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기 전에 알면 좋은 사실들
홍태화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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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좋은 책은 널리 알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약자를 보호해야 할 법이 도리어 '강자의 유용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현실에서 가해자의 2차 폭력을 막고 피해자를 법의 울타리 안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널리 알리는 일은 '지식인들의 의무'이자 '교양인들의 상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이 책에는 '언론 제보'와 'SNS 폭로' 등으로 자신이 받은 부당한 피해 사실을 알리는 방법이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사실을 밝힐 때 유용한 팁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거나와 '언론 제보'를 할 수 있는 채널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명', 그리고 '관련 법규'까지 소상히 일러주어서 정말 알면 알수록 좋은 상식을 누구나 쉽게 읽고 따라 할 수 있게 정리 되어 있다.

 

  더욱 유용한 까닭은 '관련 사례'를 조목조목 달아놓아서 자신이 받은 부당한 사례나 직장 갑질, 성폭력 등 따위를 대기업으로부터 명예훼손을 받았을 때 당황하지 않고 대응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기에 피해자인데도 가해자로 인해 '가해자로 둔갑'하는 황망한 일을 당했을 때 유용한 도움을 얻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현직 대통령도 언급한 말이지만,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이며,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고,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법적조치를 받을 수 있는 나라이다". 따라서 '법대로 따르면' 국민 누구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일이 없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을 다루는 판사와 검사, 변호사가 우리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다보니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그들에게 훨씬 유용하도록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법과는 거리가 먼 '선량하기만 한 서민들'은 힘 있는 자들의 고소, 고발만 받아도 '사형선고'를 받는 것마냥 벌벌 떨기 일쑤다. 특히, '명예훼손'과 같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함부로 쓰여지는 '법적 횡포'에 법과 친하지 않아 '소외되고 문외한이 되어 버린 약자들'은 피해를 당하고도 가해자로 또다시 처벌을 받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처하곤 한다.

 

  이래선 약자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 할 도리가 없게 된다.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는 사실조차 약자들에겐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법'과 '법률'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만 한다. 그래서 최소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가해자들의 횡포에 당당히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왜냐면 당신은 잘못한 게 없기 때문이다.

 

  현실은 비정하고, 법이 '힘 있는 자들'에게 더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약자들의 위한 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법을 잘 몰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명확한 '피해 사실'과 명백한 '피해 증거'만 확보해두면 당신을 도와줄 사람과 단체, 그리고 기관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를 가지고 '사실 관계'에 근거해서 '언론 제보'와 'SNS 폭로'를 통해 강자와 대기업의 횡포에 당당히 맞서고 피해자 앞에 무릎을 꿇고 싹싹 빌게 된 사례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OO 유업 불매운동'이다. 대기업의 갑질로 대리점주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언론 제보'를 통해 그 사실이 널리 알려졌고, 그 사실을 인지한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불매운동'을 펼쳐서 가해자가 더는 악질적인 행위를 하지 않겠다며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개선이 되지 않자, 결국 사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는 촌극이 벌어지고 나서야 겨우 일단락이 된 사례도 있다.

 

