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13 : 중국 1 - 근대 편 - 이원복 교수님과 함께 떠나는 세계 역사 여행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13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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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13 : 중국 1 - 근대편>  이원복 / 김영사 (2018)

[My Review MMCXVI / 김영사 32번째 리뷰] 내 기억으로 <먼나라 이웃나라>는 1987년에 첫 선을 보였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학교 교실에서 한 친구가 보기 시작했는데, 쉬는 시간마다 10여 명이 둘러싸고서 한장 한장 넘기며 보았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당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차례대로 개최하면서 외국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때문인지 그 당시에는 듣도 보도 못한 나라 이름까지 외우며 세계지도를 뚫어져라 보기를 강요받던 기억도 함께 난다. 물론 '부루마블'이란 보드게임이 있어서 웬만한 나라와 수도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암튼 세계적인 축제를 개최하기에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와 '역사'도 우리 어린이들이 알고 좋겠다는 취지에서 기획하고 출간한 학습만화로 기억한다.

그러다 한 동안 잊고 지내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하며 받은 월급으로 어릴 적에 제대로 읽지 못한 <먼나라 이웃나라>를 구입해서 읽었는데, 아쉽게도 '초판본'이 아니라 '개정판'이었다. 더 아쉬웠던 것은 '개정판'을 구입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개개정판'이 나와 '완전 컬러판'으로 출간이 되었다는 점이다. 초판본은 '손글씨'였고, 개정판은 '활자본'이었는데, 모두 흑백이었다. 그런데 '개개정판' 이후부터는 총천연색으로 출간되었으니 솔직히 억울하기도 했다. 암튼 이런 옛 기억을 꺼낸 까닭은 이 책 <먼나라 이웃나라>가 출간한 지 30여 년이 넘었는데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 '중국편(전 2권)'만 해도 처음 선보인 것이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2010)이었고, 그 다음 개정판이 <새로 만든 먼나라 이웃나라>(2012), 또 개정판이 바로 이 책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2018), 그리고 작년에 <먼나라 이웃나라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2024)이 출간되었다. 굉장하지 않은가? 보통 '개정판'이 나오면 본문의 내용은 크게 달라진 것 없이 '오탈자 교정'을 약간 손 본 뒤에 '표지갈이'만 하고서 나오거나, '개정증보판'이라고 하고서는 '첫머리'에 등장하는 '서문'만 새로 쓴 것이 대부분의 관행인데, <먼나라 이웃나라>는 '개정증보판'이라고 하면 꽤 정성스럽게(?) 수정할 것은 수정하고, 생략할 것을 과감히 빼버리며, 새로 보충할 것은 확실히 증강시키는 공을 정말 세심하게 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매번 새로 '개정증보판'이 나올 때마다 이 책을 읽고 또 읽곤 한다.

하지만 이원복 교수의 저서 가운데 오직 <먼나라 이웃나라>만 읽을 만하다. 왜냐면 이 분의 저서가 '보수적인 관점'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먼나라 이웃나라>는 우리 나라의 '우익 정당'의 인식으로 기울어진 가치관으로 편향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좌파'나 '진보'적 가치관을 폄훼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애매할 정도로 '기울어진 가치관'으로 저술된 까닭에 어린이들에게 무작정 읽히기에 유익한 책이라고 권하기를 꺼리는 책이라는 얘기다. 애초에 초판본이 나온 해도 87년 '군사독재 정권' 시기였기에, 그들의 입맛에 딱 맞게..아니 그들의 눈치(검열 등)를 보면서 써내려 갔고, 2010년, 2012년 개정판은 '이명박 정권 시기(2008~2013)'였으며, 2018년 개정판은 '박근혜 탄핵 이후'에, 2024년 개정판은 '윤석열 정권 비상계엄 직전'에 출간되었다. 대부분 '보수정권의 시기'에 기획되고 개정을 거쳐 출간된 것이 묘하지 않은가? 책 내용을 봐도 어렵지 않게 그런 뉘앙스를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읽는 까닭은 '우리 나라 최초의 학습만화'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외국의 것을 베끼지 않고서 직접 펴낸 '우리 나라 학습만화의 원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품격을 꾸준히 지켜오고 있다. 그렇기에 '내 역사가치관'과는 살짝 엇나가는 내용으로 적혀 있다하더라도 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나름 '균형'을 잡아가는 스토리텔링을 높이 사서 꾸준히 애독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원복 교수의 '다른 저서'는 좀 별로다.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힌다)

<먼나라 이웃나라>는 학습만화라 해도 초등학생 어린이가 읽기에는 벅찬 내용이 담겨 있다. 단지 '만화형식'이란 이유만으로 초등생들에게 무작정 읽히는 학부모들도 많이 있을텐데, 적절한 '학습코칭'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정말 수박 겉핥기밖에 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내 학창시절(중등)에 첫 선을 보였을 때에도 많은 학생들이 '쉬는시간'에 읽고 '사회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폭풍질문을 던지곤 했다. 외국문화에 익숙치 않은 시절이라 궁금증이 많아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책 내용이 너무 수준 높았기 때문에 '읽는 것'만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원복 교수도 만화 중간중간에 '에드립(!)'을 많이 넣어 웃음을 유발시키고 있는데, 대부분 '반어적', '은유적', '풍자적' 표현이 많기 때문에 활자와 그림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문화적인 저변(배경지식)'을 과도하게 요구하고 있어 더욱 어렵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책 '중국 1 - 근대편'에서도 똑같이 작용했다. 중국은 청 말기에 접어들면서 '외세의 침탈'을 무수히 많이 받기 시작하는데, 그 이전의 역사는 과감히 생략하고, 대뜸 '아편전쟁'부터 서술을 하고 있다. 물론 웬만한 세계사 책이 중국의 근대를 '아편전쟁'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전의 역사도 얼추 설명한 뒤에 '중국의 근대 시작'을 알리는 아편전쟁을 서술하지 않느냔 말이다. 사실 '중국사 5000년'을 모두 담으려면 10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것이라서 <먼나라 이웃나라>는 '근대편'과 '현대편'만으로 압축하고, 집중하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이렇게 어려운 책을 '초등생'에게 읽으라고 권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역사적 배경지식'을 수준급으로 쌓은 독자에게 권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 이 책에서 눈여겨 볼 대목을 짚어 보자. 중국의 근대화는 엄청난 실패를 거듭한다. 아니 하는 족족 다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다 '일본의 근대화 성공'을 기회로 삼아 '일본 베끼기'에 돌입하지만,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친절한 이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당한 방법을 그대로 '이웃나라'에 써먹으며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의 편에 서서 중국을 비롯해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하고, 약탈하는데 열을 올린다. 이런 비운의 과정을 거치면서 중국은 서서히 '근대화'에 눈을 뜨지만, 몇몇 소수 엘리트 계층만 움직일 뿐 제대로 성과를 얻는 근대화 시도는 없었다. 10억 인구의 거대한 중국이 왜 이 모양이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이 이 책에 아주 잘 드러난다. 그건 바로 '위로부터의' 개혁시도는 민중들의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했기에 실패로 끝났던 것이다.

