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
헤르만 헤세 지음, 구기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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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청소년 시절에 꼭 읽어야 할 책을 추천한다면, 단연코 <데미안>을 꼽을 것이다.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표현으로 청소년들을 싸잡아 놓지만 우리네 청소년들은 그저 '폭풍속에서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존재'만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나역시 청소년 시절을 겪었지만 '질풍노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오리무중'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했던 것 같다. 뭔가 '해보고 싶은 것'은 많은데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면 '이것저것 다 해볼 시간 따윈 없다'면서 그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에만 매진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지금, 나도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니 '그 말'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만 뼈져리게 느낄 뿐이다.

 

  그렇다면 청소년 시절에 꼭 챙겨야 할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너무 많지만, 딱 세 가지만 말하겠다. 첫째는 '건강'이다. 10대에는 돌도 씹어먹을 정도로 무엇이든 왕성한 시절이기 때문에 '건강'을 소홀히 하기 십상이다. 이는 20대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무엇을 하더라도 건강을 해쳐가는 줄도 모르고 미치기 일쑤이고, 정작 3, 40대가 되어서야 서서히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 마련이고, 50대 이상이 되면 여기저기 몸이 망가져서 '하고 싶은 것'이 생겨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예전이야 나이 50살을 넘기면 인생을 다 산 것처럼 '죽을 날'만 손꼽고 살았지만, 이제는 '100세'를 바라보고 살아야 하지 않느냔 말이다. 50살이 넘어도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넘쳐날 나이다. 그런데 정작 건강은 10대부터 챙기지 않으면 50살을 넘기기 힘드니 미리미리 챙겨야만 한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여기저기 망가지고 난 다음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사이보그', '안드로이드'가 되어 영생을 누린다해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면 청소년 시기부터 건강을 챙기는 습관을 올바르게 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둘째는 '인성'이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며 형제끼리 돈독하고 친구에게 우애로운 것도 해당되는 것이 '인성'이지만, 청소년 시기에는 '제 앞가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배려(싸가지) 없음'을 경계하고, 우리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한 점 부끄럼 없는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갖추는 것을 통틀어 '인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흔히 말하는 '인성 쓰레기'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개쓰레기'밖에 될 것이 없다. 아무리 학벌 좋고, 돈 많아서, 사회지도자 자리에 떡하니 올라가도 '인성 개쓰레기'라면 우리 사회에서 절대로 얼굴 들고 살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인성이 나빠도 '잘 생기고 예쁘면' 봐줬고, '학벌 좋고 돈 많으면' 깨갱했고, '금배지 달고 '사'짜 직업 갖고 있으면' 그저 굽신굽신 해줬을지 몰라도, 이젠 그딴거 다 필요없다. 인성이 더럽다고 '확인'되는 순간 모든 걸 박탈시켜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공부'다. 물론 어른이 되어서도 공부할 시간은 많다. 아니 공부는 평생해야 하는 것이기에 딱히 시기를 논할 꺼리가 없다. 그럼에도 청소년 시기에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까닭은 오직 청소년 때만 유일하게 '공부'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고 난 다음에는 '공부'에만 전념할 시간이 없다. 하더라도 먹고 살아야 할 '돈벌이 수단'과 병행해야만 한다. 전문적인 용어로 '경제적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 20대 이후부터는 '집 걱정', '결혼 걱정', '육아 걱정', '노후 걱정' 등등의 무거운 짐을 덜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하기 때문에 '뛰어난 학업 정진', '훌륭한 가치관 형성'과 같은 한가로운(?) 공부는 오직 '청소년기'에만 할 수 있는 특권인 탓이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와 <데미안>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아시다시피 헤세는 불우했던 학창시절을 보낸 뒤에 '자살'을 극복하고 '정신분석학'의 도움을 받아 문학의 거장으로 발돋움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겪어야 했던 수많은 갈등과 고뇌, 그리고 가난한 환경이 주는 핍박속에서 모진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이 하고픈 일'을 찾아내 인류애를 성찰시킨 위대한 작가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찰한 내용들은 헤세의 소설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고, 우리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이겨낸 깊은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데미안>은 작가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조국을 위해 싸울 것인지, 아니면 배신자로 낙인 찍힐 것인지 고민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건 바로 '선과 악의 공존'이다.

