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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4 - 거문도 Crisis와 방곡령 ㅣ 본격 한중일 세계사 14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8월
평점 :
지난 리뷰에서는 '갑신정변의 실패'로 우리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하였다. 딱히 정변의 주역인 '김옥균'만 탓할 것은 못 된다. 왜냐면 당시 '개화세력'이 너무나도 소수였고, 그나마도 다수 백성들의 지지도 없이 걍 '소수의 엘리트(지식인)들'만으로 시도 되었고, 급조한 정변이었기에 '외부세력(일본)'에 크게 의지한 모양새도 '플랜B'를 마련하며 실패할 확률을 줄여나가는 현명함도 없었으며, 당시 정권의 핵심이었던 '고종과 민씨세력'이 개화세력의 의견을 받아들일 정도로 개화되거나 국력도 뒷받침이 되지 않았으니, '실패한 정변'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렇게 얻을 것도 없는 정변을 왜 무리하게 시도했느냐는 역사적 논란이 많지만, 확실한 것은 무모한 정변의 실패로 인해, 이땅에 건전한 개화세력까지 깡끄리 사라지면서 남은 것은 훗날 '친일개화파(매국파)'만 남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고종을 위시한 '수구보수의 꼴통'만 득실거리는 정국에 '방곡령'과 '동학농민혁명'이란 굵직한 사건이 터지게 되니 이에 제대로 된 대응은커녕 헛발만 일삼다. 끝내 일제의 침략만 수월케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바로 14권의 내용이 바로 '갑신정변'과 '청일전쟁' 사이에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이며, 한중일 삼국 사이에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역사현장'이 세계사적으로 펼쳐지게 된다.
그 시작은 '거문도 점령'이다. 조선을 둘러싸고 영국과 러시아가 벌인 '그레이트 게임'이 그 원인인 사건인데, 단순히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한 영국의 조치로 흘러가지 않고, '청국의 개입'이 눈에 띄게 펼쳐지면서 끝내 '거문도 반환'이 이루어지게 되지만, 종국에는 '청의 간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사건으로 결말을 짓게 되었다. 까닭인 즉슨, 영국과 러시아 양국에게 '조선'은 머나먼 극동의 나라였던 탓이 컸고, 그로 인해 '전면전'을 벌이기에도 부담스러웠으며, 조선의 영토를 무단점령하였는데도 영국과 러시아 각국은 '조선정부'와 외교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문제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청의 조선에 대한 종속권'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 까닭 역시, 영국과 러시아 양국 모두 '조선정부'를 개무시하고, 청의 눈치만 살폈다는 점이다. 이렇게 조선은 아무런 '외교력'을 발휘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영국과 러시아의 '조선개입불가'만 확인하는 게기가 되었고, 청의 종속국이란 점만 다시 한 번 재확인하고 말았다. 이로써 고종의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청나라로부터 벗어나자'는 정책은 실패로 끝맺고 말았다.
한편, 조선에서 버라이어티한 일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일본은 잠잠했는데, 그 까닭은 '내부문제'를 해결하고, '실력행사'를 할 수 있을만큼 근대적 개혁을 마무리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천황제를 골자로 하는 일본의 입헌정치(헌정)가 완성되고, 초대 총리로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이 올라서는 일이 착착 진행중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이등박문의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끝내 일제가 '군국주의국가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준 꼴이 되었다. 서구열강처럼 '민주주의국가'로 발돋움하려 애를 썼지만, 결국에는 '모양새'만 그럴싸하게 탈바꿈하였을 뿐, 일본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 국가'의 기틀인 의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정치의 요람이 '바로 이때' 시작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일본의 군사력 강화에 깊이 올인하다보니 '군부의 핵심'인 육군의 장성이 천황의 명령 하나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천황제 군국주의국가'로 자리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의회의 총리'조차 일본시민들의 투표가 아닌 천황의 임명으로 군림(?)할 수 있게 되어 버린 일본은 입헌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국가'로 성장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형태의 근대국가로 서구열강의 '제국주의'를 흉내내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그런 기형적인 '군국주의국가' 일본제국이 가장 먼저 탐욕의 본색을 드러낸 국가가 '조선'이었다는 점이다. 또다시 내부문제 '일본의 연이은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해지는 판국에 이웃나라 조선에도 흉년이 들었는데도 일본내부의 '쌀부족 문제'를 조선의 쌀을 싹쓸이(!)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들었던 것이 '방곡령 사건'의 시작이었다. 조선 안의 쌀이 일본상인들의 싹쓸이 수매로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우려한 조선의 고을 수령들이 '방곡령'을 선포해 조선밖으로 쌀을 내보내지 못하게 하는 지극히 정당하고 합법적인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는 '조선 백성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조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로 인해 일본의 쌀부족을 해결할 수 없게 되자 '일본정부'는 실력행사를 통해서라도 조선정부를 압박해서 쌀부족사태를 해결하려 든 것이다. 이에 한 발 물러선 조선정부는 '방곡령'을 해제하고, 쌀 수출(?)을 허가하며 무마하려 들었지만, 그 사이 일본상인들의 손실을 빌미로 삼아 조선정부를 완전히 개무시하는 모양새로 일관하는 '일본정부의 무도함'을 아주 잘 드러내고 말았다. 이제 조선에 무슨 빌미만 생기면 바로 힘으로 제압해 해결하려는 못된 실력행사를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농민군에게 호되게 당한 고종과 민씨세력은 청의 종속국임을 스스로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청군'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이제 조선에 '일본군'이 들어올 수 있는 빌미가 제공되었는데, 과연 합법적으로 조선에 출병할 수 있게 된 일본군의 행보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