닌 더 넓은 범위의 정체성으로 정의한다. 동물과 달리 사람에게는 새로운 사회적 범주도 나타났는데, 바로 집단 내 타인이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도 우리 집단 사람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 82)


우리는 기본적으로 같은 집단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에게 끌리도록 태어났지만, 그 정체성에 대한 정의는 '사회장'의 영향을 받아 달라진다. 아기에게조차 집단 정체성은 친숙함 이상을 뜻한다. 어떤 것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지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바뀔 수 있다. 옷차림, 종교, 신체 특성, 정치 성향, 출신지, 응원하는 스포츠팀 등등. 사람은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집단 정체성을 인정하는 듯 보이지만, 무엇이 이 정체성을 구성하는지는 사회적 인식에 따라서 탄력적으로 바뀔 수 있다. 인류학자 조지프 헨릭Joseph Henrich은 이 가소성이 사회규범의 출현에 결정적 인자라고 주장했다. 사회규범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을 지배하는 암묵적이거나 명시적인 규칙이다. 사회규범은 각종 제도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중추가 되며, 사람이 자기가축화된 이후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 규범을 공유함으로써 우리는 일가친척 이외의 사람들까지 포용하여 같은 집단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83) 


# 사회장social force. 사회심리학의 창시자 쿠르트 레빈Kurt Lewin이 제시한 개념으로, 개인·사회·문화의 복합적인 힘이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사회적 행동 또는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는 하나의 사회적 합의를 가리킨다.


친화력이 우리 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생각은 새롭지 않다. 하나의 종으로서의 우리가 더 똑똑해졌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이 두 생각 사이에 놓여 있는데, 사회적 관용이 높아지면서 인지능력, 특히 의사소통 및 협력과 관련한 기능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람을 길들이는 것은 새나 늑대를 길들이는 것과 같지 않았으며 유인원의 경우와도 달랐다. 신경세포로 빽빽하게 채워져 다양한 인지능력과 더불어, 유례없이 강한 자제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거대한 뇌를 지닌 것은 사람뿐이다. 이 친화력 선택을 거치면서 집단 내 타인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범주가 만들어졌다. 이 범주는 산모가 아기를 분만할 때 범람하는 그 옥시토신에 의해 촉발되고 유지되었다. 옥시토신이 충만하면,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도, 다가오는 낯선 사람에게서 친절을 느낄 수 있으며 그 사람이 우리와 같은 편임을 알 수 있다. 행동이 가져올 결과까지 고려하여 판단하는 능력은 우리 종의 생존에 큰 이점이 되었다. 85-6)


6 사람이라고 하기엔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위협을 느낄 때 양쪽 집단 모두 어두운 면을 드러내게 된다. 힘이 더 센 쪽에서 공격을 가할 수 있고 공격당한 집단은 보복에 나설 수 있다. 자기가축화는 우리가 보일 수 있는 최악의 공격성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개와 보노보는 자기가축화를 통해서 친화력을 강화했지만, 두 종 모두 자신의 가족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에 대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공격성을 발달시켰다. 개는 자기가 사는 사람의 집에 낯선 자가 다가오면 공격적으로 짖어댄다. 보노보 암컷의 경우에는 방어적 모성이나, 암컷 간의 유대로 오히려 보노보 수컷에게 공격적인 모습을 띠곤 하는데 이는 침팬지 암컷과 비교해보아도 더 공격적이다. 옥시토신은 엄마가 아기를 분만할 때 흘러넘치기도 하지만 누군가 자기 아기를 위협한다고 느낄 때 분노를 솟구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더 강렬하게 사랑하게 된 이들이 위협을 받을 때 사람은 더 큰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다. 92-3)


사회과학자들은 이 경향을 ‘편견’이라고 불러왔는데, 편견의 일반적 정의는 한 집단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타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만으로는 외부 집단을 향한 온갖 극악무도한 행동을 다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또한 우리가 진화과정에서 마음이론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신경망의 활동을 둔화시키는 능력도 얻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우리 집단 소속이 아닌 사람들의 기본 인권에는 눈감는 것도 이 능력 때문이다. 이 맹목성은 편견보다 훨씬 더 어두운 힘이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할 때 그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와 하등 상관없는 일이 된다. 그런 자들은 공격해도 무방해진다. 규칙도, 규범도, 그들을 인간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도덕적 판단도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의 가설은 모든 사람의 뇌에는 타인을 비인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본다. 94-5)


자신들이 누리던 자원이나 특권 혹은 어떤 경제적 이익에 위협이 되는 집단이 나왔다면, 그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것이 상식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정치적 이념 대결이나 혹은 한 사회 내 다른 집단의 상대적 지위가 타인에 대한 비인간화를 야기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크테일리가 연구에서 얻은 결론은, 외집단에 대한 비인간화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요소는 그들이 먼저 우리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인식이었다. 이것을 보복성 비인간화Reciprocal Dehumanization라고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인 참가자들에게 허구로 작성한 “이슬람 국가 대부분이 미국인을 짐승으로 여긴다”는 제목의 〈보스턴글로브〉 ‘기사’를 제시하자 무슬림에 대한 비인간화 정도가 2배 더 상승했다. 이 기사는 이 내용이 무슬림 주류의 관점임을 시사하고 있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집단과 문화권에서는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집단을 비인간화하는, 동일한 패턴을 보였다. 100)


7 불쾌한 골짜기


로봇 연구가 모리 마사히로森政弘는 인체형 로봇이 점점 더 사람의 모습과 흡사해질수록 우리는 로봇에게 더 호감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과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흡사하거나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어떤 지점에 이르면, 으스스한 느낌을 주면서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도 말했다. 모리는 이 현상을 ‘불쾌한 골짜기The uncanny valley’라고 불렀다.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대형 유인원을 보았을 때의 느낌을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이 ‘불쾌한 골짜기’일 것이다. 그들은 대형 유인원에게 매료되는 동시에 유인원들이 공포를 자아내는 존재, 즉 타락한 인간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인 양 난폭한 성욕을 지니고 파괴를 즐기는 기괴한 존재로 기술했다. 사람을 유인원이나 원숭이에 비유하는 것은 흔한 비인간화 방식이다. 대형 유인원은 쥐나 돼지나 개 같은 다른 동물과 달리, 불편함과 심지어는 혐오스러운 감정까지 불러일으키는, ‘불쾌한 골짜기’의 범주에 딱 들어맞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104-5) 


유럽의 과학자들은 애초부터 잘못 구성한 진화의 사다리에서 대형 유인원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백인을 최상단에 놓은 그들에게 사람과 대형 유인원이 현저하게 닮았다는 사실은 린네와 다윈의 주장대로 사람과 유인원을 같은 ‘호모’ 속으로 묶어야 논리적으로 타당한 귀결이라는 뜻이었다. 계급 구분이 엄격했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서는 용인되기 어려운 결론이었다. 사람과 대형 유인원의 관계를 좀 더 받아들이기 쉽도록 19세기 인류학자들은 이 사다리에 또 하나의 가로장을 끼워 넣었다. 유인원이 사람과 동물의 중간 단계였다면, 흑인은 백인과 유인원의 중간 단계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으로 노예무역에 대한 반감과 상류층 지식인들의 도덕적 딜레마까지 한 번에 해소할 수 있었다. 삶과 자유, 행복을 누릴 권리가 만인에게 적용되는 천부인권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흑인으로부터는 이 권리를 박탈하려는, 도덕적으로 모순을 정당화하는 데 유인원 비유만 한 처방이 없었던 것이다. 105-6)


심리학자 필립 고프Philip Goff가 “태도와 불평등의 부조화”라고 부르는 상황에서, 이른바 인종차별주의 이후 시대에서 살아가는 인종적 소수 집단은 여전히 고용, 교육, 주택, 소득, 건강 등 모든 면에서 엄청난 불평등을 겪고 있다. 이런 부조화를 학자들은 전통적 편견(제노사이드로 발전할 수 있는 유형의 편견)이 신종 편견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전통적 형태의 인종 편견’을 더 현대적 형태의 편견이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이 학자들 간에 일치되는 의견”이다. 현재의 인종차별은 ‘교묘하고’ ‘산발적으로 퍼져 있으며’ ‘경로의존적’인 성격을 띤다. 현재의 인종차별은 인종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편견이 신념화된, ‘상징적’ 혹은 ‘일차원적’ 인종차별, 다른 인종 집단과 접촉을 피함으로써 혐오를 실행하는 형태의 ‘기피적’ 인종차별, ‘암묵적’ 인종차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처럼 무엇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끔찍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출범한 학문이 사회심리학이었다. 108-9)


# 현재의 인종 차별의 세 가지 중심 요인 : 편견, 순응 욕구, 권위에 대한 복종


8 지고한 자유


대안우파를 느슨하게 정의하자면, 주류 보수주의를 거부하는 극우 이데올로기 추종자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사회지배 성향'이나 '우파 권위주의 성향'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경향이 있다. 사회지배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적자생존’이라는 통념을 신봉한다. 그들은 “사회에는 다른 집단들보다 열등한 집단이 있다”고 믿으며 “이상적 사회라면 일부 집단이 상위를 차지하고 나머지 집단들이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회지배 성향이 높은 사람들과 우파 권위주의 성향이 높은 사람들, 둘 다 타인 혹은 타 집단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 극도의 편협함을 보이지만 두 집단의 이념은 상당히 다르다. 우파 권위주의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외부자를 위협으로 인식하지만, 사회지배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외부자를 열등한 존재로 인식한다. 우파 권위주의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권위에 순응하지만, 사회지배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집단이 주도권을 갖기를 원한다. 126)


# 사회지배 성향Social Dominance Orientation·SDO. 사회 체제 내 위계질서에 대한 개인의 선호도와 낮은 지위 집단에 대한 지배 성향를 나타내는 척도다.


# 우파 권위주의 성향Right Wing Authoritarianism·RWA. 천성적으로 권위자에게 순종하는 정도, 사고와 행동의 순응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다.


