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섬 1 쥘 베른 베스트 컬렉션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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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기까지 '여담'을 조금 풀어놓자면, <열림원>에서 출간한 '쥘 베른 컬렉션'을 한창 사모으고 있었던 때로 돌아가야 한다. 살림살이가 풍족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책을 많이 사지 못하던 때여서 진짜 '소장각'인 책들만 사모으던 터였는데, 쥘 베른의 열혈팬이었던 나는 이 책에 아낌없이 홀릭해버렸다. 그렇게 10권을 모았는데, 이상하리만치 책의 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분명 '컬렉션 목록'에는 <신비의 섬>을 비롯해서 <황제의 밀사>, <기구 타고 5주간> 등등이 소개되어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느 날 갑자기 '후속작'이 출간되었는데, 막상 사려고 보니 '표지갈이'가 되어 버린 '개정판'으로 출간해버린 것이다. 가격이 오른 것은 둘째치고, 기존에 소장하고 있는 책들까지 싹다 '표지갈이'가 되어, 이전과는 아주 다른 '장서'로 재출간이 된 것이었다. 더구나 '이전 장서'와는 책의 높이마저 달라져서 '구매욕구'가 싹 사라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쥘 베른 컬렉션'은 새단장한 모습으로 또 다른 모습의 '쥘 베른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연이어 새책들이 출간되었더랬다. 하지만 난 끝내 '개정판'을 사모을 수가 없었다. 마치 '개정판'을 사모으게 되면, 기존에 모았던 책들에 대한 '배신(?)'을 하는 느낌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난 왠지 모를 '배신감'에 '개정판'에 대한 미움만 키워나갔다. 하지만 그 '개정판'도 오래 가지 못하고, '쥘 베른 베스트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소위 '잘 팔리는 책들(?)'만 엮어서 또 다른 '표지갈이'로 지금의 책이 출간되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해저 2만리>에 등장했던 '네모선장의 정체'가 <신비의 섬>에서 밝혀진다는 문구를 읽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두말없이 '또또 개정판'에 해당하는 이 책을 구매해서 읽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 책꽂이에는 두 개의 '이질감'이 가득한 쥘 베른 컬렉션이 장식하게 되었다. 앞으로 '또또 개정판'을 사모으게 될런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개정판이 출간되더라도 제발 '표지갈이'는 완간을 한 뒤에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넌지시 호소해보려 한다. 정말이지 '완간'도 되기 전에 표지를 바꿔버리면 구매욕이 현저히 떨어지고 만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말이다.

 

