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에 대한 거의 모든 것 - 가장 유명하지만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힘
마커스 초운 지음, 김소정 옮김 / 현암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당신이 모를 수도 있는 중력에 관한 여섯 가지 사실

1. 중력은 당신과 당신 주머니 속 동전이, 당신과 당신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다.

2. 중력은 아주 약하다. 지구의 전체 중력으로도 근육의 힘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손을 위로 뻗을 수 있다.

3. 중력은 약하지만 대규모로 작용하는 중력에는 저항할 수 없다. 중력은 전체 우주의 진화와 운명을 통제하는 힘이다.

4. 사람들은 중력이 빨아들이는 힘이라고 생각하지만 우주 대부분에서 중력은 날려보내는 힘이다.

5. 빅뱅 후에 중력 스위치가 켜지지 않았다면 시간은 방향성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6. 중력을 명확히 이해해야만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답할 수 있다.


1부 뉴턴

1장 · 달은 떨어지고 있다


달은 원 운동을 하면서 계속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다. 사과와 달은 둘 다 지구를 향해 떨어지는 상황에 놓여 있다. 두 물체의 운동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그저 사과는 지면과 평행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속력이 없기 때문에 지면을 향해 곧바로 떨어지지만, 달은 엄청난 속력으로 날아가는 포탄처럼 지면과 평행인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원을 그리며 떨어진다는 것뿐이다. 지구 중심에서 지표면까지의 거리는 6,370킬로미터이고, 지구 중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38만 4,400킬로미터이다. 다시 말해 달에서 지구 중심까지의 거리는 지표면에서 지구 중심까지의 거리의 60배이다. 60의 제곱은 3600이다. 즉 달에 미치는 지구의 중력이 지표면에 미치는 지구의 중력보다 정확히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 약해진 것이다. 뉴턴은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 약해지는 단일 힘이, 땅에 존재하는 사과와 하늘에 존재하는 달을 끌어당기고 있음을 입증했다. 정말로 중력은 보편 힘이었다. 26-7)


2장 · 마지막 마법사


똑바로 서 있는 원뿔을 상상해보자. 이 원뿔을 날카로운 칼로 깔끔하게 잘라보자. 칼로 원뿔의 한 옆면에서 다른 옆면을 완전히 통과하게 자르면 단면은 타원이 된다. 원뿔의 한 옆면으로 칼을 비스듬하게 집어넣고 밑면을 통과하게 자르면 한쪽 끝이 열린 ‘포물선’이 된다. 칼을 똑바로 세워 옆면과 밑면이 수직이 되게 자른 단면은 한쪽 끝이 열린 ‘쌍곡선’이 된다. 힘의 역제곱 법칙의 지배를 받는 천체의 이동 속력이 태양을 벗어날 만큼 충분히 빠르지 않으면(또는 에너지가 충분히 많지 않으면), 이 물체는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를 그리며 돈다. 태양을 탈출할 수 있을 정도로 이동 속력이 아주 빠른 천체는 쌍곡선 궤도를 그리며 저 멀리 우주로 날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두 물리 상태의 중간에 위치한 포물선 궤도를 그리는 천체는 태양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붙잡히지도 않는다. 공전 궤도가 포물선인 천체는 행성과 태양 사이의 거리가 무한히 멀 때만 태양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37-8)


3장 · 3월에는 조수를 조심하라


지구는 부피가 있는 볼록한 천체이기 때문에 당연히 달에 더 가까운 지역이 있다. 달은 가까운 지역을 먼 지역보다 더 강하게 끌어당긴다. 뉴턴은 달의 중력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력도 지역마다 다를 것임을 알았다. 물은 단단한 암석과 달리 자유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달의 중력은 암석보다는 물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사실도 알았다. 대양의 한 점 바로 위에 달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점에서 달이 대양의 해수면을 잡아당기는 힘은 좀 더 멀리 있는 대양의 바닥인 해저를 잡아당기는 힘보다 셀 것이다. 뉴턴은 중력의 이런 차이 때문에 해수면이 해저에서 멀어지고 대양은 달이 있는 방향으로 부풀어 오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달의 중력 차이 때문에 생기는 결과는 또 있다. 달에서 보았을 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바다를 생각해보자. 이곳은 해저가 해수면보다 달에 더 가까이 있기 때문에 해수면보다 해저가 달의 중력을 더 강하게 받는다. 그 결과 해저의 물이 해수면으로 끌어당겨져 바다가 위로 볼록해진다. 48)


조수란 단순히 물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한 물체가 다른 물체에 중력을 가해 그 물체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실제로 중력은 바로 밑에 있는 대양의 물을 볼록하게 부풀리는 것처럼 바로 밑에 있는 암석도 볼록하게 부풀린다. 그러나 암석은 물보다 훨씬 단단하기 때문에 변형되는 정도가 크지 않다. 달 때문에 암석이 늘어났다가 줄어들기 때문에 지구를 구성하는 단단한 부분들도 25시간에 두 번씩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는다. 이제 물을 머금고 있는 다공성 암석이 우물을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우물을 둘러싸고 있는 암석은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라고 할 수 있다. 물을 빨아들인 스펀지가 그렇듯이 우물을 둘러싼 암석도 팽창하면 물을 빨아들이고 압축하면 물을 내보낼 것이다. 암석과 대양은 모두 만조 때는 팽창하고, 간조 때는 압축된다. 그 때문에 만조 때는 암석이 물을 빨아들여 우물 수면이 낮아지고 간조 때는 암석이 물을 내뱉어 우물 수면이 높아진다. 51)


달과 지구에 작용하는 조수는 단지 두 천체의 모양을 변형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구에서는 해수면을 높이거나 낮추고 달에서는 월진을 일으킨다. 달과 지구계의 전체 모습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는 달이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자전했다. 그러나 지구와의 조수 상호작용 때문에 달의 자전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달의 자전 속도가 빠를 때는 지구의 중력으로 볼록해진 부분이 달의 자전 속도 때문에 옆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달의 볼록한 부분은 지구를 정면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구의 중력은 옆으로 돌아가려는 볼록한 부분을 계속 잡아당기며 달의 자전에 제동을 걸었고, 결국 어느 시점이 되자 달의 자전 속도는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시간과 똑같아질 만큼 느려지고 말았다. 공전 주기와 자전 주기가 같은 달은 ‘동주기 자전synchronous rotation’을 하기 때문에 지구 중력에 끌려 볼록해진 부분이 계속해서 지구를 향한다. 이제는 달의 자전 속도가 '변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55)


그런데 조수 상호작용 때문에 자전 속도가 느려지는 천체는 달만이 아니다. 지구의 자전 속도도 느려지고 있다. 지구는 달보다 훨씬 무거워서 힘에 대한 운동 저항력이 더 크기 때문에 자전 속도가 느려지는 정도는 훨씬 적다. 그 증거는 산호초에서 찾을 수 있다. 열대 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다 해양 동물인 산호는 탄산칼슘을 분비해 단단한 골격을 만든다. 산호는 나무가 나이테를 만들듯 날마다 계절마다 두께가 다른 골격을 만든다. 산호가 만든 이 골격 층의 수를 세어보면 한 해가 몇 날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3억 5,000만 년 전에 살았던 산호 화석은 1년이 385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공전 주기는 다르지 않았을 테니 3억 5,000만 년 전에는 하루가 23시간이 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현재 우리는 하루의 길이가 100년 전에 비해 1.7밀리초 가량 늘었음을 알고 있다. 실제로 지난 2,500년 동안 하루의 길이는 100년에 1.7밀리초씩 늘어나고 있다. 55-6)


달의 중력 때문에 지구에서 일어나는 조수운동은 지구의 자전 속도를 늦추고, 그 때문에 지구의 ‘각운동량angular momentum’*은 줄어든다. 그런데 물리학에는 ‘고립되었거나 닫힌’ 계(고립계) 안에서는 절대로 각운동량이 변할 수 없다는 기본 강령이 있다(각운동량 보존법칙). 따라서 지구의 각운동량이 줄어들면 이를 보상하기 위해 다른 무언가의 각운동량이 늘어나야 한다. 그 다른 무언가가 바로 달이다. 달이 직선 궤도를 벗어나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공전 궤도를 지금의 공전 속도로 움직이려면 지구와 달의 거리가 지금만큼 떨어져 있어야 한다. 달의 공전 속도가 빨라지면 달이 조금 더 먼 거리를 이동해야 직선 궤도가 원 궤도로 구부러질 수 있기 때문에 달의 공전 궤도는 지금 궤도보다 조금 더 바깥쪽으로 이동한다. 지구에서 달로 쏘아 보내는 전파의 이동 거리는 해마다 3.8센티미터씩 늘어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달은 열두 달을 주기로 엄지손가락만큼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58)


# 각운동량 : 회전 운동하는 물체의 운동량


분점의 세차, 즉 지구가 흔들리는 운동을 하는 이유는 지구의 자전축이 움직이기 때문이지만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뉴턴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뉴턴은 태양과 달의 중력뿐 아니라 지구의 자전 때문에도 지구의 형태가 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지구의 적도 위에 있는 물체는 시속 1,670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날아다녀야 한다. 지구의 중력은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붙잡아둘 강력한 구심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실제로 지구는 완벽한 원이 아니라 적도 부분이 23킬로미터 정도 볼록하게 부풀어 있다. 뉴턴은 지구의 ‘적도가 볼록하게 부풀어 있기’ 때문에 태양과 달의 중력을 받는 지구는 돌아가는 팽이처럼 흔들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지구의 자전축은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돈다. 뉴턴은 태양과 달의 중력이 적도 부근이 볼록한 지구에 작용하면 자전축은 2만 6,000년 만에 한 번씩 회전해야 한다는 계산 결과를 내놓았는데, 이는 관측 결과와 일치한다. 67-8)


4장 · 보이지 않는 세상을 그리는 지도


중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것이 보편적인 힘이라는 점이다. 즉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티끌 한 점이라도 다른 모든 물질의 티끌 한 점에 중력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가령, 목성(질량이 태양질량의 1000분의 1)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있을 때 지구에 미치는 중력은 태양 중력의 1만 6000분의 1이다. 태양계에 있는 행성들이 다른 행성에게 미치는 중력은 태양이 미치는 중력에 비해 너무도 작기 때문에 뉴턴은 행성의 경로를 계산할 때 행성이 다른 행성에 작용하는 중력은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지구 같은 행성은 수많은 천체의 영향을 받으며 움직인다. 그러기 때문에 태양 주위를 완벽한 타원 궤도로 공전할 수 없다. 케플러의 제1법칙은 완전한 진리가 아니라 진리에 가까울 뿐이다. 태양 말고도 다른 천체들이 잡아당기기 때문에 행성의 타원 궤도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점차 방향이 바뀌어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쪽의 궤도는 태양 가까이 가면 ‘변형’된다(세차가 생긴다). 73)


은하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항성에 작용하는 중력의 힘은 약해진다. 따라서 루빈과 포드는 태양계의 행성들이 그렇듯이 은하의 항성들도 중심에서 멀어지면 공전 속도도 느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관측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은하 중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항성들을 관찰한 두 천문학자는 항성들의 공전 속도가 거리에 상관없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은하 외곽에 있는 항성들도 아주 빠른 속도로 공전하고 있었다. 그 정도 속도라면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타다가 멀리 날아가는 아이들처럼 항성도 은하를 벗어나 우주 공간으로 멀리 날아가야 했다. 그렇게 빠르게 도는 항성을 붙잡을 수 있는 강력한 중력은 은하에 존재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항성들은 빠른 속도로 공전하면서도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놀랍겠지만 나선은하는 '암흑물질'이라는 광대하고도 둥근 구름에 파묻혀 있다. 암흑물질의 양은 관측 가능한 항성을 모두 합친 것보다 10배는 많다. 79)


중력은 단순히 이 우주에는 암흑물질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암흑물질이 어떤 식으로 분포하고 있는지도 알려준다. 아주 먼 은하에서 지구로 오는 빛은 지나가는 경로에 존재하는 암흑물질의 중력 때문에 ‘굴절’된다(중력 렌즈 효과). 먼 은하에서 오는 빛이 이동하면서 약한 중력 렌즈 때문에 상이 굴절되는 정도를 측정하면 암흑물질이 어떤 식으로 분포되어 있는지 유추할 수 있다. 현재 칠레 고산지대(루빈 천문대)에는 중력 효과를 관측할 수 있는 망원경이 있다. 암흑물질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나선은하 외에도 또 다른 중요한 곳에서도 발견되었다. 우주는 138억 2,000만 년 전에 엄청난 폭발(빅뱅)과 함께 탄생한 후 지금까지 팽창하면서 점점 식어왔다. 차갑게 식은 잔해들은 우리은하를 비롯해 1,000억 개에 달하는 은하로 응축되었다. 그런데 이 가설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가설로는 우주의 매우 중요한 특성을 예측할 수 없다. 이 가설이 예측하는 우주에서는 우리가 존재할 수 없다. 80)


은하는 빅뱅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불덩이 중 다른 지역보다 아주 조금 더 조밀했던 지역에서 형성되었다. 아주 조금 더 조밀해진 지역은 아주 조금 더 중력이 세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물질을 끌어당길 수 있고, 한번 끌어당기기 시작하면 중력은 더욱 커져서 다른 곳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주변 물질을 끌어당길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 과정이 너무도 천천히 진행된다는 것이다. 우주가 탄생한 시간부터 우리은하 같은 거대한 은하들이 탄생하기까지의 시간으로 138억 2,000만 년은 너무 짧다. 은하가 형성되려면 우리가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물질이 존재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중력을 가해 은하의 생성 속도를 높여줄 물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주의 질량-에너지는 4.9퍼센트를 원자가, 26.8퍼센트를 암흑물질이 가지고 있다(나머지 68.3퍼센트는 1998년에 발견한, 역시 보이지 않는 ‘암흑 에너지’가 가지고 있다. 암흑 에너지는 우주를 가득 메운 반동 중력이다). 80-1)


2부 아인슈타인

5장 · 우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시간 지연 현상은 ‘뮤온muon’이라는 우주선cosmic ray을 관측할 때 훨씬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다. 뮤온은 지표면에서 12.5킬로미터 상공의 대기에서 생성된 뒤에 아원자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런데 뮤온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생성된 뒤에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고 만다는 것이다. 뮤온의 소멸 시간은 150만분의 1초 정도 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뮤온은 생성된 뒤 500미터도 이동하지 못하고 소멸해야 한다. 상층부 대기에서 생성된 뮤온 가운데 12.5킬로미터 아래의 지표면에 도달하는 입자는 단 한 개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뮤온은 지표면에 도달한다. 생성되자마자 소멸하는 뮤온이 지표면에 도달할 수 있는 이유는 뮤온의 이동 속도가 빛의 속도의 99.92퍼센트에 달하기 때문이다. 우리 관점에서 보면 뮤온은 슬로모션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실제로 뮤온의 시간은 우리 시간보다 25배나 느리게 흐른다. 뮤온이 소멸되리라고 깨닫는 시간이 실제보다 25배 길어진다는 뜻이다. 98-9)


# 우주선 :  우주에서 끊임없이 지구로 내려오는 매우 높은 에너지의 입자선을 통틀어 이르는 말


빛의 속도가 우주의 주춧돌이라면 한 사람의 공간은 다른 사람의 공간과 시간이며, 한 사람의 시간은 다른 사람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모든 것이 천천히 흐르는 일상의 우주에서 이 같은 사실을 분명하게 느낄 수는 없다. 그러나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하는 세상에서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공간과 시간은 탄력이 있어서 한계 없이 무한히 늘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서로 바뀔 수도 있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은 시공간이라는 한 실재의 두 측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과 북, 동과 서, 위와 아래로 뻗어 있는 3차원 공간과 과거와 미래를 나타내는 시간이라는 1차원으로 이 세상이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간 차원과 시간 차원이 한데 뒤엉켜 시공간이라는 4차원 세계를 만든다. 우리는 4차원 실재가 우리 3차원 세상에 드리운 ‘그림자’만을 인지할 수 있을 뿐이다. 시간은 4차원의 한 그림자이며, 공간은 4차원의 다른 세 가지 그림자이다. 103)


이 세상에 시공간이 존재하는 것은, 즉 시간이 공간의 특성을 일부 공유한다는 것은, 평범한 2차원 지도 위에 지형을 그려 넣을 수 있듯 4차원 지도 위에 우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려 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관점으로는 4차원 지도 위에서 시간은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새의 눈으로 4차원 지도를 볼 수 있는 아인슈타인이 볼때 시간은 흘러가지 않는다. 4차원 시공간 지도 위에는 우주가 탄생한 빅뱅에서부터 우주의 소멸에 이르는 동안에 일어난 모든 사건이 동시에 펼쳐져 있다. 4차원 시공간의 지도 위에는 한 사람의 일생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사슬처럼 펼쳐져 있다. 뱀처럼 지도 위를 가로지르며 펼쳐진 이 사건의 사슬을 물리학자들은 ‘세계선world line’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시간을 흐르는 것으로 경험하는 우리의 감각은 물리학이 아니라 생물학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며, 사람의 뇌가 실재reality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 108)


시간과 공간은 물리학의 거의 모든 개념을 떠받드는 초석이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이 단단한 바위가 아니라 움직이는 모래라면 다른 개념들도 역시 움직이는 모래일 수밖에 없다. 전기장과 자기장을 생각해보자. 공간과 시간이 시공간의 두 측면일 뿐이듯, 전기장과 자기장도 전자기장의 두 측면에 불과하다. 맥스웰은 관찰자가 전하를 띤 전자 같은 물체와 나란히 움직이면 전자는 관찰자에 대해 상대적인 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관찰자는 전기장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전하를 띤 물체가 관찰자에 대해 상대적인 운동을 하면 관찰자는 전기장과 자기장을 동시에 느낀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석과 나란히 움직이면 관찰자는 자기장을 느낀다. 그러나 자석이 관찰자에 대해 상대적인 운동을 한다면 관찰자는 자기장과 전기장을 느낀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전기장과 자기장, 공간과 시간이 각각 한 동전의 양면임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질량과 에너지도 같은 존재의 두 가지 다른 측면임을 깨달았다. 104-5)


아인슈타인의 E=mc2은 두 가지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질량은 에너지의 한 형태일 뿐 아니라 에너지에는 유효질량이 있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소리 에너지, 열 에너지, 화학 에너지, 무엇보다도 운동 에너지는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물체에는 내재된 질량(보편적으로는 ‘정지 질량’이라고 부른다)도 있지만 운동을 통해서도 질량이 생긴다. 즉 물체가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지면 그 물체의 질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질량 증가를 분명히 인지하려면 물체의 이동 속도가 빛의 속도에 가까워야 한다. 어쨌거나 물체의 이동 속도가 빨라지고 그 결과로 질량이 증가하면 그 물체는 쉽게 밀어 옮길 수가 없게 된다. 실제로 물체의 이동 속도가 빛의 속도에 도달하면 질량은 무한히 커진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우주에는 한 물체의 질량을 무한히 크게 바꿀 수 있을 만큼 많은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광선을 잡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106)