사회지배 성향과 우파 권위주의 성향의 성격에 대해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연구 결과는 교육이 그들에게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관용이 없는 사람들을 ‘교육’하려 했다가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애슐리 자디나가 설문조사에 참여한 백인들에게 흑인들이 수감과 사형 집행에서 부당하게 표적이 되고 있다고 말해주었을 때, 이미 흑인을 인간 이하로 보던 사람들은 흑인을 더 비인간화하게 되고 흑인에 대한 징벌 정책을 더 지지하게 되었음을 기억하자. 앎이 문제를 더 악화시킨 것이다. 가치관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거나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치거나 다문화주의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는 등의 행동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이런 노력이 가장 큰 효과를 보이는 대상은 이미 관용을 실천하는 사람들인 듯하다.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문화 감수성 훈련이 본래 자리잡고 있던 불관용 이데올로기를 오히려 더 공고하게 만들 수도 있다. 128-9)


민주주의는 우리의 다정한 본성 속에 자리한 이 어두운 면을 견제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다. 이 형태의 정부가 직면하는 난제에 관해서는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천문학적 국가 채무, 도를 넘는 군사적 개입, 노쇠한 기간 시설, 만연한 유언비어, 고령화 사회 같은 문제들은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에 국한해서 보자면 시민담론의 부재, 편의주의적 선거구 개편 문제, 초당적 협력을 불가능하게 하는 모호한 의회 규칙(예를 들면 하스터트 규칙), 유권자 통제, 규제 없는 사적 정치자금 모금을 통한 선거 비리가 주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이 가운데 많은 것이 한 가지 근본적 문제의 증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같은 편에게는 친절하고 다정했던 사람이, 다른 편에게는 잔인해지는 인간 본성의 역설 말이다. 이제 병이 무엇인지 알아냈으니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비인간화 백신이 실로 존재하며, 그 백신이 실로 효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131-2)


# 하스터트 규칙. 공화당 의원 과반수의 동의가 없으면 법안을 표결에 붙이지 않도록 하는 공화당 지도부의 불문율이다.


# 유권자 통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특정 인구 집단 유권자들의 투표를 좌절시키거나 막는 전략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 교전 중인 국경 지대와 이웃한 민족 집단들 사이에 벌어지는 장기간의 분쟁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다른 집단 간의 접촉이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고 보았다. 사람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음식을 같은 방식으로 먹는 이들과 함께 사는 공동체 안에서 훨씬 안전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학자들은 집단 간 갈등을 감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접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갈등을 완화하는 최상의 방법은 서로를 위협으로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불안이 낮은 상황에서 여러 집단이 함께할 수 있다면 학자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이 불안을 감소시키는 것이야말로 집단 간 갈등을 감소시키는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위협받는다는 느낌이 우리 뇌에서 마음이론 신경망의 활동을 꺼버린다면, 위협 없는 접촉은 이 스위치를 다시 켤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132-3)


어떤 외부 집단에 대해서 인간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말하는 정도만으로도 그 사람들과 접하거나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따라서 가상의 인물을 만나는 경험으로 사고가 변하는 것도 놀라울 일이 아니다. 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노예제 폐지운동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르완다에서는 텔레비전 연속극 하나가 대학살 이후 종족 간에 굳어진 편견과 갈등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야기는 첨단기술이 아닐뿐더러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외집단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을 향한 공감을 향상시키는 효과적 방법으로 입증되어왔다. 무엇보다도, 가장 배타적인 사람들이 접촉의 효과를 가장 크게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심리학자 고든 호드슨Gordon Hodson은 사회지배 성향과 우파 권위주의 성향이 높을수록 동성애자, 흑인 재소자, 이민자, 노숙자, 에이즈 환자 등 사회적 고정관념에 의해 차별받는 사람들과의 접촉에서 크게 영향받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34-5)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증오에 대해 명쾌한 예측을 제시한다.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외집단을 비인간화할 때, 즉 외집단 구성원을 인간 이하의 무언가로 말하는 것이 이를 듣는 상대방에게 최악의 폭력 행위를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또한 사람을 동물이나 기계에 비유하거나, ‘쓰레기’ ‘기생충’ ‘체액’ ‘오물’ 등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언어로 묘사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형태의 증오언설이라고 본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타인을 비인간화하는 언어를 제재하는 강력한 문화적 규범을 조성할 수 있다. 텔레비전, 신문 같은 언론 매체나 사회적 소통 매체에서 누군가가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인간 이하로 말한다면 우리 내부에서부터 경보기를 울려야 한다. 시민으로서의 우리는 절대로 증오언설을 표준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탈리아의 시인 잠바티스타 바실레Giambattista Basile가 썼듯이, “뼈 없는 혀가 척추를 부러뜨리는 법”이다. 142)


9 단짝 친구들


동물에게 친절한 태도가 정말로 타인에 대한 친절함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학자들은 사람과 동물을 연관시키는 개념에는 꾸준히 저항해왔다. 그것은 우리 종이 특별하고 동물들과 다르다는 믿음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15개 항목 가운데에는 편견과 비인간화의 가장 주요한 동력이 무엇인지를 묻는 항목도 있었다. 다수는 무지, 닫힌 마음, 매스미디어, 부모의 영향, 문화적 차이를 원인으로 돌렸다. 반면에 동물에 대한 시각은 이 문제와 관련이 없다고 보았다. 심리학자 고든 호드슨과 크리스토프 돈트Kristof Dhont는 사람이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람 중에서도 우월한 집단과 열등한 집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더 높게 나타나는지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사람을 동물과 다르다고 여기는 태도나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태도가 이민자나 흑인이나 소수 민족 등 사람 외집단을 동물로 비유하는 비인간화에 주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49-50)


개에게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 사랑이 다른 사랑만 못하다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았을 것이다. 우정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평등한 사상이다. 개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가 될지 예상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구석기시대를 지배하는 강력한 포식자이던 시기에 그들은 송곳니 매서운 육식동물에서 개로 진화했다. 개는 그들 종의 강력한 성공 무기였던 두려움과 공격성을 사용하는 대신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될 만한 충분한 공통 기반을 찾아냈다. 다리가 둘이건 넷이건, 검건 하얗건, 그들이 우리를 사랑하는 데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적어도 나의 삶은 바뀌었다. 오레오와 나눈 우정과 사랑으로 나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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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다시 쓰기 - 다중인격과 기억의 과학들
이언 해킹 지음, 최보문 옮김 / 바다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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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다중인격은 여러 방식으로 지식의 대상이 되었다. 사진은 다중성의 초기(1870~1880년대) 수사법 중 하나였다. 이 책의 종장으로 가면서 내가 초점을 맞춘 주제는, 기억에 관한 지식으로 알려진 새로운 과학이 영혼을 세속화하기 위해 어떻게 철저히 의도적으로 창조되었는지가 될 것이다. 그전까지 과학은 영혼의 연구에서 배제되어왔다. 기억에 관한 새로운 과학들은 서구의 사상 및 실천에서 그 질긴 정수精髓를 정복하기 위해 출현했다. 그것이 내가 언급한 서로 다른 모든 지식과 수사를 '기억'이라는 주제 아래에 연결시키는 결속체이다. 가족이 붕괴할 때, 부모가 아이를 학대할 때, 근친강간이 언론에 오르내릴 때,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파멸시키려 할 때, 우리는 영혼의 결함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영혼을 지식으로, 과학으로 대체할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영적인 전쟁은 영혼이라는 명시적 영역 안에서가 아니라,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전제된, 기억의 영역에서 벌어진다."(23-4)


#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영혼은 불멸하는, 본질적인 단 하나의 것이 아니라 한 개인에게 존재하는 여러 측면(품성, 이해, 사랑, 열정, 시기, 후회 등)의 이상한 혼합물을 말한다.


1장 다중인격은 실재하는가? 


"다중인격은 실재하는가, 아닌가?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독자들 누구도 이 질문은 하고 싶어지지 않기를 희망한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어떻게 개념들의 이러한 설정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삶, 관습, 과학을 만들고 주형하기에 이르렀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럼에도 두 가지는 여전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기억과 정신적 고통이다. 이 질환이 하나 이상의 인격들과 관련되건 아니면 하나보다 적은 인격의 파편들이건 간에, 또 해리든 와해든 간에, 이 장애는 어린 날의 트라우마에 대한 반응으로 추정된다. 그때의 잔혹함의 기억은 숨어 있지만, 인격의 진정한 통합과 완치를 위해서는 기억해내야만 한다. 다중인격과 그 치료법은, 기억의 본질에 관한 축적된 지식을 통해서 그 괴로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가설에 기반한 것이다. 나는 다중인격에 대한 신념을 의문시하려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옹호자와 반대자 모두가 기억이 영혼의 열쇠라는 가정을 왜 당연시하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다."(40-1, 46)


2장 다중인격이란 어떠한 걸까? 