  암튼, 내가 <신비의 섬>을 읽게 된 까닭은 앞서 말한 '네모선장의 정체'가 밝혀진다는 문구가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1권을 다 읽어보니, 첫 느낌은 '어른판' <2년 동안의 휴가(15소년 표류기)>를 읽은 듯한 느낌도 들고, '무인도'에 정착해 아무 것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생존'해나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는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읽는 느낌도 들었다. 1권의 줄거리에서 '네모선장의 비밀'이 밝혀지는 내용은 없었지만, 네모선장의 흔적(?)인 듯한 '암시'가 되는 부분들은 몇몇 있었다. 다섯 명의 조난자 중에서 네 명은 폭풍속을 기구를 탄 채 날다가 추락하던 중에 해안가에 표류해서 운좋게 생존하지만, 단 한 명은 '동굴' 속에서 발견 되었다는 점이나,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무인도 같은 섬의 호수에서 괴물같이 거대한 듀공이 격렬한 사투 끝에 죽임을 당했는데, 듀공의 사체가 '날카로운 칼'에 의해 잘려진 것같은 상처가 커다랗게 있었다는 점, 그리고 조난자와 함게 표류한 개, 토비가 새로 정착한 동굴을 거처로 삼은 뒤에도 '바다로 통해 있을 거라 짐작'하고 있는 통로 근처에서 이상하리만치 경계를 하고 으르렁거리는 장면이라든지, 마지막으로 덫에 걸린 새끼돼지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로 요리를 해서 맛있게 먹다가 딱딱한 돌 같은 것을 씹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돌이 아니라 '납으로 만든 총알'이었다는 점에서 탐정같이 예리한 독자들은 '네모선장의 비밀'과 연관지을 수 있는 단서일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해저 2만리>에서도 네모선장이 바다 한가운데 아무도 알지 못하고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섬에서 '노틸러스호'를 기항하고 수리를 하거나 보급을 하는 '신비한 섬'을 언급한 대목이 있기에 <신비의 섬>에서 '무인도'라고 알려진 '링컨 섬'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증거'들은 애독자들에겐 단지 '무인도'가 아니라는 설정, 그 이상의 설렘을 발동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흥미진진한 '단서'들은 일단 2권에서 다시 '본격, 추리'를 해보도록 하고, 다시 책의 줄거리로 시선을 돌려보려 한다. 먼저 줄거리는 단순하다. 다섯 명의 조난자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기구를 타고 미국의 '남북전쟁'이 한창인 리치먼드에서 탈출에 성공하지만, 하필 탈출할 때의 날씨가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이었던 탓에 운좋게 탈출에 성공한 것이 그만, 폭풍속에 휘말리게 되었고, 그렇게 남서쪽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려가다가 망망대해에 추락을 면하기 위해 기구 안에 실었던 '모든 것'을 기구밖으로 떨구며 근근히 버티다 '운좋게(?)' 육지를 발견하고 불시착을 하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 육지는 망망대해에 갇힌 섬이었다는 전개다. 그리고 그 섬은 대륙이나 가까운 섬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고,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뱃길과도 멀리 떨어진 탓에 그야말로 '완벽하게' 아무 것도 없는 무인도였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이토록 아무 것도 없는 섬에서 '생존의 불씨'를 되살린 것은 다름 아니라 '인류의 지혜', 그리고 '문명의 지성'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믿기 힘든 현실이 펼쳐지면서 '쥘 베른의 역작'이라는 면모가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이는 다섯 명의 조난자가 대단한 능력자들이라는 사실에서 더욱 그렇다. 그 뛰어난 능력은 그들의 이름에서도 엿볼 수가 있다. 먼저, 만물박사의 역할을 맡고 있는 '사이러스 스미스'는 Cyrus(키루스)라는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대왕의 이름에서 따왔고, <뉴욕 헤럴드> 신문기자인 '기디언 스필렛'은 종군기자로 활약하면서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용맹함을 갖춘 지성인으로 척박한 무인도에서도 위대한 모험가로 활약하며 조난자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발벗고 나서는 영웅적 인물이었다. 또한, 사이러스의 하인을 자처한 '네브'라는 흑인이 등장하는데, 북군으로 참전한 사이러스는 네브를 노예신분에서 해방시켰지만, 원래부터 충직하고 성실하며 헌신적인 성향을 띤 네브는 해방된 뒤에도 사이러스의 하인을 자처했더란다. 이런 '네브'의 이름은 성경에 등장하는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군주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 대왕에서 따왔다. 이 대왕은 백성을 사랑한 자애로운 왕이었으며 왕비를 위해 손수 '공중정원'을 만들어줄 정도로 지극정성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항해에 잔뼈가 굵은 선원 출신의 '펜크로프', 그리고 모험을 좋아하고 박물학에 뛰어난 재능을 갖춘 소년 '허버트'가 합류하여 아무 것도 없는 무인도에서 무엇이든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신비한 일들이 날마다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 설정과 전개는 이 책이 <15소년 표류기>나 <로빈슨 크루소>와 비슷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전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까닭은 앞선 두 소설에서는 표류자들이 '우연한 계기'로 생존에 필요한 물자나 원료를 얻게 되면서 무인도에서 생존하고 끝내 탈출하게 되지만, <신비의 섬>에서는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되어 완전 고립된 무인도에서 '자체적인 노력'만으로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무인도에서 용광로를 만들어서 '철기도구'를 제작해낸다든지, '니트로글리세린'이란 폭발물을 조제하여 거대한 폭발을 일으킬 정도로 '화학제조'를 실현한다든지, 맨몸으로 표류했음에도 굻어죽지 않을 정도를 넘어서서 매일매일 '사냥'에 성공해서 '고기(단백질)섭취'를 가능케하여 무인도에서 문명을 일구어내는 왕성한 체력을 뿜뿜해내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소설이라도 뻥이 좀 심하다고 할 수도 있다.

