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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단편선 1 ㅣ 클래식 레터북 Classic Letter Book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권희정.김은경 옮김, 이일선 그림 / 인디북(인디아이) / 2005년 12월
평점 :
MBC 예능프로그램 <느낌표>에선 굵직한 '교양프로그램'을 진행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이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25권의 책을 선정해서 온국민들에게 '독서열풍'을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지만, 2003년 당시, MC 김용만이 불미스런 일로 방송계 하차를 했었고, 좋은 취지였음에도 '특정 출판사', '특정 도서'만의 판매고를 올려준다는 부작용도 낳았으며, 예능방송에 재미를 주기 위해 '팩트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방송을 내보내 구설수에도 많이 올랐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스마트폰도 출시되기 전인데도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온국민 독서인구도 최저, 1인당 독서량도 최저였던 관계로 '독서교양예능'이 선보이자 온국민의 관심이 쏠리면서 '독서'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던 뜻깊은 방송이었다.
그때 열다섯 번째로 선정되었던 책이 바로 이 책 <톨스토이 단편선>이었다. 물론 이 책은 '개정판'으로 나와 처음 선정된 책과는 '목차'가 다소 다르긴 하지만, 그 시절에 읽었던 추억과 감동은 여전할 수밖에 없었다. 온국민이 '같은 책'을 읽는다는 느낌은 그런 추억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감동을 주었다. 2002년 월드컵4강 신화와 더불어 온국민들의 마음속에 뜨겁게 남겨진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책을 20여 년만에 다시 꺼내 제자들과 함께 읽으니 색다른 추억거리를 만들게 되기도 했지만, 그 시절과 사뭇 다른 느낌이 느껴져서 마음이 싱숭생숭하기도 했다.
톨스토이의 소설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깊숙이 깔려 있다. 어느 단편소설이고 그 밑바탕에는 오직 주님의 은총으로 하늘엔 영광이 있을 것이고, 땅에는 평화가 복음과 함께 널리 퍼질 것이라는 믿음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당시에는 짙은 '종교색' 덕분에 읽으면 마음 따뜻해지는 감동만 어렴풋이 느꼈을 따름이었다. 헌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톨스토이의 소설에는 진한 '사회주의 사상'이 묻어났다. 무엇보다 '노동의 가치'를 최고로 치고, '노동으로 얻은 대가'를 모두와 함께 골고루 나누어 갖는다는 골자가 아로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톨스토이가 '러시아혁명'에 깊숙이 관여한 것은 아닌지 검색을 해보니, 단편소설이 쓰여지던 시기가 1885년즈음이었던데 반해, 혁명은 1917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톨스토이는 '사회주의 사상가'가 아니었던 것일까? 먼저, 그의 문학이 '러시아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백작 가문에서 태어났음에도 러시아 귀족들이 농민들을 수탈하며 부유하게 살아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그의 작품에서도 부유한 자산가는 '악'으로 그리고, 가난한 민중은 '선'으로 보여주며 당시 귀족들의 만행을 작품속에 그대로 투영시켜 폭로하는 '사실주의 작가'였다. 동시에 톨스토이는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비판의식을 가지고 글로 쓰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소 행동으로 옮기는 적극적인 사상가의 모습도 곧잘 보이곤 했다. 특히, 러시아 정교회에서 파문되기도 했는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널리 퍼뜨리는 소설가가 어찌해서 파문이라는 불명예를 받았는고 하니, 당시 정교회가 민중을 탄압하는 귀족세력(기득권세력)을 옹호하자 이를 비판하는 저서를 출판했었고, 귀족과 정교회는 이런 책들을 '판매 금지' 시켰으나 민중들이 '필사본'과 '등사본'을 만들어 유통시켰고, 다른 나라 출판사들이 출간하여 인기를 끄는 등 적극적인 행동도 불사했었다.