"많은 다른 인격들은 본 인격 안에 또 다른 인격들이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특히 치료를 시작할 때 자신이 다중인격임을 부인하는 본 인격이 더욱 그러하다. 반면 어떤 다른 인격은 다른 인격들의 존재를 알고, 서로 잘 알기도 하고, 말도 나누고, 합동해서 활동하기도 한다. 이는 공共의식 혹은 공재共在의식이라고 불린다. 다른 인격들은 서로 말싸움하고 으르렁거리거나 서로 위로하기도 한다. 한 다른 인격이 등장하면 또 다른 인격은 왼쪽 귀에서 저 인간은 얼마나 얼간이 같은지 모르겠다고 투덜댄다. 많은 치료사들은 여러 다른 인격들이 서로를 다 아는 완전한 공존은 통합에 필요한 단계이므로 다른 인격들을 서로 소개시키려 노력한다. 진단을 받자마자 다른 인격들이 튀어나온다는 말은 아니다. 한 임상가가 말하기를, 다중인격을 치료하는 일은 담요 아래에 숨어 있는 고양이들이 싸움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많은 소리와 움직임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고양이 하나하나를 알아보기는 어렵다고."(57)


3장 다중인격운동 


"다중인격운동의 본질적 요소는 아동학대에 관한 미국의 강박과 그에 대한 감응, 혐오, 분노, 공포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다중인격운동의 일대기를 연 것은 바로 1973년에 출간된 《시빌》이다. 《시빌》은 코넬리아 윌버가 시빌을 치료한 사례보고이다." "윌버의 작업은 아동기의 트라우마를 적극적으로 찾으려 했다는 것에서 다중인격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었다. 그녀는 시빌의 다중성을 어머니의 심술궂고 징벌적인 그리고 흔히 성적인 폭력에서부터 추적해 들어갔다. 아동학대와 가정 내의 변태적 성생활 사이의 연관성에 관해 대중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시빌의 어머니의 행동은 학대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물론 집안에서 발견된 고문 도구라는 것이, 당시에는 가정집에 흔히 비치되는 잡화라서 그 물건의 존재만으로 가학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책이 출간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화된 후에는 그 실재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76, 79-82)


"돌이켜보면, 랠프 앨리슨은 최초로 다중인격장애 치료계획안을 고안한 명예로운 선구자로서, 이는 과학적으로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다중인격운동을 점화시킨 것은 바로 그가 행한 홍보활동이었다. 1970년대 후반, 미국정신의학협회 연례총회에서 다중성 워크숍을 기획하고, 본 프로그램에서 발표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였다. 그는 다중인격 정신치료를 위한 두 가지 소책자를 유포했다. 그가 제안한 내재적 자아 조력자Inner Self Helper(ISH)라는 개념은 적어도 초기에는 일부 주류 정신과의사들에게 신중하게 받아들여졌다. 그가 말한 개념에서, 조력자는 현대 다중인격이론이 그려낸 다른 인격들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어린 날 트라우마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조력자는 증오할 줄을 모른다. 조력자는 오직 사랑만 느끼고 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신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다." "앨리슨은 ISH란 〈실제로는 양심〉이라고 했다. 그는 환자에 관해 더 잘 알기 위해 조력자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87-8)


# 차후에 앨리슨은 잔혹한 강간-살해 범죄를 저지른 마크를 연구한 후 '선한 내재적 조력자 가설'을 폐기한다. 


4장 아동학대 


"아동학대는 다중성을 이해가 될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최근의 이론에 따르면, 대부분의 다중인격은 어린아이일 때 해리dissociation가 시작된다. 이 원인론이 임상경험으로 충분히 확인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의 신념이 되었는지를 알아보려면, 아동학개 개념의 궤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생각하는 즉시 이해되는 명료한 개념도 아니고, 사례에 주목해도, 자신의 기억을 들여다봐도 그렇듯 명료하게 떠오르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피해자 쪽에서는, 학대 경험이 자명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사건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운 일이었을지와 상관없이, 사회적 의식이 고취된 뒤에야 비로소 '아동학대'로서 경험되고 기억되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과거의 행위를 새롭게 해석할 새로운 서술의 발명과, 커다란 사회적 동요다. 주디스 허먼의 저서 《트라우마와 회복》에 적혀 있듯이, 〈트라우마는 정치적 운동과 동맹을 맺어왔다.〉"(100-1)


"의료화는 성, 계급, 사악함보다는 덜 흥미를 끌었지만, 그래도 어떤 관점에서는 아동학대 개념의 증명서다. 특정 유형의 사람들─예컨대 아동학대 가해자, 피학대아동 같은─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런 이들에 관한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 지식이 온전하다면, 온갖 종류의 학대행위, 가해자, 피해자는 다양한 유형의 의학적, 정신의학적, 통계적 법칙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들 법칙은 아동학대를 어떻게 개입하고 예방하며 개선할지를 알려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다중인격은 아동학대를 발판으로 해서 '지식의 대상'으로 발돋움했다." "원인 규명은 지식의 대상이다. 만일에 아동학대가 소위 자연종이라 불리는, 오직 자연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한 종류이자 자연법칙의 지배하에 있는 다른 사건과도 엮여 있는 그러한 것이라면, 아동학대는 어떤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아동학대에 관한 의학지식은 사건의 종류와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는 법칙에 관한 지식이다. 일련의 새로운 지식체계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106-7)


"전통적인 근친강간의 금기는 성교에 적용되는 것이었다. 근친강간과 아동학대가 동일선상에 놓이자 근친강간의 개념이 급격히 확장되었다." "이 사건들은 엄청난 해방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많은 여자들 그리고 점차로 많은 남자들이 혈연관계 안에서, 혹은 결혼관계나 편의적 관계 안에서 대개는 남자들에게 당했던 처참한 경험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아버지, 삼촌, 할아버지, 사촌, 계부, 남자친구, 동료, 애인, 사제가 그 남자들이었다. 어머니와 이모나 숙모와 강요된 성관계를 가진 기억도 있었다. 그 일을 입 밖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카타르시스였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 순간의 폭력이나 다시 다가올 폭력에 대한 공포만이 아니라, 계속 붕괴되어가는 인격과, 어떤 인간과도 애정과 신뢰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되어간다는 데에 있다. 성적 반응이 왜곡될 뿐만 아니라, 애정에 대한 반응 또한 일그러져간다. 구타당한 아기들이 아니라 구타당한 삶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다중인격 임상가들이 밝히려 했던 것이었다."(112)


5장 다중인격의 젠더 


"남자보다 훨씬 더 많은 여자들이 다중인격으로 진단되는 것은 왜인가? 네 가지의 설명이 제시되는데, 모두가 다중인격의 배경 이론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첫째로, 범죄 가설이 있다. 잠재성 남성 다중인격은 폭력적이어서 의사보다는 경찰의 손에 잡힌다. 둘째로, 다중인격은 은연중에 자신이 속한 문화적 환경에 어울리는 선택을 한다는 견해가 있다. 해리 행동은 여자들이 선호하는 스트레스의 언어다. 심지어 도피 수단일 수도 있다." "남자들이 선택하는 스트레스 표현방식은 알코올이나 폭력 등이다. 셋째는 인과적 설명이다. 다중성은 어린 날의 반복적인 아동학대, 특히 성학대와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것이다. 소녀들이 소년보다 훨씬 더 자주 학대의 대상이 된다고 간주된다." "넷째는 암시의 요소를 강조하는 설명이다. 북미에서 치료과정에 있는 여자들은, 심지어 전형적인 권력구조를 피하려 적극 애를 쓰는 여자일지라도, 같은 상황에 있는 남자들보다는 더 쉽사리 치료적 기대치에 협조한다."(127-8)


"학대를 강조하는 일은 흔히 힘을 부여하는 동기가 된다고 말해왔으나,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이는 루스 레이스의 분석인데, 그녀는 드물게 다중인격을 정면으로 다룬 페미니스트 학자다." "레이스의 글에 따르면, 로즈는 〈캐서린 매키넌, 제프리 마송 등이 무의식적 갈등의 개념을 배척하고, 대신 내부/외부라는 경직된 이분법을 수용해서, 폭력이란 전적으로 그 개인의 외부에서 가해지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여성은 완전히 수동적인 피해자라는 퇴행적인 정치적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밖에 없게 된다〉라고 비판한 것이다." "결론 중 하나로서 이런 종류의 분석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은 학대, 트라우마, 해리에 관한 현재의 이론들은 또 다른 여성 억압의 순환고리 중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전보다 더 위험한 이유는, 전적으로 '피해자'의 편이라고 자칭하는 이론가와 임상가들이 그것을 이유로 환자를 자율적인 한 개인이 아니라 무력한 자로 구성해내기 때문이다."(131-2)


6장 원인 


"인과적 일반화는 양 극단 사이에 위치한다. 한 극단에는 엄격한 보편성이 있다. K 종류의 하나의 사건 또는 조건마다 J 종류의 하나의 사건 또는 조건이 결과로 나타난다. 옛날 물리학은 그런 법칙을 선호했다. 다른 한 극단에는 상당한 필요조건fairly necessary conditions이라는 실로 조심스러운 설명이 있다. K 종류의 사건 또는 조건이 없이는 J 종류의 사건 또는 조건이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 그 사이에 개연성과 경향이 있다. 〈정신의학 역사상 주요 질환의 특수 병인에 관해 이렇게 잘 알게 된 적이 없었다〉라고 로웬스타인은 말했다. 이를 주장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이 주요 질환에 관한 어떤 일반적인 인과적 설명이 그 배경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주장은 엄격한 보편성처럼 엄중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상당한 필요조건이면 충분하다. 로웬스타인이 의미했던 상당한 필요조건이란, 〈어린 시절의 극심하고 반복적인, 전형적으로 성적인 트라우마가 없이는 다중인격이 나타날 가능성은 적다〉일 것이다."(141-2)


