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 관념 속 역사
데이비드 아미티지 지음, 김지훈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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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내전에 맞서기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다는 점은 내전이 인류가 벌이는 모든 종류의 분쟁 가운데 가장 파괴적이고 가장 파급력 있는 분쟁이라는 평판을 양산했다. 여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기원전 1세기 로마 내전이 한창일 때, 17세에서 46세 사이의 남성 시민 중 약 25퍼센트가 무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1700년 뒤인 1640년대에 벌어진 잉글랜드 내전의 인구 대비 사망자 비율은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 비율보다 더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미국 내전 당시 발생한 사망자 수는 인구수에 비례했을 때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발생한 미국인 사상자 비율보다 훨씬 높았다. 미국 남부와 북부의 사망자 수를 합친 추정치는 약 75만 명이었는데, 이는 오늘날 미국 인구 중 약 750만 명이 사망한 것과 맞먹는다.23 이 정도 규모로 벌어진 대량 학살은 가족을 갈라놓고, 공동체를 산산조각내며, 국가를 변형시킨다. 또한 이후 다가올 세기에 대한 상상력에 상흔을 남길 것이다. 15-6)


하지만 내전의 특성이 소프트웨어 속 오류가 아니라 우리를 구성하는 불가피한 부분, 즉 인간이 되도록 해주는 구성 요소라고 가정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렇게 가정하는 것은, 우리가 끝없이 내전을 겪으며 칸트가 약속한 영원한 평화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비관적 운명을 스스로 부여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평화라는 필연적 약속을 부여받기보다 끝없는 내전을 운명적으로 선고받았다는 생각을 불식시키기 위해 이 책에서는 내전의 도전에 맞설 수 있는 역사적 도구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 책 전반에 걸쳐 내전은 영원하지 않으며 설명 불가능한 것도 아님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역사적 이해와 맥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공화정 로마의 혼란스러운 기원에서부터 논쟁의 여지가 있는 현재, 그리고 이러한 당혹과 논란이 줄지 않을 미래에 이르기까지 모두 역사적 개념과 닿아 있다는 것이다. 16)


1부 로마로부터 이어져온 길


1장 내전 창안하기: 로마 전통


그리스인은 그들이 ‘폴레모스polemos’라고 불렀던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명히 이해하고 있었다(현대 다수 언어권에서 ‘격론을 벌이는’이라는 호전적인 의미를 내포한 ‘polemical’은 이 단어로부터 유래했다). 그러나 그리스인은 자신의 공동체 내에서 벌어지던 ‘전쟁’을 로마인이 생각하던 전쟁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부 분쟁을 바라보는 로마인과 그리스인이 개념적 차원에서 메워질 수 없는 큰 틈을 두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실제로 로마 작가들은 로마가 겪던 정치 분열의 기원을 “민주주의”와 같은 위험한 그리스 개념의 유입으로부터 찾곤 했다. 그리고 1세기에 그리스어로 글을 썼던 로마 역사가들은 자연스럽게 그리스 용어를 사용해 로마 내전을 묘사했다. 하지만 이러한 연속성이 있었음에도, 로마인은 자신이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명칭을 필요로 했다. 바로 내전, 라틴어로 벨룸 키빌레bellum civile였다. 35)


로마인에게 전쟁은 전통적으로 상당히 구체적인 상황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전쟁은 정당한 사유로 인해 외부의 적과 싸우는 무력 분쟁armed conflict이었다. 이러한 전쟁과 ‘내전’의 극명한 차이는 내전에서 마주하는 적은 너무나 친밀해서 흡사 가족처럼 여겨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데 있었다. 상대편 사람들이 곧 동료 시민들cives이었던 것이다. 로마인들이 품고 있던 정당한 전쟁 개념에는 자기방어를 한다는 정당한 명분은 물론 합법적 적을 상대한다는 점이 내포되어 있어, 동료 시민들과의 전쟁은 명백히 이 개념에 배치되었다. 이렇게 생겨난 내전 개념에는 어떤 역설이 의도적으로 담겨 있었다. 내전은 실제로 적이 아닌 적에 맞서 싸우는, 전쟁이 될 수 없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로마 내전 기간에 이뤄진 선전 대결에서, 양측 모두는 각자 자신이 내세운 명분이 옳음을 대대적으로 알리며 지지를 구함과 동시에 정당한 이유에 따라 싸운다는 전통적인 정전론적 이해에 이 내전이 부합함을 주장했다. 35-6)


그리스인은 정치 영역에서 다른 무엇보다 조화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폴리스를 분열시키는 악惡을 그리스인은 스타시스stasis라 명명했다. 스타시스는 영어 단어 ‘static’의 어원으로, 기본적 의미 중 하나는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다른 한편으로 이 단어는 ‘입장’ 혹은 ‘태도’를 뜻하기도 해, 정치적 분쟁에서 ‘한 입장에 서 있는’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폴리스의 통합을 방해하거나 공동의 목적을 거스르는, 적대적이며 분열을 초래하는 정치적 입장으로서의 스타시스는 내분 및 당파 갈등의 유사어이자, 추후 내전이라고 불릴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가리키는 단어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유사하다고 해서 실제로 동일한 상황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아테네인에게는 정치가 통치술, 즉 시민에게 명예를 부여하고 관직을 수여하는 방법인 한편, 사적 이익이 상충하지 않도록 조정하여 유혈 사태 없이 서로가 공적 이익을 추구하도록 하는 수단이었는데, 이를 통해 사실상 스타시스를 해결하고 그 상황을 대체했다. 39-40)


따라서 그리스인에게 스타시스는 실제 물리적 저항 행위가 아닌 당시의 어떤 심적 상태 정도의 의미로 남아 있었다. 스타시스가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전쟁으로 인해 스타시스가 나타날 수도 있었지만, 그 자체가 실제 전투를 수반하지는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스타시스는 실제 공격이나 전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우리가 대치 국면이나 교착 상태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그리스인에게〕 스타시스는 ‘시민 간civil’의 문제도 아니었고, 필연적으로 ‘전쟁’ 발발로 이어지는 상황도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또한 스타시스 엠필로스stasis emphylos라는 용어를 썼는데, 이는 혈연과 친족으로 묶인 공동체 내에서 나타난 내분과 분열을 의미했다. 이때 필로스phylos는 가족 혹은 씨족을 뜻한다. ‘전쟁’(즉 폴레모스polemos)이라는 단어는 공동체 내부에서 벌어지는 내분까지도 포함해 가장 위험한 불화를 가리킬 때에야 쓰였다. 40-1)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연이어 일어났던 로마 내전은 집정관이었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Lucius Cornelius Sulla가 기원전 88년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로마에 진격했던 때부터 시작되었다. 술라가 일으킨 역쿠데타는 대규모의 유혈 참사 없이 끝났는데, 이는 양측 모두 도시 내에서 군인과 시민이 충돌하지 않도록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술라가 취한 조치가 잘 정리되었을지는 몰라도, 이는 확실히 로마의 성쇠에 전환점이 되었다. 즉시 나타난 영향이 재앙적이지는 않았다. 다만 술라가 (본래 한정된 기간에만 비상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부여받았지만, 그가 임의로 연장했던 직위인) 독재관으로서 향후 벌인 행위가 이뤄진 뒤에야, 그가 애초에 취했던 조치가 시민 간 폭력이 이뤄지는 순환 주기의 시작을 알린 일이었음이 명확해질 수 있었다. 그 주기는 제국을 이루며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황제에 오른 기원전 27년이 되어서야 끝을 맺을 수 있었다. 53)


# 술라의 대응

1. 첫 번째 분쟁에서 술라는 자신이 집정관의 권한으로 적으로부터 공화국을 지키고자 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곧 술피키우스, (이미 아프리카로 도망간) 마리우스, 그리고 협력했던 측근 열 명을 공공의 적hostes publici이자 따라서 범법자라고 공표했다. 이중 술피키우스만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았다.

2 재차 분쟁이 발생하자 기원전 83년 봄 술라는 진군을 개시했고 이듬해 그의 군대가 로마에 도착할 때쯤 적군(집정관 킨나와 장군 마리우스)은 모두 로마를 떠나 있었다. 로마를 장악한 술라는 살생부를 작성해 주요 반대파는 숙청하거나 재산을 몰수했고, 그 후손은 공직에 나서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술라에게는 그가 내전에 〔인간이 일으키는 현상으로서〕 인간적 형태를 부여했고 로마 세대에게 그 특징들을 규정해줬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 역사가 아피아노스Appian(약 95~약 165)가 제시한 견해는 내전이 정확히 어떠한 전쟁인지를 이해하는 후대의 관점을 형성토록 했다. 그가 힘주며 언급했듯, 마리우스와 술피키우스가 함께 술라가 포룸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막아섰을 때, “정적 간에 투쟁이 일어났고 이는 로마에서 처음 벌어진, 시민 간 불화 정도로 가장될 수 없는, 트럼펫이 울리고 군기가 휘날리는, 적나라하게 드러난 전쟁이었다. (…) 이런 점에서 시민 분쟁이 초래하는 사건은 점차 경쟁과 쟁론에서 살인 행위로, 살인 행위에서 전면적인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는 로마 시민으로 구성된 군대가 마치 적대적 세력을 대하듯 모국을 처음으로 공격했던 전쟁이었다.” 이는 내전이 단지 하나의 머릿속 개념이 아닌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으로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55)


내전의 눈에 띄는 표식은 트럼펫과 군기였고, 내전의 수단은 재래전이었으며, 내전의 목적은 공화국의 정치적 지배권 확보였다. 로마인은 내전을 구성하는 두 요소를 처음 제시했는데, 이 두 요소로 인해 이후 등장하는 내전 개념 간에 일종의 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이 형성되었다. 그중 하나는 내전이 단일 정치 공동체 경계 내에서 벌어진다는 개념이었다. 로마의 경우 이 공동체는 계속 확장해, 처음에는 로마 도시만을 포함하다가 점차 이탈리아반도, 반도를 넘어 지중해 분지까지 확대되었는데, 이는 로마 시민권 자체에 점차 더 많은 사람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전이 일어나는 범위에 따라 공동체 경계가 확장되는 일은 이후 세기에도 반복되었고, 우리 세대가 되어서는 그 정도가 정점에 다다라 ‘지구적 내전’이란 개념을 낳았다. 〔다른 한 요소는〕 바로 내전에서는 서로 대립하는 당사자가 적어도 둘은 있어야 하며, 이중 한쪽은 공동체를 관리할 정당한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개념이었다. 56)


2장 내전 기억하기: 로마적 상상


이전까지 내전은 “개선식으로 이어질 수 없는 전쟁”이라고 루카누스가 언급했으며, 로마 논평자 대부분도 이에 동의했었다. 로마에서 이뤄지던 개선식은 외적外敵에 맞선 정당한 전쟁에서 거둔 승리에 보답하는 의미로 진행되었고 그 관례는 계속되었다. 승리를 거둔 군대의 병사들은 자신들을 이끈 장군을 임페라토르imperator라 칭했다. 그 뒤 장군은 원로원에게 각종 감사제를 열 수 있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면 보통 적절한 때에 정식으로 개선식이 허가되었다. 그러나 폼페이우스는 아프리카와 스페인에서 있었던 “실제로는 내전이었던” 전쟁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개선식을 올렸고, 이후에 카이사르는 갈리아, 이집트, 폰투스, 아프리카에서 (시민이든 외국인이든 관계없이) 적에게 거둔 승리는 물론 폼페이우스의 아들들과 싸워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식을 올렸다. 이는 내전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개선식을 금기하던 사항을 명백히 위반하는 일이었다. 64-5)


# 폼페이우스는 북아프리카, 스페인, 갈리아에서 반란군을 진압한 것은 물론 기원전 82년 시칠리아에서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Gnaeus Papirius Carbo 군을, 기원전 77년에는 에트루리아Etruria에서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Marcus Aemilius Lepidus 군을 진압했다.


옥타비아누스가 황제에 오르며 〔로마는〕 분쟁에서 벗어나, 평화가 깃들고 안정이 찾아온 ‘아우구스투스’ 시대라는 찬사를 듣는 일시적 휴지기에 들어섰다. 하지만 기원후 14년에 아우구스투스가 죽고 난 뒤 수십 년이 지나자 내전을 다루는 저작이 넘쳐났고, 이어 내전 자체도 되풀이되었다. 제국 군주제를 반대하던 이들은 향수에 젖어 과거를 회상하며, 부패가 엄습하기 전까지 공화정 시기를 공공선the res publica이 유지되던 시대였다고 여겼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전 세월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퇴색되어갔다. “노년층 중 대부분은 내전 기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공화정을 겪어본 사람 중 누가 남아 있는가?”라며 역사가 타키투스는 『연대기』에서 아우구스투스 통치 말기까지 살아 있던 사람들에 대해 기술하며 애통해했다. 여기서 타키투스의 설명에 따르면, 전제專制는 다른 방식으로 내전이 지속되는 것이었다. 69)


살루스티우스는 로마의 운명에 대전환이 일어나게 만든 도덕적 결함을 지적했는데, 그 결함은 로마가 거둔 성과에 따른 예기치 않은 결과였다. 기원전 146년 로마의 적이었던 카르타고가 패배하면서 승리한 자의 옷 끝자락에 타락을 묻혔던 것이다. 살루스티우스는 그 이전에도 “시민과 시민이 싸웠”지만, 이는 오직 미덕에 따르는 명예를 구하기 위한 다툼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이후, 탐욕과 야심이 커지며 “운명은 잔혹해지기 시작했고 모든 것을 파괴했다.” 술라가 로마를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시아에서 벌였던 군사 작전에서 취한 호화로운 전리품을 매개로 부대 병사들의 충성심을 매수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내전과 타락은 함께 진행되어 카틸리나가 술라의 뒤를 따라 “내전이 벌어지기를 열망하는” 타락한 병사들의 도움을 얻어 공화정을 전복시키고자 했던 때까지 로마의 도덕적 견고함을 차츰 약화시켰다. 76-7)


로마 대다수 역사가는 사회적 분쟁을 가져온 근원지가 다른 곳에 있었다고 보았다. 바로 (로마 정치를 ‘귀족주의자’와 ‘민주주의자’ 부류로 구분했던) 그라쿠스 형제, 즉 티베리우스와 가이우스가 기원전 1세기에 추진했던 개혁을 지목했던 것이다. 키케로, 벨레이우스 파테르쿨루스Velleius Paterculus, 아피아노스, 플로루스 모두는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살해되었던 기원전 133년을 로마가 돌이킬 수 없게 갈라서게 된 첫 시기로 보았다. 이에 반해 바로Varro는 동생 가이우스가 죽은 기원전 121년을 갈등이 최고조되었던 때라고 주장하며, 가이우스야말로 “시민체에 머리가 두 개 달리도록 만들어, 시민 간 불화의 근원”을 야기했다고 말했다. 타키투스는 『역사』에서 민중 호민관들 사이에서 벌어진 이러한 내분은 “내전을 위한 시범 연습”과도 같았다고 적어두었다. 또한 키케로는 귀족optimi을 지지하던 측과 인민populares에 동조했던 측의 분열이 로마 공화국 내 배반과 불화의 씨를 심었다고 언급했다. 78)


내전에 빠지기 쉬운 로마의 모습을 단연코 가장 포괄적으로 다뤘던 서사는 기독교적 설명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바로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론』에서 권위 있는 어조로 전했던 이야기다. 많은 저술 목적 중 하나는 도대체 왜 로마가 쇠퇴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었다. 기독교에 반대하던 이들은 새로운 종교가 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만약 이교도 신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면, 로마는 침략자들과 싸워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독교 때문에 로마가 약해졌고 이에 고트족the Goths에게 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혐의를 반박하기 위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수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로마 제국은 도덕적으로 쇠락했고 분열로 이어지기 쉬운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만약 로마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된 시기가 예수가 태어났을 때보다 한참 전이었음을 아우구스티누스가 보여줄 수 있다면, 기독교는 로마가 쇠퇴하고 몰락하도록 한 원인이 될 수 없었다. 80-1)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에 따르면, 이교異敎 시절 로마는 “공동체 내부에서 이루어졌기에 더 극악무도했던 악행”이 연이어 펼쳐진 시기였다. 살루스티우스는 정확히 아우구스티누스가 필요로 하는 증거를 제시해주었는데, “역사서에서 살루스티우스는 부도덕함은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뒤 찾아온) 번영으로부터 발생했고, 이는 결국에는 내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라쿠스 형제 때부터 술라 시기까지 로마에서 있었던 폭동 선동은 “내전으로까지 이어졌는데”, 그 도시의 신들은 이를 막고자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신들은 종종 시민들끼리 서로 싸우도록 선동하고 그렇게 다툼을 벌여도 되는 구실을 주는 듯했다. 로마인들은 〔조화를 상징하는〕 콩코르디아Corcord 여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웠는데, 아우구스티누스가 비꼬듯 적어두길, “콩코르디아 여신은 로마인들을 버리고 떠났으며, 대신에 〔불화의 여신인〕 디스코르디아Discord가 무자비하게 이들을 내전으로까지 이끌었다”. 81)


2부 근대 초기 교차로


3장 야만적인 내전: 17세기


1604년에 휘호 흐로티위스는 로마 법 사상을 기초로 하여 전쟁 자체는 정당하지도 부당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전쟁은 절대 규범적인 용어가 될 수 없고, 단지 “무장한 적에 맞서 무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기술적인 용어일 뿐이다. 〔따라서 전쟁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 전쟁을 일으킨 원인이 어떤 속성을 띠는지에 따라 해당 전쟁이 정당한지 그렇지 않은지가 결정된다. 너무나도 확고하게 흐로티위스는 사적 전쟁─국가의 의지에 따라 벌이는 공적 전쟁 이외의 모든 전쟁─을 벌이는 것에 반대했고 사적 전쟁을 치르며 “국가가 위험한 소요 사태나 혈전”에 휘말려 치르는 대가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에 흐로티위스는 플루타르코스나 키케로가 남긴 지혜를 따를 것을 권했다. 심지어 찬탈자usurper를 경험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흐로티위스는 “내전을 벌이는 것은 비합법적 정부를 불가피하게 따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 어떠한 상태에 있더라도 평화는 내전보다 낫다”고 말했다. 95-7)


홉스는 국가 간 전쟁 외 두 전쟁 형태를 구분했다. 하나는 내전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상태에 있는 개인들 간 경쟁이다. 내전은 정의상 코먼웰스civitas〔즉 국가〕가 세워진 이후에나 벌어질 수 있었다. 그 이전에 존재했던, “시민사회 밖 인간이 처한 조건(즉 누군가는 자연상태라고 칭할 조건)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 외에 그 무엇도 아니다. 파벌은 그 종류가 무엇이든 필시 그런 분열을 일으키는 근원일 수 있었다. 특히나 “파벌을 형성한 사람들이 화술이나 모의를 통해 취할 수 없는 것을 무력으로 쟁취하고자 할 때 내전이 발생한다.” 파벌은 곧 “코먼웰스 내 코먼웰스civitas in civitate”가 생긴 것과 같았다. 어떤 군주든 그가 통치하는 국가 내 파벌을 용인하는 것은 “성벽 안에 적을 들여놓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는 전쟁이었는데 여기서 시민들은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되었다. 즉 로마인이 관용적으로 쓰던 용어를 따르자면, 진정한 내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99-100)


로크는 전쟁 상태를 “흥분하고 성급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차분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생명에 위해를 가할 의도”가 존재하는 상태로 정의했다. 이것은 전쟁 상태를 타자가 지닌 정념 속에서 항구적인 불안을 느끼는 상태로 정의했던 홉스식 전쟁 상태와는 상당히 달랐다.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민사회에 들어간다. 일단 국가 공동체에 속하면 인간의 안전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각자가 지닌 정념이나 외부의 적이 아닌, 바로 통치자가 지니는 공권력의 불법적 사용이다. 이럴 경우 정당하게 저항할 수 있다. 그러한 통치는 “인민이 세우고 그 외의 누구도 세울 수 없는 권위를 파괴하며, 인민이 권위를 부여하지 않은 권력을 도입하여 실제로 전쟁 상태를 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한 통치자는 자신을 애초에 인민 평화의 보호자와 후견인으로 만들어준 바로 그 사람들을 전쟁 상태에 놓이도록 하기에 엄밀히 말해, 그리고 아주 악랄하다는 의미로 반란자Rebellantes가 된다.” 103-4)


