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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
한창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소주 냄새 폴폴 나는 똥을 싸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제목만 봤을 땐 전혀 끌리지 않는다. 지저분한 데에서 자생(?)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어서 홍합에 대한 선입견이 강했다. 게다가 그 생김새 때문에 남자들이 몹시도 좋아한다는 얘기가 소름(?) 돋아 먹기가 더 꺼려졌다. 소주를 즐길 만큼 술을 잘 마시지도 못 하는데도 이 소설을 읽노라면 호기롭게 홍합 안주에 소주를 털어넣고 싶단 말이지.
홍합 공장 사람들의 애환을 그려낸 이 소설은 작가의 실제 경험이 녹록하게 녹아있다. 명절 대목 때 몇 번 일해보았던 떡집 일과 무척 비슷해 대충 일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대차 나오고 급속으로 얼렸다 냉장했다 등등 재료만 다를 뿐 일의 내용은 퍽 닮아있어서 소설 속 인물들의 고단함이 살 속으로 파고든다.
작가의 묘사는 얼마나 뛰어난지. 인간미가 진하게 녹아있어 문장에서 금세라도 물기가 배어나올 만큼 촉촉하다. 작가들의 묘사가 으레 작위적이거나 억지스럽기 마련인데 이 작가의 묘사는 그 풍경 속에 자연스레 빠져들게 하는 맛이 있다. 살아있는 문장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삶의 밑바닥을 온 몸으로 체험한 생활인의 냄새는 마음을 일렁이게 하지.
신풍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신풍으로 시집간 신풍이모를 생각나게 한다. 그 이모도 남편의 폭력 때문에 청력을 잃어서 강제로 사오정이 되어버렸다. "이빨에 고춧가루 꼈어" 를 "뭐 이쁘다고?"로 듣는 이모의 말은 서글픈데도 몹시도 우스워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굉장히 잔인한 짓인 줄 알면서도 모지리같이 웃어댄 것이 미안하다. 폭력의 피해자가 우스꽝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리는 세상은 불공평하고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누가 그이의 마음과 고통을 진심으로 알아주랴.
작가는 남편에게 맞고 사는 여자들에게 연민을 드러낸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똑똑 묻어나는 마음이 따사로워 가만히 눈을 감는다. 그저 화를 내고 따져들고 말 얄팍한 내 수준을 넘어 어떻게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 나아가는 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