  그러니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당당하게 알려야만 한다. 여기에 '안전하게'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유용한 안내서가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법의 도움이 절실한 이들에겐 유용한 지침서가 될 것이며, 법적인 상식이 필요한 예비 교양인들에겐 필독서가 될 것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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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5대 희극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셰익스피어 연구회 옮김 / 아름다운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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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셰익스피어를 읽겠노라고 다짐해놓고서 미적거리다가 이제사 다시 책을 들었다. 그간 여러 모로 사정이 있긴 했지만 그조차 구구절절 변명일 것 같아 길게 하지 않으련다. 당장은 어머님 병간호로 인한 백수 신세를 면하고, 다시금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겠기에 리뷰에 소홀할 지도 모르겠으나, 책은 늘 내 곁에 있을 것이기에 리뷰도 끊이지 않고 써나갈 것이다. 어쨌든 '다시,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은 <베니스의 상인>, <말괄량이 길들이기>, <한여름 밤의 꿈>, <뜻대로 하세요>, <십이야>다. 4대 비극과 함께 '상식문제'로 곧잘 나오는 것이니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일 뿐이고, 우리가 기대하는 '희극'에 걸맞는 명성을 갖춘 작품이냐고 되묻는다면, 글쎄요..라는 답변이 나올 것이다. 직접 읽어보면 그다지 웃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베니스의 상인>은 골탕을 먹는 '악당 샤일록'이 자신의 욕심 때문에 전재산을 잃어버리는 통쾌한 내용이 담겨 있기에 '희극'으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선 기 쎈 여자를 남자들에게 고분고분하게 만들어서 지역사회를 평안하게 만들었다는 웃지 못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요즘 독자들을 웃기지 못하게 할 것이며, <한여름 밤의 꿈>에서는 신들의 장난에 의해 어긋나 버린 사랑이야기로 감동적인 이야기로 다가오지만, 희극적인 요소를 띤 '요정의 장난'이 오늘날의 독자에게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할 듯 싶다. 왜냐면 셰익스피어 희극의 장점은 바로 '익살스런 대사'에 있는데, 아주 오래 전에 유행했을 법한 익살과 재담이 요즘 독자들에겐 식상하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뜻대로 하세요>에서는 로잘린과 올란도의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끝내 해피엔딩으로 끝맺고, <십이야>에서는 세바스찬과 바이올라라는 일란성 쌍둥이 남매가 우여곡절 끝에 각자의 사랑과 맺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처럼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배꼽 잡을 정도로 웃긴 작품이 아니다. 그의 비극이 모두가 파멸로 끝을 맺는 '새드엔딩'이라면, 그의 희극은 몇몇 악당을 제외한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는 점에서 '희극'이라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희극인들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전하기 위해서 피땀눈물, 그리고 고생을 아끼지 않는 것을 생각하며 <5대 희극>을 접하게 되면 실망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감동적인 서사를 음미하면서 읽게 된다면 '해피엔딩'이 될 수밖에 없는 '반전없는 매력'에 푹 빠져 감상한다면 더욱 맛깔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베니스 상인>을 빼고는 '수동적인 여인의 모습'을 당연하다 여기고, 심지어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는 남편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으면 맞아도 싸고, 굶어 죽어도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다. 희극속에서 카타리나는 여인들을 모아놓고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지 설교하며 마무리하고 있는 장면에선 기겁을 할 지경이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순종이란 말인가? 차라리 천방지축에다 안하무인으로 살던 모습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데 말이다. 나머지 작품에선 모두 '남자'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 속만 끓이다 '남자'가 겨우 사랑을 알아보고 '알은 채'를 한 뒤에야 행복해진다는 결말을 말하고 있어서 안타까움을 자아 냈다. 여자가 먼저 사랑고백을 하면, 아니 '내 사랑'을 쟁취하는 적극성을 보이면 '여자답지' 못한 것일까?

 

  딴에는 <베니스의 상인>을 비판적으로 읽으며 '유대인'을 모욕하는 것에 관심을 쏟기 일쑤인데, <5대 희극>을 나란히 놓고 보면,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지혜롭기까지 한 포셔의 등장이 단연 돋보여서 가장 희극다운 희극으로 보일지경이다. 앞서 <햄릿>을 소개할 때도 셰익스피어의 여성관이 부정적이라며 비판을 했었는데, <5대 희극>에서는 더욱더 부정적이라서 놀랐다. 이런 작품을 두고, 여전히 '명작'이라 불러야만 한단 말인가 하고 말이다.