다음으로 아인슈타인은 동일한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다양하게 속도가 변하는(‘가속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공간과 시간을 측정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사람들에게 작용하는 물리 법칙은 언제나 같아야 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가속도 운동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문제 외에도 훨씬 더 심각한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뉴턴의 중력 이론과 본질적으로 부딪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뉴턴의 중력 법칙은 태양처럼 거대한 물체에서 나오는 중력의 힘이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든 영향을 미친다고 전제한다. 그것은 어느 장소에 머물든 거대한 물체의 중력은 그 즉시 느낄 수 있다는 뜻이며, 중력의 효과가 무한 속도로 퍼져 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는 이 세상 그 무엇도, 심지어 중력조차도 우주의 한계 속도인 빛의 속도를 능가해 퍼져 나갈 수 없다. 아인슈타인은 빛이 정한 우주 한계 속도와 중력 이론을 통합하는 방법은 ‘장field’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107)


역장force field과 역선line of force이 있는 중력장을 참고해 아인슈타인은 질량(물체)이 중력장을 만들고, 이 중력장이 다른 질량(물체)에 중력을 가한다는 이론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중력도 장이 있어야 특정한 속도로 이동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빛이 우주의 한계 속도라는 설정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수 상대성 이론과 양립할 수 있는 중력장 이론을 구축하는 일은 아인슈타인에게 두 번째 문제일 뿐이었다. 그에게는 세 번째 문제도 있었다. 뉴턴의 중력 이론에서 중력을 생성하는 ‘근원’이 질량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였다. 아인슈타인은 형태에 상관없이 에너지라면 모두 유효질량이 있기 때문에 중력을 발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서 중력의 근원은 궁극적으로 질량이 될 수 없었다. 중력을 만드는 것은 에너지였다.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완성한 1905년에도 이런 문제들을 인지하고 있었음이 거의 분명하다. ‘일반’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려면 그로부터 8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108)


6장 · 떨어지는 사람을 위한 시


떨어지는 사람은 자신의 몸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1907년, 아인슈타인에게 찾아온 이 깨달음이야말로 새롭고 혁명적인 중력 이론 체계의 초석이 되어주었다. 한 남자가 승강기 안에 있다. 갑자기 승강기 줄이 끊어진다. 승강기 줄이 끊어지기 전에 남자는 승강기 바닥에 놓여 있던 저울 위에 올라가 있었다. 승강기 줄이 끊어지는 순간, 70킬로그램을 가리키던 저울의 눈금은 0킬로그램을 가리켰다. 이것이 바로 떨어질 때는 몸무게를 느낄 수 없다는 말의 의미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법칙에서는 아주 쉽게 중력이 없는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저 자유낙하만 하면 된다. 자유낙하를 하는 순간 중력도 몸무게도 사라져버린다. 중력을 느끼지 못한 채 자유낙하하는 상황은 어떤 행성의 중력도 느끼지 못한 채 텅 빈 우주에 떠 있는 상황과 구별할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이 중력 법칙과 특수 상대성 이론에 다리를 놓아준다. 두 상황 모두 특수 상대성 이론의 법칙들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112-4)


중력을 받은 물체는 질량에 상관없이 모두 같은 속도로 낙하한다는 것은 정말 기이한 일이다. 냉장고처럼 무거운 물체와 나무 의자처럼 가벼운 물체가 동시에 같은 힘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하는 모든 실험에서는 냉장고처럼 무거운 물체의 속도를 높이려면(즉 가속도를 높이려면) 작은 물체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무거운 물체는 자신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이 크기 때문이다. 관성이라는 저항력이야말로 물체가 ‘질량’을 갖게 하는 근본 원인이다. 그런데 물체에 가하는 힘이 중력일 때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질량이 클수록 같은 속도로 움직이게 하려면 더 큰 힘이 필요한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중력은 마치 질량이 큰 물체에게는 더 큰 힘을 발휘하도록 자기 힘을 조절하는 것처럼 보인다. 관성 질량이 두 배 큰 물체는 움직이지 않으려는 저항력도 두 배 크다. 그러나 낙하할 때는 두 배 더 큰 중력을 받기 때문에 질량이 작은 물체와 똑같은 속력으로 떨어진다. 114-5)


갈릴레오 이후로 사람들은 움직임에 대한 물체의 저항력(관성 질량)과 중력 때문에 경험하는 힘(중력 질량)은 전적으로 다른 힘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그런 모든 사람의 믿음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떨어지는 사람은 몸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즉 중력을 받으며 떨어지는 모든 물체의 가속도는 동일하다는 것은 단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중력 질량과 관성 질량은 동일하다는 것, 다시 말해서 중력은 가속도라는 사실 말이다. 1907년에 아인슈타인은 서로에 대해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들뿐 아니라 서로에 대해 가속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도 세상을 묘사하려면 상대성 원리를 일반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또한 뉴턴의 중력 법칙이 자신의 특수 상대성 이론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중력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놀랍게도 상대성 이론을 일반화하자 그 자체로 새로운 중력 이론이 되었다. 115)


지구 같은 행성의 중력에서 멀리 벗어난 우주선에서 한 우주비행사가 잠에서 깨어났다고 가정해보자. 우주선은 중력가속도 1g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주비행사는 지구 표면 위에서처럼 발을 선실 바닥에 붙인 채 움직일 수 있었다. 만약 우주선 창문이 온통 깜깜해서 밖을 볼 수 없다면 이 우주비행사는 자신이 지구에 있는 어느 방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우주비행사로서는 자신이 지구 표면에 있는 것이 아님을 입증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했다. 실제로 중력을 가속도와 구분할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망치와 깃털을 가져온 우주비행사는 두 물체를 어깨 높이까지 들어올렸다가 동시에 놓았다. 두 물체는 같은 속도로 떨어져 선실 바닥에 동시에 닿았다. 자신이 우주선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구 표면에 있다고 생각하는 우주비행사는 두 물체가 동시에 바닥에 닿은 이유는 모든 물체를 같은 속도로 떨어지게 하는 중력 때문이라고 믿었다. 116)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우주비행사가 지구 표면이 아니라 그 어떤 행성의 중력도 닿지 않는 우주 공간에 떠 있음을 알고 있다. 우주비행사가 망치와 깃털을 동시에 놓았을 때 이동한 것은 두 물체가 아니라 우주선의 선실 바닥이었다. 우주선의 선실 바닥이 중력가속도 1g의 속도로 위로 올라가 망치와 깃털에 동시에 부딪힌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다른 힘과 같지 않음을 깨달았다. 중력은 환상이다. 중력은 가속도 운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을 가속도와 구별할 수 없다’는 말로 등가원리Principle of Equivalence를 규정했다. 바로 이 등가원리가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을 떠받치는 초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가속도를 중력으로 착각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인슈타인이 깨달은 것처럼 사람의 인지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116-7)


밖을 볼 수 없는 우주선의 그 우주비행사는 다른 실험을 이번에는 레이저를 이용했다. 레이저를 가져와 바닥에서 1미터 높이에 있는 선반 위에 레이저를 올려놓았다. 우주비행사가 레이저를 켜자 레이저 빔이 선실을 수평으로 가로질렀고 선실 벽에 밝은 파란 점이 생겼다. 벽으로 걸어간 우주비행사는 파란 점이 선실 바닥에서 1미터 높이보다 낮은 곳에 맺혔음을 확인했다. 선실을 가로지르는 동안 레이저 광선은 아래쪽으로 구부러진 것만 같았다. 우리는 우주선이 중력가속도 1g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광선이 선실을 가로지르는 동안 바닥은 위쪽으로 가속도 운동을 했다. 그러니 우리는 광선이 선실 바닥에서 1미터가 채 되지 않는 곳에 닿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영문을 알 수 없는 우주비행사는 자신이 지구의 표면에서 중력을 받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중력이 있으면 빛은 경로가 휘어진다고 생각했다. 즉 중력이 빛을 휘어지게 만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117)


그렇다면 중력은 왜 빛을 휘게 하는 걸까? 빛이 갖는 뚜렷한 특성 가운데 하나는 두 점 사이를 통과할 때면 언제나 가장 짧은 경로를 택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짧은 경로는 직선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아인슈타인은 깨달았다. 언덕과 같은 지형에서는 두 지점을 잇는 가장 짧은 길이 직선이 아니다. 두 지점을 잇는 가장 짧은 길은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곡선이다. 두 지점을 잇는 가장 짧은 경로가 직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은 레이저 광선이 선실을 가로지르는 동안 아래쪽으로 구부러진 모습을 확인한 우주비행사에게도 의미가 있다. 도보 여행자가 지나는 언덕 지형처럼 우주선의 선실이 구부러진 공간이라면 두 지점을 잇는 가장 짧은 길은 곡선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력이 빛을 구부리는 이유는 중력이 뒤틀린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중력은 뒤틀린 공간이다. 뉴턴의 세계관으로는 이토록 크게 바뀌는 중력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117-8)


중력은 뒤틀린 시공간이기 때문에 공간을 가지고 놀 뿐 아니라(빛의 경로를 구부린다) 시간도 엉망으로 만든다. 마주 놓인 두 거울 사이로 레이저 광선이 수평으로 왔다갔다하면서 시간을 알려주는 가상의 ‘시계’가 있다고 해보자. 한 시계는 지표면에, 한 시계는 지표면에서 훨씬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지표면 가까이 있는 시계는 높이 있는 시계보다 육중한 지구에 더 가깝기 때문에 조금 더 강한 중력을 느낄 것이다. 그 말은 지표면 가까이 있는 시계의 거울 사이를 움직이는 광선이 높은 곳의 광선보다 좀 더 구부러진 곡선 경로로 이동한다는 뜻이다. 좀 더 구부러진 경로로 이동한다는 것은 좀 더 먼 길을 가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표면 가까이 있는 시계의 광선이 두 거울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시간은 높은 곳에서 왔다갔다하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다. 즉 지표면 가까이 있는 시계가 위쪽 시계보다 느리게 간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시간의 흐름은 중력이 강할수록 더 느려진다. 119)


7장 · 신은 0으로 나누었다!


놀랍게도 슈바르츠실트는 충분한 질량이 충분히 작은 부피로 응축되면 시공간은 바닥이 없는 우물처럼 아주 기이한 형태로 뒤틀린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런 시공간의 내벽은 너무도 가팔라서 광선조차도 시공간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가진 에너지를 모두 소비한 뒤에 소멸하고 만다. 이런 시공간은 빛도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밤보다 훨씬 어둡다. 슈바르츠실트는 자신이 발견한 것에 어떤 이름도 붙이지 않았다. 그런 뒤틀린 시공간에 이름을 붙인 것은 1967년, 미국 물리학자 존 휠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공간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슈바르츠실트의 해는 ‘블랙홀’을 기술하고 있었다. 슈바르츠실트의 블랙홀은 ‘사건 지평선’에 둘러싸여 있다. 이 사건 지평선을 넘어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면 빛도 물질도 절대로 다시 나올 수 없다. 사건 지평선을 측정하면 블랙홀의 ‘크기’를 알 수 있다. 태양이 블랙홀이 되려면 태양의 전체 질량이 반지름 3킬로미터인 구로 압축되어야 한다. 141-2)


백색 왜성의 질량이 클수록 중력은 내부 전자를 더욱 단단하게 압축하고, 전자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전자가 움직일 수 있는 최대 속도를 빛의 속도로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사실이었다. 전자의 속도가 우주의 한계 속도에 가까워지면 전자는 훨씬 무거워지고 속력은 증가하기 어려워진다. 이때 문제가 생긴다. 항성을 응축하려는 중력의 힘을 막는 것은 결국 양철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계속 부딪쳐 바깥쪽으로 힘을 가하는 전자들이었다. 이 전자들이 더욱 가까운 거리로 응축되면 속력 변화율이 작아지기 때문에 중력을 이기는 힘은 점차 소멸되고 말 것이다. 찬드라세카르는 거듭해서 계산하고 거듭해서 검토했다. 수명이 다할 때 항성의 질량이 태양 질량의 1.4배가 넘는다면 전자 축퇴압도 항성을 살리지 못한다. 중력은 무자비하게 항성을 으깨버릴 것이다. 우주에서 그토록 맹렬한 중력을 막을 힘은 없다. 145)


# 찬드라세카르 한계 : 태양보다 1.4배 큰 항성


수명이 다한 큰 질량의 항성은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해져서 가차없는 중력에 붙잡혀 점점 더 조그맣게 축소된다. 이제 극도로 압축된 항성 내부에서는 전자가 원자핵 안으로 들어가 양성자와 반응하면서 중성자를 만들어낸다. 중성자도 전자처럼 페르미온이다. 중성자 가스도 전자 가스처럼 항성을 단단하게 만들어 항성이 중력에 대항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중성자는 원자보다 훨씬 작다. 그 때문에 거대한 항성은 지구만 한 백색 왜성이 되지 않고 에베레스트산만 한 중성자 덩어리가 된다. 이런 ‘중성자별’은 각설탕만 한 부피라고 해도 인류 전체의 무게를 합친 것만큼 무겁다. ‘중성자 축퇴압’이 항성의 중력 붕괴를 막아 더는 붕괴하지 않게 해주지만 백색 왜성의 경우처럼 그런 항성에게도 아킬레스건은 있다. 중성자별을 이루는 구성 입자들은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상대론적’ 입자들이다. 따라서 특정 질량 한계를 넘어가면 중성자별조차도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해진다. 146)


자연의 ‘강한 핵력strong nuclear force’으로 묶여 있는 중성자의 물리학은 전자기력으로 상호작용하는 전자의 물리학보다 복잡하다. 그 때문에 찬드라세카르 한계와 달리 중성자별의 한계 질량이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중성자별의 한계 질량은 1932년에 러시아 물리학자 레프 란다우Lev Landau가 처음 계산했고, 보통 태양 질량의 세 배 정도라고 믿고 있다. 태양 질량의 세 배가 넘는 항성은 특이점으로 수축하는 것을 막을 힘이 전혀 없다. 이 세상에 태양 질량의 세 배가 넘는 무거운 항성이 없다면 중성자별의 질량 한계는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런 별은 틀림없이 있다. 드물기는 해도 태양 질량의 100배가 넘는 항성도 있다. 이런 항성들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해서 생애 동안 엄청난 양의 질량을 소비하면서 격렬하게 타오른다. 하지만 많은 질량을 외부로 방출한다는 사실을 고려해도 마침내 죽을 때조차도 태양의 질량보다 세 배 이상 크다. 이런 항성은 결국 블랙홀로 압축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146-7)


1930년대 말에 매우 엉뚱한 이유로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물리학자 조지 가모브George Gamow가 팽창하는 우주가 의미하는 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가 팽창하는 우주를 고민하게 된 이유는 자연의 원소들을 만드는 용광로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가장 가벼운 수소를 시작으로 가장 무거운 우라늄까지 92개의 원소가 존재한다. 가모브는 우주는 수소부터 시작한다고 믿었다. 수소가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레고 블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른 원소들은 수소를 기반으로 차례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모브는 항성은 그런 용광로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잘못된 믿음이었다). 그래서 다른 용광로를 찾아 나섰다. 그러다 팽창하는 우주가 영화의 거꾸로 돌리기처럼 다시 수축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수십억 년(우리는 지금 그 시간이 138억 2,000만 년임을 알고 있다)을 뒤로 돌리면 우주를 이루는 모든 물질은 아주 작은 부피로 압축된다. 바로 그때가 우주의 탄생 순간, 빅뱅이다. 150)


3부 아인슈타인을 넘어서

8장 · 예측 불가능한 것을 예측하다


뜨거운 원자 가스 속에서는 빛 파장이 반복해서 방출되고 흡수되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흐르면 가능한 모든 빛 파장이 생성된다. 이런 ‘열적 평형thermal equilibrium’ 상태에서는 모든 가능한 파장을 가진 파동들이 에너지를 균등하게 나누어 갖는다. 그런데 빛 파동의 최대 파장은 크기에 한계가 있지만(빛이 담겨 있는 용기 크기만큼만 커질 수 있다), 빛 파동의 최소 파장은 한계가 없다. 즉 어떤 파장을 택하든 한 파장을 택하면 장파장의 수는 언제나 유한하지만, 단파장의 수는 무한이 된다는 뜻이다. 장파장보다 단파장을 가진 파동이 훨씬 많기 때문에 에너지는 대부분 단파장들이 운반한다. 그 때문에 필연적으로 뜨거운 원자 가스가 지닌 에너지는 가장 에너지가 큰 X선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 1895년에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기 전까지 가장 에너지가 높은 빛은 자외선이었다. 고에너지 X선에 에너지가 몰리는 현상을 ‘자외선 파탄ultraviolet catastrophe’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158)


19세기 말에 전자 기술 분야의 킬러앱은 단연코 전구였다. 따라서 ‘전구의 가열된 필라멘트에서 최대한 많은 양의 가시광선을 방출하게 하는 방법’이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뜨거워진 필라멘트가 뜨거운 기체로 이루어진 태양처럼 그 즉시 X선을 방출하는 것이 빛을 설명하는 최상의 이론이라면 그 방법을 찾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대로라면 전자 같은 전하를 띤 진동 입자는 자신의 진동 ‘주파수’에 맞는 빛을 방출한다. 맥스웰의 이론은 가속한 전하가 전자기 복사를 방출한다고 기술하지만, 실제로 진동하는 전하는 그저 반복적으로 가속되고 있을 뿐이다. 플랑크는 진동하는 용수철이 마음대로 에너지를 방출하고 흡수하는 대신 정해진 기본량의 배수로만 에너지를 방출하고 흡수할 수 있다면 이런 재앙을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플랑크는 용수철이 방출하거나 흡수할 수 있는 에너지 기본량을 h에 진동수 f를 곱한 값이라고 했다. 158-9)


플랑크가 생각한 원자-용수철 가설에서 에너지가 hf의 배수로만 방출되거나 흡수되어야 하는 타당한 이유는 없었다. 그가 이런 상상을 한 이유는 오직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플랑크는 진동하는 입자(진동자)는 살짝 높은 에너지에서는 빛을 방출하거나 흡수할 수 없다고 했다. 빛을 방출하거나 흡수할 수 있게 허용된 다음 단계의 에너지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즉 모 아니면 도 전략을 쓴다는 것이다. 진동자가 빛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가 없다면 빛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빛 파동들이 에너지를 나누어 가질 때, 진동수가 가장 높은 파동은 에너지의 많은 몫을 차지하기는커녕 아예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에너지를 갖기에는 너무 비싼 입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에너지가 가장 많은 빛을 길들이면 자외선 파탄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빛의 속도를 속도의 한계로 정하자 무한infinite이 해결되었듯, 플랑크가 양자라는 개념을 도입하자 무한소infinitesimal가 해결되었다. 160)