"'상당한 필요조건'은 다중인격의 특성화와 함께 진화했다. 코넬리아 윌버와 리처드 클러프트가 했던 이 신중한 말을 생각해보라. 〈다중인격장애를 가장 편협하게 이해하자면, 아동기에 발병하는 외상후해리장애이다.〉 여기에서 아동기의 발병시기와 트라우마의 존재 여부는 경험주의적 귀납이나 통계적으로 확인 가능한 '상당한 필요조건'의 일부가 아니다. 그건 그 말을 한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식이고, 그들이 'MPD(Multi Personality Disorder)'라고 칭할 때 의미하는 것이다. 방법론적으로든 과학적으로든 틀린 것은 없다. 내가 경계하는 것은 양쪽 방식을 합쳐서 하는 말뿐이다. 이는 (a)'다중인격장애'(혹은 해리성정체감장애) 개념을 초기 아동기의 트라우마로 정의하려는 경향과 (b)이를 발견된 것처럼 단언하는 것, 즉 다중인격이 어린 날의 트라우마로 발생한다고 단언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그 장애가 무엇인지 먼저 정의한 다음에 그 원인을 발견했다고 우리 스스로를 기만해서는 안 된다."(142)


"반복적 아동학대가 다중인격의 원인이라고 정신의학이 발견한 건 아니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그 행동과 그 기억 모두가 치료사에 의해 조장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건 내가 주장하는 논지가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훨씬 더 뿌리 깊은 것으로서, 말하자면, 바로 그 인과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의 주조 방식이다. 일단 그 개념을 얻게 되면, 우리는 인간을 만드는making up people, 또는 우리 자신을 만드는 실로 강력한 도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현재의 자신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모델에 따라 우리가 끊임없이 구성하고 있는 영혼을 우리는 구성한다." "다중성의 인과론에는 두 부분이 있다. 아동학대라는 기회원인occasioning cause이 한 부분이다. 다른 부분은, 어떤 아이들은 더 큰 해리능력을 가지고 태어나고, 그로 인해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특수한 방법을 사용하게 되고, 이 해리능력은 측정할 수 있기에 어느 정도인지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것이다."(161-2)


7장 해리의 양적 측정 


"설문지는 다중인격이 객관성과 정당성을 갖추게 만드는 방법이며, 치료사들로 하여금 자신은 과학적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한 인류학자는 설문지의 일차적 목적이 정신과 입원이나 클리닉에서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해리장애에 관한 지식의 객관성을 구축하기 위함이라는 의견을 냈다. 해리 경험 설문지는 자격을 갖춘 전문가의 진단과 채점된 점수를 비교해서 확인되고 기준치가 조정된다. 그 과정에 부차적이기는 하나 필요한 확인 절차가 있다. 처음에 정상으로 채점된 사람이 몇 개월 후 다시 두 번째로 설문지에 답할 때에도 대략 같은 식으로 반응하는가? 계속 설문지가 개발되어가면서 새로운 설문지의 기준치 조정에 사용되는 것은 이전의 설문지 결과 및 이후의 임상적 판단이다. 그리하여 상호 일치하고 자기확증적인 검사도구의 네트워크가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인터뷰 설문지 결과를 자기기입식 설문지 결과와 비교하고, 이 둘은 전문가의 임상적 판단과 비교한다는 식이다."(169)


"해리 설문지의 기준치 조정에는 표면적이지만 실은 매우 중대한 문제가 있다. 기준치 조정은 어떤 동의된 판단에 비추어야 하는가? 해리장애 분야에는 어떤 합의된 판단도 없다. 많은 선도적 정신과의사들은 그런 분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 관찰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과 그 병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판단에 비추어서 기준치 조정이 된 해리척도가 아니다. 그 해리척도는, 그보다는, 정신의학 내에 있는 다중인격운동의 판단에 비춰서 조정된 것이다. 그들의 판단이 과학 수치처럼 객관적이라고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 기준치 조정 과정은 여타 분야에서 사용되는 방식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 설문지들이 독립적 기준에 비춰 조정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일단 내적 일관성이 충분한 통상적 통계비교검사법 일습을 다 적용했다면, 충분한 수의 도표와 도식을 다 만들어냈다면,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했다면, 마침내 전체 구조는 객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169-71)


8장 기억 속의 진실 


"1982년 의식적이고 악마숭배적인 아동학대가 대중의 인화점을 건드렸을 때, 괴이한 고발이 잇따라 제기되었다. 악마는 미국 TV 토크쇼의 스타가 되었다." "이런 소란은 다중인격운동을 곤혹스럽게 했다. 다중인격은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의식 고취의 분위기에서 성장하여 그 원인론으로 정당성을 획득했다. 악독하게 학대받았다는 주장이 점차 신용을 얻어가던 운동 초기에는 입증이 되었다고 느꼈을 것이다. 환자들이 근친강간을 기억해내자 그 말을 믿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용기를 북돋아주기까지 했다. 다양한 요소가 혼합된 치료법이 개발되고, 그 치료법은 기억을 끌어올리고 아동학대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인격들을 유도해냈다. 트라우마는 가공된 상상의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일어났던 실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이어서 아동학대운동이 이교의례 학대로 영역을 넓히자, 환자들은 점차로 이교에 관한 무서운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이야기는 점차 현실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것으로 변모해갔다."(189-91)


"이 일에 관해 체계적인 공식 조사가 이루어진 곳은 오직 영국뿐이다. 해당 위원회는 3년이 넘게 정보를 수집했고 그 결과가 1994년 6월 출판되었다. 고문, 강제 낙태, 인간 제물, 식인, 수간이 포함된 악마숭배의례를 〈규정하는 특징〉은 〈성적·신체적 아동학대가 주술적 혹은 종교적 목적을 지향하는 의례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위원회는 악마숭배의례 학대를 공개적으로 주장한 사례 84명을 조사했으나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위원회는 많은 사례에서 어린이들이 더 일상적인 방식으로 학대받고 있다는 것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전 세계적인 악마 음모론이라는 우화에 대해서는 엄밀히 말해서 믿기가 어렵다. 다시 말해서, 유용한 근거를 갖춘 것으로 신뢰할 수 없다." "음모론과 마녀사냥은 그 설명에 관한 한 서로의 거울 이미지다. 사악한 이교의례가 항상 주변에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비슷한 사건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대중적 촌극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196-7)


9장 정신분열증 


"오이겐 블로일러(1857~1939)는 20세기 초에 진단범주로서의 정신분열증을 창시한 인물로 유명하다. 정신증의 주요 분류는 에밀 크레펠린(1856~1926)에 의해 확립되었다. 한쪽에는 조울증manic-depressive illnesses이 있고, 다른 쪽에는 청소년기에 발병해서 치매에 빠진다고 하여 조기치매라 불리는 게 있었다. 1908년, 블로일러는 몇 년간 자신의 조교들을 교육하던 내용을 책으로 출판했다. 그는 크레펠린이 발병시기에 초점을 맞춘 것은 틀렸다고 했다. 그 어떤 기존 명칭도 이 수수께끼 질병에는 맞지 않았다. 그리하여 블로일러는 '분열된 뇌의 질병'의 의미로 그리스어에서 따온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이라는 명칭을 정했다. 그가 말한 것은, 이중의식의 원형처럼 인격들이 분열하여 한 개인을 번갈아 지배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는 〈정신적 기능의 '분열'〉을 지적한 것이었다. 아주 단순화하면, 주변을 인식하는 기능과 그걸 느끼는 기능이 분열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이성과 감성 사이의 분열을 의미한다."(214-5)


10장 기억의 과학이 출현하기 전 


"프랑스 역사가 알랭 부로는, '슬리퍼sleepers'가 중세 절정기인 12세기 말과 13세기에 의미심장한 현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후일 몽유증이라고 불리게 될 일종의 몽환 상태에 빠진 개인들로 보인다. 슬리퍼가 중요한 이유는, 그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지적, 형이상학적 그리고 실질적으로 신학적 문제를 불러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깨어 있을 때와는 다른 특성과 스타일로, 때로는 폭력적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금지된 행위를 했다. 그 상태가 끝나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혼란스러워했다." "토마스주의자들은 하나의 육체에는 오직 하나의 영혼만 있다고 주장했다. 스콜라 신학 심리학에서 영혼은 인간의 〈실체적 형상〉이다. 소수의 반토마스주의자들이, 슬리퍼와 같은 인간에게는, 각 상태에 하나씩 두 개의 실체적 형상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알랭 부로는 말했다. 이는 책임과 관련해서 중요한 문제였다. 소수파는 패했다. 따라서 슬리퍼들은 주변화되고 뒤이어 병리화되었다."(240-1)


"다중인격의 전신前身에는 두 개의 증상언어가 있었다. 하나는 주로 유럽대륙에서 쓰이던 자연적 몽유증이라는 언어로서, 인위적 몽유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다른 증상언어는 주로 영국과 미국의 것으로, 이중의식의 언어였다." "1816년 메리 레이놀즈는 〈여자에게 나타난, 매우 특별한 이중의식 사례〉라고 기술되었다. 여기서 '이중'은 두 개를 의미하므로, 두 개 이상의 인격이 교차하는 상태는 아닐 터이고, 오늘날과 같이 17개 혹은 100개의 인격 파편은 더더욱 아닐 터이다. 그러나 '의식'이라는 단어는 더욱 강렬한 느낌을 주는데, 그건 수동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작용이나 상호작용의 의미도 없고, 완숙한 인격을 암시하는 것도 없다." "그녀에 관한 최초의 짤막한 기술은 그 제목이 〈이중의식 혹은 동일한 개인에게 들어 있는 인간의 이중성duality〉이었지만, 〈인간의 이중성〉은 주목을 끌지 못했다. 이중의식은 인기를 얻었고, 19세기 거의 내내 잉글랜드에서 의학적 진단범주에 들어갔다."(245-6)


11장 인격의 이중화 


"이폴리트 텐은 절충주의 유심론자들이 말하는 자율적이고,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자아self 또는 영혼soul이라는 개념, 〈유일하고, 지속적이며, 항상 동일한 나I or me, [그리고] 다양하고 일시적인 나의 감각, 기억, 심상, 생각, 지각, 이해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배척했다. 그는 자유의지 문제에 관한 칸트식 해법, 즉 '나'는 현상계의 인과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본체적 자아라는 것에 반대했다. 그는 자아란 역사를 지닌 헤겔적 존재자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자아는 로크식의 개인으로, 의식, 감각, 기억으로 이루어진 복합체다. 따라서 1876년 이중화된 인격이 신문 1면에 등장했을 때 그는 무척 기뻐했다. ('이중화된 인격'에서 주목할 점은, 나눠진 것이 수동적인 성질의 의식이 아니라 인생, 인격이라는 점이다.) 하나의 몸 안에서 교차하는 두 개의 자아는 각각의 인식과 일련의 기억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텐은 생각했다. 거기에는 초월적 영혼도, 본체적 자아도 없다."(267)


12장 최초의 다중인격 


# 파리의 남성 정신병원 비세트로의 수석의사인 쥘 부아쟁이 자신의 담당 환자 루이 비베─인격 분열을 동반하는 대大히스테리아 사례로 제시된─에 대해 설명한 날인 1885년 7월 27일부터 '다중인격'이 존재하게 되었다. 