 

  물론, 셰익스피어를 '여성관' 하나만 가지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문호가 전하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보지 않고 '당근만 골라내는' 편식쟁이 어린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대함과는 별도로 오늘날의 가치관과 사뭇 다른 점이 있다면, 지적해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가 <고전>을 다루면서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지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문호의 명성 앞에서도 당당히 꾸짖는 능동적인 독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저 남들이 평가해놓은 '잣대'에만 길들여져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명작을 읽는다고 해도 아무 짝에 쓸모 없는 시간낭비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럴 바에야 공들여 책을 읽는 수고는 무엇하러 하느냔 말이다. 그저 남들이 평가해놓은 얄팍한 '지침서'만 읽어도 충분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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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불한 완역판, 개정판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1
생 텍쥐페리 지음, 김미성 옮김, 김민지 그림 / 인디고(글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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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왕자>가 주는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등장인물이라고 해봐야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와 소행성에서 지구로 불시착해서 이곳저곳을 떠도는 어린 왕자가 고작이고, 이야기 전개방식도 앞뒤 순서도, 맥락도 없이 그저 비행사와 어린 왕자의 '경험담'을 읊조리는 것이 전부이기에 굳이 감동적인 '까닭'을 찾으려고 해도 딱히 '이것'이라고 하기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찾아보라고 하면, 여우와 어린 왕자가 '길들이기'라는 주제로 떠벌린 친구 사귀기에 필요한 조건을 따지는 장면이고, 비행사가 어릴 적에 그렸다는 몇 가지 그림 가운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닮은 모자 그림 때문에 가슴 아픈 상처를 받은 이야기가 인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어린 왕자>의 진정한 주제는 어린 왕자와 그가 가꾸는 장미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재회 이야기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래야 어린 왕자가 여행을 떠난 진정한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린 왕자가 자신이 살던 행성을 떠나 지구로 오게 된 까닭도 표면적으론 '더 넓은 세상'을 알기 위해서였지만, 그 내면에는 '서로를 더 아끼고 서로 배려하는 참사랑'을 깨닫기 위한 위대한 여행이었다. 왕자가 굳이 어렸던 까닭도 그의 사랑이 풋내나는..아직 무르익지 못한 사랑꾼에 불과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그래서 왕자의 사랑법은 그저 '유리벽'을 뒤집어 씌워서 장미를 보호하는 것이 전부였던 셈이다. 장미 역시, 그런 보호가 당연하다고 여길 정도로 작고 여린 '존재'였을 뿐으로 왕자의 사랑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애송이'였던 것일테고 말이다. 그런 둘의 사랑, 다시 말해, 풋내기와 애송이의 사랑은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었다.

 

  그래서 왕자는 떠났다. 풋내를 지우고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여러 행성을 떠돌며 멋진 어른들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상은 참으로 요상하기 짝이 없었다. 각자 아주 중요하고 멋진 일을 하며 한 평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어린 왕자의 눈으로 보아도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아 보이고, 멋져 보일리 만무한 일에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지막 종착지로 지구에 도착한다. 지구에 도착해서도 여러 곳을 떠돌지만 '멋진 어른'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자기 일'에만 몰두하며 아무런 목적도 없이 쳇바퀴만 돌리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사막 한복판에서 멋진 어른을 만났다. 그는 살기 위해서 고장난 비행기를 고치고 있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비행사였다. 그에게 다가간 어린 왕자는 여러 가지 부탁을 한다. 그러자 멋진 어른이었던 비행사는 어린 왕자의 맘에 쏙 드는 그림을 그려주며 멋진 어른임을 증명한다. 흡족한 어린 왕자는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떠들며 멋진 어른에게 '진짜 인생'을 배운다.

 

  하지만 비행사는 '생존'이라는 일을 완수해야 했기에 바빴고, 어린 왕자는 비행사가 바쁨 틈을 타서 다른 친구를 만났다. 바로 여우와 뱀 말이다. 어린 왕자는 여우와 뱀을 통해서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짜 사랑'이 무언지 깨닫게 된다. 그렇게 어린 왕자는 삶의 목적을 깨닫고, 우정과 사랑이라는 가슴 찐한 감정을 제대로 배우고 나서야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한 대상이 소행성에 홀로 남겨둔 장미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왕자는 '선택'을 한다. 자신이 진심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으므로...

