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음...<까해만>에 등장하는 여왕들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만큼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그중에서 딱 하나만 고르라니...무척 곤란하고 어려운 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뿌앵~T-T 다 고르면 안 되는거임!?!) 어쨌든 최애퀸을 골라야만 한다니, 고르긴 고릅니다.



  두구두구~ 제가 맘에 드는 여왕 후보는 1번 척추퀸, 2번 프린세스 레드, 7번 심장퀸 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선호하는 여왕은 바로~~~ 6번 신경퀸!!! 빰빠라밤~ 제가 '신경퀸'을 최애퀸으로 선정한 까닭은 그녀의 예민한 성격 탓인데요. 안 뽑아주면 제 허리디스크의 신경을 콕콕 찔러서 아프게 한다능....쿨럭쿨럭



  <까해만 2>, 곧 출시됩니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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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중록 2 아르테 오리지널 2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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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극로맨스에 미스터리추리기법을 섞어 버무렸다고 소개하는 것이 어울리려나? 어쨌든 이 책을 소개한다면 그쯤이 딱일 것이다. 혹시라도 아직 읽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구르미 그린 달빛>에 <명탐정 코난>을 접목시켰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 듯 하다. 왜냐면 '환관 탐정'이 등장하는데, 사실은 '남자'가 아닌 여인이 신분을 감추고 활약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시 여인'이 자신이 연루된 살인사건의 내막을 밝혀내기 위해 잠시 '대당 황제의 넷째 동생'인 기왕과 연을 맺고 알콩살벌한 로맨스살인사건을 해결하며 감춰진 진실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 배경으로 보자면 '당제국의 멸망'과도 연관을 짓고 있어서 대체로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여 마냥 상큼발랄한 로맨스가 펼쳐지지만은 않는다. 그건 소설의 대단원에 장식될 내용이니 잠시 뒤로 미루어 두겠다.

 

  1권에서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왕 황후의 친딸에 얽힌 비극적인 서사가 주된 내용이었다면, 2권에서는 왕 황후를 대신해서 황제의 곁을 지키고 있는 곽 숙비와 그의 딸 동창 공주가 핵심 인물로 등장한다. 1권에서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인물과 얽힌 복잡한 줄거리를 연이어 벌어지는 살인사건과 진범을 찾기 위한 황재하와 이서백, 그리고 주자진의 치밀한 범죄수사가 핵심 줄거리를 제공하고 말이다. 또한, 1권에서는 '딸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2권에서는 '딸들을 향한 각색의 아버지의 사랑'이 더욱더 복잡하게 얽혀 독자로 하여금 숨막히는 서스펜스를 만끽하도록 배려하였다.

 

  이처럼 2권의 매력은 '진범찾기'를 떠나 극중 등장하는 세 명의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에게 어떻게 사랑을 보여주는지가 진국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책을 읽는 매력을 최대한 느끼기 위해선 결코 결말을 미리 까발리는 스포일러를 자제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리뷰의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 '결말'을 미리 공개하고, '세 아버지가 보여준 사랑의 차이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걱정하지 않는 까닭은 나도 이 책을 '두 번째' 읽었는데, 읽는 도중 '결말'을 전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사건 수사가 복잡하다는 점이다. 분명히 읽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과감히 스포일을 하더라도 이 책의 재미가 크게 반감될 거라 여기지 않고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2권의 핵심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세 명의 아버지는 각각 '황제', '여지원', '전관색'이고, 각각의 딸도 '동창 공주', '여적취(아적)', '동창 공주의 시녀'다. 아버지의 직업과 신분도 각색으로 당나라 최고 권위자인 '황제', 밀랍으로 초를 만들고 화려한 채색을 넣을 줄 아는 예술가 겸 '장인', 여러 가지 물건을 사고 팔아 이윤을 남기거나 수로 정비 등 다양한 공사를 관리감독하며 돈벌이를 하는 '상인'이다.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딸'이 있었다는 점이며, 그 딸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 딸들에게 불행을 선사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동창 공주는 황제의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에도 어처구니 없게 연쇄살인사건의 희생양이 되며, 여적취도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천대와 구박만 받다 가장 더럽고 못난 '문둥이 노총각'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자결을 시도했으며, 전관색의 딸도 집안이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릴 적에 궁궐로 팔려나가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간신히 살아남은 비운의 여인이었다. 이렇게 세 아버지와 세 명의 딸이 간직한 인생역전만 따져 물어도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질 수 있겠지만, 가혹한 운명은 이들에게 '연쇄살인사건'이라는 비극까지 안겨주어 '딸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무색하게 만들고 말았다.

