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다: 물이 말라서 없어지다(전남)
거의 3주째 잠 못 자고있다. 안 그래도 물기없는 피부가 푸석해지고 여기저기 쑤시고 결린다. 거의 이십 년을 불면이 나를 좀먹는다. 어쩌다 며칠 잘 자는 행운(?)에 잠시 마음을 놓으면 금세 불면이 불청객처럼 여어~! 하고 찾아온다. 이 밉살스런 손님(?)이 친한 척 다가올 때마다 저항하지 못하고 나를 내어주고 만다. 그렇게 오래 불면을 앓았으면서도 낫는 법을 조금도 배우지 못했다. 시나브로 물러가기를 빌어볼 밖에...
오랜 연구와 노력으로(?) 잠 좀(?) 잘 자는 남편은 내가 자려고 애쓰지 않는다며 수면법 강의를 해보지만 그게 잘 안 먹힌다. 자려고 누워 눈을 감으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이 겹치고 겹쳐서 의식이 또렷해진다. 그러다보면 힘을 줘 눈을 꼭 감고 인상은 찌푸려지고
잠들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 잠이 깨버리니 이럴 때는 책 읽을 생각을 버리려 한다.(그게 잘 안 되긴 하지만)
대학 때, 동아리방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선배가 가르쳐 준 노랫말이 앞부분만 맴돌아 기억해내려 기를 쓰다 없던 잠이 더 달아났다. 비장한 노랫말이 새겨져 많이도 불러댔던 그 노래가 정호승의 시였음을 뒤늦게 안다. 기를 쓰고 누워 참다참다 분연히(?) 일어나 찾아보고는 노랫말이 다 기억나 속으로(옆에서 색색 자는 낭군님 깰까봐 소리내지 않고) 입술을 달싹이며 불러본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정호승, 부치지 않은 편지
잠 다 잤다. 그대(잠) 잘 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