 

  허나 쥘 베른은 이러한 '무모한 설정'을 온전히 '과학의 힘'을 바탕으로 완벽히 무마시켜버렸다. 무릇 인류에겐 '지식 축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는 달리 우월할 수밖에 없고, 그런 우월함을 바탕으로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밑바탕에 깔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무모한 '과학만능주의'의 폐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인간의 관점'에서만 '자연의 섭리'를 논하고, 그런 섭리의 위험함을 전혀 경계하지 않고, 오히려 '신이 내린 축복'으로만 해석하며 자연과 환경 파괴를 일삼는 모습은 이 소설의 유쾌함에 살짜쿵 걸림돌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쥘 베른이 19세기 작가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만물의 영장'으로 인간이 지구의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어쨋든, 1권은 씹던 고기에서 '납 총알'이 발견되어 2권에서 벌어질 파란만장한 모험담을 예고하며 마무리하였다. 2권에서는 또 어떤 '네모선장의 비밀'이 파헤쳐질지 기대가 만빵이다. 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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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계사 5 - 르네상스와 대항해 시대 처음 세계사 시리즈 5
초등역사교사모임 글, 한동훈.이희은 그림, 서울대학교 뿌리깊은 역사나무 감수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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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 공부를 하다보면 '중간이 어렵다'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것도 '처음'과 '끝'은 기억이 생생하기 마련인데, '가운데'에는 무슨 일이 어떻게 있었는지 가물가물하고, 순서도 헷갈리기 십상인 것처럼 세계사를 공부해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어서 '모든 것'을 다 씹어먹을 듯한 열정으로 달려왔다하더라도 '중세'를 넘어 '근대'로 넘어가는 이즈음의 역사가 아리까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모두 10권의 시리즈 가운데 5권에 해당하는 부분이 그렇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지만 막상 정리해서 이야기하자면 떠듬떠듬 헷갈리고 마니 말이다. 더구나 요즘 세계사는 '서양(유럽)중심사'를 벗어나 '중동아시아사'와 '아메리카문명', 그리고 '이슬람문명'을 비롯해서 '인도사', '중국사', '한국사', '일본사'까지 아울러 소개하고 있기에 광범위한 세계사를 눈앞에 두고서도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지 감도 잡을 수 없게...아니 주눅이 들 정도로 방대함을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방대한 역사'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효율적인 방법은 없을까?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쿠르트 50병을 마시는 방법'으로 표현해보려 한다. 요쿠르트 한 병은 누구나 부담없이 단번에 쭉 들이킬 수 있을 것이다. 그 한 병조차 뚜껑을 까서 마시기보다 밑을 이빨로 뜯어서 쪽쪽 빨아먹거나 꽁꽁 얼려서 반으로 잘라 먹는 '기이한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역사공부를 해서는 결코 인류역사 오천년을 총망라하여 정리할 도리가 없음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일 것이다. 그러니 그냥 '요쿠르트 한 병'을 가볍게 쭉 들이키는 상상을 하길 바란다. 이렇게 '한 병 마시기'가 너무나 수월한 관계로 '다섯 병'을 한 팩으로 포장된 상태에서 빨대를 하나씩 꽂아 쪽쪽 빨아먹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다보니 이런 도전(?)의식이 샘 솟았나보다. 다섯 병도 손쉽게 들이키는데 '50병'을 마실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그래서 실제로 요쿠르트 50병을 커다란 대접에 부어서 한 번에 들이키는 '무모한 시도'를 하는 사람도 봤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사람은 드물다. 한 병에 50밀리리터라고 해도 열 병이면 500밀리리터이고, 그렇게 다섯 배를 하면 2500밀리리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 커다란 생수 1리터(1000밀리리터)를 2병 반을 원샷하는 셈이다. 이게 보통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역사공부가 그렇다. 단원 하나하나는 외울 것도 만만해보이고, 이해해야 할 것도 고만고만해보이지만 '역사책' 10권을 통째로 외우고 이해하려 들면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렇다면 요쿠르트 50병을 모두 마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답은 '시간적 여유'를 두고서 '한 번에 한 병씩' 꾸준히 마시면 50병은 물론, 100병도 거뜬히 마실 수 있게 된다. 역사공부는 무릇 이렇게 하는 것이다.