 

  보통의 아버지들은 딸과의 관계가 어떨까? 대부분의 아버지는 딸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기 일쑤다. 그 증거로 딸의 결혼식장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아버지들을 들 수 있다. 또한, 사위에 대한 적개심(?)을 감추지 않거나, 아빠 말고 모든 남자는 '늑대'라는 밑도 끝도 없는 억측을 딸에게 주입시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명쾌한 증거들이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가 물색없이 딸을 사랑한다는 빼박증거들이다. 그러나 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아버지의 사랑의 증거들은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이 또한 명백한 증거로 거의 모든 딸들은 '중학교'에 입학과 동시에 아빠와 멀어지기 시작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어릴 적에는 아빠밖에 모르던 딸이었는데, 딸이 성숙해짐과 동시에 아빠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십상이다. 더 큰 문제는 딸이 아빠와 점점 멀어지는 이유가 '아빠'에게 있는데도, 정작 당사자인 아빠는 '그 이유'를 도통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도대체 아빠들이 모르는 것이 무엇일까?

 

  다시 소설속으로 들어가보면, 황제는 사랑하는 동창공주가 어릴 적에 우연히 일어난 불의의 사고로 '도자기 파편'에 손을 다치는 일이 발생하자 공주가 머무는 '공간'에서 도자기로 만든 물건을 싹 '제거'해버리는 일을 감행한다. 한편, 여지원은 자신의 손재주와 가업을 이을 '아들'을 얻기 위해 무진 애를 쓰지만, 슬하에 얻은 자식은 여적취라는 딸이 유일하다. 그래서 입만 열면 '아들타령'을 하면서 딸에게 모질고 쌀쌀맞게 대할 뿐이었다. 그런 딸이 불의의 사고로 '성폭행'을 당하고, 그 사실이 온동네에 퍼지자 집에서 내쫓고 새끼줄을 던져주며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자결을 하라는 무뚝뚝한 말만 할 뿐이다. 전관색도 다를 것이 없다. 온가족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자 맏딸을 팔아서 마련한 장사밑천으로 삼았고, 훗날 부유해지자 뻔뻔스럽게 내다 판 딸을 찾겠다며 궁궐에 소식통을 전했고, 그런 연줄로 또 다른 장사잇속을 챙기려 했던 인색한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세 아버지 모두 '딸의 의견'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방적'인 아버지의 사랑(?)만 전하려 했다. 그 결과가 각자의 딸들에게 '불행의 씨앗'을 심어줄 뿐이라는 걸 전혀 인지하지도 못하고, 애써 자신을 감싸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의 아버지들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딸에게 무한사랑을 베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정작 '딸의 생각'은 묻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아빠가 우리딸 정말 사랑하는 거, 알지?"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딸의 취향에도 관심이 없고, 성장하는 딸의 변화에도 관심이 없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선물만 퍼다 나를 뿐이고, 집을 떠나 '사회생활'을 하려는 딸이 겪는 고민과 아픔, 그리고 인생이 바뀔 사랑과 결혼, 그리고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한 걱정거리를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안식처'를 바라는 딸들의 소망을, '아버지의 권위'로 일축하며 헛발질을 해버리는 아빠의 사랑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딸들의 서운함을 말이다.

 

  소설속 황재하도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아버지의 명령에 어린 딸은 고집으로 맞서고, 급기하 '단식농성'에 들어가자 그런 딸을 아버지는 굶기라 했고, 그런 딸을 어머니는 안타까워서 아버지 몰래 음식을 챙겨주자 황재하는 울먹이며 받아먹다가, 저 멀리 나무 뒤에 숨어서 딸이 음식을 먹는지 확인하다 그 장면을 딸에게 들켜 머슥하게 뒤돌아가는 기억을 말이다. 이미 아버지는 독살을 당해 죽고, 다 커버린 황재하는 그런 아버지를 떠올리며 자신의 아버지가 최고였다고 읊조린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권위적인 아버지에게도 그런 여린 갬성(?)이 감춰져 있다고 황재하는 말하는 것일테다.