로크는 내전을 흐로티위스가 ‘혼합’ 전쟁이라 칭했을 법한 전쟁으로 이해했는데, 다만 ‘공적 권위’를 지닌 측이 통치자가 아닌 인민이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내전은 양측 모두가 정당해질 수 없는 종류의 전쟁이었다. 이런 점에서 로크는 심지어 홉스보다 더 급진적이었으며, 도시civitas 내에서 무장한 동료 시민들끼리 벌이는 싸움을 내전으로 정의하던 로마식 전통마저 거부했다. 로크는 내전이 국가 공동체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도록 하며, 시민사회를 무너뜨리는 (그래서 시민의식civility 자체로부터 이탈한) 상황을 수반하는데, 이러한 상황은 정당한 권위가 다시 회복되기 전까지 지속된다고 보았다. 로크는 그러한 복고가 1688년에 이뤄졌다고 확신했는데, 이를 두고 “우리를 가톨릭과 노예 상태로부터 벗어나도록 인도해줄 오렌지 공公─명예혁명이라고 하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정치적 조치를 통해, 아내 메리Mary와 함께 왕위에 오른 인물─의 왕림”에 따른 결과라고 칭했다. 104-5)


18세기 후반을 기점으로 유럽 내에서 새로운 서사가 점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서사도 여전히 잇따라 벌어진 정변政變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를 통해 마찬가지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있었지만, 이에 더해 이제는 그 미래가 어느 정도 이상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충분히 제시되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관에서는 연속된 내전보다는 연이어 벌어진 혁명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뤘는데, 이 이야기는 뿌리 깊은 갈등이 아닌 근대적 해방을 논했다. 이 서사는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에서부터 시작해서 역사를 통해 전개되었다. 이러한 서사가 형성되면서 과거를 잊어버리도록 하는 행위가 동반되었다. 혁명이 포함된 새로운 범주가 의도적으로 고안되었는데, 이는 어느 정도는 내전 기억을 잠재우고 조금 더 건설적이고, 희망적이며, 진보적인 자세를 갖도록 하는 무언가로 대체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로마의 내전 개념은 조용히 떠나지 않을 것이었다. 혁명의 시대는 다시금 내전의 시대가 될 것이었다. 110)


4장 혁명 시대에 벌어진 내전: 18세기


혁명과 내전이 서로 반대된다고 보는 관점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독일의 위대한 정치 개념사가 라인하르트 코젤레크Reinhart Koselleck에 따르면, 혁명은 18세기를 거치며 “내전과는 대조되는 개념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18세기 초만 하더라도 두 표현은 “서로 교차하여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동시에 완전히 배타적이지도 않았다.” 16~17세기 동안 유럽 전역에 걸쳐 나타난 파괴적인 종교 분쟁과 연관되어 있던 내전은 계몽을 지지하던 이들이 앞으로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기도하던, 바로 그 재앙의 부류였다. 그에 반해 혁명은 인간이 활동하는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던 유용한 변화를 이끄는 힘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18세기 말에,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한, 비교적 명확한 이원성duality이 나타났다. 코젤레크는 “여러 면에서 보아, 그때”가 되어서야 “‘내전’은 스스로 무의미한 순환을 반복한다는 의미를 얻게 되었고, 혁명은 이러한 순환에 새로운 국면을 열어주는 시도”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112-3)


18세기 유럽 사상가들은 내전을 적어도 세 유형으로 구분했다. 각 유형을 ‘왕위 계승successionist’ ‘정권 교체supersessionist’ ‘분리 독립secessionist’ 내전이라 칭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분리독립 내전은 18세기 후반에 나타난 상대적으로 새로운 실제 현상이었다. 이를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에서 쓰인 말로 보자면, “한 민족이…… 다른 민족과 맺어온 정치적 결합을 해체”하고자 할 때, “이는 지구상 존재하는 여러 세력 사이에서 자연법과 신법이 부여한 별개의 평등한 지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18세기 후반 이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선례를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1580년대 에스파냐 왕가에 맞선 네덜란드 독립전쟁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선례가 없었다. 북아메리카 내 존재하던 영국 식민지가 영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어냈던 1776년 이후가 되어서야 이 내전 유형은 급증하기 시작했고 법적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미국인들은 진정으로 혁명적인 내전 관념을 제공했다. 115-6)


미국이 지닌 운명을 내세우는 경건한pious 서사에 비교적 덜 매료된 최근의 역사학자들은, 미국혁명을 내전으로 여겨야 할지 또한 재고해왔다. 영국 병력 상당수가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이후, 혁명은 전면전full-scale war 양태를 띠었는데, 장군들이 모습을 보이고, 트럼펫이 울렸으며, 군기軍旗가 휘날렸다. 혁명은 유례없이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는데, 바로 외국인으로 확인되는 적이 아닌 국내 동족에 맞서 싸웠기에 그러했다. 특히 뉴욕과 사우스캐롤라이나처럼 첨예하게 분열된 식민지에서 벌어지던 지역 분쟁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더구나 그 분쟁은 일족은 물론 더 폭넓은 주민층을 분열시켜, 이른바 (영제국에 맞선 저항을 지지하는 이들인) 애국파Patriots와 비록 다른 측면에서는 정치적 입장이 다르고 인종적으로 다양할지라도 적어도 본국 국왕에 충성을 지키는 충성파Loyalists로 나뉘게 했다. 한 역사학자는 미국혁명을 두고 “그렇다면 이 일은 혁명인 동시에 내전이었다”고 결론지었다. 123-4)


1776년 7월 독립선언서는 공식적으로 실제 벌어진 일들을 “진실된 세계”에 전하며 “이 연합 식민지는 자유롭고도 독립된 국가이며, 또한 권리에 의거하여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리고 영제국과 맺은 모든 정치적 관계는 전면적으로 단절되었고, 또 마땅히 단절되어야만 함”을 입증해 보였다. 선언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바라보길, 영국은 이제 국제적 분쟁 한 측에 서 있던 당사자였고, 아메리카는 (두말할 나위 없이 복수 연합인) 미합중국으로 상대측에 놓여 있었다. 양자는 더 이상 동일한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는 부분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이로부터 양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동료 시민 혹은 앨저넌 시드니가 동일한 ‘시민 사회’라 칭한 사회 구성원도 아니었다. 아메리카 전쟁은 더는 페인이 1066년 이후부터 추정해서 매긴 아홉 번째 영국 내전이 아니었다. 독립선언서는 유럽 열강들에게 미합중국은 (실제로는 복수의 연합으로) 이제 상업을 개방하고 동맹을 맺을 수 있음을 알렸다. 130)


1789년 이전까지 혁명은 종종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자, 이미 정해져 있는 천체의 순환, 아니면 인간사에서 영구적으로 되풀이되는 일로 여겨졌었다. 잉글랜드 내전을 다룬 홉스가 쓴 대화편 『베헤모스』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1649년부터 1660년까지 영국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설명하며 이 관점을 전형적으로 내비쳤다. 그가 말하길, “나는 이 혁명에서 순환하는 움직임을 지켜봐왔는데, 바로 주권이 두 왕위 찬탈자인 아버지와 아들[올리버 크롬웰과 리처드 크롬웰Richard Cromwell]을 거쳐 작고한 왕[찰스 1세]으로부터 다시 그의 아들[찰스 2세]에게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결국 되돌아간다는 의미에서 혁명이었지, 사태를 전복시키는 의미에서의 혁명은 아니었다. 1789년 이후부터 복수로 제시되던 혁명들은 이제 단수로 혁명이 되었다. 이전까지 자연 발생적이고, 피할 수 없고,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사건이라 여겨지던 혁명이 이제는 도리어 자발적으로 계획하에, 반복적으로 행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132)


혁명 상연을 위한 근대 각본이 1789년에 작성된 이후, 이 극은 전 세계에 걸친 무대에서 자주 재연되어왔다. 이후에 일어난 혁명들에서 초기 각본은 혁명이 내세우는 목적에 맞게 각색되었고, 매 상연마다 새로운 특성이 추가되었다. 이처럼 영향력 있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어떤 혁명이든 그 중심에는 내전이 자리한다고 찾아 나서는 행동은 노골적으로 반혁명적이라 비칠 수 있었다. 혁명에 반대하던 이들은 보통 혁명이 내세우는 정당성을 부정하고자 시도해왔는데, 이를 위해 기존 사회 및 경제 질서를 전복시키고자 하는 어떤 시도에든 수반되는 폭력과 파괴를 강조했다. 어떠한 변환이 이뤄진다 하더라고 결코 그 희생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내전에 그와 같은 역행을 가져온다는 함축이 이제 부여된 상황에서, 혁명에 내전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일은 자유를 안겨주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는 혁명에 내재한 잠재성을 약화시키는 행위로 보일 수 있었다. 133-4)


“지구적 내전의 전문 혁명가” 역할을 맡았던 레닌은 억압당하는 이들은 폭력적 수단을 통해서만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주장을 이어나갔다. 유럽 밖에 거주하는 민족들에게 전쟁은 제국주의에 맞서 민족 해방을 가져오는 도구였다. 이와 다른 주장은 단지 유럽식 국수주의European chauvinism에 불과했다. 사회주의는 전쟁을 없애지 않는다. 사회주의가 가져올 승리는 즉각적으로 이뤄지거나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었다. 자본주의에서 탄생한 천자만태千姿萬態의 악惡을 완파하기 위해서는 많은 타격이 가해져야 했다. 또한 사회주의 혁명 자체가 전쟁과 결별할 수 없는 한, 혁명은 내전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게 되었다. “계급투쟁을 받아들이는 이는 내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내전은 모든 계급 사회에서 나타나는 자연적 현상이며, 어떤 조건하에서 불가피한 상황으로, 계급투쟁이 계속되고, 발전하며, 격화되면서 나타나는 일이다. 이는 벌어졌던 모든 위대한 혁명에서 그동안 확인된 바다.” 141)


3부 현재까지의 경로


5장 내전 문명화하기: 19세기


1863년 11월 19일 전몰자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행한 연설에서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이 미국 내에서 벌어졌던 분쟁을 ‘중대한 내전a great civil war’이라 표명하기로 했던 결정은, 1863년 당시에도 논쟁의 여지가 있었다. 그렇게 선언한다는 것은 곧 남부 연합이 벌였던 행동을 두고 북부 연방이 취했던 해석을 사실상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는 곧 남북 양측 전투원들이 동일한 정치 공동체를 이뤘던 구성원이었고, 여전히 그러하다는 점을 확증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정치 공동체는 바로 미합중국이었다. 또한 〔중대한 내전이라는〕 이름표는 당시 분쟁에서 무엇이 논쟁점이었는지 확연히 드러내주었다. 국민이 통합을 이루고 있는지, 헌법은 신성불가침한지는 물론 일방적인 분리 독립이 비합법적인지 등이 논쟁 대상이었다. 1865년 이후 어느 시기든 당시 분쟁을 ‘내전’이라 칭하게 된 것은 그러한 해석과 북부 연방이 지켜내고 옹호하고자 했던 원칙이 승리했음을 의미하는 결과였다. 147)


북부 연방과 링컨이 내세운 논리에 따르면, 연합이 내세운 분리 독립은 ‘반란’ 행위이며, 이를 진압하고자 벌였던 분쟁은 ‘내전’이었다. 그렇지만 링컨 자신은 분쟁 기간에 ‘내전’보다 ‘반란’이라는 용어를 거의 여섯 배나 많이 사용했다. 19세기는 전 지구적 연결망이 점차 강화되던 시기로, ‘내’전이라는 말에 담긴 고대적 경계성이 그 실질적 의미를 잃어가던 때였다. 게티즈버그 연설이 있기 1년 반 전에,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1802~1885)는 그의 걸작인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1862)에서 범세계화된 세상에서 내전이 어떠한 변화된 영향력을 미칠지 고뇌하는 주인공을 등장시켰다. 소설 속 인물 마리우스 퐁메르시의 사색은 위고 자신이 내전과 다른 분쟁 사이 모호해진 경계를 지켜보며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링컨으로부터 빌려온 핵심적 구절인) “인류로 구성된 전체를 포괄하는 대가족”이라는 폭넓어진 무대에서, 내전과 외전을 나누는 그 어떤 구분도 급격히 그 의미를 잃게 되었다. 148-50)


전 지구적으로 발생했던 폭력은 19세기와 20세기 내내 지속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문제를 낳았다. 바로 내전을 문명화civilize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그 어떤 것도 내전을 통해 받은 정신적 충격을 완화시킬 수는 없었다. 정치 공동체는 찢어져 나갔고, 가족 내에서 반목이 벌어졌고, 친족 관계는 파괴되었고, 내전이 재발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으며, 승리한 쪽과 패배한 쪽 모두 수치심을 느꼈다. 17세기 이후 유럽 열강과 아메리카에 거주하는 유럽의 후손들은 분쟁 중 벌어지는 행위를 통제하여, 분쟁이 법에 의한 지배 아래 놓일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비유럽인을 대하는 방식은 상당히 다른 사안이 되었다. 즉, 내전의 법제화를 위한 노력이 가져온 유해한 부작용으로 인도적으로 다뤄질 사람과 그렇지 않을 이들 간 격차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시민성civility과 비시민성incivility, 즉 문명 영역과 그 영역 밖에 있는 야만을 구분 짓는 경계에 부합했다. 151-2)


6장 내전으로 점철된 세계들: 20세기


1949년 10월 제네바에서는 계속 확대되던 전쟁 폐해 개선을 주목적으로 하여 인도주의 회의가 열렸다. 가장 시급한 안건은 전형적인 국제전에서 전투원으로 인정된 이들에게 보장한 보호를 ‘국제전 성격을 띠지 않은 분쟁에 따른 피해자들’까지 그 범위를 확대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일부 사절은 국제법을 국내 분쟁에 갑자기 적용하면 국가 주권이 침해된다고 여겼다(이와 정확히 동일한 이유로 1864년에 합의된 초기 제네바협약이 내전까지 확대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절들은 “국가가 지닌 권리는 모든 인도주의적 고려 사항보다 우선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는데, 그 근거로 “내전이 국제전보다 훨씬 더 잔혹하게 벌어진다는 점”을 내세웠다. 이러한 논의 결과 제네바협약 일반조항 제3조(1949)가 도출되었고, 이 조항은 당시 정확한 용어로 “국제전 성격을 띠지 않는 무력 분쟁”(이후 줄여 “비非국제적 무력 분쟁”, 아니면 약어로 “NIAC”)에 최종적으로 적용되었다. 175-6)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수십 년간 ‘비非국제적’ 분쟁의 빈도가 높아지자, 협약 적용 방식이 좀더 명확해져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냉전 체제 아래 대리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제국이 붕괴하며 남긴 잔해 속에서, 내부 분쟁에 개입하는 일은 점점 흔해져, 당시 유럽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긴 평화라는 영광은 퇴색되어갔다. 그 결과, 1975년, 독일의 한 도시인 비스바덴에서 열린 국제법 학회에서, ‘내전 비개입 원칙The Principle of Non-intervention in Civil Wars’이라는 제목의 문서 초안이 작성되었다. 비스바덴 의정서는 만약 어느 한 측이 외세의 참전을 요청해 다른 한 측도 똑같이 참전을 요청한다면, 분쟁 상황은 쉽사리 국제 분쟁으로 확전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외부 당사자들은 개입하지 않도록 권고받았다. 또한 비개입이 이뤄져야 하는 조건들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국제법학회는 “내전”을 “한 국가 영토 내에서 발생하여 국제적 성격을 띠지 않는 모든 무력 분쟁”이라고 간략히 정의 내리고자 했다. 178)


결정적으로 비스바덴 의정서는 무엇이 내전이 아닌지 명시하는 범위를 정했다. “국지적 소동 혹은 폭동” “국제 분계선에 따라 분리된 정치적 독립체들 간 무력 분쟁” 그리고 “탈식민지화로 인해 발생한 분쟁” 모두는 내전 영역 바깥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논의 결과 일련의 추가의정서가 도출되었고, 이 중에는 제2차 추가의정서(1977)도 있었다. 이에 따라 만약 분쟁이 “국제적”, 즉 두 독립된 주권 공동체 사이에 벌어지는 분쟁이라고 여겨진다면, 제네바협약이 온전히 적용된다. 분쟁이 “비국제적”이라면, 해당 분쟁은 일반조항 제3조와 제2차 추가의정서에 따라 다뤄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 폭력 사태가 (아마도 폭동 혹은 내란에 해당되어) 이 두 종류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 분쟁이라고 여겨진다면, 해당 사태는 국내 사법 관할 영역하에 놓여 치안 활동 대상이 된다. 이러한 경우 분쟁이 ‘국제적 성격을 띠는지 그렇지 않은지’ 혹은 쉽게 말한다면 ‘내전’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에 많은 것이 걸려 있다. 178-9)


하지만 사태는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2011년과 2012년에 시리아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자. 시리아의 일반인들은 2011년과 2012년 전반기 내내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과 벌이는 다툼을 내전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시리아 밖에 있는 이해 당사국들은 그 사태에 좀더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여겼다. 아사드 정권으로서는 당연히 반란으로만 여겼다. 반대파는 자신들이 저항을 벌였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러시아나 미국과 같은 열강은 개입이냐 비개입이냐를 두고 언쟁을 벌이면서 서로 머릿속에 내전 선포에 따른 위협을 각인시켰다. 2012년 7월, 분쟁에 돌입한 지 일 년이 넘었고, 이미 약 1만7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뒤에서야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시리아에서 벌어지던 사태가 실제 “국제적 성격을 띠지 않는 무력 분쟁”이라 확인했다. 이러한 결정이 이뤄지고 난 후에야 분쟁 당사자들은 제네바협약 내 관련 규정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었다. 181)


근래 들어서서 ‘지구적 내전’이라는 용어는 알카에다al-Qaeda 신봉자들처럼 국경을 초월해서 활동하는 테러리스트들과 미국이나 영국처럼 확립된 국가 행위자가 벌이는 투쟁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 용례의 사용에 찬동했던 몇몇 이에 의해 9·11 테러 이후 형성된 이러한 용법은 대내적 투쟁이 전 지구로 확산되는, 특히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뉜 분열된 이슬람 세계에서 벌어지던 투쟁이 세계적인 규모로 확전되어온 현상을 가리킨다. 테러리즘을 칭하는 좀더 넓은 의미의 비유로서 ‘지구적 내전’은 또한 다음 상황을 지시하는 데 쓰였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벌어지는 전투에 부가되던 어떠한 제한 요소도 없이 대치하는 당사자들이 벌이던 통제되지 않는 투쟁, 어떠한 교전 규칙도 없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던 자연상태로의 회귀, ‘내부’ 분쟁과 ‘대외’ 분쟁, 달리 말해 국가 내부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국가 간 벌어지는 분쟁을 구분 짓는 경계가 완전히 흐릿해진 특수한 분쟁 형태를 함축했다. 199-200)


‘지구적’ 내전 관념은 추가적으로 보편적 인류 개념을 동반했는데, 이는 서로 적대하는 동료 시민들이 살고 있는 세계 도시 혹은 코스모폴리스cosmopolis와 같은 광범위한 단일 공동체 내에서 벌어지는 분쟁이 포착됨에 따라 그러한 동행이 허용되었다. 지구적 내전이라는 언어는 , 본래 로마인이 지녔던 내전 관념에 강도가 더해진 것처럼 보인다. 세계시민주의에서 내세웠던 공감이 확대되고 지평이 확장됨에 따라 본래 로마식 내전 관념이 포괄하는 대상이 좀더 넓어지고 첨예화되었다. 그렇지만 지구적 내전이라는 용어가 포괄하는 내부적 복합성, 20세기 초부터 해당 용어가 지녀온 이념적 부담감, 그리고 몇몇 이에 의해 암시되는 반이슬람적 함축으로 인해 이 용어는 ‘내전’이라는 용어 자체가 그렇듯 본질적으로 논쟁적인 개념이라 여겨진다. 이런 점으로 보아 최근에 ‘지구적 내전’을 두고 벌어진 논의는 애초에 이를 야기했던 내전의 경합적 개념이 심화되거나 도리어 한정限定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200-1)


결론: 말들의 내전


내전은 공포 및 파괴와 연관된 수많은 심상과 연상을 자아내기 때문에, 내전이란 용어를 사용함에 따라 나타날 어떠한 좋음도 떠올리기 어렵다. 이런 의미야말로 그 용어의 핵심을 관통하는데, ‘내전’이라는 말이 역설, 심지어 모순어법oxymoron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전쟁에 있어 어떤 점이 ‘시민적civil’일 수 있을까? ‘시민적’이라는 형용사는 반대로 무해하고 온건한 인간 활동 유형을 수식한다. 예를 들어 시민 사회, 시민 불복종, 나아가 대(시)민 업무를 들 수 있다. 이 단어와 어원적으로 그리고 언어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류 단어로는 ‘예의 바름civility’과 ‘문명civilization’이 있다. 전쟁은 사람들로 하여금 평화롭게 어울리거나 이들이 지닌 기운을 비폭력적인 방향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게다가 전쟁에 유혈이 낭자하고 죽음이 수반될 때 공손함이나 고상함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기 어렵다. 분명 전쟁이 몰고 오는 어두움은 시민적이라고 불리는 대상이 발산하는 그 어떠한 밝음도 완전히 덮어버린다. 203-4)


