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 규슈 빛은 한반도로부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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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엘 가야겠다, 라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된 것은, 동학년 선생님 한 분이 방학을 맞이하여 20일 정도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돌아보는 해외여행을 떠나시며, 옆 반 선생님은 11월에 결혼하시고 바로 1주일 동안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돌아보는 신혼여행을 떠나신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떠오르던 차에, 요즘 장안의 화제인 [꽃보다 할배]를 지속적으로 보고 있노라니, 프랑스를 가는 것은 박봉 신세에 쉬운 일은 아닌데, 일본 정도라면, 저가 항공사와 게스트 하우스를 잘 이용하여 비수기에 떠난다면 괜찮겠구나, 라는 생각의 꼬리 끝에 피어오른 한 떨기 꽃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여행의 목적은 역사적인 유물이나 유적과 관련된 것이어야하니, 기왕이면 일본의 천년고도인 교토 쪽으로 일정을 잡자, 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마침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규슈]가 나왔길래 얼른 사서 보고야 말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교토는 3권이라니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살짝 안타까왔지만, 조금 기다리면 3권도 보란듯이 나오겠죠. 



유홍준 교수의 책은 언제라도 실망한 적이 없었습니다. 제 20대의 가장 기억에 남는 독서라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꼽겠습니다. 역사를 지식으로, 머리로, 앎으로 좋아하는 이들은 많지만, 역사를 발로, 눈으로, 마음으로 받아내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그랬더군요. 이 땅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민족의 발자취를 좋아한다고 곧잘 떠들어냈지만, 막상 발로 거치고 눈으로 응시하고 마음으로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는 찰나에, 1995년엔가 처음 접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과 2권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조금은 관조적인 시선을 띄고는 있지만, 제 휴가의 대부분은 아직도 이 땅에 발딛고 살아간 분들의 흔적을 쫓아다니기에 여념이 없네요. 민족이라는 개념이 근대적인 개념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제국주의적인 사고라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그래도 나의 조상은 한반도 땅에서 지금 제가 사용하고 있는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비슷한 사고과정을 겪었을 가능성이 크니, 그 동질감이 작다고 하기는 어려움이 있겠지요. 그런 유홍준 교수가 일본 답사기를 써 냈습니다. 


일본편을 읽으면서 가장 깊이 생각했던 것은, 일본 역사에 대해서 참 무지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일제 강점기 탓에 일본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보니, 일본에 대한 이야기에 애써 귀기울이려고 하지 않은 탓이 가장 클 겝니다. 책을 잡고 가장 먼저 했던 행동이, '규슈가 어디지?' 라면서 애써 책의 안팤을 뒤적거리면서 규슈의 위치를 머릿속에 넣는 것부터 했어야 하니까요. 


 유형이든 무형이든 문화 유산의 보존에서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되는 것은 진정성이다. (p 317)

그렇게 쓰여진 일본편 1 규슈 - 빛은 한반도로부터, 는 규슈에 처음 발디딘 '도래인'의 흔적을 찬찬히 밟아나가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한반도 땅을 거쳐 일본에 새로운 청동기 문화를 이루어낸 야요이 인들,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 일본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 백제인들, 가야인들, 그리고 임진왜란 때 끌려가 생활도자 문화를 비롯한 일본의 도자 문화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 조선인들. 그렇게 현해탄을 건너 규슈 땅에 들어선 한반도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흔적을 통해, 일본 땅에 이루어진 문화에 한반도의 사람들이 기여한 것에 대한 자부심, 그러면서 그것을 받아서 더 나은 것으로 바꾸어내기도 한 일본인들에 대한 경탄이 이 책에 함께 묻어 있습니다. 


단순하게, 일본의 문화를 우리나라 것의 아류로 볼 것도 아니요, 일본의 더 낫게 평가받는 - 예컨대 도자 문화 - 문화를 함부로 폄훼할 것도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강력하게 그러면서도 조심스레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와 중국의 조공 문화를 그 문맥의 이해 없이 단순하게 갑과 을의 관계로 치환하여 낮추어보려는 시선과, 그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다양한 문화의 양상을 단순하게 중국의 아류 쯤으로 폄훼하는 시선을 준엄하게 그러면서도 조심스레 충고하고 있습니다. 


결국, 저자의 이런 생각 아래에는, 문화 유산을 바라보는 저자의 '진정성'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저런 감정으로 한껏 거칠게 이야기해대고 있지만, 그러나 당시를 살아낸 이들도 과연 그랬겠느냐, 그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영향을 받으면서 공존공생해나갔던 모습과 마음을 보면서, 저자는 진정성을 가지고 문화 유산을, 그리고 문화 유산이 드러내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옛 조상 사이의 관계를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책의 가장 좋은 점은, 모든 시각적 자료가 컬러라는데 있습니다. 물론... 요즘 나오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전부 컬러더군요. 그러나 1권부터 5권까지 당시에 사 보았던 제게는, 6권부터 바뀐 양질의 종이에 컬러로 된 인쇄가 썩 마음에 듭니다. 한껏 들뜰 수 있거든요. 


또한 저자는, 문화 유산에 얽힌, 혹은 문화 유산과 관련 없더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박하게 풀어내는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구절이 하나 나옵니다. 


도에 뜻을 두고, 덕에 근거하고, 인에 의지하고, 예에 노닐라.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遊於藝 (p 298)

문화 유산을 발로 찾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만지는 것이, 결국은 遊於藝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나 안타까웠던 것은, 저자가 일본과 우리나라를 이해시키려는 것이, 약간은 꼰대스러운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유홍준 교수의 '진정성'이라면, 충분히 별 말이 없어도 독자들을 이해시켰을텐데... 이 책이 나오게 된 시간적 배경인, 현재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학적 관계가 굉장히 좋지 않은 시기임을 인식하였다고 하더라도, 꽤나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독자를 '납득'시키려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잔소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같은 분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이런 책들을 써내려간다면, 양국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가깝지만 먼 관계성에의 인식이 자연스럽게 녹아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일본의 벼농사 및 청동기 시대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야요이 문화의 주요한 유적지인 요시노가리 역사공원을 다녀온 것, 그리고 일본의 도자 문화의 혁신을 가지고 온 조선 도공들의 삶의 궤적을 훑어 본 것, 그리고 일본 메이지유신의 중심지 가고시마 답사기, 그리고 백제의 왕족이 건설했다고 알려진 마을인 미야자키 남향촌 답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신석기라든지, 조선 도공의 발자취 같은 부분들이 일본 역사의 주된 흐름에서 비켜서 있는 부분인지라, 2권과 3권을 더욱 기대하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겨울에 교토를 다녀오려면 어서 빨리 3권도 나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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