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더디지만 신중하게 가는 이유. 특히나 공통의 상식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점차 옅어지고 있는 시대에는 더더욱.

『페다고지: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학』을 쓴 파울로 프레이리는 (중략) 민중을 해방시키는 건 새로운 내용으로 민중을 의식화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을 당하는 사람들이 역사의 과정에 책임 있는 주체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봤다.
책임 있는 주체가 되려면 (중략) 자녀를 때리지 말고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강연을 하던 프레이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생활하는 집이나 희망을 꿈 꿀 권리가 없는 삶,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에 관해 아는지를 묻는 농부의 질문을 받고 ‘계급적 지식‘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중략)
국민을 계몽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윤석열의 논리나, 극우의 세계관을 계몽의 빛으로 선도해야 한다는 논리는 다를까? 민주 시민 교육을 통해 극우 논리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좌경화된 교육 헤게모니를 탈환해야 한다는 우파의 주장과 또 얼마나 다를까?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알려 주마. 하며 음모론을 설파하는 유튜버들과는 또 무엇이 다를까?
자기 위치에 대한 자각 없이 뱉어지는 말들이 새로운 세계를 열긴 어렵다.
(중략)
일방적인 교육보다 대화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의 공통감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상식은 같은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각과 배경 지식인데, 지금은 그 상식이 무너졌다.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과 사용하는 언어, 해석의 기준, 가치 지향,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는데,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을 통해 인식과 세계관의 차이를 바로잡겠다는 발상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지금 우리는 세계를 새롭게 이름지으며 서로의 공통성을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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