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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물·동맹 -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과 테크노사이언스
브루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엮음 / 이음 / 2010년 1월
평점 :
책머리에| 행위네트워크 이론: 불확실하고 변화하는 수상한 사물에 주목하라 (홍성욱)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은 우리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래프, 설계도, 표본, 표준, 기관, 병균과 같은 '비인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형성되는 네트워크에 주목한다. 네트워크의 형성이 '번역(translation)'이라고 불리는 과정이다." "그렇지만 이 과정은 거의 항상 불분명하고 쉽지 않다. 네트워크의 형성을 특징짓는 여러 단계 중에 비인간을 '길들이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우리가 과학기술이라 부르는 것이다. 과학기술, 혹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의 용어로 테크노사이언스(Technoscience)는 비인간을 우리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바꾸어주는 인간의 활동이다. 더 많은 행위자들을 포함하고 더 오래 지속되는 네트워크를 건설한 자가 그만큼의 권력을 갖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과학기술은 권력을 생성하는 데, 따라서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다."(7-8)
프롤로그
제1장 7가지 테제로 이해하는 ANT(홍성욱)
# 7가지 테제
1. ANT는 경계넘기를 꾀한다 : ANT는 사회(주관적·성찰적)/자연(객관적·사실적)의 구분은 물론, 이러한 구분에서 파생되는 가치/사실, 주관성/객관성과 같은 경계도 거부한다.
2. ANT는 비인간(nonhuman)에 적극적 역할을 부여한다 : 비인간은 인간과 마찬가지 행위자(actor)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행위를 바꾸는 것처럼, 비인간도 우리 인간의 행위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의 행위능력(agency)을 가지고 있다.
3. ANT의 행위자는 곧 네트워크(network)이다 : 나는 나를 만드는 숱한 비인간 행위자들과 연결되어 있다. 나의 행위능력이란 나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숱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 '관계적 효과'로 볼 수 있다.
4. 네트워크 건설 과정이 번역(translation)이며, 번역을 이해하는 것이 ANT의 핵심이다 : 행위자들의 네트워크는 역동적이고, 소멸되기 쉬우며, 이종적이다. 네트워크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자신의 특성을 재정의한다. 따라서 번역, 즉 네트워크의 건설은 결과가 아니라 끝없는 과정이며,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성공적인 번역 과정은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5. 네트워크를 잘 기술(description)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이론이다 : ANT는 이론(Theory)이라 불린다. 그렇지만 ANT 이론에는 잘 짜여진 체계가 없다. ANT는 성공했거나 실패한 네트워크 사례에 대한 역사적·인류학적 연구를 중시하는데, 실제로 ANT는 사례에 대한 경험적 연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6. ANT는 권력(power)의 기원과 효과에 대해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 인간은 다양한 비인간을 어떻게 조직하고 통제하는가에 따라서 더 큰 권력을 가질 수 있다.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이해하면 그것을 어떻게 재분배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된다.
7. ANT의 '사물의 정치학'은 민주주의를 위해 열려 있다 : 이 세상이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잡종적인 네트워크로 만들어져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이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의 상호작용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그러한 실천 속에서 대안 네트워크의 가능성이 찾아진다.