‘내전’이라는 용어를 적용할지는 당사자가 통치자인지 반란군인지, 승자인지 패자인지, 기존에 확립된 정부인지 이해관계가 있는 제3자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현대 내전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한 학자가 말했듯, “어떤 분쟁을 내전으로 묘사하는 방식은 이 분쟁에 상징적인 중요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정치적 무게를 더하는 일인데, 내전이라는 용어 자체가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그것을 부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전이라는 용어의 사용 여부 자체가 분쟁의 일부를 이룬다.” 명칭을 두고 벌이는 싸움은 해당 분쟁이 중단된 뒤에도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저항운동 레지스탕스Italian Resistance와 파시즘 정부 사이 벌어졌던 투쟁을 묘사할 때 ‘내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는데, 내전이라 칭한다면 양 당사자가 동등한 위치에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204-5)


범주를 선택하는 행위는 정치적 결과뿐 아니라 도덕적 결과를 초래한다. 대체로 자기 운명의 향방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수만 명의 사람에게는 이것이 죽고 사는 문제일 수 있다. 목격하고 있는 상황이 확실히 내전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는 건 전쟁에 짓밟힌 나라의 국민뿐만 아니라 국경 밖에 있는 이들에게도 정치적, 군사적, 법적, 경제적 차원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익히 들어왔듯 국제사회가 그와 같은 분쟁이 벌어졌다고 인정하게 되는 동기는 분쟁에 연루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일 수 있다. 내전은 종종 나와는 관계없는 남의 나라 일로 치부되며, 따라서 외부인들은 물러서 있어야 하는 일이 된다. 이와 반대로 내전이라는 이름표는 국가가 붕괴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위기가 찾아오자, 개입을 승인하기 위해 붙여질 수 있다. 이렇게 동기와 대응 모두에서 나타나는 극단성 또한 내전 개념이 지닌 역설적인 본질 중 일부를 이룬다.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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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 신화·거짓말·유토피아
자미라 엘 우아실.프리데만 카릭 지음, 김현정 옮김 / 원더박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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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익숙한 세계_프롤로그


"이 책에서 우리는 좋은 이야기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이 부정의하고 서서히 몰락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무엇보다 우리는 이야기 뒤에 숨겨진 지렛대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급진적으로radikal(어원적 의미에서 '근원을 파헤치는') 서사 문화비평을 하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는 인류 역사 자체를 인간의 영웅 여정이라고 간주한다." "인간의 서사적 진화로 말미암아 우리는 역사의 가장 큰 도전, 즉 우리 삶의 토대가 점진적으로 파괴되는 현상과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은 모든 영웅 여정에서처럼 이 문제의 해결책도 이미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영웅 여정에서처럼 우리 안에 존재하는 해결책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도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영웅 여정에서처럼 우리가 모든 시련을 이겨내면 새로운, 이상적으로는 더 나은 세상이 우리를 기다린다."(20-1)


2 모험으로의 부름_구원자·악령·영웅


"미국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1945년에 출판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수천 개에 이르는 전 세계의 신화와 전설, 이야기들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하나의 패턴을 확인했고 이를 '단일신화Monomyth'라고 명명했다. 켈트와 아랍 신화, 인도와 그리스의 반신반인(半神半人), 그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독자적인 미국 원주민이나 토착민의 고대 이야기에서도 항상 같은 도식이 발견되는데 캠벨은 이를 서사 유전자Narrative Gene처럼 이해했다. 그 도식은 바로 육체적 모험인 외적 여정과 더불어 정신적 발견인 내적 변화다." "주인공은 우리를 대신하여 엄청난 모험과 대단한 감정을 경험하고 삶과 죽음을 위해 투쟁하며 최대의 행복과 불행을 경험한다. 주인공은 종종 온갖 위험을 무릅쓰지만 대부분 더 많은 것을 얻는다. 그런데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러한 모험을 감수해야 할까? 분명 우리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이란 보다 깊은 결속을 위한 매개체일 뿐이다."(27-9)


"영웅의 임무는 많은 사람의 무의식적 갈망, 특히 방향 설정, 사물의 질서를 꿰뚫는 통찰력, 인식을 향한 갈망에 대한 은유다. 본보기, 개척자, 우리 요구 사항과 자기애의 옹호자로서 영웅은 소원과 욕구 성취에 대한 희망을 구현한다. 영웅은 여정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는 시련과 더불어 너무나도 인간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이러한 시련을 마다하지 않고 마침내 실패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로써 영웅은 우리의 무의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캠벨이 말했듯이 〈립 반 윙클, 카마르 알 자만, 혹은 그리스도가 실존했는지는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세계 곳곳에 널리 퍼져 있고 여러 나라의 여러 사람에게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보편적 주제를 담고 있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실재했는지의 문제는 (···) 그저 부차적인 관심사일 뿐이며 그 안에 담고 있는 상징적 메시지를 가리기만 한다.〉"(29-31)


# 영웅 여정의 12단계

익숙한 세상→모험으로의 부름→거부→멘토→문턱(네오의 빨간 알약)→시험, 동지와 적→가장 깊숙한 동굴로 들어가기(악당들과의 대결)→영혼의 어두운 밤(깊은 좌절·상실)→칼을 움켜쥐다(극복)→귀로(영웅의 변모)→부활(마침내 변모한 영웅)→영웅의 금의환향


"영웅은 가장 중요한 인물이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좋은 스토리에는 또 다른 필수 요소가 필요하며 영웅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는 적수antagonist다." "적수는 주인공을 보완하고 때로는 심지어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즉 적수는 우리 모두에게─주인공에게도─내재된 특정한 문제적 특성이나 이기심, 기형적 특성을 구현한다." "말하자면 적수는 언제나 영웅을 저지하고 이를 통해 줄거리를 진행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악당일 필요는 없다. 적수의 목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가 사용하는 수단에 윤리 의식이 결여되어 있고 반성과 변화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그를 악당으로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적수는 더 많은 자질을 얻거나 약점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여정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된다. 동시에 적수는 시스템과 동떨어진 바람직하지 않은 삶, 주인공이 맞서 싸워야 하는─그리고 실제로 주인공이 그렇게 생각하는─ 그릇된 길을 의미한다."(43-6)


3 거부_나는 어떻게 나만의 영웅이 되는가?


"원인과 결과에 대해 이해하면 우리 적응력에 가장 중요한 행동 원칙이 생겨난다. 즉 어떤 것이 그냥 그렇게 우리에게 닥치거나 이유 없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면 우리에게 위협적인 상태를 지속적인 발전과 변화─시행착오라고도 하는─를 통해 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적, 외적 변화를 통해서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웅 여정을 통해서. 하지만 우리 인간은 절제를 모르기 때문에 삶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이유도, 의미도 없다는 인식 뒤에 숨어 있는 '공백 공포Horror Vacui'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 모든 사람을 '인과 관계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쉽게 만족을 느낄 수 있다. 설명이나 이야기의 타당성은 우리가 왜 그것을 믿는지에 대한 수많은 기준 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은 그저 절반만 작동되는 잘못된 설명을 견디기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우연성을 견디기가 더 어렵다."(84-5)


"두드러진 이타심을 보이는 영웅에 대한 이상화는 선사 시대 부족에게 실존적 기능을 하고 있었다. 천적 외에 무엇보다 이기주의가 집단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희생적인 주인공이 승자가 되고 이기적인 사람이 패자가 되는 영웅 이야기는 이타적인 행동 규칙을 알리는 홍보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이야기는 그 기능과 효력처럼 계속해서 발전했다. 사랑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번식이 진화생물학적으로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사랑 이야기는 사랑을 찾고 가꾸는 과정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전수하는 좋은 수단이다. 이야기는 의미뿐 아니라 사회를 결속하는 효과와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키는 작용도 하지만 인지 놀이에도 도움을 준다. 이야기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모험할 수 있는 놀이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이야기에서는 죽임을 당하거나 부족을 영원히 잃지 않고서도 역할과 해결책을 시도하고 사회적으로 협의할 수 있다."(89)


"내러티브의 진화에서 더 흥미진진하고 더 인상적인 이야기가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이유는 객관적인 정보보다 박진감이 있어서 더 잘 전달되고 더 많이 이야기되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의 어느 시점부터 미화되거나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진화적 우월성으로 이어지는 생존 요인이 되었다. 말하자면 허구에 의한 생존Survival by Fiction이다. 그리고 곧 이야기는 우리가 서로에게 경고하거나 위로하는 방식, 우리가 스스로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 모든 인간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만든다는 사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은 개인의 의식적인 선택 때문도, 집단의 창의적 독창성 때문도 아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근본적으로 신경 구조에 의해 가능해진 세계관을 재현할 뿐이다. 우리는 모든 곳에서 이야기를 '찾으려고' 하고 '찾아야만' 하기 때문에 비록 추상적인 형태일지라도 곳곳에서 이야기를 발견한다. 우리 뇌는 이야기에 제대로 중독되어 있다."(98-9, 103)


"허구의 힘은 마법 같은 동일화를 통해 비로소 펼쳐진다. 왜냐하면 동일화를 통해 우리가 더 나은 자기 모습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지신을 영웅과 동일화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야기는 단지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가 된 우리 자신에 관한 것이 된다. 이는 축구를 볼 때와 어느 정도 비슷하다. 축구를 볼 때 우리가 어느 한 팀을 택하지 않는 한 잃을 것이 없다. 우리가 어느 한 팀을 택해야 비로소 그 팀의 패배를 걱정하거나 승리를 응원할 수 있다. 우리가 그 팀과 동일화하는 순간부터 '우리' 팀이 패배하면 우리가 패배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영광스럽게 투영하는 영웅이 승리하면 우리가 승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주인공이 우리를 위해 난관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승리와 패배를 경험할 때 그들은 이를 우리 입장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독자가 영웅처럼 따뜻해지든지, 아니면 영웅이 독자처럼 차가워져야 한다〉고 쓴 바 있다."(125-6)


4 멘토와의 만남_단어·문장·그림 : 이야기의 수단


"스토리Geschichte는 이야기되는 내용을 가리키며, 이야기Erzählung는 이것이 어떻게, 어떤 수단과 동기로 행해지는지를 나타내며, 내러티브Narrativ는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이야기가 전해지는지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나무 열매를 따 먹은 여자 때문에 낙원에서 추방당한 남녀에 대한 스토리의 경우 이야기는 유혹, 죄책감, 추방에 대한 것이고, 지배적 내러티브는 '여성은 위험하다'이다."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사건의 시간적 순서를 담고 있지만, 스토리는 사건을 완전히 다른 순서로 재현할 수 있다. 이로부터 완전히 다른 스토리가 생겨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다. 반면 내러티브는 시대를 넘나들 수 있는 완전히 시간 초월적인 의미 캡슐이다. 이야기와 스토리는 놀라울 만큼 종종 서로 다른 문화에서 서로 다르게 변형되어 전해지면 서로 다른 커뮤니티와 집단에 잠재적 정체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사회적 결속은 이야기 차원이 아니라 호환될 수 있는 내러티브 차원에서 이루어진다."(162-4)


"이미지도 말 그대로 아이콘이 될 수 있으며 내러티브를 설정하고 전파할 수 있다. 현재 소셜 플랫폼Social Platform에서는 고유의 언어적, 시각적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는 지속적이고 거대한 변화를 거치고 있는 동시에 서사적 반복으로 인해 내재화되어 마치 개인적, 집단적 상징 이미지의 새로운 형태처럼 기능하는 고정관념 이미지를 생성한다." "가령 우리는 셀피를 찍을 때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마치 이모티콘과 같은 표정을 짓는다. 즉 우리는 셀피를 말한다. 이모티콘을 사용할 때조차 우리는 발화 행위의 의미에서 주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 순간에 이러한 웃는 얼굴이 우리 자신인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의 소통적 자기 서사는 우리 자신의 이미지 관념으로 단순화되고 나아가 우리 자아의 관념이 된다. 말하자면 우리가 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수단으로 소셜 미디어를 주로 사용할 경우 셀피는 매우 개인적인 우리 자신의 상징적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192-3)


5 첫 번째 문턱을 넘다_인터넷은 우리의 서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게임은 참가자가 영웅으로서 얼마나 잘 해내고 있는지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하여 수행적 자기효능감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이 점이 우리를 소셜 미디어로 이끈다. 찰리 브루커에 따르면 트위터는 〈자신의 개성을 느슨하게 표현하기 위해 흥미로운 아바타를 선택하고, 키보드를 반복적으로 두드리며 재미있는 문장을 만들어 팔로워를 끌어모으려고 하는 대규모 온라인 커뮤니티 게임이다.〉" "〈소셜 네트워킹은 끊임없이 즐거운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게임화했다.〉 우리는 '좋아요Like'와 댓글에 쏟아진 다른 플레이어의 관심에 동기를 부여받아 소셜 네트워킹이라는 게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그 규칙과 인과관게를 더 잘 파악하게 된다." "소셜 네트워크는 진정한 영웅 여정을 제공할 수 있다. 말하자면 주인공, 동맹자, 멘토, 적대자의 형식으로 게임과 매우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동시에 우리 자신을 시험해볼 수 있게 해 주는 게임 메커니즘을 제시한다."(206-7)


"어떤 의미에서 보면 휴대전화는 자기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우리 자아의 연장된 팔이라고 볼 수 있다. 스마트폰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주도적으로 장악하고 결정적으로 확장했다."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는 정적 이미지도 언제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주 평범한 예로서 맛있는 음식 사진을 들 수 있다. 얼핏 보면 우리 눈에는 음식 사진만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디지털 청중의 시선으로 확장해서 보면) 쾌락주의, 차별, 소셜 미디어 특유의 부분 대중과의 놀이가 담긴 자기 서사를 보게 된다. 이러한 시각적 발화 행위는 우리가 어떻게 보여주려고 하는지, 우리가 해당하는 상황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스마트폰은 이야기하는 원숭이인 우리가 글자나 그림문자, 사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코멘트를 달고 반응하는 자기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매체가 현재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계속 추가되는 각각의 이미지는 끝없는 영웅 여정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나타낸다."(212-4)


6 시험·동맹자·적_어떤 서사가 우리 세계를 결정하는가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상 진실을 위한 투쟁과 상호 신뢰 교환이 일찍이 우리를 자극해왔다. 상당수의 인류학 이론은 우리 인간이 언어와 이야기를 발전시킨 가장 첫 번째 이유가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며, 우리 뇌가 성장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타인을 더 잘 속이고 속임수를 더 잘 인식하기 위해서라고 가정한다. 성경에 따르면─프리츠 브라이트하우프트가 『변명의 문화Kultur der Ausrede』에서 설명한 것처럼─인간이 최초로 한 말조차 다름 아닌 변명이었다. 아담과 이브는 자신들의 견해를 대치시킴으로써 현실에 대한 신의 독점권을 뒤흔든다. 브라이트하우프트에 따르면 이러한 서사적 모호성은 스토리텔링 자체의 전제조건이다. 〈변명은 (···) 이야기의 다양한 형태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모든 서사 구조를 순수한 형태로 보여준다. 스토리텔링은 변영을 고안하는 것이다.〉 인간이 세계와 내면의 삶을 재현하고 해석하기 위한 상호 놀이로 내러티브 무장 경쟁을 시작했다는 것이다."(255)


"브라이트하우프트는 여기서 마스터 스토리Master Story(즉 사태를 설명하는 고소 내용, 이를테면 내가 금지했는데도 너희들은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다)와 변명(즉 이러한 고소 내용의 내러티브를 바꾸려는 것)을 구분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변명은 인과관계(우리는 그것이 다른 나무라고 생각했다)나 의도(우리는 배가 고팠다), 또는 책임 해석(뱀이 우리에게 교사했다)의 관점에서 사실적 세부 사항을 변경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명은 마음 이론을 가지고 있고 세상을 외부로부터 바라보며 다른 존재에게 공감할 수 있는 생명체에게만 가능하다. 그래야만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변명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좋은지를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세상의 거의 모든 조작적인 내러티브가 일종의 변명(책임 회피)이나 정당화(책임 축소)라는 것을 인식한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마스터 스토리, 즉 지배적인 내러비트로 만들려면 그 내러티브에 새롭고 대안적인 스토리를 입혀야 한다."(256)


"우리가 기존의 (자기) 서사의 일관성을 위해 견지하는 가장 흔한 인식의 왜곡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또는 다른 사람들이 믿어야 하는 것─을 믿으며 그에 따라 모든 정보를 분류한다. 우리는 우리의 확신과 상충하는 지식보다 우리의 견해와 의도를 뒷받침하는 지식을 더 중요하게 평가한다. 말하자면 우리 자신은 적어도 모순투성이인 세상을 볼 때는 서사적으로 매우 좋지 못한 판단을 내린다. 우리가 개인적이라고 생각하는 선호도조차 사회학적, 경제적 허구다. 우리는 사후에 과거를 회상하며 인과관계를 만들어 '나는 그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사후판단 편향, 혹은 잠복성 결정론Creeping Determinism이라고 부른다. 사회학자 던컨 와츠에 따르면 사후판단 편향은 특히 이례적인 큰 성공이 관찰될 때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다. 더 특별한 성공일수록 그 성공 스토리는 더 훌륭하고 논리적이어야 한다."(263)


"개인마다 크게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자기 운명을 통제하고 있으며 일어나는 사건이 우리가 내리는 결정과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개인의 통제에 초점을 두는 것은 소위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와 결부되어 있다. 말하자면 타인에게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 책임이 그들 개인에게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다량의 운이 우리 성공을 결정지을 뿐 우리가 부지런한지 아닌지는 거의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최선의 경우에는 태연해지거나 최악의 상황에는 낙담하거나 사기를 잃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자본주의처럼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는 비생산적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연을 거부하면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유지할 자격이 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것이 전적으로 우리의 업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286-7)


7 가장 깊은 동굴로 들어가기_우파의 영원한 유혹


"신화에서 영웅이 선택된 이유는 그가 자기 자신과 온 세상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파시즘에서 영웅은 규범이다. 누구나 국가의 영웅이 될 수 있으며, 모두가 심지어 영웅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비범하다.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히틀러는 제외하고)." "이러한 영웅주의는 필사적인 용기에 대한 갈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를 위해 파시즘적 영웅은 어쩔 수 없이 싸움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언제나 전쟁이나 전투, 한마디로 말하면 폭력을 추구한다. 이에 대해 완전히 형이상학적 보상이 주어질 가능성이 있다. 현세적이고 민주적인 체제에서 인간은 기껏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파시즘은 훨씬 더 좋은 것, 바로 구원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다음 변증법으로 이끈다. 즉 한편으로 파시즘은 더 큰 확신을 하고 초월적 사명에 대한 믿음을 설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믿음에 깊은 허무주의를 새겨 넣는다. 이러한 점에서 파시즘은 견고하고 불변한 동시에 언제나 상황에 순응하고 적응한다."(312-3)


"이로써 우리는 서사 이론에서 이미 잘 알려진 결정적인 지점에 도달한다. 즉 강력한 적대자가 없으면 강력한 주인공도 없다. 전투에서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막대한 위협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세계와 질서가 무너져야 한다. 무너진 틈 사이로 악이 침투하며 오로지 영웅만이 악을 제지할 수 있다. 그래야만 파시즘이 원칙적으로 취하려는 특별 조치─모든 다원주의를 철폐하고 폭정을 휘두르고 적을 패배시킬 뿐만 아니라 '말살시키는 것(아돌프 히틀러)'─가 정당화된다. 말하자면 파시즘은 모든 파시즘 추종자를 영웅으로 만들고, 그들에게 모순적인 것을 약속하며 적을 눈에 띄게 표시한다." "영웅 여정은 적수를 물리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악마와 맞서고 근본적으로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파시즘은 에너지가 외부로만 흐를 뿐 절대로 내부로 흘러들지 않는다. 따라서 내러티브로서 파시즘은 스토리텔링이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의미하는 바와 정반대다."(314-7)


"악을 정형화함으로써 악이 미화되는 것은 문제이다. 이를테면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파시즘적 등장인물이 팬들이 감탄하는 우리 대중문화의 당연한 일부가 될 때처럼 말이다. 〈스타워즈〉 등장인물은 말 그대로 번역하면 '나치 돌격대'라는 뜻을 가진 '스톰트루퍼' 헬맷을 착용하고 장교는 게슈타포처럼 보인다. 〈스타워즈〉 등장인물들은 수많은 티셔츠에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중독성 강한 재미있는 영상물 속에서 화려한 춤을 추기도 하며 어린이에게 인기 있는 카니발 의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형식과 코드의 미묘한 혼합은 광범위한 관심의 레이더 아래에서 훨씬 더 악의적으로 발생한다." "마이크 피엘리츠와 홀거 마크스는 〈고전적인 파시스트는 그들이 입는 검은색이나 갈색 셔츠로 식별이 되지만 디지털 파시즘은 소셜 미디어의 기능 방식에 기인하는 온라인 문화의 알록달록한 셔츠 속에 위장된다. (···) 더구나 디지털 파시즘은 대응책이 목표로 삼을 수 있는 명확한 조직적 중심이 없다〉고 썼다."(326-30)