 

  <처음 세계사 5>에는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를 다루고 있다. 르네상스의 시작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점차 퍼지게 되었는데, 한 가지 분야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다함께 성장발전한 것이 큰 특징 중 한가지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학문, 예술, 문화 등등' 다방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르네상스의 특징'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인본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유럽의 중세 1000년 동안 '신학 중심'으로 발전을 해오면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눈 뜨게 한 것이 르네상스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의 그리스도교가 무너지고 고대의 그리스로마신화 때로 되돌아간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종교개혁'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한 '가톨릭 교회'에 새로운 물결이 밀려들게 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종교개혁'은 루터의 반박문을 시작으로 스위스의 츠빙글리, 프랑스의 칼뱅, 그리고 영국의 국교회와 청교도까지 계속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유럽은 '구교'와 '신교'가 대립 아닌 대립을 하게 되고, 같은 신앙을 두고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 갈등으로 커지더니 급기야 '종교전쟁'으로까지 번지게 된다.

 

  이즈음 서유럽국가들은 '인도 항로'를 새로 개척하기에 열을 올린다. 지중해로부터 인도로 갈 수 있는 길목을 '이슬람세력'이 가로막고서 통행료(관세)를 거두며 막대한 이익을 챙기자,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면 이러한 부대비용을 절약하고서 인도의 향신료로 얻을 커다란 이득을 새로 챙길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부풀어올랐기 때문이다. 이 당시 과학사의 업적으로 '지구는 둥글다'는 증거가 유럽인들의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만들었고 말이다. 그래서 용감한 모험가들은 지중해를 벗어나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서 인도로 가는 항로와 대서양을 건너 지구 한바퀴를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그 가운데 바스코 다 가마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데 성공했고,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젤란은 실제로 세계 일주에 성공(마젤란은 필리핀 원주민에게 살해)하는 위업을 달성하며 '신항로 개척'에 큰 공을 세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아메리카 문명'은 끔찍한 비극을 맞이하는데, 다행스럽게(?) 마야문명은 유럽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멸망했지만, 아스텍과 잉카 문명은 유럽인이 가지고 온 '총, 균'에 의해 원주민 대학살이 벌어지고 만다. 이렇게 아메리카의 자원을 강탈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스페인)은 '서구제국주의의 첫 번째 만행'을 저지르며 성장발전하게 된다.

 