 

  하지만 아버지들도 고충은 있다. 거친 남자들의 세계에 길들여져(?) 눈물조차 흘려선 안 되는 모진 존재로 강요만 당하다 풍부한 갬성의 소유자인 딸을 만나면서 무장해제를 넘어 '무장해체'가 되어 버리는 아버지가 겪는 당혹감이 바로 그것이다. 아버지는 딸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정작 딸이 바라는 아버지는 강인함 속에 부드러움을 갖추고, 시크(차가움)하면서도 따뜻하길 바라고, 세상 그 어떤 여자보다 딸을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매니지먼트가 되어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딸이 바라는 행복을 위해서 무한헌신을 하길 바란다. 굉장히 비현실적이지만 '딸의 마음'은 그렇다는 말이다. 그걸 아빠는 결코 모른다는 점이 '최고의 고민'이다. 왜냐면 아빠들은 '비현실'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풍파에 쩔어버려서 말이다.

 

  어쩌면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결코 풀 수 없는 숙제와 같을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살아가는 아버지와 비현실세계를 오가는 딸 사이를 이어줄 '연결고리'가 없다면 말이다. 그 연결고리는 마법의 주문일지도 모르겠다. 바로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하지만 사랑하는 거 알지?"라는 말이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꿈 많은 소녀에게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이루고 싶은 것은 많은데, 그 많은 것중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딸이 맞닥뜨리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딸들도 스스로 그 경계를 조율할 줄 알게 된다. 성장과 성숙이라는 드라마는 딸들에게 그 경계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할 거면 하고, 말거면 말라고 타이르기 때문이다. 이때 아버지의 역할을 딸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주는 것이다. 딸이 스스로 해야할 것조차 아버지가 '대신' 해주라는 말이 아니다. 옆에서 응원해주고, 성공하면 최고로 기뻐해주고, 실패해도 곁에서 위로해주는 역할이면 충분하다. 비단 딸에게만 해당하는 해법은 아니지만, 이 세상 모든 딸들이 바라는 가장 멋진 아빠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2권에서 보여준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새삼 관심집중이 된 까닭은 내게도 자식이 있다면 딸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 딸이 무럭무럭 자라고 아픔과 슬픔을 이겨내고 성공과 행복의 기쁨을 최고로 만끽할 때, 그 옆에 있어주는 아빠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번 생에는 할 수 없는 꿈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3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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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단편선 1 클래식 레터북 Classic Letter Book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권희정.김은경 옮김, 이일선 그림 / 인디북(인디아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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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예능프로그램 <느낌표>에선 굵직한 '교양프로그램'을 진행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이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25권의 책을 선정해서 온국민들에게 '독서열풍'을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지만, 2003년 당시, MC 김용만이 불미스런 일로 방송계 하차를 했었고, 좋은 취지였음에도 '특정 출판사', '특정 도서'만의 판매고를 올려준다는 부작용도 낳았으며, 예능방송에 재미를 주기 위해 '팩트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방송을 내보내 구설수에도 많이 올랐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스마트폰도 출시되기 전인데도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온국민 독서인구도 최저, 1인당 독서량도 최저였던 관계로 '독서교양예능'이 선보이자 온국민의 관심이 쏠리면서 '독서'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던 뜻깊은 방송이었다.

 

  그때 열다섯 번째로 선정되었던 책이 바로 이 책 <톨스토이 단편선>이었다. 물론 이 책은 '개정판'으로 나와 처음 선정된 책과는 '목차'가 다소 다르긴 하지만, 그 시절에 읽었던 추억과 감동은 여전할 수밖에 없었다. 온국민이 '같은 책'을 읽는다는 느낌은 그런 추억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감동을 주었다. 2002년 월드컵4강 신화와 더불어 온국민들의 마음속에 뜨겁게 남겨진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책을 20여 년만에 다시 꺼내 제자들과 함께 읽으니 색다른 추억거리를 만들게 되기도 했지만, 그 시절과 사뭇 다른 느낌이 느껴져서 마음이 싱숭생숭하기도 했다.

