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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섬 1 ㅣ 쥘 베른 베스트 컬렉션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2년 6월
평점 :
이 책을 읽기까지 '여담'을 조금 풀어놓자면, <열림원>에서 출간한 '쥘 베른 컬렉션'을 한창 사모으고 있었던 때로 돌아가야 한다. 살림살이가 풍족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책을 많이 사지 못하던 때여서 진짜 '소장각'인 책들만 사모으던 터였는데, 쥘 베른의 열혈팬이었던 나는 이 책에 아낌없이 홀릭해버렸다. 그렇게 10권을 모았는데, 이상하리만치 책의 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분명 '컬렉션 목록'에는 <신비의 섬>을 비롯해서 <황제의 밀사>, <기구 타고 5주간> 등등이 소개되어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느 날 갑자기 '후속작'이 출간되었는데, 막상 사려고 보니 '표지갈이'가 되어 버린 '개정판'으로 출간해버린 것이다. 가격이 오른 것은 둘째치고, 기존에 소장하고 있는 책들까지 싹다 '표지갈이'가 되어, 이전과는 아주 다른 '장서'로 재출간이 된 것이었다. 더구나 '이전 장서'와는 책의 높이마저 달라져서 '구매욕구'가 싹 사라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쥘 베른 컬렉션'은 새단장한 모습으로 또 다른 모습의 '쥘 베른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연이어 새책들이 출간되었더랬다. 하지만 난 끝내 '개정판'을 사모을 수가 없었다. 마치 '개정판'을 사모으게 되면, 기존에 모았던 책들에 대한 '배신(?)'을 하는 느낌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난 왠지 모를 '배신감'에 '개정판'에 대한 미움만 키워나갔다. 하지만 그 '개정판'도 오래 가지 못하고, '쥘 베른 베스트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소위 '잘 팔리는 책들(?)'만 엮어서 또 다른 '표지갈이'로 지금의 책이 출간되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해저 2만리>에 등장했던 '네모선장의 정체'가 <신비의 섬>에서 밝혀진다는 문구를 읽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두말없이 '또또 개정판'에 해당하는 이 책을 구매해서 읽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 책꽂이에는 두 개의 '이질감'이 가득한 쥘 베른 컬렉션이 장식하게 되었다. 앞으로 '또또 개정판'을 사모으게 될런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개정판이 출간되더라도 제발 '표지갈이'는 완간을 한 뒤에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넌지시 호소해보려 한다. 정말이지 '완간'도 되기 전에 표지를 바꿔버리면 구매욕이 현저히 떨어지고 만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말이다.
암튼, 내가 <신비의 섬>을 읽게 된 까닭은 앞서 말한 '네모선장의 정체'가 밝혀진다는 문구가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1권을 다 읽어보니, 첫 느낌은 '어른판' <2년 동안의 휴가(15소년 표류기)>를 읽은 듯한 느낌도 들고, '무인도'에 정착해 아무 것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생존'해나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는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읽는 느낌도 들었다. 1권의 줄거리에서 '네모선장의 비밀'이 밝혀지는 내용은 없었지만, 네모선장의 흔적(?)인 듯한 '암시'가 되는 부분들은 몇몇 있었다. 다섯 명의 조난자 중에서 네 명은 폭풍속을 기구를 탄 채 날다가 추락하던 중에 해안가에 표류해서 운좋게 생존하지만, 단 한 명은 '동굴' 속에서 발견 되었다는 점이나,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무인도 같은 섬의 호수에서 괴물같이 거대한 듀공이 격렬한 사투 끝에 죽임을 당했는데, 듀공의 사체가 '날카로운 칼'에 의해 잘려진 것같은 상처가 커다랗게 있었다는 점, 그리고 조난자와 함게 표류한 개, 토비가 새로 정착한 동굴을 거처로 삼은 뒤에도 '바다로 통해 있을 거라 짐작'하고 있는 통로 근처에서 이상하리만치 경계를 하고 으르렁거리는 장면이라든지, 마지막으로 덫에 걸린 새끼돼지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로 요리를 해서 맛있게 먹다가 딱딱한 돌 같은 것을 씹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돌이 아니라 '납으로 만든 총알'이었다는 점에서 탐정같이 예리한 독자들은 '네모선장의 비밀'과 연관지을 수 있는 단서일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해저 2만리>에서도 네모선장이 바다 한가운데 아무도 알지 못하고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섬에서 '노틸러스호'를 기항하고 수리를 하거나 보급을 하는 '신비한 섬'을 언급한 대목이 있기에 <신비의 섬>에서 '무인도'라고 알려진 '링컨 섬'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증거'들은 애독자들에겐 단지 '무인도'가 아니라는 설정, 그 이상의 설렘을 발동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흥미진진한 '단서'들은 일단 2권에서 다시 '본격, 추리'를 해보도록 하고, 다시 책의 줄거리로 시선을 돌려보려 한다. 먼저 줄거리는 단순하다. 