 

  책속의 주인공인 싱클레어는 우연히 '두 개의 세계'를 깨닫게 된다. 자신의 집안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그렇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상이 선과 악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에 큰 혼란을 겪게 된다. 그러다 만난 '데미안'이란 인물은 선한 인물인 것 같으면서도 악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묘한 인물이었다. 그러면서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며 선과 악의 개념마저 혼동해버릴 지경에 이른다. 그러다 만난 베아트리체와 피스토리우스를 통해 한층 더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지만 아직은 그뿐이었다. 그러다 첫사랑의 얼굴에서 다시금 데미안을 떠올린 싱클레어는 '이상한 꿈'과 함께 그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도착한 답장에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내용이 짤막하게 적혀 있을 뿐이다. 세상은 알, 그 잡채이고, 그 경계를 허물고 나와야 새로운 세상과 조우할 수 있으며, 그 새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라는 묘한 말과 함께 말이다. 여기서 '아브락사스'는 신의 이름인데, 이 신의 특징은 선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악한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과 악의 구분'은 모호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다 전쟁에 참전한 싱클레어는 전투중에 포격을 받아 부상병으로 치료를 받는데 옆자리에 누워있는 데미안을 발견한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데미안은 이 만남이 마지막이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린다. 싱클레어는 문득 잠에서 깨어나 데미안을 찾았지만, 그는 이미 떠난 듯, 낯선 사람만이 누워있을 뿐이었다. 싱클레어는 그 뒤에도 아픈 일 투성이었지만 더는 괴로워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소설은 끝맺는다.

 

  흔히 <데미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구를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에서 찾곤 한다. 더 넓은 세상을 맞이하려면 '경계'를 깨고 나와야만 하고, 그러려면 '기존의 세상'을 깨부수어야 한다며 아주 당연한 이야기를 매우 깊이 음미하곤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세상'이란 무엇이고, '더 넓은 세상'이란 무엇인가?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을 첨부한다면 '선과 악'을 구분하며 괴로워하던 싱클레어라는 껍질을 깨고 '선과 악'을 구분할 것도 없이 더 넓고 깊은 세상을 훨훨 나는 데미안을 맞이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데미안이 누구인가. 최초의 살인자 '카인'도 그저 살인을 일삼는 나쁜놈의 대명사가 아니라 하느님마저도 용서할 수밖에 없는 '능력자'라고 말하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옆에 있던 도둑놈마저 예수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지조를 지켜 자신의 죄값을 달게 치룬 멋쟁이라고 추켜세운 인물이 아닌가 말이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그렇다. 우리가 '악인'이라고 낙인을 찍은 사람조차 '어쩌면' 선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혜안을 지닌 인물이 바로 '데미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데미안>을 해석하면 청소년 필독서라고 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다. 만약 싱클레어에게 앞서 말한 '세 가지'를 이미 갖춰진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 곰곰히 따져보길 바란다. 싱클레어가 '건강'을 챙기다 못해 뛰어난 운동실력을 갖춘 능력자였다면, 감히 '프란츠' 따위가 어린 싱클레어에게 삥을 뜯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한, 싱클레어가 '두 개의 세계'를 깨달음과 동시에 '올바른 인성'까지 깨우쳤더라면 프란츠 떼거리의 어설픈 협박에도 전전긍긍하지 않았을 것이고, 데미안의 알쏭달쏭한 견해에도 따박따박 반박을 하며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공부'까지 짱 먹었다면 첫사랑 베아트리체는 싱클레어가 꼬시기도 전에 넘어왔을 것이고, 범생이 피스토리우스의 궤변 따위에 고민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참가한 전장에서도 하는 일마다 명쾌했을 것이다. 애당초 전쟁은 완벽한 폭력일 따름이니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지만, 자신이 참전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면 '전우'를 위해서 내 한몸 희생할 각오로 싸울 것이고, '지키기 위한' 전쟁을 할 뿐, '빼앗기 위한' 전쟁에는 결사반대를 할 것이고, '조국을 위해' 무모한 희생을 강요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무뇌충'들에게 저항의 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조국을 위한다며 하나 뿐인 목숨을 기꺼이 내놓으라고 말하려면, 그 '조국'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약자'를 위해서 뭐라도 했어야 하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 위대한 조국이라면 애초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을 것이며, 일어났더라도 애꿎은 희생을 줄이기 위해 '약자'를 총알받이로 내세우기에 앞서 '힘센 강자'를 내세워 적들이 감히 쳐들어오지 못하게 든든히 막아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약자'들도 뭐라도 내놓을 것이 없어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싸울 것이 아니냔 말이다.

