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고 쎈 중등 수학 3-1 (2023년용) 중등 쎈수학 (2023년)
홍범준.신사고수학콘텐츠연구회 지음 / 좋은책신사고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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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공부의 비법'은 평범하다. 공부를 억지로 하지 않고 즐기면서 하면 된다. 정말 쉽지 않은가? 그런데도 대다수의 학생들은 공부를 즐기는 방법을 묻지 않고 그저 '잘 하는 비법'만을 캐묻는다. 정작 자신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공부를 잘 하게 해달라고 소원만 비는 것처럼 말이다.

 

  공부의 비결은 '다이어트 건강법'과 비슷하다. 일단 체중을 줄이려면 '먹는 양'는 확연히 줄여야 한다. 그 다음에는 몸에 나쁜 음식을 '절대' 섭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소식을 하면서 '해로운 성분'이 덜 들어간 음식을 골고루 섭취한다면 다이어트는 자연스레 된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은 단단히 오해한다. '먹는 양'을 줄이지 않으면서 '살 빠지는 약(?)'만 먹으면 100% 살이 빠질 수 있다고 말이다. 반면에 '먹는 양'을 확실히 줄이고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면서 '살 빠지는 약(!)'을 동시에 복용하면 효과가 더 좋을 것이라 착각을 하곤 한다. 이럴 땐, 살이 빠지는 것은 둘째치고 '건강'이 나빠져서 몸이 병들기 십상이다. 그렇게 병들어 가면서 살이 빠진다고 좋아라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공부도 '이렇게' 하기 십상이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시험에 나오는 문제'만 골라(?) 골라서 풀면 성적이 쑥쑥 올라갈 것이라 믿고 '쪽집게 과외', '시나공(시험에 나오는 문제만 공부한다)'과 같은 환상에 젖곤 한다. 또는 '공부의 양'만 잔뜩 늘여놓고서 자신의 건강도 돌보지 않고 잠도 줄여가면서 코피를 쏟아가며 죽어라 공부만 하는 친구들이 있다.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하다보면 성적이 오르더라도 '단기적인 성과'에 불과하며, 마라톤과 같은 학업의 길을 완주하기에 택도 없는 방법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공부는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저마다 찾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공부 비법' 되겠다. 그렇다면 공부를 즐길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일단 자신의 적성에 맞는 '과목'을 찾는 것부터 해야 한다. 언어적 영역에 호기심이 많다면 국어나 영어, 그밖의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아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탐구적 영역에 관심이 높다면 사탐이나 과탐 쪽 과목들과 연관된 '배경지식'을 넓혀가는 것이 좋다. 이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의 '배경지식'을 속깊고 폭넓게 다루다보면 저절로 '공부의 맛'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한편, 예술적 재능이나 체능적 재주가 발달한 친구라면 '예체능의 실력'을 더욱더 갈고 닦길 바란다. 이를 테면, 음악 공부도 하다보면 자연스레 실기와 함께 '이론'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론을 접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다시 '수학'과 '과학', 그리고 '역사'와 같은 과목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속깊은 이론수업을 통달해야 비로소 음악적 재능이 꽃 피울 수 있게 되는 법이다. 이는 미술과 체육도 마찬가지다.

 