 

  내가 십대에 읽은 <어린 왕자>는 그저 그랬다. 심지어 책을 읽기 전에 '영화'로 먼저 만났었다. 그때 남은 인상은 '엄청 빠른 장면전환'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두서 없이 전개되는 책의 내용을 고스란히 연출한 감독의 재능이었을테지만, 십대의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지럽고 산만한 전개에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나마 가장 인상적인 내용이자 기억에 남는 내용은 바로 '여우와의 만남'이었다. 친구가 되기 위해 자신을 길들여야 하며, 오후 네 시에 만나기로 했으면, 자신은 두 시간 전부터 가슴 두근두근하는 설렘으로 기뻐질 거라는, 그런 사람이 진짜 친구라고 말하는 여우의 대사가 정말 인상 깊었다. 그래서 십대에 읽은 나의 <어린 왕자>는 우정에 관한 책이었다.

 

  논술수업을 위해 다시 읽은 책이며, 사십대에 다시 읽은 <어린 왕자>는 단연코 사랑에 관한 책이었다.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동적인 책이었다. 명작을 읽으면서 다시금 느끼는 것은 '10년 단위'로 반복해서 읽어봐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굳이 '10년'으로 기준을 삼은 까닭은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 속담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한두 해가 지나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강산의 변화를 10년이라는 세월은 단박에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란 말이다. 어디 강산뿐이겠는가. 사람도 10년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변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같은 책'이라도 우정으로 읽혔다가, 사랑으로 바뀐 것이 틀림없다.

 

  어쩌다보니, 책내용만 나열했는데, 같은 <어린 왕자>라도 '삽화'가 달라지니 그 느낌이 사뭇 달라졌다. 기존의 <어린 왕자>가 진중하고 진지하기만 했다면 '감성적인 그림체'로 바꾸어 읽으니 한결 가볍고 산뜻하게 느껴졌다. 또 하나는 그동안 '영어판 뒤침책'을 주로 접하다가 '불어판 뒤침책'을 새로 접하니, 읽는 맛도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지은이인 생텍쥐페리가 프랑스인인데 어쩌다 '영어판'을 먼저 읽게 된 것일까? 궁금했었는데, <어린 왕자>가 먼저 출판된 곳이 미국이었고,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난 뒤에야 비로소 프랑스에서 출판하게 되었다는 헤프닝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한국독자들도 '불어판'보다 '영어판'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뒤늦게나마 '불어판'을 읽어보니, 문장 하나하나가 더욱 감성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어'에서 '영어', '영어'에서 '한국어'로 뒤쳐지게 되면서 '뜻만 전하는 뒤침(의역)'이 되었다면, '프랑스어'에서 '한국어'로 곧장 뒤쳐지니 비로소 '뜻과 감성이 온전히 전달되는 뒤침(완역)'이 된 듯 했다. 기회가 된다면 '영어판'과 '불어판'을 동시에 읽어보면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점을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암튼, 예쁜 책으로 다시 만난 <어린 왕자>가 정말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다시 10년 뒤에 만나면 또 어떤 느낌으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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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아리 - 누구나 겪지만 아무도 말할 수 없던 데이트 폭력의 기록
이아리 지음 / 시드앤피드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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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까운 일이지만 '데이트 폭력'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가슴 아픈 일이다. 그것도 둘 만이 있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어두운 곳에서 힘쎈 가해자와 연약한 피해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데이트 폭력이 더 끔찍한 건 '가스라이팅'이라 불리는 방식으로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팅'이란 심리적 학대의 한 유형으로 상황을 조작, 왜곡시켜서 피해자의 기억과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를 테면,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널 사랑하는데 뭔들 못하겠니?"..라면서 폭력을 정당화하고 '길들이기'를 시행하며, 가해자가 원하는 대로 피해자가 바뀔 때까지 끊임없이 폭력과 협박, 억압, 강제, 수탈까지 서슴지 않기에 '데이트 폭력'은 피해자에게 지옥보다 더한 아픈 상처를 남기곤 한다. 그래서 '데이트 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하지만 현실은 아무리 폭력적인 상황이 연출(?)되어도 흔한 연인들 간의 '사랑싸움'으로 치부되기에 가해자에게는 "여자가 맞을 만 했네"라며 별일 아닌 듯 폭력을 두둔하고 피해자에게는 "왜 안 헤어졌어요?"라면서 은근히 모자란 탓을 하며 '데이트 폭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심지어 피해자의 신고로 가해자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상황이라 할지라도 조서를 작성하는 자리에 당사자인 두 남녀를 동석시켜 제대로 작성조차 할 수 없게 만들거나, 서로 떨어져 있다고 해도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선처'할 것인지, '고소'할 것인지, 그도 아니면 '합의'할 것인지 물으며, 울먹이며 벌벌 떨고 있는 피해자에게 '사건종결'을 서두르는 모양새를 취해 당혹스럽게 만들곤 한다. 더 큰 문제는 피해자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가해자는 얼마 되지 않아 풀려나게 되고 피해자에게 '2차 폭력(스토킹, 살해협박, 살인 등)'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종종 뉴스를 장식(!)하곤 하는 것이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이별할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고, 가족과 친구, 지인들에게도 이러한 상황을 분명히 알림과 동시에, 직장이나 이웃에게도 정확한 정보를 알려서 충분한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기 전에 분명히 하는 것이고, '데이트 폭력' 발생 후라면 경찰 등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아서 안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귀가 시간에 경찰동행을 신청하는 등 가해자와 완벽한 차단을 하는 것이 보다 안전할 것이다.