그럼 중국은 왜 공산화가 되었을까? 그건 바로 '밑으로부터의' 혁명 시도가 적확하게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바로 힘 없고 무식했던 농민, 노동자 들이 썩어빠진 나라를 싹다 뜯어고쳐 새롭게 만들어야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 수 있겠다는 '대오 각성'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큰 각성을 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이 되고 난 뒤에 '베르사유 조약'에 중국의 이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폭발력을 갖게 하였던 것이다. 바로 '5·4 운동'이 바로 그 시발점이 된 것이다. 그렇게 깨어난 민중들이 민주주의를 찾고, 진정한 자유를 보장 받길 원했지만, 중국 스스로의 힘이 열악했기에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탈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안으로 썪어들어간 정치인과 군벌 들에 의해 나라꼴이 엉망이 되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거대한 민족적 운동으로 '한 마음'이 되었지만, 서구열강의 힘은 더 셌다. 이때 마침맞게 러시아에서는 '공산혁명(볼세비키)'이 성공해서 공산국가 소련이 탄생했다. 그리고 소련은 '공산국가'를 늘리기 위해 유럽 각국에 발을 들이려 했지만, 이미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유럽국가들은 '식민지'에서 약탈한 이득을 그들의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나눠주고 있었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상'이 스며들 틈이 별로 없었다. 그렇기에 소련은 아시아로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다. 왜냐면 아시아 국가들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심어줌과 동시에 '공산혁명'을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유럽의 식민지'를 줄이는 결정적 트리거로 작용할 것이고, 그렇게 아시아 각국을 독립시키는데 성공하면, 유럽의 국가들도 더는 '식민지'에서 이득을 챙길 수 없을 테니,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사상이 파고들 틈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련은 '카라한 선언(1919년 7월)'을 하며, 혁명 이전에 맺었던 모든 비밀조약을 무효화 한다는 조치를 실시한다. 이로써 소련은 제국주의 국가(자본주의)들과는 다른 도덕성 우위를 확보하며,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 청년들의 마음을 일거에 사로잡게 된다.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중국에 '공산혁명'을 일으키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셈이다.

이 책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가장 눈에 띄게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물론 '중국의 근대화 실패와 공산혁명의 성공 과정'은 더욱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맥락만 이해하고 있어도 '역사의 큰 흐름'을 파악하는데에는 큰 고비 하나를 넘은 것과 맞먹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효과는 '학습만화'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단박에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 '중국사'가 정말 만만치 않다. 어려운 것은 둘째 치더라도 '너무 방대해서' 더욱 힘들다. 그걸 간추리고 생략하면서 이 정도로 '정리'해낸 것만으로도 엄청 대단한 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우리가 인식하는 '우익과 보수'는 과거 국민당의 후예를 자처하는 '대만'쪽이고, 그 반대인 '좌익과 진보'는 과거의 공산당인 '중국 본토'쪽이다. 그래서 읽다 보면 '중국공산당'이 꽤나 진보적이고 애국적인 행보를 걷고, '국민당'이 허술하고 답답한 행보를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어느 쪽이 더 객관적으로 균형잡힌 가치관인지 살짝 헷갈리곤 한다. 물론 진보와 보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서로의 입장이 달라질 수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닐지라도 '중국 근현대사'에 배경지식이 부족하고, 우리 나라와의 관계(독립운동)까지 확장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다. 그것까지 아우르지 못하고 '따로국밥'으로 저술되어 있는 점이 살짝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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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9 : 인간의 선택은 엉망진창이다 -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정재승 기획, 정재은.이고은 글, 김현민 그림 / 아울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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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탐구보고서 9 : 인간의 선택은 엉망진창이다>  정재승 / 정재은, 이고은 / 아울북 (2022)