  여담이지만, 공부가 정말 싫어서 음악을 전공하던 친구가 '음대'까지 진학하게 되었지만, 전문적으로 음악인으로 살아가려다보니 어쩔 수 없이 다시 '수학'을 공부해야만 더 좋은 음악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거짓말 같은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정말로 공부와 담을 쌓은 친구들은 '수포자'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면서 공부를 점점 더 하기 싫어질 것이다. 그럴 땐 '유용한 도구'를 잘 만나야 하는 법이다. 물론 '좋은 선생님'도 함께 만나야 한다. 사람을 절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공부도 혼자의 힘으로 대성하기 정말 힘들기만 하다. 그러니 '유용한 도구(교재)'와 '좋은 선생님'을 찾으러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것은 전혀 아까운 일이 아니다. 이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자, 그럼 공부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유용한 수학교재는 무엇일까? 당연히 '이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지만, 교재도 자신에게 딱 맞는 성향의 것을 찾아야만 한다. 그러니 무조건 '이 책'이 좋다고 권하는 친구나 선생님이 계시다면 '알았다'고 참고만 하고, 자신이 직접 문제를 풀어보면서 고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교재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팁은 '답지'를 옆에다 펼쳐놓고 풀어보는 것이다. 공부는 뭐니뭐니해도 '피드백'이 중요하다. 풀고서 곧바로 답을 맞춰보면서 '왜' 맞았는지, '왜' 틀렸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자신의 공부 실력을 가늠할 수도 있으면서, 동시에 '좋은 교재', '나에게 딱 맞는 교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답지를 옆에다 펼쳐놓았다고해서 '답을 베끼라'는 얘기가 아니다. '풀이과정'을 눈여겨 읽어가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눈으로 익히고 실제로 시험을 치룰 때처럼 '막히는 부분'이 어디인지 빠르게 검토하면서 문제를 내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반복 연습' 해보는 것이다. 그러니 '막히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답지를 보면서 술술 풀어가는 연습이 대단히 유용하게 먹힐 것이다. 그러면서 '해설'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지, 풀이과정이 '이해'가 술술 되는지 스스로 판별하면서 풀다보면, 자연스레 '나에게 딱 맞는 수준의 교재'를 찾을 수 있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보면 '공부하는 비법'을 저절로 터득하게 된다. 비단 수학과목에만 써먹을 수 있는 비법이 아닐 것이다. 모든 과목의 교재를 '이런 식'으로 고를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만으로도 이미 상위권 성적을 따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하위권 학생'들에겐 힘든 공부비법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좋은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찾아내기 힘겨워하는 학생에게는 '선생님의 코칭'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테니 말이다. 물론 나와 '사는 곳'이 가까운 친구라면 내가 '그 선생님'이 되어 줄 수 있고, '그 교재'도 딱 알맞게 선별해줄 수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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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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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아름다운 사랑이 있을까..라는 느낌을 학창시절에 읽었을 때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사랑하기에 죽음을 선택한다는 결말이 그랬고, 임자(약혼자)가 있는 여자에게 사랑을 허락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살하는 내용이 그랬다. 이런 불륜스런 이야기가 '고전명작'으로 선정되어 널리 읽히고 '서울대선정 청소년 필독서'로 선정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다시 읽어보니, '시대배경'이 읽히고, '작가의 의도'가 보였다. 그래서 이 책이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할 세계문학으로 꼽히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각설하고, 첫 느낌은 괴테의 문장은 너무나도 수려하고 아름다웠다. 이것이 '작가의 문장력'인지, '뒤침이(번역가)의 힘'인지 딱 한 번으로 모두 알 수는 없었지만, 여러 모로 고려해본 결과, [문학동네]만의 장점으로 이해하려 했다. 물론 다른 출판사도 수려한 책들을 많이 출간하겠지만, '책표지'도 그러하고, 책이 지닌 아름다운 면만 따져본다면 [문학동네]만 한 것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요즘 내 독서경향이 '문학장르'만큼은 '같은 책, 다른 뒤침'을 원칙으로 삼고 꼼꼼히 비교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책읽는 속도가 더뎌지게 되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고 있고, '지금'이 아니면 더 미룰 시간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부득이 '여러 출판사의 문학책'을 두루 읽어보고 있다. 그 중간결과로, 소설책이 가진 '미적센스'를 고려한다면 [문학동네]가 책꽂이에 진열해놓기에도 아름답고, 손에 들고 다니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기에도 단연 으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추후에 결론은 또 달라질 수 있다. 아무튼 괴테의 문장은 '자연예찬'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고 또 아름답게 이어나갔다.