 

  그렇기에 <데미안>은 청소년 필독서여야 한다. 제 앞가림을 하기 위해 '건강, 인성, 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모두가 사는 '공동체 사회'에서 우월한 일원이 되어 밝고 멋진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헌신하는 위인으로 거듭날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돈돈돈'밖에 모른다. 돈만 벌면 장땡인 듯 스스로 '개쓰레기'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지치고 힘들 때에는 '사회비판'이랍시고, 우리 사회에 희망이 없다는 비난을 나불댄다. 그런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우리 사회에 '인성 쓰레기'가 넘쳐나는데 당신도 한몫 단단히 하지 않았으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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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엔 12권으로 마쳤다.

다행히 추석연휴로 마무리하는 달이었기에 허리통증과 다리통증도 조금은 견딜만 해졌다.

그 덕분에 막판 스퍼트를 올리게 되었고 말이다.

이대로 10월에도 쭉 달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지난달과 달라진 점은 거의 없다.

여전히 어린이 분야가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를 '인문학', '역사', '소설', '청소년', '과학'이 잇고 있다.

하지만 다음 달에는 '소설 분야'의 책이 3위인 '역사'를 제치고 올라설 것 같다.

아이들과 수업도 '소설 분야'의 책 위주로 진행할 예정이라서 그렇다


북모리 독서앱에서 '새로운 기능'을 찾아냈다.

그토록 염원했던 '출판사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어서 반가웠다.

하지만 '년간 통계'만 낼 수 있고, 독서기록 전체통계는 한 눈에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런 기능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다시 찾아보도록 하고...

 

23년 9월까지 '출판사 통계'는 위와 같다.

상반기에 '서평단'으로 활동했던 [한빛비즈]의 책이 가장 많았고,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기획했던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100선 리뷰' 기획 덕분에

읽기 시작한 '인문고전'과 더불어 눈독을 들인 '문학고전'을 섭렵하기 위해서 읽기 시작한

[주니어김영사]와 [채우리]가 그 뒤를 이었다.

아직 남은 10월~12월 동안에도 꾸준히 읽고 올해 안에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제 건강이 회복되는대로 [인간사랑]의 책도 섭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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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섬 2 쥘 베른 베스트 컬렉션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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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에 이어 '신비의 섬, 링컨섬'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개척자들은 '자신들만의 섬'이라 여겼던 곳에 대한 탐험을 점점 더 넓혀나갔다. 하지만 탐험을 하면 할수록 개척자들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경관에 빠져들어갔지만, 그 와중에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점점 쌓여만 갈 뿐이었다. 그리고 개척자들은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이 섬에는 자신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존재'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존재가 드디어 실체를 드러내었다. 링컨섬으로 배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온통 '개척자'들이 링컨섬을 'DIY(Do it yourself)'로 꾸미는(?) 이야기로 가득 했다. 1권에서도 소개한 만물박사 '사이러스 스미스' 덕분이었다. 사이러스는 못 만드는 물건이 없었고, 모르는 지식이 없을 정도였다. 다른 개척자들이 '무엇'이 필요하다고 하면 사이러스는 대수롭지 않게 '만들 수 있다'고 답했고, 실제로 아주 간단하게 뚝딱뚝딱 만들곤 했기 때문이다. 마치 <정글의 법칙>의 김병만 족장 같은 믿음직함이었지만, 단순히 불을 피우고 먹거리와 간단한 잠자리를 해결하는 수준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화약과 폭탄을 만들어 물길을 바꾸어서 폭포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폭포를 수력발전소 삼아 물레방아를 돌리고,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풍차를 만들어 곡식을 빻아서 빵을 만들어 식생활을 고급화시키는 등 천재적인 지능을 가진 완벽한 리더,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능력은 '한 사람의 천부적인 재능'이 아닌 '인류의 지식' 쌓이고 발전하여 '과학의 위대함'으로 인류가 문명화 될 수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엄함을 연출하였다.

