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지는 아이들 - 내면의 야성을 살리는 길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지음, 오필선 옮김 / 민들레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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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오늘날 어린 아이를 키우는 대다수 부모에게서는 상황을 실제 이상으로 위험하게 지각하는 현상이 매우 두드러진다. (중략) 공포를 지각한 부모는 겁에 질려 통제 모드로 돌변하고 아이들을 가까이 잡아두려 한다. 똑같은 지각이 육아에 관한 모든 결정에 침투해서 부모는 자녀가 병에 걸리거나 다치지는 않을까, 납치되거나 학대받지는 않을까, 학업에서 뒤쳐지거나 비행청소년이 되지 않을까, 그러다가 결국 실패한 어른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보낸다. (301쪽) 

한 때, 아이들을 야외에 데리고 나가면 흙도 못 만지게, 나무도 풀도 못 만지게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병균과 세균이 우글우글거리는데,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저널을 읽다가, 적당히 더러운 환경에서 아이들이 자랄 때 면역력도 생길 수 있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과보호가 아이들의 면역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 이후로, 야외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 아이들이 흙도 만지고, 모래도 만지고, 풀도 뜯어보고 - 너무 심하지 않은 정도에서 - 나무도 만져보고, 자유롭게 놔두고 있습니다. 고궁 같은 곳에 가면, 그래서 저희 부부는 건물 구경을 하고, 아이들은 흙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놀이터에를 가면 풀숲에 들어가서 풀을 뜯어다가 소꿉놀이를 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부모의 자녀 양육은, 특히 사회가 점차로 정보화 사회로 진전하고 있는 것에 비해, 무지의 영역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듯 싶습니다. 정보가 너무 많으니, 정보가 없느니만 못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죠.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 알 수 없는. 과잉의 사교육 투입 현상이 이러한 과도한 정보로 말미암은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는 주체요, 주인은 학생 자신인데, 그 과정을 결정하는 것은 부모인. 


그러나 대부분의 산업사회에서는 부모의 권위가 점차 약해지면서 "타자지향형 성격"이 두드러진다. (중략) 타자지향형 '부모'는 자녀에게서 인정받으려 하고 그 자녀 또한 부모에게서 인정받으려 하기 때문에 상황을 더욱 나빠진다. 이들에게는 내부지향형 부모가 누리던 육아의 자신감이 없고 자기 확신도 부족해 급기야는 동시대 타인과 참고서적, 대중매체를 지침으로 삼는다. 여기에 더해 수시로 쏟아지는 최신 양육법에 매달리지만 결국 양육법이 전수하는 기술적 내용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부모의 불안을 아이는 고스란히 받을 수 밖에 없다. (282쪽) 

결국 아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지만, 그것이 아이들을 심정적으로 안전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인 셈이죠. 그것이 어린 시절의 과보호로 시작하여, 청소년기의 "심리사회적 유예기(284쪽)" 내내 아이들을 보호의 울타리 안에서 양육하다가, 갑작스런 성인식을 통하여 급작스럽게 어른이 되었음을 알리고 마는, 그러한 양육 방식이 일반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의 독서에 대해서 큰 우려를 가진 지가 꽤 되었습니다. 제가 책을 좋아하는 탓인지, 저희 아이들도 책읽기를 즐기는 편입니다. 그런데, 큰 아이는 만화로 된 책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와이' 시리즈를 비롯하여 역사 만화도 좋아하고 과학 만화도 좋아합니다. 그런 탓에 글로 된 책을 잘 안 읽으려고 합니다. 아이를 위해 사놓은 비룡소 세계문학전집이니, 창비의 창작동화 대표선집이니 모두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네요. 이런 아이의 독서 습관을 고치려고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한지 모릅니다. 아이의 글읽기 수준을 위해서 말이죠. 그러나, 그냥 놔두기로 했습니다. 


아이의 선택을 믿고 존중해주기로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웬만하면 부모가 결정하는 것에 따릅니다. 언제까지냐하면 스무 살이 되기 직전까지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스무 살이 되면,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집니다. 혹은,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청소년같은 보호받는 삶을 살다가, 대학을 졸업하면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집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선택하는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지난 번 학부모 상담 때 오셔서는, 아이를 이제 학원에 보내서 중학교 선행을 시켜야겠다는 말씀을 하신 어머님이 계셨습니다. 그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자제분께서 1학기 1차 서술형평가 반 1등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살짝 당황하시더니, 그래도 중학교 수학이 어려운데 어느 정도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자제분께서 1학기 2차 서술형평가도 반에서 1등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크게 동요하시는 틈을 타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자제분의 역량을 믿고 있습니다. 어디에 가서도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어머니께서는 자녀에 대한 믿음이 크지 않으신가 봅니다' 결국 그 어머니는, 아이를 믿기로 하셨습니다. 학원 대신, 아이의 학습 역량을 믿어주기로 하신 것이죠. 