 

  톨스토이의 소설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깊숙이 깔려 있다. 어느 단편소설이고 그 밑바탕에는 오직 주님의 은총으로 하늘엔 영광이 있을 것이고, 땅에는 평화가 복음과 함께 널리 퍼질 것이라는 믿음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당시에는 짙은 '종교색' 덕분에 읽으면 마음 따뜻해지는 감동만 어렴풋이 느꼈을 따름이었다. 헌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톨스토이의 소설에는 진한 '사회주의 사상'이 묻어났다. 무엇보다 '노동의 가치'를 최고로 치고, '노동으로 얻은 대가'를 모두와 함께 골고루 나누어 갖는다는 골자가 아로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톨스토이가 '러시아혁명'에 깊숙이 관여한 것은 아닌지 검색을 해보니, 단편소설이 쓰여지던 시기가 1885년즈음이었던데 반해, 혁명은 1917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톨스토이는 '사회주의 사상가'가 아니었던 것일까? 먼저, 그의 문학이 '러시아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백작 가문에서 태어났음에도 러시아 귀족들이 농민들을 수탈하며 부유하게 살아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그의 작품에서도 부유한 자산가는 '악'으로 그리고, 가난한 민중은 '선'으로 보여주며 당시 귀족들의 만행을 작품속에 그대로 투영시켜 폭로하는 '사실주의 작가'였다. 동시에 톨스토이는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비판의식을 가지고 글로 쓰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소 행동으로 옮기는 적극적인 사상가의 모습도 곧잘 보이곤 했다. 특히, 러시아 정교회에서 파문되기도 했는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널리 퍼뜨리는 소설가가 어찌해서 파문이라는 불명예를 받았는고 하니, 당시 정교회가 민중을 탄압하는 귀족세력(기득권세력)을 옹호하자 이를 비판하는 저서를 출판했었고, 귀족과 정교회는 이런 책들을 '판매 금지' 시켰으나 민중들이 '필사본'과 '등사본'을 만들어 유통시켰고, 다른 나라 출판사들이 출간하여 인기를 끄는 등 적극적인 행동도 불사했었다.

 

  그런 탓에 그의 작품에서는 '사상가의 느낌'이 물씬 풍기곤 한다. 이 책에 수록된 <바보 이반>에는 그런 내용이 담뿍 담겨 있다. 첫째는 군인이었고, 둘째는 상인이었지만, 셋째인 이반은 농부의 삶으로 만족한다. 이에 악마가 등장해서 첫째와 둘째를 패가망신시켰지만,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아가는 이반은 어찌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반이 잘 먹고 잘 사는데 밑거름(?)이 되고 마는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따뜻한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여기서 작가인 톨스토이가 지배층에 해당하는 '부유한 권세가'에 대해 얼마나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파멸해나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과정'을 낱낱이 거론하며 가난하지만 거룩한 민중들의 삶에 아낌없는 찬사를 늘어놓는다. 이는 여타의 소설에서도 곧잘 등장하는 구도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이처럼 톨스토이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것이 '사랑'이고, '평화'이며, 누구나 욕심을 버리고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삶이 가장 위대하다고 역설하였다. 이런 러시아의 대문호를 두고서 러시아인들은 스탈린과 푸틴과 같은 '독재자의 등장'을 막지 못했던 것일까? 모두들 '하나님의 사랑'을 등한시하고, 가난하지만 복된 삶을 마다하고 제 욕심을 챙기기 위해 이웃을 해치는 나쁜 짓을 일삼는 것일까? 비단 러시아 사람에게만 던질 질문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을 말하는 입술로, 남을 해치는 결단을 이리도 쉬이 내릴 수 있는 것일까?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호의'를 베풀면 '호구'로 취급하는 못된 습성을 갖게 되었다. 개인적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남을 짓밟고서라도 '나만' 성공하는 것이 최우선순위가 되어버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비양심적으로 살면서도 주둥이만 살아서 '도덕적인 말본새'를 주어섬기며 저혼자 착한 척은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는데, 제 곳간을 그득히 채우고서도 만족할 줄을 모르는 세태에 정나미가 떨어진 지 오래되었다. 도대체 착한 사람은 살 수 없을 정도로 '오염수' 가득한 세상이 되어 버리고 만 셈이다. 하긴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도 '착하게 살라'는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몸서리치게 싫다고 '양심고백(?)'을 하기도 한다. 얘들이 말하는 가난이란 것이 '똥꼬' 찢어지는 정도는 물론 아니고, 부족할 것 없이 처묵고 잘 살면서도 '남들보다 부티나지 않게 사는 찌질함'이 정말정말 싫다는 것이었다.

