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당기다 : 입맛이 돋우어지다.

 

어미는 (물)고기장시였다. 동트기 전 캄캄한 새벽녘에 일어나 5일장을 돌며 하루종일 "사씨요, 사씨요!"하며 생선을 팔았다. 철 모르는 막둥이는 학교가 파하면 시장으로 가, 제 어미가 있을 법한 곳을 귀신(?)같이 찾아내 시간이 흐를수록 신선도가 떨어지는 생선을 팔지 못해 속타는 제 어미 마음도 모르고 군것질 할 돈을 달라고 졸라댄다. 어린 것 등쌀에 양쪽에 주머니가 달린 앞치마에 구깃구깃 아무렇게나 접어넣어진 지폐더미들 속에서 비늘이 곳곳에 붙어있는 천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철 없는 손에 쥐어준다. 남편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빙그레 웃으며 " 으이구, 왜 그렇게 살았어? 안 창피해?" 그런다. "부끄럽지. 참 못 할 짓 많이 하고 살았지." 하는 내 핸드폰 바탕화면 글귀가 "사씨요, 사씨요"다.

 

어릴 때부터 정육점 아들, 통닭집 아들에게 시집가라는 소리를 듣고 자랄 만큼 육식을 좋아한 반면 생선 비린내를 유난히 싫어했던  난 엄마가 하필 생선을 파는 게 못마땅했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이 엄마옷과 함께 빨래를 돌리면 온통 비린내가 배어서 교복에서도 비린내가 가시질 않는 것이었다. 게을러터진 성격에 그렇다고 따로 손빨래할 성미는 못 되어서 투덜거리며 비린 옷을 입고 살았다.

 

중학교 다니던 어느날 친구와 시장 근처를 지나다가 다라이를 이고 오시는 엄마와 딱 마주쳐서 엄마와 몇마디(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말을 주고 받았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그 친구가 동경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너 정말 대단하다. 엄마를 창피해하지 않는구나." "우리엄만데 뭐" 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지만 비린내 난다고 엄마를 만날 타박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그다지 떳떳한 기분은 아니었다. 지금도 냄새가 많이 날 것 같은 직업군 사람들을 보면 그 식구들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청소차 아저씨들을 지나치다 보면 빨아도 가시지 않을 그분들 세탁물을 생각하게 된다.

 

섬사람인 작가가 풀어놓는 물고기 얘기를 읽다보니 엄마 생각이 난다. 한창훈은 소설 『홍합』을 읽고 반해버린 작가다. 거문도 출신인 작가가 전문가(?)다운 식견을 펼쳐보이는 물고기 소개글이 알차고 재미나다. 함께 삽입된 사진들을 보며 그 생선이 이렇게 생겼구나 알게 되고 낚시와 회뜨기(?) 선수인 작가를 따라다니며 귀한 생선 맛 좀 보고 싶다.

 

먹을 수 없는(?) 한 종을 빼놓고 총 30종의 물고기와 갯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떻게 잡는지 언제가 제철인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해 먹는 게 맛있는지. 작가가 겪은 녹록지 않은 경험이 묻어나 어느새 홀린 듯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작가에게 마구 떼써서 끝도 없이 바다얘기를 듣고 싶다. 이 책에서 얘기한 것들 말고도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어종들 얘기도 계속 해주면 좋겠다. 어릴 때와 달리 커서는 없어서 못 먹을 만큼 회를 좋아하게 됐는데(회 먹으면 술도 안 췐-취한-다는 소리 따윌 하면서) 그 귀한 자연산회 좀 얻어 먹으러 거문도에 찾아가 작가를 졸졸 따라다니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 섬에 머물며 사시사철 제철인 해물을 찾아 헤매는 즐거움을 생각하며 꿀꺽 침을 삼킨다.

 

각 장마다 인용된 정약전, 『자산어보』 내용도 새롭고 흥미롭다. 옛사람들 기록을 볼 때마다 놀라울 뿐이다. 어떻게 알았지? 새삼 재삼 감탄하고 마는 것이다. 관찰력과 솔직한 표현력이 뛰어난 조상들 후예인데 내 어휘는 왜 이렇게 빈약한지. 거칠게 자라난 섬놈(?)답지 않게 부드러운 표현력을 지닌 작가 글솜씨에 녹아난다.

 

흔하게 먹던 알밥에 흩뿌려진 날치알을 낳은 날치가 정말로 날아다니는 생선이어서 그렇게 불린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꿈처럼 생시처럼 이야기가 환상과 현실을 왔다갔다 한다. 그래서 더 좋다. 바다는 그렇게 꿈과 현실을 섞어놓은 공간인가보다. 하긴 바다는 생각만 하여도 미지(未知)인 세상이기도 하다. 신영복 선생 말씀으로는 모든 것을 "받아"서 바다가 됐다는 바다는 그 넓디너른 품에 세상 온갖 더러움을 품고 다 안아주는 공간이 아닌가. 몇 년 전 그 말씀을 듣고 바다가 되어야지 다짐하였지만 그 차디찬 맹서는 어디가고 그냥 속세에서 때 칠갑을 하고 그 속에 묻혀 산다.

 

이 책을 읽다보면 식욕이 돋아난다. 해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도 갑자기 비린 것을 찾게 되지 않을까. 오늘 저녁은 생선구이니라. 일본산 생선이 국내산 또는 다른나라산으로 둔갑을 한다고 해 생선 먹기가 너무 두렵지만 어쩌랴 비린 것이 당기는 걸. 이런, 자꾸만 침이 고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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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1-1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군요. 제 옛 여자친구 부모님도 시장에서 생선 가게를 하셨습니다.
이 책 읽어봐야겠네요... 좋긴 좋은가 봅니다. 여기저기서 한창훈 한찬훈 하는 걸 보면 말이죠....


책이 도착했습니다. 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꾸벅 ~

samadhi(眞我) 2016-01-19 13:35   좋아요 0 | URL
특히 홍합은 읽어줘야 합니다.
이 책, 생선 좀 파신다는 곰발님이 좋아할 만 한 책입니다

지나 2016-07-05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시 평을 읽어봐도 역시 글 잘쓰는군~*이란 생각이 드누만^^*
생선못먹는 나도 먹어보고싶고 읽어보고싶게 만드네^^
자산어보의 글귀가 나온다니 더 궁금하네~*
함 읽어볼께 친구^^*

samadhi(眞我) 2016-07-05 10:20   좋아요 0 | URL
여긴 익명성의 공간이라 친구 티내면 곤란해^^; 특히, 친구 같은 말은 좀 빼주면 고맙겠얼 ㅋㅋ 가능하면 반말 아닌 걸로 해주면 좋겠고 ㅋㄷ
잘 놀다왔냐? 이튿날 비가 와서 걱정되던데 어쩌면 비가 와서 더 신나게 놀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고. 해물파전 만드는데 달걀 다 떨어져서 이마트에 급하게 주문해놓고 달걀없이 반죽해서 냉장고에 넣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