 

  허나, 연인 사이였다는 것이 종종 발목을 잡아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를 완벽하게 격리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 '데이트 폭력'의 가장 큰 문제점이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의 한계가 드러나는 점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가해자는 피해자의 연락처는 물론이고, 집주소도 알고 있으며, 심지어 '현관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거기다 요즘엔 SNS가 활발한 탓에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 상에서도 스토킹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인 거짓까지 서슴지 않고 퍼뜨릴 수 있기에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는 가해자와 헤어진 뒤에도 불안에 떨며, 악몽도 꾸는 등 심리적 장애를 겪기도 하며, 심하면 자살까지 하게 되는 등 그 심각성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다 이아리>는 실제 '데이트 폭력의 경험'을 웹툰 형식으로 낱낱이 밝혀낸 책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데이트 폭력'의 끔찍함과 심각성을 직접 경험한 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난감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가해자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법도 거의 없고, 일단 피해자가 피해를 당하기 전까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피해를 당하더라도 고작해야 '접근금지명령'과 같은 유약한 처벌이 대부분이고, 가해자를 '사회적 격리'시킬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탓에 가해자의 보복에 노출될 위험을 막기 위한 노력은 전적으로 피해자에게 맡겨 놓는 소극적인 대책 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렇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나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 사회구성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은 '데이트 폭력 가해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만 할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사랑싸움'이라는 미명으로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억울한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가장 큰 까닭은 "당신도 얼마든지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 평생을 모태솔로로 살 작정이 아니라면 누구나 사랑에 빠지고 데이트를 하는 연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그 연인이 한순간에 '폭력'을 일삼는 또라이라면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말이다. 더 끔찍한 것은 폭력을 방조하며 '남일'로 치부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었을 때, 도움조차 청할 수 없는 피해자가 되어 버린다면 어쩔 것인가 말이다. 이는 매맞는 아내/남편이 발생하는 부부싸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부부 사이는 '이혼'을 통해서 법적인 보호라도 받을 수 있지만, '연인 사이'에는 법적인 보호는커녕 보상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더욱더 보호하고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연애하는 것조차 '법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한다는 것이 웃긴 일이라면, 폭력을 저지르는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 폭력이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물리적이고 심리적인 폭력의 심각성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연인 사이는 겉으로 드러난 부분보다 감춰진 부분이 더 많기 때문에 일단 '폭력'이 눈에 띄게 보인다면 분명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기에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는 피해자의 하나 뿐인 목숨마저 좌지우지하는 무소불위의 '우위'를 선점하고서 폭력을 자행하는 일이 태반인 것이다. 그렇다면 '데이트 폭력'을 단 한 번이라도 저지르면 사회적 매장을 시켜도 좋을 엄벌이 필요할 것이다. 적어도 가해자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행위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두 번 다시 폭력을 저지르지 않을 때까지 '완벽한 사회적 격리'가 필요하단 말이다.