 

  얼마전에 '유명일타강사'가 SNS에 올라온 사진을 보며 불행에 빠지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당부한 동영상이 세간의 관심을 증폭시켰다고 하던데, 이런 세태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듯 싶다. 남들이 올린 사진을 보며 '왜 나는 이렇게 살지 못하지?'라는 불행을 곱씹는 일을 날마다 반복하는 짓은 정말 어리석기 그지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 리뷰를 쓰면서도 '사진'을 올리지 않는...쿨럭쿨럭

 

  암튼, 톨스토이의 책을 오랜만에 펼쳐보고서 새삼스럽게 '사랑'을 실천하고, '욕심'을 버리는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 정말로 시급해진 이때, 톨스토이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어이 우리 모두가 소중히 여겨야 할 바다에 '방사능 수도꼭지'를 기어이 틀고야 말겠다는 '이기적인 욕심'이 결국 자신들의 터전이자 우리 모두의 고향을 망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걸 어찌하여 '모른척'하는 것일까? 앞으로 10년, 100년 뒤에 어떤 재앙이 펼쳐질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인걸까? 망가진 원자로 핵연료봉에서는 끊임없이 방사능을 뿜어낼 것이고, 아무리 걸러내고 희석시킨다고 해도 단기간에 없어지지 않을 방사능일진데, 온지구가 방사능 피폭을 당하고 난 뒤에 무슨 수로 회복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결국은 '지구적인 문제'다. 전세계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반드시 해결해내야만 할 문젯거리다. 그럼 결론은 딱 하나다. 전세계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해법을 제시하고, 몸소 실천해야 한다. 당연한 일 아닌가? 이런 와중에 돈 몇 푼 더 손에 쥔들 무엇이 더 나을 것이며, 얼마나 더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느냔 말이다. 오염수 배출도 안 되고, 너네가 감당하라고 강요해도 안 된다. 모두가 함께 뛰어들어 해결해야만 한다. 바보 이반의 지혜가 절실한 때다. 욕심 따윈 버리고 무엇이든 베플면 모두가 넉넉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진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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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이 이렇게나 재밌을 수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는 책이다.

그동안 '인체의 해부'는 의학실험실에서 은밀히 벌이는 의사들만의 전유물처럼 여기곤 했다.

그렇기에 비밀스럽고 신비한 '해부의 세계'는

코를 막아야만 했고

피가 철철 흘러넘치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몸속 장기가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끔찍한 일로만 여겨질 뿐이었다.

그토록 공포스런 해부학이 유쾌하다 못해 웃음을 참을 수 없어 대폭소를 터뜨리는

만화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면 어떻겠는가?


아직 <해부학 만화>의 1권을 읽지 않았다면, 당장 읽어보시고

이미 읽으셨다면, 2권 또한 망설이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예막구매자들엑 주어지는 빵빵한 선물도 가득하다니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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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3 - 청불전쟁과 갑신정변 본격 한중일 세계사 13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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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일제식민통치'에 의한 강제적인 것으로 시작하였다. 허나 이는 '일본제국'을 위한 것이었을뿐, 우리를 위한 근대화는 아니었으니 말할 건덕지도 없다. 그런 탓에 본격적인 근대화의 시작은 '해방 이후'로 잡고 있으나, 그마저도 친일독재, 군사독재, 반민족적인 독재정권 들이 연이어 들어서는 바람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고, 21세기 초반에야 겨우 '근대화의 틀'이 잡혀나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뼈아픈 역사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진정 '조선의 근대화'는 허상일 뿐이었고,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던가? 이번 편에서 '갑신정변'에 대해 풀어놓았으니 살펴볼 일이다.

 

  우리 근현대사의 시작을 '흥선대원군의 집권'으로 보고 있는 시각이 참 새삼스러울 지경이다. 그 이전까지 '세도정치'로 지배계층이 뿌리까지 썪어 문드러져 있었으니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들이 뒤늦기는 했지만, 눈여겨볼 만한 탓이다. 그러나 '임오군란'으로 흥선대원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고, '갑신정변'의 실패로 개화, 개혁세력들이 타격을 입고, '동학혁명'으로 새나라를 꿈꿨으나, 뒤이어 벌어진 '청일전쟁'으로 우리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겠다는 모든 시도와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온국토와 백성들이 쑥대밭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결국 이룬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있었다면 그건, '민중봉기'로 싹튼 '민주국가에 대한 열망'이었고, '항일의거'로 보여준 '우리 민족의 불굴의 의지'였으며, 훗날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대한민국의 정신적 기틀'을 바로 세운 것이 전부였다. 뼈아픈 근현대사는 이렇듯 물적으로도, 인적으로도 '절대적인 자원부족' 상태에서 다시 세워 나아간 것이다. 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기적을 이뤄냈고, 어떤이는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끌어간 주역은 누구라고 보아야 할까?

