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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중록 외전 ㅣ 아르테 오리지널 5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10월
평점 :
드디어 <잠중록>을 다 읽었다. 드라마 <청춘월담>을 시청하면서 문득 이 소설을 떠올렸고, 읽다가 만 소설을 다시 꺼내 읽게 된 셈이다. 그런 연유로 끝까지 읽고나니 내가 이 소설을 그동안 잘못 읽었다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에 나는 이 책을 '사극로맨스미스터리추리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재미나게 읽으면서도 '기묘하다'는 느낌에 빠져서 읽고 난 다음에도 찝찝함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늘 고독한 기왕의 마차에 뛰어든 묘령의 소녀 황재하가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는 '로맨스 소설'을 기반으로 미스터리한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그로 인한 여러 시체를 부검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파헤쳐서 수사를 종결 짓는 '미스터리추리 소설'의 기법이 가미된 소설로 읽었으니, 두 남녀의 사랑과 서너명의 남녀가 얽히고 섥힌 삼각관계에 빠져들어 밀고 당기는 '러브라인'에 푹 빠져서 달콤한 연예감정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느닷없이 살인사건이 벌어지며 온통 피투성이의 살해현장을 조사해 단서를 찾고, 피범벅인 된 시체를 부검해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 명탐정 같은 기발한 추리를 하여 오리무중에 빠진 사건을 일단락에 해결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해자를 구해내고 진범을 밝혀 좌중을 놀라게 하는 방식으로 소설이 한편 한편 이어져갔다.
헌데, <잠중록>은 그렇게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을 '외전'을 읽으면서 겨우 깨달은 것이다. '외전'에서는 우여곡절을 겪은 두 남녀 기왕과 황재하게 혼인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왕장군(왕온)이 멀리 떨어진 두 장소에서 동시에 살인을 저지르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게 소설은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사건해결'을 위해 황재하와 주자진이 출동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기왕 이서백이 등장해서 위기에 빠진 황재하를 구해내고, 혼란에 빠진 수사선에서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어 흩어진 사건을 한데 모아 '사건의 진상'을 속시원히 밝혀내고 끝내 '진범'을 찾아내 마땅한 벌을 내리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하면서 이야기를 마치게 된다. 앞선 책과 달리 '외전'의 성격 때문인지 분량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어 더욱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흘러갔더랬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로맨틱한 내용'은 상당부분 덜어내어 '추리소설의 맛'을 최대한 살려낸 이번 '외전'은 앞선 소설의 내용보다 훨씬 인상 깊었다. 그리고 난 무릅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처처칭한의 <잠중록>은 '추리소설'이었구나...하고 말이다. 그렇다. <잠중록>은 로맨스소설에 추리기법을 가미한 소설로 읽기보다는 '추리 소설'이라는 생각으로 읽다보면 달달한 로맨스 기법이 그 맛을 더욱 살려주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읽어야 제맛이었던 것이다. 마치 따뜻한 와플을 먹으러 왔다가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얹어진 메뉴를 선택한 느낌과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입맛을 바꾸려다고 왔는데 퍽퍽한 와플이 씹히는 느낌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추리소설'인데도 여러 단서를 조합해서 독자도 범인을 찾을 수 있는 방식이 아닌 사건과 단서를 어지럽게 나열하기만 하다가 아무도 풀어내지 못한 숙제를 황재하가 뜬금없이 "사건은 이미 해결 됐어요", 또는 "누가 진범인지 알려드릴게요"라면서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연출하는 기법을 썼는지도 설명이 된다. 이런 방식이면 주인공에게 집중조명이 되며, 주인공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나머지는 철저하게 '조연'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로맨스 소설'에서도 잘 써먹는 수법이다. 잘난 두 남녀 주인공이 '운명적인 커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계시적 효과'가 더욱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든 것을 가진 기왕 이서백도 풀지 못하는 난제를 난데없이 등장한 미녀 황재하가 척척 해결해버리는 과정을 연출하면서 두 사람은 하늘이 맺어준 천생연분이라는 메시지가 확연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랑의 갈등'과 '연적의 등장',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알고 보니 친남매,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 등등)'을 솔솔 뿌려주면 <로맨스 소설>의 공식은 더욱 완벽해지기 때문이다.
난, 나름 <로맨스 소설>도 두루 섭렵을 했고, <추리 소설>은 중학시절부터 탐독을 해와서 두 장르 모두 너무너무 사랑하는 독자다. 그런데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장르를 한꺼번에 접할 수 있는 소설을 읽으며 웬지 모를 당혹감에 빠졌었던 것 같다. 달달함에 빠져들기엔 피비린내나는 살인사건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리해볼라쳤더니 사건의 실마리가 모두 밝혀지기도 전에 명탐정 같은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되었다고 하고, 해결된 사건조차 주인공의 설명을 듣기 전에는 짐작도 할 수 없어 '추리 소설을 읽는 맛'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걸 거꾸로 접근하면 '<잠중록>만의 재미'가 느껴지게 되었던 것이다. 살인사건의 정황이 펼쳐지고 명탐정의 능력을 지닌 여주인공이 사건을 착착 해결하고,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는 남주인공이 등장해 여주인공을 기적처럼 구해내고, 그런면서 '남주인공의 잘남'이 화려하게 수놓는 순간, '여주인공의 잘남'이 그 화려함에 빈틈을 메꾸어줄 '수려함'으로 등장하며 아무도 풀지 못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면서, 두 남녀의 사랑은 더욱 공고해지게 된다는 '로맨스 소설의 공식'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왜 이걸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을까? 암튼, 기묘한 소설로만 느껴졌던 <잠중록>을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되면서 마무리하게 되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