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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세계 (합본)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장영은 옮김 / 현암사 / 199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때, 대학가에서 철학 입문서로 많이 쓰였던 책은 이진경 씨가 쓴 [철학과 굴뚝 청소부] 였습니다. 철학사를 시대순으로 주욱 엮어, 아마도 20세기 전반기까지 다루었던 책으로 기억하는데, 생각보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철학사적인 접근 방식이 가지고 있는 난해함이 가진 숙명(!)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아무래도 고대 그리스 철학자부터 사람 중심으로 훑어 내려오는 서술 방식이, 연대기적인 친숙함을 안겨줄지는 모르겠지만, 철학자들이 사유하였던 주된 아이디어의 범주화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쨌든, 제가 대학을 다닐 때에는 [법철학회]라는 학회에서 활동을 했었기에, 저희의 견식이 짧아 법철학을 다루지는 못하고 철학 세미나를 했었기 때문에, 저희는 [철학과 굴뚝 청소부], 그리고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라는 정말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책을 텍스트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철학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선다고 사 두었던 책이 바로 [소피의 세계 1]이었는데, 일전에 온라인 서점 리브로가 교원 그룹으로 넘어가면서 모든 책을 50% 할인가로 팔 때, [소피의 세계] 합본이 생각나서 합본으로 다시 사 두었고, 결국 그 합본을 한 달여 동안 긴 호흡을 가지고 다 읽어 내었습니다.
[소피의 세계]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피 아문젠이라는 소녀에게 어느 날 의문의 우편물이 배달되기 시작합니다. 마법사가 모자에서 꺼내어 드는 토끼의 털 뿌리 쯤에 자리잡은 작은 벌레 한 마리가,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는 세계를 직관하기 위해 털을 부여잡고 꼭대기로 향해 올라오는 것을, 바로 철학한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우편물은, 결국 소피 아문젠과 알베르토 크녹스의 철학 수업으로 연결됩니다. 이 책은 두 사람의 철학 수업을 통해, 책을 읽는 독자들도 함께 철학의 중요한 사유를 함께 고민하도록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그 뿐이라면 이 책이 가진 이야기로써의 의미는 상당히 부질없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20세기 이전까지 철학자들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존재론과 인식론이었던 것을 상기시켜주려는 듯, 소피 아문젠과 알베르토 크녹스는 자신들의 세계가 현실 세계가 아니며 알베르토 크낙 소령이 자신의 딸을 위해 창조해 낸 소설 세계임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갑니다. 소피 아문젠과 알베르토 크녹스는 앨리스와 곰돌이 푸를 맞닥뜨릴 수 있던 그런 이야기 세계에서 탈출하여, 마침내 알베르토 크낙 소령과 그 딸 힐데가 사는 세계에 발을 디디고, 드디어 이야기와 현실이 교류하는 가능성에까지 이르는 그 순간에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철학 수업 바깥의 이야기를 통해, 아마도 작가는 철학자들이 현실과 현상을 인식하기 위해 사유했던 그 과정을 약간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과연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의미로 철학적인 사유에 이야기를 입힌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연대기적으로 철학적 사유와 철학자들을 만나보기 위해서는 더없이 적절한 입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유가 분절적이어서, 범주화 시키기가 곤란하다는, 연대기적인 철학 입문서의 한계는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데카르트와 흄, 스피노자와 버클리를 지나 칸트 쯤 오면, 범주화되지 않은 사유의 분절적 지식이 머릿속에서 서로 유리되어 방황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거기에 소설 이야기까지...
그래도 작가는 철학 교사 답게 철학적 사유를 쉽게 잘 풀어내었기 때문에, 철학자들이 사유했던 주된 것들을 이해하기에는 어렵지 않습니다. 몇몇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일전에 읽었던 강신주 씨의 [철학 VS 철학]에서 해당되는 철학자 파트를 찾아 참고하기도 했습니다.
워낙 철학을 시대순으로 엮은 책들이 많지만, 실제로 그렇게 접근하다보면 20세기 이후의 철학자를 조망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에서는 사유의 본질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연대기적인 철학 입문서는 20세기 이후의 사유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 접근하는 듯 보입니다. 이 책 [소피의 세계]도 키에르케고르를 끝으로 - 마르크스, 다윈, 프로이트 등 20세기 철학에 영향을 준 사람들을 잠시 언급한 후 - 20세기의 사유는 뭉뚱그려 훑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이런저런 철학 입문서를 읽어가고 있지만... 견문이 짧아 내내 읽는 책이 이렇습니다. 여러 다른 책들을 통해 철학자들의 사유에 조금 더 가까와지고 싶은 생각이 막 들기도 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