  한편, 이슬람 문명은 중동과 아프리카 북부를 넘어 '중앙아시아'와 '인도'에까지 영향력을 뻗치는데, 각각 '오스만 제국', '티무르 제국', '무굴 제국'이다. 앞서 '칭기즈 칸의 정복전쟁'으로 헝가리까지 뻗어갔던 '몽골제국'은 칭기즈 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여러 개의 '칸국'으로 나뉘게 되었고, 몽골군에게 크게 놀라 휘청거렸던 이슬람세력은 '오스만 제국'으로 다시 자리를 잡게 되고, 칸국으로 자리 잡았던 '몽골의 후예들'은 각각 중앙아시아를 발판삼아 '티무르 제국'으로, 인도로 뻗어나간 이들은 '무굴 제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티무르 제국은 한 세대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인도에 정착한 '무굴 제국'은 인도의 힌두교와 결합하면서 인도의 왕조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원나라를 세워 중국땅에 정착한 '몽골의 후예'는 한족의 저항에 밀려 '북원'으로 밀려나게 되고, 그 자리에는 새로 '명나라'가 새워지게 된다. 그렇게 명태조 '주원장'은 강력한 통치력으로 자금성도 세우며 강력한 황권을 세우지만, 그가 죽자 '후계 문제'에 휩싸여 형제들이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왕권 다툼'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명나라의 기세는 날로 커지게 되고, 급기야 '정화 함대'가 아프리카까지 조공무역을 성사시키면서 전세계에 '화교'를 정착시키는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즈음 한반도에서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새로 건국되었는데, 세종대에 이르러 나라기틀을 다잡더니 '과학기술, 문화예술'이 날로 성장하여 동아시아 강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여기에는 세종대왕과 장영실이 큰 업적을 남긴 바 있다. 그러나 선조대에 이르러 '임진왜란'이란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끝으로 일본은 혼란기를 맞이하는데, 이 시기를 '전국시대'라고 부른다. 전국의 다이묘들이 군웅할거를 시작하더니 점차 '힘이 쎈 영주(다이묘)'를 중심으로 새 판이 짜여지더니 급기야 서로 뺏고 빼앗는 전쟁이 일상처럼 벌어지게 된다. 때마침 포르투갈 상인으로부터 '조총'이 전해지면서 전쟁을 직업으로 삼는 '상비군'이 결성되는데, 이를 최초로 전쟁에 잘 활용하였던 이가 바로 '직전신장(오다 노부나가)'이다. 하지만 노부나가도 통일의 위업을 앞에 두고서 '혼노지의 변(믿었던 부하에게 배신을 당함)'을 마지막으로 수명을 다하게 되고, 노부나가의 복수에 앞장 섰던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일본의 전국통일은 달성이 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던 '상비군'을 적절히 해체하지 못한 히데요시는 '대륙정벌'이라는 야무진 꿈(?)을 꾸게 되는데, 그 첫 단추로 '정명가도(명나라를 치려하니 조선은 길을 내주어라)'를 핑계삼아 대대적인 조선침략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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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2만리 아셰트클래식 1
쥘 베른 지음, 쥘베르 모렐 그림,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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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정신>의 '아셰트클래식' 시리즈는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인 책이다. 한 눈에 보아도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고 클래식한 색감과 고풍스런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빼놓은 수 없는 매력은 '도감'이다. 흡사 백과사전을 펼쳐보는 듯한 세세한 '그림'만으로도 오래된 고전속에서 캐내는 '지적 보물'이 듬뿍 담겨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나기에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여왔었다. 이렇게 매력적인 책에 단 하나의 단점을 꼽자면 '값비싼 책값'이다. 멜빌의 <모비 딕>이나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 같은 명작은 이 책 이외에도 수많은 책이 있었고, 읽었기 때문에 그만한 값을 치르고 사모으기에는, 솔직히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아셰트클래식'만의 장점을 또 하나 꼽자면 빼어난 '도감'과 더불어서 '원작, 그 잡채'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명작의 값어치를 제대로 아는 독자들에게는 더할나위없는 훌륭한 시리즈가 될 것이다.

 