 

  그러면 괴테는 왜 이리도 '자연'을 예찬한 것일까?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18세기 유럽이다. 이 시기는 '낭만소설'이 주름잡던 시절이었으며 동시에 '계몽시대'라고 부를 정도로 지적교양을 쌓는 일을 매우 중시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모든 사물이 지닌 이치와 더 나아가 자연현상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알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던 것이다. 드디어 '과학'이 고대의 자연철학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탐구영역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이 시기의 사람들은 '신의 섭리'를 따르는 것과는 별도로 '인간의 본성'과 더불어 '세상의 이치'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그 안에 감춰진 비밀을 알고자하는 욕망이 꿈틀댔던 것이다. 하지만 그 욕망에 앞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연에 대한 깊은 감명'을 받아 자연의 품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한없이 작고 미미한 존재라는 사실 또한 함께 느끼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괴테는 '낭만파'의 대표주자가 되어 위대한 신의 섭리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자연을 예찬하는데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괴테는 '사랑'이 지닌 아름다움 또한 대단히 극찬하였다. 사랑(에로스)이야말로 텅비고 아무 것도 없던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근원적인 힘이며, 생명이 없는 사물에조차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원초적인 힘이 곧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르테르는 샤를로테에게 첫 눈에 사랑에 빠지고 만다. 자신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무엇'을 느꼈기 때문이고, 그녀와 함께 있는 '순간'과 '공간'에서만 살아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에겐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그는 '사랑'을 멈출 수 없었다. 그 사랑이 없다면 자신도 존재 가치를 잃고 말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베르테르는 젊은이답게 과격한 면이 있다. 샤를로테를 향한 사랑도 그렇고, 궁정에서 일을 할 때도 그랬다. 샤를로테가 알베르트와 결혼을 한 뒤에도 베르테르는 샤를로테를 찾아가 만남을 갖는다. 알베르트가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여도 막무가내로 샤를로테에게 '애정'을 쏟아내곤 한다. 이런 베르테르의 '무례함(?)'에도 샤를로테는 베르테르의 순수함을 믿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젊은 베르테르에게 호의를 베풀곤 한다. 베르테르는 그런 샤를로테를 더욱 사랑하게 되고, 더욱더 욕망을 뿜어낸다.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베르테르는 그런 욕망을 잠재우기 위해 잠시 샤를로테를 떠나 궁정일을 하게 되지만, 그곳에서 직속상관과 '일처리 방식'을 두고 설전을 벌이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상관인 백작은 이런 베르테르를 두둔하며 '일처리'를 잘한다며 칭찬을 하지만, 칭찬은 그저 칭찬일 뿐이고, 직속상관과의 마찰은 점점 거칠어지게 된다.

 

  그러다 베르테르는 궁정의 사교모임에 우연히 참석했다가 '격이 다름'을 뼈저리게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교모임에 참석한 귀족들이 베르테르를 발견하고서, '귀족이 아닌' 베르테르와 동석하게 된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애초에 베르테르는 그 모임에 참석할 수 없는 신분이지만, 평소 베르테르를 좋게 보던 백작의 호의(?)로 부름을 받고 참석했을 뿐인데, 그런 창피를 당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린 베르테르가 마주한 '벽'을 느끼게 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세상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쩌면 그런 세상은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젊은 베르테르'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신분이 아니라 능력으로 인정받고 정당한 대우를 받는 그런 세상을 말이다. 어쩌면 베르테르는 꿈꿨는지도 모른다. 그런 세상에서는 '구태의연한 체제'가 아닌 '공명정대한 올바름'만이 유일한 척도가 되어 세상을 밝혀주는 빛이 되리라는 희망에 부풀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는 '사랑'이 충만하여 온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거라고 말이다. 언뜻 궤변처럼 들린다. 하지만 베르테르는 그런 세상을 꿈꿀 수밖에 없다. 유일하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께 해주는 샤를로테가 온전한 '내 여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그뿐이기 때문이다. 샤를로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알베르트가 아닌 자기 자신밖에 없으니 말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눈에는 당시의 '사회규범'이 너무나도 갑갑했던 것이다. '결혼제도'라는 것도 그렇고, '신분사회'라는 것도 그렇다. 왜 한 여자를 두 남자가 사랑할 수 없단 말인가? 아니, 내가 더 사랑받을 자격이 넘칠 정도로 사랑하고 있는데, 왜 '내 여자'로 만들 수 없단 말인가. 그래서 베르테르는 살인죄를 저지른 범인마저 변호하기에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사랑을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는 것일가 싶지만, 젊은 베르테르에겐 그 살인자를 변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명확하다. 그 자신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베르테르에게 '사랑'은 절대적인 잣대다. 그래서 샤를로테가 베르테르에게 '전부'였던 것이다. 하지만 사회규범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만약 알베르트가 건강상의 이유로 먼저 죽기라도 한다면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기다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알베르트가 높은 신분을 이용해 무도하고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는 망나니였다면 '정의의 심판'을 내리고 샤를로테를 차지할 수도 있었으리라. 그렇지만 알베르트는 착하고 도덕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는 '젠틀맨'이었다. 무엇보다 '사랑'이랍시고 막무가내로 자신의 아내를 탐하는 무례한(?) 베르테르에게조차 '매너'를 잃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베르테르는 죽기로 결심한다. 스스로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을 찍듯 자기 자신에게 단죄를 내리고 만다.