아인슈타인은 맥스웰의 방정식과 플랑크의 방정식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빛도 행동하는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플랑크가 그저 수학 장치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양자는 실제로 존재했다. 훗날 이 덩어리에는 ‘광자photon, 光子’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제 우리는 에너지, 물질, 전하, 그밖의 다른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는 덩어리(양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안다. 자연의 가장 작은 단계는 고전물리학이 예상했던 것처럼 연속적이지 않다. 신문에 실린 사진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작은 점들이 보이는 것처럼, 자연의 가장 작은 단계도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물리 상수’ h는 플랑크 상수라고 불리게 되었다. 플랑크 상수가 극단적으로 작기 때문에 광자 한 개가 운반하는 에너지도 엄청나게 작다. 그 때문에 전구에서 나오는 빛이 사실은 급류처럼 쏟아지는 작은 총알들임을 절대 눈치채지 못한다. 쏟아져 나오는 작은 총알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연속적으로 보인다. 160-1)


두 전자나 두 산소 원자 같은 완벽하게 동일한 양자 물체들이 볼링공처럼 수백 번 부딪친다고 생각해보자. 양자 물체들은 수백 번을 부딪쳐도 절대로 가지 않는 방향이 생긴다. 왜일까? 그 이유는 한 입자의 확률 파동의 마루가 다른 입자의 확률 파동의 골과 만나 서로 간섭을 일으키면서 상쇄되어 입자를 찾을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즉 ‘간섭’은 양자 입자를 관측하기 전에 중첩된 두 양자 파동이 상호작용하게 해준다. 원자 주위를 도는 전자가 원자핵으로 떨어지지 않고 계속 돌 수 있는 이유도 간섭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전자가 원자핵을 향해 갈 수 있는 경로는 아주 많다. 전자는 나선을 그리며 원자핵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직선 경로나 파동처럼 요동치는 경로를 그리며 원자핵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당연히 이 모든 경로는 양자 파동과 관계가 있다. 그런데 이 양자 파동들은 원자핵 가까이 다가가면 모두 간섭을 일으켜 상쇄되기 때문에 원자핵 가까이에서 전자를 찾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165-6)


만약 중력을 양자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중력을 운반하는 매개자가 있어야 한다. 중력을 매개하는 가상 입자를 이론물리학자들은 ‘중력자graviton’라고 부른다. 중력자와 관련해서는 이론적으로 곤란한 문제가 아주 많으며, 그런 입자는 없을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그 힘을 전달하는 입자와 그 힘을 ‘느끼는’ 입자가 얼마나 많이 상호작용하는지가 힘의 세기를 결정한다. 그런데 중력의 세기는 다른 세 힘의 세기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다. 수소 원자를 이루는 전자와 양성자 사이의 중력은 전자기력보다 1만×10억×10억×10억×10억 배만큼 약하다. 그 말은 중력은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력자 문제는 별개로 치더라도,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과 양자 이론은 본질적으로 양립하기 힘들어 보이기 때문에 두 이론을 합치는 일은 아주 어려울 것 같다. 무엇보다 중력을 제외한 자연의 다른 힘들은 시공간 안에서 작동하지만 중력은 시공간 자체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171)


9장 · 미지의 세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진공 속에서는 입자와 반입자 쌍이 생성될 수 있다. 이런 ‘가상’ 입자들은 눈 깜짝할 순간보다도 더 짧은 순간에 생성되었다가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호킹은 블랙홀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양자 과정을 숙고하다 사건 지평선 외곽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사건 지평선 부근에서 이제 막 생성된 입자와 반입자 쌍 가운데 한 입자는 블랙홀의 중력을 피해 밖으로 빠져나오지만 다른 입자는 블랙홀의 중력에 잡혀 안으로 끌려 들어갈 수 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간 입자는 다시 블랙홀 밖으로 나와 함께 태어난 쌍입자를 소멸시킬 수 없다. 달아난 입자는 잠시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가상 입자가 아니라 실제 입자가 되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호킹은 이런 과정이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 주위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블랙홀 밖으로 끊임없이 튀어나오면서 빛을 내는 입자의 흐름을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라고 한다. 188)


블랙홀을 규정하는 특징은 내부에서 그 무엇도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호킹 복사를 이루는 입자들은 블랙홀 내부로 들어간 적이 없으니, 호킹 복사는 블랙홀 내부에서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지평선 가장자리 바로 너머에 있는 진공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호킹 복사를 하려면 어디선가 에너지가 와야 한다. 사건 지평선 부근에서 가져올 수 있는 에너지는 블랙홀의 중력 에너지뿐이다. 호킹 복사가 끊임없이 블랙홀의 중력 에너지를 가져오면, 블랙홀의 중력은 약해져서 블랙홀은 점차 수축할(증발할) 수밖에 없다. 블랙홀의 크기가 작을수록 호킹 복사는 더욱 격렬하게 일어난다. 따라서 아주 작은 블랙홀의 경우에는 아주 밝은 호킹 복사를 방출한다. 블랙홀은 쓸쓸하게 조용히 사라지지 않는다. 빛나는 존재는 당연히 열이 있다. 호킹 복사 때문에 빛이 나는 블랙홀도 마찬가지다. 그 열은 블랙홀이 내재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블랙홀을 둘러싸고 있는 진공 속에서 일어나는 양자 과정 때문에 발생한다. 188-9)


블랙홀을 증발시켜 결국에는 사라지게 하는 호킹 복사는 물리학에 심각한 역설을 불러온다. 정보는 새로 생성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것이 물리학의 기본 법칙이다. 달을 생각해보자. 뉴턴의 법칙을 적용하면 오늘 달의 위치를 가지고 내일 달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오늘 달의 위치는 내일 달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달이 하늘길을 따라 움직이는 동안에도 정보는 새로 생겨나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보존’된다. 하지만 블랙홀이 증발하면 정보는 사라진다. 이 같은 상황을 간단히 말해 ‘블랙홀 정보 역설black hole information paradox’이라고 한다. 블랙홀에서 사라진 정보를 저장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호킹 복사다. 이런 ‘블랙홀 정보 역설’을 풀 수 있는 단서는 이스라엘 물리학자 야코브 베켄슈타인Jacob Bekenstein이 찾았다. 1972년, 그는 사건 지평선의 ‘표면적’이 블랙홀의 ‘엔트로피entropy’와 관계가 있다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189-90)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에 엔트로피가 있다는 것은 블랙홀의 지평선이 일반 상대성 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특색이 없는 매끈한 경계가 아니라 미시 구조를 갖춘 곳이라는 의미일 수 있다. 1993년, 노벨상 수상자인 유트레히트 대학교 헤라르뒤스 엇호프트Gerardus 't Hooft는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은 특색이 없는 매끈한 구조가 아니라 거칠고 불규칙한 미시 구조를 하고 있다는 의견을 제안했다. 이 작은 미시 세계에 존재하는 울퉁불퉁한 덩어리들이 블랙홀을 만든 항성의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고 했다. 엇호프트가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이 블랙홀의 사라진 정보를 저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발표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스탠퍼드 대학교의 레너드 서스킨드Leonard Susskind가 끈 이론으로 그 생각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을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진동하는 끈 덩어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결국 정보는 사라지지 않았다.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 가운데 하나가 지켜진 것이다. 190-1)


우주도 블랙홀처럼 지평선으로 둘러싸여 있다. 우주의 ‘빛 지평선light horizon’은 우주의 가장자리가 아니다. 우주는 아마도 끝없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우주의 빛 지평선은 ‘관측 가능한 우주’의 가장자리를 의미한다. 이 빛 지평선 안에 있는 항성과 은하의 빛은 모두 우주가 탄생한 138억 2,000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닿을 시간이 있었다. 빛 지평선 너머에 있는 항성과 은하의 빛이 우리에게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부족하다. 그 빛들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엇호프트와 서스킨드는 3차원인 항성의 정보가 2차원인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에 각인된 것처럼 3차원인 우주의 정보도 2차원인 우주의 지평선에 있는 홀로그램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이런 식으로 비유를 사용해 추론하는 것은 엄격한 물리학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1998년, 아르헨티나 물리학자 후안 말다세나Juan Maldacena는 우리가 ‘홀로그램 우주’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강화하는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다. 191-2)


양자 이론과 특수 상대성 이론을 양립하려고 시도하는 이론들을 ‘등각장론Conformal field theory’이라고 한다(표준 모형도 등각장론 가운데 하나다). 말다세나는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에 맞춰 춤을 추는 기본 입자들이 내부bulk에 가득한 5차원 우주를 상상했다. 그러고는 2차원인 풍선의 표면이 3차원인 공기 부피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4차원인 우주의 경계가 5차원인 우주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 4차원 우주의 경계 안에는 등각장론에 맞춰 춤을 추는 입자들이 들어 있다. 말다세나는 놀랍게도 4차원 우주 경계에 관한 방정식들은 내부를 기술하는 훨씬 복잡한 방정식과 동일한 정보를 담고 있고, 동일한 물리학을 설명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시 말해서 5차원 우주의 내부에 작용하는 중력 효과가 4차원 우주 경계에 작용하는 양자 이론과 수학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아르카니-하메드는 “양자 이론과 상대성 이론은 서로 싸우고 있는 것 같지만 뒤에서는 서로 협력하고 있다.”라고 했다. 1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 - 거대한 땅의 지배자, 유목민에 의해 세계사가 완성되다!
스기야마 마사아키 지음, 이경덕 옮김 / 시루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1장 민족과 국경을 넘어서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은 《중국본토》에서 '자이덴스트라세Seidenstraße'라는 말을 썼다. '비단길'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동과 서가 예부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연결되었다는 표현이었고, 그런 생각(실제로는 소망에 가까운)이 담겨 있었다. 리히트호펜은 아마 별다른 생각 없이 《중국본토》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 알베르트 헤르만은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자이덴스트라세'를 멋지게 포장했다. 《누란樓蘭》 등을 쓴 그의 영어본 《실크로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대단히 환영 받았다. 그러자 실제로 그런 길이 있는지 없는지는 밝혀지지 않은 채 그 길은 당연히 있는 길이 되었다. '실크로드'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행과 출판 등에서 뛰어난 산업 아이템이 되었다. '실크로드'는 이렇듯 태어날 때부터 낭만적이었고, 지금은 캐치프레이즈 같은 것이 되었다. 이 두 가지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문명'은 동·서에만 있고, 그 사이에 놓인 광활한 땅은 점點과 선線의 통과 지역에 불과했다."(37-8)


"유목민은 정처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민족이다.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유목민은 유랑에 고통스러워한다. '유遊'라는 글자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한자는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출유出遊나 유학遊學에서의 의미, 즉 '나간다'라는 의미다. 유목에서 '유遊'는 이동, '목牧'은 목축을 가리킨다. 즉 '이동 유목민'이라는 뜻이다." "유목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유목민의 세계는 실로 거칠고 능력주의·실력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습득해야 하는 능력은 말을 잘 타는 것이다. 또 기상이나 자연환경 전반에 민감해야 한다. 가족이나 가축에 대한 주의 깊은 시선과 배려는 물론 계획성과 인내력, 순간적인 판단력과 과감성이 필요하다. 이렇게 유목민 집단에 대한 귀속성과 강한 개인의식, 얼핏 모순처럼 느껴지는 두 가지 면이 개인의 인격 안에 공존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52)


2장 중앙유라시아의 구도


"더 큰 유라시아 세계사의 '시간'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적어도 10세기부터 시작된 거대한 '투르크 이슬람 시대'라는 조류 속에 유라시아가 있다. 그 조류 가운데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종착지가 티무르왕조와 제2차 티무르왕조인 무굴왕조였다. 그리고 '공간'이라는 면에서 말하면 중앙아시아와 인도에 걸친 '종적 구조'가 오랜 역사를 통해 존재하고 역사와 인간에 엄청난 역동성을 제공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최고의 사례가 역시 두 개의 티무르왕조다. 이 동서 유라시아의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중층 구조는 바다와도 연결된다. 여기에는 더 거대한 구도가 숨겨져 있다. 그 근거로 16세기 중반 무렵부터 활발해진 포르투갈의 인도 해역으로의 진출을 들 수 있다. 내륙에서 티무르왕조의 남하, 바다에서 포르투갈의 출몰은 연이어 발생했다. 이 '종적 관계의 구조' 속에서 '땅과 활의 시대'와 '바다와 총포의 시대'가 동시에 존재한 셈이다. 세계사의 거대한 전환이 무굴왕조를 둘러싼 중층 지역 속에서 발생했다."(83)


"'이란'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현재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란'은 근대에 이르러 서양과 러시아 열강에 의한 외압 속에서 계속 축소된 '근대국가'를 말한다. 따라서 보통 사용되고 있는 이란의 의미로는 자연환경의 이란고원조차 생각할 수 없다. 한편 거대한 '이란'이 있다. 예부터 외압을 견디어온 이란고원을 포함해 넓게 사용하고 있는 역사상의 개념이다. '이란 자민(이란의 땅)'이라는 오래된 기원을 가진 개념에서 유래했다. 그것은 '아무에서 미스르까지'의 땅, 즉 아무 강에서 이집트까지를 말한다. 이 드넓은 땅은 고대 페르시아제국의 아케메네스왕조가 지배했던 영역과 필적할 정도로 상당히 넓다. 아케메네스왕조가 지배했던 '문명 세계'를 '이란'이라고 불렀다. 아무 강 건너편의 '야만족의 땅'은 '투란'이라고 불렀다. 문명관에 따른 구분이었다. 거기에는 일종의 가치관이 부여되어 있다. 고대 이후 중국 '문명'을 기준으로 한 화이사상, 또는 고대 그리스의 '헬렌'과 '바르바로이'의 관념과 비슷하다."(85-6)


"서북유라시아의 대초원에는 카자흐 스텝이 펼쳐져 있다. 끝없는 대초원이 볼가 강까지 이어진다. 이곳은 오히려 몽골 초원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이 거대한 초원 지대는 볼가 강을 넘어 돈 강, 드네프르 강, 도나우 강 입구까지 계속된다. 남쪽은 카프가즈 산맥의 북쪽 기슭에서 흑해 북쪽 연안 일대를 모두 덮고 카르파티아 산맥의 동쪽 기슭까지 이어진다. 말 그대로 대초원이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유목민 군단과 그 국가를 길러냈다. 몽골 고원에 이어 유목 국가의 '제2의 요람'이다. 몽골 세계제국 시대에는 페르시아어로 '다쉬트 이 킵차크'라고 총칭했으며, 이는 '킵차크의 초원'이라는 의미이다. 페르시아어는 몽골 시대에 국제어로 사용되었다. 칭기스칸의 장남 조치를 비롯한 그 가문과 그들의 영지를 조치 울루스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킵차크 한국'이라고 부르는 곳은 '다쉬트 이 킵차크'라는 당시의 국제용어에서 유래했다. 이 서북유라시아 대초원이 조치 울루스의 본거지였기 때문이다."(88-9)


3장 유목 국가의 원형을 찾아서


"헤로도토스가 저술한 《역사》 전편의 클라이맥스인 '페르시아-그리스 전쟁'이 막 시작하기 직전에,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이 바다와 육지에서 동시에 전개한 북진 작전의 상대는 스키타이다. 때는 기원전 514년 또는 513년경이다." "그 당시 그리스인의 관념으로 유럽은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라는 두 해협을 경계로 북쪽에 펼쳐진 땅 전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그 남쪽 가운데 동쪽으로 펼쳐져 있는 곳을 '아시아', 서쪽은 '리디아'(이른바 아프리카)라고 불렀다. 아시아와 유럽을 지금처럼 동쪽과 서쪽이 아니라 남쪽과 북쪽에 위치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온난하거나 뜨거운 날씨, 풍요의 땅에서 사치스러울 정도의 문화의 꽃이 핀 것은 아시아 쪽이었다. 유럽은 한랭하고 소박한, 무례함의 땅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스키타이나 그리스 또한 위의 관념에 따르면 모두 '북쪽의 땅', 유럽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스키타이-페르시아 전쟁'을 아시아와 유럽 최초의 대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른다."(106-8)


"스키타이 국가는 동방에서 진출한 사르마타이 집단에게 밀려 슬금슬금 서쪽으로 이동했으며 기원전 3세기 중반 무렵에는 완전히 해체되고 만 듯하다." "그러나 그 사르마타이 또한 4세기 동방의 중앙아시아 방면에서 밀려온 파도에 휩쓸렸다. '사르마타이 연합'은 와해되었고 훈족의 패권 아래 흡수되었다." "이런 경위를 일괄해서 말하면 서북유라시아 방면에서는 유목 군사집단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 연합체가 계속 형성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사이 동방에서 새로 나타난 무리에 의해 중심 집단의 교대와 연합체의 재구성이 이루어지는 것도 이곳의 '정치 전통'이 되었다." "13·14세기 몽골의 서북유라시아의 도착과 장기적인 지배가 그 마지막 파도였다. 조치 울루스를 정점으로 하는 300년에 걸친 느슨한 정치 시스템 속에서 태어난 러시아는 이 전통의 파도(초원 세력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확장하는)를 뒤집는 형태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전진했고, 러시아라는 '유라시아제국'을 전前근대의 마지막에 출현시켰다."(120-2)


"한편 스키타이와 병립했던 아케메네스왕조 또한 다양한 지역 사회를 포함한 '거대 국가' 패턴의 원류를 이룬다. 즉 스키타이와 아케메네스라는 남북 양국은 그 후 유라시아 역사의 이중 국가 패턴(그것도 광역 국가의)의 원류인 것이다." "'세계제국' 아케메네스왕조를 실제적으로 건설한 다리우스 1세는 장대한 구상을 토대로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하고 여러 갈래의 국가·사회의 건설 사업을 펼쳤다. 중앙과 속령이라는 양면을 기본으로 배려하며 재조직했던 다리우스의 여러 시책은 총체적으로 국가·사회·경제·문화 건설의 요점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 그 후 인류사에서 '국가'라는 점의 원형, 특히 '제국 지배의 원형적 이미지'라고 해도 좋은 형태의 대부분은 모두 다리우스의 국가 건설 사업 중에 나오고 있다." "이렇게 보면 그리스의 도시 문명의 의미만을 오로지 높이 내걸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주장이나 언설의 대부분은, 물론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겠지만 얼마나 편협하고 독선적인 것이지 부정하기 힘들다."(124, 127-8)


"동반부에서는 유목 국가의 형성이 서반부보다 훨씬 늦었다. 사실 '중화 본토'도 아케메네스왕조를 기준으로 보면 시기적으로 크게 늦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중국 본토의 전국시대 이전 동방의 유목민들은 말을 키우고는 있었지만 뛰어난 기마 기술과 그를 뒷받침할 각종 마구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또한 이동 목축의 범위 또한 지극히 제한된 공간 안에서 이루어졌다. 유목민이라고는 하지만 걸어 다니는 유목민이었고, 따라서 유목 생활의 내용이나 집단의 규모도 작았으며 군단이라는 의미 또한 매우 미약했다. 그런데 그것이 크게 변한 것이다. 도시 주민과의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또 하나의 의미를 전한다. 유라시아 서반부에서 발달한 기마 기술과 그것을 전제로 운영되는 넓은 범위의 활용이라는 말 그대로 유목 사회 시스템이 동방의 유목민들에게 거의 완전하게 전해졌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로 희미한 존재였던 유목민들은 기동성과 집단 전술을 몸에 익히면서 급속도로 군사화되었다."(137-8)