[My Review MMCXV / 아울북 34번째 리뷰]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를 담아 놓은 책이다. 쉽게 말해, 비문학적인 책이고, 과학분야의 책인 것인데, 이런 '고도의 과학지식'을 그냥 담아 놓으면 몇몇 과학에 찐 관심을 갖고 있는 어린이말고는 절대 읽지 않을 책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어린이도 쉽게 접하고 읽을 수 있도록 '한 편의 이야기' 속에 뇌과학 지식을 우겨 넣은 책이라고 소개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이런 책이 상당히 '유익하다'는 점에는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것인데, 정작 읽기에는 살짝 아쉽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발견된다. 바로 '이야기'와 '과학지식'이 따로국밥을 말아놓은 것처럼 이질적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따로국밥'도 맛있다. 하지만 맛있는 것과는 별개로 '영양가'도 높고, 애써 담아 놓은 영양이 '우리 몸'에 골고루 섭취까지 되었으면 참 좋을 텐데, 정말 이 책을 읽고 '뇌과학'에 깊은 관심을 가질 어린이들이 있겠는가 싶은 의문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이야기는 '외계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구인 탐구 내용'을 보고서 형태로 기록하면서 '인간의 뇌'에 관한 전반적인 과학지식을 쏙쏙 알려 준다. 어린이책이 대부분 이런 형식으로 짜여져 있으니 그닥 이채로울 까닭은 없다. 근데 막상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이 '뇌과학' 책인지, '외계인' 책인지 알쏭달쏭해지기 시작한다. 그 까닭은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것은 '지구인'이 아니라 '외계인'이기 때문이다. 1권부터 9권까지 쭈욱 제목만 살펴보아도 그렇다. 인간은 거짓말쟁이다. 인간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인간은 선택도 엉망으로 한다...등등 지구인은 온통 '비이성적'이고, 외계인이 오히려 '이성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식이니 인간은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되고, 외계인은 '긍정적' 이미지를 취하게 되고 말았다. 물론, 책을 깊이 읽다보면 인간의 이런 '불완전'하고 '불명확'한 특성들이 오히려 현재 인류가 지구를 장악한 유일한 생물종이 된 필연적인 이유라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긴 하지만, 이를 파악하기란 어른들도 힘든 마당에 어린이 독자들이 스스로 읽고서 깨우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인지 의문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과학은 결코 쉬운 학문이 아니다. 학창시절에는 그저 '암기과목'으로 치부하며, 달달 외우기만 해도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과목으로 매도하기 십상이지만, 그렇게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언정 뒤돌아서면 다 까먹기 마련이다. 그런 식으로 과학공부를 시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새로운 '코칭 방법'을 고민하며 내놓은 방식이 '스토리텔링'과 '학습만화'를 결합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책들이 더욱더 많이 어린이 독자들에게 '관심'을 끌고, '사랑'을 받길 바란다. 그렇기 위해서 조금만 더 노력해주길 바란다.

더욱이 멀지 않은 미래세대에는 '과학지식'을 상식으로 갖지 못한 이들에게 매우 불편한 사회가 펼쳐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전은 이제 두 달이 멀다하고 '신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그 기술에 익숙해질 즈음에는 이미 '낡은 과학지식'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첨단과학 분야는 하루가 다르게 업그레이드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새로 나온 가전제품이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는 까닭도 바로 '첨단과학'을 탑재해서 '엄청난 기능'을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화기는 전화만 걸 수 있으면 되고, 밥솥은 밥만 지을 줄 알면 되고, 세탁기나 청소기도 그저 대충 기본적인 설정만 숙지하고서 달랑 '버튼 두 개(전원/시작)'만 누르면서 사용하고 있다. 훨씬 더 많은 기능을 쓸 수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전기밥솥으로 밥만 지을 뿐이지만, 쌀이 주식이 아닌 외국에서는 '음식조리'를 하는데 한국의 전기밥솥이 최고라고 극찬을 늘어놓는다. 이게 바로 '신기술'이 등장했지만, 과학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애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과학공부'를 꾸준히 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어린 자녀에게 읽으라 강요하기에 앞서 학부모들이 먼저 읽고 그 의미를 먼저 '되새겨' 주길 바란다. 그게 독서교육의 첫걸음이니까 말이다.

자, 이쯤하고, 지구에 도착한 아우린들의 갈등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멸망해가는 아우레 행성을 대신해서 아우린들이 거주가능한 행성으로 지구를 물색했는데, 저 멀리 다른 은하계에 '아우린 거주 가능한 행성'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가는데 230년이 걸렸으니, 오고 가는데 또 얼마나 걸릴 지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다. 새로 발견한 행성에는 아우린들이 살기에 적합하지만, 다른 지적생명체가 없기에 모든 것을 새로 건설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반면에 지구는 아우린들이 살기에 적합하지만, 이미 '지구인'이라는 지적생명체가 있어 이들과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한지 먼저 탐색해봐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만약 지구인이 공존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면 '전멸'시켜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지구인이 저항이라도 한다면 '전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자, 아우린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솔직히 이성적인 판단을 우선하는 아우린들이라면 '선택'을 위해서 고민을 그리 오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는 그리 큰 문젯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지구인과 '공존'이냐, '전쟁'이냐를 선택하는 문제만큼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지구인의 특성이 매우 '비이성적'이고, '오락가락'하며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똑같은 지구인'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몇몇 지구인을 관찰하고 난 보고서로 '모든 지구인'과 공존할 것인지, 전쟁할 것인지 결정 내리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선택'은 정말이지 엉망진창이다. 자기가 선택을 '결정'하지 못해 남에게 맡겨버리거나 심지어 "코카콜라 맛있다~"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점괘(?)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요즘에는 인공지능 AI의 '추천'을 받아 선택의 가짓수를 줄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추천을 받아도 '결정'을 쉽사리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지구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정'을 내렸다고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자기가 내린 결정이 아닌 까닭에 결국에는 그 선택에 대한 '후회'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물건 하나 고르는 것도 자기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어렵사리 결정을 해도 쉬이 후회를 하고 마는 인간은 비정상적인 것인가?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지극히 정상이다. 선택이 쉽지 않고, 후회도 빠른 것은 '최종 결정'을 내리기까지 인간의 뇌가 처리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더라도 '어느 쪽'이 더 이득이 될 것인지 분별하는 것이 매우 애매하기 때문이다. 뭐, 계측장비나 정보처리기의 도움을 받으면 여러 가지 항목별 통계를 내어서 어느 쪽이 더 이득일 것이라는 결론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겠지만, 그런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 '인간의 뇌'는 이성과 감성, 그리고 과거의 경험까지 온갖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혼란해지기 십상이란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에만 따른다면 쉬이 결정 날 것을, 조금의 손해를 보더라도 '그때의 감정상태'를 고려하게 된다면 결과는 정반대로 나오기도 한다. 거기다 '과거의 경험'까지 작동해서 최종판단을 내리게 된다면 더욱더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과거의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결론적으로 손해를 봤었다...는 경험이 누적될수록 '선택'은 느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판단의 지름길'이라는 뇌회로를 가동했다. 빨간 구두를 살 것이냐, 하얀 구두를 살 것이냐와 같은 선택은 '시간의 제약'이 없겠지만, 횡단보도를 걷는데, 자동차가 달려오는 상황이라면 '오른쪽으로 피할 것인지, 왼쪽으로 피할 것인지'와 같은 빠른 선택이 필요한 경우에는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대충 이런 상황'이라면 '이런 선택'을 해야 한다는 지름길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쌓이고 또 쌓이면 '비슷한 상황'에서 똑같은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뒤따라 오는 '후회'는 당연한 덤이다.