 

  베르테르는 결심을 하고서 알베르트에게 총을 빌린다. 알베르트는 총알을 장전하지 않은 '빈총'을 베르테르에게 빌려준다. 비록 총을 빌려주긴 하지만 장전은 되어 있지 않으니 '살해의도'는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알베르트는 베르테르가 '빈총'을 머리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을 보고 대단히 경솔하다면서 베르테르를 꾸짖었던 적이 있었기에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엔 순순히 빌려주었다. 베르테르 스스로 죽을 결심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알베르트도 베르테르가 부담스러웠던 것은 아닐까? 샤를로테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돌적으로 애정공세를 보내는 '연적'이 스스로 꺼져준다고 하니, 한편으론 앓던 이가 빠진듯한 속시원함을 느꼈던 것일까?

 

  결국, 베르테르는 죽었다. 당시 사회적으로 금기시하던 '자살'로 말이다. 단테는 <신곡>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 망령이 되어 구천을 떠도는 것으로 묘사했듯, 그리스도교에서는 '자살'을 한 사람은 끝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며 외면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베르테르의 죽음은 성직자들도 외면하고 말았다. 그의 무덤에 단 한 명의 성직자도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베르테르의 죽음'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모양이다. 베르테르가 즐겨 입던 '노란색 조끼와 푸른색 연미복'이 대유행을 한 것을 보니 말이다. 어쩌면 베르테르는 '시대저항의 아이콘'이 된 셈이다. 기성세대들의 고리타분한 규범에 순응하기보다는 거부하다못해 '주검'으로 승화한 베르테르가 젊은이들 사이에 아이돌(우상)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책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자살예찬'을 한 이야기로 볼 수 없다. 베르테르는 사랑이 충만한 세상을 꿈꿨고, '원초적인 사랑'을 금기시하며 '사랑의 힘'을 애써 부정하는 구태의연한 세상에 '경종'을 울린 셈이다.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숨막혀 죽을 듯 괴로우니, 제발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면서 말이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신분의 높고 낮음 따위가 중허지 않다. 사랑, 그 자체에는 아무런 죄가 없다. 그러니 마음껏 사랑하라..제발 좀 허락해달라면서 말이다. 오해는 하지 마시길, 베르테르가 말한 사랑은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고 누구보다 더 가슴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과 '공간'에서 더욱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찐사랑이었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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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을 위한 레이 달리오의 원칙 - 일과 삶의 성공을 위한 나만의 원칙 만들기
레이 달리오 지음, 조용빈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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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계발서는 임팩트가 필요하다. 이를 테면, '제목'만 읽어도 책내용이 훤히 보이도록 말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을 보라. 책을 읽지 않아도 '칭찬의 효과'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또한, <아침형 인간>도 마찬가지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는 잡는다는 속담처럼 '하루 일과'를 일찍 시작하면 여러 모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하루'인데도 말이다. 한편, <마시멜로 이야기>는 '유명한 실험'을 통해서 참고 인내하는 습관이 찬란한 성공을 보장하더라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설득력을 높였다. 이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 가운데 공통되는 것을 추려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 노하우를 전파하였다.

