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의 인형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처음에 항우와 유방이 나와서 중국사 얘긴가? 했다. 진시황과 불로초, 화가 창애와 그 아들 담멸(이 부분은 허구같지만), 남사당 꼭두쇠에게만 전해지는 비밀 등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뒤섞어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기 어려워 전부 사실로 믿게 만드는 묘미가 있다. 생자필멸이거늘, 영생이라는 불가능의 욕망, 근친의 사랑(?) 등 금기를 이야기해 더욱 매혹적인 작품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책표지의 인형 사진을 여러 번 다시 치어다보게 된다. 볼수록 매력적인 인형이다. 나무로 만든 조각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 이 조각품이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지에서 천원, 이천원에 파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모조품이라도 갖고 싶다. 오똑한 코에 그린 듯한 입술, 황금비율을 가진 아름다운 조각상은 두 번 보게 되지 않지만 이 작품(?)-실재하는 지 모르겠지만. 실재하기에 작가가 이 조각품을 보고 소설을 쓰게 된 것이 아닐까?-은 그 불균형 때문에 자꾸만 눈이 간다.

 

진시황의 불로초는 인간욕망의 절정(?), 애써 감추려하지만 감출 수 없는 인간의 궁극적이고 솔직한 바람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 쪼글쪼글해지고 약해져서 노약자석에 앉고 싶은 사람은 없을테니. 봄바람 부는 날 대학에 풍겨나는 설렘가득 청춘이고 싶을테니. 오쇼 라즈니쉬,『뱀에게 신발신기기』속 일화에서도 모든 것을 다 이룬 왕의 소망은 오직 회춘이었다. 영생을 꿈꾸지는 않지만 불로는 소망하지 않는가. 늙는 것이 두려워 요절하는 이도 있었고. 어릴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들어왔던 생로병사가 한 살씩 먹어갈수록 더욱 와닿는구나. 이렇게 추운 계절이나 한 여름 복더위에 나이드신 분들의 부고를 접할 때면 잊고 있던 죽음을 기억한다.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이 책을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다. 중간중간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허술해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상상력하면 떠오르는 김영하의 단편을 읽는 듯 기발하다. 근데 기발함 정도가 다 인 것 같기도 하고. 결론으로 쓴 글귀가 너무 유치해서 한숨이 나올 정도다. 그런 뻔한 한 줄의 글로 끝을 맺는 바람에 지금까지 치밀하게 구성한 이야기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리는 기분은 쓸데없이 예민한 나만 느끼는 걸까. 빠른 전개와 시공간을 넘나드는 화려한 배경을 재미로 꼽는 오락영화 한 편 같기도 하고. 조금 더 확실하게 개연성을 갖추었다면 좋았을거라는 아쉬움이 드는 건 삐딱한 내 시선이 문제일까. 결말에 이르러 작가가 마감시한의 압박에 빠르게 짜맞춘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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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11-29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력의 최정점에 다다르면 그때부터 욕망은 회춘으로 방향을 틀더라고요.....

samadhi(眞我) 2015-11-29 16:32   좋아요 0 | URL
그쵸 다 가진 할배가 꿈꾸는 마지막 소망.

곰곰생각하는발 2015-11-29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부터 노망이 나서 뱀 잡아먹고 구러는 거죠... 뭐.. 정력이라면 뭐든지 먹으마.. 이런 마인드.. 캬, 진짜 끔찍함.....

samadhi(眞我) 2015-11-29 17:03   좋아요 0 | URL
그런 거 진짜진짜 무서워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끝까지 남아있는 징글징글한 욕망에 타오르는 느글느글한 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