 

  조선후기부터 싹트기 시작한 '개화사상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겠다. 흔히 '북학파'라 불리는 이들이다. 이들은 성리학적인 세계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생각을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사대부)들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이들이다. 꽤나 개방적인 사상을 갖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엄연한 '유학자'들일 뿐이었다. 유교라는 큰틀 안에서 '조그만 창'을 내어 세상밖을 살펴볼 뿐, 조선이라는 나라를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개혁가들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개혁가를 꼽자면, '갑신정변의 주역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옥균, 서재필, 박영효, 홍영식 등의 개화사상가들이 주목한 '롤 모델'은 일본의 '명치유신(메이지유신)'이었다. 일본의 개화가 성공적으로 보였던 이들은 일본과 손잡고 '조선의 근대화'를 서두르려 하였고, 나아가 서구열강들의 침탈에 맞서 '동양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서 일본을 파트너로 삼는데 거침이 없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내부의 불만'을 가라앉히고 일본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 '외향적 분출(침략전쟁)'을 일삼던 나라라는 것을 이들은 잊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후쿠자와 유키치를 정신적 스승으로 삼은 '김옥균과 그 일당들'의 철저한 오판이었던 것일까? 암튼 '갑신정변'은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조선의 민중들을 철저히 외면한 채, 지도부의 교체(?)만으로 개혁이 성공하리라 철떡같이 믿고 있었으며, 조선의 개혁을 은근히 바라는 서구열강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돕기 위해 견마지로를 다할 것이라 믿었고, 가장 큰 오판은 일본이 '조선의 개혁'을 위해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혁성공 이후, 개혁세력들이 정치적 안정을 찾을 때까지 일본정부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아낌없이 퍼줄 것이라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무려 '청나라'를 상대로 말이다.

 

  그렇다. 고종임금이 다스리고 있던 그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간섭'이 너무나도 심했던 시절이었다. 가뜩이나 조선을 '청의 속국'쯤으로 여기고 있었던 서구열강들의 의심스런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고종과 민씨일파들은 '임오군란'이라는 위기를 맞아 너무나도 쉽사리 '청나라 군사'를 끌어들이는 졸속적이고 졸렬한 조치를 취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조선은 청나라 군사에 의해 내정간섭을 '직접적'으로 받게 되었고, 일본은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조선정부를 향해 막대한 보상금과 피해재발을 막을 수 있는 선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 일쑤였다. 이렇게 고종과 민왕후는 '청의 간섭'으로도 모자라 '일본의 간섭'까지 받게 되는 이중고를 겪게 되었다.

 

  거기다 구세력(친청)과 신세력(친일)간의 마찰은 더욱 심화되어만 갔다. 애초에 임오군란의 원인이 이 둘의 갈등이었는데, '구세력의 불만'이 폭발한 뒤에 제대로 해소되지도 못하고 '청나라의 간섭'만 더욱 심해진 꼴이 되었으니 나라꼴이 엉망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 신세력들은 나라꼴을 우습게 만든 세력이 볼짱사납게도 '재집권'을 하게 된 상황이 더욱 눈꼴 시린 것도 말할 것 없고 말이다. 이에 '갑신정변'이라는 새판을 짜기 위해 물밑작업을 시작했고, 결행의 시기까지 무리하게 앞당겼던 것이다. 그렇게 무리하게 결행한 결과가 고작 '삼일천하'였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으리라. 이렇게 구세력도 별볼일 없었고, 신세력도 변변찮으니 나라꼴이 점점 우습게 된 것도 '당연지사'였으리라.