 

  그렇다면 '레이 달리오'의 자기계발서는 어떤 쪽에 속할까? 아마도 '데일 카네기'를 떠올리면 좋을 듯 싶다. 카네기는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성공비결이라고 말했는데, 이를 위해서 평소에도 '품격있는 대화'를 하는 것을 강조했다. 그럼 달리오는 무엇을 성공비결로 꼽았을까? 그건 바로 '5가지 성공원칙'을 말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원칙 세우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달리오는 '돼지꼬리'를 연상시키는 곡선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며 다섯 단계인 [목표-문제-진단-계획수립-실천]이라는 원칙을 따라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설득했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거듭할수록 성공에 다다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한 것이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패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과감히 수정하고 다시 도전하면 반드시 성공에 다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번 세운 원칙'을 스스로 부정하거나, '하나의 단계'가 완수되기도 전엔 건너뛰지 않고 철저히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면 그래야 '원칙'을 고수할 수 있고, 실패의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고, 철저한 분석 위에 탄탄하고 건전한 '새 목표'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란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한 번 실패했던 경험'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영영 성공에 다다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레이 달리오가 쓴 책들의 제목에는 늘 '원칙'이라는 제목이 붙는다. 이는 '성공원칙'의 준말로 성공에 다다를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지름길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나 성공을 꿈꾸지만 모두가 성공에 다다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공'이 마냥 어려운 것만도 절대 아니다. 심지어 달리오는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자신이 말한 '원칙'만 제대로 지킨다면 말이다. 결국 가장 중요하고 정말 어려운 것은 제대로 된 '성공습관'을 가지는 일이다. 이는 '패배를 모르는 승리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도 하다. 24전 24승의 불패 신화를 쓴 이순신도 전장에 나갈 때마다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늘 승리했다. 이길 확률이 높았기에 이긴 적도 있었겠지만 누가 봐도 질 것이 뻔한 전투에서도 늘 승리하곤 했다.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바로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승리의 조건은 단순하다. 아군에게 유리하고 적군에에 불리한 장소를 골라 적을 유인하고, 때론 매복을 해서, 적의 약점을 파고들고 기세를 꺾어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계획'은 늘 그렇게 세우는 원칙으로 삼고, '실천'을 하기 전에 철저한 준비와 대비를 한 뒤에 전장터에 나갔기에 불패의 신화를 세운 것이다. 물론, 실전은 예상치 못한 일로 가득했고, 그로 인해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철저한 준비를 했기에 '위기대응 능력'도 탁월할 수밖에 없었고, 끝내는 대승이라는 성공신화를 이룰 수 있었다. 레이 달리오가 말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 책은 그런 '성공원칙'에 다다를 수 있도록 '충분히 연습'할 수 있는 책으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장에는 '여백'을 마련해서 성공을 꿈꾸는 이들이 '철저히 준비'할 수 있게끔 만들었으며, 중간중간에 '달리오의 조언'을 겸한 '사용설명서'가 적혀 있기 때문에 그저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책은 쉽게 구성되어 있지만 '성공원칙'의 필수 조건은 '꾸준한 습관'이다. 성공에 다다를 때까지 꾸준히 연습을 하면서 자신을 더 잘 알아가도록 노력하며 '첫 번째 성공'을 이룬 뒤에도 멈추지 말고, 그 다음, 또 그 다음 성공을 위해 정진해 나가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달리오의 성공비결의 핵심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이미 성공을 한 사람들도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기에 성공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도 문과시험에 수차례 낙방한 뒤에 무과시험에 간신히 합격한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꼼꼼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옳지 못한 일이라면 상관이라 할지라도 결코 굽히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탓에 백의종군도 두 차례나 겪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파직을 당하고 모진 고문을 받기도 일쑤였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도 이러할 진데, 성공신화를 쓴 선배들이라고 다를 것이 없을 터다. 수많은 실패를 겪었다면 성공에 다다를 수 '없는' 길 하나를 제거했다는 행운이 깃들었다고 생각해보길 바란다. 고작 '칭찬'으로 고래도 춤추게 하는데, 지난 잘못을 '성찰'한 당신에겐 춤보다 더한 영광이 함께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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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4 : 사춘기 땐 우리 모두 외계인 -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정재승 기획, 정재은.이고은 글, 김현민 그림 / 아울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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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린들의 지구인탐구는 '사춘기'로 옮겨갔다. 지난 시간에 바바는 지구인은 아우린과 함께 어울릴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라고 진단을 내리고 아우린들의 안전한 지구정착을 위해 '지구인 전멸' 의견을 냈지만, 아우린 행성에서는 좀더 지켜본 뒤에 결정을 내리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아우린 탐사대는 오늘도 지구인을 감시(?) 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옆집에서 화재가 났고, 그 집에서 살던 '중학교 2학년생'이 아우린들이 사는 집에 얹혀 살게 되었는데...