"《사기》 〈흉노열전〉에서 권력을 장악한 묵돌은 냉정하고 과감한 타고난 군사 지휘관으로서(아마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다) 일정 부분 이상화되어 묘사되고 있다. 거기에는 사마천의 명확한 의도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즉 자기가 속한 한왕조를 개국한 유방에 대한 묘사는 묵돌의 경우와 전혀 다르다. 사마천이 말하는 묵돌과 유방의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우열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씩씩하고 용감한 영웅은 다름 아닌 묵돌이다. 어딘가 무능하고 어리석으며 칠칠치 못한 유방의 멍청한 모습을 《사기》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마천은 사태를 주시하며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읽으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기록했다. 그것을 전혀 몰랐던 것은 후세의 독자들이었다. 그것은 당시 현실 속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중화'라는 가상적인 의식의 세계가 사전에 시야를 한정시키고 그 좁은 시야로 《사기》를 읽고 그 속에 담긴 세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뒤집힌 역사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148-9)


4장 초원과 중화를 관통한 변동의 파도


"한나라와 흉노 간의 총력을 기울인 장기전은 결국 두 제국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공격을 받은 흉노는 연합 주권의 형태 그 자체가 크게 흔들렸고 몇 가닥의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편 공격을 한 한나라는 국가·사회의 내부에서 혼란이 발생했다. 직접적으로는 거액의 군사비 지출로 인해 국가 재정이 파탄 나고 말았다. 무제를 중심으로 한나라 정부는 새로운 화폐를 주조하고, 소금·철·술을 전매로 바꾸었으며 '균륜', '평준' 등의 물가 조절 정책 같은 다양한 정책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려고 시도했다. 무제 시대에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련의 전매제도는 이후 중화왕조에서 계승했고 세수의 절반 가까운 부분을 차지했다." "전쟁 비용 염출을 위한 당연한 결과로서 경제의 왜곡까지 더해져 사회에 짙은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결국 한무제 사후 그의 후계자가 된 소제昭帝는 곧바로 흉노와 강화를 맺는다. 한나라의 약속 파기에서 시작된 '흉노-한 전쟁'은 다시 한나라의 요청에 의해 종지부를 찍었다."(180-2)


"유연은 예의 묵돌의 후예로 선우 왕가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직접적인 계보 관계는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성을 중국풍으로 유劉라고 쓴 것은 한나라의 초대 황제인 유방이 종실의 딸을 묵돌에게 시집보낸 이후 한나라의 공주와 통혼에 의해 한왕조 유씨의 피가 선우 왕실에도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왕실의 신성한 혈맥인 유씨 자체가 후한의 현제 이후 촉한의 황제였던 유비 일문 이후 정치적인 존재로는 단절되었기 때문에 이 흉노 왕족이 함께 쓰는 유씨야말로 제대로 된 유씨였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유연은 몸속에 과거의 두 제국인 흉노와 한의 피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초원과 중화의 틀이 무너지고 서로 난입해서 공방을 벌이는 난세였던 당시 유연이야말로 귀한 존재 가운데서도 귀한 존재였고 왕자 중의 왕자였다. 두 왕권의 혼혈이라고 해도 좋을 존재, 그 자체가 당시 아시아 동쪽에서 뛰어나게 우수하고 신성한 상징이었던 것이다."(203-4)


"한의 황제가 된 유연은 불과 2년 뒤인 영가 4년(310년) 7월, 세상을 떠났다. 진왕조 타도 작전이 한창일 때였다. 유연은 상징적인 혈통과 재능에 더해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운명을 지닌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의 이른 죽음은 흉노왕조를 단명하게 만든 하나의 원인이 되었고, 더 나아가 정치 상황을 다시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유연이 없는 흉노족의 한왕조는 이미 초라해진 진왕조를 몰아냈다. 영가 5년(311년) 진의 수도 낙양은 한왕조의 흉노 군대에게 함락되었다. 이 전후의 동란을 일반적으로 영가의 난이라고 부른다. 난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정권 교체였다. 이 사건을 진왕조에 대한 흉포한 '이민족의 반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중화사상의 산물이다." "애초에 이 시대에 있어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확정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시대는 현실적으로 '이민족'과 '한민족'을 확실하게 나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근대주의의 편협한 '민족' 개념을 훨씬 뛰어넘는 곳에서 역사가 진행되고 있었다."(222)


"이번에는 시대를 건너뛰어 선비 탁발부가 결성한 대국은 북위라는 화북의 통일 정권으로 성장한 다음 동위와 서위로 분열하고 각각 북제北齊와 북주北周라는 이름으로 바꾼 다음 그 북제가 수隋에서 당으로 바뀐다. 즉 이들 정권은 모두 선비 탁발부 집단이 중심이 되어 세워진 일련의 국가다. 어디부터 어디까지라고 또렷하게 선을 긋기 어렵다. 대국에서 북위를 거쳐 마침내 당에 이른 국가는 중화풍의 왕조 이름을 바꾼 연속된 국가였다. 권력의 실제 그 자체의 연속성, 공통성에 착목하면 현실적으로는 '탁발拓跋 국가'라고 일괄해서 취급하는 것이 적절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5호 16국 시대'라고 하면 이 시기만이 '주변의 야만족'들이 중화에 도발한 시대라고 별다른 의심 없이 그 오해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중국사에서 순수한 한족왕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잘해야 한漢·송宋·명明 정도밖에 안 된다. 북위나 당나라는 중화왕조로 보고 5호 16국은 이민족의 왕조로 보는 것은 사기에 가깝다."(224-5)


5장 세계를 움직인 투르크-몽골족


"5세기를 전후하여 초원 세계는 동쪽에서 차례로 투르크·몽골계 연합체인 유연, 투르크 색깔이 짙은 고거, 이란계가 정권 중심인 에프탈이라는 세 부류의 유목 국가가 나란히 있는 상황이었다. 이 삼국의 동서에는 강력한 정치 세력이 있었다. 동쪽은 탁발 국가에서 유래한 북위가, 서쪽은 이란고원을 중심으로 한 사산조페르시아가 그것이다. 이들 삼국과 두 나라, 모두 5개의 국가가 서로 착종한 정치 관계를 맺고 항쟁했다." "또한 이런 사태를 좀더 시야를 넓혀 바라보면 남중국의 남조와 동지중해 지역의 동로마 또한 다분히 깊은 관계와 이해로 얽혀 있었다. 즉 유라시아 동서에서 7개국이 진주처럼 꿰어져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역사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7개국의 갈등은 '유라시아 시대'의 방문을 알리는 최초의 종소리였다. 그러나 그 각축 상황은 겨우 반세기로 끝났다. 6세기 중반 무렵 중앙유라시아의 한쪽 구석에서 보다 격렬한 시대와 정국을 주도할 강력한 유목 국가가 갑자기 출현했다. 그것은 돌궐이었다."(248-9)


"그러나 돌궐이 유라시아 동서에 이르는 넓은 영역을 하나로 통합한 것은 불과 30년 정도였다. 583년 돌궐은 동서로 분열했다. 동돌궐은 몽골고원을 본거지로 삼아 그 주변을 지배했고 서돌궐은 천산 산중을 근거지로 중앙아시아와 서북유라시아를 지배했다. 그런데 이러한 돌궐의 동서 양분은 돌궐 국가의 급격한 확대가 이루어진 초기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동쪽과 서쪽 두 개로 담당 지역이 양분되어 있었는데 결국 그대로 분할되고 만 것이다.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투르크계 주민을 기반으로 하는 한편 크고 작은 분권 세력이 할거했던 돌궐은 극히 이완된 연합체였다. 게다가 '국가' 전체를 통합시킬 수 있는 중앙권력은 거대한 판도와 비교할 때 너무나도 미약했다. '세계제국'을 지속시킬 수 있는 정치기구가 아직 발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거대한 돌궐의 동서 분열은 탁발 국가에 행운을 안겨주었다." "581년 양견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대대로 물려받았던 작위인 수국공隋國公에서 따서 수왕조를 열었다."(253-5)


"아마 성립 초기의 당왕조는 다시 강력해진 동돌궐의 속국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관계가 곧바로 역전되었다. 동돌궐의 지배 아래에 있던 철륵鐵勒을 비롯한 설연타薛延陀 등 투르크계 여러 부部가 독립운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막 당나라의 제2대 황제가 된 태종 이세민은 630년 이를 기회로 삼아 일거에 힐리 카간을 밀어붙였고, 동돌궐의 옛 속국과 독립을 지향했던 여러 부를 회유하며 자신을 카간으로 섬길 것을 요구했다. 또한 청해 지방의 토욕혼을 굴복시키고 더 나아가 급속하게 국가를 형성한 감숙회랑이 이끄는 토번과 화친을 맺은 당왕조의 세력권은 단숨에 아시아 동방 전체를 덮을 만큼 넓어졌다. 태종 이세민이 내륙 아시아의 군장들로부터 '천가한天可汗'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투르크-몽골어로 '텡그리 카간'이었다." "계보로 보면 선비 탁발부 출신으로 부계나 모계 모두 분명 흉노로 거슬러 올라가는 당나라의 태종은 유목민들이 보기에 적합한 투르크 몽골의 왕이었다."(256-7)


"동돌궐은 744년 위구르족을 중심으로 한 토쿠즈오구즈Toquz-Oghuz 연합에 의해 무너졌다. 토쿠즈오구즈 또한 투르크 계통이었다. 위구르는 ('안사의 난' 이후 급속도로 무력해진) 당왕조와 안전 보장을 제공해주는 대가로 거액의 경제 지원을 받는 화친 계약을 맺었다. 이것은 당왕조 중앙정부의 재정을 극도로 약화시켰고, 마침내 당은 탁발 국가의 전통이었던 조용조租庸調를 근간으로 하는 세금 체계에서 양세법兩稅法에 의한 세금 징수 시스템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역대 중화왕조에서 소금 전매가 중앙 재정의 근간이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위구르의 주도는 정치·군사 면에 그치지 않았다. 돌궐 이후 투르크 국가와의 인연을 강화한 소그드 상업 세력과 결탁한 위구르는 소그드인의 대상들을 활용해서 자기들의 영향 아래에 있는 당왕조 중국에 말을 주고 비단을 받는 '견마絹馬 무역'을 확대했다. 물론 국제 상품인 비단은 소그드 상인의 상업망을 통해 중앙아시아와 그 너머로 전매되었다."(267-70)


"키타이(거란) 국가는 그 속에 유목 사회와 농경 사회를 품고 있었고 그 점에 대해 말하면 '유농遊農 복합 국가'라고 표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위구르 유목제국에서 명확해진 유목과 도시의 관계는 키타이 국가에 이르러 전면적으로 전개되었다. 즉 단순히 유목 국가, 농경 국가로 구분하는 도식을 적용할 수 없는 시대로 이미 접어들었다. 유목 국가는 뭉치기도 쉽지만 깨지기도 쉬웠다. 그것이 장점이기도 하고 약점이기도 했다. 붕괴되기 쉬운 것은 연합체가 갖고 있는 숙명이었는데, 다르게 표현하면 중앙권력과 그것을 지탱하는 기구·조직이 국가 전체의 총량과 비교해서 극히 작았다는 점으로 압축된다. 그런데 키타이 국가에 이르러서는 그 결점이 상당히 수정되었다. 키타이 국가는 유목 국가의 구조에 농경 국가의 시스템을 수용해서 당시까지 볼 수 없었던 강력함과 지속력을 손에 넣었다. 즉 유목 국가는 키타이 국가 이후 국가 시스템이 변했다. 즉 국가의 형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287-9)


6장 몽골의 전쟁과 평화


"주로 혈연 또는 의리를 통해 유사 혈연으로 맺어진 소규모 집단을 편의상 '씨족'이라고 부르고 그런 '씨족' 집단이 지연地緣이나 정치적인 이유(이 경우도 '피'로 맺어진 친소 관계가 강조된다)로 하나로 모인 것을 편의적으로 '부족'이라고 부른다. 고원에 할거하는 여러 세력 가운데 동부의 흥안령 일대를 타타르Tatar, 콘기라트Qonggirat, 중부의 오르콘 토라 일대의 케레이트Kereyit, 북부의 셀렝게 유역의 메르키트Merkit, 그리고 서부의 알타이 일대의 나이만Naiman 등이 유력했다." "그러나 몽골('맹골萌骨', '몽올蒙兀')이라고 불리는 집단은 오랫동안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니었던 듯하다. 약소 집단인 몽골부가 부상한 것은 12세기 무렵으로 테무진 등장의 전야라고 해도 좋다. 이때만 해도 몽골은 신흥 세력이었다. 12세기 끝 무렵 테무진은 몽골 집단의 리더로 부상했다." "여기에 용모와 언어가 제각각인 유목민들이 테무진이라는 일개 권위자 아래로 모여드는 양상이 벌어졌다. 이를 정치 연합체 외에 달리 부를 말이 없다."(320-1)


"1206년 칭기즈칸을 칭한 테무진이 휘하의 유목 연합을 '대몽골국'이라고 명명하면서 몽골은 국가의 이름이 되었다. 인종과 민족의 이름이 아니었다. 이것이 몽골 확대의 열쇠다. 이때 '몽골'에는 '민족'이라는 용어로 부를 수 있는 동일성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모여든 몽골이 '몽골 공동체'가 된 것은 칭기즈 체제에 의한 유목 집단의 재편성이 일단 종료되고 대외 원정에 나서는 1211년부터다. 전후 6년에 걸친 금제국에 대한 대대적인 공략은 거국일치擧國一致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 '몽골과 금의 전쟁' 동안 신흥 '대몽골국'의 성년 남자 대부분은 고비사막의 북쪽에 있는 본거지(막북漠北)를 떠나 막남漠南의 땅에 병참기지를 구축하고 화북 전역에서 전투를 벌였다. 국가 건립 후 곧 이어진 이 대작전에 의해 '대몽골국'의 유목민들은 자신들이 '몽골군'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속으로는 다양한 부족과 씨족에 속해 있었지만 겉으로는 '몽골'이라는 하나의 덩어리라는 것을 막대한 전리품과 함께 자각했다."(322)


"동부 천산의 남북에 나라를 세운 불교·통상 국가인 '천산 위구르'와 그 서쪽인 천산 산중, 이리 강의 계곡에 나라를 세운 무슬림왕국인 '천산 카를루크'(카라한왕조와도 관계된)는 모두 투르크계 지배자를 섬긴 작은 국가였다. 두 국가 모두 일찍부터 몽골로의 귀속을 결정했다. 그리고 두 국가가 참가해서 역시 투르크계 이슬람 대세력인 호라즘샤왕국을 붕괴시킨 결과로 중앙아시아에서 서북유라시아, 서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던 투르크계 여러 집단이 차례로 몽골에 편입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특히 서북유라시아 초원의 킵차크족은 이보다 10년 후 '바투의 서쪽 원정'에 의해 조치 울루스에 편입되었다. 그 결과로 불과 4개의 천인대를 갖고 있었던 조치 집안은 일거에 30배가 넘는 대병력을 획득했고 몽골제국 전체에서도 굴지의 군사력을 지니게 되었다." "몽골은 대부분 '동료'를 늘려 그것을 '몽골'이라는 이름 아래로 차례차례 편입했다. 편입·재편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진 조직화야말로 몽골의 확장에 큰 디딤돌이었다."(330-1)


"1260년을 정점으로 하는 제위 계승 전쟁의 결과로 무력에 의해 제5대 몽골 대칸의 지위를 손에 넣은 쿠빌라이는 방대한 인구와 드넓은 판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놓고 근본부터 재검토해야 했다." "몽골제국은 이후 쿠빌라이 집안이 독점하게 된 대칸의 '대원 울루스'를 중심으로 서방의 세 영역을 포함한 '세계 연방'의 색채를 짙게 드러냈다. 이른바 이중 구조로 이루어진 몽골제국을 쿠빌라이가 받아들였다고 말해도 좋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군사력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경제와 유통의 조절을 통해 유라시아 규모로 통상을 유도해서 분유分有 체제가 강화된 몽골제국 전역에서, 유라시아,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세계'를 연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쿠빌라이는 그 전제로 남중국의 남송을 접수하고 마침내 중국 전토를 판도에 넣었으며 남쪽의 습윤 아시아와 뜨거운 바다를 시야에 넣었다. 몽골제국이 확대되어가는 역사 속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바다 진출을 이루었다."(336-7)


"남송의 '유산'은 쿠빌라이 정권이라는 이용자의 도움으로 활짝 꽃을 피웠다. 몽골제국 전체에서 생각하면 쿠빌라이의 우방 훌레구 울루스는 중동의 동쪽 절반을 지배했다. 즉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의 무슬림 해상 세력은 모두 몽골의 손에 장악되었다. 쿠빌라이의 대칸 정권인 '대원 울루스'를 중심으로 동서가 호응하는 형태로 몽골의 해상 진출과 동서 해양 무역의 장악이 이루어진 것은 당연한 추세였다. 여기에 8세기 이후 무슬림 해양 상인의 동진이라는 시대를 관통하는 현상과 당나라 말기 이후 남송을 거쳐 해양에 대한 지향성을 높여갔던 강남이라는 풍요로운 산업사회가 쿠빌라이의 '대원 울루스'라는 강력한 추진력에 의해 하나로 묶여 확실한 모습으로 시스템화되었다. 그것은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내륙과 해양이 참된 시스템으로 결합된 시대의 개막이었다. '유라시아 대교역권'이라고 불러야 할 초대형 통상·교류의 소용돌이가 13세기 말기인 1280녀대 끝자락에 명확해졌다."(343-4)


"몽골의 확대와 그 후의 통치를 통해 군사·정치조직의 몽골과 상업·경제 조직의 무슬림 및 위그르와의 공동화 또는 일체화가 두드러졌다. 이런 면에서 이들을 각각 몽골 지배의 '겉'과 '속' 얼굴이라고 부를 수 있다. 당시 이들 상업 세력은 자기 이외의 누군가를 선택해서 '파트너'로 함께 활동했다. 그리고 그것이 발전하면 자금을 모아서 대형 자본을 만들어 그것을 토대로 공동 또는 단체로 각종 경제 활동을 영위했다. 그것을 투르크어로 '오르톡Ortoq'이라고 불렀다. 원래는 '동료', '동업자'라는 뜻이었는데, 그것이 변해서 '조합'이라는 의미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쿠빌라이는 이전부터 몽골과 표리일체의 관계였던 오르톡 무리를 더 강력하게 정권 내부로 끌어들였다. 그 가운데 유력자를 정부 고관, 그것도 경제·실무 부문의 최고 책임자로 임명해서 오르톡이라는 조직과 다양한 영리 활동을 통째로 국가 관리 아래에 두었다. 오르톡들은 쿠빌라이와 그 브레인들이 고안한 새로운 '세계 전략'의 첨병이었다고 보아도 좋다."(351-4)