제1부 ANT 해부하기
제2장 ANT에 대한 노트: 질서 짓기, 전략, 이질성에 대하여(존 로)
"왜 우리는 행위자나 기관 조직 뒤에 존재하는 네트워크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텔레비전은 비교적 단순한 하나의 물체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것이 고장나면 사람들은 비로소 텔레비전이 전자부품과 인간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네트워크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건강한 사람에게는 자신 내부의 다양한 신진대사가 잘 인식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픈 사람, 혹은 의사들에게 신체는 인간적·의학적·약학적 과정들이 어우러진 복잡한 네트워크이다." "동어반복처럼 들리겠지만, 어떤 행위자가 단일 개체처럼 보이고 네트워크처럼 보이지 않는 까닭은 단순화에 있다. 모든 현상은 이종적인 네트워크의 산물이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세분화된 네트워크를 직접 대하지는 않는다." "ANT 이론가들은 이러한 불안정하고 가변적인 단순화를 결절(puntualization)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규칙화는 사회를 이루는 네트워크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이다."(47-8)
"결절은 과정이지 단번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ANT에서 사회 구조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사회 구조는 건물의 뼈대처럼 계속 굳건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 과정 속에서 되풀이되고 재생산되는 갈등의 장에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ANT는 일반적 의미의 다원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ANT는 힘이나 질서의 중심이 여러 개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ANT는 권력이 관계적이고 분배적 맥락에서 생성되는 것이지, 완성된 것이 아님을 주장한다. 고전 사회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질서와 권력은 다툼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ANT에서는 질서를 향한 갈등에 대한 분석이 매우 중요하다. ANT의 목표는 규칙성, 사회적 조화, 질서와 저항의 과정들에 대해 연구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도구, 행위자, 기관, 조직 등과 같이 질서를 생성하는 번역의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다. 즉 번역은 하나(행위자)가 다른 하나(네트워크)를 대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동사이다."(48-9)
제3장 번역의 사회학의 몇 가지 요소들: 가리비와 생브리외 만의 어부들 길들이기(미셸 칼롱)
"세 명의 연구원이 구성한 질문과 그들이 제공한 기록을 보면 가리비, 생브리외 만의 어부 그리고 과학자 동료라는 다른 세 행위자들이 이야기에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연구원의 논문에서 그들이 전개한 주장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만약 가리비가 살아남기를 원한다면(이런 충동을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설명하든지 상관없이), 만약 과학자 동료들이 이 주제에 관한 지식을 향상시키고자 한다면(그들의 동기가 무엇이든지 간에), 만약 어부들이 그들의 장기적 경제 이익을 보존하고 싶어한다면(그들의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렇다면 그들은 ①'어떻게 가리비가 부착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알아야만 하고, ②이 질문을 둘러싼 그들의 동맹이 그들 각각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들의 전체 계획은 가리비의 부착이라는 질문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 행위자들에게 선택은 분명하다. 목표를 바꾸든지, 또는 유생이 부착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결과를 얻어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든지."(69-71)
"번역의 개념은 치환과 변형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문제제기 단계에서의 치환은 어부들에게 개인의 단기적 이해를 쫓는 대신 연구원의 연구를 따르기 위해 그들의 우선적인 문제와 계획의 초점을 바꿀 것을 권유했다. 관심끌기 단계에서 치환은 해저로 떨어지거나 해류에 떠밀리는 유생(어린 가리비)이 그물에 걸릴 때 이루어졌다. 상호 양보를 통해 동의가 얻어지는 등록하기 단계 동안의 치환은 유생을 더 효율적으로 포획하기 위해 새로운 위치로 옮기고, 유생 또한 연구원을 유생들의 영역으로 유인하는 일이었다. 동원하기 단계 동안의 필수적인 치환은 유생을 수집기에 부착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결국, 최종 단계의 치환은 불일치의 치환으로, 어부는 방벽에 잠입하고 연구원을 따르기를 거절하면서 가리비 보호 지역을 황폐화시켰다." "일련의 예측할 수 없는 치환에 힘입어, 이 모든 과정은 모든 행위자들을 세 연구원과 그들의 개발 계획을 지나쳐가도록 이끌어 여러 가지 변태와 변형의 결과를 낳게 한 번역이었다."(92)