 

  줄거리는 잠시 뒤로 하고, '사춘기'에 대해서 정의를 내려보자. 나 어릴 적에는 '질풍노도의 시기'라 불리며 '반항'이 제멋인 줄 아는 철 모르던 시절을 일컫는 말이었고, 부모님들은 그런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등짝 스메싱'을 날리는 것으로 결론 짓곤 했다. 여튼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그저 말썽을 부리는 정도로 마무리 짓곤 했고, 당사자인 청소년들도 '이유없는 방황'을 끝맺으면서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마무리 되곤 했더랬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중2병'이라고 부르면서 '말도 안 되는 짓'을 서슴지 않게 저지르곤 하는 그들을 '외계인 취급'하기 일쑤다. 아무래도 정상적인 지구인과는 사뭇 다른 말과 행동을 저지르곤 하니까 말이다.

 

  이렇게 차원이 다른 사춘기 청소년들은 언제부터 등장했던 것일까? 먼 옛날에는 아무래도 '사춘기'가 없었을 듯 싶다. 보통 그 즈음에 '혼인'을 치루고 어른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거나 '이유없는 반항'을 저지르기엔 '사회적 책임'을 지어야만 하는 막중함에 눌러 '사춘기'라 단정지을 수 있는 시기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근대화 이후, 산업역군을 많이 양산하기 위해 '학교'라는 곳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한창 활개를 치고 다닐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이들을 '갇혀진 틀'에 가두기 시작하면서 '사춘기'는 발발하게 되었을 것이다.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기만 한 '학교의 규율'을 지키며 얌전히 지내기엔 너무나도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인 탓이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어른에 못지 않은 힘을 뿜어내지만 '정신적'으로는 그에 미치지 못해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에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스스로도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 이도저도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 시기에 '문제아'로 지목된 아이들에게 정정당당한 규칙을 갖춘 '스포츠(운동)'를 권장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비율이 확연히 저하되는 현상을 보게 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시켜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소년 시기에 좁은 교실이나 학원 구석에 쳐박아두고서 '중2병' 운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청소년 시기에는 남녀를 불구하고 마음껏 활개를 칠 수 있도록 내비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다. 물론,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에 '공부와 성적'을 방치할 수 없다는 의견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사춘기 시절이라고 해봐야 길어야 2~3년이고 대개는 1~2년이면 후딱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내 아이가 '중2병'에 걸렸다고 느껴질 때면 '예술활동'이나 '체육활동', '봉사활동'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적당한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여러 모로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언제부터 정확히 '사춘기'가 시작되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까? 일단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이 잦아지면 사춘기로 보면 될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고민이 많을 시기인데도, 부모님이 대화를 하려하면 성질부터 낼 경우라면, 십중팔구다. 또한, 부모님들이 하는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녀석이 친구 말이라면 뭐든 믿고 따르는 엉뚱한 짓을 벌인다면 조심스레 '중2병'을 의심하고 서서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준비물은 상황에 따라 다를 테지만, 드물게는 '몽둥이'가 약이 될 경우도 있긴 하다.

 

  암튼, 아우린인들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지구인들을 대단히 위험한 존재로 판단하고, 지구인 전멸계획을 실행에 옮기려고 하는데, 과연 지구인들은 아우린들의 공격에 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정말로 아우린인들을 지구인을 전멸시킬 것인가? 다음 시간에는 '지구인의 감각'에 대해서 탐구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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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전략을 위한 AI 인사이트
이호수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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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하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AI(인공지능)의 개발은 상당히 일찍 시작되었다. 2차 세계대전 때, 엘런 튜링이 독일군의 암호(애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해 만든 컴퓨터를 시작으로 '인간보다 더 똑똑한 지능'을 갖춘 컴퓨터의 등장이 곧 찾아올 거라고 꿈에 부푼 과학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결실은 1950년대에 들어서 실제로 실현되었다. 무엇이든 '과학연구'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마련인데, 정부가 과학자들의 연구자금을 대기 시작하면서 활기를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개발에 혹독한 겨울이라고 불리는 시기가 찾아왔다. 일명 '치와와-초코칩쿠키 사건'이라고 불리는 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대한 연구자금을 쏟아부었는데도 당시의 인공지능 컴퓨터는 '개와 초코칩쿠키'를 찍은 사진을 분류해내지 못하는 엉뚱한 결과(명백한 오류)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이런 오류를 고치기 위해 '정확도'를 높이고자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나 슈퍼컴퓨터를 총동원해야 하는 사고들이 빈번했다. 고작 '사진 한 장' 분류해내는데 말이다.