  사실, 난 '쥘 베른'의 열렬한 팬이다. 어릴 적부터 과학자의 꿈을 꾸었기에 쥘의 책은 과학지식의 원천이었다. 실제로 쥘의 책은 '경이로운 여행'이란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그 여행은 땅 위는 말할 것도 없고, 땅속, 바다, 하늘, 그리고 우주까지 19세기 당시에 '가본 적도 없는 곳'으로 떠나는 말그대로 '경이로움'으로 가득하였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마찬가지다. 21세기인 오늘날에는 당연한 일로만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100여 년이나 앞서서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내는 드라마틱한 모험담을 술술 써내려갈 수 있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실현불가능한, 그런 막연한 상상력으로 써내려간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를 조목조목 들이대며 '그럴 듯한 상상력'을 펼쳐냈기에 훗날의 과학자들은 '쥘의 소설'을 바탕삼아 그대로 재현하는 '쉬운 업적(?)'을 남긴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를 테면, <지구에서 달까지>라는 책에서 커다란 대포를 만들어서 '텅빈 대포알'을 우주선 삼아 달을 향해 발사하는 황당한 줄거리는 인류 최초로 달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의 궤적과 꼭 닮아 있다. 마치 쥘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를 살짝 엿보고 돌아온 뒤에 소설을 쓴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쥘의 소설'은 단순한 '공상과학(SF)'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미래과학 교과서'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터다. 물론, 오늘날에는 쥘이 상상한 '미래'조차 과거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과학의 역사'라는 점에서 쥘의 소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을' 가치가 충분한 소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쥘의 소설'이 읽혀 마땅한 까닭은 수많은 '경이로운 여행'을 성공한 인류가 아직도 속시원히 들여다보지 못한 곳이 남았기 때문이다. 바로 '심해'다. 인류는 아직도 '깊은 바닷속'을 잘 모른다. 아무리 무인탐사정을 띄우는데 성공하고 가장 깊은 바다의 비밀을 들여다봤다고 해도 여전히 인류는 바다에 대해서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왜냐면 인류는 '수심 200미터', 흔히 말하는 '대륙붕'에서만 놀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깊은 바다에 '엄청난 자원(망간단괴 등)'이 그냥 뿌려져서 주우면 임자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데도, 인류는 그 자원을 캐낼 방법조차 찾아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지금처럼 '지구환경파괴'를 일삼는 인류에겐 영영 손을 댈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냅두고 싶은 심정이지만...암튼 인류는 여전히 '바다'를 정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엄청난 '수압' 때문이다. 바다 밑으로 10미터 내려갈 때마다 1킬로그램의 압력을 견뎌야 한다. 해녀들이 수심 100미터속의 전복과 해삼을 캐낸다면 들어갔다 나올때마다 10킬로그램의 압력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능력이며, 당연히 그런 어마무시한 '조업환경'에서 작업하는 해녀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인간은 수심 200미터 내외에서는 이런 악조건을 견디며 작업할 수 있는 것들을 마련할 수 있었다. '잠수복'이 바로 그 예인데, 이것도 그보다 더 깊은 바닷속에서는 무용지물에 가깝다. 왜냐면 그 아래부터는 햇빛조차 허락하지 않는 깜깜한 암흑속이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조명'에 의해 간신히 어둠을 밝힐 수는 있겠지만, 깜깜한 어둠속에서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서야 고작 한발한발 겨우 발을 내딛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래서야 어디 '정복'했다고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쥘은 <해저 2만리>라는 소설을 19세기에 내놓았다. 인류가 고작 '증기기관'에 의지해서 '돛 없는 배'를 망망대해에 띄워을 뿐인 '그 시점'에 쥘은 비록 소설속 공상의 결과물이긴 하지만 '나트륨 전지'로 해저 1만미터를 누비는 엄청난 잠수함을 탄생시킨 것이다. 지금으로치면 '원자력잠수함급'이며, 원자력으로 만들어낸 '전기'로 움직이는 잠수함을 탄생시킨 것이다. 물론, 쥘이 살던 시대에도 '잠수함'은 있었다. 하지만 겨우 한두 사람이 탑승해서 발로 패달을 밟아 스크류를 돌려 이동을 하고, 나무로 만든 배의 밑바닥을 '드릴'로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조잡한 수준이었는데, '원자력급' 상상력을 발휘해서 바닷속을 누비는 괴물, '노틸러스'를 탄생시킨 것이다. 나 어릴 적에 읽을 때에도 그 기발한 상상력에 혀를 내둘렀는데,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그의 기발함은 정말이지 놀라울 뿐이다.

 