"번역하는 것은 또한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과 원하는 것, 왜 그들이 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그들이 서로 어떻게 연합하는지를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대변인으로 세우는 것이다. 세 연구원은 가리비, 어부 그리고 과학자 공동체를 대신하여 이야기한다. 처음에 이 세 가지 우주는 분리되어 있었고, 서로 의사소통할 어떤 방법도 갖고 있지 못했다. 마지막에는 확실성의 담론이 그들을 통합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을 의미가 명료한 방식으로 서로 관계 맺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다양한 종류의 치환과 변형, 협상, 그리고 여기에 수반된 조정이 없었다면 이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번역의 레퍼토리는 갖가지 사회적·자연적 실체들을 같이 끊임없이 혼합하는 복잡한 과정의 대칭적이고 관용적인 묘사를 제공한다. 그것은 또한, 소수가 그들이 동원한 사회적·자연적 세계들의 수많은 조용한 행위자들을 대변하고 대표할 권리를 어떻게 얻는지에 대한 설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93-4)
제4장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에 관하여: 약간의 해명, 그리고 문제를 더 복잡하기 만들기 (브루노 라투르)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은 사회적 법칙이나 자연적 법칙과 같은 보편 법칙으로부터 출발하여 국지적 우연성을 제거하거나 보호해야 할 기묘한 특수성으로 파악하는 대신, 환원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으며 연결되지 않은 국지성에서 출발하는데, 이러한 국지성은 가끔 많은 비용을 치르면서 일시적으로 비교 가능한 결합들로 귀결되기도 한다. 이러한 배경/전경 뒤집기를 통해 ANT는 무질서로부터의 질서나 카오스 철학과 약간의 유사성을 보이며, 민속방법론(ethnomethodology)과 많은 실질적인 연관을 갖는다. 보편성이나 질서는 규칙이 아니라 설명되어야 할 예외이다. 구역들, 우연성들, 군집들은 육지에 점으로 찍혀 있는 호수라기보다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군도와 더 유사하다. 덜 유비적으로 말한다면, 보편주의자들은 모든 표면을 질서나 우연성으로 채워야 하는 반면에 ANT는 국소적인 질서의 꾸러미들 사이나 이런 우연성들을 연결하는 실조각들 사이를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100-1)
# 네트워크들의 공통된 성질들
1. 멀고 가까움 :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거리의 횡포' 또는 근접성을 제거할 수 있다. 가까이 있지만 연결되지 않은 요소들은 무한히 멀어질 수 있고, 매우 멀지만 연결되어 있는 요소들은 오히려 가까워질 수 있다.
2. 크고 작음 : 거시/미시 구분 모델은 사회가 마치 실제로 상층부와 하층부로 이루어진 것처럼 위계 관계에 얽매여 있다. 한 네트워크는 결코 다른 네트워크보다 더 큰 것이 아니라, 단지 더 길거나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3. 내부와 외부 : 네트워크는 모두 내부와 외부가 없는 경계이다. 질문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두 요소 사이에 연결이 만들어졌는가 아닌가 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연결들 사이의 공간을 채우는 데 연연할 필요가 없다.
제5장 인간과 기계에 대한 '발칙한' 생각: ANT의 기술론(홍성욱)
"엔지니어를 포함해서 기술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기술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지만 기술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이를 선하게도, 혹은 악하게도 쓸 수 있다고 본다. 라디오는 가치중립적이지만, 그 기술이 나치당에 의한 선전도구로 사용되었을 때에는 나쁜 용도로,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운동 조직의 메시지 전달용으로 사용되었을 때에는 좋은 용도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생각이 현대 기술의 복잡한 정치성을 왜곡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판자들은 핵무기와 같은 기술은 어떻게 사용되어도 좋게 사용될 수 없다는 점을 반례로 지적한다." "이렇게 기술의 본질적인 정치성을 강조한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는, 흑인들이 주로 타던 버스가 통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존스비치(Jones Beach)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의 고가를 일부러 낮게 설치한 뉴욕 건축가 로버트 모제스의 설계가 기술의 정치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주장한다."(139)