이렇게 우리의 뇌는 꽤나 신비한 영역을 품고 있다. 그리고 뇌과학이 풀어야 할 숙제도 무궁무진하다. 다른 과학분야에서는 이제 더 연구할 거리가 없어서 특기할 만큼 진척이 없지만, 뇌과학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우리의 미래세대가 뇌과학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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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유람기
김연수 지음, 강혜숙 그림, 조너선 스위프트 원작 / 대한출판문화협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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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껄늬버 유람긔 : 걸리버 유람기>  조너선 스위프트 / 김연수 / 대한출판문화협회 (2024)

[My Review MMCXIV / 대한출판문화협회 1번째 리뷰] <걸리버 여행기>는 워낙 많이 읽었기 때문에 특별할 것이 없을 정도지만, '제목'이 참 옛스러워서 꺼내들었다. 문득 '신사유람단'이 떠올랐는데, 아닌 게 아니라 최남선이 우리 나라 최초로 <걸리버 여행기>를 뒤쳐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최남선은 특이하게 '소인국'이 아니라 '거인국'부터 썰을 풀어낸 뒤, 나중에 '소인국'도 써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순서에 맞게 고쳐 '알사람 나라 구경', '왕사람 나라 구경'이라고 풀어서 썼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남선도 '소인국과 거인국' 편만 뒤쳐내는데 그쳤다고 한다. 그럼 그 뒤의 이야기는 '어떻게' 썼을까? 그게 이 책을 읽는 핵심일 것이다.

사실, '알사람'과 '왕사람' 나라의 이야기는 크게 주목할 것이 없다. 단지 대한제국에서 일제강점으로 넘어가던 시기의 어투로 익살 맞게 풀어 쓴 노력이 엿보이긴 하지만, 애초의 '원작 내용'을 익히 알고 있는 현시점에서 보자면 그저 '축약본의 내용'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날사람 나라 구경'과 '말사람 나라 구경'은 완전히 새로 창작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완연한 특색을 드러냈다. 앞서 나왔던 '최남선이 구연한 어투'에서 벗어나 '현대말(어투)'로 고쳐 쓰면서 주위환기를 시키더니 줄거리도 과감하게 들어낼 것은 들어내면서 빠르게 진행하더니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등장인물'을 하나 등장시켰다. '날사람 나라'에서 걸리버의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일본'을 거쳐 지나가면서 잠깐 '율도국'을 찍고 간다는 설정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 율도국에서 누굴 만났겠는가? 바로 '홍길동'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걸리버가 정상적인 율도국 방문은 아니었지만, 홍길동이 누군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신출귀몰한 초능력의 소유자 아니겠는가. 그러니 걸리버가 일본에서 서쪽으로 향하면서 그 사이 어디쯤엔가 있었다던 '율도국'을 방문했다는 것이 그리 크지 않은 어색함이었기에 큰 무리도 없었다. 그런데 '말사람 나라 구경'을 하면서 홍길동은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 책에서는 '말사람 나라'의 이야기도 대폭 축약해서 빠른 속도로 진행한다. 그 결과 걸리버는 후이늠 사회에서 추방을 당할 바에야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그렇게 죽었으면 이야기는 끝이 났을 텐데, 난데 없이 홍길동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딴 데로 새고 만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렇게 딴 데로 새는 바람에 이 책의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 조나단인지, 조너선인지, 암튼 스위프트가 쓴 <걸리버 여행기>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만끽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걸리버 여행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분명 <걸리버 여행기>는 맞는데, <걸리버 여행기>가 아닌 책이란 것이다. 하긴 홍길동이 난데 없이 등장했으니 분명 그럴 수밖에 없긴 할 것이다. 그렇다면 걸리버는 홍길동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것일까? 그것까지 다 까발린다면 그냥 '스포일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이 책을 읽는 독자마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생각을 풀어가게 될 흥밋거리로 남겨두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니 이쯤 해서 그만하려 한다.