 

  이는 링컨섬 바로 옅에 있던 '타보르섬'에 있던 조난자 에어턴과 극렬하게 비교가 된다. 그는 사실 해적질을 하던 범죄자로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외딴섬에 죄인의 신분으로 유배된 것이지만, 링컨섬과는 다르게 타보르섬은 '그랜트 선장'에 의해 이미 개척된 상황이었기에 에어턴이 마음만 굳게 먹었다면 '문명인'으로써 삶을 이어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홀로 남겨졌다는 고독과 죄값을 치뤄야 한다는 자책으로 인해 '인간의 삶'으로부터 멀어지려 하였고, 결국은 짐승과 다를 바 없이 날고기를 씹으며 야만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링컨섬은 개척자들이 도착하기 이전에는 '아무 것'도 없는 무인도와 다를 바가 없었던 터라 숙식은 물론, 의복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 무던히도 '섬안의 자원'을 활용하여 끊임없이 만들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약 '사이러스의 지식과 리더십'이 없었더라면 링컨섬의 개척자들도 야만인과 다를 바 없는 살거나 거칠고 모진 환경에 이미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딴에는 19세기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제국주의 식민지의 팽창'이라는 관점을 빼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서구 열강의 위대함을 '문명'으로 포장하고, 그 문명으로 척박한 환경조차 지배하여 '미개함'을 좀 더 나은 문명으로 바꾸어 나가는 과정이 엿보인다는 말이다. 그래서 남태평양의 외딴섬에 우연히 착륙(?)하였지만, 그들이 힘들게 개척을 한 뒤에는 기꺼이 '조국의 품'으로 바치겠다는 제국주의적 사고관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러면서 이들은 그러한 사고관을 자연스레 '인류애'로 포장하고 있는데, 진정한 인류애를 보여주기 위해선 '국적'을 포기하고 '지상의 낙원'으로 만드는 것에 만족해야 했을 것이다. 하긴 제국주의적 사관에 길들여져 있었을 당시의 지식인들에겐 너무 앞선 이상이었을테니 오늘날의 독자들은 이러한 점을 충분히 감안하여야만 할 것이다.

 

  암튼, 이어지는 3권에서는 드디어 '네모선장의 비밀'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기대가 크다. 인류 최초로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타고 바닷속을 항해한 네모선장의 일대기였던 <해저 2만리>에서도 꼭꼭 감춰두었던 선장의 비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링컨섬이라 불리는 이 '신비의 섬'이 노틸러스호의 비밀기지로 소개되었던 그 섬이 맞는 것일까? 그리고 우연히 표류(?)하게 된 다섯 명의 개척자들 앞에 놓인 운명은 어떻게 펼쳐지게 될까? 온통 궁금한 것 투성이지만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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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07 : 일리아드.오디세이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7
김준배 글, 문성호 그림, 손영운 기획, 호메로스 원작 / 채우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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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만화가 아닌 '원전'으로 읽는다면 무척이나 힘든 여정을 겪게 될 것이다. 그 까닭은 첫째, 1500쪽이 훌쩍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에 압도 당하기 때문이고, 둘째, 오래된 말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낯설다 못해 그 내용마저 지루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며, 끝으로 대서사시에 걸맞는 수많은 영웅과 신들의 등장만으로도 헷갈려 죽을 지경인데 그런 영웅과 신들이 연출하는 장면과 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진즉에 통달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청소년이 읽기에는 '만화형식'이 옳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토록 방대한 원작을 '만화'로 옮기는 작업 또한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일단은 방대한 내용을 '덜어내는 일'이 만만치 않고, 축약한 내용만으로도 '원전의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청소년에게 꼭 필요한 지식(교훈)을 적절히 가미하고 드러나게 하는 작업까지 마치고 나면, 애초의 '원작'과는 완전히 새로운 '각색'으로 재탄생이 되기 일쑤다. 그나마 '윤색' 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로 '원전'을 훼손하기 십상인데, 그러한 문제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감수'라는 작업이 뒷받침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쨌든, 내가 하고픈 말은 이 책은 그런 문제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원전의 맛'을 최대한으로 살려내서 좋은 책이라는 것이 아니라,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라는 원전이 그만큼 읽기 힘드니, 꼭 읽어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미리 경험을 쌓는다는 차원에서 이 책을 먼저 접해도 좋겠다는 말이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원전'을 먼저 접하긴 했지만, 막상 완독하고 난 뒤에도 무엇에 감동을 먹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단숨에 읽기 힘든 방대한 분량이었던만큼 한 달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틈틈이 읽었던 탓에 줄거리조차 정리하기에도 벅찼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조금 찌끄려보았다.

