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복도에서 바라 본 풍경이다. 눈이 내려 하늘이 뿌옇다.

광역시(?)에 살고 있는데도 워낙 변두리여서 시골같은 느낌이 짙어 밤이면 개짖는 소리가 요란하고 어르신들이 많이 계셔서 인지 인간미가 있다.

남편이 붙여준 '오지랖을 뛰어넘는 광지랖'이라 찬바람이 불면(추운 날에 그분들이 더욱 생각이 나서) 동네여자경로당에 장구를 들고가 할머니들 앞에서 모자라는 실력으로(동아리에서 선배들이랑 술먹고 불렀던) 민요를 부르며 재롱(?)을 떤다. 길을 가다보면 어르신들이 먼저 알아보고 웃으신다.

 

 

베란다 문을 열면 바로 앞에 철길, 그 앞에 도로, 길 건너엔 공항이 있다.

배만 빼고 다 지나간다는 동네에 뭣 모르고 들어와 살게 되어 엄청난 소음에 노출되었다. 이곳 지리를 모르고 밤에 집 보러 왔다가(집은 낮에 보고 계약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덜컥 계약하고 만 것이 가슴을 치는 일이 됐는데 에어컨 없이 사는 여름에 문을 열어두지 못했다. 비행기(민항기, 전투기 가릴 것 없이) 날아다니고 기차 다니고 큰 도로 차들은 쌩쌩 다니고 으악...그런데 이런 날 눈 앞에 펼쳐진 세계가 지독한 여름의 한숨을 날려주는 구나.

 

 

아주 어릴 때를 빼고는 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추위도 많이 타서 눈 오면 춥고 길 지저분해 지고(처음 내릴 때 새하얀 모습은 간데 없고 세상 때가 섞여들어 금세 더러워 지니까.)...

비만 오면 광년이 모드로 들어가 혼자 감상에 빠지고 중얼거리며 알지도 못 하는 시를 읊어대고 비 맞는 걸 즐기고(나이 들면서는 자제했지만)...

그런데 나이를 먹는지 요며칠 눈보라가 치고 눈이 쉬지도 않고 내려대는데 왜 이리 가슴이 미친년처럼 뛰는지. 방금도 참지 못하고 담배 피우러 나간 남편과 엘리베이터에서 딱 마주쳐 잠깐 걷자고 했다. 남쪽나라에서 오래도록 따뜻이 살아 온 사람들은 춥다고 하는데 윗녘에서 맹추위를 겪어 본 나는 그다지 추운 줄 모르겠다. 몸에 지방이 쌓여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고요히 눈내리는 풍경이 따뜻하구나. 눈이 오면 포근하다는 말, 와닿는다. 월요일 출근길 걱정하는 남편을 두고도 가슴에서 흥흥 콧노래가 나온다. 어릴 때처럼 강아지와 함께 폴짝 뛰어다니고 싶은 충동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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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1-2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 올때는 눈내리는 소리에 세상 모든 소리가 덮혀 버리는 듯하더군요..어쩜 그리 고요하던지....군대 있을때 밤새도록 내리던 눈에 청력을 잃어 버릴 뻔했었지요.ㄷㄷㄷ

samadhi(眞我) 2016-01-23 23:50   좋아요 1 | URL
우왓, 그토록 빠져(?) 있었나요? 아님 감각이 무척 발달하셨거나. 유레카님은 힘드셨다고 한건데 눈오는 소리를 깊이 느끼셨다니 낭만적으로 느껴져요. 근데 그 마음 알 듯도 해요. 가슴이 울렁대고 눈을 감고 그 풍경을 그리게 되네요.

지금행복하자 2016-01-24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오는 날은 눈이 소리를 먹어 고요해서 좋아요...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뽀드득 뽀드득 한 걸음 옮길때 마다 들리는 그 소리도 너무 좋구요~~

samadhi(眞我) 2016-01-24 00:28   좋아요 0 | URL
부드러운 존재가 그토록 힘이 세다는 것을 늦게에야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