"그런데 기술의 정치성을 기술의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효과로 인식하면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다. 가령 뉴욕의 건축가 로버트 모제스가 인종차별주의의 영향을 받아 흑인들의 버스가 통과하지 못하도록 고속도를 낮게 설계했다고 해도, 흑인들이 수십 년 동안 이 문제 때문에 존스비치에 접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상당한 논리적 비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모제스가 이를 설계했던 1930년대와 현재의 사이에는 흑인들의 권리가 현격하게 향상된 1960년대라는 문화혁명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모제스는 자신이 낮게 설계한 고가도로가 20세기 중엽 이후에는 흑인들의 버스가 아닌 현대 물류의 주역 컨테이너를 막을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모제스의 고속도로는 이제 1930년대와는 다른 인간-비인간의 네트워크 속에 위치하며, 따라서 1930년대와는 다른 역할과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기술을 둘러싼 네트워크가 달라지면, 그 기술의 정체성도 변하는 것이다."(139-41)
"우리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기술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술의 속성을 이해하려고 기술에 대해 연구하지만, 기술이 항상 우리가 계획한 대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다시 기술과 인간 모두가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그렇다. 기계 부품들이 모여서 기술을 만드는데, 어떤 경우에는 새로운 부품을 하나 더함으로써 전혀 예상치 않은 결과를 얻곤 한다. 또 기술은 기존의 기술-인간의 네트워크 속에 편입되어 그 속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 네트워크가 새로 도입된 기술에 의해서 변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기술의 효과, 용도, 의미를 정확하게 예상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므로 창의적인 혁신가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예상하는 예언자의 능력이 아니라, 기술의 궤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외의 결과에 당황하지 않고 새로운 네트워크의 형성 과정을 예의 주시하면서 그 속에서 과거에는 없던 인간-기술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기술을 새롭게 위치시키는 능력이다."(142-3)
"기술이 행위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기술이 다른 기술들, 인간들 속의 네트워크에 위치해서 서로를 바꾸는 식의 영향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대신하기도 하지만, (인간과 결합함으로써)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기도 한다. 도시의 범죄를 줄이는 것은 경찰을 늘려서 치안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도 가능하지만, 공공 디자인을 개량함으로써도 가능하다. 그런데 범죄 예방 외에도 현저하게 범죄를 줄이는 데 성공한 도시 디자인을 마주치는 것은 무장 경찰과 마주치는 것과는 또 다른 효과를 낳는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기술의 행위능력에 주목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을 기술에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고유한 영역인 윤리적 문제에 개입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만 윤리의 '목적'(end)이 적용되고 대상에게는 '수단'(means)만이 부여되는 근대 윤리학의 골격은 윤리학과 기술이 혼합되어 버리는 상황에서는 그 의미가 약화되기 때문이다."(150-1)
제2부 ANT 확장하기
제6장 경제 행위자 조합하기: 헤지펀드의 아장스망 (이언 하디& 도널드 맥켄지)
"칼롱의 분석에서는 경제 행위자가 개인적인 존재가 아니며, '제도, 규약, 개인관계 또는 집단 내에 배태된' 존재조차도 아니다. 칼롱에게 있어 행위자란 '인간의 몸체뿐 아니라 보철물, 기구, 설비, 기술장치, 알고리즘 등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달리 표현한다면 (언어 유희를 수반한) 아장스망(agencement)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장세(agencer)는 배열하거나 서로 맞추는 일을 하며, 아장스망은 조립, 정리, 배열 또는 배치를 의미하게 된다." "아장스망에 대한 언어유희의 또 다른 측면은 아장스(agence)와 에이전시(agency)이다(여기서 '아장스망'은 일반적인 영어의 '배치assemblage'와 같은 표현과는 달리 다소 수동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행위자들은 본래적인 성질이나 고정된 존재를 갖지 않는다. 