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자서전 - 전2권 김대중 자서전
김대중 지음 / 삼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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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짧은 생을 돌아보면, 제가 처음으로 정치적 판단을 했던 것은 90년 1월 어느 겨울 눈오던 날이었습니다. 

한양대학병원을 갈 일이 있어 지하철을 타는 중, 가는 도중의 무료함을 이길 수가 없어서 구입한 스포츠신문의 1면 머릿기사는 '3당합당'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중학생 철없던 시절에 들었던 생각은, 배신감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그 나이에 어떤 정치적 스탠스를 띄고 있었다는 말은 당연히 아닐테죠.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라는 입장에서 나온 판단이 아니라, 당연히 한 편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의 변절, 그리고 남은 한 편에 대한 측은한 마음, 그것을 바탕으로 한 배신감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그 어린 시절에 제가 그렇게 큰 편없던 배신감을 느낀 이유를, 요즈음에 와서는 '원칙'없고 '상식'없는 행동에 대한 배신감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불의한 이와 한 길을 걷지 않는다는 원칙을 수십년간 몸으로 보여왔다고 하는 이가 보인 비상식적인 행위가 제 편모를 배신감의 원인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때 버림받은 이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그 후로도 그 전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걸어가시게 되고, 이 자서전은 그런 굴곡진 삶을 김대중 전 대통령 특유의 그 열정적인 목소리가 들리는 듯 리드미컬하게 기록해놓은 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의 궤적에 약간의 얼룩진 부분도 있겠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을 되짚어보자면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신 여든 여섯 평생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김대중 자서전(이하, 자서전)]에서 특히 대통령께서 한국 현대 정치사의 변방에 서계셨던 분이라는 사실을 특히 잘 읽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현대 야당사의 큰 줄기는 1948년의 신민당을 시작으로 민주당 - 신민당 - 평민당과 민주당으로의 분당을 거쳐서 면면이 이어져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제 2공화국때 잠시 정권을 잡았던 민주당의 비주류세력이었던 민주당 구파는 그 후 김영삼, 이철승 씨를 보스로 하여 그 세력을 유지하다가 1990년의 3당합당 이후로 현재 한나라당 세력으로 그 맥을 잇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찌보면 해방 이후 친일지주세력을 근간으로 등장했던 신민당 - 민주당 속에서 줄곧 비주류로 생활해오던 김대중 대통령께서 1971년 대통령 선거의 야당 후보로 출마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 전에 대통령께서 겪으셨던 여러 고난의 시절의 단 열매였으며, 이후 새로운 고난의 시절이 시작되는 단초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 까닭을 저는 대통령께서 줄곧 견지하셨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한 삶의 태도에 기인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물론 [자서전]에는 대통령 자신의 자화자찬격 서술도 줄곧 등장하며, 여러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실에 대한 설명(혹은 변명)도 있습니다. 그런 주관적 서술을 이렇게 저렇게 객관화시키더라도, 대통령께서 자신의 파란만장하며 치열했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줄곧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자세로 자신을 절차탁마하셨다는 사실을 폄훼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정치적 지도자(및 그를 자처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과연 대통령처럼 객관적인 결과물 - 여러 저술 및 저작물 - 로써 자신의 성가를 보여준 이가 과연 누구인지 우리는 그 답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그런 자신의 오랜 기간에 걸친 정치적 비전을 직접 통치행위를 통해 펼쳐보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께서 얻은 행운이자, 자신의 오랜 고난어린 정치생활에 대한 국민들의 인정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서전]이 특히 유의미한 것은, 국민의 정부 5년간 정부에서 추진했던 여러 정책들과 통치행위에 대한 대통령의 비망록으로서, 그 기록이 비록 언급한 바와 같이 주관적인 색깔이 있다고는 하지만, 지난 세월 우리가 경험했던 민주적 공동체와 지금의 답답한 현실의 대비를 통해, 국민으로서의 우리가 정치적인 선택 - 선거 - 을 할 때 어떤 기준과 잣대를 통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는 기록물이다라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1권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이전에 긴 고초의 시간을 기록한 책이라서, 약간의 정치사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조금 더 쉽게 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2권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의 기록이라서 글이 끊어짐이 좀 느껴진다는 - 사건들을 중심으로 기록하면서 대통령 개인의 입장을 피력하시는 방식으로 서술되다보니 - 느낌도 있으며, 특히 현 정부에 대한 팍팍함을 표현하시는 부분에서는 그런 느낌이 조금 더 강한 편입니다.  

그리고 대통령께서 기본적으로 유머러스하신 분이시다보니, 글 속에서 그런 부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의 사회적 흐름은 '말'의 위력을 저평가하는 입장이다보니, 유머러스한 부분이 '가벼움'으로 폄하되고, 진정성이 담뿍 담긴 연설같은 것은 '말만 잘하는' 행위로 깔아뭉게지지만, 대통령께서 순간순간 보이셨던 위트와 유머는 우리가 참으로 세계에 자랑할만한 위대한 정치 지도자를 가졌었구나, 라는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의 고난스러웠던 정치 입문기, 박정희 정권에 의해 자행된 납치와 살인 미수 사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1차 남북 정상회담 등 다양한 사건의 뜨거운 서술을 통해, 한국 현대 정치사의 파란만장함과, 그 한 가운데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셨던 대통령의 삶의 모습을 읽어갈 수 있어서 의미있는 독서였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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