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가는 계단 - 제23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동화 부문 대상 수상작 창비아동문고 303
전수경 지음, 소윤경 그림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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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 특히 소설책이 무언가의 담론을 제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읽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온작품읽기 수업 장면을 담은 글들을 통해 그런 모습들을 간혹 볼 때가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책읽기는 어떨까요?


그 효과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반대하는 방식입니다. 이야기를 접하는 많은 방식이 있지만, 저는 전통적인 방식인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 이야기가 펼치는 사건사고들, 그리고 이야기의 끝이 도달하는 점까지. 저는 이야기가 흘러가는 그것에 집중하고 몰두하고 싶습니다.


이 방법이 전통적이라는 말은, 아마도 이 방법이 고래로부터 전해온, 쉽게 통용되는 방법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습니다. 왜 이 장면에서, 작중인물은 이러한 선택을 하였을까. 그의 내심에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우리가 사건과 인물을 아울러 넘겨다 보는 것은, 그렇게 보았을 때 혹여라도 보일 수 있는 '나'를 발견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소설은 등장인물과 독자가 공명하며 함께 공감을 이루어갑니다.


그래서 책을 읽히는 방식도, 한 번에 읽히기를 좋아합니다. 소설 구조를 설명하는 전통적인 구조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입니다. 어린이들은 책을 읽어가면서 한 번에 이야기의 산을 올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부분부분 나누어 읽는 것은, 어린이들의 몰두를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즉, 이야기는 이야기 본연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주욱 따라가며 단번에 몰두하여 읽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의 읽기는 이것이 되면 좋을 듯 합니다.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챕터마다 주된 과학적 현상이나 이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물론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주인공이라, 혹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간추렸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아주 어렵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양자역학이나, [코스모스], 슈퍼문 같은 일상의 과학 이야기가 꾸준하게 나오지만, 그저 부담없이 읽을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읽히고자하는 교사에게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본연보다 주변에 집중하는. 즉, 이걸 읽히고 과학 이야기를 좀 해 볼까나? 사실은 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본연에 집중하지 못하더라도, 초등학생이 가질만한 과학적 소양이라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게 고른 책들이, 특히 그것이 교사에 의해 수업 시간에 읽히기 위한 것이라면 재고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야기가 어린이들에게 주는 효용이 무엇입니까.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몰입입니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과, 사건들 속으로 깊이 몰입하는 것. 그래서 저도 초등학교 때, '5학년 3반 청개구리들' 같은 책을 읽으면서 그 이야깃속 많은 에피소드들이 내게도 펼쳐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면서 유년기를 보낸 기억이 납니다.


교사가, 이야기를 도구로 소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특히 교사에 의해 함부로 사용된 이야기라면, 아마 어린이가 다시 읽을 마음을 쉽게 가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우리가 수업 혹은 강의 때 사용한 교재를 웬만하면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우리 어린이들에게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학은, 소설은, 이야기는 그러면 안됩니다. 어린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즐겁게 읽은 이야기는 다시 읽고자 할 때 꺼내어들면 좋다고. 얼마 전, 다시 읽었던 [폭풍의 언덕]과 [제인 에어]가 생각납니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그저 이야기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과학소설은 아닙니다. 충분히 의미있는, 어린이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이 아래로는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의 화자인 지수는 부모와 동생을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잃은 초등학교 6학년 학생입니다. 지수가 [월간과학]을 구독하여 읽고, 천체물리학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바로 사고로 가족을 잃은 그 사건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날, 가족 잃은 쓸쓸한 집에서, 지수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통해 '평행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와 똑같은 모습, 그러나 조금 다른 삶이 펼쳐지고 있는 곳. 지수는 평행우주 이야기를 통해, 다른 우주에는 자신의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열심히 과학을 공부해 갑니다. 그리움입니다.


그 그리움의 다른 한 끝은 701호 할머니에게 맞닿아 있습니다. 미스터리한 그 할머니는, 평행우주의 다른 쪽에서 이 쪽으로 건너온 이입니다. 할머니의 모험 또한, 그리움에 맞닿아 있습니다. 충남 보령으로의 여행. 그리고 할머니는 지수에게 말합니다.


"여기엔 없더구나."


아직 어린이들에게 그리움이란, 큰 부피를 차지하는 인생의 부분은 아닙니다. 우리 속에서 그리움은, 더깨 앉은 세월의 흔적 만큼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주인공인 지수는 너무 어린 나이에 큰 그리움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에 자신의 가족이 큰 흔적을 남기기도 전에, 더 이상의 흔적을 가질 수 없게 되어버린, 초등학교 6학년.


어찌보면, 우리는 아마도 우리 어린이들의 그리움에 크기에 대한 큰 오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만나는 어린이들, 그들의 속에 잠겨있는 그리움의 크기를 오롯이 들여다 볼 수도 없으면서, 어린이들이 무슨 큰 그리움을 가지겠어, 라며.


이 책은, 우리 어린이들의 속에 쌓여가는,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혹은, 우리 어른이 가진, 잃어버린 것들을 향하고 있는 간절함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그리움이 바탕이 되어, 지수와 할머니의 관계의 끈은 맺어집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지수에게는 민아와 희찬이라는, 우정의 관계의 끈이 또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계단 사이사이에서 만나는, 옅고 가늘지만, 지수를 지탱해주는 문 뒤의 삶들.



이 책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밝히지 않지만, 사실 모든 것을 조금씩 보여주는 세련된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읽으면서, 701호 할머니(오수미)가 다른 우주로부터 왔다는 것을 드러내는 부분들이 더 잘 보였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의아하게 느껴졌던 것이. 이 책이 내러티브를 흘려보내는 방식은, 미스테리함을 담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몰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수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방식 또한 같습니다. 왜 부모가 아닌 삼촌과 살까, 라는 궁금증을 천천히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몰입도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큰 불행이라고 여겨지는 과거 앞에서도 지수가 가지는 덤덤한 태도는, 요즘 초등학생들의 모습과도 오버랩되곤 합니다. 아마 실제로는 덤덤함이 아니라, 너무 갑작스레 닥친 상실과 절망이 그저 몸에서 충분히 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몸 속에 다른 구획 속에 절망과 상실이 들어앉아 있기 때문에 드러나는 덤덤함일 수도 있지만. 그런 부분 때문에 이야기가 조금 더 독자의 마음에 세밀하게 찾아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2025년 케임브리지를 꿈꾸는 지수의 모습으로 끝이 납니다. 더 이상 보탤 수 없는 것에 대한 쓸쓸한 그리움이 아니라, 앞으로 가득 쌓아올릴 것에 대한 기대와 동경이 담긴 꿈.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보태주어야 할 것은, 자신의 인생에 무언가를 가득 담을 수 있다는 희망이어야 할텐데, 혹시 우리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지나간 삶을 자꾸 뒤돌아보게 만들면서 희망도, 기대도, 꿈도, 동경도 잃어버리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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