그들의 특질은 복수의 아장스망으로 만들어진 것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행위능력을 (재)형성한다는 것은 그것을 구성하는 사회기술적인 복수의 아장스망을 (재)형성한다는 의미이다.〉"(158-9)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위가 항상 안정성을 촉진하지는 않는다. 아장스망의 구성과 형성으로 인한 또 다른 효과는 감염의 위험이다. 예컨대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들로 금융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는 무역을 거의 하지 않거나 금융위기 발생국과 무관한 국가들도 포함된다." "결과적으로 다수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투자를 확대하는 행위자들에게 있어 최적의 전략은, 다른 행위자들의 거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은 놀랄 만한 상호연결을 창출할 수 있다." "이때 행위능력(agency)은 물론 공통적으로 트레이더와 같은 개인에게 귀착되지만 또한 흔히 '높은 수준의' 실체들에도 귀착된다. 예컨대, 우리가 관찰한 헤지펀드는 하나의 법적인 실치이고, 계약법은 행위능력을 펀드에 귀착시킨다." "그럼에도 트레이더들에 대한 보상은 즉각적인 보너스의 형태로 온다. 그것이 지독한 시샘과 격렬한 분쟁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흔한데,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188-90)
제7장 위험의 실재성: 독일의 유전자 기술(로즈메리 로빈스)
"통상 위험은 그것이 자연적으로 결정된다는 '실재론적' 위험과 사회제도 속에서 형성된다는 '상대주의적' 위험으로 나누어진다. 실재론적 위험은 위험을 자연적 대상으로 간주함으로써 실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반면 상대주의적 위험은 위험을 사회제도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위험을 사회제도에 따라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둘 다 위험이 추상적 실체라는 데 있어서는 의견을 같이 한다. 내 생각은 위험이란 물질성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위험은 연결망이 유지되는 한 현실 속에서 계속해서 (재)발생한다. 내 생각에 위험은 단일한 것도 아니고 복수적인 것도 아닌 다중적인 것이다. 여기서 위험을 평가하는 일반화는 추상적인 일반화가 아니라 인슐린 시설과 같은 미시적 세계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배열, 혹은 배열과정과 우연히 연계된 일반화로 이해해야 한다. 위험을 이처럼 물질적으로 우연적인 실재로 이해하게 되면 실재론적 위험과 상대주의적 위험을 구별해야 할 필요성이 사라진다."(196)
제8장 ANT관점에서 본 한국 최초 우주인 논쟁 : PUS와의 만남 (안형준)
"ANT 방법론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행위자 따르기'를 통해 우주인 배출사업에 참여한 각 행위자의 입장을 사회적 맥락 안에서 면밀히 분석할 수 있다. 〈항우연: 차후 이루어질 항공우주개발 사업에 대한 국민적 정당성 확보, 과학계: 스타과학자 배출을 통해 이공계 위기를 타파할 좋은 기회, 스폰서 기업: 자사와 자사의 제품을 소비자에게 홍보할 수 있는 기회, 공군: '항공우주군 수립'이라는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기회, 언론: 주목도 높은 뉴스와 특종 공급원, 대중: 한국최초우주인에 대한 자긍심 고취〉 항우연은 이런 중층의 네트워크에서 '의무통과점'이라는 전략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각 행위자들에게 이해관계와 역할을 부여해 동맹을 형성하고, 그 행위자들이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분배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각 행위자들은 독자성을 갖고 네트워크를 형성하거나 강화해나갔다. 하지만 행위자의 배반이나 예상치 못한 특성 때문에 생겨난 돌발상황으로 네트워크가 와해되기도 했다."(236-7)
"항우연이라는 행위자는 우주인 배출사업을 진행하면서 '실험'이라는 수사를 동원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강화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ISS의 실험 공간에서 이소연과 실험장치 사이의 네트워크와 실험을 준비하는 지상의 과학자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그 결과 ISS에서 이루어진 실험도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해 몇 편의 논문을 내고 유인우주실험의 경험과 노하우를 쌓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우주인선발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우주로245' 같은, 우주인 사업을 적극 지지하는 행위자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인터넷게시판을 중심으로 이 사업에 대한 반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더 큰 규모의 대중 네트워크가 차츰 형성됐다. 이들에게 이소연은, '실험 임무'가 아니라 '우주체험'과 동맹을 맺은 의무통과점으로 자리매김했는데, 항우연이 만든 '실험전문가 이소연'의 블랙박스는 해체됐고, 대중에 의해 '우주관광객 이소연'으로 다시 블랙박스화된 셈이다."(249)
