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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거미의 이치 - 상 ㅣ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4년 8월
평점 :
여태 안 읽은 작품도 많지만 교고쿠 나쓰히코의 전작주의(?)에 가깝다. 이 작가가 쓴 교고쿠도 시리즈가 워낙 인기가 많아 나보다 더 팬인 독자들이 많겠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처럼 기본적으로 재미있다.
민속학에 관심이 많은데 교고쿠 나쓰히코의 책을 읽다보면 민속학에 조예가 깊은 듯하다. 요괴연구자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만큼 작품도 요괴에 대한 얘기들이 많다. 그러고 보니 아직 백귀야행은 안 읽었네. 만화 백귀야행을 재미나게 읽어서 같은 작품이 아닌데도 미뤄두고 있다. 이마 이치코,『백귀야행』만화도 재미있다. 그림도 좋고.
계곡에서 텐트 치고 하루 이틀 묵으면서 발견하게 되는 거미들의 빠름, 빠름(?)에 깜짝 놀라곤 한다. 규모도 굉장하고 거미줄을 치는 속도도 어찌나 빠른지 어느새 계곡 곳곳에 거미줄 투성이다. 심지어 물가 바위(물기가 많아 불안해 보이는데)를 걸쳐서도 친다. 캠핑하는 동안 우리가 움직이기 불편해 거미줄을 걷어낼 때도 뭔가 잘못한 일을 저지르는 듯해 죄책감이 든다. 거미는 영물처럼 인식돼 함부로 죽이지도 않아 집안에 어쩌다 들어와도 살짝 집어서 내보낸다.
그물에 걸려들면 빠져나올 수 없으리라는 섬뜩한 기분이 드는 거.미.에게 놀아나는(?) 얘기다. 현명하기로 따를 자가 없는(교고쿠도 시리즈에서) 교고쿠도마저 스스로 농락당했다 인정할 정도이니. 장미십자탐정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붙인 에노키즈의 활약이 약해서 조금 아쉽다. 뻔뻔하고 제멋대로인데다 오만한 에노키즈가 좋아라.
연쇄 살인 사건 두 가지(?)가 겹쳐 집중력이 떨어졌다. 상권에서 중권까지 읽다 말기를 몇 번이나 했다. 꼭 책 내용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일 때문에 중단한 거지만. 흑마술-등장인물이 흑마술로 믿은-까지 등장하다 보니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예상이 잘 안 됐다. 중반 이후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전까지는 전형적이라 볼 수 있는 미션스쿨, 그것도 여학교. 여고괴담이 떠오를 만한 음침한 건물들이 공간적 배경이어서 벌써 오싹하다.
그보다 먼저 벌어진 살인이 더 엽기적이고 잔혹하다. 처음에 벌어진 사건이 더 궁금하고 끌려서 여학교 살인사건은 시시할 정도다. 엽기살인마의 정신분석도 나오고 시대적 배경에 맞지 않게 여권신장에 힘쓰는 여주인공도 등장하는데 작가의 의식이 언제나 그렇듯 내 마음에 쏙 든다. 남성지배 세상을 뒤집고 모계를 지키려는 굳은 의지로 모든 것을 조종하는 거미의 입김(?)이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뒤틀린 음모이고 실패로 끝났지만 통쾌한 기분이 드네. 시도는 좋았어. 주류라고 믿고 있는 것들을 비웃는(?) 작가의 의식에 끌리는 걸까. 작품 속에 녹아있는 교고쿠 나쓰히코의 생각들에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