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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재활용 -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 <스티프> 개정판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 세계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비위(脾胃)가 약하다면 이 책을 읽기가 꽤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체의 머리를 잘라서 뇌를 꺼내고 피부를 벗겨내고... 등등 피라든가 내장기관 같은 것들을 치어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몸 어떻게 쓰인 들 어떠하랴. 라는 주의를 가지고 살기에 내 죽은 몸을 가지고 뭔 짓(?)을 하든 말든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막연히 죽고 나면 이 몸을 화장해서 어디 강 들 산 바다... 아무데나 뿌려버리겠다. 생각했는데 화장의 과정 자체가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그 재 또한 거름으로도 효용이 없다고 한다. 자동차 사고 실험용으로 쓰여 산산조각이 나든, 수술연습용으로 쓰여서 만신창이가 되든 어찌하든 좋다. 환경오염 쓰레기보다는 어딘가에 재활용으로 쓰일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뜻깊은 일일테니.
제사, 3년상 등 뿌리깊은 신체발부 수지부모 운운하는 유교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나라 못지 않게 서구인들도 아이 시체만큼은 기증하지 못하는 가보다. 아무래도 그 조그만 몸을 기증한다는 것 자체가 부모로서 쉬운 일이 아니겠다. 남편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남편은 기꺼이 기증하겠다고 한다. 이미 죽어버린 몸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니. 사랑의 주체가 그런 겉모습, 껍데기는 아니므로 의미없다 여기는 성품이라 그런가 망설임 없이 아이의 몸을 얼마든지 무슨 험한(?) 실험체로 쓰더라도 상관없단다. 그래도 나는 좀 망설여지는데. 아직 아이가 없지만 내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가 죽었다 해도 그 여린 몸을 찢어대고 부서뜨린다는 생각만으로도 벌써 내 몸 어딘가 아픈 느낌이 드는데... 쓸모없는 늙은(?) 내 몸도 기증하겠다하면 우리 엄마도 아파하실려나. 그래, 집착, 어리석기 그지 없는 집착이지. 혼이 떠나버린 육신 따위가 무어라고.
그동안 미뤄둔 장기기증 서약이나 해야겠다. 인터넷으로 신청해도 되는 듯하다. 시신기증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 했는데 이 책을 읽고서 오호, 했다. 내 장기가 그다지 말짱하지 않아 내 장기보다는 시신이 더 쓸모 있겠다. 한창 광우병 문제가 불거질 때 남편에게 그랬다. 우리 둘 중 하나가 바보 되면 암스텔담 가서 안락사 하는 거다. 둘 다 바보 되면 어쩌지. 하면서. 그럴 땐 친구에게 맡기자고. 안락사 한 몸뚱이여도 시신은 어딘가에 쓸 수 있겠지.
재미난 보고서를 읽는 듯 인류학 책을 읽는 듯 즐겁다. 새롭게 알게 된 지식들이 많다. 작가가 열린 마음으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 특유의 넉넉함과 느긋함이 엿보인다. 그래서인지 유머가 넘쳐난다. 글을 읽다가 문득 하하하... 깔깔깔... 웃는다. 그 편견없는 시선이 유쾌하다. 이 작가의 관심분야 또한 다양해서 저자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