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방향 -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서울 최고古의 동네
설재우 지음 / 이덴슬리벨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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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것은, 구립도서관에서 이책 저책 뒤적거리다가 문득 제목이 눈에 밟힌 까닭입니다. 제가 서촌에 관심이 생긴 것은, 북촌/삼청동 때문이라고 해야할 듯 싶습니다. 경복궁 동편에 자리잡은 북촌과 삼청동. 언젠가 지인의 안내로 삼청동 정독도서관 앞을 다녀온 이후로, 북촌과 삼청동 쪽은 자주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경복궁 저쪽 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고, 무언가 저쪽 공간에도 볼만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에, [오래된 서울]이라는 책을 만났었습니다. 서울의 긴 역사를 담담하게 적은, 꽤나 볼만했던 그 책에, 서촌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덕택에 서촌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된 후, 이번에는 [서촌방향]이라는 책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오래된 서울]과 [서촌방향]을 비교해보자면, [오래된 서울]이 지적이라면 [서촌방향]은 감성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서울]은 서울의, 서촌의 600년 중에서 중요한 순간을 그 인물과 사건을 통해 전달해 줍니다. 그런데 비해 [서촌방향]은 서촌의 토박이로 30여년을 살아온 저자의 삶에 묻어있는 서촌을 보여줍니다. [오래된 서울]이 머리로 읽는 책이라면 [서촌방향]은 마음으로 읽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 [서촌방향]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첫 번째 장이었습니다. 첫 번째 장에는, 저자가 어린 시절 찍었던 서촌 배경의 사진을 현재의 모습과 비교하는 이벤트가 나옵니다. 배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사진 속 찍힌 디테일과 현재의 디테일의 차이가 드러나는 모습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오버랩되도록 하는 작업을 책의 첫 장에 소개하였습니다. 

가끔 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면, 지금과는 영판 다른 모습의 옛날 사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여기가 이런 모습이었나?' 싶은 사진들을 보면서 오묘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찌보면 지금 나의 시절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확인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서촌방향]에서는 저자의 이런 작업들이 책의 첫 장에 굉장히 인상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제가 도서관에서 책의 첫 장을 눈으로 훑고는, '이 책은 빌려야하는 것이 아니라 사야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는 결국 사게된 것은 이러한 까닭 때문이 그 뒤에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커피집에 앉아 책에 꼬박 집중한 한 시간 반 후 독서를 마치는 시점에서는, 살짝, '내가 이 책을 사야했었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독서자의 취향 탓이겠지만, 제게는 [오래된 서울] 같은 책이 더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촌방향]은 삶과 일에 대한, 먹을 것과 누릴 것에 대한, 시와 곳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멋진 사진들과 함께 짜임새있게 배치되어 있지만, 이것들이 독자의 공감대를 폭넓게 불러오기에는 저자의 주관적인 감정이 진하게 배어있는 편입니다. 

저는 저자의 서촌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걸음 정도 물러나서 이야기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에 너무 가깝게 다가서 있습니다. 덕택에 몇몇 이야기에 대해서는 독자가 다가서기 어려울만큼, 독자와 이야깃거리 사이에 저자가 끼어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방향을 가진 책이 가지는 어려움이겠지요. 저자의 뜨거움이 너무 심한 나머지 저자가 소개해주는 대상이 열기에 일그러져보이는. 

대신에, 한 편으로는, 책에 쏙 빠져서 읽을 수 있기도 하였습니다. 자주하는 독서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실은 그런 책을 요즘에는 거의 읽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저자의 뜨거움이, 위의 언급한 이유 때문인, 약간의 거부감을 동반하여 독자에게도 옮겨붙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그만 다 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책을 읽은 후에는, 그런데, 마음은 조금 차가와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된 서울]은, 머릿 속에 이야기를 우겨넣은 후, 서촌으로 발걸음을 옮기도록 독자의 마음을 뜨겁게 데워주는 책이었습니다. [서촌방향]은 오히려 서촌에 대한 생각보다는, 저자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부러움이었다고 해야하겠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곳은, 송파 인근입니다. 롯데월드 옆 아파트로부터, 주택단지들을 전전하며 살아온 제 삶 속에, 과거와 현재의 공명이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과거는 모두 사라져 그 흔적으로 찾을 수 없어 현재만 존재하나, 현재와 닮았으나 기괴한 모습으로 커져가는 미래만을 가진 곳. 저자에 대한 부러움은, 과거와 현재의 공존함 속에서,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었습니다. 

이 책은, 서촌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서촌을 누린 사람의 이야기라고 해야겠습니다. 참 부러운 일입니다. 그런 곳에서 과거와 현재를 보냈다는 것은 말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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