 

  그렇다면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기본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주제파악'이다. 그리고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선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고, 그 주인공의 '행동'과 '말'을 꼼꼼히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일리아스>의 주인공은 아킬레우스이고, <오뒷세이아>의 주인공은 오디세우스이다. 그리고 두 원전의 주제는 '아킬레우스의 분노'이고, '오디세우스의 모험'일 것이다. 그럼 두 원전의 주제에 대해서 좀 더 풀이를 해보자.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는 원치 않는 전쟁에 참가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꼬여내었다는 것도 아킬레우스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고, 그로 인해 그리스 연합이 트로이 동맹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에도 아킬레우스는 관심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킬레우스는 신탁조차 전쟁에 참가하면 명예를 얻지만 단명할 것이고, 전쟁에 불참하면 오명이 따르겠지만 수명을 다할 것이라고 하였기에 전쟁에 참가하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아무리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명예일지라도 고작 명예를 얻기 위해 하나 뿐인 명예를 버릴 멍청이는 없을 것이기에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아킬레우스는 오디세우스의 꾀에 속아넘어가 '불사의 몸'을 이끌고 어쩔 수 없이 참전하게 되었다.

 

  이런 아킬레우스가 무려 10년이나 이어진 전쟁에서 얻은 명예가 얼마나 많았겠나. 그런데 마지막 50여 일을 남겨둔 전쟁의 끝자락에서 아킬레우스는 돌연 전투에 더는 참가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다. 바로 그리스 연합의 또 다른 영웅이자 총대장이기도 했던 '아가멤논'과의 불화 때문이었다. 지리하게 이어져온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리스 연합은 여러 곳에서 불협화음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바로 '전리품 배분'에 있어서 쌓였던 불만이 속속 드러나게 되면서 저마다 제 잇속을 챙기기에 급급해진 와중에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이었던 브리세이스(아폴론신전의 여사제, 아킬레우스의 연인)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아킬레우스는 원치 않은 전쟁에 더는 미련도 남지 않아 불참을 선언하고 만 것이다. 그 때문에 그리스 연합은 트로이 동맹과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지만 어느 누구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며 절체절명의 위기만을 무의미하게 반복하며 수많은 영웅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갈 뿐이었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원전에서는 '신들의 불화'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애초에 불멸의 존재인 탓에 신들의 다툼은 결말을 맺지 못하고, 그 다툼의 '대리전'으로써의 트로이 전쟁이 펼쳐졌던 것이다. 여기에도 불화의 신 에리스가 던져둔 '황금사과'로 이어지는 기나긴 스토리가 전해지지만 <일리아스>에서는 애초부터 신들이 편을 갈라 서로 다투며 애꿎은 영웅들의 희생만을 강요할 따름이다. 자신들의 성질머리를 고칠 생각은 않고 말이다. 그렇게 그리스와 트로이의 영웅들은 신들의 싸움을 '대신'해서 싸우다 죽어나갔고, 끝내는 아킬레우스의 절친이었던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대신 입고 나가 싸우다 헥토르에게 일격을 당해 그만 죽고 만다. 이로 인해 아킬레우스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아킬레우스의 분노'에서 무엇인가 느꼈던 모양이다. 명예도 아니고, 전리품(이익)도 탐내지 않고, 조국의 승리를 위해서도 아닌 오직 '친구의 죽음'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복수의 화신이 되어 자신의 목숨조차 돌보지 않고 분노를 극으로 치닫게 하는 아킬레우스에게 열렬히 환호했던 셈이다. 이게 고대 그리스인들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리아스>에 열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핵심이다. 오직 친구(우정)만을 위해서 펄떡펄떡 뛰는 심장의 고동소리에 감동했던 것이다. 비록 그 분노의 끝이 자신을 파멸로 이끌게 만들었다하더라도 하더라도 그 불구덩이에 뛰어들고 마는 '용기'에 아낌없이 박수를 치면서 말이다. 당신에게도 그렇게 심장을 뛰게 만드는 친구가 있는가? 아니, 당신을 위해 기꺼이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용기를 내어줄 친구가 있느냔 말이다.