  물론, <해저 2만리>에서 '과학적 관점'으로 팩트체크를 하다보면 수많은 오류를 발견할 수밖에 없다. 최신잠수함도 겨우 내려보내는데 성공했을 수심 몇 천미터에 꼴랑 잠수복을 입고서 수 킬로미터를 산책(?)하며 바다목장(?)에서 길러낸 참치를 수족관에서 꺼내먹듯 하는 장면이나, 오래전에 수몰되었다는 '아틀린티스'를 굳이 걸어서 탐사하고, 잠수함으로 남극대륙 한복판에서 부상(?)해서 남극점에 도달했다는 묘사, 남극점을 찍고 되돌아오던 중에 '거대한 빙하'에 갇혀 잠수복을 입고 빙하속을 곡괭이로 깨어서 탈출하는 극적인 장면들은 아주 오래된 '깔깔 유머집'에나 나올 법한 웃기지도 않는 대목이긴 하지만, 수천 년전 인류의 유적과 유물을 보면서 '조잡함'보다는 '위대함'을 떠올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비록 '과학적 팩트'에는 위배된 사실일지라도 충분히 감탄할 수 있는 대목으로 미소지으며 넘길 수 있을 정도라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독자들이 <해저 2만리>를 읽는다면, '과학적 사실'을 꼼꼼히 따지는 것보다는 '과학에 준하는 상상력'을 발휘하며 가까운 미래의 인류에게 '바다' 또는 '심해'라는 곳이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 곳인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도 좋을 듯 싶다. 특히, 과학의 흥미에 이제 막 눈을 뜬 어린 독자라면 그러한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려주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것이고 말이다. 분명 인류는 머지 않은 미래에 '땅'에서보다 더 많은 인류가 '바다'에서 살게 될 것이다. 단순히 '땅위'가 아닌 '바다위' 또는 '바닷속'에 사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는 것을 말한다기보다는 '생명의 원천'이 땅이 아닌 바다라는 인식을 더 많이 갖게 될 거란 의미다. 지금도 이미 많은 인류가 '바다'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세계 곳곳의 인구 1천만이 넘게 사는 도시들은 바다를 인접해서 살아가고 있으며, 인류의 먹거리 또한 이미 땅보다 바다에서 더 많이 얻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아직도 바다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바다에 대한 이야기는 이보다 훨씬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살짝 아끼고 싶다. <해저 2만리>의 줄거리와 '네모 선장의 비밀'은 <신비의 섬>에서 따로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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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엔 11권의 리뷰쓰기로 마무리하였다.

10권을 넘긴 소소한 성적이지만, 마지막주에 '출판사 교정작업'을 하느라

막판 스퍼트를 내지 못하고 말았다.

물론 그로 인해 밀린 리뷰는 9월에 써낼 예정이다.

 

11편의 리뷰를 쓴 것으로도 '분석 데이타'에 큰 변동은 없다.

다만, '읽은책 100%'가 99%로 하락했는데,

이는 '읽은책'만 데이타에 반영하던 것을

앞으로 '읽는책'과 '읽을책'에도 입력한 값으로 인한 변화다.

각각 6권씩 '읽고 있는 책'과 '읽을 예정인 책'을 선별해서 데이타값에 변화를 주었는데,

계획적인 독서와 리뷰쓰기를 하기 위해서다.

이로써 매달 10권 이상의 리뷰쓰기가 목표달성을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아쉬운 것은 지금 기록하고 있는 '독서앱'으로는

'출판사 집계'와 '글쓴이 집계'가 통계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일이 헤아리는 방법도 있으나, 매번 주먹구구식으로 세기에는 너무 방대하다.

그래서 따로 블로그에 '집계'를 할 방법을 모색중이다.

올해 안에 그 방법을 실현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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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4 - 거문도 Crisis와 방곡령 본격 한중일 세계사 14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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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리뷰에서는 '갑신정변의 실패'로 우리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하였다. 딱히 정변의 주역인 '김옥균'만 탓할 것은 못 된다. 왜냐면 당시 '개화세력'이 너무나도 소수였고, 그나마도 다수 백성들의 지지도 없이 걍 '소수의 엘리트(지식인)들'만으로 시도 되었고, 급조한 정변이었기에 '외부세력(일본)'에 크게 의지한 모양새도 '플랜B'를 마련하며 실패할 확률을 줄여나가는 현명함도 없었으며, 당시 정권의 핵심이었던 '고종과 민씨세력'이 개화세력의 의견을 받아들일 정도로 개화되거나 국력도 뒷받침이 되지 않았으니, '실패한 정변'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렇게 얻을 것도 없는 정변을 왜 무리하게 시도했느냐는 역사적 논란이 많지만, 확실한 것은 무모한 정변의 실패로 인해, 이땅에 건전한 개화세력까지 깡끄리 사라지면서 남은 것은 훗날 '친일개화파(매국파)'만 남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고종을 위시한 '수구보수의 꼴통'만 득실거리는 정국에 '방곡령'과 '동학농민혁명'이란 굵직한 사건이 터지게 되니 이에 제대로 된 대응은커녕 헛발만 일삼다. 끝내 일제의 침략만 수월케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바로 14권의 내용이 바로 '갑신정변'과 '청일전쟁' 사이에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이며, 한중일 삼국 사이에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역사현장'이 세계사적으로 펼쳐지게 된다.