7장 근현대사의 틀에 대해


"전근대의 유라시아 세계사는 군사력이 뒷받침된 정치권력이 사람들과 지역을 하나로 묶어 '국가'를 만들었다. 전근대의 유라시아뿐만 아니라 근현대의 세계에서도 '민족'은 (그 이후에) 만들어졌다. 분명히 '민족'이라고 부르기에 적합한 경우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확실한 유래와 전통을 가진 '민족'뿐만 아니라 막 만들어진 '민족'도 있다. '민족'이라는 생각 자체가 작위성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근현대에 '소수민족'이 마구잡이로 만들어졌다. 아마 국민국가가 '소수민족'을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국가라는 환상 속에서 국가의 '주체'가 되는 '다수 민족'이 설정되고 거기에 속하지 못한 사람이 '소수민족'으로 불리게 되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나 현재를 바라볼 때 '민족'이라는 말 속에 다양한 변화가 있고, 현실에서는 도저히 하나로 묶을 수 없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하나로 묶어 생각해왔다. 그러나 지도에서 단색으로 칠할 수 있는 '민족'은 오히려 소수이며 때로는 부자연스럽기도 하다."(400-4)


"지구상에 있는 각각의 지역과 문명권에는 고유의 가치와 역사가 있고 각각 순위를 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 그 결과로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인도 문명권, 중동, 중앙아시아, 러시아, 유럽, 남·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이 각각 병렬되고 만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는 오히려 일종의 '문명주의'가 숨겨져 있다. 현대의 눈을 들이대고 과거에도 분명히 그러했을 것이라고 제멋대로 역사와 지역을 분리한 것이다. 물론 역사시대에 그런 지역 분리가 적당한지 여부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 또 거론되는 여러 지역 사이의 연쇄나 역사 전개에 대한 통찰 또한 없다. 이들 모두 현대 본위의 접근 방식이다. 아니 그보다 과거의 유럽 중심주의와 비교해 각 지역을 '평등하게 다룬다'는 미명으로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기는 분위기조차 존재한다. 그러나 과도한 분리는 오히려 역사의 현실을 숨기는 일이 되고 만다. 그렇게 본래의 역사에서 분리된 연구는 '지역사'나 '문명권사'로 한정되어 인류사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404-5)


"유라시아라는 용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입힐 필요가 없다. 유라시아라는 틀이 있기 때문에 드러나는 부분도 많다. 역사시대에도 그러했고 현대에도 유라시아라는 시각이 여전히 유효하다. 지구화의 역사를 열어젖힌 근대 서구는 극단적으로 무장한 군사 국가였다. 요컨대 세계사는 유목민이라는 땀냄새를 풍기는 군사 권력이 통합하는 시대에서 인력을 초월하는 육·해·공의 거대 전투력을 가진 시대로 이행한 것이다. 그 근대 서구형 문명이 몽골을 정점으로 하는 유목 국가를 '야만'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어딘가 몹시 어리석고 웃기는 일이다." "이제까지의 역사상像·문명상像의 왜곡을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으려고 할 때 아마 중앙유라시아와 유목민의 역사는 유력한 하나의 시점이 될지도 모른다. 근대 세계에서는 원래 '국가'라는 것에 배치되는 주변적인 존재로 여겼던 유목민이 사실은 과거 인류사를 유지하고 '국가'라는 것에 대해서도 최대의 담당자였다. 바로 여기에 세계사라고 불리는 큰 패러독스가 있다."(405-6, 4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불안할 땐 뇌과학 - 불안하고 걱정하고 예민한 나를 위한 최적의 뇌과학 처방전 쓸모 있는 뇌과학 4
캐서린 피트먼.엘리자베스 칼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들어가는 글 | 불안에는 두 개의 통로가 있다 5


뇌에는 사실상 별개의 두 통로가 불안을 생성한다. 한 통로는 뇌의 커다랗고 구불구불한 회색 부분인 대뇌피질(cerebral cortex)에서 시작되고, 일상생활 속의 여러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사고를 결정한다. 다른 통로는 편도체(amygdalas)를 통해 이동하는데, 편도체는 뇌 좌우에 하나씩 있는 두 개의 아몬드 형태 조직이다. 편도체(두 개이지만 보통 단수 취급)는 지구상에 척추동물이 생겨난 이래 사실상 변하지 않고 세세손손 전해진 아주 오래된 두뇌 조직으로, 척추동물의 투쟁 혹은 도주(fight-or-flight) 반응을 일으킨다. 피질에서 비롯되는 생각은 불안의 직접적인 원인일 수도 있고, 그래서 불안을 가중하거나 감소시키는 효과를 지닌다. 많은 경우, 우리의 생각을 바꾸면 불안을 일으키거나 조장하는 인지 작용을 사전에 막아낼 수 있다. 반면, 편도체는 전혀 다른 통로다. 인간은 편도체가 상황이나 대상에 불안을 부여하는 방식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는 마치 간이 소화를 돕는 걸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10-1)


제1부 | 불안을 느끼는 뇌에 대해 알아야 할 최소한의 지식


대다수 사람이 불안의 원인과 관련하여 떠올리는 것은 피질 통로(감각, 사고, 논리, 상상, 직감, 의식 기억 그리고 계획의 주된 통로)다. 불안 치료는 일반적으로 이 경로를 목표로 하는데, 아마도 이것이 더 의식적인 경로이기 때문에 이 경로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더 잘 인식하고, 기억하고 집중하는 것에 접근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편도체 통로에서 오는 불안은 대부분 신체에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편도체는 뇌의 다른 부분들과 무수히 관련되며, 이런 상호 관련성은 여러 신체 반응을 무척 빠르게 격발한다. 0.1초보다도 더 빠른 찰나에 편도체는 아드레날린 분비를 급증시키고, 혈압과 심박수를 증가시키거나 근육 긴장도를 높일 수 있다. 이 외에 더 많은 신체 반응이 생긴다. 편도체 통로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 개입하지 않으며 피질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가동된다. 당신이 지금 겪는 불안에 명백한 원인도, 논리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편도체 통로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보면 된다. 17-8)


인간의 피질은 크게는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뉜다. 시각, 청각 그리고 다른 감각 정보를 처리하고 세상의 사물들에 대한 인식과 감각을 종합하는, 각각 다른 기능을 지닌 엽(葉: lobe)이라는 여러 부분으로 나뉜다. 피질은 뇌에서 인지와 생각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불안의 피질 통로는 감각 기관에서 시작된다. 눈, 귀, 코, 미뢰 그리고 심지어 피부마저도 세상에 관한 정보를 전달한다. 세상에 관한 모든 지식은 감각기관을 통해 전달되고 피질의 여러 부위에 의해 해석된다. 감각기관을 통해 정보가 전달됐을 때 그 정보는 시상(視床)으로 가는데, 이곳은 뇌에서 가장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한 곳이다. 시상은 말하자면 ‘중앙 중계국’으로 눈, 귀, 코 등에서 온 각종 정보의 신호를 피질로 보낸다. 시상으로 정보가 들어온 다음에는 다양한 엽들로 보내져 처리되고 해석된다. 그다음에 정보는 전두엽을 포함하여 뇌의 다른 부분으로 이동한다. 전두엽은 정보를 취합하여 세상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두뇌의 핵심 부분이다. 20)


피질 통로는 불안의 주된 원천이다. 전두엽이 상황을 예측하고 해석하면서, 그 예측과 해석으로부터 종종 불안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예측’은 다른 피질 기반 작용인 ‘근심 걱정’을 만든다. 고도로 발전된 전두엽 때문에 인간은 미래에 벌어질 일을 예측하고 발생 가능한 결과를 예상한다. 반면 우리의 반려동물은 내일 문제 따위는 전혀 예측하지 않고 평화롭게 잠든다. 근심 걱정은 어떤 상황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예측하기에 생기는 결과물이다. 불안이 생기는 두 번째 통로는 편도체다. 우리는 피질이 발생시키는 각종 생각과 이미지 때문에 불안으로 이어지는 피질 통로에 더 친숙한 것 같지만, 그 배후에서 불안에 관련된 각종 신체 경험을 일으키는 부위는 바로 편도체다. 편도체는 자신의 전략적 위치와 두뇌의 여러 조직과 맺는 상호 연관성을 작동시켜, 호르몬 방출을 통제하고 불안의 신체 증상을 만들어내는 등 뇌의 여러 부분을 활성화한다. 이렇게 하여 편도체는 신체에 강력하고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21-3)


# 편도체는 시상에서 바로 정보를 얻는다. 실제로 편도체는 ‘피질보다 먼저’ 정보를 받는다. 대뇌피질이 위험을 감지하기도 전에, 편도체 외측핵은 당사자를 위험에서 보호하도록 반응하는 것이다.


편도체의 영향을 받는 두뇌 조직으로는 뇌간 각성 체계(brain stem arousal system), 시상하부(hypothalamus), 해마(hippocampus), 측좌핵(nucleus accumbens) 등이 있다. 이런 직접적인 연관성 덕분에 편도체는 즉시 운동 신경을 활성화시키고, 교감 신경계에 동력을 공급하고, 신경 전달 물질의 활동 수준을 높이고,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같은 호르몬을 혈류에 방출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런 활성화는 신체에 폭포처럼 변화를 일으킨다. 심박수가 늘고, 동공이 확장되며, 혈류는 소화관에서 사지로 흘러가고, 근육이 긴장하며, 신체에 동력이 공급되고 행동에 나설 준비를 갖춘다. 이런 생리적 변화에 대응하여 당사자 본인은 몸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복부와 창자에 고통을 느낀다. 이 모든 변화는 투쟁, 도주 혹은 얼어붙기 반응의 일부이다. 불안과 싸우려는 사람들은 책임 의식이 강한 편도체의 존재감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위험 상황을 맞닥뜨리면 뇌는 편도체에 ‘통제권’을 부여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41)


많은 사람이 공황, 걱정 그리고 특정 대상이나 상황 회피 같은 불안장애 증상이 있으면, 이성적 논의로 그런 불안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의를 지닌 가족과 친구, 때로는 불안과 싸우는 당사자조차 논리와 이성이 환자의 증세를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에서 누누이 말했듯 편도체는 논리적이지 않다. 많은 피질 기반 불안은 논리적인 주장에 반응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편도체 기반 불안에 관해서는 오직 한 가지 방법만 통하는데, 그건 바로 체험에 의한 학습이다. 편도체는 오로지 경험으로 학습한다. 이것은 몇 시간에 걸친 대화 요법이나 여러 권의 자기계발서를 독파해도 불안 해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런 요법이나 자기계발서는 편도체를 공격 목표로 삼지 않는다. 어떤 대상(예를 들어 쥐)이나 어떤 상황(시끄러운 군중)에 대한 본능적 반응을 바꾸길 바란다면, 먼저 편도체가 그와 ‘동일한’ 대상이나 상황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47)


피질은 두 가지 일반적인 방식으로 불안을 일으킨다. 첫째, 외부 사물의 광경이나 소리 같은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불안이 생긴다. 둘째, 피질은 어떤 구체적인 외부 감각의 개입 없이 불안을 발생시킨다. 단순한 생각을 절대적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현상을 인지 융합(cognitive fusion)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피질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며, 자기 생각과 감정이 의문의 여지가 없는 궁극적 진실로서 취급되어야 한다는 완고한 믿음을 낳기도 한다. 생각과 현실을 혼동하는 것은, 모든 생각, 정서 혹은 신체 감각의 진짜 의미를 자신이 온전히 파악하고 있다고 믿는 피질의 자신감 때문에 벌어지는데 이는 무척 빠져들기 쉬운 유혹이다. 실제로 피질은 놀라울 정도로 오해와 실수를 쉽게 저지른다. 잘못되고, 비현실적이거나 비논리적인 생각을 하거나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정서를 경험한다. 그런 생각과 정서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깊이 분석하지도 말며 그냥 머릿속에서 흘러가게 내버려두라. 49-50)


# 좌반구 기반 불안(생각에서 나오는 불안)과 우반부 기반 불안(상상과 이미지에서 나오는 불안)으로 나눌 수 있다.


피질은 그 자체로는 불안 반응을 일으킬 수 없다. 편도체와 뇌의 다른 부분이 협조해야 한다. 피질에서 비롯되는 생각, 이미지 혹은 예측이 무엇이든 간에 불안의 정서적・생리적 양상 다수는 피질이 편도체를 활성화할 때만 발생한다. 편도체는 피질에서 전달된 정보에 반응한다. 실제로 편도체는 어떤 실제 사건에 반응할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비록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우리의 상상에 반응할 수 있다. 잠재적 위험에 관한 생각이나 이미지에서 나오는 정보는, 실제 사건의 인식 및 해석과 관련된 정보가 이동하는 것과 똑같은 통로를 타고 이동한다. 앞에서 이미 논의했듯 편도체는 시상을 통해 감각 정보를 받고는 거의 실시간으로 그것을 처리한다. 이와 무관하게 피질이 정보를 처리하고 해석하느라 시간 지연이 된 후에도 편도체는 피질로부터 정보를 받는다. 신경과학자들은 편도체가 피질에서 받은 정보를 놓고 어떻게 그 타당성 여부를 구분하는지, 구체적 메커니즘은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54-5)


제2부 | 편도체 기반 불안의 통제


공황 상태에 빠졌을 때는 그 상황에서 곧바로 도망치려는 강력한 충동이 생길 텐데 이를 억누르는 게 중요하다. 극도로 두렵고 불쾌한 경험이겠지만 그것은 신체적으로 당신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사실 실제로 당신이 느끼는 감각은 건강하고 활동적인 신체가 보이는 징후일 뿐이다. 공황발작 상황에서 도망치면 단기적으로 기분은 좋아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공황발작의 위력이 강화되어 더욱 극복하기 어려워진다. 가능하다면 긴장을 풀고, 숨을 깊게 쉬고, 그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버티며 남아 있으려고 노력하라. 물론 이것은 말하기는 쉽고 행동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편도체는 오로지 경험으로만 학습하므로 편도체를 어느 정도 통제하려면 반드시 “편도체가 작동하는 상황 안에서”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공황발작 상황에 감연히 맞서지 않고 매번 그냥 도망쳐버린다면, 당신의 편도체는 그 상황이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걸 배우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피하는 법만 배울 것이다. 75)


# 피질을 도와 공황상태를 극복하는 방법

1. 그저 느낌이라는 점을 기억하자(비록 무척 강렬하겠지만). 그저 나 자신이 지금 공황발작을 겪는다고 인식하고, 편도체 기반 증상을 피질이 오해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공황발작으로부터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2. 공황발작을 피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는, 증상에 대한 걱정을 그만두는 것이다. 공황에 빠진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공황발작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혹은 발생 여부를 계속 예측해봐야 다른 발작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3. 주의 돌리기(기분 전환)는 공황발작에 대항하여 활용할 수 있는 또 다른 피질 기반 전략이다. 증상에 집중하며 깊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공황발작이 더욱 악화될 수 있기에, 공황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일부러 더 생각하려고 애써야 한다.

4.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의식하지 말라. 공황 증상을 느낀다면,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추측하려고 애쓰지 마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하는 건 이미 불편한 스트레스 반응을 겪는 데에 또 다른 스트레스를 추가하는 일일 뿐이다.


노출 치료는 편도체 언어로 말하며 편도체를 가르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다. 여기에는 체계적 둔감화와 자극 흠뻑 젖기 방법이 있다. 체계적 둔감화(systematic desensitization)는 이완 전략을 배우면서 두려운 대상이나 상황에 점진적인 방식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방법이다. 이에 반해 자극 흠뻑 젖기(flooding) 방법은 사람들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 곧바로 뛰어들게 하여 몇 시간 동안 불안에 노출한다. 이 방법은 과격하지만, 훨씬 더 빠르게 불안을 극복하게 해준다. 어떤 접근법이든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정신적으로 두려워하는 상황에 정면으로 부딪힌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런 상황을 반드시 직접 경험해야 하며, 보통 반복적으로 그렇게 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것은 아주 도전적인 치료 형태이지만, 조사연구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정확히 편도체 회로를 재설계하는 데 필요한 접근법이다. 노출을 더 실천할수록 편도체가 전에 두려움을 느꼈던 상황과 트리거에 차분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커진다. 102-3)


제3부 | 피질 기반 불안의 통제


인지 치료(cognitive therapy)로 널리 알려진 접근법의 기본 개념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가진 몇몇 인식은 비논리적이거나 유해하며, 행동이나 정신 상태에 유해 패턴을 발생시키거나 악화한다는 것이다. 인지 치료사들은 자기 패배적이거나 역기능적인 생각, 특히 불안이나 우울 수준을 높이는 생각을 찾고 변화시키는 데 집중한다. 이 접근법을 인지 재구성(cognitive restructuring)이라고 한다. 불안과 맞서 싸우려는 인지 재구성 방법은 피질 통로에 직접 개입한다. 공포와 불안을 일으키는 뇌 과정은 피질 개입 없이도 발생할 수 있고, 실제로 발생한다. 가령 편도체 통로를 통하여, 피질 과정이 완료되기 전에도 공포 반응이 일어난다. 따라서 이런 다른 통로를 통해 생기는 불안도 있으므로, 생각을 바꾼다고 언제나 불안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인정하자. 그러나 피질에서 생각이나 이미지가 불안 반응을 일으킬 때 그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면 어느 정도 불안을 완화하거나 막을 수 있다. 124)


인지 융합(cognitive fusion)은 무척 흔하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객관적 현실이라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고, 자신이 내린 추정과 해석에 별달리 의문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특히 고통스러운 상황과 관련하여 자신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가정이 틀릴지도 모른다고 인식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인지 융합은 불필요한 불안을 많이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떤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이 인지 융합과 결합될 때 불안이 폭발할 가능성은 더 커진다. 당신이 비관적인 생각을 품거나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면 반드시 그런 인지 융합 상태를 인지하고 거기에 저항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얻는 혜택이 크다. 예를 들어 당신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 장차 벌어질 일이 당신 생각처럼 풀려나가는 게 아님을 인식하라. 구체적 사건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거나 미미할 뿐인데도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곧 그 사건 자체로 받아들이는 사례를 찾아보라. 140-1)


문제는 생각과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심리적 경향이다. 심리학자 스티븐 헤이스는 “이 경험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어 그것과 싸우려고 하는 경향이 가장 해롭다”라고 주장했고, 그런 경향에 맞서는 해법으로 ‘인지 분리’(cognitive defusion)를 제안했다. 인지 분리는 무척 강력한 인지 재구성 기법이다. 이 방식은 당신의 생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막연한 ‘의식의 흐름’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다. 일찍이 토마스 아퀴나스는 머릿속에 멋대로 떠오르는 생각을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새들에 비유했다. 그 새들을 당신 마음대로 포획할 수 없는 것처럼 그 생각들 또한 당신이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그러니 제멋대로 떠오르는 생각을 날아가는 새 떼 정도로 여기면서 그냥 내버려두라. 그러나 그 새가 당신의 머리 위에다 배설물을 떨어뜨린다면 그때는 적극 대응에 나서야 한다. 다시 말해 그런 생각이 객관적 현실로 나타난다면 그때는 적극 대응하라는 것이다. 142)