13장 트라우마 


"샤르코는 히스테리아가 신체적 트라우마로 생길 수 있다고 가르쳤다. 기억상실 등의 증상을 일으킨 정신적 트라우마도 있었다. 더 큰 관심을 받은 연구는 직접적 두부외상이 야기하는 기억상실이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두부외상은 항상 존재했고, 의심의 여지 없이 기억상실을 일으켰지만, 이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는 1870년 이후에야 시작되었다." "심리적 트라우마, 회복된 기억, 정화abreaction에 관한 학설은 진실의 위기를 불러왔다. 이 학설을 개척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인 프로이트와 자네는 정반대 방식으로 위기를 마주했다. 자네는 거짓말과 만들어진 거짓기억으로 환자들이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을 말하는 데에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을 가지지 않았다. 그에게 진리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었다. 프로이트에게는 진리가 절대적이었다. 프로이트는 진정한 이론Theory을, 다른 모든 것이 종속되어야 할 거대이론을 목표로 했고, 자신의 환자도 그들 자신의 진실을 직면해야 한다고 믿었다."(306-7, 318)


"잃어버린 기억과 회복된 기억에 관한 한, 우리는 프로이트와 자네의 후계자들이다. 한 사람은 진리를 위해 살았고, 상당히 오랫동안 자신을 기만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심지어는 자기 기만을 스스로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다른 한 사람은 훨씬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으며, 환자에게 거짓을 말함으로써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그러면서 자신이 다른 숭고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았다." "트라우마의 심리화는 오랫동안 존재론에 공헌해왔던 영혼의 영적 고통이 이제는 숨겨진 심리적 고통이 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고통은 우리 안에 내재된 유혹에 의해 생긴 죄악의 결과가 아니라, 밖에서 우리를 유혹한, 죄지은 자가 일으킨 고통이기 때문이다. 이 혁명은 트라우마를 축으로 그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트라우마는 자네가 심리적 트라우마에 관한 최초의 통찰을 《철학비평》에 발표한 1887년 이후부터 심리화가 되었다. 바로 그해에 유럽의 다른 한쪽에서는 니체가 《도덕의 계보》를 탈고했다."(319-20)


14장 기억의 과학들 


"1861년이 되어서야 해부학자들은 두개골을 열어볼 수 있었고 정신기능의 손실에 해당하는 뇌의 손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폴 브로카(1824~1880)가 그러했다. 〈이 사례에서, 전두엽의 병변이 언어기능 상실의 원인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뇌의 운동성 언어중추인 브로카 영역으로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 "1879년 헤르만 에빙하우스(1850~1909)는 심리학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립했다. 에빙하우스는 다른 종류의 지식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형태의 기억을 연구하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무의미한 음절을 기억해내는 실험을 했다." "에빙하우스의 업적이 중요한 점은 연구자료의 통계처리법을 확립했다는 것이다. 기억은 일련의 무의미한 음절을 기억해내는 능력의 맥락에서 조사되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에는 이 기억해내는 능력의 통계분석을 고안해야 한다고 했다. 에빙하우스는 전형적 인간인 자신을 대상으로 연구에 착수했지만, 그 행동은 오직 통계적 정밀 검토를 통해서만 이해되어야 한다고 했다."(329-31)


"리보는 자신의 책에 스코틀랜드 학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적을 정도로 영국의 연합주의 심리학─관념 간의 연합association에 의해 인간의 의식이 형성된다는─의 충실한 신봉자였다. 유익하게도, 그는 기억이 마치 하나의 능력인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며, '기억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기술, 지식 등 습득된 여러 다른 종류의 능력이 뇌의 다른 부위에 저장된다는 데에서 연역해낸 추론에 불과하다. 리보는, 마음과 뇌의 관계는 당대 대부분의 실증주의자나 과학주의자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으로 연관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기억이란 본질적으로 생물학적 사실이고, 우발적으로만 심리적 사실이 된다〉고 적었다." "그는 그저 순수하게 추론적인 신경생리학의 한 부분으로 그렇게 적었을 뿐이다. 의식은 신경계통에서 일정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특정 사건(당시 용어로는 '방출')을 의미한다. 같은 종류의 사건이지만 훨씬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나는 것은 무의식이다."(334-5)


"리보와 그의 동료 연구자들의 중요성은 그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을 제공했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기억에 관한 진정한 지식, 과학적 법칙으로, 지금도 〈리보의 법칙〉이라 불린다. 그가 그 법칙에 붙인 이름은 퇴행regression 또는 복귀reversion의 법칙이다. 어떤 병리에 의해서든 간에 〈기억의 점진적 파괴는 논리적 순서, 즉 법칙을 따라 진행된다. 불안정한 기억에서부터 안정된 기억으로 점차적으로 진행되어간다.〉" "우리의 관심은 이 법칙이 어떤 종류의 법칙이고자 하는지에 있다. 그것은 객관적 진리이다. 그것은 사실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 사실이라는 것은 병리학적 정신의학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기억의 상실, 망각에 관한 법칙이다. 그 법칙은 신체적 손상에 의한 망각과 정신적 쇼크로 인한 망각을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그것은 옛 의미의 트라우마와 앞으로 나오게 될(리보의 시점은 1881년이다) 트라우마의 의미를 모두 설명한다."(337-8)


15장 기억-정치 


"잠시 인류학적 관점으로 생각해서, 집단기억을 유지하는 것이 집단정체성과 차별성을 견고히 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보면 크게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홀로코스트 기억의 정치는 인간사회의 오래된 관행 중 하나다. 개인적 기억의 정치는 비교적 새로운 것이다. 물론 집단적 기억과 개인적 기억 사이에 상호연관이 있음을 나는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둘 사이의 확실한 연결고리 하나는 트라우마다. 트라우마성 스트레스의 과학으로부터 알게 된 것에는, 강제수용소 생존자 자신 및 그 자손들은 아동학대 피해자만큼 심리적으로 고통받는다는 사실이 있다. 그러나 이는 한 방향으로만 투영해서 본 것 같다. 이 말은, 홀로코스트 기억은, 트라우마학學이 존재한 적이 없다 할지라도, 또 기억의 과학들이 19세기 말에 출현하지 않았더라도, 집단기억의 한 부분이 되었을 것이고 그와 연관된 정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개인적 기억의 정치는 이들 과학이 없었더라면 결코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342)


"개인적 기억의 정치는 특정한 유형의 정치이고, 지식을 둘러싼, 혹은 지식에 관한 권리를 둘러싼 세력다툼이다. 그 정치는 특정 종류의 지식이 존재할 가능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개인에 관한 사실의 주장과 반박이 끝없이 이어지고, 이 환자에 대한, 저 치료사에 대한 주장이 악덕과 미덕에 관한 사회적 관점과 결합된다. 표층지식을 두고 경쟁하는 주장들의 저변에는 심층지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 심층지식은 참-또는-거짓을 확인해줄, 기억에 관한 사실들의 존재에 관한 지식이다. 과학으로 알려주는 기억의 지식에 관한 가정이 없다면, 이런 종류의 정치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적대하는 진영들은 각 표층지식의 기반 위에서 세력다툼을 하지만, 심층지식이 있다는 것은 공통적으로 인정한다. 각 진영은 서로에게 반대하고, 자기들이 더 나은, 더 정확한, 최고의 근거와 방법론에서 끌어낸 표층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야말로 트라우마의 기억을 기억해낸 자와 그것에 의문을 품은 자 사이의 대결이다."(343)


16장 마음과 몸 


"서구 역사에서 다중인격의 진행과정이 알려주는 것은, 보통 사람이나 전문가가 무엇을 말할 태세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불안한 마음의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 소통하려 들지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는 마음을 연구하는 모든 철학자가 주목해야 할, 마음의 다른 상태가 있을 가능성을 자연의 실례로부터 찾지 못한다." "다중인격은 마음에 관해서 '직접적으로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말은, 마음(혹은 자아 등등)에 관한 실질적 철학의 주제를 다룰 아무런 근거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 현상은 분명 그 현상과는 완전히 독립적인 이유를 가진 마음에 관한 어떤 주장을 예시해줄 수는 있다. 그렇다면, 그 현상은 철학적 주장을 입증하는 근거가 아닐까? 아니다. 다중현상은 단지 색채를 더해줄 뿐이다. 다중인격에 현실적 삶의 모습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때로 근거처럼 보이지만, 예시되는 학설은 다중인격과 상관없는 원칙에 그 뿌리를 두고 있고, 다중인격의 존재로써 입증되지도 않는다."(359-60)