다시 최남선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최남선은 애초에 조선의 근대화에 앞장 선 위인이기도 하다. 당시 상당수의 '근대화에 애쓴 인물들'이 죄다 '친일매국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정말 안타깝지 그지 없지만, 그 당시의 현실을 감안하면 '쇄국이냐, 개항이냐'를 두고 논박을 이어나가던 상황이었으니, 그들 눈에는 '외세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이 꽉 막힌 조선의 문을 열고 더욱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이런 행보를 걸은 최남선은 당시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신문물'을 맛볼 수 있는 '세계문학전집(총10권)'을 구상했는데, 그 첫 번째 책이 바로 <껄리버 유람긔>(거인국)였던 것이다. 하지만 최남선은 이 책 한 권 달랑 써내는 데 그쳐버리고 말았단다. 당시 혼란하고 급변하던 정국에서 뭔들 제대로 돌아갔을 턱이 있겠는가. 그러다가 훗날 새롭게 출간한 '세계문학'이 있었는데, 그때 '제2권'으로 <홍길동전>을 소개했었다고 한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바로 이 책의 저자 김연수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숱하게 많은 <걸리버 여행기>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걸리버 여행기>를 창작해낼 원동력이 되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원래 <걸리버 여행기>의 핵심은 '정치풍자'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정치풍자'는 쏘옥 뺐다. 애초에 최남선이 펴낸 책조차 그런 '정치풍자'의 내용은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상당부분 덜어내었다. 대신 '세태풍자'로 두루뭉실 넘기더니 '인간 본연의 욕망'이 드러내는 어두운 면은 신랄하게 비난하던 것에 편승해서 살짝 수위는 낮춰 누가 읽더라도 재미와 흥미를 잃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한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이는 최남선이 참고했다는 '일본어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일본도 '정치풍자'의 내용은 부담스러웠는지 '천공성'과 '마인국' 편은 뒤쳐내지 않았고, 당시 권력자들의 허세를 신랄하게 비난하던 내용도 대부분 삭제한 채 출간했더랬다. 그래도 천재와 신동 소리를 밥 먹듯이 듣던 최남선이었기에 '영문판'을 읽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러니 그도 '원본'의 내요이 어떠한지는 소상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어린이(청소년)에게 읽혀서 좋지는 않겠다 싶어서 자체적으로 들어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이 책도 '정치풍자'적인 내용은 그닥 들어내지 않았다. 다만 '걸리버'가 우리 미래세대에게 큰 영향을 끼칠 위인이라는 점을 '홍길동'의 말을 빌어서 강조하는 방식을 썼다. <홍길동전>의 주제도 세상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적서차별'을 시작으로 '능력'이 있어도 '신분'이 따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세상에 대한 한 맺힌 목소리를 담아내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꾼 위인으로 '홍길동'을 거론하기도 한다. 정작 홍길동은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마찬가지로 '걸리버'도 허구 속 인물이긴 하지만 '위인'으로 삼을 만하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이것이 '문학이 지닌 힘'이다. 비록 현실세계에서 있지는 않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를 통해서 현실을 사는 우리들에게 크나큰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대에 걸맞는 이야기가 꾸준히 새롭게 창작되어야 할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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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문, 결혼식에 초대받다 이사도라 문 시리즈 12
해리엇 먼캐스터 지음, 심연희 옮김 / 을파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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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문, 결혼식에 초대받다>  해리엇 먼캐스터 / 심연희 / 을파소 (2021) [원제 : Isadora Moon Goes to A Wedding]

[My Review MMCXIII / 을파소 13번째 리뷰] 남자 어린이에게 결혼식은 전혀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여자 어린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결혼식장에서 펼쳐지는 모든 것이 황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이라고 성대한 결혼식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들만큼 설레이거나 오금이 저려 주저앉을 정도의 짜릿함은 절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책 가운데 '결혼식'을 소재로 한 책이 많다. 이 책 <이사도라 문, 결혼식에 초대받다>는 이사도라의 이모, 즉 이사도라의 엄마인 코델리아 문의 여동생 크리스탈의 결혼식에 이사도라가 '들러리'로 초대를 받으면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을 글감으로 삼았다. 아무래도 어른들의 잔치에 어린이들은 살짝 '지루함'을 느끼고 '장난질'을 치기 일쑤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장난질이 결혼식 순서에서 가장 빛나는 '웨딩케익'과 관련된 것이라면 일이 절대로 가볍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사도라 문은 '웨딩케익'을 어떻게 한 것일까?

이사도라의 엄마는 '여름 요정' 출신이다. 그러니 이번 결혼식은 '요정들의 결혼식'으로 거행 될 것이다. 크리스탈의 배우자는 '렌'이라는 여름 요정이란다. 크리스탈은 '겨울 요정'이니 둘의 결혼식은 눈송이와 꽃이 함께 어우러지는 대향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하지만 '뱀파이어' 출신인 이사도라의 아빠 바톨로뮤 백작은 결혼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두꺼운 외투'부터 챙기고 있다. 박쥐들이 어두운 밤에 활동하긴 하지만 겨울엔 깊숙한 동굴속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는 것과 같은 이유다. 한마디로 추운 건 질색한다는 이야기다. 요정들의 결혼식인만큼 '드레스 코드의 색깔'은 분홍색이 될 것이다. 온통 분홍색으로 장식된 결혼식장을 상상해보라. 물론 개인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요정답게 결혼식장으로 갈 수단은 '요정 마차 썰매'다. 그리고 썰매가 잘 움직일 수 있도록 출발 직전에 빗방울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야 결혼식장 근처에서는 '눈송이'가 날릴 것이 아닌가. 그렇게 '눈꽃 모양'을 한 썰매가 하늘을 스치듯 날아올랐고, 드레스에는 반짝이를 뿌렸고, 머리에는 화관으로 장식하고 온가족이 결혼식장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녀와 요정의 혼혈'인 미라벨을 만났다. 지난 번에도 엄청 짓꿎은 장난질을 했던 바로 그 '마녀요정' 맞다. 그리고 드디어 마주한 결혼식의 주인공 '크리스탈 이모'를 만나게 된다. 아름답고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순백의 신부를 말이다. 그리고 시작된 결혼식은 수많은 하객들의 축하와 환호 속에 성대하게 치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 들러리들은 길고 복잡한 식순 덕분에 배가 고파지려 했다. 그래서 결혼식장을 나와 '피로연장'에 도착한 어린 들러리들은 준비된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금방이고 '디저트'를 빨리 먹고 싶었지만, 어른들은 피로연장에서도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결국 지쳐버린 어린 들러리, 이사도라와 미라벨은 꼬마 허니블로섬과 함께 '로비'로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웨딩케익'은 정말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황홀할 정도로 먹음직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식의 주인공이 커팅을 하고 나누어주기 전에 먼저 실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그림의 떡'마냥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미라벨이 먼저 말을 꺼냈다. 지난 번 '인형의 집'에서 놀 때처럼 아주아주 작아져서 웨딩케익의 맛을 보면 얼마 먹지 않을 테니 크게 티가 나지 않을 거라면서 말이다.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동안 '마녀 마법'의 실력도 좋아졌을 테니 절대 실패하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이사도라는 직감적으로 큰 일이 날 것 같은 예감을 했다. 티가 나든 안 나든 크리스탈 이모의 결혼식 하이라이트인 '웨딩케익'을 망가뜨리는 일이 될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 장난질은 분명하게 거절을 했다. 그런데 미라벨은 자기 혼자서라도 작게 변신을 하려고 했고, 허니블로섬이 호기심에 미라벨에게 가깝게 다가가고, 이사도라는 뒤늦게나마 허니블로섬을 가지 못하게 막으려는 순간, 셋은 모두 작은 인형만하게 작아지고 말았다.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갈 방법도 알고는 있었지만, 엄청나게 커다랗게 보이는 '웨딩케익' 때문에 셋은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이모의 웨딩케익을 망칠 수 없다는 일념으로 버티던 이사도라도 손끝에 살짝 찍어서 맛을 본 '분홍크림의 맛'이 너무 달콤해서, 조금만, 조금만 더, 한 입만, 한 입만 더 먹다보니 어느새 웨딩케익 여기저기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말았다. 순간 제정신을 차리고 웨딩케익을 바라보니 이미 엉망진창으로 케익은 망가져 있었다. 그 순간에도 미라벨과 허니블로섬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겁지겁 웨딩케익을 먹어치우고 있었던 것이다. 자, 과연 이번에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