 

  한편, <오뒷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각자 고향으로 되돌아간 그리스 영웅들 중에 아주 오랜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되는 모험가를 그려냈다. 전쟁이 10년 동안이나 이어졌는데, 고향 이타카에 도착하기까지 또다시 10년이란 세월을 속절없이 보낸 모험가 말이다. 바로 '오디세우스'다. 무려 20년 만의 귀환이다. 이런 오랜 기간의 방랑을 원해서 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그런 방랑을 누가 바랄 수 있단 말인가? 30세에 떠난 여행이었다면 50세에 이르러 겨우 여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되돌아 온 셈이다. 그런데 우리네 삶이 그렇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 마치 오디세우스가 떠난 20여 년의 모험 또는 방랑과 무척이나 닮았다. 그래서 우리는 '오디세우스'가 겪은 10년의 모험담을 읽으며 수없이 겪게 되는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마침내 고향땅을 밟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고 뜻깊은 경험을 겪으며 어마무시한 삶의 지혜를 얻게 되는 축복(?)을 받은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리아스>를 읽고 '친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오뒷세이아>를 읽으며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 무엇보다 값진 '삶의 지혜'를 얻게 되는 경험담에 귀기울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일리아스>는 20대에 꼭 읽어보길 권하고, <오뒷세이아>는 40대에 꼭 다시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다른 나이대에 읽었을 때와 사뭇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서양문화의 이해'를 얻기 위해 읽거나 '그리스로마 신화의 연장선'으로 읽어도 나름 뜻깊은 일이 될 것이고 말이다. 나의 해석은 이렇다. 당신의 견해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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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중록 외전 아르테 오리지널 5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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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잠중록>을 다 읽었다. 드라마 <청춘월담>을 시청하면서 문득 이 소설을 떠올렸고, 읽다가 만 소설을 다시 꺼내 읽게 된 셈이다. 그런 연유로 끝까지 읽고나니 내가 이 소설을 그동안 잘못 읽었다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에 나는 이 책을 '사극로맨스미스터리추리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재미나게 읽으면서도 '기묘하다'는 느낌에 빠져서 읽고 난 다음에도 찝찝함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늘 고독한 기왕의 마차에 뛰어든 묘령의 소녀 황재하가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는 '로맨스 소설'을 기반으로 미스터리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그로 인한 여러 시체를 부검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파헤쳐서 수사를 종결 짓는 '미스터리추리 소설'의 기법이 가미된 소설로 읽었으니, 두 남녀의 사랑과 서너명의 남녀가 얽히고 섥힌 삼각관계에 빠져들어 밀고 당기는 '러브라인'에 푹 빠져서 달콤한 연예감정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느닷없이 살인사건이 벌어지며 온통 피투성이의 살해현장을 조사해 단서를 찾고, 피범벅인 된 시체를 부검해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 명탐정 같은 기발한 추리를 하여 오리무중에 빠진 사건을 일단락에 해결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해자를 구해내고 진범을 밝혀 좌중을 놀라게 하는 방식으로 소설이 한편 한편 이어져갔다.