인지 재구성 기법의 핵심은 이것이다. 먼저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 이어 그 생각을 객관적 증거로 반박하고, 더 적응력이 높은 새로운 생각, 즉 대안적인 생각(coping thoughts)으로 대체한다. 당신의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는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에 특히 주목하자. 신경 회로는 “가장 분주한 것이 생존한다”라는 원칙으로 운영・강화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따라서 특정 생각을 더 많이 할수록 더욱 강력하고 단단해진다.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과 이미지를 중단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새로운 대안 생각으로 그것을 대체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당신은 문자 그대로 뇌 회로를 바꿀 수 있다. 대안적 생각은 당신의 감정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생각이나 진술을 가리킨다. 대안 생각은 차분한 반응을 일으키고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게 한다. 당신은 불안 생각에 맞서서 대안 생각으로 그것을 대체해나가야 한다. 기억하라. 당신은 지금 엉터리 불안・걱정에 집중하는 신경 회로를 바꾸는 중이다. 143-4)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려고 애쓰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지 못해 괴롭다고 불평한다. 이것은 두뇌의 사고 작용에서 기인하는 흔한 문제다.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면 이 패턴에 익숙할 것이다. 어떤 생각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고 끊임없이 상기시켜 그 생각을 지우면, 그 생각을 저장하는 회로가 활성화되고 더 강해진다. 당신은 “멈춰!”라고 분명하게 말함으로써 생각을 중단시킬 수 있다. 이 기법은 생각 멈추기(thought stopping)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그다음 단계가 중요하다. 어떤 대안 생각으로 방금 전 생각을 대체할 수 있으면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 대신에 당신을 매혹하는 것으로 대체한다면, 첫 번째 생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따라서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에 맞서려면, “지우지 마라, 대체하라!”(Don’t erase. replace!)가 최고 접근법이다. ‘나는 이걸 감당할 수 없어’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면 ‘쉽지 않지만, 어떻게든 이겨낼 거야’ 같은 대안 생각으로 교체하는 데 집중하라. 144-5)


편도체 기반 반응이 일단 작동하면 피질은 그것을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마음챙김을 사용하여 편도체에 휩쓸리지 않고 관찰하면 편도체 반응을 통제할 필요가 없다. 불안 반응에 마음챙김으로 접근하면 피질은 상황 통제 목표를 포기하고 단순히 불안이 일어나는 것을 내버려둔다. 이처럼 불안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불안에 맞서는 궁극적인 해법이다. 불안의 위력은 대부분 불안을 멈추기 위해 벌이는 지속적인 투쟁에서 비롯된다. 불안은 그렇게 하여 당신의 삶에 엄청난 통제권을 행사하려 한다. 불안 경험을 마주할 때 그것이 그저 스스로 지나갈 것을 알고 그냥 받아들이면 실제로는 더 빠르게 지나간다. 불안에 대해 걱정하면서 어떻게든 없애려는 반응을 보이면 오히려 불안을 이어가게 하므로 그렇게 하지 말라. 불안으로 인한 불편함은 불안과 싸우며 그 불안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데서 비롯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불안 통제 시도를 포기하면 실제로 뇌를 더 잘 통제할 수 있다. 151)


나가는 글 | 불안 없는 삶, 가능하다


# 불안을 줄이기 위해 뇌를 재구성하는 방법

1. 교감 신경계 활성화를 억제하기 위해 이완, 수면, 운동을 활용하라.

2. 당신의 생각 중에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은 없는지 감시하라.

3.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을 대안 생각으로 교체하라.

4. 삶의 목적을 확인하고 무엇이 그런 목적을 방해하는지 파악하라.

5. 목표를 방해하는 공포와 불안 트리거를 알아내라.

6. 이런 트리거에 대한 편도체 반응을 수정하도록 노출 훈련을 설계하라.

7. 불안과 공포가 줄어드는 것을 감지할 때까지 노출 훈련을 실천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마드 - 문명을 가로지른 방랑자들, 유목민이 만든 절반의 역사
앤서니 새틴 지음, 이순호 옮김 / 까치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1부 균형 잡기 


"튀르키예식 지명으로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라고 불리는 배불뚝이 언덕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고고학 유적지이지만, 금빛 찬란한 보물이 나오지는 않은 관계로 누구나 다 아는 곳은 아니다. 원뿔형 꼭대기 지면에서 슈미트의 그의 팀원들이 발견한 석판들은 T자 형 기둥들의 상부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기둥들은 정교하게 조각되었고, 아름답게 장식되었으며, 다른 것들보다 키가 큰 2개의 기둥을 중심으로 10여 개 기둥이 원형으로 세워져 있다." "이곳은 지구상에 인간이 거주한 최초의 장소들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르고, 심지어 우리 조상들이 자신이 상상한 어떤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경관을 개조한 첫 번째 장소일지도 모른다. 지구의 방대한 지역을 개조하는 오늘날의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1만 2,000년 전에 이는 몹시 혁명적인 행동이었다. 이 행동은 기념비적 건축의 시작이자 축조 예술의 시초, 우리 역사에서 현재의 인간 격格이 형성된 시발점이었다."(34-6)


"첫 번째로 놀라운 것은 연대年代였다. 〈추정컨대 괴베클리 테페가 형성된 시기는 기원전 제10천년기가 확실합니다.〉 슈미트의 말은 기원전 9500년 무렵에 인간들이 큰 돌덩어리들을 채석해 옮기고, 그 돌로 형상을 만들어 성역을 조성하는 데에 사용했다는 뜻이다. 그것은 피라미드와 스톤헨지가 축조된 〈기념비적 시대〉보다 약 7,000년이나 앞선 때였다." "두 번째로 놀라운 점은, 괴베클리 테페를 세운 사람들이 그곳에 거주했음을 나타내는 흔적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훗날의 발굴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낼지도 모르지만, 최초의 발굴 단계에서는 집터나 지붕, 혹은 화덕을 보지 못했다. 지속적인 거주지였다면 발견되었을 법한 쓰레기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초기 발굴 팀은 뜻깊게도 표범, 멧돼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분포하는 다마사슴, 두루미, 독수리 등 다양한 동물들의 뼈를 발견했다. 요컨대 그 사람들은 수렵인과 채집인, 방랑자,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거기에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37-8)


"괴베클리 테페가 지어질 당시 에덴을 벗어난 강의 동쪽, 그러니까 그곳의 주변 경관은 오늘날보다 비옥했다. 야생풀, 밀, 보리가 자라는 초원을 상상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참나무, 그리고 이제는 그 지역에서 집약적으로 재배되는 아몬드 나무와 피스타치오 나무들이 관목숲에 흐름이 끊기기도 한 그 초원은 가제로가 오록스의 터전이었고, 이주하는 거위들, 식용 가능한 다른 많은 새와 동물들, 그리고 유적지에서 나온 뼈의 퇴적물로 드러났듯 인간을 위협한 일부 동물들의 서식지였다. 이 풍요로움은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 멀리까지 방랑할 필요를 없게 만들었다. 배회할 필요 없이 성역을 개발하면서 정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괴베클리 테페는 인간들이 살고 죽은 곳이었다. 정착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 양식을 가져다주었다." "그에 대한 전모가 무엇이든, 1만 1천년 혹은 1만 2천년 전 괴베클리 테페에서 농업의 진화와 문화의 혁명이 일어났고, 그 변화의 동인이 이동하며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40-2)


"차탈회위크는 괴베클리 테페와 카인의 도시 에녹 사이의 어딘가에 놓인 원도시proto-city였다. 괴베클리 테페가 버려지고 약 500년이 지난 기원전 7500년경, 정착민들은 지중해에서 16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차르샴바 강과 가까운 아나톨리아 평원의 언덕에 주거지를 조성했다. 그들이 지은 흙벽돌집에는 1층 출입구가 없었고, 집들 사이에도 길이나 통로가 없었다. 평평한 지붕이 길 역할을 하고, 지붕 덮개를 통해 아래쪽에 위치한 집으로 들어가는 구조의 진흙 상자들이 어지럽게 모여 있는 형태였다." "괴베클리 테페와 마찬가지로 차탈회위크 사람들도 어느날(기원전 7000년 무렵) 갑자기 짐을 싸서 그곳을 떠났다." "떠난 이유가 무엇이건, 차탈화위크 난민들은 아마도 생존 꾸러미를 훨씬 상회하는 짐을 싣고, 자신들이 정착해 뿌리를 내릴 또다른 장소, 신께 예배드리고 신을 위무할 장소로 이동했을 것이다. 그곳에서도 개발이 진행되었다. 새 도시에는 튼튼한 성벽도 있었다."(59-61)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곳을 두 강 사이의 땅을 뜻하는 메소포타미아로 불렀다. 아람어, 히브리어, 시리아어, 페르시아어, 아랍어로도 되풀이되는 이름이다. 두 강은 에덴동산에서 갈라져 나온 〈강들〉 가운데 두 곳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고, 강들의 유역과 범람원은 튀르키예 남부에서 쿠웨이트를 거쳐 이란 남서부 바흐티야리 부족민들의 겨울 방목지에까지 이른다. 메소포타미아는 북부는 산악지대, 남부는 습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강들 사이의 지대는 엄청나게 비옥한 반면 강들의 동쪽과 서쪽은 점점 사막이 되어가고 있다. 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정착민은 강으로 향했고 유목민은 사막 주변으로 향했다. 초기에 농업이 번성하고, 그에 따라 도시와 도시가 지닌 대부분의 초기 특징들이 만들어진 장소가 이곳이다. 또한 깊숙한 과거와 역사시대가 만나고, 신화와 전설이 사실과 물리적 증거와 조화를 이루며, 유목 생활과 확실히 대비되는, 세계 최초의 도시들이 세워진 장소이기도 하다."(61-2)


"인간이 승마를 처음 시작한 때가 언제일까? 기원전 제4천년기가 시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결코 알 수 없었다. 카자흐스탄 북부의 그 시기 매장지에서 99.9퍼센트가 말의 뼈인 동물 뼈 10톤이 출토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동물 뼈들에는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게 일종의 마모가 진행된(입에 채워진 재갈 때문에/역자) 다수의 턱뼈와 이빨들이 섞여 있었다." "승마 능력은 곡물의 작물화를 능가하는 혁명이었다. 그것은 말의 혁명이었다. 말은 인간이 이용해온 것 중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영속적인 교통 수단이었으며, 승마 능력으로 지구에서의 삶은 바뀌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많이 바뀐 지역은 승마로 인해서 유목민의 목축이 가능해진 스텝 지대였을 것이다. 걸어서 방목하면 하루에 고작 32킬로미터를 갔지만, 최초의 승마자들은 안장 없이 말을 타고도 그 거리의 2배 혹은 그 이상을 갔다. 게다가 이동 거리의 연장은 말 혁명의 한 양상에 지나지 않았다(수레바퀴와 전차가 차례로 등장했다)."(75-6)


"말[馬], 인간이 혹독한 겨울을 날 때 가진 것에 감사해할 동물이면서, 항상 누군가의 재산이었던 동물. 전차, 바람처럼 날랜 것. 합성궁, 단풍나무, 영양의 뿔, 사슴의 내장 그리고 가죽을, 물고기를 원료로 한 아교로 접착해서 만든 복잡한 구조물. 코미타투스comitatus, 〈호위대〉를 뜻하는 말이지만, 그보다 더 정교하고 열의에 찬 전사 집단, 활에 쓰인 사슴 내장보다도 더 단단히 결합되고, 함께 살면서 필요하면 서로를 위해 죽겠다고 맹세한 집단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말. 이야기에 대한 애호, 특히 영예로운 인간의 모험과 신들의 변덕을 주 내용으로 하는 서사 역사를 좋아하는 취향. 유목민들은 이 모든 것들을 지니고 스텝 지대를 떠났다. 우리는 이제 그들이 헤라클레스의 쌍둥이 기둥(지브롤터 해협의 낭떠러지 어귀에 있는 바위/역자)으로부터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이집트 중왕국과 태평양으로 퍼져나갔고, 고대 세계에 광범위하고 영속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87-8)


"이 상호 연결된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는 세계에서는 인위적인 장벽이라고 해봐야 가시와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것, 혹은 임시 거처를 보호하기 위해서 바윗덩어리 몇 개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것이 고작이었다. 도시 진출이라는 큰 꿈에 매료되어 우루크, 바빌론, 로마 그리고 다른 많은 도시들로 이끌려 들어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성벽 밖에서 살았고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주자, 유목민, 상인─이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 유적 속에서 골라낸 길, 다시 말해서 역사의 고속도로는 우리로 하여금 기원전 1만 년의 현저한 업적 모두가 정착민들의 성취라고 믿게 만든다. 하지만 괴베클리 테페의 건설자들로부터 로마 제국의 종말을 재촉한 훈족에 이르기까지, 유목민, 이주자, 그리고 이동하며 살았던 그 밖의 종족들 역시 최초의 석조 기념물을 세운 것에서부터 말을 길들이고, 그 말과 연결해 수레 및 전차를 만든 것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진보에 상당한 기여를 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168-9)


제2부 제국 세우기 


"이븐 할둔의 업적이 한층 빛나는 것은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아테네도, 알렉산드리아의 고대 도서관도,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도 아닌, 그의 주변에서 어둠과 고난이 퍼져나가고, 정부들이 서로 싸우며, 사람들은 각자도생을 하러 떠났던 난세의 14세기에 북아프리카의 외딴 성에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때는 이동에 공격의 위험이 따르고, 치명적 병에 감염될 수도 있으며, 여행이 힘들고 위험한 시기였다." "이븐 할둔은 온 세상이 이처럼 고난에 처해 있고 황폐함이 만연하던 시기에 누구도 해본 적이 없는 일에 착수해서 인간이 어떻게 정연하고 효율적으로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었는지를 글로 정리하려고 한 것이었다." "서구의 역사서와 달리 『역사서설』(『이바르의 책』의 서문으로 쓰인)은 유목민을, 말이나 타고 다니며 과거에 창조된 것들을 파괴하는 야만인으로 제시하지 않고 원동력이자 킹메이커(숨은 실력자)로 제시했다. 이븐 할둔의 세계에서 아벨의 자식들은 촉매, 사회 갱신의 주요 동인이었다."(179-80)


"이븐 할둔의 작품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상황이 반드시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시간의 경과에서 그가 본 것은 〈인간의 향상〉, 상승의 진행이나 심지어 몰락의 진행이 아닌, 모든 것의 순환이었다. 그는 운명의 바퀴가 돌 듯이, 그리고 달과 해와 계절이 순환하듯이, 권력에도 흥망성쇠가 있으며, 제국들도 부침을 겪고, 도시들도 세워졌다가 무너지며, 사람도 살고 죽으며, 모든 것은 무無에서 나와 무로 돌아간다고 보았다. 그가 글을 쓴 시점이 위대한 아랍인의 제국이 와해되고, 흑사병으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고, 다수의 군주가 폐위되고, 힘 있는 친구들이 추방되거나 처형된 뒤였음을 감안하면, 그가 사태를 더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그의 걸작에는 반짝이는 줄 한 가닥이 있었으니, 바로 다양성과 변화를 포용할 줄 알고, 그런 능력과 그들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세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줄 알았던 유목민의 능력이 그것이었다."(181-2)


"아사비야asabiyya라는 용어는 『역사서설』에 500번 이상 등장한다. 많은 아랍어 단어들이 그렇듯이, 아사비야에는 넓적다리를 묶지 않으면 젖을 내주지 않는다는 암낙타, 터번을 묶는 행위, 광신자를 비롯해서, 맥락이 어렵풋한 여러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가장 어울리는 의미는 당파심, 연대의식, 단결심, 부족적 연대이다." "인도유럽인의 코미타투스와도 비슷한 아사비야가 가리키는 것은 혈연일 수도, 부족적 유대일 수도, 공통된 신념이나 지도자에 대한 헌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대를 끈끈하게 해준 〈접착제〉가 무엇이든, 분명한 것은 아사비야가 안전하다는 의식과 상호 부조에 대한 확신을 집단에게 부여했다는 것이다." "이븐 할둔이 독창적이고 날카로운 인식으로 깨달았던 것은 정부와 제도의 성격도 국가 내에 존재하는 그 연대의식의 성격에 좌우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타내는 바는 부단히 변화하고, 이동하고, 이주하며 사는 유목민의 존재 양식이다."(185-6)


"아랍인 무슬림 세력의 극적인 확대는 기존의 세계질서를 바꾸었다. 이 신생 제국의 가장 놀라운 점은 제국의 크기가 아니라 그 제국이 이동하는 습성을 신속한 정복으로 이끌어간 사막인, 유목민이 쟁취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 비교적 적은 숫자의 아라비아 부족민들이 〈출신 성분이 다양하고 군기가 제법 잡힌 군인들의 소규모 본대〉와 나란히 싸우며 이룩한 막대한 성공은 전통적으로 그들의 종교적 신념으로 설명되곤 한다. 요컨대 그들은 알라를 위해서, 그리고 설령 전사를 하더라도 순교자가 되어 천국에 갈 것이라는 확신으로 싸웠다는 것이다. 페르시아, 비잔티움, 이집트, 그리고 다른 나라의 병사들은 현세의 것을 찾아 참전한 반면 무슬림 전사들의 욕망과 염원은 모두 내세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븐 할둔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아랍인의 성공 요인을 유목민의 아사비야가 가진 힘에서 찾았다. 아랍인들의 승리는 그들이 정주 생활의 겉치레 없이 홀가분한 〈자연 상태〉에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말이다."(193)


"이븐 할둔은 흥망성쇠의 사이클을 다섯 단계로 구분했다. 〈첫 단계는 성공의 시기로, 모든 반대 세력을 타도하고 이전 왕조의 왕권을 탈취하는 단계이다.〉 이것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아사비야 덕이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지도자가 권력과 왕권을 통합하는데, 그렇게 하는 목적은 〈그의 연대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약화시키는 데〉에 있었다. 세 번째는 지도자가 평화롭고 호화로운 삶에 안주하고, 법률을 공표하며, 건축물을 발주하고, 훌륭한 군대를 보유하며, 백성과 외국 사절들에게 후하게 선심을 쓰는 단계이다. 그다음에는 새로운 지배자가 전임자들의 흉내를 내며 귀족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전통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곧 자기 권력의 파멸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단계로 접어든다. 마지막 단계는 〈지배자가 향락과 여흥에 조상들이 축적한 [재보]를 낭비하여〉 몰락하는 단계이다. 이븐 할둔은 한 왕조가 거쳐 가는 이 다섯 단계를 모두 검토한 다음 〈최고의 후계자는 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277)


"칭기즈 칸이 죽고 나서 1세기 동안 중국에서 근동까지의 육지와 바다는 그의 후계자들이 지배했다. 그 과정에서 호화로운 기념물들이 세워지고, 번성하는 유라시아의 크고 작은 도시들이 최고의 기술을 가진 장인과 뛰어난 지성인들로 채워짐에 따라 그들이 가지고 있던 본래의 유목민 특성은 희석되었다. 이븐 할둔은 그들의 아사비야가 약화되면서 1330년대와 1340년대에 금장 칸국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페르시아의 일 칸국이 일련의 내전으로 힘이 소진된 끝에 어떻게 와해되었는지, 중앙아시아의 중심에 자리한 차가타이 칸국이 매우 다른 두 왕국으로 어떻게 분열되었는지를 개략적으로 설명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를 지배하고, 그 세계를 자기들 방식에 적응시켰던 유목민 세계가 작동을 멈추고, 이븐 할둔이 썼듯이 칭기즈 칸 후손들의 지배가 끝난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이븐 할둔의 판단이 오판으로 판명날 것이었다. 칭기즈 칸의 자손은 앞으로도 더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277-8)