"유튜브가 지닌 새로우면서도 위험한 문제는 토끼 굴 입구를 의식적으로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무수한 영상의 정글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맞춤형 알고리즘은 더 급진적이고 더 극단적이며 더 비현실적인 형편없는 영상을 제안한다." "음모 이야기의 토끼 굴은 사회학자 레오 뢰벤탈이 말한 '이념적 노숙자'라는 용어를 빌어 '서사적 노숙자'라고 부를 수 있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준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이야기와 그 안에 내재한 설명은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함께 어울리면서 남보다 앞서 나가는 것to get along and get ahead'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문화 및 환경의 전통적인 내러티브로부터 소외되면 처음에는 불안으로 이어지고, 그다음에는 대안적 실마리에 개방적인 태도를 갖게 되며 마지막에는 자신이 항상 속아왔다는 편집증적인 확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주류 미디어'와 사악한 엘리트로부터 일단 등을 돌리면 다시 다가가기가 지극히 어렵다."(342-4, 346-7)


8 마지막 시련_독일과 미국은 어떤 스토리를 만들었는가


"한 국가 자체에 대한 사회문화적 서사인 딥 스토리Deep Story는 사회의 역사적 스토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공유되는 내러티브를 의미한다." "가령 트럼프 지지자들은 모두가 자의식을 갖고 자기 차례가 오기를 성실하게 기다리면서 신교도 특유의 직업윤리와 개척 정신, 규칙 준수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동경의 산을 오르려고 한다. 이러한 대기 줄에서 소수자들이 공격적으로 지원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백인 노동 계층에게는 마치 언제나 자기 뒤에 서 있던 사람들─흑인, 이민자, 여성─이 갑자기 자신들, 즉 충성스럽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미국인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더 나쁘게 표현하자면 그 사람들이 국가와 기관의 도움을 받아 침투한 것처럼 보인다. … 백인 노동 계층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편애는 불공평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집단적 이상에 대한 배신, 즉 사회적 지위와 출세를 스스로 얻을 수 있고 또 얻어야 한다는 능력주의 동화에 대한 배신이다."(356-8)


"18세기와 19세기의 독일에서는 두 가지 환경, 즉 아카데미와 군대, 다시 말해 정신과 복종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둘 다 감정과 여성이 없는 곳이다." "18세기 독일 낭만주의의 감수성도 (디오니소스적인 정신이 아니라) 지성적인 것이었다. 말하자면 경쾌한 방종이 아니라 정신에 의해 억제된 갈망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의무감, 근면, 경건한 성과 중심주의에 대한 종교적 자기 서사에 의해 형성된 개신교 유산의 틀 안에 존재했다." "개신교 유산과 대학 외에도 18세기와 19세기 독일의 딥 스토리 중 하나는 고도로 기능적인 프로이센 군대와 이곳의 금욕적인 사명감이었다. 의무를 다하는 것─위계질서와 엄격한 규칙 준수─은 일반 대중에게 품위와 덕성의 전형이 되었다. 동시에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식민지 보유국이 아니라는 열등의식으로부터 철저히 위장된 민족 우월주의에 대한 열망이 생겨났다. 눈에 띄게 더 커 보이려는 열성적이고 과시적인 노력의 이상은 점차 더 위험한 것으로 바뀌었다."(370-1)


9 칼을 움켜쥐다_별로 강하지 않은 성별


"판도라는(물론 이브와 함께) 영웅(당연히 남성 영웅)이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혼란스럽고 파괴적인 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수많은 여성 인물 중 최초의 여성이다. 쾌락, 사랑, 간계 또는 성적 거부를 통해서 말이다. 말하자면 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Sexuality를 무기로 사용하여 이성애 성향의 강직한 영웅을 파멸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세이렌은 선원들을 유혹하고, 아름다운 서큐버스는 잠자는 남자의 꿈에 나타난 정자를 갈취하며, 중세의 마녀는 잘못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했다. 여성 캐릭터가 위험하고 무질서한 타자의 역할을 맡을 필요가 없는 경우엔 반대로 악의 없이 남성 영웅을 지원했다. 조지프 캠벨의 고전적인 영웅 여정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영웅이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와 도움을 제공하는 모성적 여신을 만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의 여성 캐릭터는 종종 지나치게 격정적인 영웅을 규제하는 어머니 역할을 맡는다."(394-5)


"여성 혐오의 두 번째 원초적 내러티브는 손에 넣기 힘든 성적 자원이자 동시에 스스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상품화하는 여성에 대한 것이다.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가 주연을 맡은 로맨틱코미디의 고전 〈귀여운 여인〉(1990)은 이러한 내러티브를 놀라울 만큼 노골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즉 아름다운 매춘부가 부유한 남자로부터 구원받고 남자의 지위와 부를 대가로 남자에게 독점적으로 자기의 몸을 허락한다. 〈귀여운 여인〉은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를 현대화시키고 성적 측면을 강조한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이야기의 공통점은 한 남자가 자신의 낭만적인 상상과 사회경제적 필요에 따라 오로지 자신을 보완해주고 도와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여자를 만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상적인 뮤즈에는 복종을 통해 충만함을 발견하는 여성성이라는 내러티브가 숨겨져 있다. 이와 달리 팜므 파탈Femme fatale, 단어 그대로의 '치명적 여성'은 남성을 위험에 빠뜨리는 또 다른 여성성의 표현이다."(395-8)


"소위 세계 종교의 메시아적 영웅이든, 그리스와 로마 신화의 서사적 영웅이든, 게르만이나 켈트 초기 문화의 전설적 영웅이든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즉 이 영웅들이 모두 남자라는 것이다." "통상적인 (남성) 영웅을 영웅 여정의 의미에서 '남성적'으로 행동하는 여성 영웅으로 단순히 교체하는 것은 아무 효과가 없다. 미국의 작가 게일 캐리거는 자신의 저서 『여성 영웅의 여정 : 작가와 독자, 대중문화의 팬을 위해』에서 남성 영웅 여정과 여성 영웅 여정을 구분함으로써 영웅 여정의 대안이 어떤 모습일지 설명한다. 〈남성 영웅 여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점차 고립되어가는 주인공은 당당하게 맞서며 악당을 뽀족한 물건으로 찌르고 마침내 악당을 무찌르고 명예와 영광을 얻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여성 영웅 여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점차 인맥을 넓혀가는 여주인공은 좋은 친구들과 활보하며 그들과 함께 악당을 물리치고 승리를 이끈다.〉"(406, 410-3)


"인셀Incel이 여성에 대한 증오를 서사적으로 정당화시키는 단순한 허구는 다음과 같다. 즉 여성은 외로운 남성의 존재적 비참함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인셀은 '여성 선택'의 80대 20 법칙에 사로잡혀 있다. 이 생물학적 이론에 따르면 상위 20퍼센트의 매력적인 이성애자 남성이 모든 여성의 80퍼센트를 성적으로 차지하고, 나머지 80퍼센트의 남성은 아무 기회도 얻지 못한다. 여성은 이러한 권력 불균형을 악용하며 매력적이고 낭만적이지 않은 남성을 차별하고 필요에 따라 도구로 이용하는 특권을 누린다. 인셀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은 남성이 간절히 원하는 것에 대한 접근을 통제함으로써 남성보다 훨씬 강력하며,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필요성도 남성에게는 거짓이다. 또한 이와 같은 가정에 따른 성적 전략은 남성의 재정적 착취로 이어지는데, 이를 알파퍽 베타벅Alpha Fuck, Beta Buck(알파 남성은 섹스를 하고, 베타 남성은 여성에게 재정을 지원한다는 뜻)이라는 공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416-8)


# 인셀Incel은 비자발적 독신자Involuntary Celibate의 줄임말이다.


"그들의 내러티브를 촉진하는 중요한 동기는 자유화된 우리 사회에서 그들이 자신을 서사적 갈등의 희생자로 느낀다는 것이다. 인셀의 관점에서 남성이 특권을 누린다는 이념은 현대의 동화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장 큰 특권, 즉 섹스에 대한 접근이 거부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신에 대한 깊은 쓰라림은 우리가 이미 파시즘 내러티브를 통해 알고 있듯이 자기 피해의식으로 표현된다. 사회학자 마이클 키멜은 『화난 백인 남성』(2013)에서 이러한 피해의식을 신화적인 가부장적 과거를 고집하는 현상과 연결한다. 〈사람들에게 '정당한' 자리를 되돌려주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이 세상은 (···) 백인 남성들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필연적으로 경제적 사다리의 어딘가에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믿고 자랐던 세상이다. 그것은 (···) 능력주의 사회의 이상이다. 그리고 남성들이 실패하면 굴욕을 당하며 그들의 분노를 표출할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419-20)


10 귀로: 인류 종말은 텔레비전에서 방송되지 않는다_기후 스토리가 실패하는 이유


"기후 변화를 주제로 한 픽션이 지닌 어려움은 바로 적대자가 없다는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적대자가 너무 많다. 기후 위기는 우리 모두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석유 재벌, 육가공회사, 로비스트들도 있고, 배기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남반구의 가난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기후를 오염시키는 가장 큰 요인조차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며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현실의 기후 변화에는 중요한 시각적 모티프, 즉 대재앙이 쏟아붓는 강렬한 이미지가 빠져 있다. 천천히 녹아내리는 빙하, 멸종해가는 종, 가라앉는 섬 등은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특히 모든 세계가 기후 종말론에 감정적으로 동조하고 있으며, 이는 마치 〈암흑 낭만주의 이후 연속적인 날카로운 음조로 종말의 주문을 외우는 것〉 같다. 우리 마음 속에는 집단으로, 시간대별로, 대중문화적으로 이용 가능한 재난 이미지가 저장되어 있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궁극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432-5)


"이야기의 기능은 매체를 불문하고 기후 위기라는 주제와 매우 심도 있게 결합할 수 없다. 재앙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소비를 덜 하고 비행기를 덜 타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덜 하면 될까?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것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아무 행위도 하지 않는 것, 또는 상황을 그냥 지속시키는 무지함이다. 발텨 벤야민은 〈상황이 '그렇게 계속' 지속된다는 사실이 재앙이다〉라고 말했다. 서사적인 측면에서 기후 위기를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기후 위기는 인간이 만든 것으로 집단적이며, 악당이나 범죄 조직의 잘못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인간의 파괴적인 주도권에 기인한다. 기후 위기는 병든 한 시대의 탈선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쳐 커져 나갔다. 특출한 악마도 없고 과격한 집단적 이념도 없으며 적대자로 적합한 공격적인 민족 국가도 없다. 그리고 기후 위기에서는 어떤 영웅이든 상대가 악한 정도만큼만 선할 뿐이라서 주역을 배정하기가 어려워 보인다."(436-8)


"이른바 손실 회피Loss Aversion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이익보다 손실에 훨씬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한다. 손실 회피는 특히 생태와 경제 사이의 경쟁으로 조장된다.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경제 쪽이 더 유리해 보이기 때문에 경제를 선호한다. 추상적인 기후 위기는 손실 회피의 완벽한 예이다." "이로부터 언론의 표현 문제가 발생한다. 기후 위기에 대한 이분법적 묘사, 즉 과학적 인식과 경제적 관점이 서로 대립하였고 양자 간의 합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묘사는 오랫동안 기후 담론을 마치 서로 다른 관점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는 견해에 바탕을 둔 대화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영어권에서는 이와 같은 잘못된 균형을 거짓 균형False Balance이라고 부른다. 거짓 균형은 엄격한 균형이 편견을 타파하고 현실을 가장 진실하고 공정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거짓 균형은 사실에 대한 왜곡된 표현으로 이어진다."(440-1)


"여성 영웅 여정은 기후 위기에 맞선 싸움을, 우리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라 착취라는 진정한 적대자와의 싸움으로 이끌도록 고무한다. 여성 영웅 여정은 재난 영화의 완강한 남성 영웅보다 그레타처럼 사람들과 연결된 여성 영웅을 따르도록 고무한다. 나쁜 소식이라면 지금까지 우리가 이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우리가 아직 제대로 싸움을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앙으로 위협받고 그 재앙을 위협적으로 느낀 (거의) 모든 사람은 인적 네트워크를 지닌 여성 영웅 여정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서사적 자아는 인류의 이러한 실존적 위기를 긍정적인 서사에 쏟아부을 수 있어야 한다. 그에 대한 대안은 모른 체 하는 것 아니면 절망뿐이다. 하지만 그레타가 이끌어 온 길처럼 본보기가 되는 인상적인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오늘날에는 작은 단계를 통해 세상을 구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457-8)


11 부활_지칠 대로 지친 원숭이


"우리 사회는 타인의 거울에 비친 사회적 완벽주의를 조장하여 자기 서사에 균열을 일으키고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감을 느낀다. 자신을 그저 '맨인홀Man in Hole)'로 인지하여(즉, 어떻게 구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 알지 못해 계속 추락하는), 자기의 영웅 여정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은 적대자가 된다. 어빙 고프먼의 무대 은유를 사용하여 말하자면 우리가 자기 서사로부터 쉴 수 있는 무대 뒤 공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쉴 새 없이 자기 최적화Self-Optimization를 요구하고, 정치적 해석 주권을 둘러싼 논쟁은 우리가 끊임없이 경계 태세를 취하게 하며, 내러티브 주도권을 얻기 위한 싸움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명시적으로, 그리고 암묵적으로 내러티브를 체험하고 판단하고 우리의 자기 서사 안으로 분류해야 한다. 우리의 서사적 자아는 쉴 새 없이 도전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와는 달리 자기 자신을 잊을 때 사실상 가장 행복하다."(462-3)


"21세기 자본주의는 자기애 자극과 자기애 상심의 상호작용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21세기 자본주의는 우리가 모두 '독점적 제안'을 받을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소중한 고객'이라고 이야기하며 이를 구실삼아 충족해야 할 요구를 먼저 만들어낸다. 동시에 이렇게 일깨워진 욕망에 실망을 느끼게 만든다. 왜냐하면 21세기 자본주의는 이러한 개인주의적 요구를 전혀 충족시킬 수도 없고 충족시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광고와 소비로 가득 찬 세상에 익숙해져 있고 그러한 메시지를 믿는 사람이 거의 없음에도─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성 요구와 결합해─실망과 피로감에 대한 무한한 근원이 생겨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모든 것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위대한 진보 서사는 최종적으로 완전히 소진되고 있으며,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성장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내러티브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우리는 기진맥진할 수밖에 없는 이중적 소외를 느낀다."(470-2)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그리고 가장 거짓된) 어른 동화는 구조적으로 볼 때 반영웅 여정Anti-Hero's Journey이다. 반영웅 여정은 사람들에게 모험도, 여행도, 변화도 없다고 약속한다. 아니 그 이상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일하고 돈을 모으고 불평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믿음을 가지면 모든 것이 그대로 있을 수 있고 아무것도 달라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가장 선호되는 대답은 놀랍게도 개인주의적 성향이다. '마음챙김'과 '자각'이 붐을 이루는 이유는 이것이 개인을 자립적인 존재로 서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상 속에서 우리는 모두 '치유'해야 한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뉴스도 보지 않고 자신을 자극하는 모든 것과의 접촉을 피한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금욕주의의 변종은 궁극적으로 서사하는 자아를 외부의 모든 서사적 갈등에서 분리하려고 한다. 이는 대부분 암묵적이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탈정치화라고 볼 수 있다."(476-7)


12 묘약을 들고 귀환하다_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구할 것인가


우리 시대의 카산드라는 기후 과학자이자 바이러스 학자이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현재와 미래 사이의 트롤리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스위치를 변환하는 데는 많은 돈과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이 문제는 단순히 윤리적 문제만이 아니라 경제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들은 오늘 스위치를 변환해서 나중에 훨씬 더 적은 피해가 발생하도록 애쓰는가, 아니면 오늘 기차가 그냥 달리게 놔두어 비용을 아끼고 상황이 정말로 얼마나 나빠지는지 두고 보는가? 이 질문은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 '예방의 역설Prevention Paradox'로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팬데믹 초기에 바이러스 학자들은 '예방의 역설'을 반복적으로 지적했다. 즉 예방 행동은 미래의 피해로부터 사회를 보호하지만 예방이 얼마나 필수적이며 얼마나 옳은지는 결코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크리스티안 드로스텐은 〈예방에는 영광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모든 요인이 조합된 후기 현대 사회는 (미래의 더 나은 보상이 아니라) 현재 선호도를 강하게 발전시킨다."(513)


"이러한 상황은 근본적으로 어떤 원칙과 작동 기제를 위반하고 있는가? 바로 영웅 여정을 위반하고 있다. 영웅 여정은 영웅이 항상 자신의 결정적인 행동을 촉발하는 계기, 그것도 대부분 중대하고 명료하고 수긍할 만한 계기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묘사하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영웅은 결코 예방대책으로 모험을 떠나지 않는다.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어느 정도 예방적으로 도전을 극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모험이 아닐 것이다. 이미 예견된 예방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는 영웅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은 자신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생명을 위협하는 절박한 문제(종종 칼이나 총을 가진 악당으로 구현되는 고통스러운 절박함)만이 그를 다시 행동하게 강요한다. 말하자면 영웅은 문제해결을 예방적 변화가 아니라 최저점에서의 긴급한 변신이라고 이해한다. 진짜 영웅은 사건이 터지기 전에 행동하지 않는다. 주저하는 영웅만이 진정한 영웅이다."(514-5)


"이 책의 저자인 우리는 영웅 여정의 구상과 인류 역사를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깨달았다. 즉 우리가 인간을 언제나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서구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일리아스』를 한번 살펴보자. 『일리아스』의 주제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는 자신의 에세이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에서 힘이라고 말했다. 〈힘은 힘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사물로 만든다. 힘은 가차 없이 파괴하듯이 힘을 갖고 있거나 갖고 있다고 믿는 사람도 가차 없이 도취시킨다.〉 오늘날 사람들은 힘에 도취하여 무서운 속도로 자신의 생활 토대를 파괴하고 있다. 그 결과 풍경이 파괴되고, 더 심각한 문제는 복잡한 생태계에 끝없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결말을 오랫동안 감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철학자 볼프람 아일렌베르거가 말한 '영원의 비용Ewigkeitskosten'이다."(531)


"우리의 논지는 내러티브가 강력한 문화 상품이나 정치 프로그램 또는 무미건조한 팝송에 포장되어 오늘날 가장 강력한 변화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내러티브를 그 자체로는 거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감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우리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가지 조언을 한다면 그것은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안보 훈련에서 가장 자주 듣는 조언일 것이다. 위험이 임박했을 때 위험해지기 '전에' 행동하는 것이 현명하다. 말하자면 주인공이 되지 말고 이야기하는 원숭이로 남아 있는 것이 좋다.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라. 그리고 이야기를 확실한 해피엔딩으로 시작해보라. 여러분이 어느 지점에서 주인공이고 어느 지점에서 적대자인지 솔직하게 자문해보라. 유토피아를 만들고 낙원 상태를 상상해보라. 그리고 용기를 가져라. 지금까지 감히 꿈만 꾸었던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라."(5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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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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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대중운동의 매력


"거대한 변화에 달려드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에게 어떤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있다고 느낀다. 프랑스 혁명을 이루어낸 세대에는 인간의 이성이 전능하며 인간의 지적 능력이 무한하다는 과장된 의식이 있었다. 새로운 세계의 창조라는 혼돈 속으로 무모하게 뛰어든 레닌과 볼셰비키는 마르크스주의의 전능함을 맹신했다." "어떤 거대한 변화 임무에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사람들은 극렬한 불만을 느끼지만 극빈 상태는 아니어야 하며, 어떤 강력한 강령이나 절대적인 지도자 혹은 어떤 신기술을 얻을 때 압도적인 힘의 원천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네가 떠맡은 그 거대한 임무에 수반되는 어려움은 전혀 알지 못해야 한다. 이들에게 경험은 장애가 된다. 프랑스혁명을 시작한 사람들은 정치적 경험이 전무했다. 볼셰비키와 나치,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일어난 혁명들도 마찬가지다. 경험자들은 늦게 개입한다. 잉글랜드인들이 대중운동에 소심한 것도 어쩌면 앞선 정치적 경험 때문일 것이다."(23, 27-8)


"대중운동의 호소력과 실제적 조직의 호소력에는 근본적으로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실제적인 조직은 자기향상의 기회가 되며, 그 필요성은 주로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나온다. 반면에 대중운동은 특히나 부흥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는 단계에서는 소중한 자신을 뒷받침하고 발전시키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쓸모없는 자신을 몰아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는다. 대중운동이 추종자들을 끌어들이고 붙들어둘 수 있는 것은 자기발전 욕구를 충족시켜서가 아니라 자기부정 열망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장 깊숙한 열망은 어떤 숭고한 대의와 자신을 일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삶─갱생─을 사는 것이며, 혹은 이것에 실패하더라도 자부심, 자신감, 희망, 목적의식,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의식 등 새로운 본령을 획득할 기회를 좇는다." "좌절한 사람들에게 대중운동은 자기의 삶을 통째로 대체하는 무언가, 혹은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는, 그러나 자기 혼자 힘으로는 이끌어낼 수 없는 무언가가 된다."(29-30)