어린시절에 누구나 '참을성'을 갖추지 못해 일을 크게 벌여 호되게 혼난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어떻게 저지른 일을 해결했었나요? 대부분은 엉엉 울면서 '뒷감당'을 하지 못한다는 내색을 보였고, 그 덕분에 어른들은 호되게 혼꾸녕을 낸 다음에 일사천리로 '벌어진 일'을 순식간에 처리하고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줬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어른들을 '슈퍼히어로'처럼 여기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들이 '참을성'을 기를 수 있기는 한 걸까?

예전에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자기계발서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마시멜로를 주면서 "30분 동안 먹지 않고 참는다면 하나를 더 준다"는 실험을 했던 것으로 전세계에 충격적인 결과를 보여준 사례가 있었다. 애초에 약속한 대로 30분 동안 잘 버틴 아이에게는 '마시멜로 한 개'를 더 주었지만, 상당수의 아이들은 '나중의 보상'은 나몰라라 한 채, 30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홀랑 먹어버린 아이들이 대다수였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보고서의 결과는 이후 20년 뒤, 아이들의 성공적인 삶을 보장하는 미래에 '한 번 더' 통계 결과를 선보였다. 마시멜로를 한 개 더 받은 어린이들 가운데 '성공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부를 쌓거나 사업에 성공하거나 사회적 지휘가 높은 직업을 구하는 비율이 획기적으로 높았다는 결과 내용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로써 어릴 적에 '참을성'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어린이가 더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라며 호들갑을 떨었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야 이런 '실험 결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반박하는 연구보고서가 나왔고, '마시멜로 효과'라고 하는 것은 그저 수없이 많은 성공담 가운데 '일부분'일 따름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참을성'을 길러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들만큼 솔깃한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참을성'을 기르는 훈련 프로그램과 코칭을 받게 하는 학부모들도 있긴 하지만, 솔직히 '사교육 전문가'로서 조언을 드리자면 말짱 헛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참을성이 많으면 그런 특기를 살려 '직업'을 구하면 그뿐, 참을성이 없어도 나름의 특기를 살려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경우도 흔해 빠졌으니, 참을성 하나 기르자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 뭔가를 할 필요까진 없다는 말이다. 그보다는 어린이의 개성을 눈여겨 보고 '적성'에 딱 맞는 비젼을 선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장난질이 심한 어린이라고해서 막무가내로 혼꾸녕만 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미래에는 '장난질'을 잘 치는 사람이 더 각광을 받는 세상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는 사람보다 훨씬 더 똑똑한 '인공지능 로봇'이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돈을 벌어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뭘 하고 살까?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 같은 사람들은 '더 잘 노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그런 세상이 진정한 '유토피아'를 제공할 것 같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여유를 즐기는 삶을 살게 될 거란 말이다. 그러니 어릴 적부터 '장난질'을 잘 치는 사람이 어른이 되어서 '더 잘 노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더 높고, 그런 삶을 충실히(?) 살아가야 남들보다 훨씬 더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며 행복해 할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혼꾸녕을 내야 할 때는 따끔하게 내어서 '해서는 안 될 장난'은 구별할 수 있도록 훈육해야 하는 건 '어른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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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2
김만중 지음, 송성욱 옮김 / 민음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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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2] <구운몽>  김만중 / 송성욱 / 민음사 (2003) [원제 : 九雲夢(1687)]

