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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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진짜 문학을 읽는다. 번역된 외국소설인데도 맛깔나는 문장이 가득해 한 자 한 자 놓칠세라 문장을 꼭꼭 되씹는다. 원문으로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소설 때문에 체코어를 배워볼까. 소설을 늘 읽지만 요즘은 '문학'이라 부를 만한 작품을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


주인공 한탸의 생각과 몸짓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공감할 만하다. 다른 이들이 볼 때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삶처럼 여기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그저, 좋아하는 책 속에나 파묻혀 살라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내내 이 책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사로잡히다' 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그래서 또 읽는다. 읽어도 계속 읽고 싶다. 내용이 짧은 것이 못내 아쉬워 자꾸만 손이 가는 소설이다.  


책을 읽다보면 바로 눈 앞에 그림처럼 펼쳐지는 문장들이 있는데 이 소설의 모든 문장이 그렇다. 맹렬히 달려드는 파리떼를 묘사한 문장이 유독 눈에 띈다. "폭풍우 속에 버티고 선 버드나무 가지들처럼 얼굴을 후려치는 푸르뎅뎅한 파리떼를 잽싸게 몰아냈다." 이 글귀를 읽는데 기형도 시인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늙은 압축공의 삶이 이토록 매혹적일 줄이야. 본디 노동이라는 게 중독적인 맛이 있기는 해도 눈부신 책 한 권을 찾기 위해 비참하기 짝이 없는 열악한 환경을 즐길 자신은 없건마는. 제일 좋아하는 것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아까울쏘냐. 기꺼이 나를 내어주마. 해온 한탸의 반복된 서른 다섯 해 노동에 경의를 보낸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내 무엇을 내어줄 수 있을까. 손해보지 않으려 하고 조금만 불편해도 화를 내고 불이익을 받으면 달려들어 따지고 드는 것이 옳다고 믿으며 여기저기에서 쌈닭처럼 쪼아대고... 그러고나면 곧 허무해지고 만다. 


최근에 '심봤다!' 는 기분에 이것이 필시 꿈인가본가 실감이 안 날 만큼 신나는(?) 곳, 인문학 공부방에서 만난 이들이 날 보자마자 묻는다. 내가 막내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스스럼없이 묻는 것일텐데...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 "그렇다면 자네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고 싶은 게 많아 먹고 싶은 것도 많다며 철없이 떠들어대는 일 말고 다 재끼고(?) 하나에 걸어볼 무엇을 여태 찾지 못했다. 한탸처럼 질기게 그것만을 찾아 미치게 사랑하고 싶어라. 이것저것 여기저기 깔짝대는 방황(?)을 끝내고 그러려고 태어난 것 아니냐. 할 만한 것을 찾아 그놈(?)에게 빠져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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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7-03-18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제목이 독특한데다 언론, 독자평이 좋아서 구매한 책이네요. 늙은 압축공의 삶에 한번 빠져봐야겠습니다. ^^

samadhi(眞我) 2017-03-18 23:45   좋아요 0 | URL
후유증이 심각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