"사람들이 어떤 대중운동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강령이나 사업에 준비된 것이 아니라 어떤 효과적인 운동이라도 뛰어들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히틀러 이전 독일의 불안한 젊은이들은 흔히 동전 던지기로 공산당에 가입할 것이냐 나치에 가입할 것이냐를 정했다. 제정 러시아의 인구 과밀 지구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유대 집단은 혁명과 시온주의, 어느 쪽으로든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 가족 안에서 한 사람이 혁명파에 가담하면 또 한 사람은 시온파에 가담했다." "전향을 권유하는 우리 시대의 대중운동은 라이벌 집단의 가장 열광적인 추종자들을 잠재적 전향자로 주목하는 듯하다. 모든 대중운동이 같은 인간의 속성에서 추종자를 끌어내며 같은 심리에 호소하므로 ① 모든 대중운동이 경쟁을 벌이며, 한 운동이 세를 얻을 때 나머지 다른 운동들은 세를 잃는다. ② 모든 대중운동은 호환된다. 하나의 대중운동은 언제든 다른 대중운동으로 변형될 수 있다."(36-8)


2 잠재적 전향자


"가난한 사람이라고 전부 불만을 품는 것은 아니다. 도시 빈민가에 갇힌 채 자신의 쇠락을 뽐내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익숙한 구렁텅이에서 벗어난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서리친다. 건실한 사람들조차 가난이 길어지면 타성에 젖는다. 그들은 변치 않는 세계의 질서에 위압된다. 어떤 격변─침략이나 전염병 혹은 다른 어떤 공동체의 재앙─이나 일어나야 그 '부동의 질서'도 일시적일 뿐이라는 사실에 눈뜬다. 불만으로 인한 소란에 맥박이 뛰는 것은 대개 상대적으로 최근에 가난해진, '신빈곤층'이다. 좋았던 시절의 기억으로 피가 끓는다. 물려받은 것, 가진 것을 다 빼앗긴 그들은 일어나는 모든 대중운동에 반응한다. 17세기 잉글랜드에서 청교도 혁명에 성공을 안긴 것은 신빈곤층이었다." "오늘날(1951년) 서구 세계의 노동자들은 실직을 강등으로 느낀다. 그들은 부당한 세계 질서가 자기네를 박탈하고 상처 입혔다고 느끼며, 그렇기에 언제든 거대한 변혁의 외침에 귀 기울인다."(48-50)


"불만은 비참함을 견딜 만할 때, 상황이 개선되어 어떤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시점에 최고조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불평불만은 문제가 시정될 수 있을 것 같을 때 가장 신랄하다." "기세등등한 대중운동은 희망이 눈앞에 있음을 설교한다. 이는 지지자들에게 행동을 고무하기 위한 것으로, 이 '모퉁이 바로 뒤에 있는' 희망이 대중으로 하여금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기독교는 세계의 종말과 천국이 임박했음을 설교하며, 무함마드는 신도의 눈앞에 전리품을 흔들었고, 자코뱅당은 자유와 평등의 즉각 실현을 약속했으며, 초기 볼셰비키는 빵과 토지를 약속했고,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의 속박을 즉각 종식하기 위해 노력하고 행동할 것을 만인 앞에 약속했다. 이 운동이 세력을 얻으면 역점은 미래의 희망으로 바뀐다. '성공한' 대중운동은 현재의 보존에 몰두하며, 즉발적 행동보다는 복종과 인내를 치하하며 말한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51-4)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재능이 없는 한, 자유란 따분하고 번거로운 부담이다. 능력 없는 사람에게 선택의 자유는 있어 무엇하겠는가? 사람들이 대중운동에 가담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다시 말하자면, 열렬한 나치 젊은이의 말마따나 〈자유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다. 나치 평당원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모든 극악 범죄에 대해 무고하다고 선언한 것도 순전한 허위 주장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네가 명령 복종의 의무를 짊어진 것은 중상당하고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광신자들은 학대보다 자유를 더 두려워한다. 신흥운동의 지지자들은 교조와 명령을 엄격하게 고수하는 공기 속에 살며 숨쉴지라도 강한 자유 의식을 갖고 있다. 이 자유 의식은 용인할 수 없는 개인 실존에 대한 책임과 공포, 절망감에서 도피한 결과다. 이 도피를 그들은 구원과 해방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 변화가 엄격한 규율의 틀 속에서 성취한 것일지라도, 거대한 변화를 경험하는 것 또한 자유를 느끼게 해준다."(55-6)


"한 사회에서 대중운동의 기회가 무르익었는지 보여주는 척도로, 해소되지 못한 권태의 만연보다 신뢰할 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어떤 대중운동이 되었건 발생하기 전 단계에는 거의 예외 없이 권태가 만연한 분위기가 감돌며, 대중운동 발생 초기에는 권태로운 사람들이 수탈과 압제에 고통 받는 사람들보다 운동에 더 공감하고 더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곤 한다. 대중 봉기를 꾀하는 선동자에게는 사람들이 좀이 쑤실 정도로 지루해한다는 보고가 적어도 경제적 수탈이나 정치적 학대로 대중이 고통 받고 있다는 보고만큼이나 고무적인 신호다.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권태를 느끼는 것이다. 자신이 시시하고 의미 없는 존재라는 자각은 권태의 주된 원천이다." "자율적인 삶을 누리며 형편이 나쁘지 않지만 창조적 작업이나 유익할 활동을 할 능력 또는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 인생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기 위하여 어떤 무모하고 기상천외한 수단에 의지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83-4)


3 단결과 자기희생


"사람이 자기를 희생할 수 있으려면 개인의 정체성과 개성을 벗어던져야 한다. 그는 더 이상 조지나 한스, 이반 또는 다다오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개인에게서 독립성을 제거하는 일은 철저해야 한다. 개인은 아무리 사소한 행동 하나라도 일련의 의례를 통하여 집단이나 부족, 당 따위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의 기쁨과 슬픔, 자부심과 자신감은 자기 자신의 전망과 능력이 아닌 집단의 운과 역량에서 샘솟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개인은 절대로 혼자라고 느끼면 안 된다. 무인도에 홀로 떨어지더라도 여전히 집단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느껴야만 한다. 집단에게 버려진다는 것은 생명이 잘려나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확실히 존재의 원시적 단계이며, 가장 완벽한 표본은 원시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대중운동은 이 완벽한 원시적 상태에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며, 당대 대중운동의 반개인주의적 경향에서 우리가 원시시대로 역행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고 해도 망상이 아니다."(96-8)


"죽음과 죽임이 어떤 의례나 의식, 연극 공연이나 놀이의 일부일 때는 쉽게 느껴진다. 죽음 앞에서 위축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상의 장치 같은 것이 필요하다. 현실을 살아가는 불완전한 우리에게 이 세상이나 저세상에 자기 목숨과 바꿔도 될 것은 없다. 오직 자신을 무대 위의 (따라서 실제가 아닌 가상의) 배우로 여길 때 죽음은 공포와 최후라는 의미를 잃고 가상의 행위, 하나의 연극적 몸짓이 된다. 추종자들에게 죽음과 죽임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어떤 숭고한 장면, 엄숙한 혹은 유쾌한 연극 공연에 참여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대중운동의 지도자가 해야 할 주요 임무 중 하나다." "대중운동의 행렬과 행진, 의식, 전례 등의 행사는 의심할 바 없이 대중의 가슴에 어떤 공명을 일으킨다. 아무리 냉정한 사람이라도 대중이 운집한 장관에는 넋을 잃게 마련이다." "우리는 우리의 영웅적 행위로써 타인의 견해와 상상 속에서 불멸의 존재로 남기 위해 실제하고 유한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자 한다."(102-5)


"자신의 경험과 사고에서 스스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대개 순교를 좋게 여기지 않는다. 자가희생은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면밀한 탐구와 숙고의 결과물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실천적인 대중운동은 추종자들과 현실 세계 사이에 사실이 뚫고 들어오지 못할 망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위하여 대중운동은 궁극의 절대 진리가 강령 안에 포함돼 있으며 강령 이외에는 어떤 진리도 확실성도 없음을 주장한다." "의식과 이성의 근거에 의존하는 것은 이단이요 대역죄다. 맹신은 무수한 불신을 통해 검증된다." "보거나 들을 가치가 없는 사실에 '눈 감고 귀 막는' 능력이야말로 맹신자들이 지닌 불굴의 결단력과 충성심의 원천이다. 그들은 위험이 닥쳐도 겁내지 않고 장애에 기죽지 않으며 반박에 당황하지 않는다. 그런 것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힘은 베르그송이 지적했듯이 산을 옮기는 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산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119-20)


"강령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이해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굳게 믿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머리로 이해한 강령은 그 위력이 삭감되게 마련이다. 무언가를 이해하면, 그것은 마치 우리 안에서 시작된 것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자신을 포기하고 희생할 것을 요구받은 사람들은 자신 안에서 시작된 어떤 것에 대해서도 영구불변의 확신을 갖기가 힘들다. 무언가를 이해하게 되면 어김없이 그것의 효력과 확실성은 약해진다. 믿음이 두터운 자들은 절대적 진리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대중운동이 강령에 대한 설명을 붙이면서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한다면, 그 운도으이 활기찬 시기는 끝나고 안정을 중시하는 시기에 돌입했다는 뜻이다. 체제가 안정되려면 지식인들의 충성이 필요한데, 강령을 이해시키는 일은 대중의 자기희생을 촉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지식인들의 동조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이다."(121-2)


"광신자는 두말할 여지 없이 자신이 지지하는 대의가 영원히 그 하나뿐─만세반석─이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그의 자신감은 자신이 지지하는 대의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행위에서 나온다. 그가 어떤 대의를 신봉하는 것은 그것이 신성하며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자기가 열정적으로 매달릴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로 광신자는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매달려야 하는 까닭에 자신이 받아들이는 모든 대의가 전부 숭고한 대의가 되어버리곤 한다. 광신자는 그의 논리나 도덕 의식을 자극해봐야 그 대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신봉하는 숭고한 대의의 중요성과 정당함을 입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갈등 없이 갑자기 열광적으로 다른 대의로 갈아타기도 한다. 그에게 설득이란 없으며, 가능한 것은 오로지 전향 혹은 개종뿐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신봉하는 대의가 얼마나 숭고한 것이냐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느냐다."(127-8)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쁘기만 적보다는 장점이 많은 적을 증오하는 편이 쉽다. 경멸스러운 상대를 증오하기는 어렵다." "증오심 속에 숨어 있는 부러움은 우리가 증오하는 대상을 따라하는 경향에서 잘 나타난다. 따라서 모든 대중운동은 그 운동이 적으로 삼은 바로 그 악마의 형상을 따라가게 된다. 정점의 기독교는 적그리스도의 형상을 구체화시켰다. 자코뱅당은 자신들이 봉기를 일으켰던 대상인 전제군주의 모든 악덕을 스스로 행했다. 소련은 독점자본주의의 가장 순수하고 거대한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히틀러는 증오의 밑바닥에 숨어 있는 부러움을 알아차리고서 놀라운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는 국가사회당이 맹렬한 증오를 받을 만한 적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한 증오는 국가사회당의 신념이 우월하다는 증거가 될 것이기에, 〈국가사회당이 견지하는 태도의 가치, 신념에 대한 진지한 자세, 의지력을 잴 수 있는 최상의 잣대는 그가 적······으로부터 받는 적개심의 정도다.〉"(143-5)


"지도자가 무에서 운동을 끄집어내는 것은 아니다. 추종하고 복종하려는 열정이 있어야 하고, 현재의 상황에 대한 강렬한 불만이 있어야 비로소 운동과 지도자가 나타날 수 있다. 조건이 성숙하지 못했을 때는, 잠재적 지도자에게 아무리 재능이 있고 그가 주창하는 대의가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추종하는 무리가 생겨나지 않는다." "만반의 태세가 갖춰지고 나면 걸출한 지도자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한 요건이 된다. 그런 지도자 없이는 어떠한 진전도 있을 수 없다. 때가 무르익었다고 저절로 대중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의 흐름을 볼셰비키 혁명으로 몰아가게 만든 것은 레닌이었다. 그가 스위스나 1917년 러시아로 들어가는 길에 죽었더라면 다른 탁월한 볼셰비키들이 연정을 이끌었을 것이다. 그 결과는 부르주아들이 운영하는 자유주의 공화국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경우에는 징후가 더더욱 결정적이다. 즉, 그들 없이는 파시즘도 나치즘도 없었을 것이다."(164-6)


4 시작과 끝


"대중운동은 대개 지배 체제가 불신받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 불신은 권력자의 실책이나 학정의 자동적인 결과가 아니라 불만 있는 지식인들이 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다. 불만이 명료하게 표현되지 않거나 불만이 없을 때는 저절로 쓰러져 무너지지 않는 한 아무리 무능하고 타락한 지배 체제라도 권력을 유지한다." "대중의 눈에 광신적 극단주의자는 아무리 뛰어난 언변으로 사람을 사로잡아봤자 위험하고 음모적이며 현실을 모르는 사람일 뿐이다." "지식인은 사정이 다르다. 대중이 그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그의 말이 아무리 긴박한 사안이라 하더라도 곧장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권력은 그를 무시하든가 극단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그의 입을 막든가 한다. 이렇듯 지식인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기존 체제의 토대를 잠식해 들어가며 권좌에 있는 자들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믿음과 충성심을 무너뜨려 대중운동이 일어나기 위한 기반을 닦는다."(191-3)


"어떤 유형이 되었든 거의 모든 지식인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뿌리 깊은 갈망이 있는데, 이것이 지배 질서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결정한다. 그것은 인정받고자 하는 갈망, 사회적으로 보통 사람보다 높은, 두드러진 지위에 대한 갈망이다." "사회비판적인 지식인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일생에 한 번쯤은 권력자가 보내는 경의나 회유의 제스처에 넘어가 그들 편에 서는 순간이 있다. 어떤 단계에서는 대부분의 지식인이 시류에 기꺼이 영합하는 아첨꾼이 된다." "저항하는 지식인이 아무리 자신은 짓밟히고 상처 입은 자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믿어도 그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분노는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의 사적인 감정이다. 그의 연민은 대개 군림하는 권력을 향한 증오심에서 나온다. 그러다가도 약자를 버리고 강자 편에 설 때에는 온갖 고상한 이유가 다 떠오른다. 〈자신과 관계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일반 대중의 불행과 고통을 차마 견디지 못하는 인류애를 지닌 사람은 극히 예외적인 소수의 사람들뿐이다.〉"(194-6)


"진정한 지식인은 절대적 진리에 대한 신념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를 진리 자체만큼이나 소중히 여긴다. 그는 생각의 충돌과 주고받는 논쟁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지식인이 하나의 철학과 행동 강령을 창안했다면, 그것은 행동 방침과 신조라기보다는 빼어난 논리 능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는 허영심으로 인해 가혹한 언어를 구사하며 심지어는 독설을 쏟아붓기도 한다. 그는 대개 믿어달라고 호소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사고할 것을 호소한다. 하지만 열광하는 대중, 신념에 주린 대중은 그의 주장에 성서와 같은 확신을 부여할 것이며, 그것을 새로운 믿음의 근원으로 삼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빈정대는 지식인이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을 때, 〈선한 자들은 모든 신념을 잃었고, 악한 자들은 강렬한 열정으로 충만하다. 틀림없이 어떤 계시가 임박했다. 틀림없이 재림이 임박했다.〉 이제 광신자들은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204-5)


"대중이 갈망하는 자유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자기를 실현할 자유가 아니라 자율적인 삶이라는 견딜 수 없는 부담으로부터의 자유다. 그들이 원하는 자유는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공포스러운 부담〉으로부터의 자유, 무능한 자기를 실현하며 그 결과가 잘못되었을 경우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곤란한 부담으로부터의 자유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가 아니라 확신─맹목적인, 권위에 대한 확신─이다." "대중운동의 산파였던 지식인들이 거의 예외 없이 비극적 운명을 맞는 이유는 아무리 단결된 노력을 역설하고 찬미한들 본질적으로 그들이 개인주의자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운동이 굴러가기 시작하면 권력은 개인을 신뢰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 자들의 손으로 넘어가게 마련이다. 그런 자들이 득세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을 경시하는 태도로 인해서 얼마든지 무자비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런 태도가 대중의 주된 정서와 전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206-7)


"행동가는 대중운동을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인 분쟁과 광신자들의 무모함으로부터 지켜낸다. 그러나 행동가의 등장은 대개 대중운동의 역동적 단계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현재와의 전쟁이 끝난 것이다. 진정한 행동가의 목표는 세계 개혁이 아니라 소유다." "그는 주로 훈련과 강압에 의존한다. 그는 사람은 다 멍청이라는 말보다는 다 겁쟁이라는 말을 더 신뢰하며, 존 메이너드의 말을 빌리자면 새 질서를 사람들의 가슴이 아니라 목 위에 수립하려 든다." "그는 주로 힘의 설득력에 의지하더라도 새 체제 안에 신념이 주는 감동의 요소를 보존하며 격정적인 선전선동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의 명령은 경건한 어휘로 이루어지며, 그의 입술에서는 옛 신조와 선전 문구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강압의 철권이 전방위적으로 전개되고 기계적 훈련의 중요성이 강조되지만, 충성스런 분위기와 격정적인 선전선동은 강압을 설득처럼 받아들이게 만들며, 자발성과 유사한 습성을 정착시킨다."(2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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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의 신 - 역사적 개관 신의 역사
에티엔 질송 지음, 김진혁 옮김 / 도서출판100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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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 신과 그리스 철학


"'신'이라는 단어의 그리스적 의미에서 첫 번째로 놀랄 만한 사실은 그 단어의 기원이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사변하기 시작했을 때, 신들은 이미 있었습니다. 철학자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성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신학자 시인Theologian Poets이라 불렸던 사람들에게서 신들을 물려받았을 뿐입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한정하자면, '신'이라는 단어는 믿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대상에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의 신은 제우스, 헤라, 아폴론, 팔라스 아테나 등의 올림포스의 신처럼 우리가 사람이라고 부를 법한 것으로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은 또한 위대한 바다, 땅, 하늘 신과 같이 어떤 물리적 실재일 수도 있습니다." "『일리아스』에서는 유한한 생명 모두를 관할하는 위대한 자연적 운명들도 수많은 신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공포와 궤멸, 갈등 등이 있습니다. 죽음과 잠도 있는데, 잠은 죽음의 형제로서 신들과 인간들의 주인입니다."(34-6)


"이러한 것들이 지시하는 바의 참 본성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러한 신들의 이름은 모두 자기 자신의 의지를 지닌 살아 있는 능력 혹은 힘을 가리킵니다. 이 신적인 능력이나 힘은 인간의 삶 속에서 작동하며, 위에서 인간의 운명을 쥐고 흔듭니다." "이러한 신적 힘들의 첫 번째 특징은 생명입니다. 어떤 식으로 나타나든 간에 그리스의 신은 결코 생명이 없는 무언가가 아닙니다. 마치 인간이 살아있는 것처럼, 신은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삶은 어느 날 끝난다면, 그리스의 신은 절대 죽지 않는 것이 유일한 차이입니다. 그래서 신들의 다른 이름은 '불멸자'입니다. 이러한 죽지 않는 존재들의 두 번째 특징은 그들 모두가 세계보다는 인간과 관계를 더 맺는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특성에다 세 번째를 더해 봅시다. 신적인 힘은 자신이 질서 내에서는 최고 권위로 다스립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신들은 각자의 질서에서는 최고 권위입니다. 그래서 특정 지점에서는 어떤 신이 다른 신에게 복종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36-8)


"따라서 그리스 신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존재가 자신의 삶을 다스리는 존재로 인식하는 또 다른 살아 있는 존재가 바로 신입니다. 생명이 부여된 어떤 존재에게 일어난 일은 생명이 있는 또 다른 존재로만 설명될 수 있다는 점은 그리스인들에게는 논의할 필요도 없이 분명했습니다. 종교적 심성을 가진 그리스인은 신들의 힘이 압도적일 뿐만 아니라 자주 서로 갈등을 일으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인 자신은 신들이 서로 싸우는 수동적인 전쟁터라고 느꼈습니다. 핀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필멸자의 업적을 이루는 모든 수단이 신에게서 나옵니다. 신들 덕분에 인간은 현명하고 용감하며 유창합니다.〉" "모든 것이 인간들에게 자신의 덕목과 악덕, 감정과 열정과는 무관하게 찾아오는 세계, 이러한 것이 바로 그리스의 종교적 세계입니다. 인간이 당면하는 모든 것을 자신의 호불호를 따라 일어나게 하는 불멸의 존재, 이것이 바로 그리스의 신들입니다."(40-2)