 

  그 시작은 '거문도 점령'이다. 조선을 둘러싸고 영국과 러시아가 벌인 '그레이트 게임'이 그 원인인 사건인데, 단순히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한 영국의 조치로 흘러가지 않고, '청국의 개입'이 눈에 띄게 펼쳐지면서 끝내 '거문도 반환'이 이루어지게 되지만, 종국에는 '청의 간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사건으로 결말을 짓게 되었다. 까닭인 즉슨, 영국과 러시아 양국에게 '조선'은 머나먼 극동의 나라였던 탓이 컸고, 그로 인해 '전면전'을 벌이기에도 부담스러웠으며, 조선의 영토를 무단점령하였는데도 영국과 러시아 각국은 '조선정부'와 외교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문제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청의 조선에 대한 종속권'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 까닭 역시, 영국과 러시아 양국 모두 '조선정부'를 개무시하고, 청의 눈치만 살폈다는 점이다. 이렇게 조선은 아무런 '외교력'을 발휘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영국과 러시아의 '조선개입불가'만 확인하는 게기가 되었고, 청의 종속국이란 점만 다시 한 번 재확인하고 말았다. 이로써 고종의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청나라로부터 벗어나자'는 정책은 실패로 끝맺고 말았다.

 

  한편, 조선에서 버라이어티한 일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일본은 잠잠했는데, 그 까닭은 '내부문제'를 해결하고, '실력행사'를 할 수 있을만큼 근대적 개혁을 마무리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천황제를 골자로 하는 일본의 입헌정치(헌정)가 완성되고, 초대 총리로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이 올라서는 일이 착착 진행중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이등박문의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끝내 일제가 '군국주의국가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준 꼴이 되었다. 서구열강처럼 '민주주의국가'로 발돋움하려 애를 썼지만, 결국에는 '모양새'만 그럴싸하게 탈바꿈하였을 뿐, 일본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 국가'의 기틀인 의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정치의 요람이 '바로 이때' 시작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일본의 군사력 강화에 깊이 올인하다보니 '군부의 핵심'인 육군의 장성이 천황의 명령 하나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천황제 군국주의국가'로 자리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의회의 총리'조차 일본시민들의 투표가 아닌 천황의 임명으로 군림(?)할 수 있게 되어 버린 일본은 입헌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국가'로 성장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형태의 근대국가로 서구열강의 '제국주의'를 흉내내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그런 기형적인 '군국주의국가' 일본제국이 가장 먼저 탐욕의 본색을 드러낸 국가가 '조선'이었다는 점이다. 또다시 내부문제 '일본의 연이은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해지는 판국에 이웃나라 조선에도 흉년이 들었는데도 일본내부의 '쌀부족 문제'를 조선의 쌀을 싹쓸이(!)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들었던 것이 '방곡령 사건'의 시작이었다. 조선 안의 쌀이 일본상인들의 싹쓸이 수매로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우려한 조선의 고을 수령들이 '방곡령'을 선포해 조선밖으로 쌀을 내보내지 못하게 하는 지극히 정당하고 합법적인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는 '조선 백성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조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로 인해 일본의 쌀부족을 해결할 수 없게 되자 '일본정부'는 실력행사를 통해서라도 조선정부를 압박해서 쌀부족사태를 해결하려 든 것이다. 이에 한 발 물러선 조선정부는 '방곡령'을 해제하고, 쌀 수출(?)을 허가하며 무마하려 들었지만, 그 사이 일본상인들의 손실을 빌미로 삼아 조선정부를 완전히 개무시하는 모양새로 일관하는 '일본정부의 무도함'을 아주 잘 드러내고 말았다. 이제 조선에 무슨 빌미만 생기면 바로 힘으로 제압해 해결하려는 못된 실력행사를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농민군에게 호되게 당한 고종과 민씨세력은 청의 종속국임을 스스로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청군'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이제 조선에 '일본군'이 들어올 수 있는 빌미가 제공되었는데, 과연 합법적으로 조선에 출병할 수 있게 된 일본군의 행보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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