 

  너무 무거운 형벌이라고 생각하는가? 성폭력과 성추행과 같은 비인간적인 짓을 하고서도 뻔뻔스럽게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상상을 해보라. 당신의 옆자리에 '가면'을 쓰고 정상인처럼 행동하는 성범죄자가 함께 하고 있다고 상상을 해보란 말이다. 그들도 '인간'이니 '인권'을 보장받아 마땅하겠지만, 한순간에 '인간'이길 포기하는 그 짐승들이 우리 사회 속에 자유롭게 나다니게 만들고서 어찌 안심하며 살 수 있겠느냔 말이다. 심지어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인지도 모르고 사랑에 빠져서 스스로 피해자인 줄도 모르고 '길들여져' 버리는 끔찍한 상황을 난, 감히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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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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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기성세대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행동을 보며 일컫는 말이 '신인류'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신인류의 범주에 든 청소년들도 '세대차이'를 느낄 정도로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이자 순차적으로 X세대, Y세대, N세대 등등으로 부르더니 오늘에 이르러서는 새천년을 일컫는 '밀레니엄'의 M과 가장 최근의 청소년을 이르는 Z세대를 합쳐 'MZ세대'라고 묶어 부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부르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들을 '별종'이라고 바라보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인 듯 싶다. 이렇게 과거의 기성세대와는 달리 자신의 정체성에 스스럼없이 자기 의견을 밝히는 청소년들에게도 고민이 있을까?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럼 무얼까? 하지만 그 고민이라는 것이 대단히 많고 다양할 것이기 때문에 한 가지만 딱 꼬집어서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그 가운데서도 '도벽'과 '이혼'으로 자기 고민에 빠진 두 청소년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문제아 학생'으로 낙인 찍힐만 한 사안을 슬기롭게 문제해결하는 청소년과 어른들의 현명한 해결 방법에도 관심을 두면 좋을 책이기도 하다. 부족할 것 없이 풍요로운 요즘 세대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남자주인공은 고등학생으로 특별한 손재주를 가지고 있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예민한 감각을 소유한 덕분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원하는 물건을 훔쳐낼 정도로 손이 재빠른 친구다. 그래서 주인공은 남다른 손재주로 친구들의 값나가는 물건들을 훔쳐서 되파는 방식으로 돈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그렇다. 주인공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지만 '도둑놈'인 셈이다. 그는 별로 훔칠 마음이 없지만 재주가 비상한 손이 제멋대로 움직여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사이에, 아니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할 사이에 그 물건이 자기 수중에 있을 정도로 뛰어난 재주지만, 변명할 것도 없이 그냥 '도둑질'을 한 것이다. 정말 나쁜 짓이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심지어 잃어버린 주인조차 주인공을 도둑으로 몰지 않을 정도로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은 학생이었다. 그렇다고 겉과 속이 다른 '나쁜자식'은 절대 아니다. 스스로도 반성할 정도로 양심은 있지만, 누구도 자신을 꾸짖고 추궁하지 않으니 반성을 하고 용서를 구할 방도를 모른채 세월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결국 친구들에 의해서 도둑질을 하는 현장이 발각되고 말았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여자주인공은 평범한 고등학생이지만 이혼가정으로 남다른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부부사이가 원만하지 않아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아서 끝내 이혼을 하고, 여자주인공은 엄마와 살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재혼을 해서 새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여기까지는 별탈이 없는 그저 평범한 가정으로 보이지만, 정작 문제는 '친아빠'가 일으킨다. 엄마를 뻔히 두고서 바람을 폈던 친아빠는 이혼을 한 뒤에도 딸에게 연락을 하며 애정표시를 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어릴 적에 자신을 돌보지 않고 밖에 나가 엄마 아닌 여자와 불륜을 저지른 기억이 생생한 까닭에 친아빠의 애정표시가 달갑지 않다. 그래서 친아빠에게 화를 내는대도 그때뿐, 또다시 연락을 하면서 아빠의 집으로 초대를 한다. 그 집에는 엄마의 물건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데, 그런 집에 엄마 아닌 여자를 끌어들여 생활을 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도, 감수성이 한창 예민할 여자주인공을 번번히 초대를 해서 주인공의 속을 긁다 못해 들끓게 만든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주인공은 반친구들과 함께 친아빠의 집을 털러 가는데, 그 뒤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어린이들조차 어리다고 무시하면 안 되는데, 하물며 훌쩍 커버려 어른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린 청소년들을 무시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고민을 하찮게 여기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다루곤 한다. 