 

  이때부터 '인간에게 어려운 건 AI에겐 쉽고 AI에게 어려운 건 인간에겐 너무 쉽다'는 말이 나왔다. 이는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인간은 불독, 요크셔테리어, 푸들 등을 모두 개로 인식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AI는 '불독의 특성'과 '요크셔테러어, 푸들의 특성'에 보여지는 정보가 사뭇 다르기 때문에 모두 같은 '개'라고 인식하기가 힘들고 오류를 일으키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인간은 발이 3개인 강아지를 보면서 '아픈 강아지'라고 이해하는 반면에, AI는 '새로운 종', '3발 달린 포유동물'이라고 잘못된 결론을 일쑤라는 것이다.

 

  이처럼 AI가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하고 연구자금만 축낸다는 결론이 나오자 정부예산지원을 더는 받지 못하고, 연구는 지속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딥러닝'이라는 빅데이터를 다루는 컴퓨터가 등장하자 새로운 활기를 얻기 시작했다. '체스 챔피언'을 이기고 '바둑천재 이세돌'과의 승부에서도 이기자 AI는 다시금 각광받기 시작했다. 더구나 정부자금이 아니라 '민간기업'에서 이룬 성과였기 때문에 더는 '자금난'을 겪을 걱정을 덜었다. 그래서 지금 산업전반에서 'AI'를 접목시킬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궁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넷플릭스,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리걸테크, LG AI연구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기술'을 선점하고자 노력중이다.

 

  하지만 이 역시 '기대했던만큼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현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또한, 인간보다 더 똑똑한 인공지능을 갖춘 '강한 AI'의 등장을 두려워하는 대중들의 분위기나 '약한 AI'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산업전반의 분위기가 맞물리면서 새로운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이 모든 난관을 뚫고 AI는 성공적으로 안착해 '인류의 미래'를 밝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자못 그 결과가 궁금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에게 닥친 문제부터 해결해나가야 하는 것은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첫번째 문제는 '지속가능한 연구'를 위해서 AI기술을 통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산업계에서는 'AI기술'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왜냐면 '노동력 절감'을 획기적으로 할 수 있고, 그로 인한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관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노동인력의 감소'는 사회경제의 한 축인 '가계'가 망가지는 것이기에 궁극적으로는 '시기상조'가 될 수밖에 없다. 최대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인간에서 AI로 바꾸는 '노동력 대체 속도'를 늦춰야만 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기업의 이익을 보장할 수 없기에 서두르고 싶은 마음이 기업들의 솔직한 속내일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로봇세'를 제정하는 등 정부의 노력이 강조되고 있지만, 당장 '기본소득'과 관련된 안도 퇴짜를 맞는 와중에 실업자를 위해서 세금이 낭비되는 일(?)을 신속하게 마련할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을 수도 없을테니 언젠간 이루어져야 할 일이라는 것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형편이다.

 

  결국 '지속가능한 연구'를 위해 산업전반에 아이디어가 쏟아져야 하는데, 그저 막연하게 'AI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제품이라는 광고만 내세울 뿐, 정작 제대로 된 'AI기술'을 개발하는데는 관심이 별로 없다는 것이 두번째 문제다. 사실, 이 문제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마땅히 'AI기술'에 대해서 배울 곳도 마땅치 않고, 가르치는 곳은 더더군다나 없다는 현실이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기업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도 바로 이 문제다. 기껏 'AI기술'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곳에 발품을 팔아봐도 '원론적인 이야기'만 할 뿐, 새로 개발된 'AI기술'로 만든 시제품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몇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연구원'을 뽑아서 AI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연구에 투자하고 있지만, 대기업과 같이 막대한 연구자금을 댈 수 있는 능력있는 기업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라 뾰족한 해결책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그렇다고 정부의 노력이 눈이 부실 정도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초등교육에서 '코딩'을 가르치는 정도로 본격적인 'AI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엔 정부차원의 막대한 지원이 시급하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한정된 예산'으로 충당하며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기엔 너무다고 요원한 방법이다.