[My Review MMCXII / 민음사 26번째 리뷰] <구운몽>을 서포 김만중이 지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현재 남아 있는 필사본과 목판본, 그리고 구활자본 가운데 원작자가 직접 쓴 '원본'은 현존하지 않고 있단다. 나도 이 책을 읽고서 처음 안 사실인데, 원래 대부분의 '한국고전문학'이 작자미상인 경우가 많아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것을 '판소리'와 만나 <판소리계 소설>도 거듭 났고, 필사에 또 필사를 거쳐서 '있던 내용'이 사라지거나 '없던 내용'이 덧붙여지는 등 수많은 '이본(異本)'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구운몽>처럼 원작자가 명박한 경우에도 애초에 쓰여진 '원본'이 유명무실해진 탓에 현재까지 '필사에 필사'를 거친 필사본으로, '한문'으로 적혀져서 목판본으로 남거나, 근현대로 넘어와 구활자본으로 남겨질 때까지 수없이 많은 변형을 거쳐왔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런 탓에 김만중이 애초에 유배 당시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서 <구운몽>을 썼을 때, '한문'으로 썼는지, '한글'로 썼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다만, 김만중이 쓴 또 다른 소설 <사씨남정기>를 그의 종손인 김춘택이 '한문'으로 번역했던에 비추어보면 <구운몽>도 애초에 한글로 썼다가 훗날 누군가에 의해 한문으로 뒤쳐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현재 수없이 많이 출간된 <구운몽>도 수없이 많은 '버전'으로 나왔단다. '한문본'이나 '한글본' 모두 현대어로 뒤쳐졌고, 거기에 상세한 '주석본'까지 나와 있는 상황이라 한다. 헌데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일반인'과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뒤쳐진 관계로 '원래의 작품'과는 상당히 달라진 것이 많다고 여겨진다고 지적한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나도 '어린이책'으로도 수차례 거듭해서 <구운몽>을 읽어보았지만, '똑같은 책'은 없었다. 내용이 아주 다르지도 않았지만, '옮긴이(뒤친이)'가 의도한 대로 조금씩 변형이 가해졌을 것은 부득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점은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그건 '어린이책'에 담을 교훈적인 내용에서 어느 부분을 '강조'할 것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으로 이해했었는데, 그보다 훨씬 확장된 문제를 안고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전문가의 고뇌'에 해당하는 영역이고, '원작'의 내용이 애초에 어땠는지는 '원본'이 등장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므로 크게 논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다만 <구운몽>이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라는 사실만큼은 짚어야 할 것이다. 익히 알고 있듯이 '줄거리'는 그닥 어려울 것이 없다. 성진 스님이 '팔선녀'를 희롱하며 불가에서 허락하지 않은 '욕망'을 품자, 성진의 스승인 육관대사가 성진을 꾸짖으며 잠에 빠져들게 하니, 꿈속에서 성진은 '양소유'라는 인간으로 태어나 한 평생을 욕망대로 살게 한다. 이에 팔선녀에게도 앞날이 촉망 받는 불제자를 '유혹'한 죄를 물어 인간세계로 환생하게 하니, 여덟 모두 양소유의 부인과 첩이 되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온갖 환락을 다 누릴 수 있게 한다. 그렇게 모든 여한을 다 풀도록 다 누린 '아홉 명'은 천수를 누리다 잊고 있던 하늘의 뜻을 각성하고 '인간의 삶'을 죽음으로 다하고 나니, 그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꿈속에서 깨어난 아홉 명은 서로 마음속에 품고 있던 '욕망'이 더 없이 허망하다는 큰 깨달음을 얻고 속세를 벗어나 해탈하게 된다는 전형적인 '환몽소설'의 구조를 띠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소설을 김만중은 왜 어머니께 보여드린 것일까? 잘 알려진 바로는 '유복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유달리 효심이 깊었다는 데서 이유를 찾는다.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는 선조의 부마였던 윤신지의 손녀라고 한다. 왕가의 혈통을 이은 실로 대단한 집안의 자손인 셈이다. 그건 윤씨가 사대부 가문의 교양을 몸에 벨 정도로 닦고 있었다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점이고, 숙종 때 도승지, 대제학, 대사헌을 거쳐 예조판서까지 역임할 정도였기에 김만중의 실력 또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당시 양반들이 천대하던 '소설'을 짓고, 얕잡아 보던 '한글'로 직접 썼으며, 그 내용조차 금기시하던 '불교의 이념'을 담아 어머니께 보여드린 것이다. 의아하지 않은가? 김만중도 '서인 세력'이었으니 '율곡 이이'가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구도장원)할 정도의 실력자였음에도 어머니의 죽음(신사임당)으로 삶을 비관하여 스스로 머리를 깎고 불가에 입문했다가 환속한 것을 두고두고 손가락질 한 것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도 말이다. 아무리 일반인에게 읽히려는 목적이 아니라 단 한 명의 독자, 어머니를 위해서 쓴 것이라 할지라도 엄연히 사대부 가문의 규수로 지내온 여인에게 <구운몽>은 썩 온당치 못한 내용으로 보인다. 물론, 조선 전기 때에는 왕실에서조차 여인들이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숙종 때면 조선 후기이고 '예송논쟁'이 일단락이 되어 더욱 철저한 '유교이념'을 강박하던 시절이 아니었느냔 말이다. 도대체 김만중은 어머니 윤씨에 무엇을 의도한 것일까? 많은 학자들은 <구운몽>에 담긴 요지가 '일체의 부귀영화가 모두 몽환에 불과하니' 아들의 귀양살이도 살아서도 생이별이고, 죽어서도 곧 이별일 따름이니 이 책을 소일거리로 삼아 너무 심려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그리고 너무 눈물 짓지도 마시라는 뜻으로 직접 지었을 거라고 분석한다. 정말 그뿐인 것일까?

당대 성리학자로 유명한 '도암 이재(1680~1746)'는 <구운몽>을 읽고, 세상의 부귀영화가 한순간 꿈과 같이 허무한 것임을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단다. 그러면서 불교적인 색채가 녹아 있지만 초나라 충신 굴원이 지은 <이소(離騷 : 근심에서 벗어나다)의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했단다. <구운몽>의 독자가 어머니 한 분 뿐만이 아니었고, 창작 당시에 이미 '베스트셀러'로 널리 읽혔다는 사실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김만중도 '정치적인 목적'을 담아 '주위의 시기와 음모로 끝내 뜻을 펴지 못하고 불우하게 생을 마감한 굴원'과 동일시하며, 자신의 귀양살이가 억울하다(?)는 의도도 의심해볼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러거나 말거나, 현대에 와서 <구운몽>은 김만중의 정치적 의도를 고려하며 읽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의 심경이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성독자'를 대변할 윤씨가 남긴 '기록'이 없으니 억지로라도 짐작해볼 따름이다.