"티무르의 거대 제국은 교역 도시들, 특히 실크로드의 허브였던 히바, 부하라, 발흐, 델리와 물탄 같은 남아시아의 요지들, 그리고 근동의 도시들인 바스라, 바그다드, 알레포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중심축은 마샤드, 헤라트, 그리고 티무르가 시간, 관심, 돈을 특히 아낌없이 투자한 사마르칸트였다. 그러나 이 도시들이 가진 명백한 중요성과 장려함에도 불구하고 티무르 제국은 그가 살아 있을 때에도, 사후에도 계속 유목민의 특성을 띠었다. 제국의 유목성은 부족 중심의 구조와 전통, 정례적으로 개최된 쿠릴타이와 이주, 천막과 말 위의 삶을 선호했던 티무르의 생활 방식, 군대의 편성과 구조, 그가 총애한 아내 비비 하눔과 다른 여인들이 의사 결정과 부족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힘을 계속 보유했던 점, 자유 무역을 중시한 점, 티무르의 총독들이 이동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촉진하여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여타 종교들이 확산될 수 있게 한 점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309-10)


"유라시아의 시장들을 통해서 막대한 부가 유통되고, 중국에서부터 북유럽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부유해진 것도 티무르 제국의 개방성이 가져온 결과였다. 아시아의 티무르 제국 경영자들은 시인, 예술가, 아름다운 것을 창안한 사람들도 후원했다. 그들 모두 중요한 문화 융성의 일부였다." "하지만 이븐 할둔은 바퀴가 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비록 천국이 몽골인들에게 미소를 지었고 그 또한 그들의 〈신앙과 제국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보았지만, 티무르가 죽은 뒤에도 바퀴는 계속 돌아가리라는 것과, 그의 위대한 제국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소멸되는 꿈, 다수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라져가는 악몽이 될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었다. 그가 몰랐던 것은 바퀴가 돌기를 완전히 멈추고, 세계가 아사비야를 넘어서는 무엇인가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유목민도 힘을 잃어 더는 두려움과 증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매혹과 심지어 감탄의 대상이 되는 때가 오리라는 것이었다."(310-1)


제3부 회복하기


"오토만 제국이 들어선 후에도, 늘 그렇듯이 제국의 유목주의를 좌우한 것은 지형이었다. 유럽에 속한 제국의 지방들은 대부분 방목하기에 좋은 산지, 튀르크어로 〈나무가 많은 산맥〉을 뜻하는 발칸 반도에 있었다. 카르파티아 산맥과 핀두스 산맥, 그리고 여타 동유럽 산맥들은 유목 생활을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고, 아시아에 속한 아나톨리아 역시 농경지가 있었다고는 해도 그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토로스 산맥과 폰투스 산맥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제국의 지도층과 행정부는 정착해 살고, 백성들의 대다수는 여름철에는 고지대의 방목지, 겨울철에는 평원을 오가며 살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통제하에 놓인 다수의 섬들도 여름에는 기꺼이 갈 만한 곳이었지만 겨울에는 폭풍과 강풍에 고립되었다. 역사가 제이슨 굿윈은 그런 상황을 〈10월과 4월 사이에는 산맥과 바다가 밤의 시장들처럼 철시撤市를 하고, 제국도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절반은 동면을 했다〉고 설명했다."(321)


"유목민의 아사비야는 이스탄불, 에디르네, 부르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모스크, 궁전, 바자bazaar로 아름답게 꾸며진 그 밖의 장려한 도시들에도 그것은 없었다. 유목민의 아사비야는, 무슬림 공동체인 움마를 지배할 권리를 가지는 칼리프제의 중요성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제국 정체성의 기반은 천막과 말 그리고 그 왕조를 창시한 오스만의 유목민 뿌리에 있었다. 오토만 술탄들이 수 세기 동안 양립 불가능한 욕구들을 어색하게 조화시키는 방식으로라도 유목민에 뿌리를 둔 자신들의 과거를 드러낸 것도 그래서였고, 그 유목적 과거와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만든 실내 생활을 할 때에도 그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술레이만 대제만 해도, 오토만의 힘과 광휘가 절정에 달했던 16세기였는데도,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러 온 헝가리 국왕 존 지기스문트를 화려한 궁전이 아닌 장려한 천막 앞에서 맞았다. 이동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가진 정체성에는 여전히 유목주의라는 생각이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322-3)


"페르시아의 수피(이슬람 신비주의자) 셰이크 사피 앗 딘도 오토만 왕조의 창시자인 오스만만큼이나 출신이 모호했다. 두 사람 모두 스텝 지대의 초원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그의 종족도 튀르크인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근래에 아나톨리아에서 이주해온 유목민이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14세기 초, 셰이크는 오스만이 오토만의 기치 아래에 추종자들을 결집시키는 사이, 자신만의 아사비야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심신 양면으로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다는 명성에 힘입어 오래지 않아 수피 종단의 창시자가 되었다." "티무르 왕조가 몰락했을 때에는 셰이크의 후예인 이스마일 1세가 서부 이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 아제르바이잔을 아우르는 사파비 왕조를 수립했다. 그다음 세대는 더욱 번창하여, 샤 이스마일의 사파비 왕조 후손들은 유목민 연맹의 지원을 받아, 유목민이 주도하는 새로운 황금기가 페르시아에 도래할 것임을 알렸다."(324)


"1503년에 스무 살의 나이로 카불의 지배자를 자처했던 바부르는, 그곳을 거점 삼아 20대 후반에는 사마르칸트를 포함해 옛 티무르 왕조가 보유했던 중앙아시아의 핵심지대를 장악했다. 그러고 나서 술레이만 대제가 헝가리를 물리치고 부다페스트로 오토만 군대를 진군시킨 해인 1526년, 이제 40대 초반인 바부르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완수하기 위해 남쪽의 인도로 군대의 방향을 돌렸다." "바부르는 델리의 성채와 몇몇 무덤 그리고 정원을 방문하는 것으로 그의 승리를 자축했다. 〈시찰을 마친 뒤 나는 야영지로 돌아와 배를 타고 독주를 마셨다.〉 하지만 바부르가 자기 안의 유목민 기질 때문에 쉴 새 없이 움직였던 것과 달리, 그가 세운 무굴 왕조─몽골Mongol에 어원을 둔 명칭─사람들은 정착을 하고, 라호르, 파테푸르 시크리, 가장 유명한 아그라, 그리고 최종적으로 델리에서,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영국에 의해서 버마로 유배되었던 1858년까지 인도를 지배했다."(328-9)


"18세기가 되자 유목민의 이상과 더불어 아벨에 대한 생각은 배척을 받은 반면, 정상적인 삶은 유럽의 우월감과 지중해를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부활한 환상 덕분에 다시 한번 힘을 얻었다. 신세계에서 유럽으로 흘러들어오는 부가 그런 득의양양한 의식의 조장을 도왔다. 하지만 유럽이 그런 환상을 가지는 데에는 고대 세계의 재발견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요한 요아힘 빙켈만은 『고대 예술사』에서, 예술사라면 모름지기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깊숙한 고대 작품에서 시작하여 고대 이집트를 거쳐 고전 그리스에서 정점을 찍는 일련의 순화와 개량의 과정, 즉 단계적 발전을 거치는 연구여야 한다는 것을 사실상 처음으로 제시했다." "빙켈만은 아폴로 신상神像에서 자연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자연 저 너머에 있는 것, 다시 말해서 오직 마음으로만 창조할 수 있는 이미지에서 나오는······특정한 이상적 형태들〉도 보았다고 했다. 자연 저 너머······. 지난 한 세기 반 동안 인간은 그토록 멀리까지 지배력을 수립한 것이다!"(348-9)


"빙켈만과 그의 동료들은 예술의 역사를 물질문화 속에서 골라낸 길로 제시했다. 그들은 18세기 말의 시점에서 뒤를 돌아보며, 유럽에서 독립적으로 등장한 매혹적인 운동, 즉 유럽 르네상스에 대한 개념을 회고적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목민도 포함된 유럽 동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끼친 영향과 자극은 교묘히 가려버렸다. 예술사와 지성사에 대한 이런 선별적 견해는 고속도로 역사와 마찬가지로, 기념물 짓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 혹은 아예 짓지 않기로 한 사람, 아니면─고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스키타이인들의 장신구처럼─유물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의 권리를 빼앗아버렸다. 빙켈만은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가지고, 예술사의 궤적을 순환적 개념이 아닌 선형적 개념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개화되었고, 그 개화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유럽인이라는 것이 빙켈만의 생각이었다."(350)


"19세기에 페르시아 사람들은 대부분 목축과 무역을 하며 이동하는 삶을 살았다. 오스만 술탄들이 오래 전에 말안장을 장의자와 맞바꾸고, 다수의 궁전과 정자가 있는 성벽 너머에서 나라를 통치한 튀르키예에서도 술탄의 다양한 백성들은 상당수가 유목민으로 남아 있었다. 유목민들은 위대한 카넴-보르누 제국이 붕괴되었는데도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을 가로질러 다녔듯이 무굴 제국의 인도도 누비고 다녔다. 아라비아에서는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라는 유목민 부족장이 자신의 아사비야를 확장하여, 개혁적인 종교학자인 무함마드 이븐 아브드 알와하브의 지도 아래 새로운 아랍국(사우디아라비아)을 건설했다." "수천만 명의 유목민이 영국 제국에 둘러싸인 세계 속에서 방랑하며 수렵채집 생활을 했다. 그러나 유럽의 예술, 도덕, 문화, 법률은 〈유목민 무리〉를 이길 터였다. 그 현상이 어느 곳보다 선명하게 드러난 곳이 바로, 지금도 계속 울려 퍼지는 신조어, 〈명백한 운명〉이라는 단어를 지어낸 북아메리카였다."(368-9)


"유전학, 심리학, 그리고 여러 다른 학문들은 최근의 연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직감으로 알고 있는 것, 즉 인류는 〈집단 두뇌collective brain〉라고 불리는 것을 만들어냈음을 밝혀냈다. 〈집단 두뇌〉는, 우리가 가장 성공적이고 진보적이었을 때는, 다양한 집단이 함께 모여 그들의 지식, 역사, 보는 방식을 합체시켰을 때였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인류 최고의 것들은 협력, 시장과 국경의 개방, 자유로운 이동, 생각과 양심의 자유를 통해서 얻어졌다. 그리고 유목민은 그런 요소들로 가는 최상의 통로이자 그것들의 최고 축적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다시피, 유적 속에서 골라낸 길을 가는 도중에 발견되는 것이 역사의 일부일 뿐이라면, 인간 역사의 또다른 일부는 언제나 경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 자연계에 종횡으로 놓여 있는 오솔길들에 있다. 이 두 가닥이 하나로 엮였을 때에만 우리 역사의 완벽한 그림을 볼 수 있다. 다양성과 상호 작용의 이점이 드러나는 것도 이 지점이다."(41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 지식 (10만부 기념 개정판) - 챗GPT부터 유튜브 추천, 파파고 번역과 내비게이션까지 일상을 움직이는 인공지능 이해하기
박상길 / 비즈니스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1장. 인공지능 | 위대한 인공지능, 깨어나다


프로그래밍이란 규칙과 데이터를 입력해 정답을 출력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초기에는 인공지능 또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인공지능처럼 작동하기 위해서는 if-then 규칙이라 부르는 수많은 규칙을 사람이 일일이 입력해야 했죠. 기계는 이렇게 인간이 입력한 일만 했습니다. 사람이 모든 규칙을 일일이 입력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 기반은 제법 훌륭하게 작동했습니다. 이 때문에 기계번역을 비롯한 수많은 응용 프로그램도 초창기에는 대부분 규칙 기반으로 구현됐습니다. 그리고 곧 괜찮은 성과를 내리라는 장밋빛 희망으로 가득했죠. 그러나 규칙으로 인공지능을 만들어내겠다는 시도는 이내 한계에 부딪히고 맙니다. 이렇게 인공지능이 암흑기에 빠져든 데는 if-then 규칙의 한계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초기에는 이 방식이 얼핏 잘 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람이 일일이 규칙을 입력하는 방식은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이죠. 규칙에서 벗어나는 경우에는 제대로 된 추론도 하지 못했습니다. 18-9)


인공 신경망의 초기 모델은 퍼셉트론Perceptron입니다. 퍼셉트론은 1958년 당시 코넬 항공 연구소에 근무하던 프랭크 로젠블랫Frank Rosenblatt이 해군의 지원을 받아 고안해냈습니다. 인간 두뇌는 뉴런이 서로 연결된 상태로 전기신호를 내보내며 정보를 전달한다는 데 착안해, 그와 비슷한 형태로 인공 뉴런이 연결된 구조의 인공 신경망을 구현해낸 것입니다. 1980년대 들어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우리말로 ‘기계학습’이라고 부르는 알고리즘을 활용하면서 인공지능 분야는 다시 성과를 내기 시작합니다. 머신러닝이란 말 그대로 기계Machine가 스스로 학습하는Learning 방식입니다. 이제 더 이상 사람이 규칙을 입력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컴퓨터가 데이터에서 스스로 규칙을 찾아냅니다. 더구나 사람이 찾아내지 못하는 규칙도 컴퓨터가 학습을 거쳐 찾아낼 수 있게 되었죠. 변형에 따른 무수한 변칙까지도 데이터를 이용해 모두 찾아낼 수 있게 되면서 규칙에서 벗어난 결과도 추론할 수 있게 됐습니다. 17, 20)


딥러닝은 머신러닝의 일종으로, 머신러닝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딥러닝은 인간 두뇌의 작동 구조를 본떠 만든 인공 신경망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인간의 두뇌는 무수히 많은 뉴런으로 구성되어 있죠. 이를 물리적인 형태로 만들어낸다면 엄청나게 많은 다이얼이 달린 거대한 수학 구조물과 비슷합니다. 각각의 다이얼은 원하는 출력값이 되도록 가중치를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입력 데이터를 넣고 다이얼을 조절하면서 결과물을 확인한 후, 다시 조금씩 다이얼을 돌려 원하는 결과와 최대한 비슷하게 나오도록 조절하면 됩니다. 처음에는 다이얼 값을 무작위로 설정하지만 학습을 진행하면서 점점 모든 다이얼이 정답에 가까워지도록 바뀌어갑니다. 모든 데이터가 정답에 가장 가까운 상태를 찾아 더 이상 다이얼을 조절할 필요가 없다면 비로소 학습이 끝나죠. 데이터가 많을수록 훨씬 더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음은 물론, 다이얼이 많을수록 훨씬 더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모델이 되겠죠. 24-5)


제2장. 알파고 |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의 등장


1940년대 말,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던 스타니스와프 울람Stanisław Ulam, 1909~1984 박사는 ‘중성자 확산 같은 복잡한 계산 문제는 차라리 여러 번의 무작위 컴퓨터 실험으로 결과를 관찰하는 편이 훨씬 더 실용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의 특성상 이 방법에 적절한 암호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마침 울람 박사는 도박을 좋아하던 자신의 삼촌이 몬테카를로에서 도박을 하기 위해 친척들의 돈을 빌려갔다는 사실을 떠올려 ‘몬테카를로’라는 이름을 부여했던 것이죠.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을 도입한 이후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실력은 급상승해 6단의 수준까지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프로기사에게는 4점 이상 접히는 기력에 불과했습니다. 알파고는 여기에 딥러닝을 적용해 실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킵니다. 두 종류의 인공 신경망을 만들어내는데, 정책망Policy Network과 가치망Value Network이라는 이름의 신경망입니다. 43-4)


먼저 정책망을 살펴봅시다. 정책망은 사람이 만든 기보棋譜를 이용해 학습합니다. 정책망은 약 16만 회의 게임에서 총 3,000만 수를 가져와 학습했습니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 정책망 3가지를 만들었습니다. 첫째 망은 바로 앞서 살펴본 사람의 기보를 이용해 학습한 정책망(이하 기보학습 정책망)입니다. 둘째 망은 롤아웃 정책망입니다. 롤아웃 정책망은 기보학습 정책망과 비슷하지만 훨씬 작고 가벼운 망입니다. 훨씬 작게 만들었기 때문에 첫 번째 망보다 약 1,500배 정도 빨리 수를 둘 수 있습니다. 즉 첫째 망이 한 번 착점할 시간에 롤아웃 정책망은 1,500번을 착점할 수 있는 거죠. 당연히 성능은 떨어집니다. 첫째 망도 정확도가 57%로 높은 편이 아닌데, 롤아웃 정책망은 고작 24%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계산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탐색을 빠르게 진행할 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망은 바로 알파고의 핵심인 스스로 대국하며 강화학습을 수행한 정책망(이하 강화학습 정책망)입니다. 44-5)


또 다른 종류의 망은 바로 가치망입니다. 가치망은 현재 국면에서 승패 여부를 예측하는 망입니다. 확률로 표현해서 50%가 넘는다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국면이고, 50%가 넘지 않는다면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 국면이죠. 과연 알파고는 어떻게 족집게 도사처럼 바둑판을 딱 보고 누가 승리할지 알아낼 수 있었을까요? 알파고는 여러 정책망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았던 강화학습 정책망끼리의 대국을 활용했습니다. 서로 3,000만 번의 대국을 두게 하고, 각 경기에서 한 장면씩 3,000만 장면을 추출해 해당 국면 이후에 누가 이겼는지를 학습했습니다. 이처럼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지,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지를 확률로 표현한 것이 바로 가치망입니다. 알파고는 고수의 기보로 지도 학습을 진행한 다음, 어디에 돌을 내려놓을지 판단하는 정책망을 만듭니다. 그리고 정책망을 이용해 스스로 대국을 두어 강화학습을 진행한 다음, 승리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내는 가치망을 만들어냅니다. 46-7)


꼼꼼하게 탐색해나가는 알파고도 이세돌과의 네 번째 대국에서는 이세돌이 둔 ‘신의 한 수’인 78수를 막아내진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알파고는 왜 신의 한 수를 허용하고 말았을까요? 알파고의 작동 원리를 다시 한번 되새겨봅시다. 알파고의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은 유망한 수를 중심으로 꼼꼼하게 탐색해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확률이 높은 쪽을 향해 더 많이 더 깊게 탐색해나가고 가장 신뢰가 높은 지점에 착수를 하는 원리죠. 하지만 이세돌이 둔 신의 한 수 지점에 착수할 확률을 알파고는 1만 분의 1로 매우 낮게 예측했다고 합니다. 알파고는 설마 그 지점에 둘 줄은 몰랐기에, 충분히 탐색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 지점이 묘수인지 아닌지조차 알아내지 못하죠. 애초에 탐색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78수 다음에 대국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알파고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승률이 높은 지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엉뚱한 수, 이른바 떡수를 남발하면서 급격히 무너졌죠. 51-2) 