 

  이런 판국에 '갑신정변'의 진행과정부터 결과까지 '청과 일본의 대결' 양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모양새는 더욱 빠지게 되고 말았다. 만약 '프랑스'라는 변수만 없었더라면, 갑신정변으로 인해 '청일전쟁'이 곧바로 시작되었을 것이고 말이다. 당시 프랑스는 베트남 '응우옌 정권'을 독차지 하려다 청의 간섭을 받자, 곧장 '청불전쟁'을 시작했더랬다. 그렇게 프랑스와 청이 대판 싸우자 조선에서 벌어진 사건에 '청과 일본' 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꺼렸던 탓이었기 때문이다. '갑신정변'이 일어날 당시, 청나라는 청불전쟁에서 발을 빼기 쉬운 상황이 아니었고, 일본은 청불전쟁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프랑스가 확실히 이길 거라는 보장도 없었기에 깊숙이 간섭하기 곤란했던 것이다. 그래서 '갑신정변'으로 청군 3명 사망, 일본군 2명 사망이라는 나름의 성적표(?)를 가지고 치열한 협상을 벌인 끝에 양국군 모두 조선에서 철군하기로 '텐진조약'을 맺은 것이다.

 

  이로써 조선은 '갑신정변'이후 개화세력(민씨척족) 제거와 동시에 외국군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다. 이런 결과를 가장 반긴 이는 다름 아닌, '고종'이었다. 모처럼 '아버지 눈치'도 보지 않고, '아내의 간섭'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는데, 청군과 일본군이 모두 철수해버렸으니, 드디어 '고종의 친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종은 이 틈을 이용해 '청과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외교관계'를 바라마지 않게 되었다. 다시 말해, 청나라와 일본과 한판 붙어도 결코 쫄지 않는 '새로운 힘'과 손을 잡고 싶었던 것이다.

 

  이쯤해서 '고종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만다. 고종은 조선백성의 주인이면서도 백성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스스로 힘을 기르겠다는 '자주국방'이라는 기본조차 망각한 무능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봄을 맞이한 기간이 너무나도 짧아 무슨 노력을 기울였어도 달콤한 결과를 맛보기 힘들었겠으나, 겨우 맞이한 봄이 무색할 정도로 곧바로 겨울을 불러들이는 무능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음 권에서 다룰 내용이겠지만, 갑신정변의 실패로 개혁세력(친일)들이 모두 사라진 때에 '구세력(친청)들'만으로 무슨 기회를 엿볼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더구나 전통적인 구세력들이 믿을구석이라고 해봤자, 결국 '또다시 청나라'에 굽신거리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뭔가 노력을 하긴 했었는데, 다름 아니라 '러시아 세력'을 끌여들인 것이다. 그간 러시아가 보여준 저력은 엄청난 영토확장과 더불어 '대영제국'과도 과감히 맞짱을 뜨는 힘, 청나라를 상대로 만주와 연해주를 뜯어내는 힘, 태평양을 넘어 미국까지 경계하게 만드는 저력, 그리고 일본을 상대로도 말 한마디로 꼼짝 못하게 만드는 가공함에 고종은 눈독을 들였기 때문이리라. 허나 러시아 입장에서는 '조선'이라는 머나먼 왕국은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아직 '시베리아철도'가 개통되지 않은 상황에서 영국과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고 있는 와중이라 러시아의 육군과 해군이 '조선'에 다다르기 위해선 얼어붙은 시베리아땅을 뚫어야 하고, 영국의 견제를 피해 대서양과 인도양을 끝에서 끝까지 종단과 횡단해야만 했기에 조선이 아무리 매력적인 제안을 하더라도 '당장'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허나 이러한 국제적인 상황이 급변하면서 조선에 '러시아'와 '영국'이 발을 들이게 된다. 그로 인해 '거문도 점령'이라는 달갑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게 되니, 다음 권에서 펼쳐질 내용이다.

 

  정리하면, '갑신정변'으로 인해 우리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았다. 첫째, 소수일망정 개혁세력을 깡끄리 잃어버리게 만들었으며, 그로 인해 '자주적인 근대화'는 물 건너갔다. 둘째, 무리한 개혁이었을망정 구세력(친청 사대부)들에게 감동과 각성을 주는 계기로 작용했어야 하는데, 되려 '개혁의 필요성'마저 망각하게 만들어버리는 비호감만 전해주었을 뿐이다. 셋째, 일시적이나마 '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나, 그 절호의 기회를 맞아 '뭔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조차 없이 그저 '헤프닝'에 불과한 사건으로 일단락이 되고 만 것이다. 이렇게나 아무런 영감도 불어넣어주지 못할 '정변'을 왜 했던 것일까? 아니 '누구'를 위한 개혁이었단 말인가? 단지 '불만표출'에 그칠 요량이면, 도끼를 매고서 상소를 올리는 유생들의 행위를 따르고 말 일이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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