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근대건축 - 어두운 역사를 위한 유용한 지도
박고은 지음 / 에이치비프레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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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충정로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로 일컬어지는 충정아파트를 바깥에서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 그 날은 좀 걷는 날이었는데, 복개천 위에 놓여진 서대문아파트를 둘러본 후 충정아파트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건물 내부로는 들어가보지 못했었습니다. 입구 앞에 붙어 있는, ‘거주자 외 출입금지‘ 푯말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살짝, 중정이 놓인 곳까지는 다녀왔는데, 고풍스럽게 나이들었다기 보다는 쇠락하여 남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충정아파트가 헐린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아파트로 지어진 건물이라 보존 가치가 있다고 나름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를 달리 생각하는 분들이 더 많은가봅니다. 이 책의 저자에게, 이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이 책은, 논쟁적인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 한복판에는, 이미 헐린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습니다. 저는, 조선총독부 건물이 중앙청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이던 시절, 여러 차례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 내부를 들어갔을 때 널찍한 홀과 고풍스러운 계단, 홀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 선 난간과 전시실을 보며, 그 규모와 모양새에 놀랐던 기억이 선연합니다.

저자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일제 강점기 하 치욕스런 역사의 상징물이라고 하여 이를 허물어 버린 것에 대해 부정적인 뉘앙스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건축물의 변화 과정을 이어볼 수 있는 근대 건축물을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적산‘이라 부르거나 허물어 버리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조심스레, 하지만 내내 밝히고 있기도 합니다. 조선 시대 궁궐은 복원하면서 일제 강점기의 건물은 허물어뜨린다면, 우리나라 건축물의 변천은 한옥 다음 빌딩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아쉬워하며.

저도 저자와 같은 생각입니다. 단, 조선 총독부 건물만 빼고. 효율성의 논리로 역사적 가치를 매몰시켜버리는 것에는 큰 아쉬움이 있습니다. 역사적 상징성을 가진 건축물은 복원하여 보존하는 방향으로 문화재 정책이 정비되면 좋을 듯 하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역사적 상징성에 대해 조금 좁고 엄밀한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특히 육백년 수도였던 서울에 중요성을 지닌 건축물이 많기 때문에, 보존보다는 개발과 이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지방을 돌아다니다보면 굳이 허물 필요 없어 남겨진 많은 건축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목포 같은 곳은, 시내 중심지가 옮겨간 덕에 구 시가지는 적산 가옥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구룡포 같은 곳은 일식 가옥을 복원하여 근대 거리로 꾸며두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서울의 문제입니다. 남겨두려면 한도 끝도 없이 남겨둬야 하기 때문에 옥석을 더 엄밀하게 가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무리 경제적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꼭 두어야 할 것은 어떻게든 남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조선 총독부 건물은 허물어야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상징물로, 비록 우리나라 현대사를 관통하는 - 제헌의회, 정부수립, 9·28 수복 등 - 상징물이기도 하지만, 조선 총독부는 보존 가치 이상의 상징물이기 때문에 경복궁 앞에서 치워야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일본 관광객들이 경복궁 관광을 왔다가 국립중앙박물관을 들르면서 ‘이 곳이 예전 한국을 식민 통치하던 중심지‘라는 안내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더더욱 이 건물은, 이전도 아닌 철거가 맞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책에는 일제 강점기 하에 지어진 건물 사진을 굉장히 많이 수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철거된 건물 사진들 뿐만 아니라 주요한 건축물에 대해서는 당시와 현재 위치 정보까지 설명하고 있어 굉장히 의미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주요한 건축물의 역사와 정보 또한 세세하게 소개하고 있어 이런저런 책에서 필요에 따라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여러 근대 건축물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있다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일제 강점기 하의 건축물에 쏟은 지면보다 상대적으로 해방 이후 및 개발독재 시대의 건축물에 대한 안내는 빈약한 편입니다. 일제 강점기 하의 건축물이 해방 이후에도 이어진 덕에 이에 대한 소개를 앞 부분에서 해 버린 때문도 있겠고, 해방 이후 및 개발독재 당시에 쏟아낸 건축물에는 상대적으로 가치를 덜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중앙정보부 석관동 청사 건물 같은 것은 책의 흐름과는 조금 비껴 서 있는 소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꼭 소개하고 싶었던 - 최종길 교수 의문사 -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에 지면을 할애했을 수도 있어 이 부분은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나, 그렇다면 전체적인 볼륨을 두텁게 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그럼에도, 요 근래 읽은 책 중에 제일 몰입해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서울 촌놈(!)으로서, 서울 구경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제 입장에서, 서울에 포커스가 맞추어진 건축물 이야기라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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