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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생각의 역사 1 - 불에서 프로이트까지 ㅣ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피터 왓슨 지음, 남경태 옮김 / 들녘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책은 아마 번역/출간되었을 때 구매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읽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그리고 엊그제 드디어 다 읽어내었습니다.
이 책, [생각의 역사 Ⅰ]은 요즘 여러모로 유행하는 역사 서술 방식으로 기록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페인 내전]이나 [1차세계대전사] 같은 책이라면 어떤 특정한 사건의 추이를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은 [포스트워 1945-2005] 같은 책이라면 어느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장소에서 벌어진 일들을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권력의 조건] 같은 책이라면 어느 특정한 인물의 삶을 중심으로 하되 전기라기 보다는 인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와중에 [생각의 역사 Ⅰ] 같은 책이라면 특정된 사건과 특정한 장소, 혹은 특정한 인물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생각하는 특정한 키워드에 초점을 두고 기술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이런 방식으로 쓰여지는 역사 관련 서적이 점차로 많아지지 않나 싶습니다. 저희 집에만 해도 제 손길을 기다리는 [총, 균, 쇠]나 [지식의 역사] 혹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같은 책들이 있네요. 아, 이 책의 후속작일 것으로 생각하는 [생각의 역사 Ⅱ]도 저의 손길을 기다리면 다소곳이 책꽂이에 꽂혀 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폭넓다는 것을 먼저 꼽을 수 있습니다. 책 말미에 수록된 각주목록만 120여쪽에 달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주는 저자가 참고한, 혹은 저자가 읽으면서 영감을 떠올렸을 꽤 많은 책들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글 속에서도 저자는 다양한 인물의 견해나 주장 혹은 발견을 인용하거나 축약하거나 평가함으로써, 저자가 얼마나 다양한 견해들을 모아두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선가 한 번쯤 들어본 인물과 사건, 혹은 발견과 주장에 대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나오며, 그보다 훨씬 많은, 대부분은 처음 듣는 내용들이 계속 밀려들면서 독자로 하여금 글의 흐름을 곱씹으면서 읽어내려가도록 하는 재미를 책이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폭넓음은, 이야기의 주된 흐름이 서유럽에 제한된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서 인도와 동아시아, 아랍권과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안배하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류가 탄생하면서 지금까지 해오고 발전시켜온 다양한 '생각'들이 저자가 제시하는 키워드를 향해 동서남북 사방에서 몰려드는 것을 독서를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저자는 인류가 '생각'을 시작한 이래로 드러난 여러 사건과 경험과 주장과 발견을 크게 세 가지 키워드인 '영혼', '유럽', '실험'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의 다양한 정치와 경제, 종교와 사상, 발견과 주장들을 이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관통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장점으로는, 저자가 단순히 여러 '생각'들을 모아두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도 피력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예컨대, 책의 말미에 나오는 프로이트에 대한 경우, 저자는 다양한 '생각'들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생각'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생각을 잘 모아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누천년동안 이어져온 이래로, 모든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세계와 관계와 인간본연에 대해서 생각을 피력해왔고 그것을 다양하게 펼쳐두었습니다. 그러한 다양다종의 사유들을 잘 간추려만 놓아도 유의미할 것인데, 이 책의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다양함에 대한 명확한 견해도 표현함으로써, 독자가 흐름을 잃지 않도록 고려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천여쪽이 넘어가는 두꺼운 책임에도, 그래서 한걸음에 내어달리지 못하고 여러 걸음으로 나누어 달려도, 큰 줄기를 잃지 않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책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은, '여러' 사람들의 생각들 속에서 '하나'의 생각이 나온 것인지, 혹은 '하나'의 생각을 위해서 '여러' 사람들의 생각들을 가지고 온 것인지를 분간하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수많은 '생각'들이 처음 그 생각을 가졌던 이의 것에 그나마 가까운 것인지, 혹은 저자에 의해 사용하기 쉽게 가공된 것인지를, 실은 독자들이 알기 어렵습니다. 저만해도, 이 책에 등장하는 '생각'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난 것들입니다. 저자가 그것을 가지고 인류의 생각을 '영혼'과 '유럽' 그리고 '실험' 이라는 키워드로 꿰어 낸 것인지, 혹은 미리 생각해 둔 키워드를 위해 인류의 다종다양한 생각을 맞추었는지를 알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책들을 읽은 후에는, 반드시 1차 저작물로 가야할 것입니다. 이 책에서 인용한 바로 그 책들과 생각들로 가야, 더 실감나는 독서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종류의 책은 얕을 수 밖에 없다는 난점도 있습니다. 백과사전류의 책들이 그러하겠지만, 이런 책은,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새로운 탐험로를 발견하기 위한 자극물로써 접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이들이 이런 옅은 책을 통해 다른 지향점에 대한 도전을 받는 것이 더 의미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즉, 저같은 옅은 독자들은, 이런 옅은 책을 통해, 이것이 전부인 양 받아들이고 만족할 가능성이 크고, 그것이 (만에 하나) 왜곡되었을 경우에는 자칫 생각의 방향성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반드시 원전을 접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것이 저같은 옅은 독자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의 난점은, 저자의 글이 쉽고, 키워드가 명확하게 제시됨에도 불구하고, 그 방대한 양 때문에 갈래길에 대한 고민이 힘들다는데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자는 하나의 생각에 대한 여러가지 주장과 발견들을 제시하고는 자신의 키워드를 통해 가야할 길로 안내하지만, 워낙에 양이 많은 탓에, 여러 갈래길에 대한 고민보다는, 저자가 보여주는 길을 따라가기에 벅찬 부분을 꼽을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책은 생각의 역사인데, 독자인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면서 읽고 있더라는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잘 쓰여졌습니다. 읽고 나서 명확한 방향이 잡히지는 않지만, 종횡무진 지식과 생각 사이를 넘나드는 저자의 필력 덕택에 읽은 후에 '많이 알게 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언급한대로, 저자의 키워드가 설득력있게 와닿지는 못하고, 그냥 여러 지식과 생각 사이에서 겉돈다는 느낌은 난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의 번역자인 남경태 씨는 [개념어 사전]이라는 책애서 만난 바가 있습니다. 사고 나서 처음 읽을 때는 후회하였지만, 다 읽고 나서는 '잘 읽었다'고 생각했던 책입니다. [개념어 사전] 저자의 안목을 믿고, 이 책 [생각의 역사 Ⅰ]을 골랐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