 

  마지막 문제는 'AI기술'을 어디까지 적용하도록 허락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과연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지능을 갖춘 AI의 등장을 환영할 수 있겠는냔 말이다. 그래서 모든 결정을 AI에게 맡기고 인간은 그저 따르는 안락한 삶을 살고 싶으냐는 것이다. 굉장히 극단적인 결론에 대한 논의이지만, '디스토피아'적으로 'AI기술'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는 반드시 비극을 초래할 것이라고 단정 짓기도 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런 AI'는 결코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에 준하는 비극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까지 부정하지는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AI'가 인간을 대신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범용 AI(약한 AI)' 수준에서 기술개발을 멈춰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힘들어하는 분야에서 '특별히 AI가 더 잘하는 분야'만을 선별하여 부담을 덜어주는 선에서 그치는 연구까지만 허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로봇청소기가 인간의 명령을 알아듣고 지정된 구역을 깨끗하게 청소하면, 그뿐이지. 고작 청소기를 대신하기 위해 '인간형 로봇'을 만들어 구석구석 청소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즉, '인간형 로봇'을 구현해 '집안살림'을 대신 맡기는 것까지는 어찌어찌 허락할 수 있겠지만, '인간형 로봇'이 사람과 구별할 수 없는 외모를 갖추고, '집안살림'을 넘어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대신할 수 있게 만들고, '인간'과 똑같은 수준의 감정을 느끼고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수준까지 개발을 하게 된다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간사회'는 파멸하고 말 것이다. 아니 파멸까지는 아닐지라도 '엄청난 혁신'에 감당하지 못하고 '인간형 로봇'만도 못한 사람은 '인간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일이 초래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강한 AI기술'은 엄청난 위험성을 안고 있다. 물론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말이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걱정부터 하는 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AI기술'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술이고 유용하게 쓸 일부터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늘 처음 시작이 중요한 법이다. 우리는 '놀라운 기술' 개발을 하고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경험이 꽤나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 거의 재앙에 이를 수준이라고 일컫는 '핵무기 사용'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를 보란 말이다. 분명히 예측하지 못한 결과다. 그러나 엄청난 에너지로 활용하기에 앞서 '끔찍한 무기'로 만들어버린 것도 바로 우리 자신이고, 고갈이 될 정도로 '지하자원'을 낭비한 결과가 빠른 속도로 지구기온을 높이게 될지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결국 우리 스스로 저지른 잘못이다. 여기에 '인간보다 더 높은 지능을 갖춘 시스템'이 등장해 스스로 작동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면, 또 어떤 결과가 뒤따를 것이란 말인가? 분명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반드시 '어떤 결과'를 맞이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이 책은 '기업의 혁신'을 위해서 관심이 주목되고 있는 'AI에 대한 모든 것'을 풀어내었다. 그래서 AI기술에 대한 역사적 발자취부터 기술이 활용된 사례까지 살펴보면서 '새로운 활로'를 엿볼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하지만 난 한 발 더 나아가서 이야기를 진행시켜보고 싶었다. 이를 테면, 자율주행자동차가 이미 개발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상용화' 되지 못한 까닭은 기업들의 돈벌이에 딴죽을 걸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직까지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질주하기에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운전이라는 것이 '한 순간의 판단'과 '그에 따른 결정'에 좌우되는 것이기에 '안전사고(교통사고)'가 일어났을 경우를 예상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자율주행차에 대한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았고, 자율주행차가 대세가 되어 버린 사회시스템에 우리 사회가 적응할 수 있는 대비도 미비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달리지 못하는 걸테니 말이다. 그러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미래가 닥칠지에 대해서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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