교과서에서 분석하는 내용에 따르면, <구운몽>은 유교적인 현실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불교와 도교의 색채를 가미해서 이색적인 분위기를 입혔다고 본다. 다시 말해, <구운몽>에는 '세 가지 인생관'이 모두 담겨 있다는 말이다. 그 가운데 어느 것을 중점적으로 읽을 것인지는 '독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구운몽>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목은 '유교적 이념'인 현세구복적인 인생관이다. 유가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이 '입신양명'이다. 바로 해석하면 '몸을 세우고 이름을 날린다'는 뜻이다. 여기서 '입신'이라함은 '수신제가'에 해당할 것이고, '양명'이라함은 '치국평천하'에 해당할 것이다. 내 한 몸 일으켜 세워서 온세상을 다 누리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는 것이다. 헌데 <구운몽>에서 양소유의 모습을 보면 '입신양명'의 의지는 보이지만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같은 거창하고 원대한 목표는 분명치 않다. 이는 그가 과거시험을 보러 어머니의 품을 떠나는 장면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난다. 양소유가 집을 떠나면서 가장 처음 한 일이라고는 '미녀(진채봉)'와 백년가약을 약속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전쟁이 나서 과거시험은 뒤로 미뤄지지만 냑양에 도착하고서도 한 짓이라곤 '미녀(계섬월)'과 노니는 것이었다. 도대체 공부는 언제 했단 말인가? 더구나 계섬월은 '또 다른 미녀(정경패)'와 혼인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선까지 해줬고, 양소유도 그말을 쫓아 여염집 규수인 정경패의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여장'을 하고 몰래 잠입하기에 이른다. 이에 중매쟁이까지 정경패와 혼인할 요량이면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공부에 매진하라 꾸짖지만, 온통 미녀(정경패) 생각 뿐이다. 운 좋게(?)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정경패와 혼인 하지만 곧바로 전쟁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토번을 정벌하려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허나 양소유의 능력이 워낙 출중했던 탓인지 전쟁에 대한 준비 또한 아무렇지 않게 해버리고, '또 다른 미녀(자객 심요연과 용왕딸 백능파)'와 운우지락을 즐기는데 전념한다. 그리고 그 전념을 통해서 전쟁은 승리로 종결된다.

이쯤 되면, 양소유라는 인간을 통해서 바라본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전혀 노력하지 않고 천운에 기대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읽히지 않은가? 그는 이름 그대로 한 평생을 '노닐다(少遊)'가 갈 운명인 셈이다. 그렇게 전쟁에서 승리한 공을 얻고서 황제의 딸인 '난양공주 이소화'와 짝을 이루니, 2처 6첩(정경패, 이소화 / 가춘운, 계섬월, 적경홍(계섬월의 친우), 진채봉, 심요연, 백능파)을 완비(?)하게 된다. 조선은 '일부일처제' 국가로 단 한 명의 정실부인만을 인정했으며, '일처다첩제'도 용인했기에 한 남자가 수많은 처첩을 거느리는 건 흠이 아니라 자랑(!)으로 삼을 정도였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구운몽>이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에게 진상(!)하기 위해 지어진 소설이라는 점이다. 과연 일찍 남편을 잃고 평생을 수절한 아녀자가 읽으면서도 이 책이 슬픔을 잊고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책이었을까?

이는 <구운몽>에 등장하는 미녀들의 면면을 살펴볼 필요를 느끼게 한다. 분명 겉으로 읽으면 남성작가에 의해 쓰여진 '한 남자와 여덟 여자'의 가성비(?) 맞지 않은 이야기로 읽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미녀로 등장하는 여인들의 말과 행동이 다분히 '여성작가'가 쓴 소설처럼 섬세한 면이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성 등장인물은 밋밋할 정도다. 하긴 대표적인 남성으로는 양소유만 등장하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없을 정도지만, 여성 등장인물의 소개부터 그녀들이 하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여성독자'들이 읽기에도 무난한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더구나 조선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들 모두가 당당하고, 당돌하기까지 하다. 여자라고해서 남성들에게 매달리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베필'을 손수 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명확한 근거'를 대며 퇴짜를 놓기 일쑤고, 적장의 목을 벨 정도로 용맹하고, 어려운 난제를 능히 풀어낼 정도로 지혜롭기까지 하다. 물론,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는 '사회적 한계'도 여실히 드러내 보이긴 하지만, 당시 억눌리고 억압만을 강요받던 여인들에게는 '그만큼의 자유'조차 목숨을 내놓고 남자들의 처분만을 기다려야 했는데, <구운몽>에서는 그보다는 훨씬 더 자유분방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아마도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는 이런 면모까지 읽으며 흡족해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겉으로는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였지만, 그 내부에 들어서면 '여인들의 치마폭'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연약한 남성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고, 여인들의 진정한 힘이 '외유내강'에 있음을 섬세한 붓끝으로 그려낸 아들의 소설을 읽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을지도 모른다. 집밖으로 나갈 수 없는 '한계'를 집안에서의 친목을 도모하며 가문의 번창을 모색했던 여인네들의 삶, 또한 새삼스럽게 해석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양소유의 아내들이 딱 '한 명의 자녀'만을 두었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현실에서 여덟 명의 아내가 한 집에 살고 있으면 시기와 질투로 인해 난장이 벌어질 것이며, 그 자식들의 우열(!)을 따지며 암투가 벌어질 것이 자명하지만, <구운몽>에서는 그런 모습이 일체 보이질 않는다. 이게 그저 '한계점'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절묘한 비책'을 선보인 것이라면 어쩔 것인가? 구중궁궐 속에서 펼쳐지는 피비린내 나는 암투가 아니라 여인들끼리 친목과 화목을 내세워서 '한 가문의 평화'를 이뤄 '치국평천하'까지 내다본 것이었다면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거의 실현불가한 일이었겠으나 허구를 다루는 소설에서 이런 '유토피아'를 꿈꿨다는 점에서 의미를 높이 살 근거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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