다섯 명의 조난자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기구를 타고 미국의 '남북전쟁'이 한창인 리치먼드에서 탈출에 성공하지만, 하필 탈출할 때의 날씨가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이었던 탓에 운좋게 탈출에 성공한 것이 그만, 폭풍속에 휘말리게 되었고, 그렇게 남서쪽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려가다가 망망대해에 추락을 면하기 위해 기구 안에 실었던 '모든 것'을 기구밖으로 떨구며 근근히 버티다 '운좋게(?)' 육지를 발견하고 불시착을 하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 육지는 망망대해에 갇힌 섬이었다는 전개다. 그리고 그 섬은 대륙이나 가까운 섬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고,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뱃길과도 멀리 떨어진 탓에 그야말로 '완벽하게' 아무 것도 없는 무인도였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이토록 아무 것도 없는 섬에서 '생존의 불씨'를 되살린 것은 다름 아니라 '인류의 지혜', 그리고 '문명의 지성'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믿기 힘든 현실이 펼쳐지면서 '쥘 베른의 역작'이라는 면모가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이는 다섯 명의 조난자가 대단한 능력자들이라는 사실에서 더욱 그렇다. 그 뛰어난 능력은 그들의 이름에서도 엿볼 수가 있다. 먼저, 만물박사의 역할을 맡고 있는 '사이러스 스미스'는 Cyrus(키루스)라는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대왕의 이름에서 따왔고, <뉴욕 헤럴드> 신문기자인 '기디언 스필렛'은 종군기자로 활약하면서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용맹함을 갖춘 지성인으로 척박한 무인도에서도 위대한 모험가로 활약하며 조난자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발벗고 나서는 영웅적 인물이었다. 또한, 사이러스의 하인을 자처한 '네브'라는 흑인이 등장하는데, 북군으로 참전한 사이러스는 네브를 노예신분에서 해방시켰지만, 원래부터 충직하고 성실하며 헌신적인 성향을 띤 네브는 해방된 뒤에도 사이러스의 하인을 자처했더란다. 이런 '네브'의 이름은 성경에 등장하는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군주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 대왕에서 따왔다. 이 대왕은 백성을 사랑한 자애로운 왕이었으며 왕비를 위해 손수 '공중정원'을 만들어줄 정도로 지극정성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항해에 잔뼈가 굵은 선원 출신의 '펜크로프', 그리고 모험을 좋아하고 박물학에 뛰어난 재능을 갖춘 소년 '허버트'가 합류하여 아무 것도 없는 무인도에서 무엇이든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신비한 일들이 날마다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 설정과 전개는 이 책이 <15소년 표류기>나 <로빈슨 크루소>와 비슷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전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까닭은 앞선 두 소설에서는 표류자들이 '우연한 계기'로 생존에 필요한 물자나 원료를 얻게 되면서 무인도에서 생존하고 끝내 탈출하게 되지만, <신비의 섬>에서는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되어 완전 고립된 무인도에서 '자체적인 노력'만으로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무인도에서 용광로를 만들어서 '철기도구'를 제작해낸다든지, '니트로글리세린'이란 폭발물을 조제하여 거대한 폭발을 일으킬 정도로 '화학제조'를 실현한다든지, 맨몸으로 표류했음에도 굻어죽지 않을 정도를 넘어서서 매일매일 '사냥'에 성공해서 '고기(단백질)섭취'를 가능케하여 무인도에서 문명을 일구어내는 왕성한 체력을 뿜뿜해내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소설이라도 뻥이 좀 심하다고 할 수도 있다.
허나 쥘 베른은 이러한 '무모한 설정'을 온전히 '과학의 힘'을 바탕으로 완벽히 무마시켜버렸다. 무릇 인류에겐 '지식 축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는 달리 우월할 수밖에 없고, 그런 우월함을 바탕으로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밑바탕에 깔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무모한 '과학만능주의'의 폐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인간의 관점'에서만 '자연의 섭리'를 논하고, 그런 섭리의 위험함을 전혀 경계하지 않고, 오히려 '신이 내린 축복'으로만 해석하며 자연과 환경 파괴를 일삼는 모습은 이 소설의 유쾌함에 살짜쿵 걸림돌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쥘 베른이 19세기 작가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만물의 영장'으로 인간이 지구의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어쨋든, 1권은 씹던 고기에서 '납 총알'이 발견되어 2권에서 벌어질 파란만장한 모험담을 예고하며 마무리하였다. 2권에서는 또 어떤 '네모선장의 비밀'이 파헤쳐질지 기대가 만빵이다. 2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