"인간은 단지 무언가만이 아니라 누군가이기에, 그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은 단지 무언가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 신들은 이러한 절대적 확신을 표현해 주는 원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흙투성이 둑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인 스카만드로스는 강, 즉 사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발 빠른 아킬레우스의 의지에 과감히 맞서는 트로이의 강으로서 그것은 단지 하나의 사물일 수 없습니다. 신화는 진정한 철학으로 가는 도정의 첫 발자국이 아닙니다. 사실 신화는 전혀 철학이 아닙니다. 신화는 참 종교로 가는 도정의 첫 발자국입니다. 신화 그 자체는 종교적입니다. 그리스 철학은 그리스 신화에서 어떤 점진적 이성화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 철학이 세계를 사물들의 세계로 이해하려는 이성적인 시도라면, 그리스 신화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물들의 세계 속의 유일한 인격인 인간이 홀로 남겨지지 않겠다는 굳센 결의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51-2)


"만약 이것이 참이라면, 위대한 그리스 철학자들이 자신의 원리들을 자신의 신들과, 또는 자신의 신들을 자신의 원리들과 어떻게 동일시할지 몰라 헤매는 것을 보더라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그들은 둘 다 필요했습니다. 플라톤이 무언가가 참으로 존재 내지 실존한다고 했을 때, 그는 늘 그 본성이 필연적이며 또한 지성으로 알 수 있다는 의미로 말했습니다." "신에 관한 플라톤 고유의 생각을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가 감각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과 유사한 살아 있는 개별적 존재를 상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변적이고 우연적이며, 사라져 없어질 것으로 상상하지 말고, 지성으로 알 수 있고, 불변하며, 필연적이며, 영원한 것으로 머릿속에 그려야 합니다. 이것이 플라톤에게 신입니다. 요약하자면, 플라톤의 신은 이데아의 모든 근본적 속성이 부여된 살아 있는 개별자입니다. 이것이 플라톤의 이데아는 신god이라기보다는 신적divine이지만, 여전히 신god이 아닌 이유입니다."(52, 57)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자연신학의 역사에 새 시대를 여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지연되었던 철학의 제1원인과 신 개념의 결합이 그의 형이상학 속에서 마침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에서 원도자the prime mover는 또한 우주의 최고 신the supreme god이기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에서 정점에 있는 것은 이데아가 아니라 자립적이고 영원한 (신적인) 사유 활동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유하는 순수 활동pure Act은 영원히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지, 결코 우리를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최고 신은 우리의 세계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 신은 자신과 다른 세계를 모릅니다. 결과적으로 그 신은 세계 안에 있는 어떤 존재나 사물들을 보살피지도 못합니다." "신은 자신의 하늘에 있습니다. 세상을 돌보는 것은 인간의 일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명백히 이성적인 신학을 얻었지만, 그들의 종교는 잃었습니다."(62-4)


2 신과 그리스도교 철학


"그리스 철학자들은 철학적 가지可知 세계 내에서 신에게 어떤 자리를 줄지 궁리했습니다. 반면, 유대인들은 이미 철학 고유의 물음에 답을 제공한 신을 발견했습니다." "유대인의 신의 첫 특성은 유일성unicity이었습니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신은 주님이시다. 주님 한 분뿐이시다.〉 이보다 더 적은 단어나 더 단순한 방식으로 이보다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혁명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진술은 원래 본질상 종교적이었지만 중대한 철학적 혁명의 씨를 품고 있었습니다." "(제1원리에 대해 숙고한) 그리스 철학자들은 실재가 하나라고 생각했기에, 다수의 신들을 하나의 실재에 맞추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반면 유대인의 신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실재 자체의 본성이 무엇이든 간에, 실재의 종교적 원리가 실재의 철학적 원리와 필연적으로 일치한다는 점을 즉각 알았을 겁니다. 철학적 원리와 종교적 원리는 하나이기에, 둘은 같아야만 하고 세계에 관한 하나의 동일한 설명을 제공해야 합니다."(69-70)


"엄밀히 말하자면, 일자the One는 기술될 수 없기에 이름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일자를 표현하려는 모든 시도는 필연적으로 어떠한 판단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판단은 여러 단어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자의 단일성Unity을 다수성 같은 것으로 바꾸지 않고는, 즉 일자의 단일성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일자가 무엇인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자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합니다. 일자는 다른 수들로 구성된 것에 포함될 수 있는 하나의 수도 아니고, 다른 수들의 종합도 아닙니다. 일자는 모든 다수성이 거기로부터 나오는 자립적 단일성입니다. 다수성은 이 단일성에서 나오지만, 일자의 절대적 단순성simplicity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일자의 생산성으로부터 제1원리보다는 열등한 제2원리가 태어납니다. 하지만 일자와 같이 제2원리도 영원히 존속하며, 일자와 마찬가지로 뒤따라 나올 모든 것의 원인이 됩니다. 이것의 이름은 지성Intellect입니다."(77)


"지성이 알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영원히 지속하는 인지라는 점에서, 정의상 플로티노스에게 지성은 모든 이데아가 있는 장소입니다. 이데아들은 다수의 알 수 있는 것들의 단일성인 지성 안에 있습니다. 이데아들은 일자의 생산성에서 나온 지성의 생산성에 참여합니다. 요악하자면, 지성은 영원히 자기로부터 흘러나오는 개별적이고 구분된 모든 존재의 다수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거대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지성은 신이자 모든 다른 신의 아버지입니다." "다음 속성은 포착하기 더 어렵습니다. 뭔가가 있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때는 언제일까요? 이해 행위로 어떤 것이 다른 것과 구분된다는 것을 파악하자마자입니다. 달리 말하면, 실제로 아무것도 이해된 게 없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존재가 플로티노스 철학에서 제2원리인 지성 안에서, 지성에 의해서, 지성과 함께 처음 나타난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것들이 플로티노스식 우주에서 두 가지 최고 원인입니다."(78)


"플로티노스의 철학적 사유는 그리스도교와 완전히 이질적이었습니다. 그 세계는 본질에 따라 엄밀하게 운행이 결정된 자연들로 구성됩니다. 우리가 '그'a He라고 지칭하기가 어려운 플로티노스의 일자만 하더라도 그것a It의 방식에 따라 존재하고 작동합니다. 일자 내지 선은 전적으로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것은 그에게 의존함으로써 존재하지만, 제1원리인 자신은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기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기 안에 충만히 머무는 일자는 자기의 고유한 본성에 의해 엄격히 결정됩니다. 일자는 자기가 존재해야 하는 대로 있을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자기가 존재해야 할 바에 따라 활동합니다. 따라서 플로티노스의 우주는 일자에 의해 모든 것이 자연적이고 영원하고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이고, 이는 전형적으로 그리스적입니다. 모든 것이 영원히 일자에게서 일자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파장처럼 흘러나옵니다. 일자는 사유 위에, 존재 위에, 존재와 사고의 이중성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80-1)


"그러나 그리스도교 형이상학에서 신은 그 자체로 있습니다. 아무것도 그에게 더해질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에게서 빠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그가 아닌 이상 그의 존재에 관여할 수 없기에, '있는 나'는 영원히 자기의 완전성과 자기의 복을 충만하게 향유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이 아닌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인간은 그러한 절대적 실존이라는 영원한 활동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들이 존재 내지 실존한다는 것은 신이 존재 내지 실존하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이들은 어떤 열등한 종류의 신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전혀 신이 아닌 것으로 있습니다. 이러한 유한하고 우연적인 존재들이 있음을 설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있는 나He who is'로부터 실존을 자유롭게 부여받았다는 것입니다." "즉, 유한하고 우연한 존재자들은 '있는 나'에 대한 유한하고 부분적인 모방으로서 존재를 부여받습니다. 이 활동을 그리스도교 철학에서는 '창조'라고 부릅니다."(84-5)


"플로티노스의 경계는 일자와 일자로부터 난 것 사이를 나눕니다. 반면, 그리스도교는 신 및 신이 낳은 말씀과 신에 의해 창조된 모든 것을 나누는 경계를 그립니다. '있는 나'와 우리 사이에는 무한한 형이상학적 골이 놓여 있습니다. 본유적으로 필연성이 결핍된 우리의 실존과 달리 신의 실존은 완전한 자기 충족이기에, 그 골은 신과 우리의 실존을 떼어 놓습니다. 신적 의지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것도 이러한 골을 넘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성 아우구스티누스 이래로 오늘날까지 인간의 이성이 초월적인 신에 도달하려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업에 당면한 이유입니다. 신의 순수 실존 활동과 신에게서 얻는 우리의 실존을 철저히 다릅니다. 인간도 자기로부터는 있을 수 없고, 그가 사는 세계도 자기로부터 있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인간이 어떻게 오직 이성으로만 '있는 나'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자연신학의 근본 문제입니다."(85-6)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왜 'Qui est'있는자 (혹은 '있는 나')가 신에게 주어질 수 있는 모든 이름 중 가장 적절한 이름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이름이 '존재함'to be, 즉 ipsum esse존재함 자체를 나타내기 때문이라 답했습니다. 그런데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모든 형이상학적 질문 중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 우리는 이에 답하면서, 서로 다르지만 긴밀하게 연결된 두 단어의 의미를 조심스럽게 구분해야만 합니다. 첫 단어는 ens 혹은 존재자being이고, 다른 단어는 esse 혹은 '존재함'to be입니다. '존재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변은 '존재자란 존재 내지 실존하는 것이다'입니다. 예를 들어, 신과 관련해서도 우리가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올바른 답변은 '신이라는 존재자는 영원하고 경계가 없는 실체의 망망대해다'일 겁니다. 그러나 esse 혹은 '존재함'은 이와는 다른 것으로, 실재의 형이상학적 구조에 더 깊숙이 숨어 있기에 파악하기가 훨씬 어렵습니다."(95)


"명사로서 '존재자'는 어떤 실체를 지칭합니다. '존재함' 혹은 esse는 활동을 지칭하기에 동사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본질essence의 단계를 넘어 실존existence이라는 더 깊은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체substance로 있는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본질과 실존 모두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먼저 어떤 존재자를 생각하고, 그다음 그 존재자의 본질을 정의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판단을 통해 그 존재자의 실존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실재의 형이상학적 순서는 인간의 지식의 순서와 정확히 반대입니다. 여기서는 개별 실존 활동이 먼저입니다. 이는 개별 실존 활동이므로 특정한 본질로 한정하는 활동이며, 동시에 특정한 실체가 있게 하는 활동입니다. 더 깊은 의미로 볼 때, '존재함'은 어떤 특정한 존재자가 실제로 존재 내지 실존하게 하는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활동입니다. 성 토마스 본인의 표현을 쓰자면, dictur esse ipse actus essentiae, 즉 '존재함'이란 바로 본질이 있게 하는 활동입니다."(95-6)


"'존재함'이 가장 탁월한 활동, 즉 모든 활동 중의 활동인 세계에서, 실존은 존재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든 것이 흘러나오는 근원적 에너지입니다. 그러한 실존 세계는 최고로 실존하는 신 외에 다른 어떤 원인으로도 설명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빛 아래서 이뤄진 형이상학의 결정적인 진보는 모든 사물의 존재 원인인 제1존재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인 중의 위대한 이들은 이미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자기를 사유하는 '사유'를 최고 존재로 상정했을 때, 그는 분명히 그것을 순수 '활동'이자 무한한 힘이 충만한 에너지로 이해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신은 순수 사유 활동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섭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들지 않은 세계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사유에 관한 사유였기에 자신이 만들 수 없었던 세계를 알지 못합니다. 또한 그의 지식에는 '있는 나'라는 자기 인식도 없었습니다."(97-8)


"그리스의 정신은 자연 개념, 혹은 본질 개념을 궁극적 설명으로 간주하고 왜 거기서 자연스럽게 멈췄을까요? 우리 인간의 경험에서 실존은 언제나 개별 본질의 실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개별적이고 감각 가능하게 실존하는 사물들만 직접적으로 압니다." "이러한 사실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토록 명확히 그어 놓았던 '존재'being와 '본질'what is의 근원적 구분으로 가장 잘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 사물과 다른 사물이 다르듯이 본질과 실존이 다르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실존은 어떤 사물이 아니라, 어떤 사물이 있게 하고 그 사물이게끔 하는 활동입니다. 이러한 구분은 단지 우리 인간의 경험에서 한 사물의 본질이 '있음'인 경우는 없으며 그 본질이 '어떤 특정 사물임'이 아닌 경우도 없다는 사실을 표현합니다. 경험에 주어진 사물은 어떤 것도 그 정의가 실존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물의 본질은 실존이 아니고, 실존은 반드시 본질과 구분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102-3)


"주변 어디에나 '있음'이 있고 모든 본성이 다른 본성들을 설명할 수 있지만 거기에 공통적인 실존을 설명하지는 못하는 세계 그 너머에는, '있음'을 자기 본질로 하는 어떤 원인자가 반드시 있습니다. 본질이 순수 실존 '활동'인 존재자, 즉 본질이 이러저러하지 않고 오로지 '있음'인 존재자를 내세우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신을 우주의 최고 원인으로 내세우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장 깊숙이 숨어 있는 신인 '있는 나'는 가장 분명히 드러난 신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물은 자기 안에 자기 실존을 설명할 길이 없음을 형이상학자에게 계시함으로써, 본질과 실존이 일치하는 궁극의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마침내 토마스 아퀴나스와 아우구스티누스가 궁극적으로 만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신의 실존의 형이상학이 실재의 외피에 불과한 본질이라는 껍질을 뚫고 나가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모든 결과에 원인이 있음을 보듯이 순수 실존 '활동'을 볼 수 있었습니다."(104)


3 신과 근대철학


"중세에는 모든 철학자가 사실상 수사나 사제, 혹은 최소한 일반 성직자였습니다. 근대철학은 성직자가 아니라 일반인에 의해, 신의 초자연적 도성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적 도시들을 목표로 창조되었습니다." "데카르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의 지혜를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한 개인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방편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철학자로서 그는 전혀 다른 지혜를 찾고 있었습니다. 즉, 자연적 이성만으로 얻을 수 있으며 실제적인 현세적 모적을 지향하는, 제1원인들에 의거한 진리 인식입니다. 데카르트는 신학을 억누르면서도 사실 매우 조심스럽게 신학을 보존했습니다. 데카르트가 철학과 신학을 공식적으로 구분하였지만,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수 세기 전에 이미 그러한 구분을 했습니다. 데카르트의 새로운 점은 철학적 지혜와 신학적 지혜를 실제로, 실질적으로 나눴다는 데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둘을 통합하고자 구분했다면, 데카르트는 둘을 떼어놓고자 나눴습니다."(107-10)


"데카르트의 철학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신학에 통제되지 않았기에, 그가 둘의 결론이 궁극적으로 일치하리라고 가정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논리적인 측면에서, 데카르트가 그런 태도를 취해야만 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스 철학자의 경우 순수하게 이성적인 방식으로 자연신학의 문제에 접근해야 했을 때 오직 그리스 신화의 종교적 신들만 마주하고서 문제에 접근했습니다. 그리스 종교의 신들은 자신의 이름, 지위, 역할이 무엇인건, 그 누구도 자신이 하나의 유일한 최고 '존재' 혹은 세계의 창조자, 제1원리, 모든 사물의 궁극적 목표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데카르트는 그리스도교의 신과 마주하지 않은 채 똑같은 철학적 문제에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근대의 자연신학의 모든 문제는 한 마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의 역설적 본성을 깨닫는 것이 근대 자연신학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첫 조건입니다."(111-2)


"모두가 데카르트식 과학의 세계가 무엇인지 압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기계론적 우주입니다." "데카르트의 신의 궁극적인 철학적 기능은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데카르트식 신은 데카르트식 세계의 창조자가 되는 데 요구되는 속성을 모두 소유해야만 합니다. 공간에서 무제한 확장되는 세계인 만큼 창조자는 무한해야 합니다. 그 세계는 순전히 기계적이고, 목적인final causes이 전혀 없습니다. 이러한 세계 속에 참되고 선한 것이 참되고 선한 까닭은 신이 자기 의지의 자유로운 작정으로 세계를 그렇게 창조하였기 때문입니다." "요약하자면, 데카르트식 신의 본질은 자신의 철학적 기능에 의해 대부분 결정됩니다. 그 기능이란 데카르트가 그런 기계론적 과학의 세계를 창조하고 보존하는 일입니다. '창조자'가 현저히 그리스도교의 신이라는 점은 사실이지만, 자신의 본질 자체가 창조자인 신은 그리스도교의 신이 전혀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신의 본질은 창조가 아니라 존재입니다."(119-21)


"데카르트식 자연철학은 철학적 이해 가능성의 제1원리인 신으로부터 종교적 예배의 대상인 신을 다시 분리한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생각한 신은 철학적 원리의 조건으로 환원된 그리스도교의 신이기에 생존할 가망이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종교적 신앙과 합리적 사고의 불행한 혼종입니다. 그러한 신의 가장 놀라운 특성은 그의 창조 기능이 자신의 본질을 완전하게 흡수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후로 붙게 된 이름이 그의 진정한 이름이 됩니다. 이제 신의 이름은 '있는 나'가 아닙니다. 그는 〈자연을 만든 이〉The Author of Nature입니다. 틀림없이 그리스도교의 신은 언제나 '자연을 만든 이'이기도 했지만, 또한 언제나 그보다 무한히 더 큰 신이었습니다. 반면 데카르트 이후 점진적으로 신은 '자연을 만든 이' 외에는 다른 무엇도 아닌 것이 되도록 운명지어졌습니다." "데카르트가 도달한 원리들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형이상학적 결론들은 곧이어 18세기 그의 추종자들의 최종적인 결론들이 되었습니다."(122-3)


"데카르트의 후계자 중 가장 위대한 형이상학자는 스피노자입니다. 데카르트가 생각하고 말했던 바로 그 신에 관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철학자로서 말한 첫 사람이 스피노자이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의 신은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 혹은 실체입니다. 그 신은 〈본질이 실존을 포함〉하기에 자기 원인입니다. 여기서 본질의 우선성이 강렬히 강조되어 있어서, 아무도 그 형이상학적 중요성을 놓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신, 혹은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는 〈실존의 무한한 힘이 자신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존재 내지 실존합니다. 하지만 〈단지 자기 본성nature의 필연성에 의해 실존하고 행동하는〉 신은 자연nature과 다를 바 없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신은 자연 자체입니다. Deus sive Natura신은 곧 자연. 신은 절대적 본질이며 그 본유적 필연성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만듭니다. … 종교적 무신론자로서 스피노자는 자신의 철학적 신에 진정으로 취해 있었습니다."(132-5)


"이신론자들Deists 소위 계시된 신의 우화적인 특징을 놓고서는 스피노자와 완전히 일치하였습니다. 반면, 그들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이신론자들에게는 신이 있었습니다. 그 신이 자연적으로 알려지는 신이라는 사실에 방점이 있지만, 그들이 철학자들처럼 신을 생각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종교적 예배의 대상으로서, 이신론자의 신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살아 있는 신의 유령이었을 뿐입니다. 순수한 철학적 사변의 대상으로서, 그 신은 스피노자가 최종적으로 내렸던 사형 선고를 받은 신화에 불과했습니다. 퐁트넬과 볼테르, 루소, 그리고 이들과 함께한 많은 이가 '있는 나'와 더불어 실존의 문제가 가진 참 의미를 망각했습니다. 이로써 목적인의 문제에 관한 가장 얄팍한 해석에 자연스럽게 의존했습니다. 그리고 신은 퐁트넬과 볼테르의 '시계 제작공', 혹은 이 세계라는 거대 기계를 다루는 최고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처럼, 이신론자들의 신은 철학적 신화입니다."(137, 140)


4 신과 현대사상


"오늘날의 신 문제는 칸트의 비판철학과 콩트의 실증주의로 사태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신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감성의 선험적 형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신은 인과 관계라는 범주에 따라 어떤 것과 연관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칸트는 결론짓기를, 신은 이성의 순수 이념, 즉 우리 인식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일반 원리일 수 있으나 인지 대상은 아닙니다. 혹은 우리는 실천 이성의 필요에 따라 요청된 신의 실존을 상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신의 실존은 상정되는 것이기에 여전히 인식된 것은 아닙니다. 콩트는 자신만의 훨씬 더 급진적인 방식을 취했습니다. 즉, 과학에는 원인 개념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사태가 '왜' 일어나는가를 묻지 않고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묻습니다. 형이상학의 원인 개념을 실증주의의 관계 개념으로 대체하면, 곧바로 여러분은 사물들이 왜 있으며 사물들이 왜 이런 모습으로 있는가에 대해 경이로워할 모든 권리를 상실하게 됩니다."(145-6)


