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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ㅣ (구) 문지 스펙트럼 6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7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 때 수능 모의고사 언어영역 지문에서 보았던 이청준, 「눈길」 그때도 참 좋다 생각했던 글이었는데 늘 마음에만 담아두었다가 이제야 찾아 읽었다.
지하철 타고 갈 때, 돌아올 때 두번 읽었는데 두번 다 눈물을 질질 흘렸다. 공공장소에서 청승맞게도 꺼이꺼이 울었다.
제목도 어쩜 그리 서정적이고 상징적으로 그리고 주제의식을 가장 잘 드러내게 지었는지. 눈앞에 그려지는 눈길을 걷던 처연했을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과 몇십년 후에 어머니가 털어놓은 돌아오는 눈길에 눈앞이 흐려진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로 끌어가는 힘도 대단하다. 무척 자연스러우면서 심리를 꿰뚫는 치밀함을 느낄 수 있다. 우와 정말 대단한 작가다 새삼 놀란다.
이 책은 눈길 외 여러 단편이 실려있다. 공들여 쓴 아주 힘있는 단편들이 손에 짝짝 달라붙는다.
「선생님의 밥그릇」이란 단편은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 단순히 선생님이란 직업적인 안주성에 대한 이야기일까 생각했는데 그 속에 가슴을 찌릿하게 하는 순수, 아름다움, 그리고 배려가 들어있다. 잠이 오지 않아 쉽게 잠들 방편으로 읽기 시작한 10쪽 짜리 분량밖에 안되는 짧은 이야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모든 사람이 읽어보아야 하는 이야기이다. 좋은 선생님을 꿈꾸는 사람은 더욱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이 단편을 읽으면 "이청준 선생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정말 멋진 사람이다. 선생이 살아계실 적 한번도 만나뵙지 못한 것이 아쉽다.
「치질과 자존심」은 지적인 통찰력을 보여준다. 표준어로 "과연" , 전라도 말로 "되차" , 미쿡말로 "I see" , 니뽕말로 "나르호도(일본문자는 잘모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현대의 불치병(?)이라는 치질,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서도 부끄러움 때문에 쉽게 드러내놓고 아파하지도 못하는 거시기(?)한 몹쓸 병과 그안에 숨어있는 인간의 자존심에 대한 언어학자의 논리가 절묘하다.
스마트폰이 판치는 스마트한 세상에서 가슴을 저릿하게 하는 이청준의 아날로그적인 이야기들이 그립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 기다림이 당연한, 지극히 인간적인 그 시절의 이야기가 뭐가 그렇게 급한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무작정 바빠죽겠는 지금의 우리를 울린다. 지금이라도 스마트를 버리고 촌시럽고 무딘 세상을 가질 수도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