17장 과거 속의 불확정성 


"나는 인간 유형의 고리 효과에 대해 종종 말해왔다. 고리 효과란, 한쪽에는 사람들이, 다른 한쪽에는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을 분류하는 방식이 있어서 그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말한다. 특정 유형의 사람이라고, 또는 특정 행위를 한다고 간주되는 것이 그 개인에게 다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새 분류방식이 그렇게 분류된 사람에게 조직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혹은 그렇게 분류된 사람들이 지식을 가진 자, 분류하는 자, 분류의 과학에 대항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분류된 자들을 변화시키고, 그리하여 그들에 관한 지식을 다시 변화시킨다(되먹임 효과). 여기에 변수를 더해보자. 사람과 행동을 분류할 새로운 분류법이 발명되고 새로 주조되면, 좋든 나쁘든 간에 한 사람의 개인이 되는 새로운 방식이 창조되고, 새로운 선택의 길이 열린다. 새로운 서술이 나타나고, 따라서 새로운 서술하의 행위가 출현한다. 실질적으로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 관점에서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385-6)


"이는 옛 행위를 재서술하는 것, 특히 새롭게 만든 서술형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새로운 서술하에 놓인 옛 행위는 기억 속에서 재경험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그 서술이 정말로 새로운 서술이고, 기억된 사건이 일어났던 시간에 그 서술이 가능하지 않았거나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제 기억 속에서 경험되는 무언가는 어떤 의미로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행위는 있었지만, 새로운 서술하의 그 행위는 아니었다. 더욱이, 그 사건이 이렇듯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될 것이라고는 확정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사건들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미래에 새로운 서술이 출현할지 확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다음의 말은 확실하게 되풀이해야겠다. 억제된 기억이든 억압된 기억이든 간에, 완전히 확정되어 있는, 끔찍한 사건에 대한 똑바른 기억 또한 이 세상에는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탐색하는 기억은 그러한 것의 주변에 있는 것이고, 더 직접적인 회상과는 다른 정신적 기전으로 인해 야기되는 기억이다."(400-1)


"기억을 서사로 간주해야 한다는 신조는 기억-정치의 한 측면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만들어냄making-up으로써, 즉 우리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엮어냄으로써,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써, 우리의 영혼을 구성해낸다. 우리가 자신에 관해 말하는 이야기, 또 자신에게 말해주는 이야기는 우리가 무엇을 했고 어떻게 느꼈는지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그 이야기는 세상과 맞물려야 하고, 적어도 외견상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조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진짜 역할은 하나의 삶, 어떤 개성, 하나의 자아를 창조하는 일이다. 기억을 서사로 보는 시각은 흔히 인도적이고, 인본주의적이며, 반反과학적이라고 제시된다. 이는 기억을 신경학적 프로그램으로 이해하는 시각과 분명 상충된다." "그럼에도 기억-정치는 바로 실증주의 심리학의 과학적 배경에서 생겨났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동기는 영혼을 우리가 그것에 대해 지식을 가지고 있는 무언가로 대체하려는 세속적 욕구였다."(403-4)


18장 거짓의식


"내가 거짓의식으로 의미하려는 것은 아주 평범한 것이다. 즉 자신의 특성과 과거에 관해서 종요롭게 거짓믿음을 형성해온 사람들의 상태이다. 거짓의식은 그 상태에 빠진 당사자에게 책임이 없을지라도 당사자에게 유해한 상태라고 나는 논증하겠다. 거짓기억은 거짓의식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보통 '거짓기억증후군'은 그 개인에게 결코 일어난 적이 없던 사건들의 기억으로 이루어진 기억 패턴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사건을 (대개가 그렇듯이) 부정확하게 기억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건들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사실, 소위 거짓기억증후군은 반대-기억증후군contrary-memory syndrome으로도 불리는데, 진짜 기억처럼 보이는 그 기억은 거짓일 뿐만 아니라 현실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원형적인 예를 들자면, 〈자기가 했던 말을 취하한〉 어떤 사람은, 삼촌이 자신을 자주 강간했다고 기억한 것 같았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음을 이제 깨달았다고 말한다."(416)


"금방 예로 든 반대-기억과 대체로 비슷한, 단지 사실이 아닌 기억인 단순-거짓-기억merely-false-memory에서는 삼촌이 진짜 가해자인 아버지의 가림막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기억은 현실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거는 근본적으로 다시 주조된 것이다." "기억과 관련된 또 다른 문제에는 잘못된-망각wrong-forgetting이 있다. 자신의 성격이나 성질을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과거의 핵심 사항을 억제suppression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억압repression이 아니다. 억압은 사건이 의식적 기억에서 사라져버리고, 욕동drive과 성향도 의식적 욕구desire에서 사라지는 가설적 기전이다. 그 가설에서는, 억압 자체는 도덕적 주체의 자리에서 행하는 고의적이거나 의식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어떤 기억이 의도적으로 억제되어 있다면, 거짓의식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이들 세 가지와 그 외의 가능성 있는 것들을 한데 묶어 기만적-기억deceptive-memory의 표제로 분류하려 한다."(416-7)


"자신만만하고 노골적인 회의론자는 이 모든 것이 환상이라고 가볍게 털어내지만, 덜 오만하고 더 성찰적인 의혹을 품은 사람들은 환자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었음을 인정한다." "그들은 다중인격 치료가 거짓의식으로 이끌지 모른다고 경계한다. 아동학대의 기억처럼 보이는 것이 반드시 틀린 것이라거나 왜곡되었다는 노골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다. 그 기억은 충분히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최종 결과는, 온전한 개인이 되려는 목적을 실현하는 인간이 아니라, 철저하게 주조된 인간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경계를 하는 것이다. 그건 자기 인식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자기 이해를 흉내내는 소란스러운 재잘거림으로 더 악화된 개인이다. 일부 페미니스트도 이와 같은 도덕적 판단을 공유한다. 너무 잦은 다중인격 치료는, 깨지기 쉬운 그릇이라는 자기 이야기를 소급해서 창조해내고, 여성은 스스로는 인생을 버텨나갈 수 없는 수동적 존재라는 옛 남성 모델을 암묵적으로 확인시켜준다고, 그들은 덧붙인다."(4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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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와 타협 - 임진왜란을 둘러싼 삼국의 협상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11
김경태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1부 전쟁 전야 


1. 임진왜란과 사람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투 방식을 선호하였는데 이것이 그를 일본 장악으로 이끈 힘 중 하나였다. 또한 히데요시는 전쟁이 불리한 상황에 처했을 때 교섭으로 전환하는 속도도 빨랐다." "'일본 통일'을 완수한 히데요시는 일본의 생산 체제를 새로운 기준으로 편성하였다. 동일한 기준 척도를 사용해 전국의 토지를 조사하여 각 토지의 생산량을 확정하는 동시에, 해당 토지를 경작할 사람도 정하였다. 토지 경작자인 농민층은 토지 소유자인 다이묘에게 직속되었고, 따라서 그 사이에 있던 중간층의 수탈을 배제되었다. 배제된 중간층은 농민이 되거나 다이묘에 속하는 무사가 되어야 했다. 다이묘는 히데요시가 명령하면 확정된 생산량에 따라 군사를 동원해야만 했다. 히데요시가 생산 체제를 급격히 재편한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단기간에 대규모의 침략군을 편성하기 위해서이지 않았을까? 히데요시에 의해 통일된 일본은 그의 의도에 따라 침략 체제의 길을 착실히 밟아 가고 있었다."(18-20)


"'종계변무宗系辨誣' 문제의 해결은 선조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 명나라의 법전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조선의 건국자인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이자 이성계의 정적이던 이인임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는 고려 말에 명으로 도망친 윤이와 이초의 모함에 의한 것이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이를 수정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명에서 조선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고 미루기만 하였다. 그리하여 선조대에 더욱 적극적으로 수정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는데, 1588년 유홍이 개정된 『대명회전』 한 질을 가지고 오면서 최종적인 해결을 보게 되었다. 선조는 신하들의 요청으로 '정륜입극 성덕홍렬正倫立極 盛德洪烈'이라는 존호를 받았다. 200년간 각고의 노력으로도 이루지 못한 '윤리를 바로 세운 커다란 공'을 다름 아닌 선조가 세운 것이다." "후대에 선조가 재위한 시기를 '목릉성세穆陵盛世'로 칭송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없었더라면 선조의 시기는 티끌 하나 없는 융성한 시대로 기억되었을 것이다."(22-4)


"임진왜란 당시 명의 황제였던 신종神宗 만력제萬曆帝에게는 '태업한 황제'라는 오명이 따라다닌다. 그런데 그에게 또 다른 별명이 있다. 바로 '고려 황제'다. 황제의 업무를 거부하던 신종이 유독 열성을 다한 일이 있었는데 바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구원하는 일이었다. 조선은 명의 구원병을 움직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신종을 칭송하였고, 신종은 자신의 언행에 열렬히 반응해주는 조선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선물을 내려 주었다. 국내의 정치는 상관하지 않고 조선의 일에 팔을 걷고 나서는 신종을 두고, 중국인들은 '고려 황제'라며 비꼬았다. 신종은 선조와 유사한 점이 있다. 어린 시절 왕위에 올라 유능한 스승들을 만나 정치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는 점과 그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 흔들림 없이 권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강하게 느꼈다는 점이다. 그러나 선조가 신하들 사이의 정치 분쟁에 개입하면서 자신에게 권위가 집중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한 반면, 신종은 정치를 외면해 버렸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27-8)