제3장. 자율주행 | 테슬라가 꿈꾸는 기계


최근의 자동차는 전자공학에 더 가깝습니다. 이른바 움직이는 컴퓨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자동차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의 자율주행차는 더 이상 물리적으로 제어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자율주행차는 소프트웨어의 힘에 의지해 움직입니다. 자율주행차는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라는 유명한 공식을 기반으로 운행을 해나갑니다. 베이즈 정리란 18세기 영국의 목사 토머스 베이즈Thomas Bayes, 1701~1761가 증명한, 확률에 관한 공식을 말합니다. 베이즈 정리는 사전 확률과 사후 확률의 관계를 나타내는 단순한 수학적 정리에 불과해 보입니다. 하지만 베이즈 정리는 수학 정리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수학적으로는 매우 간단한 형식에 불과하지만 철학적으로 본다면 놀라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죠. 베이즈 정리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흔듭니다. 확률이라는 것은 믿음에 불과(?)할 뿐이며, 세상에는 절대 원칙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무엇이든 조심스럽게 관찰하며 의심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61-2)


자율주행차는 항상 불안해합니다. 자율주행차가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신호들뿐이죠. 자율주행차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합리적으로 판단해 안전한 경로로 주행해야 합니다. 이때 자율주행차의 상황 판단은 수학 문제와 같이 단 하나의 규칙으로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주행 중 도로를 살펴보며 가야 할 구간과 가지 말아야 할 구간을 끊임없이 판단해야 합니다. 안전한 구간이라면 안전하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고, 위험 요소를 발견할 경우 위험하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식이죠. 가령 자동차가 위험하다고 확신하는 구간에서 특정 센서가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낼지라도 이미 상당히 위험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위험할 확률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안전하다는 신호가 계속해서 유입된다면 다시 위험 확률은 낮아집니다. 이처럼 자율주행차는 여러 가지 신호를 받아 믿음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운전해나갑니다. 64-5)


자율주행차는 GPS 외에도 각 센서의 약점을 보완해줄 다양한 센서를 병행해서 활용합니다. 먼저 레이더RAdio Detection And Ranging, Radar와 라이다LIght Detection And Ranging, LiDAR가 있습니다. 레이더가 전자파를 발사해 반사파를 측정한다면 라이다는 레이저 빛을 발사해 반사되어 돌아오는 것을 측정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빛Light과 레이더Radar의 합성어인 라이다LiDAR죠. 전자파를 이용하는 레이더는 장거리 측정이 가능하고, 물체 내부까지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날씨의 영향도 거의 받지 않죠. 하지만 물체의 거리나 방향, 모양이나 구조는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반면, 빛을 이용하는 라이다는 정확하게 물체를 인식하고 밀도 있게 표현해낼 수 있지만 거친 날씨에 영향을 받고, 장거리 측정은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라이다의 범위를 넘어서는 구간을 파악하는 방법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처럼 바라보면 되는 거였죠. 바로 카메라였습니다. 65-8)


# 점차 카메라가 레이더와 라이다의 기능까지 흡수해서 구현하고 있다.


제4장. 검색엔진 | 구글이 세상을 검색하는 법


초기 인터넷 광고는 신문 광고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신문 판매 부수에 따라 광고 단가를 매기는 것처럼 사이트에 배너를 노출하고 노출 횟수에 따라 가격을 책정했습니다. 광고에 대한 사용자의 피드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죠. 그러다 검색엔진이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본격적으로 검색광고를 도입합니다. 이제 항상 동일한 광고가 노출되는 게 아닌 쿼리에 적합한 광고를 매번 다르게 보여주는 타깃 마케팅을 진행하고, 사용자 피드백을 기반으로 광고료를 산정하는 CPC 방식Cost Per Click을 도입합니다. 예를 들어 대도시에 근무하는 30대 사무직 남성이 ‘셔츠’를 검색하면 ‘폴로’, ‘빈폴’ 같은 유명 브랜드를 노출하고, 나아가 온라인 구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여기에 더해 검색광고는 경매 방식으로 판매했습니다. 예를 들어 폴로의 광고주가 ‘셔츠’라는 쿼리에 대해 클릭당 1,000원을 제시하고 빈폴의 광고주는 클릭당 1,200원을 제시했다면, 고객들은 단가가 더 높은 빈폴의 광고를 먼저 접합니다. 84-5)


구글은 엄청난 수익뿐 아니라 엄청난 문서를 색인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검색엔진이 인터넷에 있는 문서를 수집하여 검색에 적합하도록 보관하고 있는 것을 색인Index이라고 합니다. 아마 2020년 이후에는 300조 개가 훨씬 넘는 문서를 색인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많은 문서를 대체 어디에 보관하고 있을까요? 구글은 엄청난 양의 문서를 고가의 컴퓨터 몇 대에 저장하는 게 아니라 일반 PC처럼 저렴한 컴퓨터 수백, 수천 대에 나눠서 저장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를 위해 구글 파일 시스템Google File System, GFS이라는 효율적인 분산 파일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덕분에 아무리 큰 파일도 여러 대의 서버에 나누어 저렴한 비용으로 저장할 수 있게 됐죠. 이 방식은 또한 초기 빅데이터 플랫폼의 원형이 되어 이후에 본격적인 빅데이터 플랫폼이 등장하고, 나아가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리는 계기가 됩니다. 사실상 지금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분야는 구글이 기반을 닦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85-6)


수학계에 에르되시 수Erdős Number라는 게 있습니다. 전 세계를 돌며 평생을 수학 연구에만 몰두해온 에르되시 팔Erdős Pál, 1913~1996은 평생 1,500여 편의 논문을 쓴 것으로도 유명한데, 논문 대부분을 다른 학자들과 공동으로 집필했습니다. ‘에르되시 수’란 에르되시와 몇 단계에 걸쳐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수입니다. 그와 직접 공동 논문을 쓴 학자는 모두 512명입니다. 이 512명이 에르되시 수 1이죠. 그리고 이 512명과 함께 공동 논문을 쓴 사람은 에르되시 수 2입니다. 1998년 스탠퍼드에서 박사 과정 중이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문서의 품질을 평가하는 획기적인 알고리즘을 고안합니다. 유명한 사이트가 많이 가리킬수록 문서의 점수가 올라가는 알고리즘으로, 좋은 논문은 인용 횟수가 많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죠. 여기에 에르되시 수가 낮을수록 권위가 높아진 것처럼 권위 있는 사이트에 가중치를 높였습니다. 이 알고리즘의 이름이 바로 페이지 랭크Page Rank입니다. 95-7)


제5장. 스마트 스피커 | 시리는 쓸모 있는 비서가 될 수 있을까


스피커는 스스로 말을 알아듣거나 말을 하지 못합니다. 이게 무슨 얘기일까요? 스피커 자체는 껍데기라는 말이죠. 실제로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과정은 음성을 녹음하여 서버로 보내 분석하는 과정이고, 사람에게 말을 하는 기능은 녹음된 음성을 서버에서 받아와 재생하는 것입니다. 스피커는 사실상 마이크가 달린 일종의 블루투스 스피커에 불과하죠. 그렇다면 음성을 어떻게 서버로 전송할까요? SKT의 NUGU라면 “아리야”, 카카오미니라면 “헤이 카카오”라고 부르면 스피커가 “네?”하고 반응하면서 깨어나죠. 이 과정을 웨이크업Wake-Up이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사용자가 질문하거나 요청하면 이를 녹음하여 서버로 전송합니다. 참, 스피커는 껍데기라고 했지만 딱 한 가지 특이한 기능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바로 “헤이 카카오” 같은 웨이크업 단어를 알아듣기 위한 음성인식 엔진이죠. 추가 기능 없이 딱 웨이크업 단어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매우 조그만 음성인식 엔진이 스피커에 내장되어 있습니다. 118)


100번의 발화 중 99번을 제대로 알아듣는다면 똑똑한 스피커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반대로 100번의 문장 중 99번만 정확하게 생성해낸다면 마찬가지로 똑똑한 스피커일까요? 만약 잘못 생성한 1번의 문장이 “인간은 모두 죽어야 해!”라는 문장이라면요? 이런 문제 때문에 ‘생성’ 영역에서는 아직까지 딥러닝의 활용이 조심스럽습니다. 물론 최근에 챗GPT는 이를 다른 방식으로 제어하고 있지만 챗GPT조차도 응답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게다가 스마트 스피커는 챗GPT와는 조금 다릅니다. 무엇보다 문제해결용 대화시스템Task-Oriented Dialogue System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목적이 분명한 대화만을 주로 한다는 얘기죠. 날씨를 묻거나 레스토랑을 예약하기 위한 대화는 목적이 뚜렷합니다. 따라서 스마트 스피커는 자유로운 대화보다는 목적에 맞는 대화에 방점을 맞추죠. 이 때문에 자유롭게 대화를 생성하지 않고 정해진 템플릿에 정보를 채워서 문장을 생성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합니다. 130-1)


제6장. 기계번역 | 외국어를 몰라도 파파고만 있다면


신경망 기반 기계번역 Neural Machine Translation은 문장 전체를 마치 하나의 단어처럼 통째로 번역해서 훨씬 더 자연스러운 번역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인공 신경망이라는 거대한 모델과 이를 견인할 수 있는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하면서 이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신경망이 문장을 통째로 번역하는 과정은 마치 오렌지 주스를 농축한 후 물을 섞어 희석하는 과정과 닮았습니다. 먼저, 문장을 통째로 압축해 숫자로 표현한 벡터(방향과 크기를 나타내는 값)를 만들어 냅니다. 오렌지 주스를 농축하는 과정이죠. 그리고 이 값을 번역할 언어로 옮긴 다음 풀어서 번역문을 만들어 냅니다. 각각의 숫자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번역문을 찾아내는 거죠. 물을 섞어 다시 주스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번역문을 만들어 내면 더 이상 규칙 기반처럼 단어와 단어 간의 관계, 순서, 구조 등을 파악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통계 기반처럼 단어나 구문을 확률로 번역해 조합하고 이 문장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145-6)


어텐션Attention은 더 중요한 단어를 강조하는 원리입니다. 기존에는 입력 문장의 길이에 상관없이 압축한 문장을 항상 일정한 길이의 벡터에 한 번만 담아냈습니다. 하지만 어텐션은 번역문의 단어를 생성할 때마다 출력 문장의 길이에 맞춰 압축 벡터를 생성합니다. 이렇게 하면 번역문이 길어질수록 벡터도 함께 길어지기 때문에 더 긴 문장을 번역하는 데도 문제가 없겠죠. 이전에는 어떤 분량이든 1줄로 요약했지만 어텐션은 5분을 발표할 때는 5줄, 10분을 발표할 때는 10줄로 요약합니다. 무엇보다 어텐션의 핵심은 중요한 단어에 별도로 가중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는 아무런 표시 없이 문장 전체를 통째로 압축했기 때문에 번역할 때 어떤 단어를 염두에 둬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번역의 질이 떨어졌죠. 하지만 어텐션은 압축할 때 매번 다르게 중요한 부분을 적재적소에 표시해둘 수 있습니다. 어텐션을 핵심 알고리즘으로 삼은 트랜스포머 모델은 사실상 모든 기계번역 모델을 대체했습니다. 148-50) 


제7장. 챗봇 | 챗GPT, 1분 안에 보고서 작성해 줘


17세기 이전까지 수학은 크게 기하학과 대수학으로 나뉘었습니다. 원의 넓이 같은 도형의 성질을 다루는 수학이 기하학Geometry이고, 2차 방정식 같이 문자와 수를 다루는 수학이 대수학Algebra이죠. 이전까지는 둘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천장에 붙어 있는 파리를 보고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렸죠. ‘어떻게 하면 파리가 천장의 어느 위치에 붙었는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데카르트는 좌표Coordinates라는 개념을 고안합니다. 이는 서로 다른 분야로 여겨지던 기하학과 대수학의 개념을 하나로 합쳐낸 혁신적인 발상이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좌표의 개념을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thode에 공개합니다. 좌표의 발명은 이후 수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죠. 우스갯소리이지만 인터넷 시대인 지금도 좌표라는 개념은 일상에서 유용하게 쓰입니다. “그 유튜브 동영상 좌표 좀 알려줘”와 같은 식으로 말이죠. 163-4)


미국의 수학자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 1916~2001은 MIT의 대학원생 시절 이진법을 이용해 모든 계산을 할 수 있는 디지털 논리회로의 개념을 고안합니다. 이 논문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석사 논문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이후 섀넌은 디지털의 아버지로 추앙받습니다. 그의 논문은 이후 정보 이론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켰고 마침내 세상은 정보통신의 시대로 접어듭니다. 섀넌 덕분에 컴퓨터는 0과 1, 단 2개의 숫자로 모든 계산을 해낼 수 있게 되었고, 정보의 개념을 수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우리는 이 단위를 비트Bit라고 부릅니다. 이제 정리해 봅시다. •데카르트의 좌표 덕분에 기하학을 방정식과 숫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섀넌의 디지털 논리회로와 정보 이론 덕분에 컴퓨터는 모든 정보와 숫자를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현대 수학에서는 좌표를 이용해 추상적인 기하학을 수로 표현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컴퓨터에 계산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죠. 165)


단어를 숫자로 표현한다는 것은 단어가 갖는 의미에서 각각의 특징을 추출해 수치화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단어의 의미가 비슷하다는 것을 숫자로 표현한 값이 얼마나 가까운지로 판별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처럼 숫자로 표현하는 것을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는 언어를 벡터로 표현한다고 말합니다. 벡터는 공학에서 방향과 크기를 나타내는 값인데 마치 기하학을 좌표로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처럼 단어의 의미를 벡터로 표현하면 단어가 유사한 정도를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낼 수 있으므로 유사도뿐 아니라 다양한 과제에 응용하기 편리합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이 숫자이기 때문에 계산이 쉽죠. 컴퓨터는 추상적인 무언가를 논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는 계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숫자를 계산하는 일은 컴퓨터가 가장 잘하는 일이죠. 그뿐 아니라 데이터가 많을수록 계산은 더욱 정교해집니다. 게다가 이 과정을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엄청난 이점이 생기겠죠.  165-6)


제8장. 내비게이션 | 티맵은 어떻게 가장 빠른 길을 알까


강남역의 교통 체증을 예측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조건에 따라 분기하는 모델인 의사결정나무Decision Tree를 만드는 겁니다. 우리가 어릴 때 하던 스무고개 놀이와 비슷합니다. 스무고개 놀이란 말 그대로 예 혹은 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을 스무 번 제시하여 정답을 알아맞히는 놀이입니다. 질문의 횟수는 적을수록 좋습니다. 그렇다면 가급적 정답을 빨리 맞힐 수 있는 질문을 제시해야겠죠. 의사결정나무를 구축할 때는 복잡도인 엔트로피Entropy를 낮추는 형태로 진행합니다. 복잡도는 다르게 표현하면 불확실성Uncertainty의 정도라 할 수 있는데요. 즉 엔트로피를 낮춰 덜 복잡하게 하고, 덜 불확실하게 하여 가급적 정답을 빨리 맞히는 것이 의사결정나무의 구축 원리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엄격한 의사결정나무 모델은 단 한 번의 오류에도 너무 취약합니다. 게다가 예상 밖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온갖 오류가 넘치는 현실의 데이터로는 정확도를 높이기 어렵습니다. 207-10)


버클리대학교의 통계학자 레오 브라이만Leo Breiman, 1928~2005은 2001년에 오류에 견고한 새로운 모델을 제안합니다. 데이터와 특징에 제한을 두고 샘플을 추출한 다음, 여러 개의 의사결정나무를 만들어 각각의 결과를 두고 투표해 최종 결과를 정하는 방식이죠.  이렇게 만들어낸 각각의 의사결정나무는 당연히 단일 의사결정나무에 비해 성능이 훨씬 더 떨어집니다. 데이터와 특징을 제한했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의사결정나무가 1개가 아니라 10개, 100개가 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합니다. 데이터의 오류 등으로 일부 의사결정나무가 잘못된 결과를 내리더라도 나머지 나무들이 올바른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오차에 매우 견고해집니다. 무엇보다 이 방식은 대중의 지혜를 발휘합니다. 이 모델의 이름은 랜덤 포레스트Random Forest입니다. 나무를 만들기 전에 데이터를 무작위로Random 추출하고, 나무가 여러 개 모여 숲Forest을 이룬다는 의미죠. 모델의 원리에 잘 어울리는 멋진 이름입니다. 210-1)


통계학에 잔차Residual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오차Error와 비슷한 개념인데, 잔차는 전체에 대한 오차가 아니라 샘플의 오차라는 차이점이 있죠. 오차보다는 훨씬 더 작은 개념으로, 잔차를 줄여나가면 모델을 훨씬 더 정교하게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통계학에서 여러 모델을 만드는 데 중요하게 쓰이죠. 잔차의 개념을 의사결정나무에도 동일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나무들은 이전과 달리 독립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이전의 나무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먼저 의사결정나무를 하나 만듭니다. 그리고 이 나무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실수를 바로 잡는 새로운 나무를 만듭니다. 이 과정을 오류를 최소화할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합니다. 잔차를 계속해서 줄여나가는 거죠. 잔차의 기울기Gradient를 줄여나간다고 하여 그레이디언트 부스팅Gradient Boosting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정형화된 데이터를 예측하는 일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머신러닝 모델이 딥러닝보다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212-3)


제9장. 추천 알고리즘 |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여기로 이끌다


데이터 과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전설처럼 회자되는 얘기가 있습니다. 1990년대 미국의 한 슈퍼마켓 체인에서 맥주와 기저귀 간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제품에 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알고 보니 수많은 남편들이 퇴근길에 아내의 심부름으로 마트에 들러 기저귀를 사면서 맥주도 함께 구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발견한 이후에는 기저귀 근처에 맥주를 진열하기 시작했고 매출을 더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고객의 구매 내역을 분석하는 방식을 장바구니 분석Market Basket Analysis이라고 합니다. 꽤 잘 어울리는 이름이죠. 상품 간의 연관성을 분석했다고 하여 연관성 분석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이라는 학문의 기반이 됩니다. 1993년 당시 IBM에 근무하던 라케시 아그라왈Rakesh Agrawal 박사의 논문은 본격적인 데이터 마이닝 학문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추천 시스템의 역사가 시작된 거죠. 223)


고객들은 무엇보다 새로운 영상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새로울수록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추천은 더 어려워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입니다. 추천 시스템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죠. 그래서 뜻밖의 발견Serendipity이 중요합니다. 멋진 영어 단어만큼이나 설레는 표현이기도 하죠. 여기에는 2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것이어야 하지만, 희한하게도 마음에 드는 것이어야 하죠. 다시 말해 나에게 편하고 익숙한 구역 바깥에 있어야 하지만 또 아예 엉뚱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참, 어렵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여기로 이끌었다”라고 자주 감탄하는 것은 그래도 이 2가지 조건을 잘 만족하고 있다는 거겠죠? 친구가 나에게 뜻밖의 영화를 소개해줬는데 너무 만족스러워 하루 종일 즐겁던 기억이 있지 않나요? 추천 시스템의 목표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뜻밖의 발견’으로 설렐 수 있게 앞으로도 추천 시스템은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을 꾸준히 만들 것입니다. 23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