그런 탓에 그의 작품에서는 '사상가의 느낌'이 물씬 풍기곤 한다. 이 책에 수록된 <바보 이반>에는 그런 내용이 담뿍 담겨 있다. 첫째는 군인이었고, 둘째는 상인이었지만, 셋째인 이반은 농부의 삶으로 만족한다. 이에 악마가 등장해서 첫째와 둘째를 패가망신시켰지만,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아가는 이반은 어찌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반이 잘 먹고 잘 사는데 밑거름(?)이 되고 마는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따뜻한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여기서 작가인 톨스토이가 지배층에 해당하는 '부유한 권세가'에 대해 얼마나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파멸해나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과정'을 낱낱이 거론하며 가난하지만 거룩한 민중들의 삶에 아낌없는 찬사를 늘어놓는다. 이는 여타의 소설에서도 곧잘 등장하는 구도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이처럼 톨스토이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것이 '사랑'이고, '평화'이며, 누구나 욕심을 버리고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삶이 가장 위대하다고 역설하였다. 이런 러시아의 대문호를 두고서 러시아인들은 스탈린과 푸틴과 같은 '독재자의 등장'을 막지 못했던 것일까? 모두들 '하나님의 사랑'을 등한시하고, 가난하지만 복된 삶을 마다하고 제 욕심을 챙기기 위해 이웃을 해치는 나쁜 짓을 일삼는 것일까? 비단 러시아 사람에게만 던질 질문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을 말하는 입술로, 남을 해치는 결단을 이리도 쉬이 내릴 수 있는 것일까?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호의'를 베풀면 '호구'로 취급하는 못된 습성을 갖게 되었다. 개인적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남을 짓밟고서라도 '나만' 성공하는 것이 최우선순위가 되어버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비양심적으로 살면서도 주둥이만 살아서 '도덕적인 말본새'를 주어섬기며 저혼자 착한 척은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는데, 제 곳간을 그득히 채우고서도 만족할 줄을 모르는 세태에 정나미가 떨어진 지 오래되었다. 도대체 착한 사람은 살 수 없을 정도로 '오염수' 가득한 세상이 되어 버리고 만 셈이다. 하긴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도 '착하게 살라'는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몸서리치게 싫다고 '양심고백(?)'을 하기도 한다. 얘들이 말하는 가난이란 것이 '똥꼬' 찢어지는 정도는 물론 아니고, 부족할 것 없이 처묵고 잘 살면서도 '남들보다 부티나지 않게 사는 찌질함'이 정말정말 싫다는 것이었다.
얼마전에 '유명일타강사'가 SNS에 올라온 사진을 보며 불행에 빠지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당부한 동영상이 세간의 관심을 증폭시켰다고 하던데, 이런 세태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듯 싶다. 남들이 올린 사진을 보며 '왜 나는 이렇게 살지 못하지?'라는 불행을 곱씹는 일을 날마다 반복하는 짓은 정말 어리석기 그지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 리뷰를 쓰면서도 '사진'을 올리지 않는...쿨럭쿨럭
암튼, 톨스토이의 책을 오랜만에 펼쳐보고서 새삼스럽게 '사랑'을 실천하고, '욕심'을 버리는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 정말로 시급해진 이때, 톨스토이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어이 우리 모두가 소중히 여겨야 할 바다에 '방사능 수도꼭지'를 기어이 틀고야 말겠다는 '이기적인 욕심'이 결국 자신들의 터전이자 우리 모두의 고향을 망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걸 어찌하여 '모른척'하는 것일까? 앞으로 10년, 100년 뒤에 어떤 재앙이 펼쳐질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인걸까? 망가진 원자로 핵연료봉에서는 끊임없이 방사능을 뿜어낼 것이고, 아무리 걸러내고 희석시킨다고 해도 단기간에 없어지지 않을 방사능일진데, 온지구가 방사능 피폭을 당하고 난 뒤에 무슨 수로 회복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결국은 '지구적인 문제'다. 전세계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반드시 해결해내야만 할 문젯거리다. 그럼 결론은 딱 하나다. 전세계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해법을 제시하고, 몸소 실천해야 한다. 당연한 일 아닌가? 이런 와중에 돈 몇 푼 더 손에 쥔들 무엇이 더 나을 것이며, 얼마나 더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느냔 말이다. 오염수 배출도 안 되고, 너네가 감당하라고 강요해도 안 된다. 모두가 함께 뛰어들어 해결해야만 한다. 바보 이반의 지혜가 절실한 때다. 욕심 따윈 버리고 무엇이든 베플면 모두가 넉넉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진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