제9장 현실정치에서 물정치로: 혹은 어떻게 사물을 공공적인 것으로 만드는가? (브루노 라투르)
"지금까지의 정치철학자들이 강력한 객체 회피적 경향의 희생물이 되어왔다고 평가하는 것은 그다지 불공정하지 않다. 홉스에서 롤즈까지 그리고 루소에서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논의들이 적절한 집단(당)을 구성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고, 그 대표성의 정도를 파악하고, 이상적인 연설 조건을 발견해내고, 합법적인 동의를 포착하고, 좋은 헌법을 쓰기 위해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라는 차원, 즉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객체의 영역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원이 가지는 신성함과는 달리, '공화국'(res publica)은 그다지 많은 사물들(res, 즉 things)을 포함하지 않는다. 정당화하고 합법화하는 과정은 중요하지만, 이는 소집을 위한 조건 중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반은 문제 그 자체 속에, 문제가 되는 상황 그 자체에, 공중(public)을 만드는 '물'(res) 속에 있다. 그것들은 적절한 모임을 위해 재현되고, 정당화되고 합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264)
"'객체 지향적 민주주의'라는 것은 이 편향을 고치려고 시도한다. 즉, 실제적으로는 항상 혼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으로는 분리된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말의 두 가지 의미를 통합하는 것이다. 첫 번째로, 법학과 정치학의 영역에서 잘 알려져 있듯이, 재현은 문제 주위로 정당한 사람들을 모으는 것을 지칭한다. 여기에서 적법한 절차가 뒤따르는 한 재현(즉, 대표)은 정당한 것이 된다. 두 번째는, 과학과 기술의 영역에서 잘 알려져 있듯이, 관심의 대상인 객체가, 모인 사람들의 눈과 귀에 어떻게 인지되는지를 표현 혹은 재-현(re-presentation)하는 것이다. … 문제를 재현하는 첫 번째 양상은 의회, 모임, 집회, 위원회 등으로 불리는 장소나 조직과 관련된 것이다. 두 번째 양상은 이러한 장소에 특정한 주제, 관심, 이슈, 개념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양상은 동시에 다루어져야 한다. 즉, 누가 관련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이 고려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264-5)
"객체로 가득 차 있지만, 우리의 '정치'라는 개념 안에 그다지 잘 통합되지 않는 상황은 로렌제티의 유명한 프레스코 화[도시/시골에서의 좋은 정부/나쁜 정부의 효과]에서 보다 잘 드러난다. 많은 학자들이 이 그림에서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를 재현하는 상징의 복잡한 의미를 해석해왔고, 그 복잡한 계보를 추적해왔다. 하지만 동시대의 눈에 가장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도시, 풍경, 동물, 상인, 춤꾼,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과 공간이다. 나쁜 정부는 단순히 혼란의 악마적 형상을 통해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색조와 파괴된 도시, 황폐한 풍경과 헐떡이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좋은 도시는 단순히 미덕과 질서의 상징을 통해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색조와 단단한 건축물, 조화로운 풍경과 다양한 동물들, 원활한 인간관계와 풍요로운 생활을 통해 그려진다. 프레스코 화는 상징을 위한 단순한 장식을 넘어, 우리에게 좋음과 나쁨의 미묘한 생태학에 보다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267)
"우리가 '사물'(Ding)이라는 단어를 부활시키고, '현실정치'(Realpolitik)라는 단어를 '물정치'(Dingpolitik)라는 단어로 교체하려는 이유는 객관성이라는 값싼 개념으로부터 값비싼 증명으로의 변화를 강조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객체는 너무 오랫동안 사실의 문제로 여겨졌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객체에서 사물로의 변환과 관련된 좋은 예가 바로 2003년 2월에 벌어진 콜롬비아 호 폭발이다. '어셈블리 드로인'(조립도면)이란 엔지니어들이 청사진의 발명을 표현하는 말이다. 하지만 콜롬비아 호의 잔해들을 커다란 전당에 모아놓고, 특별 위원회에서 온 조사관들이 기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연구하는 상황에서는 어셈블리(조립)라는 단어가 어딘가 기묘하게 들린다. 이는 고도로 복합적이고 기술적인 객체의 '분해도'(exploded view)['폭발한 관점'이라는 말도 되는]를 새롭게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폭발한 것은 그것이 사물이 되었을 때 그것들이 어떤 객체인가를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이다."(272-3, 277-8)