이 책에서는 부모가 아이들을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믿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할 것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고, 때로는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자녀를 믿어주는 것이, 결국은 자녀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과 지내보니까,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그래도 마음과 마음을 통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겉에 껍데기를 두른 채 서로의 속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한 채, 들어가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또다른 나로 서로 대하는 것과는 달리, 아이들에게는 제 진심이 통하는 그런 것들을 경험합니다. 아이들은, 제 마음을 알아줍니다. 저도 아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믿음을 투영한다면, 아이들은 그 믿음대로 자라갈 것입니다. 조금은 서툴고 조금은 위태로와보여도. 솔직히 어른은 안 그렇습니까? 겉 껍데기가 워낙 단단해서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른도 서툴고 위태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른들도 그렇게 스마트폰, 카톡을 끼고 살면서, 어린이들에게는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요 잘못이다, 어린이에게 '너희는 하면 안돼'라고 이야기하려면, 어른 먼저 절제하고 통제하는 모습을 보여야한다고 생각한다, 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희 아이들의 선택을 부모로써 존중해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선택지를 자주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에게는 일주일에 2천원씩의 용돈을 줍니다. 그리고, 사용은 마음대로 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리지만 - 초 3, 초 1 - 아이들은 자꾸 이렇게 저렇게 써 보면서 어떻게 써야할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이들을 마트에 데리고 갔는데, 큰 아이가 핫팩이 사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네 용돈으로 사라고 했더니, 아이가 살펴보고 와서는 사지 않겠다고 합니다. 왜 사지 않냐고 물었더니, 핫팩이 5천 9백원인데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경험을 통해 제가 아이에게 선택권을 넘긴 것에 대한 효용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저희 아이가 더 나은 독서 습관을 스스로 가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틀에 정해진 놀이만, 그것도 몇 가지 되지 않는 놀이만, 주로 매스미디어를 활용한 놀이만 주로 하고 있다는 우려를 전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어릴 때 얼마나 많은 다양한 놀이가 있었는지를 예로 들면서, 아이들이 자신들 스스로에 의한 다양하고 재미있는 독창적인 놀이를 회복해야 할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이 약간은 다릅니다. 매체의 발달은, 놀이 환경 자체의 변화를 가지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놀았으니, 너희도 이렇게 놀아라, 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아동에 대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의 변화에 맞게 아이들의 놀이 습관도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자의 매체 - 스마트폰, 컴퓨터 등의 - 를 통한 놀이를 제한하는 것에는 크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 스스로가 그 놀이를 선택했다면, 그 선택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컴퓨터 게임을 하려면 얼마든지 해도 좋다, 스마트폰이나 패드를 사용한 게임도 얼마든지 좋다, 그러나, 너무 많이 하면 눈이 나빠지는데, 눈이 나쁠 때의 불편함이 너무 크니까, 눈을 위해서 시간을 제한했으면 좋겠다, 고 말합니다. 아이들의 선택도 존중하면서, 아이들의 신체적 발달도 고려한 탁월한 아이디어라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 아이들은, 매일 컴퓨터 게임도 하고, 놀이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오늘 둘째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자기가 만든 놀이가 다섯 개 있다고 말이죠. 그리고 집에 와서 공깃돌로 언니랑 자기가 만들었다는 놀이를 하더군요. 아이들의 놀이는,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부모는 아이의 선택을 믿고 존중하며 아이 스스로 자신의 놀이와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하겠지만, 교사는 아이들의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는 아이들을 이끌고 앞장서야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양한 선택을 꿈꿀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부모가 교사를 믿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사와 아이와 트러블이 있을 경우, 부모가 아이를 받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저 아이들과 자주 이야기하되 알코올, 우울증, 폭력에 대한 화제까지, 그 범위에 제한을 두지 말라고 권고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장황하게 교훈을 늘어놓지만 않는다면 부모의 생각을 기꺼이 듣고 싶어 한다. 부모가 어떤 정보라도 아이들과 나누려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기댈 곳은 친구나 미디어밖에 없게 되고 마약 중개인에 의지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326쪽) 

작년에 학부모 한 분이 불시에 학교에 찾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아이가 집에 와서 선생님 원망을 하더라, 그래서 혹시 아이가 선생님께 학교에서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함부로 굴지는 않는지 걱정이 되어서 찾아왔다. 그 아이는 저희 반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행동하고 학습하는 아이 중에 하나였고, 늘 반듯하게 활동하는 아이어서 저도 좋아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아이의 글쓰기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교정하여주었는데, 아마 아이가 그것 때문에 약간 속상했는지, 집에 가서 선생님 원망을 한 것이었죠. 저는 그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아이가 선생님 원망을 하면 받아주십시오, 아이가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고 바깥에서 마음 상하는 일이 있을 때 돌아가야 할 곳은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그런 아이의 서운한 마음을 받아주시지 않으면 아이들이 갈 곳이 없습니다, 저는 괜찮으니까 아이가 담임 선생님에 대한 속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면, 너무 과하게 맞장구만 치지 마시고 받아주시고 공감해 주십시오. 


부모가 취해야 할 태도는 분명합니다. 아이를 믿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여 주는 것. 그것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존중한 자녀가, 서울대, 고연대를 못가면 어떻게하죠? 아이들의 성공이 어느 대학을 가는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벌이를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아마 이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실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네가 대학에 가면, 이 아닌, 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라고 말입니다. 대학에 가는 것도, 저는 아이의 선택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제 아이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말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적어도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여야 한다는 것이 옳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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