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조던 엘렌버그이다.

이 책의 1장은, 수학을 배우는 이유로 유클리드의 공리를 언급하면서, 세상의 비증명 - 비합리 - 에 스스로 맞서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뭐, 스스로 확신에 차서 이리저리 떠들어대는 일을, 수학을 통해 조금은 덜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그러나, 이를 위해 우리가 교실에서 하는 수학적 논리 구축이 때로는 너무 과도하지 않나 하는 이야기도 아울러 하는 듯 싶다. 수학의 두 날개 중 하나가 직관인데, ‘탁 보아 알겠다’ 같은 이야기를 너무 도외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10년간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이런 저자의 생각과 같은 것을 점점 더 느끼고 있다. 예컨대, 분수의 나눗셈을 풀기 위해 그저 나누기 분수를 곱하기 분수의 역수로 고쳐 풀어도 된다고 가르치는 것을 왜 망설이느냐는 말이다. 억지로 논리를 만들게 되고, 그 논리를 잘 ‘알고’ - 이해하고가 아닌 - 있는지 물어보게 되고, 그러다보니 알고 있는가를 평가하게 되고, 빈 칸 넣기 같은 문항을 통해 억지 논리를 외우게 만드는 것이다. 그걸 못 해내면, 나누기 분수를 곱하기 분수의 역수로 만들 수 있더라도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는, 수학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낙인찍어 버리는 것이다.

수학은, 직관을 키우는 학문이기도 할 필요가 있다. 옳고 옳지 않은 것을 바로 알아낼 수 있도록 해 줄 필요도 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을 논리성의 사슬로 얽어 맬 필요는 없다는 것이, 이 책의 1장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바라고 생각하고,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하학자 앙리 푸앵카레 Henri Poincare는 1905년에 쓴 에세이에서 수학적 사고의 필수불가결한 두 기둥으로 직관과 논리를 지목했다. 그는 모든 수학자가 둘 중 한 방향으로 기울어지는데, 그 중에서도 ‘기하학자‘라고 불리는 사람은 직관 쪽으로 기울어진 수학자라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양쪽 기둥이 모두 필요하다. (중략) 그러나 직관이 없다면 기하학의 주제가 모든 풍미를 잃게 된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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