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엮다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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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먼저 봤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많이 나와  더욱 좋았다. 일본은 이런 영화를 왜 이리 잘 만들까 감탄하면서도 부러워서 괜히 씩씩거렸다. 책이 오히려 영화보다 재미가 덜하다. 그래도 원작이 좋아야 좋은 영화도 나오는 거니까. 작가가 나랑 몇 살 차이 안 난다. 그런 것도 질투가 난다. 질투쟁이인 나는 질투가 나의 힘이 되지 못하고 강새암만 심하게 부리고 만다. 그래서인지 마지메를 질투하고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는 니시오카에게 감정이입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연애 빼고는 무엇하나 오랫동안 계속, 지속해 온 것이 없다. 정규직에서 한번 놓여난 뒤로 쭈욱 비정규직의 길-이런 황폐한 (제)길(?)-을 걷고 있는데. 그렇구나 비정규직을 지속하고 있네. 이 소설은 지속, 계속하는 것의 위대함(?)을 얘기한다. 국어사전 찾기가 취미이면서도 막상 사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 가져본 적 없는데 우와 신기하네, 재밌겠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막상 15년이란 긴 세월을 꾸준히, 묵묵히 한 가지 일에 매진해야 가능한 일이라니 혀를 내두르고 손을 휘휘 젓고 사양하고 싶어진다. 이름 자체가 성실인 마지메에 비하면 '사전을 좋아하네', '사전 좀 봤거든' 따위의 말을 차마 못 하겠다.

 

사전 종이 느낌이 참 좋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사전 종이는 어떤 질감이고 어떤 기능을 갖추어야 하는가와 사전을 만드는데만 5000여 명의 인원이 투입된다는 얘기에 놀라면서도 그 많은 말들을 싣는 공간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수긍하게 된다.

 

몇 번이나 추진하는 일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면서도 말그대로 좌.절.하지 않고 그 일을 계속해나가는 것에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겠구나.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들 같으니라구. 결과물도 소중하겠지만 길 위에 있는 것만으로 의미있는 일임을 실천해나가는 인물들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예전에 독일어 교양수업에서 배운 글귀가 이 비슷한 거였는데 십 여 년이 넘으니 기억이 안 난다.

 

채드 하바크,『수비의 기술』을 읽을 때 '별로 가치있어 뵈지 않는 일이어도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해 꾸준히 해나가면 결국 [되는]구나.' 느꼈는데 여태 내 갈 길을 찾지 못 하고 이렇게 방황하고... 방랑하고 있다. 끝없이 솟는 욕심과 질투가 한 길에 집중하지 못 하게 하고 여러 길에 이것저것 살짝살짝 발만 담갔다가 빼고 만다는 핑계 참 허술하네.

 

우리나라 사전처럼 단순히 새국어사전, 헌(?)국어사전 같은 이름이 아니라 말의 바다를 건넌다. 라는 뜻을 붙인 사전이 멋드러진다. 표지디자인마저 우리처럼 원색의 비닐가죽(?)장정이 아니라 이름처럼 그림을 넣은 사전이라니 소설이어서 그렇다해도 낭만적이기도 하지. 이젠 종이사전이 의미가 거의 없어졌지만 그 정성을 떠올리면 종이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싶어진다. 고등학교 때처럼 폭신한 사전을 베고 침 흘리며 잠들고 싶다. 허무하게 끝나고 말더라도 지속의 힘을 찾아떠나는 우람한 뒷모습을 가진 사전을, 그것을 만든 이들을 닮고 싶어라. 올 해는 나아가자고. 한 십 년 너머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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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1-2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만들어진 줄 몰르고 있었어요. 덕분에 영화도 보고 싶어지네요 ^^

samadhi(眞我) 2016-01-29 15:07   좋아요 0 | URL
영화 강추입니다. 마지메역의 배우 아빠가 조선인이고 엄마도 배우 동생도 배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