"파스칼에게 신이 실존한다는 것은 이해를 넘어서는 일이었고, 신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를 넘어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그저 신이 실존한다는 데 내기를 걸 겁니다." "인간 마음은 본성상 신의 실존을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데, 반대로 〈지성적 개념을 인격화하려는 마음 깊숙이에 자리 잡은 본능을 피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자연스러운 이성의 판단 결과라고 하든지, 데카르트처럼 본유관념이라 하든지, 말브랑슈처럼 지성적 직관이라 하든지, 칸트처럼 인간 이성의 통합 능력에서 나온 이념이라 하든지, 토마스 헨리 헉슬리처럼 인간의 상상력이 빚은 환영이라 하든지 간에, 신이라는 공통의 관념은 거의 보편적인 사실로 있습니다. 이 관념의 사변적 가치speulative value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실존은 부정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유일한 문제는 이 관념의 진리치truth value를 결정하는 것뿐입니다."(151-2)


"그리스도교의 신을 잃어버린 세계는 아직 그리스도교의 신을 찾지 못한 세계를 닮았을 뿐입니다. 탈레스와 플라톤의 세계처럼 우리의 현대 세계도 〈신들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맹목적인 '진화', 명석한 '계통 발생설', 인자한 '진보', 그리고 굳이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한 다른 신들입니다. 이 유사 과학적 혹은 사회학적 이념의 신들이 서로 싸울 때 죽는 것은 인간입니다." "우리의 동시대인 중 많은 사람에게 발견되는 곤란함은 그들이 불가지론자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도된 신학자라는 데 있습니다. 진정한 불가지론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자기 자신 외에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불가지론자들에게 신이 없는 것처럼, 이러한 것에는 신이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불가지론자보다 유사 불가지론자가 훨씬 흔합니다. 이들은 완전히 모자란 철학적 소양에 과학적 지식과 사회적 관대함을 결합하였기에, 자신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자연신학을 위험한 신화들로 대체했습니다."(170-1)


"참 형이상학의 마지막 단어는 ens가 아니라 esse입니다. 즉 존재자being가 아니라 존재함is입니다. 참 형이상학의 궁극적 노력은 어떤 활동an act을 통해 활동an Act을 상정하는 것, 즉 본질 자체가 존재함이기에 인간의 이해를 넘는 최고의 실존 '활동'을 판단하는 활동입니다. 어떤 사람의 형이상학이 막바지에 이르는 곳에서 그의 종교가 시작됩니다." "과학의 이해 가능한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많은 사람이 형이상학과 종교에 대한 미각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최고 원인에 대한 관조에 몰두한 다른 소수의 사람은 형이상학과 종교가 궁극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지만, 그 방법과 장소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철학에서 종교를 분리하거나, 철학을 위해 종교를 버립니다. 또는 파스칼처럼 종교를 위해 철학을 버립니다. 우리는 진리를 지키고 오롯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자의 신인 그가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신인 '있는 나'임을 깨닫는 사람만이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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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 문화 논리 우리 시대의 고전 26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임경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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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목하는 것은 변화 그 자체이며, 내용은 단지 수많은 이미지들에 지나지 않는다. 모더니즘에는 '자연'이나 '존재', 혹은 오래된 것이나 더 오래된 것, 심지어 태고의 것을 위한 자리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문화는 여전히 그러한 자연과 관계를 맺으며, 그 자연이라는 '지시대상체referent'를 변형시킬 수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화 과정이 완성되고, 자연이 영원히 사라지는 시점에 나타난다. 이전 시대에 비해 포스트모더니즘은 전적으로 인간의 세계이지만, 이곳에서는 '문화'가 진정한 '제2의 자연'이 된다. 실제로 문화가 지니는 위상의 변화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추적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 중 하나다. 문화는 그 영역(즉 상품 영역)이 엄청나게 팽창했고, 실재the real를 끊임없이 그리고 역사적으로 독창적인 방식으로 길들여왔으며, 벤야민이 리얼리티에 대한 〈미학화〉라고 칭했던 과정 속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일구어냈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문화 속에서 '문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8-9)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 새로운 개념의 근본적인 이데올로기적 과제는 새로운 형식의 관행과 사회적·정신적 습관 들을 최근 자본주의의 변화, 즉 새로운 전 지구적 노동분업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형식의 경제적 생산 및 조직과 연관시키는 작업이어야만 한다." "문화와 경제의 상호 관계는 일방통행로가 아닌 지속적인 상호작용과 피드백의 회로로 상정된다. (베버의 관점에서는) 새롭고 내면 지향적이며 보다 금욕적인 종교적 가치가 점차 〈새로운 인간〉을 생산해냈으며 그 인간이 당시에 부상하던 '근대' 노동과정의 지연된 만족 구조 속에서 번성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던'은 아주 독특한 사회경제적 세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포스트모던적 인간을 생산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우리가 이 독특한 사회경제적 세계의 구조와 객관적 특징과 필요조건 들을 적당히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현재 상황을 구성하는 틀이 되며,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세계에 대한 하나의 반응으로 이해될 수 있다."(18)


1장 문화: 후기자본주의 문화 논리


"빅토리아 시대와 그 이후의 부르주아지들에게 모더니즘의 형식과 도덕적 본질은 추잡하고 조화롭지 못하며 음란하고 수치스러운 것일 뿐만 아니라 비도덕적이고 사회 전복적인 것으로, 한마디로 표현하면 '반사회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피카소와 조이스가 더 이상 추잡하다고 여겨지지 않을뿐더러, 전반적으로 그들은 오히려 '리얼리즘적'이라고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것이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모더니즘 운동의 정전화 작업 및 학문적 제도화의 결과라는 건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아마도 포스트모더니즘의 발흥에 대한 가장 그럴싸한 설명일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공격적 성격에서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제는 (그것이) 그 누구에게도 수치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만족감을 통해 수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 제도화되어 서구 사회의 공식적 문화 혹은 공공 문화와 한통속이 되어버렸다."(41)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 「절규」는 소외, 아노미anomie, 고독, 사회적 파편화, 고립 같은 위대한 모더니즘의 주제를 표현하는 정전적인 작품으로, 사실상 불안의 시대라고 명명되었던 시대의 상징적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 작품은 이런 종류의 정동을 체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해석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본격 모더니즘 시대를 지배했으나 이제는 실천적인 이유나 이론적인 이유로 인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에서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표현 미학이 해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표현이라는 바로 그 개념은 사실 주체 내부의 분열과 더불어, 안과 밖의 형이상학 전체뿐만 아니라, 단자monad화된 개인의 내면에 서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그것의 '정서'가 카타르시스로서 외부로 투사되고 외화되는 순간의 형이상학을 전제하는데, 그 정서는 몸짓이나 절규로서, 즉 내적 감정에 대한 절망적 소통과 외적 극화를 통해 형상화된다."(54-5)


"그러나 메릴린 먼로나 에디 세즈윅 같은 위대한 워홀의 인물들이나, 저물어가는 1960년대의 악명 높았던 자기 파괴와 소진의 사례들, 그리고 마약과 정신분열이라는 당대의 지배적 경험은 프로이트 시대의 히스테리나 신경증과는 거의 아무런 공통점도 없으며, 또한 급진적 고립과 고독, 아노미와 사적인 반항, 그리고 반 고흐식 광기와도 연관성을 갖지 못한다. 그러한 것들은 본격 모더니즘 시대의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문화 병리의 역학에서 이러한 급진적 변화는 주체의 소외가 주체의 파편화에 의해 대체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용어들은 어쩔 수 없이 현대 이론에서 가장 유행하고 있는 주제 하나를 상기시킨다. 바로 주체의 '죽음'이다. 이는 자율적인 부르주아 단자 내지는 자아나 개인의 종언에 대한 선언인 동시에, 이전의 중심화된 주체와 정신이 '탈중심화'되었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탈중심화는 새로운 도덕적 이상일 수도 있고 경험적 설명일 수도 있다."(59-60)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부르주아적 자아 혹은 단자가 끝장났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자아의 정신병리학도 함께 사라졌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정동의 퇴조라 칭했던 것이다. 예컨대 그것은 독창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문체의 종언이며, (기계 복제의 부상으로) 개별 화가의 독특한 붓질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다. 표현과 감정이나 정서의 차원에서 보자면, 현대 사회에서 중심화된 주체라는 오래된 아노미로부터의 해방은 그저 불안으로부터의 해방만을 의미하지 않고, 그 밖의 다른 모든 감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자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산물들이 정서를 완전히 결여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리오타르를 따라 〈강렬함〉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가장 정확해 보이는 이러한 감정들은 자유롭게 유영하는 몰개성적인 것이며, 특별한 종류의 희열euphoria에 의해 지배된다."(61)


"개인 주체의 실종과 그것의 형식적 결과로 나타난 개인적 문체의 점진적 소멸은 오늘날 거의 보편적인 관행이 된 혼성모방pastiche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을 발생시켰다. 어쨌든 이 개념은 보다 일반적인 개념인 패러디parody와는 명확하게 구별된다." "한때 패러디라는 것이 살았다. 그런데 혼성모방이라는 낯설고 새로운 놈이 나타나 그의 자리를 야금야금 빼앗아버렸다. 패러디와 마찬가지로 혼성모방은 특이하고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문체에 대한 모방이다. 그것은 언어적인 가면을 쓰고 죽은 언어로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중립적인 흉내 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패러디처럼 이면에 숨겨진 동기를 가진 것도 아니고, 풍자적 충동을 가진 것도 아니며, 웃음조차도 결여된 단순한 흉내 내기인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잠시 빌려온 비정상적인 말과 더불어, 건강한 언어적 규범성이 여전히 존재하리라는 확신도 없다. 그런 까닭에 혼성모방은 공허한 패러디이며, 동태눈을 한 동상에 불과하다."(62-4)


"바로 이런 상황들에서 건축사가들에 의해 '역사주의'로 명명된 어떤 것이 탄생하게 된다. 여기서 역사주의란 과거의 모든 건축 양식들을 무작위로 조립하는 것, 과거 양식들에 대한 무작위적인 인유allusion의 유희로서, 일반적으로는 앙리 르페브르가 〈신neo〉이라는 말이 점차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현상이라고 지칭했던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혼성모방의 이런 편재성이 특정한 종류의 유머와 양립할 수 없는 것도 아니며, 열정이 완전히 결여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중독성과 양립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단순 이미지로 변형된 세계를 향한, 그리고 의사-사건과 (상황주의자들의 용어를 쓴다면) 〈스펙터클〉을 향한, 역사적으로 유례 없는 소비자의 욕망과 그 궤를 같이 한다. 그것은 바로 플라톤의 용어인 〈시뮬라크럼simulacrum〉, 즉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 동일한 복제본을 향한 욕망이다. 기 드보르의 말로 표현하자면, 그러한 사회에서는 〈이미지가 상품 사물화의 최종 형식이 된다〉."(65-6)


# 인유引喩 : 비유의 형식을 취한 인용


"'지시 대상체'로서의 과거는 끝내 모두 소멸하고 오로지 텍스트만 남게 된다. 그러하기에 문화 생산은 이제 정신적 공간으로 쫓겨나는데, 이때 정신적 공간이란 오래된 단자화된 주체가 아닌 어떤 퇴락한 집단의 '객관적 정신'의 공간이다. 그것은 추정적 실제 세계를, 한때는 그 자체로 현재였던 과거 역사의 재구성물을 더 이상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한다. 오히려 플라톤의 동굴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꽉 막힌 동굴 벽에 투사된 과거의 정신적 이미지만을 추적해야 한다. 여기에 혹여 약간의 리얼리즘이 남아 있다면, 이는 동굴 안에 갇혀 있음을 깨닫는 순간 찾아오는 충격으로부터 파생되는 '리얼리즘'일 것이며, 또한 우리가 대문자 역사History를 우리 자신이 만든 대중적 이미지와 시뮬라크럼을 통해서 추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은 이 새롭고 유례없는 역사적 상황을 조금씩 인지함으로써 느끼는 충격으로부터 나오는 '리얼리즘'일 것이다. 역사는 이제 영원히 우리가 미칠 수 없는 곳에 위치하게 된다."(79)


2장 이데올로기: 포스트모더니즘 이론들


"미학 논쟁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되었던 대부분의 정치적 입장들은 사실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발전시키기 위한 도덕적 입장이었다. 다시 말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타락한 것이냐 아니면 문화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건전하고 긍정적인 혁신의 한 방식이냐 하는 문제를 도덕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현상을 진정으로 역사적이고 변증법적으로 분석하려면,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가 존재하고 투쟁하고 있는 시간적 현재와 역사적 현재의 문제라면, 우리는 절대적인 도덕적 심판이라는 곤궁한 사치를 누릴 여유가 없다. 변증법은 손쉽게 한쪽 편의 손을 들어준다는 의미에서의 〈선과 악을 넘어서〉며, 그것의 역사적 비전은 냉담하고 비인간적인 정신에서 비롯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 문화 '속에서' 살고 있기에, 그것을 손쉽게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손쉽게 찬양하는 것 역시 자기만족적인 타락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143-4)


"새로운 형식의 부상에는 예전의 민속folk 문화나 진정한 의미의 '민중popular' 문화와는 구별되는 상업 문화의 특징들이 점차 보편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특징들은 다른 예술의 영역에서 보다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급문화와 소위 대중문화 사이의 고전적 구별이 소멸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더니즘이 자신만의 특수성을 유지하고 더불어 중간계급과 하층계급의 상업 문화라는 주변 환경에 대항하여 진정한 경험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기능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그 구별 말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최근의 예술가들은 더 이상 예전 플로베르가 시작했던 방식으로 대중문화나 민중 문화의 질료와 단편 혹은 모티프를 '인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중문화의 내용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 스며들게 만들어 이전의 많은 비판적 범주나 평가 범주 들이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게 만든다."(145-6)


3장 비디오: 무의식 없는 초현실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이 만개한 오늘의 상황에서 (예술 작품이나 걸작과 같은 말에서 사용되는) '작품work'이라는 고전적인 언어는 모든 곳에서 거의 대부분 '텍스트' 혹은 텍스트들과 텍스트성이라는 상당히 다른 언어로 대체되었는데, 이는 유기적이고 기념비적인 형식의 성취라는 의미가 전략적으로 배제된 언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일상생활, 몸, 정치적 재현 등) 모든 것이 텍스트가 될 수 있는 반면, 예전에 '작품'이라고 칭해졌던 대상은 다양한 종류의 텍스트들의 거대한 집결체나 체계로 재해석되며, 이 체계에서는 다양한 상호텍스트들과 파편의 연속 아니면 그저 (이후 텍스트 생산 혹은 텍스트화라 불리게 될) 순수 과정을 통하여 각각의 텍스트들이 서로 포개진다. 따라서 자율적 예술 작품은 예전의 자율적 주체나 자아와 더불어 사라졌거나 증발한 것처럼 보인다. '실험적 비디오텍스트'를 통해, 분석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모든 포스트모더니즘을 특징짓는 새롭고 특이한 문제들과 마주하게 된다."(172-3)


"예전의 모더니즘적이고 기념비적인 형식들, 예컨대 세계의 책the Book of the World이나 건축 모더니즘의 '마의 산들magic mountains', 바이로이트에서 공연되는 신비한 오페라 연작, 모든 회화적 가능성의 중심지로서의 박물관 등과 같은 총체적 앙상블이 더 이상 분석과 해석을 위한 기본적 조직화의 틀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서 정전이나 '위대한' 책은 고사하고 걸작도 존재하지 않는다면(심지어 양서良書라는 개념마저도 문제시된다면), 그리하여 우리가 마주하는 것이 고작 '텍스트'라고 한다면, 즉 역사적 시간의 조각난 파편 더미 속으로 곧장 사라져버릴 하루살이와도 같은 일회적 작품들이라고 한다면, 흩어져가는 파편들 중 하나를 잡아 이를 중심으로 분석과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모순적인 일이 되고 만다." "따라서 단 한 편의 (실험적) '비디오 작품' 자체만을 따로 떼어내어 바라보는 것은 정말 무의미하다. 그런 의미에서 비디오 걸작이나 비디오 정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173-4)


"비디오텍스트 자체의 거의 모든 순간이 이런 요소들(각종 문화적 기호·로고들) 간의 끊임없고 명백히 무작위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다. 이는 다양한 요소의 지속적인 흐름 혹은 '총체적 흐름'을 이해해야 하는 문제로, 이 다양한 요소는 각각 하나의 구분되는 서사 유형이나 특정 서사 과정에 대한 속기 부호 같은 것이다." "그 어떤 비디오의 기호들도 의미 작용의 주체로서 우선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나의 기호가 다른 기호를 위한 해석체로 기능하는 사태 자체가 단지 임시적인 것을 넘어서며, 아무런 사전 통고 없이 자리 교환이 일어날 수 있다. 이 끊임없는 순환 운동의 힘 속에서, 두 개의 기호─주어와 술어라는 논리적 관계가 주제topic와 논평comment 혹은 주지tenor와 매체의 관계vehicle로 재편된─는 서로의 자리를 차지하고 혼란을 야기하며 거의 항구적으로 자리를 교환한다. 이는 벤야민적인 의미에서의 〈정신분산〉 같은 것으로, 벤야민은 이를 새롭고 역사적으로 독창적인 힘으로 격상시켰다."(187-90)


"여기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 결과란 다름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해석이라는 난처한 문제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제인 미학적 가치와도 관련된 것으로, 이는 우리 논의의 출발점에서부터 잠정적으로 논의 대상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만약 해석을 주체적인 측면에서 어떤 근본적인 주제나 의미를 풀어내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분명 포스트모더니즘 텍스트는 의미에 저항하는 구조 혹은 기호의 흐름으로서 정의될 수 있다. 이것이 가지는 근본적인 내적 논리는 그런 의미에서의 주체의 발생을 배제하는 것이며, 따라서 전통적인 해석을 향한 유혹을 체계적으로 단락短絡시키려 시도한다. 이 주장으로부터 예기치 못하게 미학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평가 기준이 부상하게 된다. 즉 비디오텍스트가 제아무리 훌륭하고 위대하다 할지라도, 만일 그 텍스트가 해석 가능하다면, 또 혹여 그 텍스트가 그런 주제화의 장소와 영역을 느슨하게라도 열어놓는다면, 그 텍스트는 나쁘거나 흠결 있는 것이 된다. "(96-7)


4장 건축: 세계체제의 공간적 등가물


"모더니즘에는 낙체 법칙이 작용하며, 따라서 (프로이트의 에로스처럼) 끌어당기는 힘을 통해 요소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결합시키고자 했다면, 이와는 근본적으로 기조를 달리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은 해결책으로서 일종의 반중력성을 통해 건축의 각 요소와 성분 들을 공중에 붕 뜨게 만든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이러한 종류의 내적 차이화가 포스트모던 공간의 근본적 징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겉보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와 무관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원심력 운동보다는 긍정적인 관계의 원리를 암시하는 듯하며, 또한 유기체가 이물질에 반응하면서 일종의 격리 공간이나 완충지대로 끌어들여 그것을 둘러싸고 중화시키는 방식 같은 것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물질은 대개 그저 과거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외래 물질 혹은 외계 물질로 취급받는다. 그러하기에 나는 건축가들의 용어를 빌려, 이 두 번째 절차를 '포장wrapping'이라 부르고자 한다."(214)


# 낙체 법칙 : 지표면 위의 같은 높이에서 자유 낙하하는 모든 물체는 질량과 무관하게 동시에 떨어진다는 법칙


"포장이란 헤겔이 〈토대ground〉라고 불렀던 보다 전통적인 개념의 와해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토대는 '콘텍스트'의 형식으로 인문학적 사유에 들어오는데,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올바르지 못한 '외부적인 것' 혹은 '외연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두 개의 근본적으로 다른 일단의 사유와 절차라는 이중 잣대를 암시하는 듯 보이며, 더욱이 그것은 언제나 좀더 거창하면서도 훨씬 더 용인될 수 없는 사회적 총체성 개념의 도입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포장은 조금 더 하찮은 (따라서 즉각적으로 처분 가능한) 것일 뿐만 아니라, 보다 중요하게는 상호텍스트성과는 달리 (하나의 요소를 다른 하나에 기능적으로 종속시키는, 종종 '인과율'이라 칭해지는) '우선순위' 내지는 심지어 '위계질서'라는 본질적인 전제조건을 유지하면서도 이따금씩 그것을 전도시킬 수도 있다. 포장되는 것이 포장지로 사용될 수도 있고, 결국에는 포장지가 포장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214-5)


