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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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그마치 500페이지짜리 책입니다. 두께도 보통 두꺼운 책이 아닙니다. 들고다니기에는 조금 벅찬, 그러나 책의 크기는 보통 우리가 들고다니는 신국판 사이즈보다는 작은, 문고판보다 조금 더 큰 크기를 가진 책이었습니다. 즉, 작고 뚱뚱해보이는 그런 책입니다. 

 

책은 정말 술술 잘 넘어갑니다. 이야기는 두 가지 사건을 교차하여 서술하면서 전개됩니다. 이야기 하나는 2005년 5월 2일, 알란 칼손이라는, 100세의 나이를 맞이하게 된 할아버지 하나가, 뒷방에서 늙어가는 것에 큰 회의와 고민을 가진 끝에, 자신이 기거하던 양로원을 탈출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또다른 하나는, 1905년 5월 2일, 알란 칼손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인생을 살아내면서 겪은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것입니다. 2005년의 이야기가 조금 진행되다가, 1905년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조금 진행되고... 이런 식으로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한 60여쪽을 읽고 나서 문득 떠올렸던 책이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떠올렸던 영화가 [포레스트 검프] 였습니다. 허구 속에 또 다른 허구가 자리잡은 듯한 이야기가 계속 펼쳐지는데, 그 허구인 듯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을 가로지르는 놀라움을 주는 이야기가, 제게 두 편의 다른 작품을 생각나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은 너무 재미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교훈이 되거나, 등장인물과 공명하거나, 혹은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은 아니지만, 어린이의 상상력으로 감성으로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을 유쾌하게 즐길 수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치 [말괄량이 삐삐의 모험] 같은 그런 느낌 말입니다. [포레스트 검프]는 처음 영화관에서 보았을 때, 참 감동하면서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포레스트 검프가 거친 질곡어린 삶, 그 속에서 그가 가진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눈과 마음을 통해, 역사는 물결쳐 흘러가지만, 사람은 여상한 모습으로 잠잠히 역사를 관조하며 서 있을 수 있는 존재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영화입니다. 물론 그 감동을 가지고 두 번째 집에서 보았을 때에는 그 감동이 밋밋하게 깔리는 그런 느낌을 받아 조금 속상했지만...

 

그러나, 이 책이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이나 [포레스트 검프]가 주었던 감동, 유쾌함에서 약간 비껴서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인공인 알란 칼손이 주로 하는 일은 원자폭탄 제조법을 알려주는 일입니다. 원래는 니트로글리세린 혼합법을 배웠더랬습니다. 그걸 가지고 일을 구하고, 사람을 사귀고, 스페인에 건너가서 프랑코를 만나고, 그의 소개(?)로 미국엘 건너가서, 구금되어 있다가 이민국 관리의 연줄을 타고 로스엘러모스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오펜하우어 박사에게 핵융합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후로, 알란 칼손은 가는 곳마다 그의 원자폭탄 제조 비법(!)을 전수합니다. 그의 모국인 스웨덴에서, 소련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알란 칼손의 인맥은 바로 원자폭탄이 만들어 준 인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씁쓸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책에서는 주인공의 우연과 걱정없는 성격이 그런 놀라운 경험의 밑바탕이 된 것인양 꾸미지만, 실제로는 주인공의 (원자) 폭탄 만드는 기술이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런 것에 대한 감정이 희미한 까닭은, 현재의 주인공 나이가 100살,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인양 여겨지는 그 어마어마한 나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 살 쯤 살면, 이제 속세(!)에서 홀연히 떠나 곧 아름다운 천국/이상향/낙원으로 접어들어야 하는 나이니까... 지금까지 지내온 것들을 모두 한 줌 먼지처럼 여기고는 다음 생애를 준비하기에도 바쁘니... 이제 그가 짊어지고 온 질곡어린 삶을 저멀리 던져버리자라고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줄 수 있는 것이죠. 과연 그럴까요? 백 살 쯤 되어서 자신의 그런 잔인한 삶에 대해서 어떤 회한이나 안타까움도 갖고 있지 못한 백 살의 노인을, 백 살 쯤 살았으니까 놔 줘도 되는 것입니까? 

 

이 책의 문제는 거기에서 출발합니다. 백 살 노인의 새출발(!)을 독자들은 모두 응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저지르는 불법, 살인, 그리고 일탈까지 모두 용서할 수 있는 것이죠. 심지어는 주인공이 현대사를 거쳐오면서 겪은 폭력, 전쟁, 이념의 대립, 투쟁의 장면까지도 모조리 희화화 되어버리고 맙니다. 유쾌, 상쾌, 통쾌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이것이, 이 책의 이야기 밑에 깔려있는 생각이라면 참 곤란합니다. 원자폭탄이면 어떻고 살상이면 어떠하리, 이제 주인공은 백 살 노인이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나가는 중에 있는 마땅히 응원받아야 할 사람인데. 이것이, 이 책의 주된 생각이라면 더욱더 곤란합니다. 19세기의 정신으로 20세기를 살아온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법과 제도와 질서 아래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19세기의 정신을 반성하고 20세기의 법과 제도와 질서를 냉철하게 평가하여, 21세기를 21세기 답게 맞이해야 한다는 현실인식입니다. 그냥 묻어버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는, 살아온 당대를 평가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백 살 노인의 새출발 노정에 스쳐가는 놀라웠던 인생길 정도로 평가해버릴 수 있는 20세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평가와 반성, 치열한 논쟁과 대립이 그동안 있어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을 더 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러나, 원자폭탄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인류의 삶에 가장 위협적인 물질이자 도구인 원자력이, 한 노인의 인생을 그렇게 화려하고 유쾌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은, 적어도 이 책을 쓴 작가의 윤리성에 의문을 제기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 연장선에서 주인공의 과거에나, 현재에나, 옆에 살던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가는 것은, 그 죽은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든지간에 상관없이, 책을 읽는 내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평가하지만, 책은 술술 잘 읽힙니다. 출판사의 서평이나 여러 독자의 평가대로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뿐입니다. 조금만 냉정한 눈으로 책을 바라보면, 더 이상의 평을 할 수 없는 그런 책입니다. 차라리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이나 [포레스트 검프]를 다시 한 번 보더라도 이 책의 유쾌함도 얻을 뿐만 아니라, 찝찝한 기분이 들지는 않을 듯 하네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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