2. 전쟁 전 세 나라는 어떤 관계였을까 


"본래 조선인이 외국을 여행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나라의 공식적인 임무를 띠고 파견되는 사절만이 외국을 경험할 수 있었다. 조선과 가장 가까운, 그리고 '익숙한' 외국은 명이었다." "사행원들은 정해진 길을 따라 북경에 들어간 후에도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없었다. 조선의 사신에게는 주어진 임무가 있었다. 대개 조선 국왕의 국서國書를 명 황제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북경의 지정된 숙소에서 대기하다가, 명 황제의 조회에 참석하여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명 황제의 회답을 받아 돌아가는 임무 외에 개인적인 행동은 허가되지 않았다." "한편 명에서도 조선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조선의 사절과 같이 정기적인 형태는 아니었으며 규모도 크지는 않았지만, 국왕의 책봉이나 명나라의 중요한 일을 전하기 위한 사절들이 조선을 방문하곤 했다. 그렇다면 명나라 사람들은 실제의 조선을 얼마나 알 수 있었을까. 중요한 것은 조선 사람이든 명나라 사람이든 자신이 보고 싶은 면만을 보고자 했다는 사실이다."(31-4)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1587년에 쓰시마對馬의 소씨宗氏에게 조선 국왕으로 하여금 일본으로 항복하러 오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히데요시가 조선에 대해 가지고 있던 관념의 한 면을 보여 준다. 그는 조선이 쓰시마 옆의 어느 지역 정도이며 자신의 명령에 쉽게 따를 것으로 생각했던 듯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인식을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1590년 조선 국왕에게 보낸 국서의 내용이다. 그중에서 자신이 명을 침략할 예정이니 그때가 되면 협조하라는 대목에 주목해 보자. 이는 조선과 명이 맺고 있던 관계, 곧 '명 중심의 국제 질서'에 대한 지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거나 이를 무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전쟁이 시작된 후 조선에 들어온 일본군들은 조선이 매우 넓고, 조선인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며, 조선인들이 자신들을 '해적'이라고 여기며 도망치거나 공격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세 나라 모두 자신이 인식하고자 하는 모습으로만 남을 인식하고 있었다."(35-9)


3. 침략의 서막 


"1590년, 조선에서는 통신사행단을 구성하였다. 정사正使에 황윤길, 부사副使에 김성일, 서장관書狀官에 허성이 임명되었다. 이들이 들고 간 조선 국왕의 국서는 '일본 국왕'의 전국 통일을 축하하고 앞으로 신뢰 관계를 맺어 우호를 유지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히데요시는 이때 오다와라 지역의 호조씨를 공략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출진한 상태였다. 다른 나라의 사신을 불러 놓고 자리를 뜬 데다가 기약도 없이 기다리게 한 행위, 그 자체가 외교 관계에서 있어서는 안 될 무례한 행위였다. 물론 히데요시는 통신사 일행을 항복 사절로 여기고 있었기에 이러한 행위를 꺼리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 국왕의 국서를 받은 히데요시가 내놓은 답서에서 〈나의 소원은 세 나라에 아름다운 명성을 떨치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余願只願顯佳名於三國而已〉라는 부분은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 일면을 보여준다. 히데요시의 야망은 그 실현 가능성과 별개로 이제 조선 사람들도 아는 사실이 되었다."(42-4)


2부 전쟁과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 


1. 벽에 부딪힌 전쟁, 협상의 시작 


"일본군의 요구는 표면적으로 일관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구한 대로 길만 비켜 주면 일본군은 조선에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은 채 조용히 명으로 향했을까? 국왕을 데리고 여기를 피하라는 요구는 히데요시의 말과 같이 조선에서 통치권을 포기하고 일본의 요구에 전면적으로 따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초부터 히데요시는 조선을 일본과 동등한 나라로 보고 협조를 부탁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고 할지라도 조선이 오랜 기간 관계를 맺어 온 나라인 명을 '배반'하고 일본에 협조할 리가 없었다. 이덕형을 답을 듣고 저들은 〈명 침략에 협조해 달라〉는 명분은 물론 〈명 침략을 위한 길을 빌려 달라〉는 요구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다. 일본에서 교섭을 전담하던 고니시 유키나가와 쓰시마 측 인물들은 이후 더 이상 조선에 그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후일 고니시 유키나가는 명나라에서 보낸 교섭자 심유경과의 대화에서 전혀 다른 요구 조건을 내세웠다."(58-9)


"명은 복잡한 관료 체계와 지방 조직을 갖춘 큰 나라였다. 장수를 임명하고 군사를 동원하여 파견하는 일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많은 시간이 들었다. 따라서 그 전에 조선이 일본군에 의해 완전히 장악당하지 않도록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이 목적으로 선발되어 조선으로 왔으며 이후의 강화 교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인물이 바로 심유경이다." "1592년 8월 17일에 의주에서 선조와 만난 후 곧장 평양성으로 향한 그는 고니시 유키나가와 만나 50일간의 휴전을 약속하고 돌아왔다. 고니시 유키나가로부터 편지도 하나 얻어냈는데 다만 명나라에 조공하는 것을 원할 뿐이라는 내용이었다. 앞서 조선과의 교섭에서는 명을 침략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가? 태도를 완전히 바꾼 것이다. 명과 교섭하는 자리에서 명을 침략하겠다는 말은 당연히 통하지 않을 것이다. 교섭 상대가 받아들일 만한 조건을 제시한 후 유리한 지점을 찾아가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68-9)


"이여송이 이끄는 명군은 심유경을 붙잡은 채로 12월 25일 의주에 들어왔고, 평양성으로 진격하였다. 한편 평양성의 일본군은 휴전 기간 동안 안심하며 심유경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명나라의 대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명군은 심유경의 이름을 사칭하여 평양성에서 일본군을 불러내어 습격하였다. 그리하여 평양성 전투가 재개되었다. 일본군의 저항은 거셌다. 현재 전해지는 〈평양성탈환도平壤城奪還圖〉 등에도 나타나 있듯이 일본군은 성벽에 빼곡히 늘어서서 창을 들이밀거나 조총을 쏴대어 명군과 조선군이 접근하기 어렵게 하였다. 성안에는 여러 겹의 방어 구역을 설치해 두었다. 그러나 명군은 이전의 패배를 통해 배운 점이 있었다. 성을 공격하기 위해 대포 등의 무기를 준비해 온 것이다. 병력도 일본군을 압도하였다. 결국 고니시 유키나가를 비롯한 일본군은 평양성을 버리고 남쪽으로 퇴각하였다. 이후 일본군은 한성으로 모여들었다. 1593년 1월의 일이었다."(71)


2. 협상의 조건, 허세와 타협 


"원래 히데요시가 조선에 직접 건너와 일본군을 지휘할 계획이었다. 일본군은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지 않고 중대한 결정을 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끝내 조선으로 오지 않았고, 모친의 사망 등으로 나고야를 떠나 있는 기간이 생기면서 조선 현지 사정의 전달과 명령의 하달 사이에 시간차가 크게 발생하게 되었다. 일본군이 빠르게 태세 전환을 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히데요시가 조선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었다." "1593년 1월 23일에 일본군은 명군에 밀려 한성으로 후퇴했다는 사실과 군량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히데요시가 이 서신을 받은 것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는 마침내 꿈에서 깨어났다. 4월 12일에 구체적인 후퇴 명령이 내려졌다. 그는 한성에서 퇴각하라는 명령과 동시에 진주성을 남김없이 섬멸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전쟁이 불리한 상황에 빠졌음을 깨달은 이후 히데요시의 전략적 전환은 매우 빨랐다."(83-5)


"히데요시가 제시한 7개 강화 조건을 간단히 요약하면 ①명나라와 일본의 혼인, ②무역 재개, ③화친 서약, ④조선 4도의 할양, ⑤조선 왕자와 신하를 인질로 요구, ⑥조선 왕자(임해군과 순화군)의 송환, ⑦조선의 서약서 작성이다." "교섭이 언제까지나 평행선을 달릴 수는 없었다. 타협 지점을 찾아야 했고, 마지막으로 히데요시는 본심을 내비쳤다. 히데요시는 사실 영토나 보물과 같은 실물을 요구하지 않겠으며, 무엇보다 명예가 중요하니 영토를 줄 수 없다면 이를 대신할 다른 무언가를 달라고 하였다." "요약하자면, 그는 결코 유리하지 않은 입장에서 손에 쥔 것도 없이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얻고자 하였다. 협박과 허세, 회유와 설득을 함께 사용하였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그가 필요로 한 것은 혼례(인질=명예)와 영토(실물)였고, 그중에서 좀 더 중요시한 것은 명예였다. 협상 과정에서 드러나듯이 히데요시는 매우 현실적인 교섭가였다. 그는 시세의 변화에 대한 적응이 매우 빨랐다."(86, 95-6)


"1593년 6월 말, 부산에 머물러 있던 심유경이 한성으로 출발하였다. 당초에 '히데요시의 7개 조건'을 최초로 전달받은 이들 중 하나가 바로 고니시 유키나가였다. 심유경은 고니시 유키나가와 상의하여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고자 했다. 혼례와 조선 영토 할양은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심유경과 고니시 유키나가가 고안한 방법은, 고니시 조안 등 '일본 사신' 일행을 명나라 조정에 보내 사죄의 뜻을 표하고 명나라의 고위 관료를 일본으로 파견하게 하는 것이었다. 명나라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파견한 칙사의 화려한 행렬이 교토에서 히데요시를 접견하는 장면이 연출된다면, 히데요시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1593년 8월 이후, 명군은 무장 유정을 지휘관으로 하는 일부 병력만을 남기고 모두 철수하였다. 일본군도 울산에서 거제, 김해 지역에 이르는 일부 지역을 지킬 병력만 두고 나머지는 철수하였다. 전쟁이 강화 교섭기로 접어들었다."(101-2)