 

  헌데, <잠중록>은 그렇게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을 '외전'을 읽으면서 겨우 깨달은 것이다. '외전'에서는 우여곡절을 겪은 두 남녀 기왕과 황재하게 혼인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왕장군(왕온)이 멀리 떨어진 두 장소에서 동시에 살인을 저지르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게 소설은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사건해결'을 위해 황재하와 주자진이 출동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기왕 이서백이 등장해서 위기에 빠진 황재하를 구해내고, 혼란에 빠진 수사선에서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어 흩어진 사건을 한데 모아 '사건의 진상'을 속시원히 밝혀내고 끝내 '진범'을 찾아내 마땅한 벌을 내리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하면서 이야기를 마치게 된다. 앞선 책과 달리 '외전'의 성격 때문인지 분량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어 더욱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흘러갔더랬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로맨틱한 내용'은 상당부분 덜어내어 '추리소설의 맛'을 최대한 살려낸 이번 '외전'은 앞선 소설의 내용보다 훨씬 인상 깊었다. 그리고 난 무릅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처처칭한의 <잠중록>은 '추리소설'이었구나...하고 말이다. 그렇다. <잠중록>은 로맨스소설에 추리기법을 가미한 소설로 읽기보다는 '추리 소설'이라는 생각으로 읽다보면 달달한 로맨스 기법이 그 맛을 더욱 살려주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읽어야 제맛이었던 것이다. 마치 따뜻한 와플을 먹으러 왔다가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얹어진 메뉴를 선택한 느낌과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입맛을 바꾸려다고 왔는데 퍽퍽한 와플이 씹히는 느낌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추리소설'인데도 여러 단서를 조합해서 독자도 범인을 찾을 수 있는 방식이 아닌 사건과 단서를 어지럽게 나열하기만 하다가 아무도 풀어내지 못한 숙제를 황재하가 뜬금없이 "사건은 이미 해결 됐어요", 또는 "누가 진범인지 알려드릴게요"라면서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연출하는 기법을 썼는지도 설명이 된다. 이런 방식이면 주인공에게 집중조명이 되며, 주인공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나머지는 철저하게 '조연'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로맨스 소설'에서도 잘 써먹는 수법이다. 잘난 두 남녀 주인공이 '운명적인 커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계시적 효과'가 더욱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든 것을 가진 기왕 이서백도 풀지 못하는 난제를 난데없이 등장한 미녀 황재하가 척척 해결해버리는 과정을 연출하면서 두 사람은 하늘이 맺어준 천생연분이라는 메시지가 확연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랑의 갈등'과 '연적의 등장',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알고 보니 친남매,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 등등)'을 솔솔 뿌려주면 <로맨스 소설>의 공식은 더욱 완벽해지기 때문이다.

 

  난, 나름 <로맨스 소설>도 두루 섭렵을 했고, <추리 소설>은 중학시절부터 탐독을 해와서 두 장르 모두 너무너무 사랑하는 독자다. 그런데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장르를 한꺼번에 접할 수 있는 소설을 읽으며 웬지 모를 당혹감에 빠졌었던 것 같다. 달달함에 빠져들기엔 피비린내나는 살인사건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리해볼라쳤더니 사건의 실마리가 모두 밝혀지기도 전에 명탐정 같은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되었다고 하고, 해결된 사건조차 주인공의 설명을 듣기 전에는 짐작도 할 수 없어 '추리 소설을 읽는 맛'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걸 거꾸로 접근하면 '<잠중록>만의 재미'가 느껴지게 되었던 것이다. 살인사건의 정황이 펼쳐지고 명탐정의 능력을 지닌 여주인공이 사건을 착착 해결하고,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는 남주인공이 등장해 여주인공을 기적처럼 구해내고, 그런면서 '남주인공의 잘남'이 화려하게 수놓는 순간, '여주인공의 잘남'이 그 화려함에 빈틈을 메꾸어줄 '수려함'으로 등장하며 아무도 풀지 못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면서, 두 남녀의 사랑은 더욱 공고해지게 된다는 '로맨스 소설의 공식'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왜 이걸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을까? 암튼, 기묘한 소설로만 느껴졌던 <잠중록>을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되면서 마무리하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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