도벽을 멈출 수 없는 남주와 친아빠의 물색없는 애정공세에 빡쳐버린 여주의 고민이 정말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가? 똑같은 문제를 '어른'에게 대입을 하면 심각하지만, '청소년'이기 때문에 그닥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학생이기 때문에 어른처럼 완전한 책임을 묻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처벌을 하는 수준은 아니고, 그보다 낮은 수준에서 다루긴 할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 자체가 대수롭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는 제목에 그 해답을 담아놓은 듯 하다.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는 '고백'이라는 단어 앞에 '가시'를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목에 조그만 가시가 걸리면 정말 불편하듯 '고백'이라는 가시가 단단히 박혀 있어서 고민을 말하지도 못하고 안 하지도 못하는 괴로움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흔히 청소년들은 말 못할 고민을 가슴에 담고서 끙끙 앓기도 한다. 대부분의 고민은 시간이 해결해주고, 때로는 망각이라는 해결법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자못 심각한 고민에 빠져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는 애꿎은 청소년들도 대단히 많을 것이다. 그런 청소년들에게 적절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럼, 그 손길 가운데 가장 현명하고 좋은 것은 무엇일까? 고민이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과 같은 어른들이 척척 해결해주는 것일까?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겠지만, 어른들의 해결법이라는 것이 으레 물색없이 학생들의 '자존감'을 짓밟고, 해결은커녕 '마음의 상처'만 주는 터무니 없기도 하니, 마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위와 같은 남주와 여주의 고민도 '형사처벌'과 '접근금지명령'과 같은 강압적이고 끔찍한 결말로 끝맺는 어른들이 많을 것이기에 현명한 방법은 더더군다나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란? 마음에 맞는 친구끼리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청소년들끼리 공감할 수 있는 정의로운 방법으로 해결하고, 아픈 마음을 보듬어주는 서로 보듬어주는 지혜를 발휘하는 등 친구의 잘잘못까지 품어주어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찐한 우정이 참으로 좋은 방법일 것이다. 어릴 적엔 누구나 거짓말도 하고, 일시적으로 탐이 나서 친구의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견딜 수 없는 아픔과 상처로 남을 더욱 아프게 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 등 삐뚫어진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이를 두고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도 하고, 미성숙한 인격체라고도 한다. 그렇기에 잘잘못을 가리고 처벌을 하기 이전에, 잘못을 뉘우치고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며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훈육을 곁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주체가 어른일 때에는 부작용을 낳기 일쑤다. 그렇기에 친구들끼리 찐한 우정으로 잘못을 감싸주고 뉘우칠 '기회'를 통해서 잘못을 바로 잡는 방법이 꼭 필요한 법이다.

 

  왜냐면 모든 일에는 '결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원인'이 반드시 동반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 인과관계가 말도 되지 않고 엉뚱하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처벌에 앞서 스스로 반성하고 고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때로는 가시가 박힌 듯 '말하지 못할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그럴 때에도 먼저 한 발 다가가 '관심'을 기울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어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자신들도 '청소년 시기'를 겪어봤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이들의 생뚱맞은 말과 행동이 '무슨 이유' 때문에 나온 것인지 살짝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늠조차 할 수 없기에 '신인류'라고 부를 지경에 다달았지만, 그래도 한 발짝 다가가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현명한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꼰대처럼 "~라떼는 말이야"는 말부터 늘어놓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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