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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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 것이 1995년, 대학교 2학년 - 실은 휴학중 - 때였더군요. 그 때 굉장히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도 있고, 덕택에 다음 해에 라틴어 수업을 들었던 기억도 있으며, 학점은 D가 나왔던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다시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던 생각을 이번 주에 드디어 실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이 책을 통하여 자신이 얼마나 중세 시대에 통달(?)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인 AD 1327년을 전후로 하여 벌어졌던 속권과 교권의 대립이라든지, 여러 수도사들의 대립과 그 가운데서 벌어졌던 많은 이단 논쟁들을 거의 8백여 쪽에 걸친 이야기 속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여내는지, 저자의 이야기 솜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는, 교권의 영향력이 조금씩 약화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르네상스로 연결되는 시대입니다. 자연스러운 변화에 대하여 로마 카톨릭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일들을 저질렀는지가 드러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마녀사냥을 통하여 헤게모니를 잃지 않으려는 시도들이 벌어지고, 그것이 첨예하게 대결한 이후에는 죽음의 흔적만 짙게 남아있는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헤게모니를 잃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장서관이라는 건물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납니다. 정해진 사람 이외에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공간. 지식을 탐하고 갈구하나, 허락된 지식 이외에는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수도원의 수도사들. 앎의 독점, 앎의 대상을 결정하는 권력. 그것이 바로 로마 카톨릭이 14세기 연간에 처한 상황이었으며, 그런 배수의 진을 치고 로마 카톨릭은 속권과의 대립에 마녀사냥이라는 칼춤을 휘두릅니다. 


이단심판관이야말로 헤게모니를 처절하게 휘둘러대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바스커빌 - 셜록 홈즈의 바로 그 - 의 윌리엄 수도사는 그런 이단심판관이었으며, 이 책에 나오는 베르나르 기라는 인물이야말로 이야기 속에서 이단심판관의 면모를 가득 드러냅니다. 빛 앞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나야 할 진실의 형체 앞에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어둠의 혼돈을 펼쳐, 드러난 진실의 편린 저편의 어둠을 마음껏 왜곡하고 비틀고 꾸며대어 마침내 거짓된 허상으로 심판하는. 이 책에서 드러나는 중세의 끝자락의 무자비한 희생은 바로 앎의 특권이 가지고 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별다를 것 없는 모습이지만. 


그렇기에 진리를 쥐고 흔드는 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헤게모니를 처절하게 지켜내는지를 보여주는 논쟁이 '웃음'에 대한 논쟁이며, 수도사들의 죽음을 통해 형체화됩니다.



기본적인 이야기의 흐름 - 수도사들의 죽음과 이 죽음을 파헤쳐가는 바스커빌의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 수련사 - 은 범인을 찾아나가는 추리소설의 흐름을 띄고 있지만, 그 와중에 벌어지는 등장인물간의 논쟁이나 대화들이 하나같이 저자가 가진 중세에 대한 지식 뿐만 아니라, 저자가 가진 다양한 현상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라서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이 책은, 중세의 끝자락에, 르네상스로 접어들기 이전의, 마치 여명이 다가오기 전 칠흙같이 어두운 바로 그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으며, 지식을 탐하는 사람들의 허위와 탐욕을 명징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참 읽을만한 책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자가 가진 이야깃꾼으로써의 면모도 익히 느낄 수 있게 하기도 하구요. 



얼마 전에 작가가 세상을 떠났지요.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오래 건강하게 사셔서 좋은 책을 많이 많이 내어주셨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여담이지만,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인 이인화 씨의 책, [영원한 제국]이 바로 이 [장미의 이름] 표절 의혹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기본적인 뼈대가 바로 [장미의 이름]과 굉장히 유사하다는데 그 이유가 있는데요. 표절 여부를 떠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강력한 왕권을 옹호하는 책에, 한 때 잘 모르고 반했던 기억이 씁쓸하게 다가오네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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