5장 문장: 글 읽기와 노동분업화


"누보로망은 우리가 평소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언어 기능의 예상치 못했던 붕괴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즉 말과 사물 사이의 특권화된 관계가 말의 일반성과 대상의 감각적 특수성 사이에 벌어진 간극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가령, 언어의 1차적 기능에서 명사는 이름으로 기능하도록 요청된다. 고유한 이름은 분명히 특정 단어를 하나의 고유 대상과 연결시키려는 시도 속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보로망과 더불어, 거의 동시적으로 우리는 레비-스트로스로부터도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이는 〈고유한 이름〉이라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명칭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고유한 이름 역시도 (개, 경주마, 사람, 고양이 등과 같은) 종적 대상에 따라 변화해왔던 더 큰 언어 체계의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당히 확고해 보였던 이런 언어적 가능성, 즉 말이 한낱 일반명사로서는 가질 수 없었던 특정 수준의 구체성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270-1)


"헤겔의 『정신현상학』 역시 언어 자체의 능력으로 보편과 특수, 일반과 구체 사이의 근본적인 철학적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의심을 다루고 있다. 헤겔의 변증법 개념은 다소 전前 언어적(혹은 적어도 시대착오적이거나 전前 구조주의적)인 것이며, 특히 그의 변증법은 논리적 혹은 개념적 이율배반과 모순이 마치 언어에 선행하고 또한 언어적 속성보다 더 '근본적인' 것인 양 동원하고 있다는 주장이 종종 제기된다. 그러한 판단은 의식(감각적 확신, 지각, 힘과 오성)을 다루고 있는 『정신현상학』의 서론의 의의를 무시하는 것으로, 이 서론의 의도는 처음부터 언어와의 거래를 청산하면서 보편과 특수를 설정함에 있어 언어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변증법적 필연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에 구조주의가 언어에 대해 그 어떤 존재론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다고 느낄지라도, 중요한 것은 이런 전통도 그 출발점이 그런 언어의 실패에 대한 숙고라는 점을 알아내는 것이다."(272)


"누보로망에서 글 읽기는 상당한 전문화를 거쳤으며, 산업혁명 초기의 옛날 수공업 활동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노동분업화의 원칙에 따라 다양한 구별되는 과정들로 분해되었다. 이런 내적 분화diffentiation와 예전의 통합된 생산과정 분야들에 적합해진 자율성은 테일러화, 즉 계획과 분석을 통해 다양한 생산 관계를 독립적 단위로 분리하는 과정을 통해 두번째 질적 도약을 하게 된다. 글 읽기라는 오래됐지만 딱히 전통적이라 할 수 없는 활동은 유사한 역사적 발전에 영향받기 쉬운 일종의 수공업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니클라스 루만은 이러한 분화에 대해 가장 발전되고 전문화된 이론적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분화는 원래 체계가 가지는 정체성을 다수의 내적 체계들과 그와 연관된 환경들로 쪼갬으로써, 원래 체계의 특화된 판본들을 다양하게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체계 자체를 재생산한다. 이것은 단순히 조금 더 작은 덩어리들로의 해체가 아니라, 오히려 내적 분리를 통한 성장이다.〉"(274-5)


6장 공간: 유토피아의 종언 이후 유토피아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어떤 체계적인 설명도 그것이 성공을 거두는 순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역사성의 소멸과 같은 이 새로운 문화적 지배종의 반反정치적 특성을 강조하고 구별해낼수록, 그만큼 더 우리는 스스로 궁지에 몰리게 되고 그러한 문화의 재정치화는 선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총체화된 설명은 언제나 다양한 형식의 대항문화를 위한 공간을 포함하게 마련이다. 여기에는 포스트모더니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잔여적인 혹은 새로이 부상하는 문화 언어를 위한 공간도 존재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지' 문화적 지배종에 불과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문화적 '헤게모니'의 차원에서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적 장에서의 거대하고 단일한 문화적 동질성을 암시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제압하고 포섭해야 하는 다른 지향적이고 이질적인 세력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시사할 뿐이다."(309-10)


"그런데 유토피아라는 말은 어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과 어떤 시대 구분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구체적인 문제를 상정한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관점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대니얼 벨이나 세이무어 마틴 립셋 같은) 1950년대 보수주의 이데올로그들이 (〈후기산업사회〉와 더불어) 발전시켜 공표했던 최종적인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그 궤를 같이 하는데, 이 주장은 1960년대에는 극적이게도 '오류로 판명'되었다가, 1970~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현실화'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주의를 의미했으며, 그것의 '종언'은 유토피아의 종언을 동반했다." "벤투리의 〈아이러니〉부터 아킬레 보니토-올리바의 〈탈이데올로기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의 거의 모든 중요한 포스트모더니즘 선언문은 그와 유사한 발전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신념'의 퇴색과 더불어, 본격 모더니즘과 '정치'(즉 마르크스주의)라는 두 절대자의 쇠퇴를 의미하게 되었다."(311)


"포스트모더니즘 회화가 최근의 신新구상화를 통해 회화의 예전 (모더니즘의) 유토피아적 소명을 포기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점은 처음부터 분명하다. 포스틈던 회화는 더 이상 (위대한 모더니즘의 초미학적 핵심을 포함하여) 자신을 넘어서는 그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임무를 상실한 채, 그리고 일종의 목적telos으로서의 회화적 형식의 역사로부터 해방됨으로써, 회화는 이제 자유롭게 〈모든 과거 언어의 가역성을 옹호하는 노마드적 태도〉를 따를 수 있다." "이 주장 속에 내포되어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조건의 다른 특징은 당연히 우리에게 친숙한 '주제의 죽음', 개성의 종말, 새로운 익명성 속에서의 주체성의 약화이다. 그런데 이는 청교도적 의미에서의 소멸이나 억압은 아니다. 아마도 그것은 정신분열적 흐름flux이나 노마드적 해방으로 찬양되어왔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정신분열증이 없는 정신분열적 예술이고, 선언문이나 전위성을 상실한 '초현실주의'이다."(334-6)


7장 이론: 포스트모던 이론적 담론에서 내재성과 유명론


"독자적인 개인으로서 내가 지닌 '특수한' 상황이라는 핵심적 요소는 언제나 타인들에게는 내가 처해 있는 '일반적' 범주로 여겨진다." "이것은 사실상 개인의 내재성이 특정한 초월성과 긴장 관계에 있다는 의미이며, 이 초월성은 외관상 외부적이며 집단적인 이름표와 정체성이라는 형식을 띤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이론적 형식의 '부정'은, 무엇보다도 초월적 차원이 경험적 소여가 아니며 진정한 존재론적 혹은 개념적 지위도 갖지 않기 때문에, 그런 [초월적] 차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누구도 그러한 집단을 본 적도 직접 경험한 적도 없는 반면에, 그들에게 붙여진 ~주의란 고작해야 너무나 낡은 전형이나 아주 불분명한 일반화의 사고와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즉 사회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문학사에서 '모더니즘' 같은 개념은 개별 텍스트에 대한 매우 상이하고 질적으로 차별적인 독서 경험을 표현하는 조악한 대체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356-7)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사상과 문화는 심각하게 '유명론적nominalist'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이전의 어떤 것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그러하다. 그러나 시대정신이 어떤 식으로건 통제한다고 하더라도 내재성과 초월성 사이의 모순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오히려 너무나 편재해 있어서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후기자본주의의 엄청난 체계화와 획일화의 힘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이제 텍스트성은 다른 학문 분과의 연구 대상을 재구성하고, 골칫거리인 '객관성' 개념을 유예시키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 연구 대상을 취급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정치권력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하나의 '텍스트'가 되었다. 일상생활도 산책이나 쇼핑을 통해 활성화되고 해독되어야 하는 텍스트가 되었다. 소비 상품도 상상 가능한 여러 다른 '체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텍스트 체계로서 탈신비화되었다. 결국에는 몸 자체가 심층의 충동과 감각기관 들과 더불어 여타의 텍스트처럼 완전히 읽힐 수 있게 되었다."(357-8)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회사상을 예견하고 있었던 레비-스트로스는 대문자 사회Society와 같은 허구적인 총체적 실체를 설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한 총체적 실체하에서는 가족, 계급, 일상생활, 시각적인 것, 내러티브 등 각종 유형의 보다 지엽적이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유기적이고 위계적인 방식으로 정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다른 종류의 허구적인 (혹은 초월적인) 실체를 창안해냈기 때문인데, 이를 통해 그는 친족 관계, 마을 구성, 시각 형식 등 여러 독립적인 '텍스트들'을 어느 정도 '동일한' 것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그 허구적인 실체가 바로 '상동성homology'의 방법이다. 다양한 지엽적이고 구체적인 '텍스트들'이 서로 뚜렷이 구별된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런 모든 텍스트에 작동하고 있는 추상적 '구조'로부터 분리될 수만 있다면, 각각의 구체적인 내적 역동성에 따라 각각의 텍스트들을 상동적인 것으로 읽어낼 수 있게 된다."(359-60)


"원리적으로 보면 구조 '이론'은 상동성을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하면서, 존재론적으로 선행하는 개념의 설정을 피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다면 친족 구조는 최소한 원칙적으로는 마을의 공간적 구성보다 더 근본적이거나 인과적으로 우선하는 것일 수 없다. 그러나 다양한 하위 체계들 간의 무관계성이나 비위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외부 범주가 요구되는데, 이는 바로 '구조' 그 자체이다. 내 생각에 '구조주의'의 영향력(그리고 그것이 열어놓은 새로운 분석 방법의 엄청난 풍요로움)은 구조 개념이라는 기능적 핑계거리를 만든 것보다는, 상동적인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했다는 데에 있다. 사실 구조는 구조주의의 철학적 전제였으며 또한 기능적 허구(혹은 이데올로기)였다. … 즉 상동성은 지나치게 애매한 종류의 일반적 공식을 위한 핑계였으며, 전적으로 다른 규모와 속성들을 지닌 실체들 사이에 '동일성'을 주장하는 것은 어떤 깨달음도 주지 못했다."(360)


"푸코처럼 '총체적 체제'를 만들어내는 이론가들에게는 언제나 저항이 체제 내에 포섭되기 마련이다. 즉 푸코가 말한 바와 같이 어떤 체제가 총체화하려는 경향을 갖는다면, 그 체제 내에는 〈혁명적인〉 충동은 말할 것도 없고 온갖 국지적인 저항들이 포섭될 뿐만 아니라, 사실상 그 체제의 내재적 역동성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코는 여전히 체제에 저항하는 일종의 국지적인 게릴라전을 실천하고 지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푸코가 '욕망'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시장의 '유혹'을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딜레마에 대해 가장 극적이고 '편집증적인 비판'을 표한 사람은 보드리야르인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반역과 혁명 그리고 심지어 부정적 비판이라는 의식적 이데올로기는 단순히 체제에 의해 〈포섭〉되지 않고, 오히려 체제의 내적 전략에 필수적인 기능적 일부가 된다. 이 중 1980년대 미국에서 살아남은 것은 소비와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이다."(386-7)


8장 경제: 포스트모더니즘과 시장


"담론 분석의 개념적 틀은 오늘 비록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데올로기 분석이라는 말을 굳이 사용하지 않고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편리함을 제공해주지만, 그것은 프루동주의자들의 공상만큼이나 만족스럽지 못하다. /개념/의 차원을 자유롭게 풀어주고선 그것을 '담론'이라고 부르면, 이 차원은 잠재적으로 리얼리티와 무관한 상태에서 그 자체로 부유하면서 자신만의 하위 학문 분과를 만들고 그에 대한 전문가를 양성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시장/을 있는 그대로 하나의 이데올로기소ideologeme라 부르고, 우리가 모든 이데올로기에 대해 전제해야만 하는 것을 그에 대해서도 전제하고 싶다. 즉 불운하게도 우리는 개념뿐만 아니라 리얼리티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해야만 한다. 시장 담론은 단지 레토릭에 불과한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제대로 하려면 우리는 형이상학, 심리학, 광고, 문화, 재현과 리비도적 장치만큼이나 실제 시장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490)


# 언어학에서는 빗금(/)과 괄호(《》)를 사용하여 주어진 말을 '단어'나 '관념'으로 표시한다.


9장 영화: 현재에 대한 향수


"사실 역사성은 과거에 대한 재현도, 미래에 대한 재현도 아니다(비록 역사성의 다양한 형식이 그런 재현을 '사용'하지만 말이다). 역사성은 우선적으로 역사로서의 현재에 대한 인식으로 정의된다. 즉 그것은 현재와의 관계로서, 이는 어떤 식으로든 현재를 낯설게 하고 우리에게 직접성으로부터의 거리를 허락하는데, 그 거리가 결국 역사적 관점이라 규정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 특정 사회와 생산양식 내에서 우리가 역사성을 상상하는 방식, 바로 이런 작업의 역사성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물화 과정으로,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매몰되어 있는 (아직 '현재'로 구별되지 않는) 지금 여기로부터 뒤로 물러나 그것을 일종의 사물처럼, 즉 단지 '현재'일 뿐만 아니라 1980년대 내지는 1950년대라고 시대를 명시하고 부를 수 있는 현재로서 파악한다는 것을 말해둘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사물화는 이를테면 실천praxis의 한 형식으로 완화되고 재생된다."(524-5)


10장 결론: 이차 가공


"모더니즘의 '고전들'은 '텍스트성의 선구자가 될 수 없을지 몰라도 (다시 쓰기를 통해) 분명 포스트모던화되거나 '텍스트'로 변형될 수는 있다." "레몽 루셀, 거트루드 스타인, 마르셀 뒤샹 같은 선구자들은 어색할지언정 항상 모더니즘의 정전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들은 어떤 경우에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의 동일성을 드러내는 범례이자 목격자가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약간의 수정을 가함으로써, 즉 의자를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약간의 도착적인 숨결을 덧붙임으로써, 가장 고전적인 본격 모더니즘의 미학적 가치를 불편하고 거리감 있는 (하지만 우리와는 좀더 가까운!) 어떤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대립 내에 또 다른 대립, 즉 미학적인 부정의 부정을 구성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더니즘 예술은 이미 반反헤게모니적이고 소수자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모더니즘에 대항하여 자신들만의 보다 심화된 소수자적 태도로 사적인 반항을 무대화한다."(558)


"다양한 모더니즘은 새로움, 혁신, 오래된 형식의 변형, 치료법적인 성상 파괴, 그리고 새롭고 (미학적이며) 경이로운 기술 공정에 대한 그것들 특유의 형식적 고집을 통해 근대화의 가치와 경향 들을 복제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종종 근대화에 대한 격렬한 반작용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만약 근대화가 산업의 진보, 합리화, 보다 효율적인 작업 공정에 따른 생산과 경영의 재조직화, 전기, 조립라인, 의회 민주주의, 그리고 값싼 신문과 관련이 있다면, 우리는 최소한 예술적 모더니즘의 한 갈래는 반反근대적이며, 오늘날 가장 넓은 의미에서 기술의 발전이라고 파악될 수 있는 근대화에 대항하여 때로는 요란하고 때로는 숨죽인 항의의 한 형태로 등장한다고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다양한 모더니즘 이상으로 다양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서로 몹시 다르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은 공유한다. 바로 시장 자체에 대한 노골적인 찬양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대해 공명하며 긍정하는 것이다."(562)


"덧붙이자면 포스트모던으로부터 상실된 것은 또한 '모더니티' 자체이며, 그런 의미에서 모더니티라는 단어는 모더니즘이나 근대화와는 구별되는 특수한 어떤 것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 사실 여기에서 우리의 오랜 친구인 토대와 상부구조가 운명적으로 다시 나타나는 듯하다. 만일 근대화가 토대에 발생한 무언가라면, 그리고 모더니즘이 그러한 양가적 발전에 대한 반작용으로 상부구조가 취한 형식이라면, 아마도 모더니티는 그들의 관계로부터 일관성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시도의 특징을 설명해준다. 그렇다면 그런 경우에 모더니티는 '근대'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느꼈던 방식을 설명해줄 것이다." "이러한 근대적 감정은 이제 우리 자신이 어느 정도 새롭다는 확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확신, 그리고 모든 것이 가능하며 그 어떤 것도 다시는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확신 속에 있는 듯하다. 우리는 어떤 것도 예전과 같지 않길 바라며, '새롭게 하길make it new' 바란다."(571-2)


"일단은 모더니즘 시대의 대문자 새로움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은 오직 그 시대의 뒤엉켜 있고 불균등하며 전환기적인 성격, 다시 말해서 옛것이 이제 막 태어난 새것과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결론을 내려보자. 아폴리네르의 파리에는 중세의 더러워진 기념비와 르네상스 시대의 비좁은 공동주택과 더불어, 자동차와 비행기와 전화와 전기뿐만 아니라 의류와 문화에서의 최신 유행이 공존하고 있었다. 후자를 새롭고 근대적인 것으로 알고 경험하는 이유는 오직 오래되고 전통적인 것 또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이행에 관해 이야기하는 한 가지 방식은, 근대화가 결국 어떻게 승리했고 옛것을 완벽하게 지워버렸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자연은 전통적인 시골과 전통적인 농업과 함께 폐기되었다." "이제 모든 것이 새롭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새로움이라는 범주는 이제 자신의 의미를 상실하고 그 자체로 모더니즘의 유물이 되었다."(573-4)


"우리가 형이상학적으로 일종의 국지적 정치라 부를 수 있는 시의적절한 개혁이나 일상의 투쟁으로 눈을 낮출 경우, 이는 핵심 쟁점을 포스트모던 정치학에 위치시키는 일이다. 예전의 정치는 국지적인 투쟁과 전 지구적인 투쟁의 조화를 추구했다. 즉 국지적인 투쟁이 전체적인 투쟁 자체를 대표하고, 그에 따라 변형된 전체적인 투쟁이 지금-여기에 현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는 이러한 두 층위가 조화를 이루어야만 작동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편으로는 각 층위가 구체성을 벗어나 손쉽게 국가를 위한 혹은 국가를 둘러싼 관료화되고 추상화된 투쟁으로 분리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근접한 쟁점들의 무한한 연속체 속으로 밀려 들어가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이런 '나쁜 무한성bad infinity'이 나타나며, 여기에서는 이것이 유일한 정치 형식으로 남아 니체적인 사회진화론 같은 무언가와 더불어 형이상학적 영구혁명이라는 의도된 행복감을 부여받는다."(604)


"내가 보기에 그러한 행복감은 보상의 구성체이며, 이런 상황에서는 당분간 진정한 (혹은 '총체적인') 정치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아울러 정치의 부재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전 지구적 차원인데, 이는 정확하게는 경제 자체의 차원 혹은 체제의 차원이다. 즉 국지적인 수준에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사기업과 이윤 추구의 차원이다. 또한 나는 전 지구적 차원의 가시성visibility의 약화 같은 징후와, 총체성 개념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저항, 그리고 포스트모던적 유명론의 인식론적 칼날에 대해 바짝 경계하며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정치적으로 생산적이면서도 그 자체로 진정한 정치의 소박한 형식이 될 것이라 믿는다. 특히 유명론의 인식론적 칼날은 경제적 체제와 사회적 총체성 같은 명백한 추상들을 잘라버리고, 결국에는 '구체자concrete'에 대한 예기를 '단순 특수자mere particular'로 대체하여, (생산양식 자체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일반자general'를 가려버리기 때문이다."(604-5)


"소집단과 차이의 이데올로기는 철학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독재를 향해 제대로 된 한 방을 날리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이데올로기의 진짜 공격 목표가 다소 다른 것일 수도 있다. (토크빌이라면 여전히 '독재'라고 규정지었을 법한) 그것은 바로 합의consensus다." "계급은 몇 되지 않는다. 이들은 생산양식의 점진적 변화 속에서 등장한다. 심지어 계급이 부상할 때조차도, 그것은 언제나 본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그것이 존재한다고 확신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면에 소집단은 심리적 정체성이라는 만족감을 제공해주는 듯하다. 이제는 이미지가 되어버린 소집단은 자신들의 피비린내 나는 과거와 박해와 불가촉천민의 기억을 상실하고, 현재에는 소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 그들이 미디어와 맺는 관계를 특징짓는다. 말하자면 정치적 의미에서건 기호학적인 의미에서건, 미디어는 완전히 그들의 의회이자 그들을 '재현/대표'하는 공간이다."(621, 632)


"합의에 대한 정치적 공포는 한때 '총체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오해받았으나, 이제는 단순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일정한 자부심을 갖게 된 소집단들이 타 집단에 불과한 사람들에게 명령받는 것을 정당하게 거부하는 정도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의 사회 현실 속의 모든 것이 특정 집단 구성원을 표시하는 이름표이며, 특정 무리의 사람들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주목할 만한 예외가 있는데, 미디어와 시장이 그것이다. 여러 제도 중에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미디어와 시장만이 어느 정도 보편적인 것이 되었으며, 그로 인해 다른 방식으로 독특하게 특권적인 것이 되었다." "따라서 그 소집단이라는 새로운 집단적 인물과 재현은 정의상 더는 주체가 될 수 없다. 물론 이것은 부르주아나 사회주의 혁명의 역사에 대한 비전이나 (리오타르가 설명했던) 〈주인서사〉를 문제시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주인서사는 '역사의 주체'를 상정하지 않고는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6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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