3. 조선과 명, 명과 명, 일본과 일본의 갈등 


"조선이 판단하기에 명군 지휘부는 교섭을 추진하는 절차를 지키지 않을 뿐더러 교섭의 내용도 거짓투성이였다. '히데요시는 명 침략의 야욕을 가졌던 자이며 지금도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은데 그가 책봉과 조공을 바란다니 이는 심유경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며 결국 교섭은 파탄이 나고 전쟁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다시 말해 조선이 강화 교섭 자체에 반대하고 전쟁만을 우선하였던 것이 아니라, 당시 명군 지휘부의 강화 교섭 방식을 불신한 것이었다. 게다가 강화 교섭이 진행되면서 송응창의 조선 비난과 권한 남용이 심해지자 조선의 저항감이 높아져 갔다. 이대로 명군 지휘부에 끌려다니다가는 후일 교섭이 파탄 나고 전쟁이 재개되었을 때 명나라가 더 이상 조선을 도와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1594년 2월, 마침내 조선 사신 김수가 북경에 도착하였다 그는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성곽을 늘리고 있으며 도발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명을 침략하려 한다는 소문 등을 보고하였다."(108-9)


"1595년 5월 22일, 히데요시는 3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명·조선과 일본의 화평 조건'을 제시하였다." "첫 번째 조건은 조선의 왕자다. 그런데 영토에 대한 규정이 여전히 흥미롭다. 조선의 8개 도 중에서 일본이 4개 도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 것이다. 명과 조선은 인정하지 않았던 전제조건이다. 어쨌든 히데요시는 이 전제를 근거로 조선의 왕자가 인질로 온다면 그의 영지로 내리는 형식을 취하여 '일본이 가지고 있는' 4개 도를 돌려주겠다고 하였다." "두 번째는 명과 조선에 대한 요구가 아니다. 심유경이 조선의 왕자(인질)를 데리고 웅천 왜성에 온다면 일본이 만든 왜성 중 10개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칙사, 즉 명나라 사신에 대한 부분이다. 명나라에서 파견한 사절의 행렬이 자신에게 오는 장면이 실현된다면 '명나라가 사죄를 하였다'라며 선전할 수 있을 것이다." "히데요시는 '양보'를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히데요시의 양보가 조선의 입장에서는 전혀 양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124-7)


3부 협상 결렬, 다시 시작된 전쟁 


1. 1596년 9월, 오사카에서 벌어진 일 


"마침내 9월 1일 책봉사가 오사카에서 히데요시를 만났고 대화를 나누었다. 9월 3일 책봉 의례가 행해졌다. 히데요시는 기쁘게 책봉을 받았고 이로써 '일본 국왕'이 되었다. 강화 교섭에 공로를 세운 이들도 함께 명나라의 관직과 그에 상응하는 관복을 받았다. 그런데 조선의 통신사에 대해서는 전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책봉 의례가 끝난 후 며칠 동안 심유경이 직접 히데요시와 만나 이야기하고 서신도 전했으나 협상은 실패로 끝났다. 히데요시는 〈명은 자신을 책봉해 주었으니 적대시하지 않겠으나 조선은 무례하니 화친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책봉사와 통신사에게 즉시 돌아갈 것을 요구하고, 조선을 다시 침략할 의지를 밝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여러 가지 소문이 난무하였으나 공통된 부분은 〈명과는 적대하지 않겠다〉, 〈조선은 무례하니 다시 침략하겠다〉였고, '무례'의 근거는 〈명과 일본의 교류를 방해〉했으며 〈통신사가 늦게 옴〉 그리고 〈왕자가 오지 않았다〉였다."(136-8)


"히데요시는 왕자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책봉사와 통신사로 만족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책봉사의 책임자였던 이종성이 도망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통신사가 책봉사보다 늦게 온 데다가 관직이 높지 않은 자라고 하였다." "히데요시는 이대로 전쟁을 끝낼 수 없었다. 책봉 의례를 마친 후, 그는 책봉사 일행과 담판을 하여 조선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낼 약속을 받고자 하였다. 그는 명나라를 적대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명은 이미 책봉사를 보냈기에 더 이상 받아 낼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조선에 집중하였다. 책봉사는 그의 요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명나라가 종주국이 되어 책봉까지 해주었는데 무엇을 더 바란다는 것인가. 같은 국왕의 나라인 조선과 '화해'하고 전쟁을 끝내라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히데요시는 전쟁 위협을 가해서 혹은 정말로 다시 전쟁을 일으켜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자 했다. 교섭 결렬 선언 후 히데요시의 요구는 단순해졌다. 조선의 왕자를 인질로 보내라는 것이었다."(140-1)


2. 새로운 전쟁과 협상의 재개 


"정유재란은 임진왜란과 여러 부분에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히데요시가 1597년 2월 21일 일본군 장수들에게 내린 명령서에서 그 일면을 살펴보자. 총 21개 항목 중에서 열일곱 번째는 〈전라도는 철저히 공략하고 충청도와 그 외의 지역은 가능한 만큼만 공격할 것〉, 열아홉 번째는 〈군사 행동이 끝난 후에는 성을 지을 장소를 논의하고 다수결로 성을 지킬 장수를 정한 뒤, 일본으로 돌아오기로 결정된 장수들이 성을 쌓을 것〉이다. 이는 곧 이 전쟁이 명나라를 침략하거나 조선 전역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일본군은 실제로 충청도 직산稷山까지 북상하여 전투를 치른 후 남하하여 남해안에 성을 쌓고 주둔하였다." "일본군은 조선 백성을 사로잡아 포로로 끌고 가거나, 코와 귀를 베어 가는 일을 자행하였다. 이 전쟁은 영토를 얻을 가능성이 없었다. 히데요시는 '조선의 영토를 주겠다'는 약속을 할 수 없었기에 조선인 납치를 허락하거나 코와 귀를 증거로 포상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147-51)


3. 전쟁의 종결 - 전쟁과 평화, 전투와 강화 교섭


"1598년 8월 18일 히데요시는 전쟁의 끝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공식적인 철수 명령은 그의 사후 당분간 히데요리를 보좌하여 공동으로 정권을 담당하게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다이로大老들에게 맡겨졌다. 그들의 고민도 적지 않았다. 일본군은 무조건 철수해야 했다. 전쟁의 명분은 이미 사라졌다. 전쟁을 일으킨 자도 죽었다. 일본군을 최대한 안전하게 귀국시킨 후, 하루라도 빨리 일본을 안정시켜야 했다." "일본 측은 조선에 왕자는커녕 자그마한 공물을 요구할 상황도 아니었다. 몸만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어도 다행이었다. 일본군의 교섭은 오직 무사 철수를 목표로 할 뿐이었다. 이는 일본군과 대치 상태에 있으면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명군의 이해 관계와 맞아 떨어졌다." "한편 진린은 이순신의 설득에 마음을 바꾸었다. 이순신과 진린이 이끄는 수군은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원하러 온 시마즈 요시히로 등의 수군에 맞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160-3, 166)


"〈이슬로 왔다가 이슬로 사라지는 삶인가. 나니와(오사카)의 영광은 꿈속의 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기 전에 남긴 시다. 오로지 서정적이고 몽환적이기만 하다. 이 시처럼 히데요시는 자신의 영광스럽던 시절에 대한 기억과 자식에 대한 걱정만을 지닌 채 영원한 잠에 들었을 것이다. 그는 사라졌지만 우리는 그의 행위가 가져온 참혹한 전쟁을 기억해야만 한다. 명의 황제 신종 만력제는 1620년까지 황제의 자리에 있었다. 임진왜란 후 명나라는 혼란기에 빠져들었다. 황제는 여전히 국내 정치 문제의 해결에 관심이 없었다. 후계 구도에 대해서도 손을 놓았다. 신종 만력제의 사후 명나라는 약 24년을 더 지탱하다 멸망하고 말았다. 선조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국왕으로 자신을 포장할 수 있었다. 신하들의 경쟁 구도를 교묘히 이용하여 정치의 중심에 자신을 두었고, 광해군 책봉 문제와 영창대군의 탄생으로 오히려 그에게 권력이 집중되게 하였다. 선조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왕권은 약해지지 않았다."(167-9)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전 정권의 전쟁을 반성하며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고 있었다. 사명당 유정이 일본 내부의 정치 상황과 이에야스의 의도를 알기 위해 일본까지 파견되기도 하였다. 조선은 오랜 교섭 끝에 조건을 정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국왕으로 일본을 장악하고 있으며 국교를 요청한다는 국서를 보낼 것, 그리고 임진왜란 때 선릉과 정릉을 파헤친 범인(범릉적犯陵賊)을 잡아 보내라는 것이었다. 국서는 이에야스가 정권의 담당자로서 공식적으로 국교를 요청한다는 증명이었고, 범릉적의 송환은 조선에 행한 범죄를 반성하라는 요구였다. 절차와 명분을 중요시하는 조선의 조건이었다. 조건은 우여곡절 끝에 '성사'되었다. 이후 국서는 수정 과정을 거쳐야 했고, 범릉적은 진범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선은 국서를 받아들이고 범릉적을 처형함으로써 일본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1607년 조선에서 일본에 사절을 파견하였다. 이후 조선과 일본의 우호 관계는 에도 막부가 멸망하기까지 250여 년이나 이어졌다."(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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