# 객체가 사물이 되었다는 말은 '사실의 문제'가 '복잡한 관계성'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뜻한다.
"월터 리프먼과 그에 대한 철학자 존 듀이의 논평에 의하면, 대부분의 유럽 정치철학은 몸과 국가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것들은 다중의 상반된 의지를 단일한 일반 의지로 재현하려는, 실현 불가능한 의회를 조직하려 했다. 이러한 기획에는 현실성이 치명적일 정도로 결여되어 있다. 전체적이고 완결적이며 투명한 경향에 의해 착안된 이러한 재현은 충실할 수가 없다." "더 많은 다양성을 흡수할 수 있는 장치(듀이 시대의 '위대한 사회' 혹은 우리가 '세계화'라고 부르는 것)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매우 특수하고 새로운 방식의 재현을 고안해내야만 한다. 이것이 통일성과 전체성을 꿈꾸는 이들을 실망시키기에, 리프만은 이를 유령이라고 칭했다. 신기하게도 이것은 근본주의의 유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유일한 정신이며, 착한 유령이다." "미국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전통을 실용주의라고 불렀다. 프라그마타(pragmata), 그리스어로 사물(things), 이것이 진정한 (그리고 값비싼) 현실주의인 것이다!"(296-7)
에필로그
제10장 '두 문화'와 ANT의 관계적 존재론(김환석)
"1920~30년대에 칼 만하임은 지식사회학의 기획을 그 선구자인 마르크스, 뒤르켐, 베버의 유산으로부터 확장시켜, 모든 지식의 존재구속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제창하였다. 하지만 만하임은 다른 지식들과 달리 과학의 내용(즉 과학의 이론, 사실, 방법 등)은 보편합리성을 지니므로 지식사회학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이후 로버트 머턴이 과학의 사회적 구조에 초점을 둔 과학사회학을 구축하였으나 그 역시 과학의 내용은 블랙박스로 남겨놓았다." "토마스 쿤이 1962년에 발표한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철학과 과학사에 큰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의도하지 않게 과학지식사회학(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 SSK)이라는 형태로 새로운 과학사회학이 출현하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하였다. 쿤의 패러다임 개념은 과학에서 관찰의 이론의존성을 지적한 것인데, 이는 과학이론의 선택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관찰 사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실증주의적 과학관을 근본부터 뒤흔들어놓았다."(313-4)
"이처럼 근대세계가 중대한 위기에 당면하여 전환을 모색하게 된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두 문화에 대한 도전들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도전들 가운데 의식적으로 두 문화의 극복을 지향하는 대표적 분야가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이라는 학제적 분야이다." "과학과 비과학을 철저히 분리하고자 했던 실증주의적 과학관에 대항하여 STS는 둘 사이의 구분이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거나 분명하지 않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즉 과학은 순수하게 자연 실재의 합리적 반영이고 인문학은 비합리성이 내포된 사회적 요인의 산물이라는 두 문화의 비대칭적 이분법이 신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STS는 구체적인 경험적 연구를 통해 보이려고 했던 것이다. STS의 견해에 따르면, 인문학을 포함한 다른 지식들과 마찬가지로 과학 역시 사회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며 따라서 지식의 내용에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구성요소로서 포함된다고 했다."(308-9, 319-20)
"STS의 초기 흐름이었던 과학지식사회학(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 SSK)의 문제의식은 인식론이었다.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즉 인간이 어떻게 세계에 대하여 알게(know)되는가에 대해 철학적 설명이 아니라 사회학적 설명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연구를 통하여 그들이 내린 결론은, 다른 지식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은 인간의 상호작용 행위가 만든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것이었다. 즉 과학과 비과학 사이에 대칭성을 확립한 것인데, 그러한 대칭성은 사회를 설명의 근거로 삼았다는 데에 그 특징이 있었다. 다른 한편, STS의 후기 흐름을 주도하는 ANT의 주된 문제의식은 존재론이다. 그것은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지만, 그 관심은 그러한 지식을 만드는 존재들은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발전하였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이른바 '자연'과 '사회'라는 실재가 세계 안에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두 학문영역이 분리되어야 할 근본적 이유란 없는 것이다."(321-2)
"라투르는 ANT가 생태적 위기 문제에 주는 함의에 대해 더 본격적인 성찰을 펼침으로써 일종의 새로운 정치생태학으로 그의 이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자연'이라는 범주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와 더불어 만들어진 근대주의의 구성물이라면, 절대적 '자연' 개념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만은 녹색운동들은 근대주의 기획을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명을 연장시킬 뿐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러한 근대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현재 세계가 당면해 있는 생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과학이 마땅히 논쟁과 타협이라는 정치적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결합되는 새로운 공생의 실험이 필요하다고 그는 역설한다. 라투르는 생태적 위기의 시대에 요청되는 정치는 '과학'과 분리된 영역으로서의 근대적 정치와 같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과학(즉 비인간 행위자들)의 문제를 정치적 토론에 포함하는 새로운 정치라고 주장한다."(3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