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에세이에 대해서 좀 나이브하게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나이브한 에세이만 창궐해대는 시대와 공간을 살아가는 덕인지도.

이런 글(에세이라 불리우는, 노력하고, 시도하고, 시험하는 글)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주장 또는 서사라는 물길들과 글자라는 섬들이 한데 모여 한 편의 작품 혹은 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다도해가 된다. 페이지가 작은 만이라면, 글자는 그 위에 간격을 두고 떠 있는 부표다. 그리고 그 사이로 온갖 것들이, 설교가, 대화가, 목록과 설문이, 낱장의 인쇄물이, 한 편의 에세이로 여겨질 수 있는 한 권의 책이 흐르거나 가라앉는다. 수면 아래에는 그렇게 침전된 모래톱이 쌓여 있다. 에세이에서 특별한 억양이 들려온다면, 그 억양이 만들어지는 곳은 그 해저일 것이다. (중략)

나는 어떤 에세이, 어떤 에세이스트를 꿈꾸는가. 현실 속 저자든 상상 속 저자든, 이 장르(물론 에세이를 장르라고 부르는 건 전혀 맞지 않지만)에서 이미 실현된 본보기이든 실현 불가능한 본보기이든, 내가 그 저자와 그 본보기에게 바라는 것은 정확함과 애매함의 결합이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정의이기도 하다.) 또 내가 바라는 것은 가르치고, 유혹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형식, 이 세 가지 일을 균등하게 수행하는 형식이다. (마이클 햄버거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에세이는 형식이 아니며, 그 어떤 형식도갖지 않는다. 에세이는 에세이의 규칙을 창조하는 게임이다.") 사실 이는 에세이만이 아니라 예술이나 문학 전반에 요구되는 조건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하나의 범주가 모두를 대표하고 있으며, 내가 모든 예술 형식에 바라는 것을 이 범주가 정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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